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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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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有七年春王二月庚午 邾子牼卒注+無傳 宣公也 四同盟 하다
17년 봄 주왕周王 2월 경오일庚午日주자邾子하였다.注+이 없다. 주자邾子주선공邾宣公이다. 나라와 네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經]宋人伐陳하다
송인宋人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經]夏 衛石買帥師伐曹注+買 石稷子 하다
여름에 나라 석매石買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석직石稷의 아들이다.
[經]秋 齊侯伐我北鄙하야 圍桃하고 高厚帥師伐我北鄙하야 圍防注+弁縣東南有桃虛 [附注] 林曰 伐我 大夫將 書大夫始此 自隱以來 齊伐我皆書人 君將書君 自文十五年始 大夫將書大夫 自高厚始 하다
가을에 제후齊侯는 우리나라의 북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여 도읍桃邑포위包圍하고, 고후高厚는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나라의 북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여 방읍防邑포위包圍하였다.注+변현弁縣 동남쪽에 도허桃虛가 있다. [부주]林: 우리나라를 침벌侵伐할 때 대부大夫가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온 경우, 대부大夫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은공隱公 이래로 나라가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것을 기록할 때 모두 ‘’으로 기록하였다. 임금이 직접 군대를 거느렸을 경우, 임금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문공文公 15년부터 비롯하고, 대부大夫가 군대를 거느렸을 경우 대부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고후高厚로부터 비롯하였다.
[經]九月 大雩注+無傳 書過 하다
9월에 우제雩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시기時期가 지난 뒤에 지냈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經]宋華臣出奔陳注+暴亂宗室 懼而出奔 實以冬出 書秋者 以始作亂時來告 하다
나라 화신華臣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종실宗室잔포殘暴한 짓을 하고 〈나라의 정령政令를〉 어지럽혔으므로 두려워서 출분出奔한 것이다. 사실은 겨울에 출분出奔하였는데 가을에 출분出奔한 것으로 기록한 것은 처음 을 일으켰을 때에 와서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이다.
[經]冬 邾人伐我南鄙하다
겨울에 주인邾人이 우리나라의 남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였다.
[傳]十七年春 宋莊朝伐陳하야 獲司徒卬하니 卑宋也注+司徒卬 陳大夫 卑宋 不設備 [附注] 林曰 莊朝 宋微者 生死皆曰獲
17년 봄에 나라 장조莊朝나라를 토벌하여 사도司徒을 사로잡았으니, 나라가 나라를 얕보았기 때문이다.注+사도司徒나라 대부大夫이다. 나라를 얕보아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장조莊朝나라의 미천微賤한 자이다. 생포生捕하거나 살해殺害하는 것을 모두 ‘’이라 한다.
[傳]衛孫蒯田于曹隧注+越竟而獵 孫蒯 林父之子 할새 飮馬于重丘注+重丘 曹邑 라가 毁其甁한대 重丘人閉門而訽之注+訽 罵也 [附注] 林曰 但於飮馬 義類似不相干 未知是否 曰 親逐而君하니 爾父爲厲注+厲 惡鬼 林父逐君 在十四年 [附注] 林曰 而 汝也 言孫蒯之父親逐汝君 어늘 是之不憂하고 而何以田爲
나라 손괴孫蒯국경國境을 넘어 조수曹隧에서 사냥할 때注+국경國境을 넘어가 사냥한 것이다. 손괴孫蒯손임보孫林父의 아들이다. 중구重丘에서 말에 물을 먹이다가注+중구重丘나라 이다. 물 항아리를 깨트리자, 중구인重丘人이 문을 닫고 꾸짖기를注+는 꾸짖는 것이다. [부주]林: 혹 음기飮器로 삼기는 하지만 사리事理로 미루어 보면 말에 물을 먹이는 그릇과는 관계가 없는 듯하니, 가부可否를 모르겠다. “네 아비가 친히 임금을 축출逐出하였으니 네 아비는 여귀厲鬼가 되었을 것인데,注+악귀惡鬼이다. 손임보孫林父가 임금을 축출逐出한 일은 양공襄公 14년에 있었다. [부주]林: (너)이다. 손괴孫蒯의 아비가 히 너의 임금을 축출逐出했다는 말이다. 너는 그것은 근심하지 않고 어째서 사냥을 다니느냐?”고 하였다.
衛石買孫蒯伐曹하야 取重丘注+孫蒯不書 非卿 [附注] 林曰 孫蒯不忍其詬 故伐曹攻重丘而取之 以報私忿 하니 曹人愬于晉注+爲明年晉人石買傳 하다
여름에 나라 석매石買손괴孫蒯나라를 쳐서 중구重丘하니,注+손괴孫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기 때문에다. [부주]林: 손괴孫蒯중구인重丘人후욕詬辱(꾸짖으며 욕설辱說함)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중구重丘공격攻擊(占領)하여 사사로운 분원忿怨보복報復한 것이다. 조인曹人나라에 고소告訴하였다.注+명년明年진인晉人석매石買를 잡은 의 배경이다.
[傳]齊人以其未得志于我故注+前年圍郕 辟孟孺子 齊侯伐我北鄙하야 圍桃하고 高厚圍臧紇于防注+防 臧紇邑 하다
제인齊人이 지난번에 우리를 침공侵攻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注+전년前年성읍郕邑포위包圍하였을 때 맹유자孟孺子를 피해 돌아갔었다. 가을에 제후齊侯는 우리나라의 북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여 도읍桃邑를 포위하고 고후高厚방읍防邑에서 장흘臧紇포위包圍하였다.注+장흘臧紇채읍采邑이다.
師自陽關逆臧孫하야 至于旅松注+陽關 在泰山鉅平縣東 旅松 近防地也 魯師畏齊 不敢至防 하니 郰叔紇臧疇臧賈帥甲三百하고 宵犯齊師하야 送之而復注+郰叔紇 叔梁紇 臧疇臧賈 臧紇之昆弟也 三子與臧紇共在防 故夜送臧紇於旅松 而復還守防하니 齊師去之注+失臧紇故 하다
우리 군대가 양관陽關에서 출발出發장흘臧紇영접迎接하기 위해 여송旅松에 이르니,注+양관陽關태산泰山거평현鉅平縣 동쪽에 있고, 여송旅松방읍防邑 가까이 있는 땅이다. 노군魯軍제군齊軍이 두려워 감히 방읍防邑까지 가지 못한 것이다. 추숙흘郰叔紇장주臧疇장고臧賈갑사甲士삼백三百을 거느리고 밤에 〈포위를 뚫고 나와〉 제군齊軍습격襲擊하여 장흘臧紇여송旅松으로 보내고는 다시 방읍防邑으로 돌아가니,注+추숙흘郰叔紇숙량흘叔梁紇이고, 장주臧疇장고臧賈장흘臧紇형제兄弟이다. 세 사람은 장흘臧紇과 함께 방읍防邑에 있었기 때문에 밤에 장흘臧紇여송旅松으로 보내고 다시 돌아가 방읍防邑을 지킨 것이다. 제군齊軍나라를 떠났다.注+장흘臧紇을 놓쳤기 때문에 떠나간 것이다.
齊人獲臧堅注+堅 臧紇之族 하니 齊侯使夙沙衛唁之하고 且曰 無死注+使無自殺 하라 堅稽首曰 拜命之辱하노이다
제인齊人장견臧堅을 사로잡으니,注+장견臧堅장흘臧紇족속族屬이다. 제후齊侯숙사위夙沙衛를 보내어 위문慰問하고 또 ‘죽지 말라’注+자살自殺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고 하자, 장견臧堅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임금님의 에 감사합니다.
호되 姑又使其刑臣禮於士라하고 以杙抉其傷而死注+言使賤人來唁己 是惠賜不終也 夙沙衛 奄人 故謂之刑臣 [附注] 林曰 杙 小木也 椽屬 臧堅義不受辱 乃以杙自抉其所傷而死 하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죽지 말라는 명을 내리시되 일부러 환관宦官을 보내어 사인士人에게 위문慰問하게 하셨으니, 〈이는 모욕侮辱입니다.〉”라고 하고서 나무 꼬챙이로 상처를 쑤셔 죽었다.注+천인賤人을 보내어 와서 나를 위로하게 하였으니, 이는 은혜를 끝까지 베풀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다. 숙사위夙沙衛엄인奄人(宦官)이기 때문에 그를 ‘형신刑臣’이라고 한 것이다. [부주]林: 은 작은 나무로 서까래 따위이다. 장견臧堅은 의리로 보아 모욕侮辱을 받을 수 없다 하여 작은 나무로 그 상처를 쑤셔 죽은 것이다.
[傳]冬 邾人伐我南鄙하니 爲齊故也注+齊未得志於魯 故邾助之
겨울에 주인邾人이 우리나라의 남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였으니, 이는 나라 때문이었다.注+나라가 나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나라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를 친 것이다.
[傳]宋華閱卒하니 華臣弱皐比之室注+臣 閱之弟 皐比 閱之子 弱 侵易之 하야 使賊殺其宰華吳한대 賊六人以鈹殺諸盧門之後注+盧門 宋城門 合 向戌邑 後 屋後 [附注] 林曰 鈹刀 劒屬 合左師 向戌也 하다
나라 화열華閱이 죽으니 화신華臣고비皐比의 집을 하게 보아,注+화신華臣화열華閱의 아우이고, 고비皐比화열華閱의 아들이다. 경시輕視침해侵害한 것이다. 을 시켜 그 가재家宰화오華吳를 죽이게 하자, 6으로 화오華吳노문盧門합좌사合左師(向戌)의 집 뒤에서 죽였다.注+노문盧門나라 성문城門이다. 상술向戌이고, 상술向戌의 집 뒤이다. [부주]林: 피도鈹刀 따위이다. 합좌사合左師상술向戌이다.
左師懼曰 老夫無罪 賊曰 皐比私有討於吳라하고 遂幽其妻注+幽吳妻也 曰 畀余而大璧注+畀 與也 [附注] 林曰 而 汝也 하라
좌사左師가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나는 가 없다.”고 하니, 이 말하기를 “고비皐比사적私的으로 화오華吳를 죽인 것입니다.” 하고서 드디어 화오華吳의 아내를 유폐幽閉하고서注+화오華吳의 아내를 유폐幽閉한 것이다. 말하기를 “너의 큰 벽옥璧玉을 나에게 주라.”注+(줌)이다. [부주]林: (너)이다. 고 하였다.
宋公聞之하고 曰 臣也 不唯其宗室是暴 大亂宋國之政이니 必逐之注+[附注] 林曰 華臣與華閱爲兄弟 故言不唯侵暴其宗室 使賊私殺華吳 是大亂宋國之政刑하리라 左師曰 臣也 亦卿也
송공宋公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화신華臣은 제 종실宗室에게 잔포殘暴한 짓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령政令을 크게 어지럽혔으니 반드시 축출逐出할 것이다.”注+[부주]林: 화신華臣화열華閱형제兄弟였기 때문에 그 종실宗室잔포殘暴하게 침해侵害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을 시켜 사사로이 화오華吳를 죽였으니, 이것이 나라의 정형政刑을 크게 어지럽힌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자, 좌사左師가 말하기를 “화신華臣입니다.
大臣不順 國之恥也 不如蓋之注+[附注] 林曰 不如蓋掩其罪勿問 라한대 乃舍之하다
대신大臣이 서로 불화不和하는 것은 국가國家수치羞恥이니 덮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注+[부주]林: 그 를 덮어 두고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다. 고 하니, 송공宋公은 곧 그를 그냥 두었다.
左師爲己短策하야 苟過華臣之門이면 必騁注+惡之 [附注] 林曰 策 馬捶也 向戌悔其初謀之失 乃自爲短馬捶助御鞭馬 惡華臣 不欲與相見 故過其門 必馳聘而去 하다
좌사左師는 자신을 위해 짧은 채찍을 만들어서 화신華臣의 문 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말에 채찍질을 하여 빨리 달렸다.注+화신華臣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부주]林: 은 말채찍이다. 상술向戌이 당초에 잘못 생각했던 것을 후회後悔하여 스스로 짧은 말채찍을 만들어 어자御者를 도와 말에 채찍질을 한 것이다. 화신華臣을 미워해 서로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 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말을 급히 달려 지나간 것이다.
十一月甲午 國人瘈狗注+[附注] 林曰 瘈狗 狂狗也 러니 瘈狗入於華臣氏어늘
11월 갑오일甲午日국인國人이 미친개를 쫓으니注+[부주]林: 계구瘈狗는 미친개이다. 그 개가 화신華臣의 집으로 들어갔다.
國人從之한대 華臣懼하야 遂奔陳注+華臣 心不自安 見逐狗而驚走 하다
사람들이 그 개를 따라 들어가자 화신華臣은 겁을 먹고 드디어 나라로 도망갔다.注+화신華臣은 스스로 마음이 불안不安하여 미친개를 쫓는 것을 보고서 놀라서 도망간 것이다.
[傳]宋皇國父爲大宰하야 爲平公築臺하니 妨於農收注+周十一月 今九月 收斂時
나라 황국보皇國父태재太宰가 되어 평공平公을 위해 축조築造하니 농사農事수확收穫방해妨害가 되었다.注+주정周正의 11월은 지금의 9월로 수확기收穫期이다.
子罕請俟農功之畢한대 公弗許하다
자한子罕농사農事가 끝나기를 기다려 축조築造하기를 하니 평공平公허락許諾하지 않았다.
築者謳曰 澤門之晳 實興我役注+澤門 宋東城南門也 皇國父白晳而居近澤門 하고 邑中之黔 實慰我心注+子罕黑色而居邑中 이로다
축조築造하는 역부役夫들이 노래하기를 “택문澤門에 사는 피부가 흰 이는 우리를 부역에 징발徵發하고,注+택문澤門나라 동성東城남문南門이다. 황국보皇國父는 얼굴이 희고 택문澤門근처近處에 살았다. 읍내邑內에 사는 피부가 검은 이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네.”注+자한子罕은 얼굴이 검고 읍내邑內에 살았다. 라고 하였다.
子罕聞之하고 親執扑注+扑 杖 하야 以行築者하며 而抶其不勉者注+[附注] 朱曰 以巡行於築臺者之所 見有不勉力者 以杖擊之
자한子罕은 이 노래를 듣고 몸소 채찍을 들고서注+은 막대이다. 축조築造하는 역부役夫 사이를 순행巡行하며 힘써 하지 않는 자들에게 채찍질을 하면서注+[부주]朱: 축대築臺를 쌓는 일을 하는 자들이 있는 곳을 순행巡行하면서 힘써 하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을 보면 막대로 친 것이다. 말하기를
吾儕小人 皆有하야 以辟燥濕寒暑注+闔 謂門戶閉塞 어늘 今君爲一臺로되 而不速成이면 何以爲役注+役 事也 이리오 謳者乃止注+[附注] 朱曰 謳者 本稱譽子罕 今子罕親自秩之 故不謳也 하다
“우리 같은 소인小人들도 모두 집이 있어 조습燥濕한서寒暑를 피하는데,注+은 문을 닫는 것이다. 지금 임금님이 하나를 축조築造하시는데 빨리 완성完成하지 않는다면 어찌 일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注+은 일이다. 라고 하니, 노래 부르던 자들이 즉시 노래를 멈추었다.注+[부주]朱: 노래하는 자들이 본래 자한子罕을 칭찬한 것인데, 지금 자한子罕이 몸소 스스로 매질을 하였기 때문에 노래하지 않은 것이다.
或問其故注+[附注] 林曰 或問子罕本欲緩役 今更督役 何故 한대 子罕曰 宋國區區이면 禍之本也注+傳善子罕分謗 [附注] 朱曰 譽子罕者爲祝 謗皇國父者爲詛 ᄅ새니라
어떤 이가 자한子罕에게 그 까닭을 묻자,注+[부주]林: 혹자或者가, 자한子罕이 본래 역사役事를 늦추고자 하였는데, 지금 도리어 역사役事독려督勵한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물은 것이다. 자한子罕이 대답하기를 “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저주咀呪칭송稱頌이 있으면 화란禍亂근원根源이 되기 때문이다.”注+전문傳文자한子罕분방分謗(誹謗을 분담分擔함)한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부주]朱: 자한子罕칭찬稱讚하는 자는 송축頌祝하고, 황국보皇國父비방誹謗하는 자는 저주詛呪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齊晏桓子卒注+晏嬰父也 [附注] 林曰 晏弱也 커늘 晏嬰麤縗斬注+斬 不緝之也 縗在胸前 麤 三升布 하고 苴絰帶杖하고 菅屨注+苴 麻之有子者 取其麤也 杖 竹杖 菅屨 草屨 [附注] 林曰 以苴麻爲首絰及帶 하고 食鬻하며 居倚廬하야 寢苫枕草注+此禮與士喪禮略同 其異唯枕草耳 然枕凷亦非喪服正文 [附注] 林曰 廬倚東牆而爲之 故曰倚廬 苫 編草也 寢於編草之上 以草爲枕 하니
나라 안환자晏桓子가 죽자注+안환자晏桓子안영晏嬰의 아버지이다. [부주]林: 안환자晏桓子안약晏弱이다. 안영晏嬰이 거친 삼베로 지은 참최복斬縗服을 입고 삼[麻]을 꼬아 만든 수질首絰을 쓰고 요대腰帶를 띠고注+은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것이고, 상복喪服의 앞가슴에 대는 삼베 조각이다. 삼승포三升布이다. 상장喪杖을 짚고, 짚신을 신고,注+는 씨가 있는 삼[麻]이니 거친 것을 취한 것이다. 죽장竹杖이고, 관구菅屨는 짚신이다. [부주]林: 저마苴麻수질首絰요대腰帶를 만든 것이다. 죽을 먹고 의려倚廬거처居處하며 거적을 깔고 짚으로 만든 베개를 베자,注+가 〈사상례士喪禮〉와 대략은 같고, 풀 베개를 베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흙덩이를 베는 것[枕凷]도 〈상복喪服〉의 정문正文은 아니다. [부주]林: 동쪽 담에 붙여 여막廬幕을 세우기 때문에 ‘의려倚廬’라 한다. 은 풀을 엮어 만든 거적이니, 풀을 엮어 만든 거적 위에 눕고 풀을 뭉쳐 베개로 삼는 것이다.
其老曰 非大夫之禮也注+時之所行 「反」士及大夫縗服各有不同 晏子爲大夫而行士禮 其家臣不解 故譏之 曰 唯卿爲大夫注+晏子惡直己以斥時失禮 故孫辭略答家老 [附注] 林曰 諸侯之制降於天子一等 故唯卿然後得用大夫之禮 라하다
가로家老(家臣의 )가 “이는 대부大夫가 아니다.”注+당시當時하는 대부大夫최복縗服이 각각 같지 않았다. 안자晏子대부大夫로서 를 행하니, 그 가신家臣이해理解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넌지시 비꼰 것이다. 고 하니, 안영晏嬰이 말하기를 “오직 이어야 대부大夫라 할 수 있다.”注+안자晏子는 자신이 행하는 가 옳다고 여겨 당시의 실례失禮배척排斥하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겸손한 말로 간략하게 가로家老에게 답한 것이다. [부주]林: 제후諸侯제도制度천자天子에 비해 한 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인 뒤에야 대부大夫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或以甁爲飮器 : 甁은 물을 긷는 그릇이다. 林氏가 ‘飮器’인 듯하다고 한 것은 옳지 않다. 《杜注考異》
역주2 報[執] : 저본에는 ‘報’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抑君賜不終 : ‘賜不終’은 바로 ‘曰無死’를 달리 表現한 말이라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4 合左師 : 向戌의 官職이 左師이고 그 采邑이 合鄕이기 때문에 ‘合左師’라 한 것이다. 〈楊注〉
역주5 遂[逐] : 저본에는 ‘遂’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逐’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闔廬 : 闔의 本義는 木板으로 만든 문짝이지만 여기의 闔廬는 同一詞로 家屋의 뜻이다. 〈楊注〉
역주7 有詛有祝 : ‘實興我役’은 詛呪해 꾸짖은 말이고, ‘實慰我心’은 노래해 稱頌한 말이다. 詛祝은 毁譽와 같다. 〈楊注〉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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