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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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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九年春王三月丁丑 宋公御說卒하다注+四同盟
[經]夏 公會宰周公齊侯宋子衛侯鄭伯許男曹伯于葵丘하다注+周公 宰孔也 宰 官 周 采地 天子三公不字 宋子 襄公也 傳例曰 在喪公侯曰子 陳留外黃縣東 有葵丘 [附注] 林曰 衣裳之會九
[經]秋七月乙酉 伯姬卒하다注+無傳 公羊穀梁曰 未適人 故不稱國 已許嫁 則以成人之禮書 不復殤也 婦人許嫁而笄 猶丈夫之冠
[經]九月戊辰 諸侯盟于葵丘하다注+夏會葵丘 次伯姬卒 文不相比 故重言諸侯 宰孔先歸 不與盟 [附注] 林曰 桓之會 有天子之事三 於洮序王人於諸侯之上而同盟焉 於葵丘亦序周公於諸侯之上而不敢同盟焉 盟于首止 不但不同盟也 而帥諸侯以會世子 桓知節矣 春秋是以予桓也
[經]甲子 晉侯佹諸卒하다注+未同盟而赴以名 甲子 九月十一日 戊辰 十五日也 書在盟後 從赴
[經]冬 晉里克奚齊하다注+獻公未葬 奚齊未成君 故稱君之子奚齊 受命繼位 無罪 故里克稱名
[傳]九年春 宋桓公卒하다
未葬而襄公會諸侯 故曰子
凡在喪 王曰小童이요 公侯曰子注+在喪 未葬也 小童者 童蒙幼末之稱 子者 繼父之辭 公侯位尊 上連王者 下絶伯子男 周康王在喪 稱予一人釗 禮稱亦不言小童 或所稱之辭 各有所施 此謂王自稱之辭 非諸下所得書 故經無其事 傳通取舊典之文 以事相接
[傳]夏 會于葵丘하야 尋盟하고 且修好하니 禮也
王使宰孔賜齊侯胙注+胙 祭肉 尊之比
天子有事于文武注+有祭事也ᄅ새 使孔賜伯舅胙하노라注+天子謂異姓諸侯曰伯舅
齊侯將下拜한대 孔曰
且有後命하니
天子使孔曰 以伯舅耋老 加勞일새 賜一級하노니 無下拜하라注+七十曰耋 級 等也 [附注] 朱曰 加問勞 且進一等 不令下階
對曰 天威不違顔咫尺注+言天鑒察不遠 威嚴常在顔面之前 八寸曰咫 [附注] 林曰 言君尊如天하니 小白余敢貪天子之命하야 無下拜잇가注+小白 齊侯名 余 身也
注+隕越 顚隊也 據天居上 故言恐顚隊于下하야 以遺天子羞 敢不下拜이릿가 下拜登受하다注+拜堂下 受胙於堂上
[傳]秋 齊侯盟諸侯于葵丘할새 曰 凡我同盟之人 旣盟之後 言歸于好라하다注+義取修好 故傳顯其盟辭
宰孔先歸注+旣會 先諸侯去라가 遇晉侯曰
可無會也注+晉侯欲來會葵丘
齊侯不務德而勤遠略이라
故北伐山戎注+在莊三十一年하고 南伐楚注+在四年하고 西爲此會也하니 東略之不知어니와 西則否矣注+言或向東 必不能復西略 [附注] 林曰 更能經略東方 則不可知 西會旣畢 必無心經理西方 縱晉國有亂 必不遑恤也
其在亂乎ㄴ저 君務靖亂이오 하라注+在 存也 微戒獻公 言晉將有亂 [附注] 朱曰 在 察也 欲使晉侯歸去 察其國之亂也 獻公殺嫡及庶 逐二公子 故宰孔以靖亂諷之
晉侯乃還하다注+不復會齊
[傳]九月 晉獻公卒하니 里克丕鄭欲納文公하다
故以三公子之徒作亂하다注+丕鄭 晉大夫 三公子 申生重耳夷吾
獻公使荀息傅奚齊하다
公疾 召之曰
以是藐諸孤注+言其幼賤 與諸子縣藐하니 其若之何注+欲屈辱荀息 使保護之
稽首而對曰
臣竭其股肱之力하고 加之以忠貞이어니와 其濟 君之靈也 不濟 則以死繼之하리이다
公曰 何謂忠貞 對曰
公家之利 知無不爲 忠也 送往事居 耦俱無猜 貞也니이다注+往 死者 居 生者 耦 兩也 送死事生 兩無疑恨 所謂正也 [附注] 林曰 送往 謂獻公 事居 謂奚齊
及里克將殺奚齊 先告荀息曰
三怨將作注+三公子之徒하고 秦晉輔之注+[附注] 朱曰 秦人輔之於外 晉人輔之於內하니 子將如何 荀息曰
將死之하리라
里克曰
無益也
荀叔曰
吾與先君言矣 不可以貳
能欲復言而愛身乎注+荀叔 荀息也 復言 言可復也
雖無益也 將焉辟之리오
且人之欲善 誰不如我리오注+[附注] 朱曰 謂里克意欲忠於申生 亦如我忠於奚齊也
我欲無貳而能謂人已乎注+言不能止里克 使不忠於申生等
冬十月 里克殺奚齊于次하다注+
書曰 殺其君之子라하니 未葬也注+[附注] 林曰 獻公未葬일새니라
荀息將死之한대 人曰 不如立卓子而輔之니라
荀息立公子卓以葬하다
里克殺公子卓于朝注+[附注] 林曰 旣葬 卓子臨朝 故里克又殺之于朝하니 荀息死之하다
君子曰
詩所謂白圭之玷 尙可磨也어니와 斯言之玷 不可爲也注+詩 大雅 言此言之缺 難治甚於白圭라하니 荀息有焉이로다注+有此詩人重言之義
[傳]齊侯以諸侯之師伐晉하야 及高梁而還하니 討晉亂也注+高梁 晉地 在平陽縣西南
令不及魯 故不書하다注+前已發不書例 今復重發 嫌霸者異於凡諸侯
[傳]晉郤芮使夷吾重賂秦以求入注+郤芮 郤克祖父 從夷吾者
人實有國하니 我何愛焉注+言國非己之有 何愛而不以賂秦이며
入而能民이면 土於何有리오
從之하다注+能得民 不患無土
齊隰朋帥師會秦師納晉惠公하다注+隰朋 齊大夫 惠公 夷吾
秦伯謂郤芮曰 公子誰恃注+[附注] 朱曰 問夷吾倚誰以爲重 對曰
臣聞亡人無黨하니 有黨必有讎리이다注+言夷吾無黨 無黨則無讎 易出易入 以微勸秦
夷吾弱不好弄注+弄 戱也하며 能鬪不過注+有節制하며 長亦不改 不識其他注+[附注] 朱曰 及其年長 亦如幼時 其他則吾不知也 此蓋言其可爲君也로이다
公謂公孫枝曰 夷吾其定乎注+公孫枝 秦大夫子桑也 對曰
臣聞之하니 唯則定國注+[附注] 朱曰 則 法也 唯有法者 可以定國이라하고
詩曰 不識不知하야 順帝之則이라하니 文王之謂也注+詩 大雅 帝 天也 則 法也 言文王 自然合天之法 又曰 不僭不賊이면 鮮不爲則注+僭 過差也 賊 傷害也 皆忌克也 能不然 則可爲人法則이라하니 無好無惡하야 不忌不克之謂也니이다注+[附注] 朱曰 此釋意 好 私好也 惡 私惡也 忌 猜疑也 克 好勝也 不識知則無好惡 不僭賊則不忌克
今其言多忌克注+旣僭而賊하니 難哉注+言能自定難 [附注] 朱曰 以此定國 民無則焉 故曰難哉ㄴ저
公曰
忌則多怨이니 又焉能克이리오
是吾利也注+其言雖多忌 適足以自害 不能勝人也 秦伯慮其還害己 故曰是吾利
[傳]宋襄公卽位하야 以公子目夷爲仁이라하야 使爲左師以聽政하니 宋治하다
故魚氏世爲左師하다注+[附注] 林曰 子魚之後 以王父字爲氏 故曰魚氏


9년 봄 주왕周王 3월 정축일丁丑日송공宋公어열御說하였다.注+네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여름에 희공僖公재주공宰周公제후齊侯송자宋子위후衛侯정백鄭伯허남許男조백曹伯규구葵丘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주공周公재공宰孔이다. 관명官名이고, 채지采地의 이름이다. 천자天子삼공三公를 칭하지 않고 이름을 칭한다. 송자宋子양공襄公이다. 전례傳例에 “상중喪中에 있는 공후公侯를 ‘’라 한다.”고 하였다. 진류陳留외황현外黃縣 동쪽에 규구葵丘가 있다. [부주]林: 이것이 아홉 번째 의상지회衣裳之會이다.
가을 7월 을유일乙酉日백희伯姬하였다.注+이 없다. 《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에는 모두 “출가出嫁하기 이전이므로 국명國名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혼인婚姻을 허락한 뒤에 죽으면 성인成人로 기록하고, 다시 상상殤喪으로 강등降等하지 않는다. 부인婦人혼인婚姻을 허락하면 계례笄禮를 거행하는 것이 남자가 관례冠禮를 거행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9월 무진戊辰제후諸侯규구葵丘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여름에 규구葵丘회합會合 뒤에 백희伯姬하였기 때문에 여름의 회합會合과 9월의 결맹結盟문사文辭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듭 제후諸侯를 기록한 것이다. 재공宰孔은 먼저 돌아가고 결맹結盟에 참여하지 않았다.[부주]林: 제환공齊桓公천자天子의 일로 회합會合한 것이 세 번 있었는데, 의 회합에서는 왕인王人제후諸侯의 위에 서열序列하고서 동맹同盟하였고, 규구葵丘의 회합에서는 주공周公제후諸侯의 위에 서열序列하고서 감히 동맹同盟하지 않았으며, 수지首止회맹會盟에서는 동맹同盟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후諸侯를 거느리고서 왕세자王世子회견會見하였으니, 제환공齊桓公예절禮節을 안 사람이다. 그러므로 《춘추春秋》에 환공桓公허여許與한 것이다.
갑자일甲子日진후晉侯궤제佹諸하였다.注+나라와 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갑자甲子는 9월 11일이고, 무진戊辰은 15일이니, 죽은 날이 먼저인데도 결맹結盟 뒤에 기록한 것은 결맹한 뒤에 부고赴告가 왔기 때문에 부고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겨울에 나라 이극里克이 그 임금의 아들 해제奚齊를 죽였다.注+헌공獻公장사葬事를 치르기 전이어서 해제奚齊가 아직 임금으로 즉위卽位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의 아들 해제奚齊’라고 기록한 것이다. 선군先君을 받아 군위君位계승繼承하였고 도 없었기 때문에 이극里克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9년 봄에 송환공宋桓公하였다.
장사를 치르기 전에 양공襄公제후諸侯회합會合하였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범례凡例에 의하면 상중喪中에 있을 때에 은 ‘소동小童’이라고 칭하고, 공후公侯는 ‘’라고 칭한다.注+상중喪中에 있는 것은 장사를 치르기 전을 말한다. 소동小童매사每事에 어두운 어린의 칭호稱號이고, 는 아버지를 승계承繼하는 말이다. 공후公侯지위地位존귀尊貴하기 때문에 위로 왕자王者에 이어 ‘’라는 칭호稱號를 쓸 수 있지만 아래로 은 ‘’의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 주강왕周康王상중喪中에 있을 때에 ‘여일인予一人’라고 칭하였고, 에도 ‘소동小童’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혹 호칭呼稱하는 말은 일에 따라 각각 쓰는 곳이 다른 듯하다. 이것은 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어서 아랫사람이 사책史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호칭呼稱에 대한 일이 없다. 전문傳文구전舊典의 글을 모두 취하여 유사類似한 일을 서로 붙여 놓은 것이다.
여름에 규구葵丘회합會合하여 지난 맹약盟約을 다시 다지고 또 수호修好증진增進하였으니 에 맞았다.
주양왕周襄王재공宰孔을 보내어 제후齊侯에게 조육胙肉하사下賜하며 말하였다.注+제육祭肉이다. 제환공齊桓公이왕二王의 후손과 같이 높인 것이다.
천자天子문왕文王무왕武王께 제사를 지냈기에注+제사가 있었다는 말이다.재공宰孔을 보내어 백구伯舅에게 조육胙肉을 내리노라.”注+천자天子이성제후異性諸侯를 ‘백구伯舅’라고 칭한다.
제후齊侯가 뜰 아래로 내려가 배사拜謝하려 하자, 재공宰孔이 말하였다.
“또 다음 명이 계셨소.
천자天子께서 나에게 ‘백구伯舅는 나이가 높은 데다가 있으므로 한 등급等級을 올려 주노니, 내려가서 배사拜謝하지 말게 하라.’고 하셨소.”注+70세를 ‘’이라 한다. 이다. [부주]朱: 위문慰問위로慰勞를 더하고 또 한 등급을 올려 주어 뜰로 내려가지 않게 한 것이다.
제후齊侯가 대답하기를 “면전面前에서 지척咫尺도 떨어져 있지 않으니,注+하늘의 감시監視가 멀지 않고, 위엄威嚴이 항상 면전面前에 있다는 말이다. 8을 ‘’라 한다. [부주]林: 임금의 존귀尊貴함이 하늘과 같다는 말이다.소백小白 제가 감히 천자天子을 탐하여 내려가 배사하지 않겠소?注+소백小白제후齊侯의 이름이다. 자신自身이다.
아래로 운월隕越시켜注+운월隕越전추顚隊이다. 천왕天王상위上位에 있는 것에 의거해 말했기 때문에 아래로 전대顚隊될까 두렵다고 한 것이다.천자天子수욕羞辱을 끼칠까 두려우니, 감히 내려가 절하지 않을 수 있겠소.”라 하고서 뜰로 내려가 절한 뒤에 올라와서 조육胙肉을 받았다.注+당하堂下에서 절하고 당상堂上으로 올라와 조육胙肉을 받은 것이다.
가을에 제후齊侯제후諸侯규구葵丘결맹結盟할 때 “동맹同盟한 우리들은 맹약盟約한 뒤로는 우호友好로 돌아가자.”고 하였다.注+수호修好의 의리를 취하였기 때문에 에 그 맹사盟辭를 드러낸 것이다.
재공宰孔이 먼저 돌아가다注+회합會合을 마치고는 제후諸侯에 앞서 돌아간 것이다.진후晉侯를 만나 말하였다.
회합會合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注+진후晉侯규구葵丘회맹會盟에 가려 하였기 때문이다.
제후齊侯을 닦는 데는 힘쓰지 않고 원정遠征만을 힘쓰오.
그러므로 북으로 산융山戎을 치고注+장공莊公 31년에 있었다. 남쪽으로 나라를 치고,注+희공僖公 4년에 있었다. 서쪽으로 와서 이 회합會合을 여는 것이니, 동쪽의 제후諸侯공략攻略할지는 모르겠으나 서쪽으로 나라를 공략攻略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注+혹 동쪽을 향해 공략攻略할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다시 서쪽을 공략攻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부주]林: 다시 동방東方경략經略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서쪽에서의 회맹會盟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서방西方경리經理하는 데는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니, 나라에 난리가 일어난다 하여도 반드시 구원救援할 겨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에는 앞으로 , 임금께서는 난리를 평정하는 데 힘쓰고 회합會合에 가느라 수고할 것 없소.”注+이니, 은미하게 헌공獻公을 경계하여 나라에 장차 난리가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부주]朱: 이니, 진후晉侯에게 돌아가서 나라의 난리를 살피게 하고자 한 것이다. 헌공獻公적자嫡子를 죽이고서 서자庶子태자太子로 세우고, 두 공자公子를 축출하였기 때문에 재공宰孔이 난리를 평정하라는 말로 넌지시 깨우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진후晉侯는 되돌아갔다.注+다시 제후齊侯회맹會盟하지 않은 것이다.
9월에 진헌공晉獻公하자, 이극里克비정丕鄭문공文公을 받아들여 임금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세 공자公子의 무리를 거느리고서 난리를 일으켰다.注+비정丕鄭나라 대부大夫이다. 삼공자三公子신생申生중이重耳이오夷吾이다.
당초當初헌공獻公순식荀息해제奚齊사부師傅로 삼았다.
헌공獻公이 병이 중해지자 순식荀息을 불러 말하였다.
注+해제奚齊유약幼弱하고 비천卑賤하여 다른 아들들에 비해 매우 어리다는 말이다. 삼가 대부大夫에게 맡기니 대부大夫는 장차 어떻게 보좌輔佐하겠는가?”注+순식荀息에게 굴욕屈辱을 참아가며 해제奚齊보호保護하게 한 것이다.
순식荀息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신은 전신全身의 힘을 다하고 거기에다가 충정忠貞을 더하겠습니다만 일이 성공되는 것은 하늘에 계시는 영령英靈의 도움이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뒤따라 죽겠습니다.”
헌공獻公이 “무엇을 충정忠貞이라 하는가?” 하니, 순식荀息이 대답하였다.
공가公家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알고는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이고, 죽은 임금을 장송葬送하고 산 임금을 섬기는 두 일에 모두 여한餘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입니다.”注+사자死者이고 생자生者이다. 양처兩處이다. 죽은 임금을 장송葬送하고 산 임금을 섬기는 두 일에 모두 여한餘恨이 없게 하는 것이 이른바 ‘’이다. [부주]林: 송왕送往헌공獻公을 말하고, 사거事居해제奚齊를 말한다.
이극里克해제奚齊를 죽이려 할 때에 미쳐 먼저 순식荀息에게 하였다.
원한怨恨을 품은 세 공자公子의 무리가 난리를 일으키려 하고注+공자公子의 무리이다.나라와 나라가 저들을 도우려 하니,注+[부주]朱: 진인秦人은 밖에서 돕고, 진인晉人은 안에서 돕는다는 말이다. 그대는 장차 어찌할 생각이시오” 순식荀息이 대답하였다.
“나는 장차 그를 위해 죽을 것이오.”
이극里克이 말하였다.
“죽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소.”
순숙荀叔이 말하였다.
“나는 선군先君과 약속하였으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소.
그 약속을 실천하고자 하면서 어찌 신명身命을 아낄 수 있겠소.注+순숙荀叔순식荀息이다. 복언復言은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비록 도움이 없다 하더라도 어찌 죽음을 피하겠소.
또 사람들이 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누가 나만 못하겠소.注+[부주]朱: 이극里克신생申生에게 충성忠誠하고자 하는 뜻도 내가 해제奚齊에게 충성忠誠하는 뜻과 같다는 말이다.
나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자 하면서 남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겠소.”注+이극里克신생申生 등에게 충성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겨울 10월에 이극里克상차喪次에서 해제奚齊를 죽였다.注+상침喪寢이다.
에 “그 임금의 아들을 죽였다.”고 기록한 것은 아직 장전葬前이기 때문이다.注+[부주]林: 아직 헌공獻公장전葬前이란 말이다.
순식荀息이 그를 위해 죽으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공자公子을 세우고서 그를 보좌輔佐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순식荀息공자公子을 임금으로 세우고서 헌공獻公을 장사 지냈다.
11월에 이극里克조정朝廷에서 공자公子을 죽이니注+[부주]林: 장사를 지낸 뒤에 탁자卓子가 조정에서 정사를 처리하였기 때문에 이극里克이 또 조정朝廷에서 그를 죽인 것이다.순식荀息도 그를 위해 죽었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평론評論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른바 ‘흰 의 티는 오히려 갈아 없앨 수 있지만 이 말의 티는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억편抑篇〉이다. 이 말의 티는 흰 옥의 티보다 다스리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다.순식荀息이 이와 같은 점이 있다.”注+시인詩人처럼 말을 중하게 여긴 뜻이 있다는 말이다.
제후齊侯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고량高梁까지 갔다가 돌아왔으니, 이는 나라의 난리를 토평討平하기 위함이었다.注+고량高梁나라 땅으로 평양현平陽縣 서남쪽에 있다.
나라 토벌을 위해 출군出軍하라는 나라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注+전에 이미 에 기록하지 않는 를 말하였는데, 지금 다시 를 거듭 말한 것은 패자霸者는 여러 제후諸侯를 달리한다고 오해誤解할까 해서이다.
나라 극예郤芮이오夷吾에게 나라에 중한 뇌물을 주고서 귀국歸國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게 하며注+극예郤芮극극郤克조부祖父이오夷吾를 따른 자이다. 말하였다.
“지금 다른 사람이 실로 나라를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습니까.注+나라가 나의 차지가 되지 않았으니, 무엇을 아껴 나라에 뇌물을 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만약 나라로 들어가서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면 국토國土를 얻는 것이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오夷吾는 그의 말을 따랐다.注+민심民心을 얻는다면 국토國土가 없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나라 습붕隰朋이 군대를 거느리고 진군秦軍연합聯合하여 진혜공晉惠公나라로 들여보내기로 하였다.注+습붕隰朋나라 대부大夫이고, 혜공惠公이오夷吾이다.
진백秦伯극예郤芮에게 “공자公子는 누구를 믿는가?”注+[부주]朱: 이오夷吾는 누구를 중요하게 여겨 의지하느냐고 물은 것이다.라고 묻자, 극예郤芮가 대답하였다.
이 듣기로는 망인亡人이 없으니 이 있으면 반드시 원수가 있을 것입니다.注+이오夷吾이 없고, 이 없으면 원수가 없기 때문에 전에 나오기도 쉬웠고 이번에 들어가기도 쉽다는 말로 은근히 진목공秦穆公을 권한 것이다.
이오夷吾는 어릴 때에도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고注+은 장난이다. 싸움을 잘했지만 지나치지 않았으며,注+절제節制가 있었다는 말이다.장성長成한 뒤에도 그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는 것만 알 뿐, 그 밖의 것은 모릅니다.”注+[부주]朱: 그가 성장成長하기에 미쳐서도 어릴 때와 같았고, 그 밖의 일은 나도 모르겠다는 말인데, 이는 이오夷吾가 임금이 될 만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목공穆公공손지公孫枝에게 “이오夷吾나라를 안정安定시킬 수 있겠느냐?”고 묻자,注+공손지公孫枝나라 대부大夫자상子桑이다. 공손지公孫枝가 대답하였다.
이 듣건대 오직 법칙法則만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注+[부주]朱: 이다. 오직 법칙法則이 있는 자만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에 ‘사사로운 지식知識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법칙法則만을 따른다.’고 하였으니, 이는 문왕文王을 말한 것이고,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황의편皇矣篇〉이다. 이고, 이다. 이는 문왕文王암행闇行이 자연스럽게 하늘의 법칙法則에 부합했다는 말이다.에 ‘남을 해치지[賊] 않으면 본보기가 되지 않는 것이 드물다.’고 하였으니,注+은 분수를 넘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고, 은 남을 상해傷害하는 것이니, 모두 시기하고 이기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사사로이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미워하는 사람도 없으며 의심을 품지도 않고 이기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注+[부주]朱: 이것은 윗 글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는 사사로이 좋아함이고, 는 사사로이 미워함이고, 회의懷疑이고, 은 이기를 좋아함이다. 사사로운 지식을 쓰지 않으면 사사로이 좋아하고 미워함이 없고, 남을 불신不信하거나 해치지 않으면 의심하거나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오夷吾의 말에는 의심과 이기려는 뜻이 많으니,注+이미 남을 의심하고 해치려는 뜻이 많다는 말이다. 나라를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입니다.”注+스스로 나라를 안정시키기 어렵다는 말이다. [부주]朱: 이런 부덕不德을 가지고 나라를 안정시키려 한다면 백성들이 본받을 점이 없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목공穆公이 말하였다.
“남을 의심하면 원수가 많이 생기는 것인데 또 어찌 이길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유리有利하다.”注+그의 말에 비록 의심이 많으나, 이는 단지 자신만을 해칠 뿐 남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진백秦伯이오夷吾가 도리어 자신을 해칠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유리有利하다.’고 한 것이다.
송양공宋襄公즉위卽位하여 공자公子목이目夷인자仁慈하다고 여겨 좌사左師로 삼아 국정國政을 담당하게 하니 이로 인해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그러므로 어씨魚氏가 대대로 나라의 좌사左師가 되었다.注+자어子魚후예後裔가 할아버지의 로 삼았기 때문에 ‘어씨魚氏’라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殺其君之子 : 朴致遠은 “經에 ‘그 임금의 아들을 殺害하였다.’고 기록한 것은 里克에게 罪를 돌린 것이다. 아직 卽位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弑害로 기록하지 않고 殺害로 기록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 二王 : 二王은 夏나라와 殷나라의 後孫으로 杞나라와 宋나라이다.
역주3 恐隕越于下 : 隕越은 墜落의 뜻이다. 小白이 만약 天子의 명을 기꺼이 받아들여 뜰로 내려가 절하지 않는다면 天子의 權威를 아래로 墜落시키게 된다는 말이다.
역주4 主[王] : 저본에는 ‘主’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功勞까지 : 加勞의 勞에 대해 杜注에는 해석이 없고, 朱氏는 慰勞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功勞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6 天子의 威嚴이 : 杜氏는 天威를 하늘의 監視로 해석하였으나, 이렇게 해석하면 下文의 ‘以遺天子羞’와 맞지 않기 때문에 《左氏會箋》에 따라 天子의 威嚴으로 번역하였다. 天子의 명을 가지고 온 宰孔이 앞에 있기 때문에 天子의 위엄이 咫尺의 거리에 있다고 한 것이다.
역주7 宰孔先歸 遇晉侯曰……君務靖亂 無勤於行 : 朴致遠은 “宰孔의 말은 옳지 않다. 齊侯가 북쪽으로 山戎을, 남쪽으로 楚나라를 토벌하고서 서쪽으로 와서 이 회합을 연 것은 中華를 높이고 夷狄을 물리친 일이었으므로 聖人(孔子)께서도 許與하신 바이다. 晉나라가 會盟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이미 잘못인데, 宰孔은 도리어 회맹에 가지 못하게 권하였으니 충성스럽지 못하였다. 신하가 이러하였으니 王室이 떨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역주8 난리가 있을 것이니 : 杜注처럼 在를 存으로 보면 난리를 막는 데 마음을 두라는 뜻이 되고, 朱註처럼 在를 察로 보면 난리의 기미를 살피라는 뜻이 된다. 譯者는 이 두 설을 따르지 않고 在를 有로 보아 晉나라에는 난리가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9 辱在大夫 : 杜注에 辱을 屈辱으로 해석한 것은 옳지 않다. 辱은 자신에 대한 謙辭와 상대에 대한 敬辭로 쓰이니, 여기서도 상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보는 것이 옳으므로 ‘삼가’로 번역하였다. 《左氏會箋》에 의하면 在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存問의 뜻으로 隱公 11년의 辱在寡人(고맙게도 寡人을 慰問하기 위해 왔다)이 그것이고, 하나는 委任의 뜻으로 이 傳의 辱在大夫(삼가 대부에게 맡긴다)가 그것이다. 獻公도 후일에 晉나라가 안정되지 못할 것을 안 것이다.
역주10 이 어린 孤兒를 : 杜氏는 藐를 遠으로 訓詁하고, 諸를 諸子로 訓詁하여 奚齊의 幼弱함이 여러 아들에 비해 멀리 동떨어진 孤兒라는 뜻으로 註釋하였으나, 이는 옳지 않다. 藐은 小이고, 諸는 之이니 어린 孤兒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역주11 喪寢 : 喪主가 居處하는 廬幕이다.
역주12 二[一]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一’로 바로잡았다.
역주13 闇行 : 闇行은 夜間의 行動인데, 자기 혼자 있을 때의 行爲를 이름이다.
역주14 請[上] : 저본에는 ‘請’으로 되어 있으나 《左傳句解》에 의거하여 ‘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5 不信하지 않고 : 下文의 不忌(의심을 품지 않는 것)는 不僭을 풀이한 말이고 不克은 不賊을 풀이한 말이고 보면 杜注처럼 僭을 過差로 해석하면 不忌와 맞지 않으므로 杜注를 따르지 않고 僭을 不信으로 번역하였다. 《詩經》 〈小雅巧言篇〉의 ‘亂之初生僭始旣涵’의 僭과 〈大雅抑篇〉의 ‘其維愚人覆謂我僭’의 僭을 朱註에 모두 不信으로 해석하였고, 《左傳》 昭公 8년의 ‘君子之言信而有徵小人之言僭而無徵’의 僭도 信의 반대말로 쓰였다.
역주16 於是 : ‘이로 인해서(因此)’라는 말과 같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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