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夏
에 公會齊侯伐萊
注+傳例曰 不與謀也 萊國 今東萊黃縣 하다
傳
[傳]七年春
에 衛孫桓子來盟
하니 始通
이오 且謀會晉也
注+公卽位 衛始修好 라
傳
凡師出
에 注+與謀者 謂同志之國 相與講議利害 計成而行之 故以相連及爲文 若不獲已 應命而出 則以外合爲文 皆據魯而言 師者 國之大事 存亡之所由 故詳其擧動 以例別之라
傳
[傳]赤狄侵晉
하야 取向陰之禾
注+此無秋字 蓋闕文 晉用桓子謀 故縱狄 [附注] 林曰 此時禾苗未熟 하다
傳
故相鄭伯以會
注+[附注] 林曰 宋 子公也 弑靈公 故謀從晉以求媚 하다
冬
에 盟于黑壤
할새 王叔桓公臨之
하야 以謀不睦
注+王叔桓公 周卿士 銜天子之命 以監臨諸侯 不同歃者 尊卑之別也 [附注] 林曰 以謀諸侯之不親睦於晉霸者하다
傳
晉侯之立也
注+在二年 에 公不朝焉
하고 又不使大夫聘
일새
盟于黃父
에 公不與盟
하고 以賂免
注+黃父卽黑壤하다
故黑壤之盟不書
하야 諱之也
注+慢盟主以取執止之辱 故諱之 라
7년 봄에 위후衛侯가 손량부孫良夫를 노魯나라로 보내어 와서 결맹結盟하였다.
여름에
선공宣公이
제후齊侯와
회합會合하여
내국萊國을
토벌討伐하였다.
注+전례傳例에 “회會는 모의謀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고 하였다. 내국萊國은 지금의 동래東萊황현黃縣이다.
가을에
선공宣公이
내국萊國토벌討伐에서 돌아왔다.
注+전傳이 없다.
크게 가뭄이 들었다.
注+전傳이 없다. 가뭄만 기록하고 우제雩祭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우제雩祭를 지냈으나 효험效驗이 없었거나, 혹은 우제雩祭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겨울에 선공宣公이 진후晉侯‧송공宋公‧위후衛侯‧정백鄭伯‧조백曹伯과 흑양黑壤에서 회합會合하였다.
傳
7년 봄에
위衛나라
손환자孫桓子가 와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이는 두 나라가 비로소
통호通好하고, 또
진晉나라와
회맹會盟할 것을
상의相議하기 위함이었다.
注+선공宣公이 즉위卽位한 뒤에 위衛나라가 비로소 노魯나라와 수호修好하였다.
傳
여름에 선공宣公이 제후齊侯와 회합會合하여 내국萊國을 토벌討伐하였으니, 모의謀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범례凡例에 의하면
출사出師를 기록함에 있어
모의謀議에 참여했으면 ‘
급及’으로 기록하고, 참여하지 않았으면 ‘
회會’로 기록한다.
注+여모與謀는 뜻을 같이하는 나라가 서로 이해利害를 강론講論하여 계획計劃을 완성完成한 뒤에 그 계획計劃을 행동行動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연급連及하는 것으로 글을 만들고, 만약 인국隣國의 명命에 따라 부득이 출병出兵한 경우는 외국外國이 와서 회합會合한 것으로 글을 만드니, 이는 모두 노魯나라 입장立場에서 말한 것이다. 전쟁戰爭은 국가國家의 대사大事로 존망存亡이 말미암는 바이기 때문에 그 거동擧動을 상세히 기록하여 여모與謀와 불여모不與謀의 예例로 구별區別한다.
傳
적적赤狄이
진晉나라를
침공侵攻하여
향음向陰의 벼를
탈취奪取하였다.
注+여기에 ‘추秋’字가 없는 것은 궐문闕文인 듯하다. 진晉나라는 환자桓子의 모책謀策(宣公 6년 전傳에 ‘사질기민이영기관使疾其民以盈其貫’이라고 한 말)을 따랐기 때문에 적狄을 놓아둔 것이다. [부주]林: 이때는 벼가 아직 익을 때가 아니니, 아마도 적狄이 군대를 거느리고 유린蹂躪하여 취取한 것인 듯하다.
傳
정鄭나라가 진晉나라와 화평和平하였으니, 이는 공자公子송宋의 모의謀議였다.
그러므로
공자公子송宋이
정백鄭伯의
상相이 되어
회맹會盟에
참가參加한 것이다.
注+[부주]林: 송宋은 자공子公이다. 정영공鄭靈公을 시해弑害하였기 때문에 진晉나라에 복종服從하여 잘 보이기를 구求한 것이다.
겨울에
흑양黑壤에서
결맹結盟할 때
왕숙王叔환공桓公이
감림監臨(감독관으로 옴)하여
진晉나라에
친목親睦하지 않는 나라들을
친목親睦하게 할
방도方道를
모의謀議하였다.
注+왕숙王叔환공桓公은 주周나라 경사卿士로 천자天子의 명命을 받고 와서 제후諸侯의 회맹會盟에 감림監臨한 것이다. 함께 삽혈歃血하지 않은 것은 존비尊卑의 차별差別이 있기 때문이다. [부주]林: 패자霸者인 진晉나라에 친목親睦하지 않는 제후諸侯들을 친목親睦하게 할 방도方道를 모의謀議한 것이다.
傳
진후晉侯가
즉위卽位할 때
注+선공宣公 2년에 있었다.선공宣公이 가서
조현朝見하지 않았고, 또
대부大夫를 보내어
빙문聘問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진인晉人이 회맹會盟하는 자리에서 선공宣公을 잡아 억류抑留하였다.
이로 인해
황보黃父(黑壤)의
결맹結盟에
선공宣公이 참여하지 못하고,
진晉나라에
뇌물賂物을 주고 풀려나 돌아왔다.
注+황보黃父는 바로 흑양黑壤이다.
그러므로
경經에
흑양黑壤의
결맹結盟을 기록하지 않아
선공宣公이
억류抑留된 사실을 숨겼다.
注+맹주盟主를 무시無視하였다가 잡혀 억류抑留되는 모욕侮辱을 취取하였기 때문에 이를 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