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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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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元年春王正月 하다注+無傳 先君未葬而公卽位 不可曠年無君
원년元年주왕周王정월正月즉위卽位하였다.注+이 없다. 선군先君장전葬前인데도 즉위卽位한 것은 오래도록 임금의 자리를 비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經]二月癸亥 日有食之하다注+無傳 癸亥 月一日 不書朔 官失之
2월 계해일癸亥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계해癸亥는 2 1이다. (朔日의 간지干支)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관史官이 잊은 것이다.
[經]天王使叔服來會葬하다注+叔 氏 服 字 諸侯喪 天子使大夫會葬 禮也
천왕天王숙복叔服을 보내어 와서 회장會葬하였다.注+이고 이다. 제후諸侯천자天子대부大夫를 보내어 회장會葬하는 것이 이다.
[經]夏四月丁巳 葬我君僖公하다注+七月而葬 緩
여름 4월 정사일丁巳日에 우리 임금 희공僖公을 장사 지냈다.注+일곱 달 만에 장사 지냈으니 늦은 것이다.
[經]天王使毛伯來하다注+毛 國 伯 爵 諸侯爲王卿士者 諸侯卽位 天子賜以命圭合瑞爲信 僖十一年 王賜晉侯命 亦其比也 [附注] 林曰 自隱至文 六君 惟桓文 書卽位 而後書錫命 以其自卽位也
천왕天王모백毛伯을 보내어 와서 문공文公에게 작명爵命을 내렸다.注+국명國名이고 작위爵位인데 제후諸侯로서 경사卿士가 된 자이다. 제후諸侯즉위卽位하면 천자天子명규命圭를 주어 합서合瑞하여 신표信標로 삼게 한다. 희공僖公 11년에 진후晉侯을 내린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부주]林: 은공隱公부터 문공文公까지 여섯 임금 중에 오직 환공桓公문공文公에게만 즉위卽位를 기록한 뒤에 석명錫命을 기록한 것은 그들이 자의自意즉위卽位하였기 때문이다.
[經]晉侯伐衛하다注+晉襄公先告諸侯而伐衛 雖大夫親伐而稱晉侯 從告辭也
진후晉侯나라를 토벌하였다.注+진양공晉襄公이 먼저 제후諸侯에게 통고通告한 뒤에 나라를 토벌하였다. 나라의 대부大夫가 가서 토벌한 것인데도 ‘진후晉侯’로 한 것은 나라의 고사告辭를 따른 것이다.
[經]叔孫得臣如京師하다注+得臣 叔牙之孫
숙손득신叔孫得臣경사京師에 갔다.注+득신得臣숙아叔牙의 손자이다.
[經]衛人伐晉하다注+衛孔達爲政 不共盟主 興兵隣國 受討喪邑 故貶稱人
위인衛人나라를 토벌하였다.注+나라 공달孔達집정執政이 되어 맹주盟主존경尊敬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이웃나라를 토벌하였다가 나라의 토벌을 받아 을 잃었기 때문에 폄하貶下하여 ‘’으로 칭한 것이다.
가을에 공손오公孫敖에서 진후晉侯회합會合하였다.注+나라 으로 돈구頓丘위현衛縣 서쪽에 있다. 에 의하면 공후公侯와 회합할 수 없는데, 《춘추春秋》에 공후公侯와 회합한 대부大夫를 모두 폄하貶下하지 않은 것은 체례體例(體制의 격식格式)를 이미 들어 말하였기 때문에 노사魯史성문成文에 의거한 것뿐이다. 노군魯君을 ‘’으로 칭하고 을 ‘’으로 칭한 것도 모두 노사魯史를 따른 것이다.
[經]冬十月丁未 楚世子商臣弑其君頵하다注+商臣 穆王也
겨울 10월 정미일丁未日나라 세자世子상신商臣이 그 임금 시해弑害하였다.注+상신商臣목왕穆王이다. 시군弑君선공宣公 4년에 보인다.
[經]公孫敖如齊하다注+傳例曰始聘焉 禮也
공손오公孫敖나라에 갔다.注+전례傳例에 “비로소 빙문聘問하였으니 에 맞았다.”고 하였다.
[傳]元年春 王使內史叔服來會葬하다
원년元年 봄에 주왕周王내사內史숙복叔服을 보내어 와서 회장會葬하였다.
公孫敖聞其能相人也注+公孫敖 魯大夫慶父之子 [附注] 朱曰 相人 謂觀其形色而知吉凶也하고 見其二子焉하니 叔服曰
공손오公孫敖숙복叔服이 사람의 을 잘 본다는 말을 듣고서注+공손오公孫敖나라 대부大夫경보慶父의 아들이다. [부주]朱: 상인相人은 사람의 형색形色을 보고서 그 사람의 길흉吉凶을 아는 것이다. 자기의 두 아들을 그에게 보이니, 숙복叔服이 말하였다.
“穀也하고 難也收子하리라注+穀 文伯 難 惠叔 食子 奉祭祀共養者也 收子 葬子身也
은 그대를 먹일 것이고[食子]은 그대를 거둘 것이다[收子].注+문백文伯이고 혜숙惠叔이다. 식자食子는 그대의 제사祭祀를 받들고 공양供養한다는 말이고, 수자收子는 그대의 시신屍身을 장사 지낸다는 말이다.
穀也豐下하니 必有後於魯國하리라注+豐下蓋面方 爲八年公孫敖奔莒傳
은 아래턱이 풍만하니 반드시 나라에서 후손이 창성昌盛할 것이다.”注+풍하豐下는 얼굴이 네모난 것인 듯하다. 문공文公 8년에 공손오公孫敖나라로 도망간 의 배경이다.
[傳]於是閏三月하니 非禮也注+於歷法閏當在僖公末年 誤於今年三月置閏 蓋時達歷者所譏 [附注] 朱曰 按漢律曆志 謂閏當在此年十一月後 則以閏三月爲太近前也 杜註又謂閏當在僖公之末年 則以閏三月爲太近後也 二說不同 未知孰是
이해에 3을 넣었으니, 가 아니다.注+역법曆法에 의거하면 윤월閏月희공僖公말년末年에 들었어야 하는데 잘못 금년 3월에 윤월閏月을 넣은 것이다. 이는 당시에 역법曆法통달通達한 자가 비난한 것인 듯하다. [부주]朱: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를 상고하건대 “윤월이 이해 11월 이후에 들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3월에 윤달을 넣은 것은 너무 앞당긴 것이란 말이고, 두주杜注에는 또 “윤달이 희공僖公 말년에 들었어야 했다.”고 하였으니, 이해의 윤 3월은 너무 뒤로 보낸 것이라는 말이다. 두 이 같지 않으니 누구의 설이 옳은지 모르겠다.
先王之正時也 履端於始하고 注+步歷之始 以爲術之端首 朞之日三百六十有六日 日月之行 又有遲速 而必分爲十二月 擧中氣以正月 有餘日則歸之於終 積而爲閏 故言歸餘於終 [附注] 朱曰 歷法以十一月甲子朔夜半冬至爲一元 其時日月五星皆起於牽牛初度 更無餘分 以此爲步占之端 故云履端於始也 每歲有二十四氣 立春驚蟄淸明立夏芒種小暑立秋白露寒露立冬大雪小寒謂之節氣 雨水春分穀雨小滿夏至大暑處暑秋分霜降小雪冬至大寒謂之中氣 每月皆有中氣 惟閏月獨無中氣也 閏前之月 則中氣在晦日 閏後之月 則中氣在朔日 擧中氣而正月 則置閏不差矣 故云擧正於中也 置閏之法 以氣盈朔虛而歸日月之餘分也 周天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 日之行也 日一度 自今年冬至 至明年冬至 方一周天 實計三百六十五日零三个時辰也 而一歲十二个月 止有三百六十日更有五日 零三个時辰 無所歸著 是爲日行之餘分 每歲只均分在二十四氣上 所謂氣盈者也 月之行也 日十三度十九分度之七 常以二十九日半强而與日合於朔 是每日又有半日弱 無所歸著 是爲月行之餘分 故月不滿三十日 而有大小盡焉 所謂朔虛者也 積日月之餘分 每歲常餘十一日弱 故十九年而置七箇閏月 是爲一章之數 故云歸餘於終也 然唐孔氏又云 所有餘日 歸之於終 積成一月 則置之爲閏 蓋不然 大凡閏月前半月 是前月之中氣 後半月 是後月之節氣 則是餘分 積至半月 便當置閏矣 若俟積成一月 方置之爲閏 則閏月安得無中氣耶하고 歸餘於終注+四時無愆過하니
선왕先王를 바르게 정할 때에 의 시작[端]을 동지冬至[始]로부터 추산推算[履]하고, 중기中氣를 가지고 달을 [正]하고,注+천체天體관측觀測하여 시후時候절기節氣추산推算하는[步曆]시초始初역술曆術(曆法)의 시초로 삼는다는 말이다. 1년의 날 수는 3백 66일이고, 해와 달의 운행運行에는 또 지속遲速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3백 66일을 분배分配해 열 두 달을 만들되 중기中氣를 가지고 달을 정한다. 여일餘日세말歲末로 보내는데 이 여일餘日이 쌓여 윤월閏月이 되기 때문에 ‘귀여어종歸餘於終’이라 한 것이다. [부주]朱: 역법曆法에 11월 갑자삭甲子朔야반夜半동지冬至일원一元으로 삼는데, 이때는 일월日月오성五星이 모두 견우성牽牛星초도初度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다시 여분餘分이 없다. 이때를 추산推算하는 시초로 삼기 때문에 ‘이단어시履端於始’라고 한 것이다. 해마다 24가 있는데, 입춘立春경칩驚蟄청명淸明입하立夏망종芒種소서小暑입추立秋백로白露한로寒露입동立冬대설大雪소한小寒을 ‘절기節氣’라 하고, 우수雨水춘분春分곡우穀雨소만小滿하지夏至대서大暑추분秋分상강霜降소설小雪동지冬至대한大寒을 ‘중기中氣’라 한다. 달마다 중기가 있으나 유독 윤월閏月에는 중기가 없다. 윤월의 전월前月에는 중기가 그믐날에 들고 윤월의 후월後月에는 중기가 초하룻날에 든다. 중기를 가지고 달을 정하면 윤월을 넣는 것이 어그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정어중擧正於中’이라고 한 것이다. 윤달을 넣는 법은 기영氣盈삭허朔虛로써 일월日月여분餘分귀속歸屬시킨다. 하늘의 둘레[周天]가 3백 65 4분도分度의 1인데, 해의 운행은 하루에 1씩을 가므로 금년 동지冬至부터 시작하여 명년 동지까지 가야 바야흐로 하늘을 한 바퀴 도니 실수實數를 계산하면 3백 65일 3이다. 1년 열 두 달은 단지 3백 60일뿐이니 남은 5일 3귀속歸屬시킬 곳이 없다. 이것이 일행日行여분餘分인데 해마다 이 여분을 24에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이 이른바 ‘기영氣盈’이다. 달의 운행은 하루에 13도 19분도分度의 7을 가므로 항상 29일 반일半日이 조금 지난 시각에 해와 삭일朔日에 서로 만난다. 남은 반일半日이 조금 부족한 시간은 귀속歸屬시킬 곳이 없으니 이것이 월행月行여분餘分이다. 그러므로 한 달은 30일이 차지 않으나 큰 달과 작은 달을 두어 그 여분餘分을 다 쓰는 것이 이른바 ‘삭허朔虛’이다. 누적累積된 일월의 여분이 해마다 11일이 조금 모자라기 때문에 19년에 일곱 번의 윤달을 두니 이것이 일장一章이다. 그러므로 ‘귀여어종歸餘於終’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나라 공씨孔氏(孔穎達)는 또 “세말歲末로 돌린 여일餘日이 누적되어 한 달이 되면 윤달을 만든다.”고 하였으나, 이는 옳지 않은 듯하다. 대체로 윤달의 보름 이전은 전월前月중기中氣이고, 보름 이후는 후월後月절기節氣이니, 여분의 누적이 반월半月이 되면 윤달을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누적된 여분이 한 달이 되기를 기다려서 비로소 윤달을 만든다면 윤달에 어찌 중기가 없겠는가?여분餘分세말歲末로 돌렸다.注+사시四時가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履端於始 序則不愆하고 擧正於中이면 民則不惑注+不失其次 寒暑不失其常 故無疑惑하고 歸餘於終이면 事則不悖注+四時得所 則事無悖亂
시작을 동지로부터 추산하니 절서節序가 어긋나지 않고, 중기中氣를 가지고 달을 정하니 백성들이 의혹하지 않고,注+두건斗建차서次序를 잃지 않고, 한서寒暑상도常道를 잃지 않기 때문에 의혹이 없다는 말이다.여분餘分세말歲末로 보내니 일이 어그러지지 않았다.注+사시四時가 제자리를 얻으면 일에 혼란이 없다는 말이다.
[傳]夏四月丁巳 葬僖公하다注+傳皆不虛載經文 而此經孤見 知僖公末年傳宜在此下
여름 4월 정사일丁巳日희공僖公장사葬事 지냈다. 注+의 모든 곳에 경문經文을 헛되이 기재記載하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이 없이 경문經文만 외로이 보이니, 희공僖公말년末年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傳]王使毛伯衛來錫公命하다注+衛 毛伯字
모백毛伯를 보내어 와서 에게 책명策命하사下賜하였다.注+모백毛伯이다.
叔孫得臣如周拜하다注+謝賜命
숙손득신叔孫得臣나라에 가서 배사拜謝하였다.注+책명策命을 내린 것에 대해 사례謝禮한 것이다.
[傳]晉文公之季年 諸侯朝晉이나 衛成公不朝하고 使孔達侵鄭하야 伐緜訾及匡하다注+孔達 衛大夫 匡在潁川新汲縣東北
진문공晉文公말년末年제후諸侯나라로 가서 조현朝見하였으나 위성공衛成公조현朝見하러 가지 않고, 공달孔達을 보내어 나라를 침공侵攻하여 綿공벌攻伐하고서 까지 들어갔다.注+공달孔達나라 대부大夫이다. 영천潁川신급현新汲縣 동북쪽에 있다.
晉襄公旣祥注+諸侯雖諒闇 亦因祥祭爲位而哭 使告於諸侯而伐衛하야 及南陽하다注+今河內地
진양공晉襄公상제祥祭를 지낸 뒤에注+제후諸侯는 비록 양암諒闇(喪中에 거처한 방)에 거처하더라도 상제祥祭 때가 되면 신위神位를 설치하고서 하는 것이다.사자使者를 보내어 제후諸侯에게 고하고서, 나라를 토벌하여 남양南陽으로 쳐들어갔다.注+남양南陽은 지금의 하내지방河內地方이다.
先且居曰 效尤 禍也注+尤衛不朝故伐 今不朝王 是效衛致禍 時王在溫 故勸之 請君朝王하소서
선차거先且居가 말하기를 “잘못을 본받는 것은 를 부르는 것이니注+위후衛侯조현朝見하지 않은 것을 허물로 여겨 토벌하면서 지금 께 조현하지 않는다면 이는 위후衛侯를 본받아 를 부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때 왕이 에 있었기 때문에 조현하도록 권한 것이다.주군主君께서는 조현朝見하소서.
臣從師하리이다
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겠습니다.”고 하였다.
晉侯朝王於溫하다 先且居胥臣伐衛하야
진후晉侯께 조현하기 위해 으로 가고, 선차거先且居서신胥臣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5월 신유삭辛酉朔진군晉軍을 포위하여 6월 무술일戊戌日을 취하고 손소자孫昭子를 사로잡았다.注+소자昭子나라 대부大夫이다. 은 그의 식읍食邑이다.
衛人使告於陳한대 陳共公曰 更伐之 我辭之하리라注+見伐求和 不競大甚 故使報伐 示己力足以距晉 [附注] 林曰 我爲衛以辭謝晉求和하다
위인衛人나라로 사자使者를 보내어 위급危急함을 고하니 진공공陳共公이 말하기를 “나라가 다시 나라를 토벌하면 내가 화해和解를 주선하겠다.”注+토벌을 당하고서 화친和親을 구하면 불리不利[不競]함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보복報復으로 토벌하여 나라의 힘이 나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이라는 말이다. [부주]林: 내가 나라를 위해 나라에게 사죄謝罪(辭謝)하고서 화친和親을 구하겠다는 말이다.고 하니, 나라 공달孔達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다시 나라를 토벌하였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古者
“고루하다.
越國而謀라하니라注+合古之道 而失今事霸主之禮 故國失其邑 身見
고루한 자는 자국自國의 일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와 상의한다.”注+에는 부합하지만 오늘날 패주霸主를 섬기는 를 잃었기 때문에 나라는 을 잃고 자신은 잡히는 모욕侮辱을 당하였다.
[傳]秋 晉侯疆戚田이라 故公孫敖會之하다注+晉取衛田 正其疆界
가을에 진후晉侯척지戚地의 경계를 획정劃定하였기 때문에 공손오公孫敖가 가서 입회立會하였다.注+나라가 나라의 땅을 취하여 그 경계를 획정劃定[正]한 것이다.
[傳]初 楚子將以商臣爲大子하야 訪諸令尹子上한대 子上曰
당초에 초자楚子(成王)가 상신商臣태자太子로 삼으려고 영윤令尹자상子上에게 의견을 물으니, 자상子上이 말하였다.
君之齒未也注+齒 年也 言尙少 而又多愛하니 黜乃亂也니이다注+[附注] 林曰 又多寵愛之子 若已立爲大子 而又黜之 乃取亂之道也
“임금님의 나이가 아직 젊으시고注+는 나이이다. 아직 젊다는 말이다. 또 사랑하는 아들이 많으니, 만약 그를 태자로 세웠다가 뒤에 다시 그를 폐출廢黜하게 된다면 화란禍亂이 생길 것입니다.注+[부주]林: 또 총애寵愛하는 아들이 많으니 만약 그를 태자로 세웠다가 다시 그를 폐출廢黜하면 화란禍亂을 취하는 길이 된다는 말이다.
楚國之擧 恒在少者니이다注+擧 立也
나라에 태자로 세워진 분은 항상 나이가 어린 분이었습니다.注+는 세우는 것이다.
且是人也 蜂目而豺聲이니 忍人也注+能忍行不義
그리고 또 이 사람은 눈은 벌 눈과 같고 소리는 늑대소리 같으니 잔인한 사람입니다.注+잔인하게 불의不義를 행할 것이라는 말이다.
不可立也니이다
세워서는 안 됩니다.”
弗聽하다
초자楚子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又欲立王子職하고 而黜大子商臣하다注+職商臣庶弟
상신商臣을 태자로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왕成王은 또 왕자王子을 태자로 세우고 태자 상신商臣폐출廢黜하고자 하였다.注+상신商臣서제庶弟이다.
商臣聞之而未察이라注+[附注] 林曰 微聞其事 而未辨其信否 告其師潘崇曰 若之何而察之 潘崇曰 享江而勿敬也하라注+江羋 成王妹 嫁於江
상신商臣은 그 소문을 들었으나 분명치 않아서,注+[부주]林: 그 일을 희미하게 들었으나 사실 여부를 분변하지 못한 것이다. 그 스승 반숭潘崇에게 “어떻게 하면 분명히 알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반숭潘崇이 “강미江羋초대招待접대接對하되 존경尊敬하지 말라.”注+강미江羋성왕成王의 누이[妹]로 나라로 출가出嫁한 여자이다.고 하였다.
從之하다 江羋怒曰 呼 役夫注+呼 發聲也 役夫 賤者稱
상신商臣이 그의 말을 따라 그대로 하니, 강미江羋가 노하여 “아, 미천한 놈아[役夫]!注+발성發聲이다. 역부役夫천자賤者호칭呼稱이다.
宜君王之欲殺女而立職也로다
군왕君王께서 너를 죽이고 을 태자로 세우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告潘崇曰 信矣 潘崇曰 能事注+問能事職不 曰 不能이라
상신商臣반숭潘崇에게 “그 소문이 사실이다.”고 고하니, 반숭潘崇이 “그대가 을 섬길 수 있는가?”注+을 섬길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섬길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能行乎注+[附注] 朱曰 又問能出莽乎 曰 不能이라
반숭潘崇이 다시 “출분出奔할 수 있는가?”注+[부주]朱: 또 출분出奔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라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能行大事乎 曰 能이라注+大事 謂弑君
반숭潘崇이 “그렇다면 대사大事를 거행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注+대사大事는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冬十月 以宮甲圍成王注+大子宮甲 僖二十八年 以東宮卒從子玉 蓋取此宮甲하다
겨울 10월에 상신商臣궁갑宮甲을 거느리고 가서 을 포위하였다.注+궁갑宮甲태자궁太子宮갑사甲士(兵士)로 희공僖公 28년에 초왕楚王자옥子玉에게 딸려 보냈던 동궁東宮병졸兵卒이다. 상신商臣이 이 궁갑宮甲을 가지고 을 포위한 듯하다.
王請食熊蹯而死注+熊掌難熟 冀久將有外求한대 弗聽하다 丁未 王縊하다
웅번熊蹯(熊掌)을 먹고 죽기를 청하였으나注+웅장熊掌은 익히기가 어려우니 시간을 오래 끌면 장차 외부의 구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들어주지 않으니 정미일丁未日에 왕이 목매어 죽었다.
諡之曰靈이라하니 不暝하고 曰成이라하니 乃暝하다注+言其忍甚 未斂而加惡諡
왕이 죽자 즉시 를 ‘’으로 정하니 왕이 눈을 감지 않고, 다시 ‘’으로 정하니 눈을 감았다.注+상신商臣의 잔인함이 심한 것을 말한 것이다. 도 하기 전에 악시惡諡부터 올린 것이다.
穆王立하야 注+[附注] 林曰 賞其功하야 使爲大師하고 且掌環列之尹하다注+環列之尹 宮衛之官 列兵而環王宮
목왕穆王(商臣)이 즉위卽位하여서는 자기가 태자 때 살던 궁실宮室의 재물과 복첩僕妾을 모두 반숭潘崇에게 주고서注+[부주]林: 그 에 상을 준 것이다. 그를 태사太師로 삼고, 또 궁중시위군宮中侍衛軍장관長官[尹]을 맡게 하였다.注+환열지윤環列之尹궁중宮中호위護衛하는 관직官職이다. 환열環列은 군대를 배열排列하여 왕궁王宮을 둘러싸는 것이다.
[傳]穆伯如齊하야 始聘焉하니 禮也注+穆伯 公孫敖
목백穆伯나라에 가서 비로소 빙문聘問하였으니 에 맞았다.注+목백穆伯공손오公孫敖이다.
凡君卽位 卿出幷聘注+[附注] 朱曰 使卿出外 而幷行聘禮於隣國하야 注+踐 猶履行也하고 好事鄰國하야 以衛社稷 忠信卑讓之道也
범례凡例에 의하면 국군國君즉위卽位하면 이 나가 여러 나라를 두루[幷]빙문聘問하여注+[부주]朱: 국외國外로 내보내어 이웃나라에 빙문聘問를 두루 거행하게 하는 것이다.우호友好지속持續하고 외국外國원조조약援助條約체결締結하여注+이행履行과 같다. 이웃나라와 잘 지내어[好事]사직社稷보위保衛하는 것이 비양卑讓도리道理이다.
德之正也 德之固也 卑讓 德之基也니라注+傳因此發凡 以明諸侯諒闇 則國事皆用吉禮 [附注] 朱曰 中心爲忠 故爲德之正也 確實爲信 故爲德之固也 卑讓 則自下而人高之 故爲德之基也
순정純正함이고 견고堅固함이고 비양卑讓기본基本이다.注+에 이 일로 인해 범례凡例를 말하여 제후諸侯양암諒闇(喪中)에 있어도 국사國事에는 모두 길례吉禮를 사용한다는 것을 밝혔다. [부주]朱: 중심中心이기 때문에 순정純正이 되고, 확실確實한 것이 이기 때문에 덕의 견고함이 된다. 비양卑讓하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기 때문에 덕의 기본이 된다.
[傳]殽之役注+在僖三十三年 晉人旣歸秦帥하니 秦大夫及左右皆言於秦伯曰 是敗也 孟明之罪也 必殺之하소서 秦伯曰
의 전쟁이 끝난 뒤에注+의 전쟁은 희공僖公 33년에 있었다.진인晉人이 포로로 잡은 나라의 장수將帥들을 돌려보내자 나라 대부大夫와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진백秦伯에게 “이번 전쟁의 패배는 맹명孟明이니 반드시 그를 죽이소서.”라고 하자, 진백秦伯이 말하였다.
是孤之罪也
“이것은 나의 죄이다.
周芮良夫之詩曰 大風有隧하니 貪人敗類로다注+詩 大雅 隧 蹊徑也 周大夫芮伯刺厲王 言貪人之敗善類 若大風之行 毁壞衆物 所在成蹊徑
나라 예양부芮良夫에 ‘대풍大風이 지나는 곳에 온갖 물건 다 망가지듯이 탐욕스런 사람이 선한 사람을 해친다.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상유편桑柔篇〉이다. 는 작은 길이다. 나라 대부大夫예백芮伯여왕厲王풍자諷刺하여, 탐욕스런 사람이 선류善類를 해치는 것이 마치 대풍이 지나가는 곳에는 중물衆物파괴破壞되어 가는 곳마다 길이 생기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聽言則對 誦言如醉로다注+言昏亂之君 不好典誦之言 聞之若醉 得道聽塗說之言 則喜而答對
허튼 소리 들으면 기뻐하며 대답하나 좋은 말 해 주면 술에 취한 듯이 듣지 않는다.注+혼란昏亂한 임금은 경전經典을 외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 들으면 마치 술에 취한 듯이 행동하고, 근거 없는 허튼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며 대답한다는 말이다.
匪用其良하야 覆俾我悖注+覆 反也 俾 使也 不用良臣之言 反使我爲悖亂라하니
양신良臣의 말을 듣지 않아 도리어 나로 하여금 패란悖亂한 짓을 하게 한다.’注+(도리어)이고, 使(하여금)이다. 양신良臣의 말을 채용採用하지 않아, 도리어 나로 하여금 패란悖亂한 짓을 하게 한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是貪故也 孤之謂矣
이는 탐욕 때문이니 바로 나의 경우를 말한 것이다.
孤實貪以禍夫子注+[附注] 朱曰 夫子持孟明也하니 夫子何罪오하고 復使爲政하다注+爲明年秦晉戰彭衙傳
내가 실로 부자夫子에게 를 끼친 것이니注+[부주]朱: 부자夫子맹명孟明을 가리킨 것이다.부자夫子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라고 하고서 다시 그를 집정執政으로 삼았다.注+이것이 명년明年나라가 나라와 팽아彭衙에서 전쟁한 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公卽位 : 諸侯가 죽으면 그 죽음을 반드시 王께 告하고, 王은 使臣을 보내어 送終의 일을 살피고는 드디어 世子를 嗣君으로 命하게 한다. 嗣君은 三年喪을 마친 뒤에 士服을 입고 京師로 가서 天子를 謁見하고서 策命을 받는다. 天子가 黼黻의 옷을 내리면 嗣君은 그 옷을 입고 나라로 돌아와 祖廟에 奠을 드린 뒤에 비로소 臣民을 다스리는 것이 예이다. 그러나 周나라가 東遷한 뒤로는 이 예가 폐지되어 諸侯는 모두 踰年하고서 卽位하는 것을 常例로 삼았다.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2 錫公命 : 錫命은 莊公元年經과 僖公 11년 傳의 역주를 참고할 것. 이 곳의 錫命은 嗣位한 諸侯에게 天子가 爵名을 내린 것이고, 命圭를 준 것이 아니다.
역주3 禮 卿不會公侯……皆用魯史 : 杜注의 이해를 돕기 위해 疏를 소개한다. 《正義》에 “僖公 29년 翟泉의 結盟에 諸侯의 卿이 魯侯와 會同하였기 때문에 제후의 卿들을 貶下하여 ‘人’으로 칭하였으니, 魯나라 卿이 다른 제후와 會同한 것도 폄하하는 것이 합당한데 《春秋》에 魯나라 대부는 모두 폄하하지 않은 것은 他國의 경을 폄하하는 것이 이미 體例가 되었고 體例를 이미 들어 말하였으니, 다시 魯나라의 대부를 폄하하지 않아도 事理를 밝히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魯史의 成文을 그대로 따르고 고치지 않은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4 弑君例在宣四年 : 宣公 4년 傳에 “임금의 弑害를 기록함에 있어 임금의 이름을 칭한 것은 임금이 無道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고, 弑害한 신하의 이름을 칭한 것은 신하의 罪임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5 : 사
역주6 擧正於中 : 擧正於中의 正을 杜注에는 月을 正하다[正月]로, 中을 中氣로 해석하였고, 楊伯峻은 正朔의 月을 正月로 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서 杜注의 ‘擧中氣以正月’을 옳지 않다고 하였으나, 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左氏會箋》에는 “절기는 꼭 그 달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중기는 반드시 正數의 달에 든다.”고 하여 正을 正數의 달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세 해석이 모두 文理에는 맞지 않는다. 위아래의 履端於始와 歸餘於終을 ‘端을 始에서 履한다.’로 ‘餘를 終에 歸한다.’로 풀었고 보면 이 擧正於中도 ‘正을 中에서 擧한다.’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할 경우 말이 되지 않는다. 律曆에 門外漢인 譯者로서는 가부를 알 수 없기에 《正義》의 “其有進退以中氣定之”를 취하여 正을 定으로 번역하였다.
역주7 北[此] : 저본에는 ‘北’으로 되어 있으나 《左傳句解》에 의거하여 ‘此’로 바로잡았다.
역주8 斗建 : 北斗의 자루별 곧 제 5星부터 7星까지가 가리키는 곳이다. 寅方을 가리키면 寅月(正月)이고, 丑方을 가리키면 丑月(12월)이고, 子方을 가리키면 子月(11월)이다.
역주9 晉襄公旣祥……獲孫昭子 : 晉나라와 衛나라는 서로 대등한 나라인데 朝見하지 않은 것을 罪로 삼아 토벌한 것은 法制가 아니다. 그 일이 秦나라와 狄人을 패배시키고 許나라를 토벌한 일보다 罪가 중대하기 때문에 또 晉侯를 지목하여 그 죄를 다스린 것이다.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10 衛孔達帥師伐晉 : 衛成公이 비록 晉나라에게 토벌을 당해 잡힌 원한이 있으나, 스스로 반성해 보면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晉人이 衛侯가 조현하지 않은 것을 트집잡아서 토벌한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소국이 대국을 섬김에는 방법이 있으니 좋은 말로 항복을 청하여 나라를 편안케 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는 것이 옳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기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오직 보복만을 일삼았으니 어찌 후일에 悔恨이 없을 수 있겠는가?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11 君子以爲古 : 杜注에는 古를 古道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楊伯峻의 설을 취하여 치밀하지 못한 것으로 번역하였다. 楊伯峻의 注에 “《禮記》 〈檀弓上〉의 ‘杜橋之母喪宮中無相以爲沽也’의 鄭注에 ‘沽는 略이다.’고 하였다. 이곳의 古도 沽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國事를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와 의논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매우 粗略(치밀하지 못함)한 것이다. 杜預와 劉炫이 이 古를 古今의 古로 보아 ‘古道에 부합한다.’고 한 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고 하였다.
역주12 報[執] : 저본에는 ‘報’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3 芊[羋](미) : 저본에는 ‘芊’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羋’로 바로잡았다.
역주14 能[諸] : 저본에는 ‘能’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諸’로 바로잡았다.
역주15 主[王] : 저본에는 ‘主’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以其爲大子之室與潘崇 : 疏의 해석에 따라 번역하였다. 疏에 “商臣이 王이 된 뒤에 자신이 太子 때 살던 室內의 財物과 僕妾을 모두 潘崇에게 준 것이고 그 宮室을 준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역주17 踐修舊好 要結外援 : 楊伯峻은 “踐은 繼이니 踐修舊好는 옛 우호를 계속해 修明하는 것이다.”고 해석하였고, 《左氏會箋》에는 “要結이 同義連辭이니 踐修도 同義連辭로 쓰였다.”고 하였다. 譯者는 이 두 설을 참고하여 踐修를 持續으로, 要結을 締結로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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