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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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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四年春王正月 季孫宿叔老會晉士匄齊人宋人衛人鄭公孫蠆曹人莒人邾人滕人薛人杞人小邾人하야 會吳于向注+叔老 聲伯子也 魯使二卿會晉 敬事霸國 晉人自是輕魯幣 而益敬其使 故叔老雖介 亦列於會也 齊崔杼宋華閱衛北宮括在會惰慢不攝 故貶稱人 蓋欲以督率諸侯 獎成霸功也 吳來在向 諸侯會之 故曰會吳 向 鄭地 하다
14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계손숙季孫宿숙로叔老나라 사개士匄제인齊人송인宋人위인衛人나라 공손公孫조인曹人거인莒人주인邾人등인滕人설인薛人기인杞人소주인小邾人회합會合하여 에서 오인吳人회견會見하였다.注+숙로叔老성백聲伯의 아들이다. 나라가 두 을 보내어 나라와 회합會合하게 하여, 패주霸主의 나라를 공경히 섬기니, 진인晉人은 이때부터 나라가 바치는 폐백幣帛수량數量경감輕減해 주고 나라의 사신使臣을 더욱 존경尊敬하였다. 그러므로 숙로叔老가 비록 개사介使(副使)였으나 회합會合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나라 최저崔杼나라 화열華閱나라 북궁괄北宮括회합會合에서 태만怠慢하고 근신謹愼하지 않았기 때문에 ‘’으로 폄칭貶稱한 것이니, 이는 제후諸侯를 거느리고서 진도공晉悼公패공霸功성취成就하고자 해서인 듯하다. 오인吳人이 와서 에 있었기 때문에 제후諸侯오인吳人회견會見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오會吳’라고 한 것이다. 나라 땅이다.
[經]二月乙未朔 日有食之注+無傳 하다
2월 초하루 을미일乙未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經]夏四月 注+齊宋大夫不書 義與向同 [附注] 林曰 晉秦兵爭止此 하다
여름 4월에 숙손표叔孫豹나라 순언荀偃제인齊人송인宋人나라 북궁괄北宮括나라 공손公孫조인曹人거인莒人주인邾人등인滕人설인薛人기인杞人소주인小邾人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하였다.注+나라와 나라의 대부大夫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 뜻이 회합會合 때 이들을 기록하지 않은 것과 같다. [부주]林: 나라와 나라의 전쟁戰爭이 여기에서 그쳤다.
[經]己未 衛侯出奔齊注+諸侯之策 書孫寗逐衛侯 春秋以其自取奔亡之禍 故諸之賊也 不書名 從告 하다
기미일己未日위후衛侯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제후諸侯사책史策에는 손임보孫林父영식寗殖위후衛侯축출逐出한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춘추春秋》에는 그가 도망가야 하는 자초自招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나라를 잃은 제후諸侯를 기록함에 있어 모두 임금을 축출逐出역적逆賊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통고通告문서文書에 따른 것이다.
[經]莒人侵我東鄙注+無傳 報入鄆 하다
거인莒人이 우리나라의 동쪽 변읍邊邑침공侵攻하였다.注+이 없다. 12년에 노군魯軍운읍鄆邑으로 쳐들어갔던 것을 보복報復한 것이다.
[經]秋 楚公子貞帥師伐吳하다
가을에 나라 공자公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經]冬 季孫宿會晉士匄宋華閱衛孫林父鄭公孫蠆莒人邾人于戚注+[附注] 林曰 戚 孫林父邑 於是孫林父立公孫剽 而晉會于戚以定之 襄昭之際 大夫無君之禍 晉爲之也 悼公之德衰矣 하다
겨울에 계손숙季孫宿나라 사개士匄나라 화열華閱나라 손임보孫林父나라 공손公孫거인莒人주인邾人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부주]林: 손임보孫林父이다. 이때 손임보孫林父가 〈위헌공衛獻公축출逐出하고〉 공손公孫를 임금으로 세웠는데도 나라는 에서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그를 인정認定하였으니, 양공襄公소공昭公 때에 대부大夫들이 임금을 무시無視나라가 그 빌미를 만든 것이다. 진도공晉悼公하였다 하겠다.
[傳]十四年春 吳告敗于晉注+前年爲楚所敗 하다
14년 봄에 나라가 나라에 패전敗戰한 일을 나라에 하였다.注+전년前年나라가 나라에 패배敗北당하였다.
會于向하니 爲吳謀楚故也注+謀爲吳伐楚
제후諸侯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나라를 위해 나라를 칠 일을 상의하기 위함이었다.注+나라를 위해 나라 칠 일을 모의謀議한 것이다.
范宣子數吳之不德也하야 以退吳人注+吳伐楚喪 故以爲不德 數而遣之 卒不爲伐楚 하다
범선자范宣子나라의 부덕不德을 꾸짖어 오인吳人요청要請을 물리쳤다.注+나라가 나라에 이 난 틈을 이용해 나라를 쳤기 때문에 선자宣子나라를 부도덕不道德하게 여겨 꾸짖어 돌려보내고 끝내 나라를 위해 나라를 치지 않았다.
執莒公子務婁注+在會不書 非卿 하니 以其通楚使也注+莒貳於楚 故比年伐魯
나라 공자公子무루務婁를 잡았으니注+나라 공자公子회합會合참여參與하였는데,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기 때문이다.나라와 사신使臣교통交通하였기 때문이다.注+나라가 〈나라를 배반背叛하고〉 나라에 붙었기 때문에 해마다 나라를 친 것이다.
將執戎子駒支注+駒支 戎子名 [附注] 朱曰 將討戎子之罪而執之 하야 范宣子親數諸朝注+行之所在 亦設朝位 曰 來하라
융자戎子구지駒支를 잡으려 하여注+구지駒支융자戎子의 이름이다. [부주]朱: 융자戎子를 다스리려고 그를 잡으려 한 것이다. 범선자范宣子가 직접 조정朝廷에서 꾸짖어 말하기를注+행재소行在所(임금이 밖으로 나와 머무는 곳)에도 조위朝位(品階에 따라 서는 조정朝廷위치位置)를 설치設置한다. “이리 오라.
姜戎氏
강융씨姜戎氏야!
昔秦人迫逐乃祖吾離于瓜州注+四嶽之後 皆姜姓 又別爲允姓 瓜州 地在今燉煌 乃祖吾離被苫蓋注+蓋 苫之別名 [附注] 林曰 爾雅曰 白蓋謂之苫 此言汝祖無氈裘可衣 所被服者 苫蓋也 蒙荊棘하고 以來歸我先君注+蒙 冒也 [附注] 林曰 汝祖無土地可居 所蒙冒者 荊棘也 이어늘 我先君惠公有不腆之田注+腆 厚也 이나 與女剖分而食之注+中分爲剖 하니라
예전에 진인秦人이 너희 조상祖上오리吾離과주瓜州에서 축출逐出하였을 때注+사악四嶽후예後裔는 모두 강성姜姓이다. 또 별파別派윤성允姓이 되었다. 과주瓜州는 그 땅이 지금의 돈황燉煌에 있다. 너희 조상祖上오리吾離가 거적을 몸에 두르고注+의 딴 이름이다. [부주]林: 《이아爾雅》에 “백개白蓋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너희 조상祖上은 입을 수 있는 전구氈裘(털로 짜서 만든 옷)가 없었고, 옷으로 입는 것은 점개苫蓋(거적)뿐이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가시로 엮은 모자를 쓰고서 우리 선군先君귀의歸依하니,注+은 모자이다. [부주]林: 너희 조상祖上은 살 수 있는 토지土地도 없었고, 모자로 쓰는 것은 가시나무였다는 말이다. 우리 선군先君혜공惠公께서는 그때 전지田地를 가진 것이 많지 않았으되注+이다. 너희에게 나눠 주어 먹고 살게 하셨다.注+한중간을 나누는 것이 이다.
今諸侯之事我寡君不如昔者 蓋言語漏洩이니 則職女之由注+職 主也 [附注] 朱曰 言命令所以漏洩於諸侯者 由汝戎實主之 니라 詰朝之事 爾無與焉注+詰朝 明旦 不使復得與會事 하라
오늘날 제후諸侯가 우리 임금을 섬기는 것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말이 새어 나가서인데, 이는 오로지[職] 너희들 때문이니,注+이다. [부주]朱: 나라의 명령命令제후諸侯에게 누설漏泄된 것은 너희 이 실로 주도主導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내일 아침의 일(會合)에 너희는 참여하지 말라.注+힐조詰朝는 내일 아침이다. 다시 회사會事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將執女하리라
참여하면 잡아 가두겠다.”고 하니,
對曰 昔秦人負恃其衆하고 貪于土地하야 逐我諸戎하니
융자戎子가 대답하기를 “예전에 진인秦人이 그 무리가 많음을 믿고서 우리의 토지土地하여 우리 제융諸戎축출逐出하였을 때,
惠公蠲其大德注+蠲 明也 하야 謂我諸戎是四嶽之裔冑也注+四嶽 堯時方伯 姜姓也 裔 遠也 冑 後也 라하야 注+翦 削也 하고 賜我南鄙之田注+[附注] 林曰 晉南邊之田 하니 狐狸所居 豺狼所嘷注+[附注] 林曰 其地僻野 皆豺狼所嘷嘯
혜공惠公께서 큰 을 드러내시어注+(밝게 드러냄)이다. 우리 제융諸戎사악四嶽후예後裔라 하여注+사악四嶽제요帝堯 때의 방백方伯으로 강성姜姓이다. 이고 이다. 버리지 않으시고注+이다. 우리에게 남쪽 변방邊方의 땅을 주셨는데,注+[부주]林: 나라 남쪽 변경邊境의 땅이다. 여우와 너구리가 살고 승냥이와 이리가 울부짖는 곳이었습니다.注+[부주]林: 그 땅에는 궁벽窮僻한 곳이나 평야平野나 모두 승냥이와 이리가 울부짖는 곳이라는 말이다.
我諸戎除翦其荊棘하고 驅其狐狸豺狼하야 以爲先君不侵不叛之臣하야 至于今不貳注+不內侵 亦不外叛 호라
우리 제융諸戎은 가시덤불을 베어 내고 짐승을 몰아내고서 침범侵犯하지도 않고 배반背叛하지도 않는 선군先君신하臣下가 되어 지금까지 두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注+안으로 침범侵犯하지도 않고, 밖으로 배반背叛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昔文公與秦伐鄭 秦人竊與鄭盟하고 而舍戍焉注+在僖三十年 하니 於是乎有殽之師注+在僖三十三年 하니라
옛날에 문공文公께서 나라와 함께 나라를 토벌할 때 진인秦人이 사사로이 나라와 결맹結盟하고서 나라에 수비군守備軍을 두니,注+희공僖公 30년에 있었다. 이로 인해 전쟁戰爭이 일어났습니다.注+희공僖公 33년에 있었다.
晉禦其上하고 戎亢其下注+亢 猶當也 하니 秦師不復 我諸戎實然注+[附注] 朱曰 殽之敗 秦師殲焉 無得反者 이라
그때 진군晉軍은 앞에서 막고 우리 제융諸戎은 뒤에서 저항抵抗하였으니,注+과 같다. 진군秦軍전멸全滅하여 돌아간 자가 없었던 것은 실로 우리 제융諸戎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注+[부주]朱: 패전敗戰으로 진군秦軍이 다 죽고 살아서 돌아간 자가 없었다는 말이다.
譬如捕鹿 晉人角之注+[附注] 林曰 角者 當其頭也 하고 諸戎掎之注+掎其足也하야 與晉踣之注+踣 僵也 戎何以不免注+[附注] 朱曰 言我戎盡忠於晉如此 何以不免罪也 이리오
비유하면 사슴을 잡는 데 진인晉人은 뿔을 잡고注+[부주]林: (뿔을 잡은 것)은 사슴의 머리를 담당(秦軍의 선봉先鋒을 막아 싸운 것을 비유한 것임)한 것이다. 제융諸戎은 다리를 잡고서注+사슴의 다리를 잡아당기는 것이다. 진인晉人과 함께 쓰러뜨린 것과 같은데,注+는 넘어뜨리는 것이다. 우리 제융諸戎이 어째서 하지 못한단 말입니까.注+[부주]朱: 우리 나라에 이처럼 충성忠誠을 다하였는데, 어째서 하지 못하느냐는 말이다.
自是以來 晉之百役 與我諸戎相繼于時注+言給晉役不曠時 하야 以從執政 猶殽志也注+意常如殽 無中二也 하니 豈敢離逷注+[附注] 林曰 豈敢有攜離逷遠之心 이리오
이 이후로 귀국貴國의 모든 전쟁戰爭에 우리 제융諸戎은 때를 어기지 않고 참전參戰하여注+나라의 전역戰役에 이바지하느라 한가하게 보낸 때가 없었다는 말이다. 집정執政을 따르기를 전쟁戰爭을 돕던 때와 같은 마음으로 따랐으니,注+생각이 항상 전쟁戰爭 때와 같았고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찌 감히 귀국貴國을 멀리하였겠습니까.注+[부주]林: 어찌 감히 배반背叛해 멀리하려는 마음이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無乃實有所闕하야 以攜諸侯어늘 而罪我諸戎
지금 집정執政[官]의 사려師旅(官屬)에게 잘못이 있어서 제후諸侯들이 두마음을 품은 것인데, 이를 우리 제융諸戎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닙니까.
我諸戎飮食衣服 不與華同하고 贄幣不通하며 言語不達하니 何惡之能爲리오
우리 제융諸戎음식飮食의복衣服중원中原과 같지 않고 사신使臣교통交通하지 않으며 언어言語도 통하지 않으니, 어찌 나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不與於會라도 亦無瞢焉注+瞢 悶也 이라하고 賦靑蠅而退注+靑蠅 詩小雅 取其愷悌君子 無信讒言 어늘 宣子辭焉注+辭 謝 하고 使卽事於會하여 成愷悌也注+成愷悌 不信讒也 不書者 戎爲晉屬 不得特達 하다
회합會合에 참여하지 못하여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注+번민煩悶이다. 라고 하고서 ‘청승靑蠅’을 읊고 물러나니,注+청승靑蠅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청승편靑蠅篇〉이다. 그 의 ‘개제愷悌(和樂)한 군자君子참언讒言을 믿지 말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선자宣子사과謝過하고서注+사과謝過이다. 회합會合에 참여하게 하여 참소를 믿지 않는 개제군자愷悌君子임을 보였다.注+성개제成愷悌는 참소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의 속국屬國이어서 단독單獨으로 회합會合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於是子叔齊子爲季武子介以會하니 自是晉人輕魯幣하고 而益敬其使注+齊子 叔老字也 言晉敬魯使 經所以竝書二卿 [附注] 林曰 介 副也 하다
이때 자숙제자子叔齊子계무자季武子개사介使회합會合참여參與하니, 이때부터 진인晉人나라가 바치는 폐백幣帛경감輕減해 주고 사신使臣을 더욱 존경尊敬하였다.注+제자齊子숙로叔老이다. 나라가 나라 사신使臣존경尊敬한 것을 말한 것이다. 에 두 을 나란히 기록한 이유이다. [부주]林: 이다.
[傳]吳子諸樊旣除喪注+諸樊 吳子乘之長子也 乘卒至此春 十七月 旣葬而除喪 將立季札注+札 諸樊少弟 한대
오자吳子제번諸樊을 마친 뒤에注+제번諸樊오자吳子(壽夢)의 장자長子이다. 이 죽은 지 금년 봄까지 17개월個月인데, 이미 장사葬事를 지내고 을 벗은 것이다. 그 아우 계찰季札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자,注+계찰季札제번諸樊의 막내아우이다.
季札辭曰 曹宣公之卒也 諸侯與曹人不義曹君注+曹君 公子負芻也 殺大子而自立 事在成十三年 하야 將立子臧한대
계찰季札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조선공曹宣公이 죽었을 때 제후諸侯조인曹人조군曹君(曹成公)을 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注+조군曹君공자公子부추負芻이다. 태자太子를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다. 이 일은 성공成公 13년에 있었다. 그 아우 자장子臧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자,
子臧去之하고 遂弗爲也하야 以成曹君注+[附注] 林曰 成十六年 晉歸曹伯 하니 君子曰 能守節注+[附注] 林曰 君子謂子臧 能守上下之禮節 이라
자장子臧나라를 떠나 〈나라로 도망가서〉 드디어 임금이 되지 않고 조군曹君을 도왔으니,注+[부주]林: 성공成公 16년에 나라가 조백曹伯(曹成公)을 돌려보냈다. 군자君子는 ‘능히 절조節操를 지켰다.’注+[부주]林: 군자君子자장子臧을 일러 능히 상하上下예절禮節을 지켰다고 한 것이다. 평론評論하였습니다.
義嗣也注+諸樊 適子 故曰義嗣 [附注] 林曰 諸樊 壽夢之適子 義當嗣位 誰敢奸君注+[附注] 林曰 誰敢奸犯君之定位 이릿가
(諸樊을 가리킴)은 의사義嗣(正當한 승계인承繼人)이니注+제번諸樊적자適子였기 때문에 ‘의사義嗣’라고 한 것이다. [부주]林: 제번諸樊수몽壽夢적자適子이니 의리義理로 보아 승계承繼하는 것이 당연當然하다는 말이다. 누가 감히 의 자리를 하겠습니까?注+[부주]林: 누가 감히 해진 임금의 자리를 하겠느냐는 말이다.
有國 非吾節也 札雖不才 願附於子臧하야 以無失節하노이다
국군國君이 되는 것은 나의 절조節操가 아니니, 내가 비록 재능才能은 없지만 자장子臧을 따라 절조節操를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고 하였다.
固立之한대 棄其室而耕이어늘 乃舍之注+傳言 [附注] 林曰 乃舍季札不立 하다
그래도 제번諸樊이 굳이 그를 세우려 하자, 계찰季札은 그 실가室家를 버리고 떠나 시골로 가서 밭을 가니, 제번諸樊은 그제야 그만두었다.注+전문傳文계찰季札겸양謙讓을 말하고, 또 나라는 왕위王位형제兄弟에게 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부주]林: 그제야 그만두고 계찰季札을 세우지 않았다는 말이다.
[傳]夏 諸侯之大夫從晉侯伐秦하야 以報櫟之役也注+櫟役 在十一年 하다
여름에 제후諸侯대부大夫진후晉侯를 따라 나라를 토벌하여 전투戰鬪에서 패전敗戰한 것을 보복報復하였다.注+전쟁戰爭양공襄公 11년에 있었다.
晉侯待于竟注+[附注] 林曰 待于秦晉之竟 하고 使六卿帥諸侯之師以進注+言經所以不稱晉侯 하다
진후晉侯국경國境에서 기다리고注+[부주]林: 나라와 나라의 접경接境에서 기다린 것이다. 육경六卿에게 제후군諸侯軍을 거느리고 전진前進하게 하였다.注+진후晉侯를 기록하지 않은 배경을 말한 것이다.
及涇하야 不濟注+諸侯之師不肯渡也 涇水出安定朝那縣 至京兆高陸縣入渭 어늘 叔向見叔孫穆子한대 穆子賦匏有苦葉注+詩邶風也 義取於深則厲 淺則揭 言己志在於必濟 이어늘
경수涇水에 이르러 제후군諸侯軍이 강을 건너려 하지 않자,注+제후諸侯의 군대가 경수涇水를 건너려 하지 않은 것이다. 경수涇水안정安定조나현朝那縣에서 발원發源하여 경조京兆고륙현高陸縣에 이르러 위수渭水로 들어간다. 숙향叔向숙손목자叔孫穆子를 찾아가 만나니 목자穆子가 ‘포유고엽匏有苦葉를 읊었다.注+는 《시경詩經》 〈패풍邶風〉이다. 물이 깊으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넌다는 뜻을 취한 것이니, 자기의 뜻은 반드시 건너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叔向退而具舟하다
그러자 숙향叔向은 물러 나와 배[舟]를 준비準備하였다.
魯人莒人先濟하니 鄭子蟜見衛北宮懿子曰 與人而不固 取惡莫甚焉注+[附注] 林曰 言與人同伐而持心不固 不肯濟水 取惡於人 莫甚於此 이니 懿子說하다
노인魯人거인莒人이 먼저 강을 건너니, 나라 자교子蟜(公孫 )가 나라 북궁의자北宮懿子(北宮括)를 보고 말하기를 “남을 도우면서 〈돕겠다는 마음을〉 굳게 가지지 않고 〈딴마음을 품는다면〉 이보다 더 미움을 사는 일은 없으니注+[부주]林: 남을 도와 함께 토벌討伐하면서 마음을 갖는 것이 견고堅固하지 못하여 물을 건너려 하지 않는다면 남에게 미움을 사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게 없다는 말이다. 사직社稷을 어찌 보전保全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의자懿子는 기뻐하였다.
二子見諸侯之師而勸之濟하니 濟涇而次注+傳言北宮括所以書於伐秦 [附注] 林曰 乃濟涇水而次舍其地 하다
이에 두 사람은 제후군諸侯軍을 보고서 강을 건널 것을 하니 제후군諸侯軍경수涇水를 건너 강안江岸주둔駐屯하였다.注+전문傳文북궁괄北宮括나라 토벌討伐에 기록한 배경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경수涇水를 건너서 그곳에 머문 것이다.
秦人毒涇上流하야 師人多死注+飮毒水故 하다
진인秦人경수涇水상류上流을 풀어 제후군諸侯軍이 많이 죽었다.注+이 든 물을 마셨기 때문이다.
鄭司馬子蟜帥鄭師以進하니 師皆從之하야 至于棫林注+棫林 秦地 이나 注+秦不服 하다
나라 사마司馬자교子蟜정군鄭軍을 거느리고서 전진前進하니 제후군諸侯軍이 모두 그를 따라 역림棫林까지 쳐들어갔으나注+역림棫林나라 땅이다. 진군秦軍항복降服하지 않았다.注+나라가 항복降服하지 않은 것이다.
荀偃令曰 雞鳴而駕하야 塞井夷竈注+示不反 [附注] 朱曰 塡塞其井 平夷其竈 欲其地平 可以布陣 하고 唯余馬首是瞻注+言進退從己 하라 欒黶曰 晉國之命 未是有也注+[附注] 林曰 言從前未嘗有不用人謀而進退從己之命
순언荀偃을 내리기를 “닭이 울거든 전거戰車에 말을 매고서 우물을 메우고 부뚜막을 허물고서注+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부주]朱: 군중軍中의 우물을 메우고 부뚜막을 허문 것은 그 땅을 평지로 만들어 을 칠 수 있게 한 것이다. 오직 나의 말머리[馬首]가 향하는 쪽을 보라.”注+진퇴進退를 제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이다. 고 하니, 난염欒黶이 말하기를 “나라에 이런 (軍令)이 있은 적은 없었다.注+[부주]林: 종전從前에는 사람들과 모의謀議하지 않고서 진퇴進退를 나의 에 따르라고 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라하고 乃歸注+黶惡偃自專 故棄之歸 하니 下軍從之하다
내 말머리는 동쪽으로 가고자 한다.”고 하고서 말머리를 돌려 돌아가니注+난염欒黶순언荀偃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그를 버리고 돌아온 것이다. 하군下軍이 그를 따랐다.
左史謂魏莊子曰 不待中行伯乎注+中行伯 荀偃也 莊子 魏絳也 左史 晉大史 莊子曰 夫子命從帥注+夫子 謂荀偃 [附注] 林曰 荀偃命馬首是瞻 是使人各從其帥 라하니라
좌사左史위장자魏莊子(魏絳)에게 말하기를 “중행백中行伯(荀偃)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注+중행백中行伯순언荀偃이고, 장자莊子위강魏絳이다. 좌사左史나라 대사大史이다. 라고 하자, 위장자魏莊子가 말하기를 “부자夫子(荀偃을 이름)께서 우리에게 주장主將을 따르라고 하셨다.注+부자夫子순언荀偃을 이른 것이다. [부주]林: 순언荀偃이 말머리를 보라고 한 것은 사람들에게 각각 그 장수將帥를 따르게 한 것이다.
欒伯 吾帥也 吾將從之하리라
난백欒伯(欒黶)은 우리 하군下軍주장主將이니 나는 그를 따르려 한다.
從帥 所以待夫子也注+以從命爲待也 欒黶 下軍帥 莊子爲佐 故曰吾帥
주장主將을 따르는 것이 부자夫子을 따르는[待] 것이다.”注+을 따르는 것을 ‘’라고 한 것이다. 난염欒黶하군수下軍帥이고 장자莊子하군좌下軍佐였기 때문에 ‘우리의 장수’라고 한 것이다. 고 하였다.
伯游注+[附注] 林曰 卽荀偃 曰 吾令實過注+[附注] 朱曰 馬首是瞻之令 誠爲過言 하니 悔之何及이리오
백유伯游(荀偃)가注+[부주]林: 백유伯游는 바로 순언荀偃이다. 말하기를 “나의 군령軍令이 실로 잘못되었으니注+[부주]朱: 말머리를 보라는 은 진실로 잘못한 말이다. 후회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注+軍帥不和 恐多爲秦所禽獲 이라하고 乃命大還注+[附注] 朱曰 命諸軍皆歸 하다
단지[多] 우리의 군대를 진군秦軍포로捕虜로 줄 뿐이다.”注+군중軍中장수將帥들이 불화不和하니 진군秦軍에 사로잡히는 아군我軍이 많을까 두렵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전군全軍철수撤收하였다.注+[부주]朱: 제군諸軍을 모두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晉人謂之遷延之役注+遷延 却退 이라하다
나라 사람들은 이번 전쟁戰爭을 ‘천연지역遷延之役(時日만 끌다가 아무 소득所得도 없이 돌아온 전쟁戰爭)’注+천연遷延퇴각退却한 것이다. 이라고 하였다.
欒鍼曰 此役也 報櫟之敗也어늘 役又無功하니 晉之恥也
난침欒鍼이 말하기를 “이번 전쟁戰爭패전敗戰보복報復하기 위함이었는데, 또 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나라의 수치羞恥이다.
注+欒鍼 欒黶弟也 二位 謂黶將下軍 鍼戎右 [附注] 林曰 欒氏兄弟二人 俱在戎路 하니 아하고 與士鞅馳秦師하야 死焉하고 士鞅反注+鞅 士匄子 하다
나는 융로戎路(將軍의 병거兵車)에서 지위地位가 두 번째[二位]이니,注+난침欒鍼난염欒黶의 아우이다. 이위二位난염欒黶하군下軍이고 난침欒鍼융우戎右가 된 것을 이른 것이다. [부주]林: 난씨欒氏형제兄弟 두 사람이 함께 융로戎路(戎車)에 있었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감히 부끄러움을 몰라서야 되겠는가.”라고 하고서, 사앙士鞅과 함께 진군秦軍진영陣營으로 달려가 싸우다가 난침欒鍼전사戰死하고 사앙士鞅은 살아서 돌아왔다.注+사앙士鞅사개士匄의 아들이다.
欒黶謂士匄曰 余弟不欲往이어늘 而子召之하여
난염欒黶사개士匄에게 말하기를 “내 아우는 가려 하지 않았는데 네 아들이 불러내었다.
余弟死하고 而子來하니 是而子殺余之弟也
내 아우는 죽고 네 아들은 살아 돌아왔으니 이는 네 아들이 내 아우를 죽인 것이다.
注+欒黶汰侈 誣逐士鞅也 而 女也 하다
네 아들을 축출逐出하지 않으면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고 하니, 사앙士鞅나라로 도망갔다.注+난염欒黶교만방자驕慢放恣하여 터무니없는 말로 사앙士鞅축출逐出하였다. (너)이다.
於是齊崔杼宋華閱仲江會伐秦하다 不書 注+臨事惰慢不修也 仲江 宋公孫師之子
이때 나라 최저崔杼, 나라 화열華閱중강仲江회합會合하여 나라를 쳤는데, 이들의 이름을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태만怠慢하였기 때문이다.注+일에 해 게으름을 피우고 일을 수행修行하지 않은 것이다. 중강仲江나라 공손公孫의 아들이다.
向之會亦如之하다
회합會合에 그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도 이와 같다.
衛北宮括不書於向注+亦惰 하고 書於伐秦 注+能自攝整 從鄭子蟜俱濟涇
나라 북궁괄北宮括회합會合에는 기록하지 않고,注+역시 나태懶怠하였기 때문이다. 나라 토벌에는 기록한 것은 잘 도왔기[攝] 때문이다.注+능히 스스로 섭정攝整(整頓)하여 나라 자교子蟜를 따라 경수涇水를 건넌 것을 이른 것이다.
秦伯問於士鞅曰 晉大夫其誰先亡 對曰 其欒氏乎ᄂ저
진백秦伯사앙士鞅에게 “나라 대부大夫 중에 누가 먼저 멸망滅亡하겠는가?”라고 물으니, 사앙士鞅이 “아마 난씨欒氏일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秦伯曰 以其汰乎 對曰 然하다
진백秦伯이 “그가 교만방자驕慢放恣하기 때문이냐.”고 묻자, 사앙士鞅이 “그렇습니다.
欒黶汰虐已甚이나 猶可以免이니 其在盈乎注+盈 黶之子 ᄂ저
난염欒黶교만驕慢포학暴虐이 매우 심하지만 그래도 멸망滅亡할 것이니, 난씨欒氏멸망滅亡은 아마 그 아들 난영欒盈에 있을 것입니다.”注+난영欒盈난염欒黶의 아들이다. 고 대답하였다.
秦伯曰 何故 對曰 武子之德在民 如周人之思召公焉하니 愛其甘棠이온 況其子乎注+武子 欒書 黶之父也 召公奭聽訟舍於甘棠之下 周人思之 不害其樹 而作勿伐之詩 在召南
진백秦伯이 “무엇 때문이냐?”고 묻자, 사앙士鞅이 대답하기를 “백성들이 무자武子(欒黶의 난서欒書)의 은덕恩德을 생각하는 것이 마치 나라 사람들이 소공召公사모思慕하는 것과 같으니, 머물던 감당甘棠애호愛護하였는데, 하물며 그 아들이겠습니까?注+무자武子난서欒書난염欒黶의 아버지이다. 소공召公감당수甘棠樹 아래에서 송사訟事심리審理하였는데, 주인周人은 그를 사모思慕하여 그 나무를 해치지 않기 위해 ‘베지 말라[勿伐]’라는 를 지었다. 이 는 《시경詩經》 〈소남召南〉에 실려 있다.
欒黶死 盈之善未能及人하고 武子所施沒矣 而黶之怨實章하리니 將於是乎在리라 秦伯以爲知言이라하야 爲之請於晉而復之注+爲傳二十一年晉滅欒氏張本 하다
난염欒黶이 죽으면 난영欒盈선행善行은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고 무자武子가 베푼 은덕恩德은 점점 잊혀지고 난염欒黶에 대한 원망怨望이 실로 드러날 것이니, 그 멸망滅亡이 아마도 이때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진백秦伯식견識見이 있는 말이라고 여겨, 그를 위해 나라에 청구請求하여 그 직위職位회복恢復하게 하였다.注+양공襄公 21년에 나라가 난씨欒氏멸망滅亡시킨 장본張本을 말한 것이다.
[傳]衛獻公戒孫文子寗惠子食注+勑戒二子 欲共하니 皆服而朝注+服朝服 待命於朝 로되 日旰不召注+旰 晏也 하고 而射鴻於囿하다
위헌공衛獻公손문자孫文子영혜자寗惠子에게 함께 식사食事하자고 [戒]하니,注+두 사람에게 칙령勅令을 내려 함께 연식宴食(한가하고 일이 없을 때 신하를 불러 함께 음식을 먹는 것)하고자 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조복朝服을 입고 조정朝廷으로 나아가 을 기다렸으나,注+조복朝服을 입고 가서 조정朝廷에서 을 기다린 것이다. 헌공獻公은 날이 저물도록 이들을 부르지 않고注+(늦음)이다. 원유園囿에서 기러기 사냥만 하고 있었다.
二子從之注+從公於囿 한대 不釋皮冠而與之言注+皮冠 田獵之冠也 旣不釋冠 又不與食 [附注] 朱曰 君敬大臣 宜釋皮冠 이어늘 二子怒하다
두 사람이 원유園囿로 찾아가자注+헌공獻公원유園囿로 찾아간 것이다. 헌공獻公피관皮冠(사냥할 때 쓰는 모자)도 벗지 않은 채로 두 사람과 말을 하니注+피관皮冠은 사냥할 때 쓰는 모자이다. 피관皮冠도 벗지 않고 또 함께 식사食事도 하지 않은 것이다.[부주]朱: 임금이 대신大臣을 공경한다면 피관皮冠을 벗는 것이 당연하다. 두 사람은 하였다.
孫文子如戚注+戚 孫文子邑 [附注] 朱曰 林父歸其私邑 將以叛也 하야 注+孫蒯 孫文子之子 [附注] 林曰 入使於衛 하니 公飮之酒하고 使大師歌巧言之卒章注+巧言 詩小雅 其卒章曰 彼何人斯 居河之麋 無拳無勇 職爲亂階 戚 衛河上邑 公欲以喩文子居河上而爲亂 大師 掌樂大夫 한대
손문자孫文子척읍戚邑으로 가서注+손문자孫文子이다. [부주]朱: 손임보孫林父가 자기의 사읍私邑으로 돌아간 것은 장차 배반背叛하기 위해서이다. 그 아들 손괴孫蒯를 보내어 입조入朝하게 하니注+손괴孫蒯손문자孫文子의 아들이다. [부주]林: 나라에 사자使者로 들여보낸 것이다. 헌공獻公손괴孫蒯에게 술을 접대接待하며 태사太師에게 〈교언편巧言篇〉의 졸장卒章을 노래하게 하였다.注+교언巧言〉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그 졸장卒章에 “저 어떤 사람인가, 하수河水 가에 사네. 힘도 용맹도 없으면서, 오로지 계제階梯만 만드네.”라고 하였다. 위하衛河 가의 이다. 헌공獻公은 이 로써 손문자孫文子하수河水 가에 거주居住하면서 반란叛亂하려는 것을 비유하고자 한 것이다. 태사太師을 담당하는 대부大夫이다.
어늘 師曹請爲之注+辭以爲不可 師曹 樂人 하다
태사太師가 사양하니 사조師曹가 제가 노래하겠다고 청하였다.注+옳지 않다고 여겨 사양한 것이다. 사조師曹악인樂人(樂工)이다.
公有嬖妾하야 使師曹誨之琴注+誨 敎也 이러니 師曹鞭之한대 公怒하야 鞭師曹三百하다
당초에 헌공獻公사조師曹로 하여금 자기의 애첩愛妾에게 거문고를 가르치게 하였을 때注+이다. 사조師曹가 그녀에게 매를 치니, 헌공獻公하여 그에게 볼기 3백 대를 친 일이 있었다.
故師曹欲歌之하야 以怒孫子하야 以報公하다
그러므로 사조師曹교언시巧言詩를 노래하여 손자孫子(孫蒯)를 하게 하여, 헌공獻公에게 보복報復하고자 한 것이다.
公使歌之하니 注+恐孫蒯不解故 [附注] 林曰 師曹旣歌 恐孫蒯不解 故遂誦言之 하다
헌공獻公이 그에게 노래하게 하니 그는 드디어 이 낭송朗誦하였다.注+사조師曹손괴孫蒯이해理解하지 못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잘 알아듣도록 낭송朗誦한 것이다.〉[부주]林: 사조師曹는 이미 노래하고서 손괴孫蒯이해理解하지 못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송독誦讀한 것이다.
蒯懼하야 告文子한대 文子曰 君忌我矣 弗先이면 必死注+欲先公作亂 하리라 注+帑 子也 이라가 見蘧伯玉曰 君之暴虐 子所知也
손괴孫蒯는 이 낭송朗誦을 듣고는 두려워서 돌아가 손문자孫文子에게 하니, 문자文子가 말하기를 “임금이 나를 꺼리고 있으니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내가 죽게 될 것이다.”注+헌공獻公보다 먼저 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고 하고서 그 가중家衆을 모두 척읍戚邑에 모아 놓은 뒤에 가병家兵을 거느리고 도성都城으로 들어가다가注+는 아들이다. 우연히 거백옥蘧伯玉을 만나 말하기를 “임금의 포학暴虐은 그대도 아는 바이다.
大懼社稷之傾覆하노니 將若之何注+伯玉 蘧瑗 對曰 君制其國이어늘 臣敢奸之注+奸 猶犯也
사직社稷할까 크게 두려우니 장차 어찌하면 좋겠는가?”注+백옥伯玉거원蘧瑗이다. 라고 하니, 거백옥蘧伯玉은 “임금이 자기 나라를 통치統治하는데 신하臣下가 감히 침범侵犯해서야 되겠습니까?注+과 같다.
雖奸之라도 庸知愈乎注+言逐君更立 未知當差否 [附注] 林曰 言逐君更立 庸知差勝否乎 아하고 遂行하야 從近關出注+懼難作 欲速出竟 하다
가령 침범侵犯하여 임금을 바꾼다 해도 새 임금이 옛 임금보다 나을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注+임금을 축출逐出하고서 다시 다른 임금을 세운다 하더라도 지금 임금보다 나을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부주]林: 임금을 축출逐出하고 다시 다른 임금을 세운다 하더라도 지금 임금보다 나을 줄을 어찌 알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대답하고서, 드디어 떠나 가까운 관문關門을 통해 국외國外로 나갔다.注+난리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속히 국경國境 밖으로 나가고자 한 것이다.
한대 孫子皆殺之注+三子 衛群公子 疑孫子 故盟之 丘宮 近戚地 하다
헌공獻公자교子蟜자백子伯자피子皮구궁丘宮으로 보내어 손자孫子맹약盟約하게 하자, 손자孫子는 이들을 다 죽였다.注+세 사람은 나라의 군공자群公子이다. 헌공獻公손자孫子를 의심하였기 때문에 그와 맹약盟約하려 한 것이다. 구궁丘宮척읍戚邑 가까이 있는 땅이다.
四月己未 子展奔齊注+子展 衛獻公弟 [附注] 林曰 見禍作 遂奔齊 하다
4월 기미일己未日자전子展나라로 도망갔다.注+자전子展위헌공衛獻公의 아우이다. [부주]林: 화란禍亂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나라로 도망간 것이다.
公如鄄注+鄄 衛地 하야 使子行於孫子한대 孫子又殺之注+使往請和也 子行 群公子 하다
헌공獻公견읍鄄邑으로 가서注+나라 땅이다. 자행子行손자孫子에게 보내어 화해和解를 청하게 하자, 손자孫子는 또 그를 죽였다.注+자행子行을 보내어 화해和解를 청하게 한 것이다. 자행子行은 여러 공자公子 중의 하나이다.
公出奔齊어늘 孫氏追之하야 敗公徒于阿澤注+濟北東阿縣西南有大澤 하니 注+公徒因敗散還 故爲公執之 하다
헌공獻公나라로 도망가자 손씨孫氏추격追擊하여 아택阿澤에서 헌공獻公친병親兵패배敗北시키니,注+제북濟北동아현東阿縣 서남쪽에 대택大澤이 있다. 견인鄄人헌공獻公패잔병敗殘兵을 잡았다.注+헌공獻公병사兵士패전敗戰으로 인해 흩어져 돌아가기 때문에 견인鄄人헌공獻公을 위해 그들을 잡은 것이다.
尹公佗學射於庾公差하고 庾公差學射於公孫丁하다
당초에 윤공타尹公佗유공차庾公差에게 활쏘기를 배웠고, 유공차庾公差공손公孫에게 활쏘기를 배웠다.
二子追公注+二子 佗與差 爲孫氏逐公 할새 公孫丁御公注+爲公御也 하다
윤공타尹公佗유공차庾公差헌공獻公추격追擊할 때注+두 사람은 윤공타尹公佗유공차庾公差이다. 손씨孫氏를 위해 헌공獻公추격追擊한 것이다. 공손公孫헌공獻公의 수레를 몰고 있었다.注+헌공獻公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子魚曰 射爲背師 不射爲戮이니 注+子魚 庾公差 禮射不求中 [附注] 朱曰 言欲射丁 則是叛其所師 ᄂ저하고 射兩軥而還注+軥 車軛卷者 하니
자어子魚(庾公差)가 말하기를 “활을 쏘면 스승을 배반背反하게 되고 활을 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되니 활을 쏘는 것이 에 맞는다.”注+자어子魚유공차庾公差이다. 예사禮射는 맞추기를 구하지 않는다. [부주]朱: 공손公孫에게 활을 맞히고자 하면 이는 스승을 배반背反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고서 멍에에 두 대의 화살을 쏘아 맞히고 돌아오니,注+는 멍에의 굽은 곳이다.
尹公佗曰 子爲師어니와 我則遠矣라하고 乃反之注+佗不從丁學 故言遠 始與公差俱退 悔而獨還射丁 어늘 公孫丁授公轡而射之하야 貫臂注+貫佗臂 하다
윤공타尹公佗가 말하기를 “당신에게는 그가 스승이지만 나와는 관계關係소원疎遠합니다.”고 하고서 수레를 돌려 다시 추격追擊하자,注+윤공타尹公佗공손公孫에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소원疎遠하다고 한 것이다. 처음에 유공차庾公差와 함께 물러온 것을 후회後悔하고서 혼자 되돌아가서 공손公孫에게 활을 쏜 것이다. 공손公孫헌공獻公에게 말고삐를 맡기고서 활을 쏘아 윤공타尹公佗의 팔뚝을 맞혔다.注+화살이 윤공타尹公佗의 팔뚝에 박힌 것이다.
子鮮從公注+子鮮 公母弟 하다
자선子鮮헌공獻公을 따라 도망하였다.注+자선子鮮헌공獻公동모제同母弟이다.
及竟하야 公使祝宗告亡하고 且告無罪注+告宗廟也 한대 定姜曰 無神이면 何告 若有 不可誣也注+誣 欺也 定姜 公適母
국경國境에 이르렀을 때 헌공獻公축종祝宗을 보내어 종묘宗廟에 도망가는 것을 하고 아울러 자신에게 가 없다고 하게 하자,注+종묘宗廟하게 한 것이다. 정강定姜이 말하기를 “이 없다면 할 것이 뭐 있으며, 이 있다면 속여서는 안 된다.注+는 속이는 것이다. 정강定姜헌공獻公적모適母이다.
有罪어늘 若何告無
가 있는데 어찌 없다고 하겠는가?
舍大臣而與小臣謀하니 一罪也 어늘 而蔑之하니 二罪也注+謂不釋皮冠之比 余以巾櫛事先君이어늘 而暴妾使余하니 三罪也注+[附注] 林曰 巾 帨手者 櫛 理髮者 言我事定公爲夫人 而暴虐使我如遇婢妾
대신大臣을 버리고 소신小臣들과 국사國事상의商議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 요, 선군先君께서 총경冢卿을 두어 너의 사보師保로 삼아 주셨는데 너는 그들을 멸시蔑視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요,注+피관皮冠을 벗지 않은 일 등을 이른 것이다. 나는 선군先君을 모신 몸인데 비첩婢妾을 대하듯이 나를 포학暴虐하게 부렸으니 이것이 세 번째 이다.注+[부주]林: 은 손을 닦는 수건이고, (빗)은 머리털을 다듬는 도구이다. 나는 정공定公을 섬긴 부인夫人이었는데, 나를 포학暴虐하게 부려 비첩婢妾을 대우하듯이 하였다는 말이다.
告亡而已 無告無罪注+ 故不使得告無罪 하라
그러니 도망가는 것만을 하고 가 없다고는 하지 말라.”注+이때 정강定姜나라 국도國都에 있었기 때문에 무죄無罪하다고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고 하였다.
公使厚成叔弔于衛注+[附注] 林曰 魯襄公 曰 寡君使瘠 聞君不撫社稷하고 而越在他竟注+越 遠也 瘠 厚成叔名 하니 若之何不弔리오
양공襄公후성숙厚成叔나라로 보내어 위문慰問하게 하기를注+[부주]林: 노양공魯襄公이다. “우리 임금께서 저[瘠]를 보내신 것은, 위군衛君께서 국가國家보유保有하지 못하고 멀리 나와 다른 나라에 계신다는 말을 들으셨기 때문이니,注+이다. 후성숙厚成叔의 이름이다. 어찌 위문慰問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以同盟之故 使瘠敢私於執事注+執事 衛諸大夫 曰 有君不弔注+弔 恤也 [附注] 朱曰 言獻公不弔恤其臣 하고 注+敏 達也 [附注] 朱曰 言孫子不達事君之禮 하야 君不赦宥하고 臣亦不帥職일새 하니 其若之何注+[附注] 朱曰 君臣如此 所以增其淫慝 至於發洩以成逐君之事
동맹국同盟國이기 때문에 저를 보내어 감히 집사執事께 사사로이注+집사執事나라 대부大夫들을 이른 것이다. ‘임금이 어질지 못하고注+는 가엾게 여겨 위문慰問하는 것이다. [부주]朱: 헌공獻公이 그 신하臣下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신하가 민첩하지 못하여注+통달通達이다. [부주]朱: 손자孫子가 임금 섬기는 를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임금은 신하를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고 신하 또한 그 직분職分을 다하지 않았으므로 오래 쌓인 감정憾情폭발暴發하여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注+[부주]朱: 군신君臣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그 음특淫慝(邪惡)한 마음이 증대增大하여 끝내 폭발暴發해서 임금을 축출逐出하는 일을 이루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말이다. 라고 하게 하셨습니다.”고 하니,
衛人使大叔儀對注+大叔儀 衛大夫 曰 群臣不佞하야 得罪於寡君이로되 寡君不以卽刑하고하야 以爲君憂注+[附注] 林曰 不以群臣就於刑戮 乃自傷悼違棄之而去 로되
위인衛人태숙의太叔儀를 보내어 대답하기를注+태숙의太叔儀나라 대부大夫이다. “우리 신하臣下들이 변변치 못하여 우리 임금께 를 지었는데도 우리 임금께서는 신하臣下들을 하지 않으시고서 신하臣下들을 버리고 멀리 떠나시어, 노군魯君께 걱정을 끼쳤습니다.注+[부주]林: 군신群臣형륙刑戮하지 않고 스스로 슬퍼하며 신하들을 버리고 나라를 떠났다는 말이다.
君不忘先君之好하야 辱弔群臣하고 又重恤之注+重恤 謂愍其不達也 하니 敢拜君命之辱하고 重拜大貺注+謝重恤之賜 하노라
그런데도 노군魯君께서는 선군先君 때의 우호友好를 잊지 않으시고 저희 신하臣下들을 위문慰問하고 또 거듭 가엾게 여기시니,注+중휼重恤군신群臣부달不達을 가엾게 여겼다는 말이다. 감히 노군魯君위문慰問배사拜謝(感謝)하고 또 저희 신하臣下들을 가엾게 여기신 데 대해 거듭 배사拜謝합니다.”注+거듭 가엾게 여겨 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厚孫歸하야 復命하고 語臧武仲曰 衛君其必歸乎ᄂ저
후손厚孫(厚成叔)이 돌아와서 복명復命하고서 장무중臧武仲에게 말하기를 “위군衛君은 틀림없이 나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有大叔儀以守注+守於國 하고 有母弟鱄以出注+[附注] 朱曰 鱄 卽子鮮也 하여 或撫其內하고 或營其外하니 能無歸乎
태숙의太叔儀가 나라를 지키고注+국내國內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말이다. 동모제同母弟(子鮮)이 함께 출분出奔하여,注+[부주]朱: 은 바로 자선子鮮이다. 혹은 국내國內에서 백성을 안무安撫하고, 혹은 국외國外에서 귀국歸國경영經營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齊人以郲寄衛侯注+郲 齊所滅郲國 러니 及其復也하야 以郲糧歸注+言其貪 하다
제인齊人위후衛侯에게 주어 우거寓居하게 하였는데,注+나라가 내국郲國이다. 〈12년 뒤에〉 위후衛侯나라로 돌아갈 때 양곡糧穀을 가지고 돌아갔다.注+그의 탐욕貪慾스러움을 말한 것이다.
右宰穀從而逃歸하니 衛人將殺之注+穀 衛大夫也 以其從君 故欲殺之 한대 辭曰 余不說初矣注+言初從君 非說之 不獲已耳 注+言一身盡善 唯少有惡 喩己雖從君出 其罪不多 라하니 乃赦之하다
우재右宰헌공獻公을 따라 출분出奔하였다가 도망쳐 돌아오니, 위인衛人이 그를 죽이려 하자,注+나라 대부大夫이다. 그 임금을 따라갔기 때문에 죽이려 한 것이다. 변명辨明하기를 “내가 당초에 좋아서 따라갔던 것이 아니니,注+당초에 임금을 따라간 것은 좋아서가 아니라 부득이不得已해서였다는 말이다. 나는 여우 갖옷에 염소 가죽으로 소매를 단 것처럼 작은 허물만이 있을 뿐이다.”注+일신一身이 모두 하고 조금 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니, 자기가 비록 임금을 따라 출분出奔하였으나 그 가 많지 않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고 하니, 위인衛人은 곧 그를 사면赦免하였다.
衛人立公孫剽注+剽 穆公孫 하고 孫林父寗殖相之하야 注+聽盟會之命 하다
위인衛人공손公孫를 임금으로 세우고서注+위목공衛穆公손자孫子이다.손임보孫林父영식寗殖이 그를 보좌輔佐하여 제후諸侯을 들었다.注+맹회盟會을 들은 것이다.
衛侯在郲하니 臧紇如齊하여 唁衛侯注+林曰 弔失國曰唁 하다
위후衛侯에 머물러 있으니, 장흘臧紇나라로 가서 위후衛侯실국失國위로慰勞[唁]하였다.注+임왈林曰 나라를 잃은 것을 위로慰勞하는 것을 ‘’이라 한다.
衛侯與之言注+[附注] 林曰 與臧武仲言 皆暴虐之事 이어늘 退而告其人曰 衛侯其不得入矣리라
위후衛侯가 그와 대화對話하는데 모두 포학暴虐한 일만을 말하니,注+[부주]林: 장무중臧武仲과 나눈 말이 모두 포학暴虐한 일이었다는 말이다. 장흘臧紇이 물러나와 그 좌우左右에게 말하기를 “위후衛侯는 아마도 본국本國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注+[附注] 林曰 其言皆踐踏群臣 如土芥者也
그 말이 쓰레기[糞土]였다.注+[부주]林: 그 말이 모두 신하臣下들을 마치 토개土芥처럼 짓밟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亡而不變하니 何以復國注+武仲不書 未爲卿 이리오
남의 나라로 도망해 와 있으면서도 허물을 뉘우치지 않으니 어찌 군위君位회복恢復할 수 있겠는가.”注+무중武仲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子展子鮮聞之하고 見臧紇하고 與之言注+順道理 어늘 臧孫說하야 謂其人曰 衛君必入이리라
자전子展자선子鮮이 그 말을 듣고 장흘臧紇을 만나 대화對話하는데 그 말이 도리道理에 맞으니,注+도리道理를 따른 것이다. 장손臧孫이 기뻐하며 그 좌우左右에게 말하기를 “위군衛君은 반드시 나라로 들어가 군위君位회복恢復할 것이다.
夫二子者 或輓之하고 或推之하니 欲無入이나 得乎注+爲二十六年衛侯歸傳
저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앞에서 끌고 한 사람은 뒤에서 미니 들어가지 않고자 해도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注+양공襄公 26년에 위후衛侯복귀復歸한 것을 기록한 의 배경이다. 라고 하였다.
[傳]師歸自伐秦하야 晉侯舍新軍하니 禮也
진군晉軍나라 토벌에서 돌아와 진후晉侯신군新軍을 없앴으니 에 맞았다.
成國不過半天子之軍注+成國 大國 이라
대국大國이라 해도 그 군대가 천자天子 군대의 절반을 초과超過할 수 없는 것이다.注+성국成國대국大國이다.
周爲六軍이니 諸侯之大者 三軍可也
나라가 육군六軍이니 큰 제후국諸侯國삼군三軍이어야 한다.
於是知朔生盈而死注+朔 知罃之長子 盈生而朔死 하고 盈生六年而武子卒注+[附注] 林曰 武子 卽知罃 하니
이때 지삭知朔지영知盈을 낳고 죽었고,注+지삭知朔지앵知罃장자長子이고, 지영知盈지삭知朔의 아우이다. 지영知盈이 태어나자 지삭知朔이 죽은 것이다. 지영知盈이 여섯 살 때 무자武子가 죽었다.注+[부주]林: 무자武子는 바로 지앵知罃이다.
彘裘亦幼하야 皆未可立也 新軍無帥
사방士魴의 아들 체구彘裘도 어려서 둘 다 으로 세울 수 없어, 신군新軍장수將帥가 없었다.
故舍之注+裘 士魴子也 十三年 荀罃士魴卒 其子皆幼 未任爲卿 故新軍無帥 遂舍之 하니라
그러므로 신군新軍을 없앤 것이다.注+체구彘裘사방士魴의 아들이다. 양공襄公 13년에 순앵荀罃사방士魴이 죽었는데, 그 아들들이 모두 어려서 임명任命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신군新軍장수將帥가 없어서 드디어 신군新軍한 것이다.
[傳]師曠侍於晉侯注+師曠 晉樂大師子野 러니 晉侯曰 衛人出其君하니 不亦甚乎 對曰 或者其君實甚注+[附注] 林曰 或者衛君所爲已甚 非獨其臣之罪 이니이다
사광師曠진후晉侯를 모시고 있었더니,注+사광師曠나라 악태사樂太師자야子野이다.진후晉侯가 그에게 “위인衛人이 그 임금을 축출逐出하였으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라고 하자, 사광師曠이 대답하기를 “그 임금이 실로 너무 심했던 것 같습니다.注+[부주]林: 위군衛君행위行爲가 너무 심하였으니 단지 그 신하臣下만이 아닌 듯하다는 말이다.
良君將賞善而刑淫하고 養民如子하야 蓋之如天하고 容之如地일새
어진 임금은 선량善良한 자를 권장勸獎[賞]하고 사악邪惡한 자를 징벌懲罰하며 백성을 자식처럼 길러서 하늘처럼 덮어 주고 대지大地처럼 포용包容합니다.
民奉其君하야 愛之如父母하고 仰之如日月하며 敬之如神明하고 畏之如雷霆이니
그러므로 백성들은 그 임금을 떠받들어 부모父母처럼 사랑하고 일월日月처럼 우러르고 신명神明처럼 공경하고 뇌정雷霆처럼 두려워합니다.
其可出乎잇가
그런데 어찌 임금을 축출逐出할 수 있겠습니까?
夫君 神之主而民之望也注+[附注] 林曰 奉祭祀 故爲神之主 施德惠 故繫民之望 어늘 注+[附注] 林曰 困苦其民以主其國 空匱其神乏絶其祀 百姓絶望하고 社稷無主注+[附注] 朱曰 祭祀不修 無以爲神之主 將安用之릿가
임금은 신명神明제사祭祀주관主管하는 사람으로 백성의 희망希望인데,注+[부주]林: 제사祭祀를 받들기 때문에 주인主人이 되고, 덕혜德惠를 베풀기 때문에 백성의 희망希望이 걸렸다는 말이다. 만약 백성의 생활生活[主]을 곤궁困窮하게 하고 신명神明제사祭祀를 끊이게 한다면注+[부주]林: 백성을 곤궁困窮하게 하면서 그 나라를 주재主宰하고,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아 그 을 굶주리게 한다는 말이다. 백성은 희망希望을 잃고 사직社稷에는 주인主人이 없는 것이니,注+[부주]朱: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으니 주인主人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임금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弗去何爲리오
축출逐出하지 않고 무엇 하겠습니까?
天生民而立之君 使司牧之하야 勿使失性이오 有君而爲之貳注+貳 卿佐 使師保之注+[附注] 林曰 使爲師爲保以輔導其君之德業 하야 勿使過度注+[附注] 林曰 勿使其君越於法度之外 니이다
하늘이 백성을 내고서 임금을 세운 것은 그 임금으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려[司牧]천성天性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임금을 세우고서 경좌卿佐[貳]를 둔 것은注+경좌卿佐(執政大臣)이다. 경좌卿佐로 하여금 임금을 보좌輔佐하고 보호保護하여注+[부주]林: 사보師保가 되어 그 임금의 덕업德業보도輔導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법도法度를 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注+[부주]林: 그 임금을 법도法度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是故天子有公하고 諸侯有卿하며 卿置側室注+側室 支子之官 하고 大夫有貳宗注+貳宗 宗子之副貳者 하며 士有朋友하고 庶人工商皁隷牧圉 皆有親暱注+[附注] 林曰 自庶人而下執技藝曰工 通貨賄曰商 屬於吏曰隷 養牛曰牧 養馬曰圉 皆有親信比暱之人 하야 以相輔佐也하야 善則賞之注+賞 謂宣揚 하고 過則匡之注+匡 正也 하며 患則救之注+救其難也 하고 失則革之注+革 更也 니이다 自王以下 各有父兄子弟以補察其政注+補其愆過 察其得失 하니
그러므로 천자天子에게는 이 있고 제후諸侯에게는 이 있으며 에게는 측실側室이 있고注+측실側室지자支子관직官職이다. 대부大夫에게는 이종貳宗이 있으며注+이종貳宗종자宗子보좌輔佐하는 자이다. 에게는 붕우朋友가 있고 서인庶人에게도 모두 친근親近한 사람이 있어,注+[부주]林: 서인庶人 이하로 기예技藝를 가진 자를 ‘’이라 하고, 재화財貨유통流通하는 자를 ‘’이라 하고, 일을 조성造成하는 자를 ‘’라 하고, 에 소속된 자를 ‘’라 하고, 소를 기르는 자를 ‘’이라 하고, 말을 기르는 자를 ‘’라 하는데, 이들도 모두 신임하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서로 보좌輔佐하여 선행善行이 있으면 칭찬稱讚[賞]하고注+선양宣揚을 이른다. 과오過誤가 있으면 바로잡으며,注+은 바로잡는 것이다. 환란患亂이 있으면 구제救濟하고注+환난患難구제救濟하는 것이다. 실패失敗하면 개혁改革하게 하였으니,注+경장更張하는 것이다. 천왕天王으로부터 이하로 각각 부형父兄자제子弟가 있어 그 정령政令득실得失을 살펴 잘못을 보완補完하게 한 것입니다.注+그 허물을 보완補完하고 그 득실得失을 살피는 것이다.
史爲書注+謂大史 君擧則書 하고 瞽爲詩注+瞽 盲者 爲詩以風刺 하며 工誦箴諫注+工 樂人也 誦箴諫之辭 하고 大夫規誨注+規正諫誨其君 하며 士傳言注+士卑不得徑達 聞君過失 傳告大夫 하고 庶人謗注+庶人不與政 聞君過得誹謗 하며 注+旅 陳也 陳其貨物 以示時所貴尙 하고 注+獻其技藝 以喩政事 니이다
사관史官은 임금의 거동擧動을 기록하고注+대사大史를 이르니, 임금의 거동擧動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다.악사樂師[瞽]는 로써 풍간諷諫하고注+는 소경이다. 를 지어 임금을 풍자諷刺하는 것이다. 악공樂工잠간箴諫음송吟誦하며,注+악인樂人이다. 잠간箴諫의 말을 외는 것이다. 대부大夫규간規諫해 임금을 가르치고注+그 임금의 잘못을 규정規正하고 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는 임금의 과실을 대부大夫에게 하며,注+는 벼슬이 낮아서 직접 임금께 주달奏達할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의 과실過失을 들으면 대부大夫에게 전달傳達한다. 서민庶民들은 모여서 비방誹謗하고注+서인庶人정사政事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의 허물을 들으면 비방誹謗할 수 있다. 상인商人들은 시장市場득실得失비평批評하며,注+는 펼쳐 놓는 것[陳]이니 그 화물貨物을 펼쳐 놓아 시인時人하게 여겨 숭상崇尙하는 바를 나타내는 것이다. 백공百工기예技藝를 바칩니다.注+기예技藝를 바쳐 정사政事를 비유하는 것이다.
故夏書曰 遒人以木鐸徇於路注+逸書 遒人 行人之官也 木鐸 木舌金鈴 徇於路 求歌謠之言 호되 官師相規注+官師 大夫 自相規正 하며 注+所謂獻藝 하라하니이다
그러므로 〈하서夏書〉에 ‘주인遒人목탁木鐸을 흔들며 도로道路순행循行하면서,注+일서逸書이다. 주인遒人행인行人(外交를 맡은 사람)의 관명官名이다. 목탁木鐸으로 겉을 만들고 그 안에 나무로 만든 혀를 단 방울이다. 도로道路순행循行하는 것은 가요歌謠(政治의 득실得失풍자諷刺하는)의 말을 구하기 위함이다. 「官師는 서로 경계하고注+관사官師대부大夫이다. 각자 서로 규정規正하는 것이다. 공인工人기예技藝를 가지고 하라.」는 선포宣布한다.’注+이것이 위에서 말한 ‘헌예獻藝’이다. 고 하였습니다.
注+有遒人徇路之事 [附注] 林曰 恐人君失其常度 故諫之也 니이다
정월正月맹춘孟春이 되면 이때에 주인遒人도로道路순행循行하며 목탁木鐸을 흔드는 일이 있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도常道를 벗어난 임금의 과실過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注+주인遒人도로道路순행循行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부주]林: 임금이 그 상도常度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天之愛民甚矣 豈其使一人肆於民上注+肆 放也 하야 以從其淫하야 而棄天地之性이릿가
하늘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지극하니 어찌 한 사람(임금)으로 하여금 백성의 위에서 방자放恣사악邪惡한 짓을注+방자放恣이다. 멋대로 하여 천지天地을 버리도록 놓아두겠습니까?
必不然矣注+傳善師曠能因問盡言 [附注] 朱曰 按師曠此段議論 足以儆懼君心 與孟子紂爲獨夫君爲仇讐同意 而此語意尤婉也 리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注+전문傳文사광師曠이 임금의 물음으로 인해 숨김없이 할 말을 다한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부주]朱: 고찰考察하건대 사광師曠의 이 의론議論은 임금을 경계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니, 맹자孟子의 ‘독부獨夫이고 임금은 구수仇讐이다.’고 한 말과 같은 뜻이지만 이 말의 뜻이 더욱 완곡婉曲하다. 라고 하였다.
[傳]秋 楚子爲庸浦之役故注+在前年 子囊師于棠以伐吳하다
가을에 초자楚子가 작년에 있었던 용포庸浦전쟁戰爭을 이유로注+용포庸浦전쟁戰爭전년前年에 있었다.자낭子囊에게 에서 출병出兵[師]하여 나라를 치게 하였다.
吳不出而還할새
오인吳人이 나와 응전應戰하지 않으니 환군還軍하였다.
子囊殿注+殿 軍後 하야 以吳爲不能而弗儆하다
환군還軍할 때 자낭子囊이 군대의 후미後尾를 맡았는데,注+殿은 군대의 후미後尾이다. 오인吳人공격攻擊해 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 경계警戒하지 않았다.
注+皐舟 吳險阨之道 하니 楚人不能相救하다
오인吳人고주皐舟협곡峽谷에서 초군楚軍의 허리를 잘라 공격攻擊하니注+고주皐舟나라의 험하고 좁은 길이다. 초군楚軍전군前軍후군後軍이 서로 구원救援할 수 없었다.
吳人敗之하야 獲楚公子宜穀注+傳言不備 不可以師 하다
오인吳人초군楚軍격파擊破하고서 나라 공자公子의곡宜穀생포生捕하였다.注+전문傳文은 〈불의不意의 사태를〉 대비對備하지 않으면 전쟁戰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傳]王使劉定公賜齊侯命注+將昏於齊故也 定公 劉夏 位賤 以能而使之 傳稱諡 擧其終 右我先王 股肱周室이오 師保萬民이라
주왕周王유정공劉定公을 보내어 제후齊侯에게 총명寵命(恩寵을 입히는 왕명王命)을 내리며注+장차 나라와 혼인婚姻하려 하였기 때문에 총명寵命을 내린 것이다. 정공定公유하劉夏이다. 지위地位는 낮으나 유능有能하기 때문에 그를 사신使臣으로 보낸 것이다. 에 ‘’이란 그의 한 것은 그 (死後)에 생전生前의 일을 들어 말했기 때문이다. 말하기를 “예전에 백구伯舅태공太公이 우리 선왕先王을 도울 적에 나라 왕실王室고굉股肱이었고 만민萬民사보師保였다.
注+胙 報也 表 顯也 謂顯封東海以報大師之功 [附注] 林曰 大師 卽太公也 하니 王室之不壞 繄伯舅是賴注+繄 發聲
그러므로 선왕先王께서 태사太師세습世襲시켜 동방東方제후諸侯들의 표식表式(본보기)이 되게 하였으니,注+보답報答이고, 는 드러냄이니, 드러내어 동해東海하여 태사太師보답報答했다는 말이다. [부주]林: 태사太師는 바로 태공太公이다. 왕실王室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백구伯舅을 힘입어서이다.注+발성사發聲詞이다.
今余命女環注+環 齊靈公名 하노니 玆率舅氏之典하고 纂乃祖考하야 無忝乃舊하고 敬之哉하야 無廢朕命注+纂 繼也 因昏而加褒顯 傳言王室不能命有功 하라
이제 내 너 (齊靈公의 이름)에게 하노니注+제영공齊靈公의 이름이다. 부지런히[玆]구씨舅氏(太公)의 준행遵行하고 네 선조先祖계승繼承하여 네 선인先人되게 하지 말고, 공경하여 을 버리지 말라.”注+계승繼承하는 것이다. 혼인婚姻으로 인해 더욱 포현褒顯(讚揚해 드러냄)하였으니, 전문傳文왕실王室이 있는 사람에게 총명寵命을 내리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晉侯問衛故於中行獻子注+問衛逐君當討否 獻子 荀偃 한대 對曰 不如因而定之니이다
진후晉侯나라의 일[故]을 중행헌자中行獻子에게 묻자,注+임금을 축출逐出나라의 를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質問한 것이다. 헌자獻子순언荀偃이다. 헌자獻子가 대답하기를 “〈저들이 이미 임금을 세운 것을〉 인하여 안정安定시키는 것만 못합니다.
衛有君矣注+謂剽已立 伐之라도 未可以得志 而勤諸侯注+[附注] 林曰 未可以得志於衛 而勤勞諸侯 리이다
나라에 이미 임금이 섰으니注+(殤公)가 이미 위군衛君으로 즉위卽位한 것을 이른 것이다. 토벌討伐하더라도 우리가 뜻을 얻지 못할 것이고 제후諸侯들만 근로勤勞시킬 뿐입니다.注+[부주]林: 나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제후諸侯들만 근로勤勞시킬 뿐이라는 말이다.
史佚有言曰 因重而撫之注+重不可移 就撫安之 라하고 仲虺有言曰 亡者侮之하고 亂者取之하야 推亡固存 國之道也注+仲虺 湯左相 라하니 君其定衛以待時乎注+待其昏亂之時 乃伐之 ᄂ저
사일史佚의 말에 ‘임금이 이미 선 것[重]을 인하여 안무安撫하라.’注+무거운 것(이미 임금의 자리가 해진 것을 이름)은 옮길 수 없으니 〈임금이 새로 선 것을〉 인하여[就]나라를 안무安撫하라는 말이다. 고 하였고, 중훼仲虺의 말에 ‘하는 나라는 해치고[侮] 어지러운 나라는 하며 할 짓을 하는 나라는 넘어뜨리고 보존保存될 일을 하는 나라는 공고鞏固하게 해 주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상도常道이다.’注+중훼仲虺좌상左相이다. 고 하였으니, 께서는 나라를 안정安定시켜 때를 기다리소서.”注+나라가 혼란昏亂해질 때를 기다려 토벌討伐하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會于戚하니 謀定衛也注+定立剽
겨울에 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나라를 안정安定시키는 일을 상의商議하기 위함이었다.注+를 임금으로 세운 것을 인증認證나라를 안정安定시키기를 상의商議한 것이다.
[傳]范宣子假羽毛於齊而弗歸하니 齊人始貳注+析羽爲旌 王者游車之所建 齊私有之 因謂之羽毛 宣子聞而借觀之 하다
범선자范宣子나라에서 빌린 우모羽毛를 돌려주지 않으니, 제인齊人이 비로소 배반背叛할 마음을 품기 시작하였다.注+새의 깃을 쪼개어 만든 [旌]로 왕자王者유거游車(天子가 놀이할 때 타는 수레)에 세우는 것인데, 나라가 사사로이 이 소유所有하고서 ‘우모羽毛’라고 이름하였다. 선자宣子가 이를 듣고 빌려 가지고 본 것이다.
[傳]楚子囊還自伐吳하야하다
나라 자낭子囊나라 토벌討伐에서 돌아와 하였다.
將死 遺言謂子庚호되 必城郢注+楚徙都郢 未有城郭 公子燮公子儀因築城爲亂 事未得訖 子囊欲訖而未暇 故遺言見意 [附注] 林曰 子庚 司馬公子午也 當代子囊爲令尹 故子囊遺言必城郢 하라
죽으려 할 때에 자경子庚에게 유언遺言하기를 “반드시 을 쌓으라.”注+나라가 으로 새로 천도遷都하여 아직 성곽城郭이 없었다. 공자公子공자公子축성築城으로 인해 을 일으켜 축성築城의 일을 마치지 못하니, 자낭子囊이 그 일을 마치려 하였으나 겨를이 없어 마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언遺言하여 뜻을 나타낸 것이다. [부주]林: 자경子庚사마司馬공자公子이다. 자낭子囊의 뒤를 이어 영윤令尹이 될 것이므로 자낭子囊이 반드시 을 쌓으라고 유언遺言한 것이다. 고 하였다.
君子謂 子囊忠이로다
군자君子논평論評하기를 “자낭子囊충성忠誠스럽다.
君薨 不忘增其名注+謂前年諡君爲共 하고 將死 不忘衛社稷하니 可不謂忠乎
임금이 죽었을 때는 임금에게 ‘’이란 시호諡號를 올렸고,注+전년前年에 임금의 시호諡號를 ‘’으로 한 것을 이른다. 자신이 죽을 때는 사직社稷보위保衛를 잊지 않았으니 충성忠誠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民之望也
은 백성이 우러르는 바이다.
詩曰 行歸于周하니 萬民所望이라하니 忠也注+詩小雅 忠信爲周 言德行歸於忠信 卽爲萬民所瞻望
시경詩經》에 ‘모든 행동行動충신忠信으로 귀결歸結하니 만민萬民이 우러러보는 바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을 말한 것이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도인사편都人士篇〉이다. 충신忠信라 한다. 덕행德行충신忠信으로 귀결歸結되니 만민萬民의 우러름을 받는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叔孫豹會晉荀偃……小邾人伐秦 : 晉나라와 秦나라의 戰爭은 僖公 32년 殽의 戰爭을 시작으로 69년 동안 두 나라의 報復戰爭이 계속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秦나라는 晉나라의 强盛을 두려워하여 감히 報復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春秋》에 다시 두 나라의 侵伐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역주2 〈侯〉失國者 皆不書逐〈君〉 : 저본에는 보이지 않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侯’자와 ‘君’자를 보충하였다.
역주3 毋是翦棄 : 翦은 去(버림)이다. 《詩經》 〈召南甘棠篇〉의 “勿翦勿伐”의 ‘翦’을 《毛詩正義》에 ‘去’로 訓詁하였다.
역주4 今官之師旅 : 官은 晉나라 執政을 이른 것이고, 師旅는 각 部署의 長官 또는 官屬을 이른 것이니, 執政의 部下라는 뜻이다. 〈楊注〉에 “執政을 지적해 말하지 않은 것은 外交의 修辭이다.”고 하였다.
역주5 季札之讓 且明吳兄弟相傳 : 吳王壽夢에게 諸樊, 餘祭, 餘昧, 季札 등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 季札이 賢能하니 兄弟가 모두 그를 사랑하여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季札이 듣지 않자, 諸樊이 王位를 아들에게 傳하지 말고 아우에게 傳하여 자연스럽게 季札에게 王位가 가도록 하자고 提案하니, 모두 同意하였다. 그러므로 아우에게 位를 傳하여 餘昧에 이르렀다. 餘昧가 죽은 뒤에 季札을 세우려 하자 季札은 끝내 사양하고 임금이 되지 않았다. 《公羊傳》 襄公二十九年‧《史記》 〈吳世家〉
역주6 若社稷何 : 晉나라에 服從하면서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가장 미움을 사는 짓이니 國家를 장차 어찌 保存하겠느냐는 말이다. 〈楊注〉
역주7 不獲成焉 : 戰爭에 ‘獲成’이란 말은 敵國을 屈服시키는 것이다. 〈楊注〉
역주8 余馬首欲東 : 秦軍이 서쪽에 있으니,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면 돌아오는 것이다. 〈楊注〉
역주9 多遺秦禽 : 多를 〈楊注〉의 解釋에 따라 ‘다만’으로 번역하였다. 《論語》 〈子張〉 24章의 “多見其不知量也”의 ‘多’를 集註에 “多는 祗와 같다.”고 하였으니 祗는 適(다만)이다.
역주10 吾有二位於戎路 : 二位는 地位가 두 번째임을 말한 것이다. 〈楊注〉에 “欒鍼은 欒黶의 아우로 이때 戎右였다. 戎路는 將帥가 타는 兵車이다. 戎右는 그 地位가 御者의 다음이기 때문에 戎路 위에서 내가 ‘二位’에 있었다고 한 것이다.”고 하였고, 《左氏會箋》에도 “戎右의 地位가 御者의 다음이기 때문에 ‘有二位’라고 한 것이다. 杜注는 옳지 않다.”고 하였다.
역주11 是[爲] : 저본에는 ‘是’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爲’로 바로잡았다.
역주12 敢不恥乎 : 敢不恥는 敢不知恥(감히 부끄러움을 몰라서야 되겠는가)로 번역하였다.
역주13 欒黶謂士匄曰……士鞅奔秦 : 欒黶이 軍令을 拒逆함으로 인해 군사들이 모두 退却하니, 欒鍼은 군사들을 볼 面目이 없었다. 그러므로 敵陣으로 뛰어들어 殉死하였으니, 이는 欒鍼이 그 兄의 허물을 덮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欒黶은 이로 인해 士鞅을 逐出하였으니, 欒鍼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였을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4 惰也 : 惰는 涇水를 건너려 하지 않은 등의 일을 이른 것이다. 〈楊注〉
역주15 攝也 : ‘攝’에는 ‘整頓’과 ‘佐助’ 등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에는 두 뜻이 모두 通한다. 〈楊注〉
역주16 晏[宴] : 저본에는 ‘晏’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7 孫蒯入使 : 朝廷으로 들어가서 命을 請하게 한 것이다. 〈楊注〉
역주18 大師辭 : 太師는 叛亂을 부르게 될 것이 두려워 사양하고 노래하지 않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9 遂誦之 : 歌는 音節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듣고서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誦은 음절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들어도 분명하게 알기가 쉽다. 《左氏會箋》
역주20 幷帑於戚而入 : 〈楊注〉에 의하면 帑는 子弟臣僕 등 일체의 家衆을 가리킨 廣義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孫文子의 家衆은 본래 戚邑과 都城 두 곳에 分散되어 있었는데, 이때 叛亂을 일으키려 하였기 때문에 家衆을 戚邑에 모아 놓은 뒤에 군사를 거느리고 都城으로 들어간 것이다. 入을 下句에 붙여 入見蘧伯玉으로 읽는 것은 옳지 않다. 이때 蘧伯玉이 매우 젊어서 높은 지위에 있지 않았으니 어찌 孫林父가 찾아가서 만났겠는가. 都城으로 들어갈 때 우연히 만난 것이다. 이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21 公使子蟜子伯子皮與孫子盟于丘宮 : 丘宮은 衛나라 都城 안에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孫氏의 군대가 이미 公宮을 壓迫하기 때문에 獻公은 孫氏와 和解하지 않을 수 없었다. 杜注의 이곳 몇 句의 解釋에는 誤謬가 많다. 〈楊注〉
역주22 鄄人執之 : 獻公이 비록 鄄에 있지만, 鄄人은 獻公을 背叛하고 도리어 孫氏를 위하여 도망가는 獻公의 兵士들을 잡은 것이니, 國人이 모두 獻公을 미워한 것을 말한 것이다. 杜注는 옳지 않다. 《左氏會箋》
역주23 射爲禮乎 : 射爲禮는 쏘거나 쏘지 않는 두 가지가 모두 禮에 맞는다는 말이다. 杜注의 ‘禮射不求中’은 傳의 뜻이 아니다. 〈楊注〉
역주24 先君有冢卿 : 冢卿은 孫林父와 寗殖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楊注〉
역주25 時姜在國 : 당시에는 諸侯가 出奔할 경우, 宮中의 眷屬(식구들)도 모두 함께 갔으니, 定姜도 獻公과 함께 亡命한 것이다. 獻公이 祝宗에게 歸國하여 宗廟에 告하게 하였기 때문에 定姜이 그 罪를 열거해 꾸짖어 獻公으로 하여금 反省해 고치게 한 것이니, 이는 慈母가 아들을 訓戒한 말이고 賊을 편들어 임금에게 罪를 돌린 말이 아니다. 杜注에 定姜이 國都에 있었다고 한 것은 옳지 않다. 《左氏會箋》
역주26 有君不弔 有臣不敏 : 弔는 善이고 敏은 達이니 임금은 善良하지 못하고 신하는 事理에 通達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 〈楊注〉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27 增淫發洩 : “增淫은 積久이다. 衛定公이 죽고 獻公이 卽位한 初期부터 孫林父는 重要한 寶物들을 모두 戚邑에 옮겨 놓고 晉나라의 卿들과 두터운 交分을 맺었으니, 獻公과 孫氏가 서로 미워하여 틈이 생긴 지가 거의 18년이 되었다. 미워하고 원망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에 크게 暴發하여 임금을 逐出하는 데 이른 것이다.”고 한 〈楊注〉에 따라 ‘增淫’을 ‘積久’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28 悼棄之 : 《左氏會箋》 등 여러 註釋을 참고하건대 古字(隷書가 생기기 전의 古代文字)에 悼는 卓과 通用이었고, 卓에는 高遠의 뜻이 있다. 悼棄之는 위의 越在他竟에 답한 말이니 遠棄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으므로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29 余狐裘而羔袖 : 狐皮는 貴하니 善을 비유한 것이고, 羔皮는 賤하니 惡을 비유한 것이다. 狐皮 갖옷에 소매에만 羔皮를 대었으니 善은 많고 惡은 적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30 以聽命於諸侯 : 諸侯가 그와 會盟하였다면 그를 衛君으로 認可한 것이다. 〈楊注〉
역주31 其言糞土也 : 糞土는 事理에 맞지 않는 賤하고 사나운 말을 이른다. 《左氏會箋》
역주32 盈 朔弟也 : 〈世本〉에 “莊子首가 武子罃을 낳고, 罃이 莊子朔을 낳고, 朔이 悼子盈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知盈은 知朔의 아들이다. 盈을 朔의 아우라고 한 杜注는 옳지 않다. 〈楊注〉
역주33 若困民之主 匱神乏祀 : 困民之主의 主가 《新書》 〈雜事篇〉과 《說苑》 〈君道篇〉에 모두 ‘困民之性’으로 되어 있으니, 主는 ‘生’字와 모양이 비슷하여 잘못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生과 性이 옛날에는 서로 通用되었다고 한 〈楊注〉의 설을 취하고, 匱神乏祀의 乏을 ‘之’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34 造成事曰皁 : 皁는 造이고 造는 일을 이루는 것이니, 皁役(賤役)이 아니다. 昭公 7년 傳의 역주] 參考할 것.
역주35 庶人謗 商旅于市 : 〈正義〉에 의하면 “商人들이 임금의 惡政을 보면 不正한 물건들을 펼쳐 놓아서 임금을 諫하는 것이다.”고 하였으나, 이 설을 취하지 않고, “商旅는 同義詞를 連用한 것임을 《周易》 〈復卦〉의 ‘商旅不幸’과, 《周禮》 〈考工記〉의 ‘四方의 珍貴한 물건들을 流通시켜 도움을 주는 자를 商旅라 한다.’와, 《禮記》 〈月令〉의 ‘關稅와 市廛의 稅를 輕減하여 사방의 商旅를 오게 한다.’는 글에서 證明할 수 있다. 《漢書》 〈賈山傳〉의 ‘庶人謗於道商旅議於市’가 실로 이 傳에 根據한 것이다. 이 句에 動詞가 없는 것은 上句의 ‘謗’字를 이어 말하였기 때문에 ‘議’字를 省約한 것이다.”고 한 〈楊注〉 등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36 百工獻藝 : 모든 匠人은 器具를 法度에 맞게 만들어 올려 임금도 法度를 지키기를 間接的으로 諫한다는 말이다.
역주37 故夏書曰 遒人……工執藝事以諫 : 이 글은 《書傳》 〈胤政篇〉에 보이는데, 그 註에 “遒人은 宣令官(命令을 宣布하는 官員)이다.”고 하였다.
역주38 正月孟春……諫失常也 : 春秋 이전에는 天子와 諸侯의 大臣과 諫官은 일을 당하면 諫言을 올릴 수 있었지만 下位에 있는 자와 百工은 오직 正月에 遒人이 道路를 循行할 때에만 비로소 進言의 期會를 얻을 수 있었다. 〈楊注〉
역주39 吳人自皐舟之隘要而擊之 : 要는 腰(허리)의 假借字로 여기서는 ‘허리를 자르다.’는 動詞로 쓰였다. 楚나라의 前軍은 지나가고 後軍이 아직 오기 전에 吳人이 峽谷에서 楚軍의 중간을 잘라 前軍과 後軍이 서로 救援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역주40 昔伯舅太公 : 伯舅는 姜太公을 가리킨 것이다. 周王이 異姓諸侯에 대해 모두 伯舅 또는 舅氏로 稱하였다.
역주41 世胙大師 以表東海 : 世胙는 太師의 職을 世襲시킨 것이고, 表는 表式이라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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