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年春王正月 城楚丘하다注+楚丘 衛邑 不言城衛 衛未遷 [附注] 林曰 以魯辭書之 不以封衛 累齊桓公也 以爲天下之公義也 觀以美齊 以美衛 則春秋書楚以善辭 居然可知矣
2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초구楚丘에 성을 쌓았다.注+초구楚丘나라 이다. 을 쌓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아직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주]林: 나라가 을 쌓아 준 것으로 기록한 것은 나라를 해 준 일로 제환공齊桓公을 허물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천하天下공의公義로 여긴 것이다. 제환공齊桓公찬미讚美한 〈목과木瓜위문공衛文公을 찬미한 〈정중定中로 보면 《춘추春秋》에 “초구楚丘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은 좋은 뜻의 말임을 알 수 있다.
[經]夏五月辛巳 葬我小君哀姜하다注+無傳 反哭成喪 故稱小君
여름 5월 신사일에 우리 소군小君애강哀姜장사葬事 지냈다. 注+이 없다. 반곡反哭 등의 를 갖추어 을 치렀기 때문에 소군小君이라고 칭한 것이다. 정공定公 15년에 보인다.
[經]虞師晉師滅下陽하다注+下陽 虢邑 在河東大陽縣 晉於此始赴 見經
우사虞師진사晉師하양下陽하였다.注+하양下陽나라 으로 하동河東대양현大陽縣에 있다. 나라가 이때에 비로소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에 에 드러낸 것이다. 양공襄公 13년에 보인다.
[經]秋九月 齊侯宋公江人黃人盟于貫하다注+貫 宋地 梁國蒙縣西北有貰城 貰與貫 字相似 江國 在汝南安陽縣 [附注] 林曰 衣裳之會 不在
가을 9월에 제후齊侯송공宋公강인江人황인黃人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나라 땅이다. 나라 몽현蒙縣 서북에 세성貰城이 있는데, 은 글자가 서로 비슷하다. 나라는 여남汝南안양현安陽縣에 있다. [부주]林: 이것도 의상지회衣裳之會이지만 구합九合에는 들지 않는다.
[經]冬十月 不雨하다注+傳在三年
겨울 10월부터 비가 오지 않았다. 注+은 3년에 있다.
[經]楚人侵鄭하다
초인楚人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傳]二年春 하다注+君死國滅 故傳言封
2년 봄에 제후諸侯초구楚丘에 성을 쌓고서 나라를 그 곳에 하였다.注+임금이 죽고 나라가 멸망하였기 때문에 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不書所會 後也注+諸侯旣罷 而魯後至 諱不及期 故以獨城爲文
회합會合제후諸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노희공魯僖公이 뒤늦게 갔기 때문이다. 注+제후諸侯회합會合을 마친 뒤에 노희공魯僖公이 갔기 때문에 제때에 미쳐 가지 못한 것을 숨기려 하였다. 그러므로 나라가 단독으로 성을 쌓은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傳]晉荀息請以屈産之乘與垂棘之璧假道於虞以伐虢注+荀息 荀叔也 屈地生良馬 垂棘出美玉 故以爲名 四馬曰乘 自晉適虢 途出於虞 故借道한대 公曰
나라 순식荀息에서 생산生産되는 네 의 말과 수극垂棘에서 나는 나라에 주고서 길을 빌려 나라 치기를 하자,注+순식荀息순숙荀叔이다. 에서는 좋은 말이 생산生産되고, 수극垂棘에서는 아름다운 생산生産된다. 그러므로 의 말과 수극垂棘이라고 명칭을 한 것이다. 말 네 이라 한다. 나라에서 나라로 가려면 나라를 경유經由해야 하기 때문에 길을 빌리려 한 것이다.진헌공晉獻公이 말하였다.
是吾寶也
“이것은 나의 보물이니 줄 수 없다.”
對曰
순식荀息이 대답하였다.
若得道於虞 猶外府也니이다注+[附注] 林曰 府 庫也 言以璧馬與虞 終必滅虞而取之 猶寄之在外之府庫 必無所失
“만약 나라에게 길을 빌릴 수 있다면 이 물건을 밖의 창고에 잠시 보관하는 것과 같습니다.”注+[부주]林: 창고倉庫이다. 과 말을 나라에 준다 하더라도 종당에는 나라를 격멸擊滅하고서 도로 취할 수 있으니, 이는 마치 밖의 창고에 잠시 맡겨 두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잃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公曰
헌공獻公이 말하였다.
宮之奇存焉하니라注+宮之奇 虞忠臣
나라에는 궁지기宮之奇가 있으니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注+궁지기宮之奇나라의 충신忠臣이다.
對曰
순식荀息이 대답하였다.
宮之奇之爲人也 懦而不能强諫注+懦 弱也하고 且少長於君注+[附注] 林曰 宮之奇自少長養於公宮하야 君暱之하니 雖諫이나 將不聽하리이다注+親而狎之 必輕其言
궁지기宮之奇는 사람됨이 유약柔弱하여 강력히 하지 못할 것이고,注+는 나약함이다. 또 어려서부터 우군虞君과 함께 궁중宮中에서 자랐기 때문에注+[부주]林: 궁지기宮之奇가 어려서부터 공궁公宮에서 자랐다는 말이다.우군虞君이 그를 임의롭게 대하니, 비록 한다 하더라도 아마[將] 듣지 않을 것입니다.”注+우공虞公은 그를 임의롭게 대하니, 반드시 그의 말을 가벼이 여길 것이라는 말이다.
乃使荀息假道於虞曰
헌공獻公은 그의 건의建議를 받아들여 순식荀息나라로 보내어 길을 빌리게 하였다.
冀爲不道하야
순식荀息우인虞人에게 말하였다.
入自顚軨하야 伐鄍三門注+前是冀虞至鄍 鄍 虞邑 河東大陽縣東北有顚軨坂이러니 冀之旣病 則亦唯君故니이다注+言虞報伐冀使病 將欲假道 故稱虞彊以說其心 冀 國名 平陽皮氏縣東北有冀亭 [附注] 朱曰 使冀受病苦 以虞公能報伐故也
“과거에 나라가 무도無道하게 전령顚軨으로부터 쳐들어와서 명읍鄍邑의 세 성문城門을 공격한 일이 있었는데,注+이에 앞서 나라가 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명읍鄍邑까지 쳐들어왔다. 나라 이다. 하동河東대양현大陽縣 동북에 전령판顚軨坂이 있다.나라가 이미 쇠약衰弱[病]해진 것은 오직 임금님의 반격反擊 때문입니다.注+나라가 보복해 나라를 쳐서 손실損失을 입혔다는 말이다. 길을 빌리고자 하기 때문에 나라의 함을 칭찬하여 우공虞公의 마음을 기쁘게 한 것이다. 국명國名이다. 평양平陽피씨현皮氏縣 동북에 기정冀亭이 있다. [부주]朱: 나라가 손실損失을 입은 것은 우공虞公이 보복해서 쳤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今虢爲不道하야 保於逆旅注+逆旅 客舍也 虢稍遣人分依客舍 以聚衆抄晉邊邑하야 以侵敝邑之南鄙ᄅ새 敢請假道以請罪于虢注+問虢伐己以何罪하노이다
그런데 지금 나라가 무도無道하게 변방邊方역려逆旅보루堡壘를 쌓고서注+역려逆旅객사客舍이다. 나라가 사람을 보내어 객사客舍분산分散해 있으면서 무리를 모아 나라의 변방邊方을 노략질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남쪽 변방邊方침범侵犯하기 때문에 감히 귀국貴國에 길을 빌려서 나라의 를 묻고자 합니다.”注+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라가 우리나라를 치느냐고 묻겠다는 말이다.
虞公許之하고 且請先伐虢하다注+喜於厚賂 而求媚
우공虞公은 길을 허락하고, 또 자기가 먼저 나라를 치기를 청하였다.注+후한 뇌물에 마음이 기뻐서 나라에게 잘 보이고자 한 것이다.
宮之奇諫이나 不聽하고 遂起師하다
궁지기宮之奇하였으나 우공虞公은 듣지 않고서 드디어 군대를 일으켰다.
晉里克荀息帥師會虞師伐虢하야 滅下陽하다注+晉猶主兵 不信虞
여름에 나라 이극里克순식荀息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우사虞師연합聯合나라를 쳐서 하양下陽하였다.注+나라가 군대를 지휘指揮한 것은 나라를 믿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先書虞 賄故也注+虞非倡兵之首 而先書之 惡貪賄也
를 먼저 기록한 것은 나라가 나라의 뇌물을 탐하였기 때문이다.注+나라가 전쟁을 주창主唱주체主體가 아닌데도 나라를 먼저 기록한 것은 뇌물을 탐한 것을 미워해서이다.
[傳]秋 盟于貫하니 服江黃也注+江黃 楚與國也 始來服齊 故爲合諸侯
가을에 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나라‧나라가 나라에 복종하였기 때문이다.注+나라와 나라는 나라의 맹방盟邦이었는데, 이때 비로소 와서 나라에 복종하였기 때문이 제후諸侯회합會合한 것이다.
[傳]齊寺人貂始漏師于多魚하다注+寺人 內奄官豎貂也 多魚 地名 闕 齊桓多嬖寵 內則如夫人者六人 外則幸豎貂易牙之等 終以此亂國 傳言貂於此始擅貴寵 漏洩桓公軍事 爲齊亂張本
나라 시인寺人가 비로소 다어多魚에서 군사기밀軍事機密누설漏泄하였다.注+시인寺人내엄관內奄官(宦官) 수초竪貂이다. 다어多魚지명地名인데 소재지所在地를 알 수 없으므로 생략하고 기록하지 않았다. 제환공齊桓公은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 안으로는 부인夫人처럼 사랑하는 여인女人이 여섯이었고, 밖으로는 수초竪貂역아易牙 등을 총애寵愛하였는데, 끝내 이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의 말은 수초竪貂가 이때부터 비로소 존귀尊貴총애寵愛를 독차지하여 제환공齊桓公군사기밀軍事機密누설漏泄함으로써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장본張本이 되었다는 뜻이다.
虢公敗戎于桑田注+桑田 虢地 在弘農陝縣東北하니 晉卜偃曰
괵공虢公상전桑田에서 패배敗北시키니,注+상전桑田나라 땅으로 홍농弘農협현陜縣 동북에 있다.나라 복언卜偃이 말하였다.
虢必亡矣리라
나라는 반드시 할 것이다.
亡下陽不懼하고 而又有功하니 是天奪之鑒注+鑒 所以自照 [附注] 朱曰 鑒 鏡也 言天奪虢公之鑒 無以照見吉凶하야 而益其疾也注+
하양下陽을 잃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전쟁하여 을 세웠으니, 이는 하늘이 그의 거울을 빼앗아注+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부주]朱: 이니, 하늘이 괵공虢公의 거울을 빼앗아 길흉을 비추어 볼 수 없게 하였다는 말이다. 그의 죄악을 더하게 한 것이다.注+교만하면 죄악이 생긴다는 말이다.
必易晉而不撫其民矣리니 不可以五稔이리라注+稔 熟也 爲下五年 晉滅虢張本
그는 반드시 나라를 경시輕視하여 백성을 돌보지 않을 것이니,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注+은 익는 것이다. 아래 노희공魯僖公 5년에 나라가 나라를 격멸擊滅장본張本이다.
[傳]冬 楚人伐鄭하다
겨울에 초인楚人나라를 토벌하였다.
鬪章囚鄭聃伯하다注+經書侵 傳言伐 本以伐興 權行侵掠 爲後年楚伐鄭 鄭伯欲成張本
투장鬪章나라의 담백聃伯을 포로로 잡았다.注+에는 ‘’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에는 ‘’이라고 기록한 것은 가 본래는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으나, 형편에 따라 수단을 바꾸어 침략侵掠하였기 때문이다. 후년後年나라가 나라를 토벌하니 정백鄭伯화친和親하고자 한 장본張本이다.
역주
역주1 木瓜 : 狄人에게 敗亡하여 漕邑으로 나가 있는 衛나라를 齊桓公이 救援해 楚丘에 封해 주고, 車馬와 器服 등을 보내 주니, 衛人이 그 은혜를 생각하여 지은 詩로 《詩經》 〈衛風〉에 실려 있다.
역주2 定中 : 衛나라가 狄人에게 敗亡한 뒤에 齊桓公에 의해 楚丘에 封해지자, 衛文公이 비로소 楚丘에 城邑을 建設해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니, 衛人들이 기뻐하여 지은 詩로 《詩經》 〈鄘風〉에 실려 있다.
역주3 兵[丘] : 저본에는 ‘兵’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丘’로 바로잡았다.
역주4 例在定十五年 : 定公 15년 傳에 “小君이라고 칭하지 않은 것은 禮를 갖추어 장사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역주5 滅例在襄十三年 : 襄公 13년 傳에 “大軍을 일으켜 공격하는 것을 滅이라 한다.”고 하였다. 조선 朴致遠의 《雪溪隨錄》에 “下陽을 滅한 것만을 기록하고 虢나라를 멸한 것은 기록하지 않은 것은 ‘下陽은 虢나라의 國都이다.’고 한 公羊氏의 說이 옳은 듯하다. 下陽을 잃은 뒤에 虢나라는 衰微하여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고, 또 얼마 뒤에 망하였기 때문에 經에 虢나라를 滅하였다고 기록하지 않고 下陽을 滅하였다고 기록한 것이다.”고 하였고, 또 徐壽錫의 《潁水全書》에 “下陽은 虞나라와 虢나라에 있어 要塞의 邑이기 때문에 下陽이 滅亡하면 虞나라와 虢나라는 따라서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虞나라와 虢나라의 滅亡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6 九合之數 : 《史記》에는 齊桓公의 九合諸侯에 兵車之會가 세 번이고, 衣裳之會가 여섯 번이라고 하였는데, 林氏는 九合을 모두 衣裳之會로 보았다.
역주7 諸侯城楚丘而封衛焉 : 朴致遠의 《雪溪隨錄》에 “楚丘는 衛나라 邑인데 經에 魯나라가 성을 쌓았다고 하였으니, 魯人이 가서 성을 쌓은 것을 알 수 있고, 魯人이 가서 성을 쌓았다면 각 諸侯國의 사람들도 가서 성을 쌓은 것을 알 수 있으며, 諸侯가 衛나라 邑에 모여 성을 쌓았다면 衛나라를 위해 쌓은 것임을 알 수 있고, 衛나라를 위해 성을 쌓았다면 齊桓公이 主導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齊桓公을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天子의 命도 없이 임의로 衛나라를 봉해 준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역주8 代[伐] : 저본에는 ‘代’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伐’로 바로잡았다.
역주9 於[欲] : 저본에는 ‘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欲’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驕則生疾 : 疾은 罪惡의 뜻이다. 하늘이 虞公에게서 善惡을 判別할 수 있는 지혜[鑑]를 빼앗았기 때문에 虞公은 많은 罪惡을 저질러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말이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