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손표叔孫豹가 진晉나라 조무趙武‧초楚나라 공자公子위圍‧제齊나라 국약國弱‧송宋나라 상술向戌‧위衛나라 제오齊惡‧진陳나라 공자公子초招‧채蔡나라 공손公孫귀생歸生‧정鄭나라 한호罕虎‧허인許人‧조인曹人과 괵虢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초招는 진후陳侯의 동모제同母弟인데도 ‘제弟’로 칭稱하지 않은 것은 그 뜻이 장공莊公 25년 경經에 〈우友가 장공莊公의 모제母弟였는데도 ‘제弟’로 칭하지 않고〉 ‘공자公子우友’로 칭한 것과 같다. 이번 회맹會盟에 구서舊書를 읽었으니 초楚나라가 진晉나라 앞에 있어야 하는데, 조무趙武를 앞에 기록한 것은 송宋나라에서의 맹약盟約 때 조무趙武의 신의信義를 귀貴하게 여긴 것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높여 앞에 기록한 것이다. 위衛나라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위에 기록된 것은 회합會合장소場所에 먼저 도착到着하였기 때문이다.
3월에 운鄆을 취取하였다.注+장수將帥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장수將帥의 관위官位가 낮고 군대가 적었기 때문이다. ‘취取’라고 기록한 것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얻었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때 계손숙季孫宿이 거莒나라를 쳐서 운읍鄆邑을 취取하였는데, 어째서 선공宣公 10년에 귀보歸父가 주邾나라를 친 것을 기록한 것과 서법書法이 다른가? 귀보歸父가 주邾나라를 친 것은 선공宣公의 명命에 의한 것이었으나, 이것은 제멋대로 읍邑을 취取하였기 때문이다.
여름에 진백秦伯의 아우 침鍼이 진晉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제弟’라고 칭한 것은 진백秦伯에게 죄罪를 돌린 것이다.
6월 정사일丁巳日에 주자邾子화華가 졸卒하였다.注+전傳이 없다. 노魯나라와 세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진晉나라 순오荀吳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적狄을 대로大鹵에서 패배敗北시켰다.注+대로大鹵는 태원太原진양현晉陽縣이다. [부주]林: 진晉나라 도공悼公 이후로는 적군狄軍이 출동出動하지 않았다. 적狄을 패배敗北시킨 것이 이때까지 두 번 보이니, 두 번 보이는 것은 어째서인가? 진晉나라가 더욱 쇠衰하였기 때문이다.
가을에 거莒나라의 거질去疾이 제齊나라에서 거莒나라로 들어갔다.注+국인國人이 맞아들여 임금으로 세우는 것을 ‘입入’이라 한다. [부주]林: 제齊나라 무지無知가 그 임금을 시해弑害한 것을 먼저 말하고, 제齊나라 소백小白이 제齊나라로 들어간 것을 뒤에 말한 것과(莊公 8년), 거인莒人이 그 임금을 시해弑害한 것을 먼저 말하고(襄公 31년), 거질去疾이 거莒나라로 들어간 것을 뒤에 말한 것은(昭公 원년元年) 시해弑害에 가담加擔하지 않은 것을 서술敍述한 문사文辭이고, 위후衛侯가 이의夷儀로 들어간 것을 먼저 말하고, 위衛나라 영희寗喜가 그 임금을 시해弑害한 것을 뒤에 말한 것과 제齊나라 양생陽生이 제齊나라로 들어간 것을 먼저 말하고, 제齊나라 진걸陳乞이 그 임금을 시해弑害한 것을 뒤에 말한 것은(哀公 6년) 시해弑害에 가담加擔한 것을 서술敍述한 문사文辭이다. 문사文辭에는 선후先後가 있고 죄罪에는 대소大小가 있다. 그러므로 문사文辭를 엮어 사실史實을 말하는 것을 《춘추春秋》의 가르침이라 한다.
거莒나라 전여展輿가 오吳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임금을 시해弑害한 역적逆賊이고 제후諸侯와 회합會合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爵을 칭稱하지 않은 것이다.
숙궁叔弓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운지鄆地의 경계境界를 정定하였다.注+봄에 취取한 운지鄆地에 지금 그 경계境界를 정定한 것이다.
겨울 11월 기유일己酉日에 초자楚子균麇이 졸卒하였다.注+초楚나라가 학질瘧疾로 죽은 것으로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시해弑害로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초楚나라 공자公子위圍가 겹오郟敖를 시해弑害하고 스스로 임금이 되어, 학질瘧疾로 죽은 것으로 제후諸侯에 부고赴告한 것이 양공襄公 7년에 정鄭나라 자사子駟가 정희공鄭僖公을 시해弑害하고서 학질瘧疾로 죽은 것으로 〈제후諸侯에 부고赴告한 것과〉 같다.
초楚나라 공자公子비比가 진晉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이름을 쓴 것은 죄罪가 그에게 있음을 말한 것이다.
傳
원년元年 봄에 초楚나라 공자公子위圍가 정鄭나라를 빙문聘問하고, 또 공손公孫단씨段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注+[부주]林: 단段은 자석子石이다., 이때 오거伍擧가 개사介使(副使)였다.注+오거伍擧는 초거椒擧이다. 개介는 부副이다.
이들이 정鄭나라 객관客館으로 들어가려 하자注+객사客舍로 가려 한 것이다. , 정인鄭人은 이를 꺼려[惡]注+초인楚人이 속이려는 마음을 품은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 행인行人자우子羽를 위圍에게 보내어 잘 말하여 성외城外에 머물게 하였다.注+성외城外에 머물게 한 것이다.
빙문聘問의 예禮를 마친 뒤에 위圍가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성내城內로 들어가서 신부新婦를 맞이하기를 청請하자注+군대를 거느리고 성내城內로 들어가서 신부新婦를 맞이하려 한 것이다. , 자산子産은 〈초인楚人이 이 기회機會를 이용해 정鄭나라를 습격襲擊할까〉 걱정하여, 자우子羽를 보내어 “폐읍敝邑은 협소狹小하여 당신의 종자從者들을 수용受容할 수 없으니, 야외野外에 선墠을 만들고서 명命을 따르기를(婚禮를 거행擧行함) 청합니다.”注+성외城外에 땅을 깨끗이 쓸고 선墠을 만들어 혼례婚禮를 거행擧行하게 하려 한 것이다. 라는 말로 거절拒絶하게 하였다.
그러자 영윤令尹이 태재太宰백주리伯州犂에게 명命하여 “정군鄭君께서 우리 대부大夫에게 은혜恩惠를 내리시어 위圍에게 ‘풍씨豐氏의 딸을 너의 아내로 삼게[撫有] 하려 한다.’注+풍씨豐氏는 공손公孫단段이다. [부주]林: 이而는 여汝(너)이다. 고 하였으므로 위圍는 궤연几筵을 설치設置하고서 장왕莊王과 공왕共王의 묘廟에 고告하고서 정鄭나라로 왔습니다.注+장왕莊王은 위圍의 조祖이고, 공왕共王은 위圍의 부父이다.
그런데 만약 야외野外에서 신부新婦를 하사下賜하신다면注+[부주]林: 만약 성외城外에 선墠을 만들고서 혼례婚禮를 거행擧行하게 한다면 이는 신부新婦를 교야郊野에서 하사下賜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임금님의 은사恩賜를 풀밭에 버리는 것이니, 이는 우리 대부大夫를 경卿의 열列에 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注+경卿의 예禮를 따를 수 없다는 말이다. (卿으로 대우하지 않음).
이뿐만이 아니라 또 위圍로 하여금 그 선군先君을 속여注+몽蒙은 속임이다. 선군先君께 고告하고 와서 여자女子의 조묘祖廟에서 예禮를 거행擧行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군先君을 속인 것이라고 한 것이다. 장차 우리 임금님의 경卿[老]이 될 수 없게 하는 것이니注+대신大臣을 ‘노老’로 칭稱한다. 군명君命을 욕辱되게 하였다 하여 퇴출退黜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 돌아가 복명復命(莊王과 공왕共王의 묘廟에 복명復命함)할 수가 없습니다.注+[부주]林: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대부大夫는 잘 헤아리기 바랍니다.”고 대답하게 하였다.
그러자 자우子羽가 말하기를 “소국小國(鄭나라를 이름)은 죄罪가 없습니다.
대국大國(楚나라를 이름)을 믿고서 〈방비防備를 설치設置하지 않은 것이〉 실로 죄罪입니다.注+대국大國을 믿고 방비防備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罪라는 말이다.
〈이번의 혼인婚姻으로 인해〉 장차 대국大國이 우리를 안정安定시켜줄 것으로 믿었는데注+[부주]林: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와 혼인婚姻한 것은 본래 초楚나라가 자기들의 국가國家를 안정安靖시켜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 〈군대를 거느리고 입성入城하려는 것은〉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서 우리나라를 도모圖謀하려는 것이 아닙니까?注+[부주]林: 지금 초인楚人이 군대를 거느리고서 성내城內로 들어가 신부新婦를 맞으려는 것이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서 정鄭나라를 습격襲擊하기를 도모圖謀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소국小國이 믿을 곳을 잃는다면 제후諸侯는 이를 징계懲戒로 삼아 초楚나라에 원한怨恨을 품지 않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니, 그리된다면 모든 제후諸侯가 초군楚君의 명命을 거부拒否하고 위배違背하여 대국大國의 명命이 막혀 행行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注+우리 정鄭나라가 믿을 곳을 잃는다면 제후諸侯들은 징계懲戒하고 원한怨恨하여 초군楚君의 명命에 항거抗拒하여 그 명命이 막혀 행行해지지 않을 것이니, 우리 정鄭나라가 두려워하는 바는 오직 여기에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부주]林: 정鄭나라가 장차 초楚나라를 믿던 초심初心을 잃는다면 제후諸侯들이 이를 듣고서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와 혼인婚姻한 것을 징계懲戒로 삼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모든 제후諸侯들로 하여금 초楚나라를 추한追恨하게 하여, 초군楚君의 명命을 항거抗拒하고 위기違棄하여 명령命令이 막혀 통행通行하지 않을 것이니, 정鄭나라가 두려워하는 바는 오직 이에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우리나라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가옥家屋은 초楚나라의〉 관인館人에게 소속所屬된注+관인館人은 객사客舍를 지키는 사람이다. [부주]朱: 정鄭나라는 초楚나라에 있어 객사客舍를 지키는 사람과 같다는 말이다. 〈초楚나라의 객사客舍와 같아서, 어느 곳에나 머물 수 있으니〉 어찌 감히 풍씨豐氏의 조묘祖廟를 아끼겠습니까?”注+조祧는 원조遠祖의 사당이다. [부주]林: 어찌 감히 풍씨豐氏원조遠祖의 사당祠堂을 아껴 초인楚人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혼례婚禮를 행行하게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오거伍擧는 정鄭나라에 방비防備가 있음을 알고서 활이 들어 있지 않은 빈 활집만을 메고 들어가기를 청하니注+수고垂櫜는 활이 없음을 보인 것이다. [부주]林: 고櫜는 활집이다. , 자산子産이 허락하였다.注+[부주]林: 정인鄭人이 허락한 것이다.
傳
정월正月을미일乙未日에 공자公子위圍가 정鄭나라 도성都城으로 들어가서 신부新婦를 맞이해 나와서注+[부주]林: 초楚나라 영윤令尹위圍가 무리를 거느리고 정鄭나라 도성都城으로 들어가서 신부新婦를 맞이해 나온 것이다. 드디어 괵虢에서 회맹會盟하였으니注+괵虢은 정鄭나라 땅이다. , 이는 송宋나라에서 맺은 맹약盟約을 거듭 다지기 위함이었다.注+송宋나라에서의 결맹結盟은 양공襄公 27년에 있었다.
기오祁午가 조문자趙文子에게 말하기를 “송宋나라에서 회맹會盟할 때 초인楚人이 우리 진晉나라에 대해 소망所望을 이루었습니다注+득지得志는 초인楚人이 먼저 삽혈歃血한 것을 이른다. 오午는 기해祁奚의 아들이다. (楚나라가 먼저 삽혈歃血한 것을 이름).
지금 영윤令尹은 신의信義가 없기로 제후諸侯 사이에 소문난 자이니, 당신께서 경계警戒하지 않으면注+[부주]林: ‘만약 경계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말이다. 또 송宋나라의 회맹會盟 때처럼 될까 두렵습니다.注+초인楚人이 다시 먼저 삽혈歃血하게 될까 두렵다는 말이다.
자목子木은 신의信義가 있기로 제후諸侯 사이에 칭송稱頌된 자인데도 오히려 진晉나라를 속여 먼저 삽혈歃血하였는데注+가駕는 능陵과 같다. 사詐는 초인楚人이 속에 갑옷을 입은 일을 이른다. , 하물며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 것이 더욱 심한 자이겠습니까?注+우尤는 심甚이다.
초인楚人이 재차再次진晉나라보다 먼저 삽혈歃血한다면 이는 진晉나라의 치욕恥辱입니다.
당신께서는 진晉나라의 승상丞相으로 제후諸侯의 회맹會盟을 주관主管한 지가 지금 7년이 되었습니다.注+조문자趙文子가 양공襄公 25년에 비로소 집정執政이 되었으니 〈지금 8년째인데〉 봄 정월正月로 말하였기 때문에 ‘7년’이라 한 것이다.
그동안 두 차례 제후諸侯를 회합會合하고注+양공襄公 25년에 있었던 이의夷儀의 회합會合과 26년에 있었던 전연澶淵의 회합會合을 이른다. 세 차례 대부大夫를 회합會合하였으며注+양공襄公 27년에 있었던 송宋의 회합會合과, 30년에 있었던 전연澶淵의 회합會合 및 이번 괵虢의 회합會合을 이른다. , 제齊나라와 적인狄人을 복종服從시키고 동하東夏를 안정安定시켰으며注+양공襄公 28년에 제후齊侯와 백적白狄이 진晉나라에 와서 조현朝見한 것을 이른다. , 진秦나라의 난리亂離를 평정平定하고注+양공襄公 26년에 진秦나라가 진晉나라와 화친和親한 일을 이른다. 순우淳于에 성城을 쌓았으되注+양공襄公 29년에 기杞나라의 순우淳于에 성城을 쌓아 기杞나라의 국도國都를 옮겨 준 일을 이른다. 군대가 지치지 않고注+[부주]林: 진晉나라 군대가 피로疲勞에 지친 자가 없다는 말이다. 국가國家가 피폐疲弊하지 않았으며, 백성은 비방誹謗하는 말이 없고注+독讟은 비방誹謗이다. 제후諸侯는 원망怨望하는 말이 없었으며, 하늘의 재해災害가 없었으니, 이는 모두 당신의 힘입니다.
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있으신데 그 명성名聲을 치욕恥辱으로 마감하게 될까 나는 두렵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경계警戒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고 하니, 문자文子가 말하기를 “나는 자네의 말을 고맙게 받아들이겠네.注+기오祁午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송宋나라에서의 회맹會盟 때 자목子木은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었고注+[부주]林: 자목子木이 전쟁戰爭을 일으키려(擧兵) 한 것은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란 말이다. 나는 남을 인애仁愛하는 마음을 가졌으니注+[부주]林: 내가 전쟁戰爭을 막고자 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란 말이다. , 이것이 초楚나라가 우리 진晉나라에 앞서 먼저 삽혈歃血하게 된 까닭이네.
지금도 나는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초楚나라가 또 신의信義 없는 짓을 한다 하더라도注+참僭은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해칠 수 없을 것이네.注+[부주]朱: 어찌 우리에게 환해患害를 끼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나는 신의信義를 근본으로 삼아 신의信義에 따라 행行하려 한다.
비교하자면 농부農夫가 잡초雜草를 제거除去하고 묘근苗根에 북을 주면注+표穮는 김매는 것이고, 묘근苗根에 북을 주는 것을 곤蔉이라 한다. 비록 기근饑饉이 든다 해도 반드시 풍년豊年의 수확收穫을 얻는 것과 같네.注+수재水災나 한재旱災가 들었다 하여 밭 갈고 김매는 일을 쉬지 않으면 반드시 풍년豊年의 수확收穫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부주]朱: 신의信義를 지키는 자는 비록 잠시 동안은 굽히는 바가 있지만 반드시 오랜 뒤에는 펴게 된다는 말이다.
또 내가 듣건대 ‘능히 신의信義를 지키면 남의 하위下位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나는 신의信義를 지키는 일에 아직 능하지 못하네만注+스스로 신의信義를 능히 지키지 못할까 두렵다는 말이다. 《시경詩經》에 ‘신의信義를 버리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면 사람들의 모범模範[則]이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였으니, 이는 신의信義의 효과效果를 말한 것이네.注+시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억편抑篇〉의 시구詩句이다. 참僭은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 것이고, 적賊은 남을 해치는 것이다.
남의 모범模範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남의 하위下位가 되지 않는 것이니, 나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어렵게 여길 뿐注+[부주]林: 나는 신의信義를 지키는 일에 능하지 못한 것을 어렵게 여긴다는 말이다. , 초楚나라를 걱정하지는 않네.”注+[부주]林: 초楚나라가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 것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초楚나라 영윤令尹위圍가 희생犧牲을 사용使用하고 구서舊書를 읽고서 그것을 희생犧牲 위에 올려놓기만을 청請하니注+구서舊書는 송宋나라에서 결맹結盟할 때 사용한 맹서盟書(盟約文)이다. 초인楚人은 진인晉人이 먼저 삽혈歃血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구서舊書에 따라 희생犧牲 위에 올려놓기만 하고 삽혈歃血하지 않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經에 결맹結盟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 진인晉人이 허락하였다.
傳
3월 갑진일甲辰日에 결맹結盟하였다.
이때 초楚나라 공자公子위圍는 군왕君王의 복식服飾을 진열陳列하고 창을 든 두 위사衛士가 앞에서 호위護衛하고 있었다.注+임금의 복식服飾을 진열陳列하고, 창을 든 두 사람을 앞에 벌려 세워 자신을 호위護衛하게 한 것이다. 이離는 진陳(벌려 세움)이다.
이를 보고서 숙손목자叔孫穆子는 “초楚나라 공자公子의 아름다움이 군왕君王 같군요.”注+아름다운 복식服飾이 임금 같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 정鄭나라 자피子皮는 “창을 든 두 위사衛士가 앞에서 호위護衛하고 있군요.”注+예禮에 “국군國君의 출행出行에는 창을 든 두 위사衛士가 앞에 있다.”고 하였다. 라고 하고, 채蔡나라 자가子家는 “포궁蒲宮에 있을 때 이미 창을 든 위사衛士가 앞에 있었으니, 외출外出해서도 위사衛士를 앞에 두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注+공자公子위圍가 회합會合에 와서 특별히 부들을 엮어 왕王의 전옥殿屋에 병폐屛蔽(병풍처럼 둘러막는 물건)로 삼아 스스로 남과 다름을 보였다. 〈그러므로 ‘포궁蒲宮’이라 한 것이다. 이는〉 이미 왕궁王宮을 지어 거처居處하고 있으니 비록 군왕君王의 복식服飾을 사용하여도 괴이할 게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니, 초楚나라 백주리伯州犂가 “이 복식服飾은 이번에 나올 때 우리 임금님께 말씀드려 빌려 온 것입니다.”注+제대부諸大夫가 비난非難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빌렸다’고 말하여 영윤令尹의 허물을 감추려 한 것이다. [부주]林: 일찍이 문서文書[辭令]로써 〈청하여〉 초군楚君에게 군복君服을 빌렸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정鄭나라 행인行人휘揮(子羽)가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注+마침내 임금이 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니, 백주리伯州犂가 “그대는 우선 그대 나라의 자석子晳이 군명君命을 어기고 방자히 행동하는 것이나 걱정하시오.”注+양공襄公 30년에 정鄭나라 자석子晳이 백유伯有를 죽인 뒤로 군명君命을 어기고 방자히 행동하니 장차 정鄭나라의 환난患難이 될 것이다. 그대는 우선 이것이나 걱정하고 영윤令尹이 과戈(二執戈者)를 돌려주지 않을 것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라고 하자, 자우子羽는 “당벽當璧이 건재健在한데 공자公子위圍가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찌 근심이 없겠소.”注+자우子羽는 행인行人휘揮이고, 당벽當璧은 기질棄疾(楚平王)을 이른다. 당벽當璧의 일은 소공昭公 13년에 보인다. 기질棄疾에게 당벽當璧의 운명運命이 있으니, 위圍가 비록 나라를 취取한다 하더라도 장차 환난患難이 있을 것이므로 근심이 없을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제齊나라 국자國子가 말하기를 “나는 두 분을 대신해 근심합니다.”注+국자國子는 국약國弱이다. 두 사람은 왕자王子위圍와 백주리伯州犂를 이른다. 위圍가 이해 겨울에 왕위王位를 찬탈簒奪하였으나 제명에 죽지 못하였고, 백주리伯州犂도 이내 위圍에게 피살被殺되었으므로 우려憂慮스럽다고 한 것이다. 고 하고, 진陳나라 공자公子초招는 “근심하지 않는다면 어찌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두 분은 즐거워하고 있습니다.”注+근심으로써 일을 행하면[生事] 일이 이루어져 즐겁다는 말이다. 고 하고,
위衛나라 제자齊子는 “만약 사전事前에 알고서 대비對備한다면 비록 우환憂患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해가 되겠습니까?”注+제자齊子는 제오齊惡이다. 미리 알고서 대비對備하면 비록 우환憂患이 있어도 손해損害되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
송宋나라 합좌사合左師는 “대국大國은 명령命令을 내리고 소국小國은 그 명령命令을 공손恭遜히 따르는 것이니注+소국小國은 명령命令을 공손히 받들어 대국大國을 섬겨야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대국大國은 명령命令을 제조制造하여 소국小國에 행行하게 한다는 말이다. , 나는 대국大國의 명命을 공손히 따르는 것만을 알 뿐입니다.”注+대국大國의 명命을 공손히 받들 뿐이고, 그 화복禍福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고,
진晉나라 악왕부樂王鮒는 “소민편小旻篇졸장卒章의 말이 좋으니, 나는 그 말을 따를 것입니다.”注+〈소민小旻〉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그 졸장卒章의 맨손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황하黃河를 건너는 것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공경恭敬하지 않는 소인小人 또한 〈국가國家를〉 위태危殆롭게 한다는 뜻을 취取한 것이다. 왕부王鮒는 이 뜻을 따랐기 때문에 감히 공자公子위圍를 비난非難하지 않은 것이다. 고 하였다.
傳
회합會合에서 물러 나와注+[부주]林: 회합을 마치고서 물러 나온 것이다.자우子羽는 자피子皮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숙손叔孫은 비평批評하되 말이 완곡婉曲하였고注+교絞는 절切(批評)이다. 그가 임금 같다고 비평批評하면서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였기 때문에 완곡婉曲하였다고 한 것이다. 송宋나라 좌사左師는 말이 간략簡略하되 예禮가 있었으며注+장부臧否(褒貶)한 바가 없었기 때문에 ‘간簡’하다고 하고, 대국大國을 공손恭遜히 섬기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예禮가 있다’고 한 것이다. , 악왕부樂王鮒는 사람을 사랑하되 공경하였고注+자字는 애愛이니, 흉인凶人을 침범侵犯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아끼고 공경하는 방법이다. 당신과 자가子家는 중립中立을 견지堅持하였으니注+자子는 자피子皮이고, 자가子家는 채蔡나라 공손公孫귀생歸生이다. 지지持之는 취여取與(褒貶)한 바가 없다는 말이다. , 모두 대대로 작록爵祿을 보지保持할 대부大夫[主]입니다만注+[부주]林: 이 다섯 사람은 모두 세록世祿(世襲의 작록爵祿)을 보전保全할 대부大夫[主]라는 말이다. 제齊나라 위衛나라 진陳나라의 대부大夫는 아마도 화난禍難을 면하지 못할 듯합니다.
국자國子는 남을 대신해 근심하겠다고 하였고 자초子招는 근심을 즐긴다고 하였으며注+[부주]林: 근심을 즐거움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제자齊子는 비록 우환憂患이 있어도 해害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注+[부주]林: 위衛나라 제오齊惡은 ‘비록 우환憂患이 있더라도 어찌 해가 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우환憂患을 무해無害로 여긴 것이다.
대체로 자기에게 미치지 않은 일을 근심하는 것과 근심해야 할 일을 즐거워하는 것과 우환이 닥쳐도 해害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모두 우환憂患을 자초自招하는 길이니 우환憂患이 반드시 미칠 것입니다.
〈태서太誓〉에 ‘백성이 원하는 것을 하늘은 반드시 들어준다.’注+일서逸書이다. 고 하였습니다.
저 세 대부大夫는 우환憂患의 조짐이 있으니 우환憂患이 이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注+우환憂患의 조짐을 개시開示하였다는 말이다. [부주]林: 우환憂患이 그 원한 바에 따라 이르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 사람의 말로써 그 사람의 화복禍福의 종류種類[物]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이런 경우를 이른 듯합니다.”注+물物은 유類이니, 사람의 언어言語를 살피고서 화복禍福의 종류種類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소공昭公 8년에 진陳나라 공자公子초招가 태자太子를 살해殺害하였고, 국약國弱(國子)과 국악國惡(齊惡)은 모두 당대當代에는 환난患難이 없었다.
傳
계무자季武子가 거莒나라를 쳐 운읍鄆邑을 취取하니注+노군魯軍이 거莒나라에 무력武力을 행사行使하지도 않았는데 운읍鄆邑이 항복降服하였기 때문에 경經에 ‘취取’했다고 기록하고 벌伐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거인莒人이 맹회盟會에 가서 이 사실을 고하였다.
그러자 초인楚人이 진인晉人에게 말하기를 “전에 송宋에서 맺은 맹약盟約을 거듭 다지는 회합會合에서 물러나기도 전에注+전쟁戰爭을 정지停止하기로 한 맹약盟約을 다시 다진 것이다. 노魯나라가 거莒나라를 친 것은 제맹齊盟(同盟)을 모독冒瀆한 것이니注+독瀆은 경시輕視이다. [부주]林: 모든 나라가 일제一齊히 모여 맺은 맹약盟約을 모독했다는 말이다. , 노魯나라의 사자使者를 죽이기를 청請합니다.”注+이때 숙손표叔孫豹가 회합會合에 와 있었으므로 그를 죽이고자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
이때 악환자樂桓子가 조문자趙文子의 보좌輔佐였는데注+환자桓子는 악왕부樂王鮒이다. 상相은 보좌輔佐이다. , 숙손표叔孫豹에게 재물財物을 요구要求하고자 하여 그를 위해 조문자趙文子에게 사면赦免을 청請하고는注+[부주]林: 숙손표叔孫豹를 위하여 〈조문자趙文子에게〉 그의 죄罪를 사면赦免하기를 청請한 것이다. 사람을 보내어 숙손표叔孫豹에게 대帶(띠)를 달라고 요청要請하니注+재물財物을 요구要求한다고 분명히 짚어 말하기 곤난困難하기 때문에 ‘띠’를 달라는 말로 핑계 댄 것이다. , 숙손표叔孫豹는 주지 않았다.
그러자 양기경梁其踁이 말하기를 “재물財物을 써서 몸을 보호保護[藩]할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까울 게 있습니까?”注+양기경梁其踁은 숙손표叔孫豹의 가신家臣이다. [부주]林: 사람이 재물財物을 소유所有하는 것은 자기 몸을 보위保衛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니, 숙손표叔孫豹가 말하기를 “제후諸侯의 회맹會盟은 사직社稷을 보위保衛하기 위함인데, 내가 재물財物로써 화禍를 면免한다면 노魯나라가 반드시 공벌攻伐을 당할 것이니注+그 나라 사자使者를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그 나라를 칠 것이라는 말이다. , 이는 나라에 화禍를 끼치는 짓이다.
어찌 나라를 보위保衛하는 일이겠는가?
사람이 담장을 설치設置하는 것은 악예惡穢(불미스러운 일들)를 엄폐掩蔽하기 위함인데注+내가 국위國衛(나라를 보위保衛하는 신하臣下)가 된 것이 담장이 인폐人蔽(人家에 오예汚穢를 엄폐掩蔽하는 장벽障壁)가 된 것과 같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 담장이 갈라지고 무너진다면 이것이 누구의 죄罪이겠는가?注+죄罪가 담장에 있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미 원장垣牆으로서 틈이 생겨 〈안을〉 엿볼 수 있고, 무너져서 넘을 수 있다면 〈이는 악예惡穢를 엄폐掩蔽할 수 없으니, 그 허물이 담장에 있다는 말이다.〉
내가 국가國家를 보위保衛하겠다고 와서 도리어 국가國家에 화난禍難을 끼친다면注+[부주]林: 이미 국위國衛(國家를 보위保衛하는 신하)가 되어 국가의 악예惡穢를 드러낸다면 〈나의 죄罪가 담장보다 더욱 심하다는 말이다.〉 나의 죄罪는 담장이 〈무너져서 담장 구실을 하지 못하는〉 죄罪보다 심하다.注+죄罪가 담장보다 심하다는 말이다.
비록 계손季孫이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노魯나라야 무슨 죄罪가 있느냐?注+계손季孫이 거莒나라를 침벌侵伐한 것을 원망한다는 말이다.
숙손叔孫은 출사出使의 일을 맡고 계손季孫은 처수處守(國內에 남아서 나라를 지킴)의 일을 맡은 것은 그 유래由來가 오래되었으니, 내 또 누구를 원망하겠는가?注+계손季孫이 나라 지키는 일을 맡고 숙손叔孫이 출사出使의 일을 맡은 것은 그 유래由來가 오래되었으니, 지금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원망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악왕부樂王鮒는 재물財物을 좋아하니 주지 않으면 요구要求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注+[부주]林: 악왕부樂王鮒는 재물財物을 좋아하니 만약 대帶를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요구要求를 그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고서 악왕부樂王鮒가 보낸 사자使者를 불러 치마를 찢어 주며 말하기를 “띠가 다 없어졌으므로 〈치마폭을 찢어 보냅니다.〉”注+띠가 편진褊盡하였기 때문에 치마폭을 찢어 보낸다고 말하여 거역拒逆하지 않는 뜻을 보인 것이다. 고 하였다.
조맹趙孟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환난患難에 임臨해서도 나라를 잊지 않은 것은 충성忠誠이고注+노魯나라가 무슨 죄罪가 있느냐고 한 말을 이른다. , 위난危難이 미칠 것을 생각하면서도 사신使臣의 직무職務를 포기抛棄[越官]하지 않은 것은 신의信義이고注+숙손叔孫이 출사出使를 맡고 계손季孫이 처수處守를 맡았다고 한 말을 이른다. , 국가國家의 이익利益을 꾀해 죽음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정절貞節(굳은 절개)이고注+재물財物로써 화禍를 면免하려 하지 않은 것을 이른다. , 이 세 가지를 주의主義로 삼기를 계획計劃한 것은 의리義理이다.注+세 가지는 충忠과 신信과 정貞이다.
숙손표叔孫豹는 이 네 가지를 가진 사람이니 죽여서야 되겠는가?”注+의義까지 아우르면 네 가지가 된다. 라고 하고서, 이에 초인楚人에게 요청要請해 말하기를 “노魯나라에 비록 죄罪가 있으나, 그 집사執事(叔孫豹를 이름)가 화난禍難을 피避하지 않고注+집사執事는 숙손표叔孫豹를 이른다. 초楚나라의 위엄威嚴을 두려워하여 명命을 공경히 받드니注+감히 죽음을 피하지 않은 것을 이른다. , 그대가 만약 그를 사면赦免한다면 그대의 좌우左右를 권면勸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의 군리群吏가 국내國內에서는 궂은일을 피避하지 않고注+오汚는 수고로운 일이다. 국외國外에 나가서는 화난禍難을 피하지 않는다면注+구차하게 화난禍難을 면免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초楚나라에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걱정거리가 생기는 것은 관리官吏들이 궂은일을 피하고 하지 않으며, 화난禍難을 피하고 직무職務를 지키지 않는 데서 유래由來하니, 이 두 가지 일을 능히 해낸다면 또 무슨 걱정이 생기겠습니까?
그런데 이 두 가지 일을 능히 해낸 사람을 안정安定시키지 않는다면 그 누가 그대를 따르겠습니까?注+현능賢能한 사람을 안정安靖시키면 대중大衆이 붙좇는다는 말이다.
노魯나라 숙손표叔孫豹는 이 두 일을 능히 해냈다고 할 수 있으니, 그를 사면赦免하여 그 일을 능히 해낸 자를 안정安靖시키기를 청請합니다.注+[부주]林: 숙손叔孫의 주륙誅戮를 사면赦免하여 현능賢能한 사람을 안정安靖시키기를 청請한 것이다.
그대가 회맹會盟에 와서 죄罪 있는 나라를 용서하고注+노魯나라를 치지 않는 것이다. 또 그 나라의 현자賢者를 포상褒賞한다면注+숙손叔孫을 사면赦免하는 것이다. 제후諸侯 중에 그 누가 기쁜 마음으로 초楚나라를 바라보며 귀의歸依하여 멀리 있는 초楚나라를 가까운 이웃 나라처럼 여기지 않겠습니까?注+[부주]林: 근로勤勞를 꺼리지 않고 초楚나라를 섬길 것이라는 말이다.
강역疆埸(國境)의 읍邑은 한때는 저쪽 나라에 붙기도 하고 한때는 이쪽 나라에 붙기도 하니, 어찌 일정一定한 주인主人이 있겠습니까?注+오늘날 쇠란衰亂한 세상에는 강역疆埸에 정定해진 주인主人이 없다는 말이다.
옛날 삼왕三王과 오패五伯의 정령政令에注+삼왕三王과 오패五伯의 영덕令德이 있을 때라는 말이다. 나라의 봉강封疆(國境)을 획정劃定하여注+인引은 정正이니 봉강封疆의 경계境界를 바로잡는 것이다. 관부官府를 세우고注+수樹는 세우는 것이니, 관부官府를 세워 나라를 지킨 것이다. , 봉강封疆을 표시表示하는 정기旌旗를 세워注+정기旌旗를 세워 귀천貴賤을 표시表示한 것이다. 제도制度와 법령法令을 드러내고注+제후諸侯를 위해 제도制度와 법령法令을 만들어 서로 침범侵犯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 봉강封疆을 넘으면 형벌刑罰을 내렸으되, 오히려 봉강封疆이 한결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순虞舜 때에 삼묘三苗의 난亂이 있었고注+삼묘三苗는 도철饕餮로 삼위三危로 추방追放된 자이다. , 하夏나라 때에 관국觀國과 호국扈國의 난亂이 있었고注+관국觀國은 지금의 돈구頓丘위현衛縣이고, 호국扈國은 시평始平호현鄠縣에 있었다. 서서書序에 “계啓가 유호有扈와 감甘의 교야郊野에서 전쟁戰爭하였다.”고 하였다. , 상商나라 때에 선국姺國과 비국邳國의 난亂이 있었고注+두 나라는 상商나라의 제후諸侯이다. 비邳는 지금의 하비현下邳縣이다. , 주周나라 때에 서국徐國과 엄국奄國의 난亂이 있었습니다.注+두 나라는 모두 영성嬴姓이다. 서서書序에 “성왕成王이 회이淮夷를 정벌征伐하고서 드디어 엄국奄國을 멸滅[踐]하였다.”고 하였다. 서徐는 곧 회이淮夷이다.
세상에 성왕聖王[令王]이 없어진 뒤로 제후諸侯가 패권霸權을 다투어[逐進]注+축逐은 경競과 같다. 번갈아 가며 회맹會盟을 주관主管하였으니, 어찌 또 각국各國의 봉강封疆이 한결같을 수 있었겠습니까?注+강약彊弱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번갈아 가며 회맹會盟을 주관主管한 것이다. [부주]林: 압狎은 경更(번갈아)이다.
큰일을 걱정하고 작은 일을 용서[舍]한다면 맹주盟主가 될 수 있으니注+큰일은 찬시簒弑와 멸망滅亡의 화禍를 이른다. [부주]林: 작은 일은 전벌戰伐침탈侵奪 같은 일이다. , 작은 일을 다스릴 게 뭐 있겠습니까?注+작은 일을 다스릴 게 뭐 있느냐는 말이다.
가령 오吳나라와 백복百濮(濮水 가에 사는 부족部族)에 초楚나라가 쳐들어갈 수 있는 기회機會가 생긴다면 초楚나라의 집사執事가 어찌 맹약盟約을 생각하겠습니까?注+오吳나라는 초楚나라 동쪽에 있고, 백복百濮은 초楚나라 남쪽에 있다. 지금 건녕군建寧郡 남쪽에 복이濮夷가 있다. 흔釁은 허물이다. [부주]朱: 오吳나라는 초楚나라 동쪽에 있고, 복濮은 초楚나라 남쪽에 있다. 두 나라에 만약 초楚나라가 쳐들어갈 수 있는 기회機會가 생긴다면 초楚나라의 집정執政이 된 자가 어찌 다시 전쟁戰爭을 정지停止하기로 한 맹약盟約을 생각하여 그 기회機會를 이용利用해 그 땅을 취取하지 않겠느냐고 가정假定해 말한 것이다.
거莒나라 봉강封疆의 일은 초楚나라가 간여干與해 알 일이 아니니 제후諸侯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注+[부주]林: 제후諸侯를 번거롭게 하여 가서 노魯나라의 죄罪를 토벌討伐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거莒나라와 노魯나라가 운읍鄆邑을 다툰 지는 오래이니, 만약 거莒나라의 사직社稷에 큰 위해危害가 없다면 거莒나라를 보호保護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注+항亢은 막는 것이다. [부주]林: 만약 거莒나라 사직社稷에 큰 위해危害가 되지 않았다면 반드시 거莒나라를 위해 노군魯軍을 방어防禦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제후諸侯의 번거로움을 없애 주고 선善한 사람을 사면赦免한다면注+[부주]林: 번거롭고 자잘한 일을 버리고 선량善良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서로 선善을 권면勸勉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깊이 생각하기 바랍니다.”고 하고서, 초인楚人에게 굳이 청請하니, 초인楚人이 허락하거늘 이에 숙손표叔孫豹를 방면放免하였다.
傳
영윤令尹이 연회宴會를 열어 조맹趙孟을 접대接待할 때 영윤令尹이 〈대명편大明篇〉의 수장首章을 읊으니注+〈대명大明〉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篇名이다. 그 수장首章에 ‘문왕文王의 밝은 덕德이 아래 하토下土에 빛났기 때문에 하늘의 명命이 위 상천上天에 성대盛大하게 드러났다.’고 말하였다. 영윤令尹의 뜻이 수장首章에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수장首章을 칭송稱誦하여 스스로 〈자기의 덕德이〉 광명정대光明正大하다고 자랑한 것이다. , 조맹趙孟이 〈소완편小宛篇〉의 제2장章을 읊었다.注+〈소완小宛〉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2장章의 ‘각기 너의 위의威儀를 공경하라. 천명天命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을 취取한 것이다. 천명天命은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여 영윤令尹을 경계警戒한 것이다.
연회宴會를 마친 뒤에 조맹趙孟이 숙향叔向에게 “영윤令尹은 스스로 자신의 덕德이 왕王이 될 만하다고 여기니注+[부주]林: 초楚나라 영윤令尹위圍가 스스로 자기의 덕德이 왕王이 될 만하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 앞으로 어찌 되겠는가?”注+장차 성공成功할 수 있는지의 여부與否를 물은 것이다. 고 묻자, 숙향叔向이 “초왕楚王은 약弱하고 영윤令尹은 강彊하니 아마도 영윤令尹이 초왕楚王이 될 것입니다.注+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왕王이 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結果가 좋지 못할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조맹趙孟이 “무엇 때문인가?”고 묻자, 숙향叔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강자彊者로서 약자弱者를 이기고서 편안히 여기는 것은注+[부주]林: 강强한 신하로서 약弱한 임금을 이기고서도 편안히 여겨 당연當然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彊하기만 하고 의롭지 못한 것이니注+임금을 이기는 것을 편안히 여기는 것은 강彊하기만 하고 의롭지 못한 것이다. , 의롭지 못하면서 강彊한 자는 그 멸망滅亡이 반드시 빠른 것입니다.
《시경詩經》 〈소아小雅정월正月〉에 ‘현저顯著[赫赫]하게 강성强盛한 주周나라를 포사褒姒가 망쳤도다.’고 하였으니, 이는 강彊하기만 하고 의롭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注+시詩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정월正月〉의 시구詩句이다. 포사褒姒는 주유왕周幽王의 후비后妃이다. 유왕幽王이 포사褒姒에 홀려 불의不義를 행行하여 드디어 멸망滅亡에 이르렀다. 비록 현저顯著하게 강성强盛한 나라라 하더라도 불의不義를 행하면 그 나라를 멸망滅亡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영윤令尹이 왕王이 된다면 반드시 제후諸侯의 복종服從을 요구要求할 것인데, 우리 진晉나라가 조금 쇠衰하였으니注+나懦는 약弱함이다. , 제후諸侯들은 초楚나라에 귀왕歸往(歸依)할 것입니다.注+[부주]林: 제후諸侯는 초楚나라의 강폭强暴를 두려워하여 귀왕歸往해 복종服從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초楚나라가 만약 제후諸侯를 얻는다면 그 포학暴虐이 더욱 심하여注+자滋는 익益(더욱)이다. 백성들이 감내堪耐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좋은 결과結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강彊한 힘으로 군위君位를 탈취奪取하는 것은注+취取하기를 정당正當한 방법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임금을 이기는 것인데도, 저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정당正當한 도리道理로 여길 것입니다.注+불의不義를 도道로 여긴다는 말이다.
음란淫亂과 포학暴虐을 도리道理로 여긴다면注+[부주]林: 음란淫亂‧방종放縱‧포학暴虐을 상도常道로 여긴다는 말이다.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注+소공昭公 13년에 초인楚人이 초영왕楚靈王(圍)을 시해弑害한 전傳의 배경이다.
傳
여름 4월에 조맹趙孟‧숙손표叔孫豹‧조曹나라 대부大夫가 정鄭나라로 들어가니注+회맹會盟을 마치고서 정鄭나라에 들른 것이다., 정백鄭伯이 연회宴會를 열어 이들을 함께 접대接待하기로 하였다.
자피子皮가 조맹趙孟에게 가서 연회일宴會日을 고지告知[戒]하였는데注+연향宴享의 기일期日을 고지告知한 것이다. , 고지告知하는 의식儀式이 끝나자 조맹趙孟이 〈호엽瓠葉〉詩를 읊었다.注+고지告知를 받는 예禮가 끝나자, 시詩를 읊은 것이다. 〈호엽瓠葉〉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고인古人은 식품食品이 변변치 못하다 하여 예禮를 폐廢하지 않은 뜻을 취取한 것이다. 비록 박잎과 한 마리의 토끼라 하더라도 오히려 빈객賓客을 접대接待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자피子皮는 드디어 목숙穆叔에게 가서 연회일宴會日을 고지告知하고서 조맹趙孟이 〈호엽瓠葉〉詩를 읊은 것을 말하자注+조맹趙孟이 〈호엽瓠葉〉詩를 읊은 것을 고告한 것이다. , 목숙穆叔이 말하기를 “조맹趙孟은 일헌一獻의 예禮를 원하니注+〈호엽瓠葉〉詩를 읊은 것은 변변찮은 식물食物이라도 헌수獻酬할 수 있다는 뜻을 취取한 것이므로 일헌一獻을 원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대는 그 뜻을 따르시오.”라고 하였다.
자피子皮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注+감히 그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자, 목숙穆叔이 말하기를 “그분이 원하는 바인데 어찌 감히 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注+부인夫人은 조맹趙孟을 이른다. 라고 하였다.
조맹趙孟은 오헌五獻의 예禮를 사양하고서注+조맹趙孟은 스스로 지금 정鄭나라에 빙문聘問 온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오헌五獻의 예禮를 사양한 것이다. 자산子産에게 사사로이 말하기를注+사사로이 말한 것이다. “나는 이미 총재冢宰에게 〈일헌一獻의 예禮를 거행擧行하기를〉 청請하였습니다.”注+총재冢宰는 자피子皮이다. 청請은 〈호엽瓠葉〉詩를 읊은 것을 이른다. 고 하였다.
이에 일헌一獻의 예禮를 사용使用하여 조맹趙孟을 주빈主賓으로 삼았다.注+[부주]林: 조문자趙文子를 상빈上賓으로 삼은 것이다.
향례享禮(禮物을 올리는 예禮)를 마치고 연례宴禮(宴會)를 거행擧行하였는데注+경卿이 공후公侯와 회합會合할 때는 향연享宴에 모두 절조折俎하고 체천體薦하지 않는다. , 목숙穆叔이 〈작소鵲巢〉詩를 읊으니注+〈작소鵲巢〉는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篇名이다. 까치가 지은 둥지에 비둘기가 와서 산다는 것을 말하여, 진군晉君이 소유한 나라를 조맹趙孟이 다스린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 조맹趙孟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注+[부주]林: 나는 이 시詩의 뜻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목숙穆叔이 또 〈채번采蘩〉詩를 읊고서注+〈채번采蘩〉도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篇名이다. 번채蘩菜(쑥)가 변변찮은 식물食物이지만 공후公侯에게 올릴 수 있다는 뜻을 취取하여, 그 사람의 성신誠信만을 향수享受(受用)하고 풍후豊厚한 식품食品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말하기를 “소국小國은 번채蘩菜와 같지만 대국大國이 아껴 쓰신다면 어찌 대국大國의 명命을 따르지 않겠습니까?”注+목숙穆叔이 “소국小國의 변변찮음이 번채蘩菜와 같지만 대국大國이 아껴 쓰고 버리지 않는다면 어찌 감히 명命을 따르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색穡은 아끼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자피子皮가 〈야유사균野有死麕〉의 졸장卒章을 읊으니注+〈야유사균野有死麕〉은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篇名이다. 그 졸장卒章에 “천천히 걸어와서 내 수건 흔들리게 하지 말고 삽살개 짖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탈탈脫脫는 침착하게 천천히 걷는 것이고 세帨는 패건佩巾(女人이 외출外出할 때 허리에 차는 수건)이다. 군자君子는 천천히 걸어 예禮로써 와서 나로 하여금 절개節介를 잃지 말게 하고 우리 개로 하여금 짖게 하지 말라고 한 뜻을 취하여 조맹趙孟이 도의道義로써 제후諸侯를 안무安撫하고 비례非禮로써 침릉侵陵(侵犯해 능멸陵蔑함)하지 않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 조맹趙孟이 〈상체常棣〉詩를 읊고서注+〈상체常棣〉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무릇 지금 사람들 중에는 형제만 한 이가 없다.”는 시구詩句를 취取하여 형제兄弟의 나라와 친하게 지내고자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말하기를 “우리 형제兄弟 나라들이 친밀親密하게 지내며 안정安定을 추구한다면注+[부주]林: 비합比合(和合)하여 안정安靖하는 것이다. 삽살개도 짖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注+자피子皮의 시詩를 받아들인 것이다. 고 하니,
목숙穆叔‧자피子皮 및 조曹나라 대부大夫가 일어나 절하고注+세 대부大夫는 모두 형제국兄弟國의 신하臣下이다. 흥興은 일어나는 것이다. , 외뿔소의 뿔로 만든 술잔을 들고서 말하기를 “우리 소국小國들은 당신의 도움을 힘입어 화난禍難(楚나라의 책벌責罰)에서 면免한 줄을 압니다.”注+시작兕爵은 불경不敬을 벌罰하는 술잔이다. 소국小國이 조맹趙孟의 덕德을 힘입어 친밀親密하게 지내며 안정安定되었으므로 스스로 이 징벌懲罰과 주륙誅戮에서 면免한 줄을 알았다고 말한 것이다. 고 하고서, 술을 마시며 즐겼다.
조맹趙孟이 나와서 말하기를 “나는 다시 이런 즐거움을 볼 수 없을 것이다.”注+다시 이런 즐거움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傳
천왕天王이 유정공劉定公을 영읍潁邑으로 보내어 조맹趙孟을 위로慰勞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낙예雒汭에 머물렀는데注+왕王은 주경왕周景王이다. 정공定公은 유하劉夏이다. 영수潁水는 양성현陽城縣에서 발원發源한다. 낙예雒汭는 하남河南공현鞏縣 남쪽에 있다.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을 ‘예汭’라 한다. , 유자劉子가 말하기를 “아름답도다. 우왕禹王의 공적功績이여!注+하수河水와 낙수雒水를 보고서 우왕禹王이 〈치수治水〉한 공덕功德을 생각한 것이다.
그 밝은 덕德이 먼 후세後世에까지 입혀졌구려.
만약 그때 우왕禹王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어류魚類가 되었을 것이오.
나와 그대가 면관冕冠을 쓰고 단위端委(禮服)를 입고서 백성을 다스리고 제후諸侯를 통치統治하는 것은 모두 우왕禹王의 공덕功德이니注+변면弁冕은 관冠이고 단위端委는 예복禮服이다. 오늘날 함께 예복禮服을 입고 면관冕冠을 쓰고서 국가國家를 소유所有하게 된 것은 모두 우왕禹王의 공덕功德에서 유래由來한 것이라는 말이다. , 그대는 어찌하여 먼 옛날의 우왕禹王의 공덕功德을 계승繼承[績]하여 크게 백성을 보호保護하지 않습니까?”注+조맹趙孟에게 우왕禹王의 공덕功德을 계승繼承[纂]하도록 권면勸勉한 것이다. 라고 하니, 조맹趙孟이 대답하기를 “이 늙은이는 죄罪를 범犯할까만을 두려워할 뿐이니, 어찌 먼 앞날을 걱정할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朱: 나는 난세亂世를 당하여 죄罪에서 면免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어찌 생각이 후세後世에 미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구차하게 세월歲月만 보내며注+[부주]林: 우리는 목전目前의 안일安逸만을 탐貪하며 녹祿이나 훔쳐 먹는 무리라는 말이다. 아침에 저녁의 일도 생각할 수 없으니, 어찌 먼 앞날을 생각하겠습니까?”注+구차히 목전目前의 위기危機나 면免하고자 하니, 장구長久한 앞일을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유자劉子가 돌아가서 주왕周王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注+[부주]林: 조맹趙孟의 말을 경왕景王에게 고告한 것이다.
“속담俗談에 이른바 ‘늙으면 지혜로워지지만 혼모昏耄(정신이 흐려 혼란함)가 뒤따른다.’는 말은注+80세歲를 ‘모耄’라 하는데, 모耄는 난亂이다. [부주]林: 사람이 노년老年에 이르면 당연히 지식智識이 있게 마련인데, 조맹趙孟은 도리어 모란耄亂(늙어서 정신이 혼란함)이 미쳤다는 말이다. 아마도 조맹趙孟의 경우를 이른 듯합니다.
조맹趙孟은 진晉나라의 정경正卿으로 제후諸侯의 일을 주재主宰하면서 복례僕隷와 일반으로 아침에 저녁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注+조맹趙孟은 스스로 천인賤人에 비유하여 백성의 고통苦痛을 걱정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신神과 백성을 버린 것입니다.注+백성은 신神의 주인主人인데, 백성의 고통苦痛을 걱정하지 않기 때문에 신神과 인민人民이 모두 조맹趙孟을 버린다는 말이다.
신神이 노怒하고 백성이 배반背叛할 것이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조맹趙孟이 다시 명년明年을 맞지 못할 것입니다.注+장차 죽을 것이니 다시 명년明年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신神이 노怒하면 제사祭祀를 흠향歆饗하지 않고, 백성이 배반背叛하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사祭祀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注+[부주]林: 제사祭祀와 사공事功(일의 성과成果)을 신神과 사람이 모두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어찌 명년明年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注+이해 겨울에 조맹趙孟이 죽은 장본張本이다.
傳
숙손叔孫이 돌아오자注+괵虢의 회합會合에서 돌아온 것이다., 증요曾夭가 계손季孫이 탄 수레를 몰고 숙손叔孫을 위로慰勞하기 위해 갔는데, 아침나절이 지나 정오正午가 되어도 숙손叔孫은 나오지 않았다.注+계손季孫이 거莒나라를 쳐서 하마터면 자기가 주륙誅戮될 뻔한 일을 원한怨恨하였기 때문이다.
증요曾夭가 증부曾阜에게 말하기를注+증부曾阜는 숙손叔孫의 가신家臣이다. “아침에 와서 정오正午가 되도록 기다린 것은 우리가 죄罪를 알기 때문이오.
노魯나라는 서로 인내忍耐함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왔는데注+[부주]林: 노魯나라가 작지만 서로 용인容忍하였기 때문에 비슷한 나라들과 대립對立[立國]하여 남의 속임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 국외國外에서는 인내忍耐하고 국내國內에서는 인내忍耐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注+초楚나라의 주륙誅戮을 받고자 한 것은 국외國外에서 인내忍耐한 것이고, 정오正午가 되도록 나오지 않은 것은 국내國內에서 인내忍耐하지 못한 것이다. 라고 하니, 증부曾阜가 말하기를 “저분은 여러 달 동안 국외國外에서 〈고생하였으니,〉注+숙손叔孫이 국외國外에 여러 달 동안 있으면서 노역勞役(勞苦)하였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하루아침 동안 기다린들 해로울 게 뭐 있겠소.注+[부주]林: 계손季孫이 이곳에서 하루아침 동안 기다린 것이 무슨 해害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상인商人이 이익利益을 남기고자 하면서 시장市場의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해서야 되겠소.”注+비교하자면 영리贏利를 구하는 상인商人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싫어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증부曾阜가 숙손叔孫에게 “나아가 만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말하니, 숙손叔孫은 기둥을 가리키며 “내 비록 이것을 미워하지만 어찌 없앨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서 나아가 계손季孫을 만나 보았다.注+영楹은 기둥이다. 노魯나라에 계손季孫이 있는 것이 가옥家屋에 기둥이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공손公孫초楚가 이미 빙문聘問하였는데注+초楚는 자남子南이니, 정목공鄭穆公의 손자孫子이다. , 공손公孫흑黑이 또 사람을 보내어 강제로 위금委禽(納采)하니注+금禽은 기러기인데, 납채納采할 때 기러기를 사용使用한다. , 서오범徐吾犯은 겁이 나서 자산子産에게 이 사실을 고告하였다.
그러자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이는 국가國家에 정령政令이 없기 때문이다.注+[부주]林: 이것은 정鄭나라에 정령政令이 바르지 못해 생긴 일이라는 말이다.
그대가 걱정할 일이 아니니, 그대가 주고 싶은 자에게 주라.”고 하였다.
서오범徐吾犯은 두 사람을 초청招請하여 누이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選擇하게 하기를 요청要請하니, 두 사람 모두 허락許諾하였다.
자석子晳은 화려華麗하게 차려 입고 서오범徐吾犯의 집으로 들어가서 폐백幣帛을 당상堂上에 펼쳐놓고 나가고注+폐백幣帛을 벌려놓은 것이다. 자석子晳은 공손公孫흑黑이다. , 자남子南은 군복軍服을 입고 들어가서 좌우左右를 향해 화살 두 대를 쏘고는注+[부주]林: 궁시弓矢를 끼고서 달리면서 좌우左右로 쏜 것이다. 뛰어올라 수레를 타고서 나갔다.注+[부주]朱: 먼저 가거駕車(乘車)를 달리게 하고서 그 수레에 뛰어올라 타고서 나아간 것이다.
여인女人이 방안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고서 말하기를 “자석子晳도 진실로 아름다우나, 자남子南이 장부丈夫답다.注+장부丈夫답다는 말이다.
장부丈夫는 장부丈夫답고 부녀婦女는 부녀婦女다운 것이 이른바 ‘순리順理’이다.”고 하니注+[부주]朱: 장부丈夫는 강강剛强해야 하고, 부녀婦女는 유약柔弱해야 한다는 말이다. , 서오범徐吾犯은 그녀를 자남씨子南氏에게 시집보냈다.
자석子晳은 노怒하여 얼마 뒤에 속에 갑옷을 입고 가서 자남子南을 만나注+[부주]朱: 자석子晳이 활집과 전통箭筒에 궁시弓矢를 넣고, 갑옷을 입고서 자남子南을 만나 본 것이다. 그를 죽이고 그 아내를 탈취奪取하고자 하자, 자남子南은 이를 알고 창을 들고 자석子晳을 뒤쫓아 네거리까지 가서 창으로 쳤다.注+충衝은 길이 사방으로 교차交叉하는 곳이다.
자석子晳은 상처를 입고 돌아가서 대부大夫들에게 고告하기를 “나는 좋은 뜻으로 그를 만났으니, 그에게 다른 뜻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注+[부주]朱: 나는 좋은 뜻으로 자남子南을 만났고, 자남子南이 나를 해치고자 하는 줄을 몰랐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傳
대부大夫들이 모두 〈모여〉 이 일의 처리處理를 상의할 때,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잘잘못이 같은 경우에는 나이가 적고 지위地位가 낮은 자에게 죄罪가 돌아가는 것이니, 이 일은 죄罪가 공손公孫초楚에게 있다.”注+먼저 빙문聘問한 것으로 말하면 자남子南은 무죄無罪[直]이고, 자남子南이 창을 사용한 것으로 말하면 자석子晳은 무죄無罪이다. 자산子産의 힘이 그들을 토벌討伐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일의 잘잘못을 동일시同一視하여 죄罪를 초楚에게 돌린 것이다. 고 하고서 자남子南을 잡아다가 그 죄상罪狀을 열거列擧해 말하기를注+[부주]朱: 자산子産이 친히 그 죄를 열거列擧한 것이다. “국가國家에는 다섯 가지 대절大節(大原則)이 있는데, 너는 이 다섯 가지 원칙原則을 모두 범犯하였다.注+간奸은 범犯이다.
임금의 위엄威嚴을 두려워하고, 임금의 정령政令을 들어 따르고, 귀貴한 이를 존경尊敬하고, 연장자年長者를 섬기고, 친속親屬을 봉양奉養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사용[所以]하여 국가國家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임금이 나라 안에 계시는데도 너는 무기武器를 사용하였으니 임금의 위엄威嚴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고, 국가國家의 기강紀綱을 범하였으니 정령政令을 따르지 않은 것이고注+국가國家의 기강紀綱을 범犯했다는 것은 사람을 상해傷害한 것을 이른다. , 자석子晳은 상대부上大夫이고 너는 하대부下大夫인데도 그에게 몸을 낮추지 않았으니 귀貴한 이를 존경尊敬하지 않은 것이고, 어린 사람으로서 기탄忌憚하는 바가 없었으니 연장자年長者를 섬기지 않은 것이고注+기忌는 두려워함이다. , 종형從兄에게 무기武器를 사용하였으니 친속親屬을 봉양奉養하지 않은 것이다.注+[부주]林: 자석子晳은 자남子南의 종형從兄이다. 그런데도 무기武器로써 그를 상해傷害하였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나는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으니 그의 사죄私罪를 감면減免하고 멀리 유배流配하라.’고 하셨으니, 너는 힘을 다해 속히 떠나고, 〈시일을 끌어〉 너의 죄罪를 가중加重시키지 말라.”注+[부주]林: 너는 스스로 힘을 다해 속히 떠나 멀리 가서, 너의 죄罪를 가중加重하지 말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傳
5월 경진일庚辰日에 정鄭나라는 유초游楚(子南)를 오吳나라로 방축放逐하였다.注+[부주]林: 유초游楚는 바로 공손公孫초楚로 자남子南이다. 방放은 사죄死罪를 감형減刑하고서 멀리 보내는 것이다.
자남子南을 추방追放[行]하려 할 때注+[부주]林: 자남子南을 축출逐出하기로 하고서 그를 떠나보내려 한 것이다. 자산子産이 태숙太叔에게 의견意見을 묻자注+태숙太叔은 유초游楚의 형兄의 아들이다. , 태숙太叔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 길吉(太叔의 이름)은 내 몸도 보호保護하지 못하는데 어찌 종족宗族을 보호保護할 수 있겠습니까?注+항亢은 가리는 것(보호의 뜻)이다. [부주]朱: 나는 오히려 내 몸도 보호할 수 없는데, 어찌 유씨游氏의 종족宗族을 보호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저 자남子南의 일은 국가國家의 정령政令을 범하였기 때문이고, 사사로이 난難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닙니다.注+[부주]朱: 자남子南이 방축放逐되는 것은 바로 국가國家의 정령政令을 〈범犯하였기 때문이고,〉 사의私意로 난難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대는 정鄭나라를 위해 일을 계획計劃하니, 국가國家에 이롭다면 즉시 그를 방축放逐[行之]할 것이지, 또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주공周公이 관숙管叔을 죽이고 채숙蔡叔을 방축放逐한 것이注+채蔡는 방축放逐이다. 어찌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이겠습니까?
왕실王室을 공고鞏固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만약 죄罪를 범犯한다면 그대는 나를 방축放逐함이 마땅하니[將], 여러 유씨游氏를 고려顧慮할 게 뭐 있습니까?”注+소공昭公 2년에 정鄭나라가 공손公孫흑黑을 죽인 전傳의 배경이다. [부주]朱: 내가 만약 죄罪를 진다면 그대는 나를 방축放逐함이 마땅하니, 유씨游氏의 종족宗族을 고려顧慮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말이다.
傳
진秦나라 후자后子가 환공桓公에게 총애寵愛를 받아 경공景公 때에 마치 두 임금이 있는 것 같으니注+후자后子는 진환공秦桓公의 아들로 진경공秦景公의 동모제同母弟침鍼이다. 그 권세權勢와 총애寵愛가 두 임금 같다는 말이다. ,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진秦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너의 죄상罪狀을 열거列擧[選]하여 주륙誅戮할까 두렵다.”注+선選은 수數(列擧)이니, 진경공秦景公이 그 죄罪를 열거列擧하여 주륙誅戮할까 두렵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계묘일癸卯日에 침鍼(后子)이 진晉나라로 가는데 그 수레가 천승千乘이었다.
경經에 “진백秦伯의 아우 침鍼이 진晉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죄罪가 진백秦伯에게 있음을 말한 것이다.注+아우 교육敎育을 잘못한 죄罪를 꾸짖은 것이다. .
傳
후자后子가 연회宴會를 열어 진후晉侯를 접대接待할 때注+진후晉侯를 위해 향례享禮를 베푼 것이다., 배를 나란히 붙여 황하黃河에 부교浮橋를 놓고注+배를 나란히 붙여 교량橋梁을 만들어서 진秦나라에서 진晉나라로 가는 길을 개통開通한 것이다. , 진秦나라의 국도國都옹성雍城에서 진晉나라의 국도國都강성絳城까지 십리十里마다注+한 곳에 8승乘씩을 배치排置한 것은 여덟 차례의 왕복往復을 대비對備한 것이다. 수레 8승乘씩을 배치配置하고서注+옹성雍城에서 강성絳城까지의 거리가 천리千里이므로 수레 8백 승乘을 사용한 것이다. [부주]林: 옹雍은 진秦나라의 국도國都이고 강絳은 진晉나라의 국도國都이다. 옹성雍城으로 돌아가 수폐酬幣를 싣고 오게 하니注+구헌九獻의 의식儀式을 갖춘 것이다. 처음 일헌一獻의 예禮를 거행擧行할 때에 올릴 예폐禮幣는 스스로 가지고 갔다. 그러므로 여덟 차례 술을 권할 때마다 올릴 예폐禮幣를 계속繼續해 운송運送해 오게 한 것이다. , 연회宴會를 마칠 때까지 그 수레들이 여덟 차례씩 반복反復하였다.注+십리十里마다 배치排置한 8승乘의 수레가 각각 차례로 폐물幣物을 싣고 와서 다음 수레에 인계引繼하고 돌아간 것이고, 한 수레가 곧장 끝까지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팔반八反’이라 한 것이다. 천리千里에 수레 8백 승乘을 사용하고 2백 승乘은 자신을 따르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승千乘이라 한 것이다. 전문傳文은 진秦나라 침鍼이 출분出奔할 때 지극히 사치스럽고 풍부豊富하게 향례享禮를 마쳐, 도망해 와 있는 나라의 임금에게 공경을 다하고자 한 것을 말한 것이다.
사마司馬후侯가 후자后子에게 “그대의 수레를 이곳에 다 배치하였습니까?”라고 묻자, 후자后子가 대답하기를 “나는 이것을 많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보다 적었다면 내가 어찌 진晉나라로 와서 진군晉君을 알현謁見할 수 있겠습니까?”注+나의 좌거坐車(坐乘하는 수레)가 많기 때문에 출분出奔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여숙제女叔齊(司馬 후侯)가 이 말을 진평공晉平公에게 고告하고注+여숙제女叔齊는 사마司馬후侯이다. , 또 “진秦나라 공자公子(鍼)는 반드시 돌아갈 것입니다.
신臣이 듣건대 군자君子가 자기의 과실過失을 알면 반드시 좋은 계책計策을 세운다고 하니, 좋은 계책計策이 있는 사람은 하늘이 돕는 바입니다.”注+[부주]林: 무릇 사람으로서 허물을 고치고서 새사람이 되려는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면 이런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는 말이다. 하였다.
傳
후자后子가 조맹趙孟을 만나니, 조맹趙孟이 “그대는 언제 돌아갈 것입니까?”注+언제 돌아가겠느냐고 물은 것이다.라고 물었다.
후자后子가 “나는 우리 임금께서 나의 죄罪를 열거列擧하여 주륙誅戮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도망해 온 것이니, 장차 새 임금이 위位를 계승繼承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注+[부주]林: 장차 사군嗣君의 세상世上이 되기를 기다린 뒤에 감히 돌아가겠다는 말이다. 고 대답하였다.
조맹趙孟이 “진秦나라 임금은 어떤 사람입니까?”고 묻자, 후자后子는 “무도無道합니다.”고 대답하였다.
조맹趙孟이 “그렇다면 나라가 망亡하겠습니까?”라고 묻자, 후자后子는 “어찌 망亡하기야 하겠습니까?注+[부주]林: 어찌 갑자기 망亡하는 데야 이르겠느냐는 말이다.
한 대代의 임금이 무도無道하여도 나라가 망亡[艾]하지는 않습니다.注+애艾는 끊김이다. [부주]林: 선군先君의 덕택德澤이 사람들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나라가 망亡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천지天地 사이에 수립樹立된 나라에는注+[부주]林: 천지天地 사이에 수립樹立된 모든 나라들이다. 그 존립存立을 돕는 신하臣下가 있게 마련이니注+돕고자 하는 자가 많다는 말이다. , 몇 대代의 임금이 계속繼續해 음란淫亂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亡[斃]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조맹趙孟이 “그렇다면 요사夭死하겠습니까?”注+[부주]林: 또 천명天命이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라고 묻자, 후자后子는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조맹趙孟이 “그가 언제쯤 죽겠습니까?”고 묻자, 후자后子는 “내가 듣건대 국군國君이 무도無道한데도 곡식이 풍년豐年이 드는 것은 하늘이 그를 돕기 때문이라고 하니注+찬贊은 도움이다. , 적어도 5년 안에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注+선鮮은 소少이니, 〈그의 수명壽命이 짧아도〉 5년은 지날 것이고, 길면 5년뿐이 아니라 〈더 오래 살〉 것이라는 말이다. 고 대답하였다.
조맹趙孟이 해 그늘을 보며 말하기를 “아침 그늘이 저녁까지 갈 수 없는데, 어찌 5년을 기다릴 수 있습니까?”注+음蔭은 해 그림자이다. 조맹趙孟은 의지意志가 쇠하여, 해 그늘로써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 그늘이 저녁까지 갈 수 없는데 어찌 5년을 기다릴 수 있느냐?’고 한 것이다. [부주]林: 누가 5년이란 오랜 세월歲月을 기다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후자后子가 나와서 사람에게 고告하기를 “조맹趙孟은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백성의 주인主人이 되어 〈국가國家는 생각지 않고〉 세월歲月을 허송虛送하며 안일安逸만을 탐하니注+완翫과 개愒은 모두 탐貪함이다. [부주]林: 집정執政(趙孟을 이름)은 백성의 주인主人이 되어 하는 일 없이 세월歲月을 보내며 안일安逸만을 탐한다는 말이다. , 그가 얼마나 살 수 있겠는가?”注+오래 살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傳
정鄭나라는 유초游楚가 난亂을 일으킨 일로 인해注+유초游楚는 자남子南이다. 6월 정사일丁巳日에 정백鄭伯이 그 대부大夫들과 공손公孫단段의 집에서 결맹結盟하였다.
한호罕虎‧공손公孫교僑(子産)‧공손公孫단段‧인단印段‧유길游吉‧사대駟帶가 사사로이 규문閨門 밖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사실은 〈그 장소場所가〉 훈수薰隧였다.注+규문閨門은 정鄭나라 성문城門이다. 훈수薰隧는 성문城門 밖의 도로명道路名이다. 그 결맹結盟한 실지實地를 말한 것은 명년明年에 자산子産이 자석子晳의 죄상罪狀을 열거列擧하며 ‘훈수지맹薰隧之盟’이라고 칭稱한 장본張本이다.
공손公孫흑黑이 강제로 맹약盟約에 참여參與하여 태사太史에게 자기의 이름도 함께 기록하게 하고, 또 ‘칠자七子’로 칭稱하게 하였는데도注+자신이 육경六卿과 동렬同列이 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일곱 사람이 결맹結盟한 것으로 기록하게 한 것이다. 자산子産은 그를 토벌討伐하지 않았다.注+자석子晳이 강强하기 때문에 그를 토벌討伐하면 나라를 어지럽힐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傳
진晉나라 중행목자中行穆子가 태원太原에서 무종無終과 군적群狄을 패배敗北시켰으니注+태원太原은 바로 대로大鹵이다. 무종無終은 산융山戎이다. [부주]林: 중행목자中行穆子는 바로 순오荀吳이다. , 이는 보졸步卒을 숭상崇尙(重視)하였기 때문이다.注+숭崇은 취聚(모음)이다.
전쟁戰爭하려 할 때 위서魏舒가 말하기를 “저들은 도병徒兵(步兵)이고 우리는 거병車兵인데注+[부주]林: 피彼는 군적群狄을 이르는데 모두 도보병徒步兵이고, 아我는 진병晉兵을 이르는데 모두 거승車乘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 양군兩軍이 서로 만나는 곳의 지세地勢마저 또 험險하니注+지세地勢가 험險하여 병거兵車를 사용하기 불편不便하다는 말이다. , 10인人이 병거兵車일승一乘을 공용共用하게 하면注+다시 10인씩을 증원增員하여 일거一車의 용도用途를 담당擔當하게 하는 것이다. 반드시 승리勝利할 것이고, 지형地形을 이용해 복병伏兵을 설치해 적군敵軍을 곤궁困窮에 빠뜨리면 또 승리勝利할 수 있으니注+병거兵車는 매양 험한 길에서 곤난困難을 당하는데, 이제 병거兵車를 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勝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군대를 모두 보병步兵으로 편성編成하소서.注+병거兵車를 버리고 보졸步卒로 삼는 것이다.
나의 부대部隊부터 먼저 시작始作하겠습니다.”고 하고서, 거병車兵을 해체解體하고서 보병步兵의 대오隊伍로 편성編成하여注+위서魏舒가 먼저 자기에게 속屬한 병거부대兵車部隊를 해체解體하고서 보병步兵의 진영陳營으로 만든 것이다. , 5승乘의 인원人員으로 세 오伍를 편성編成하였다.注+수레에 타는 자는 병거兵車마다 3인人씩이니, 5승乘이면 15인人이다. 지금 군제軍制를 개편改編하여 거병車兵을 없애고 다시 5인人씩 묶어 오伍로 편성編成하고, 또 나누어 세 개의 오伍로 만든 것이다.
순오荀吳의 폐인嬖人(寵臣)이 보졸步卒의 대오隊伍로 들어가려 하지 않으니, 그 목을 베어 군중軍中에 돌려 보였다.注+위서魏舒가 즉시 그를 참수斬首하였는데도 순오荀吳가 원한怨恨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서魏舒가 공功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섯 진영陳營을 서로 붙도록 만들어注+[부주]林: 보졸步卒을 다섯 진영陣營으로 만들어 서로 구원救援하게 한 것이다. 대개 길이 험해 많은 군대를 쓰기 어렵기 때문에 임시臨時로 편의便宜한 제도制度를 만들어 다섯 개의 진영陣營이 서로 붙지 않게 하여 진퇴進退하기 쉽게 한 것이 하문下文에 말한 것과 같다. 양진兩陳은 앞에 두고 오진伍陳은 뒤에 두며, 전진專陳을 우익右翼으로 참진參陳을 좌익左翼으로 편진偏陳을 전거前拒(先鋒)로 삼아注+모두 임시臨時로 설치設置한 진영陣營의 명칭名稱이다. 적敵을 유인誘引하니 적인翟人은 이를 보고 비웃었다.注+진군晉軍이 정상正常의 진법陳法을 잃었기 때문에 비웃은 것이다.
적인狄人이 진陳을 치기 전에 공격[薄]하여 크게 패배敗北시켰다.注+전문傳文은 순오荀吳가 능히 좋은 계책計策을 채용採用한 것을 말한 것이다.
傳
거莒나라의 전여展輿가 즉위卽位하여 공자公子들의 녹질祿秩(祿俸과 관직官職)을 삭탈削奪하니注+[부주]林: 전여展輿가 공자公子들의 녹질祿秩을 삭탈削奪한 것이다., 공자公子들이 제齊나라에 도망가 있는 공자公子거질去疾을 돌아오도록 불렀다.
가을에 제齊나라 공자公子서鉏가 거질去疾을 거莒나라로 들여보내니注+제齊나라가 비록 거질去疾을 거莒나라로 돌려보냈으나, 거인莒人이 먼저 불렀기 때문에 경經에 국역國逆의 예例에 따라 ‘입入’으로 기록한 것이다. 거질去疾이 제齊나라로 도망간 일은 양공襄公 31년에 있었다. , 전여展輿가 오吳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오吳나라의 외손外孫이었기 때문이다.
傳
노魯나라 숙궁叔弓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운전鄆田(鄆地)의 경계境界를 획정劃定하였으니, 이는 거莒나라에 내란內亂이 난 기회機會를 이용利用한 것이다.注+이해 봄에 탈취奪取한 운지鄆地에 지금 경계를 획정劃定한 것이다.
이때 거莒나라의 무루務婁, 무호瞀胡 및 공자公子멸명滅明이 대방大厖과 상의미常儀靡를 가지고 제齊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세 사람은 전여展輿의 당黨이다. 대방大厖과 상의미常儀靡는 거莒나라의 두 읍邑이다.
傳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거莒나라의 전여展輿가 임금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은 인재人才를 버렸기 때문이다.注+공자公子들의 질秩(官職)을 빼앗은 것이 바로 인재人才를 버린 것이다.
인재人才를 버려서야 되겠는가?
《시경詩經》에 ‘국가國家를 강성强盛하게 하려면 인재人才를 얻는 것만 한 게 없다.’고 하였으니, 좋은 말이다.”注+시詩는 《시경詩經》 〈주송周頌열문편烈文篇〉의 시구詩句이다. 인재人才를 얻으면 국가國家가 강彊해진다는 말이다.
傳
진후晉侯가 병病을 앓으니, 정백鄭伯이 공손公孫교僑(子産)를 진晉나라에 보내어 빙문聘問하고 또 문병問病하게 하였다.
숙향叔向이 자산子産에게 묻기를 “우리 임금님의 병환病患이 위독危篤[病]합니다.
복인卜人은 ‘실침實沈과 대태臺駘가 빌미가 되었다.’注+[부주]林: 두 신神이 화禍가 된 것이 복조卜兆에 드러난 것을 이른다. 고 하는데, 태사太史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감히 묻습니다. 이것이 무슨 신神입니까?”라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옛날 고신씨高辛氏에게 두 아들이 있었으니 큰 아들은 알백閼伯이고 작은 아들은 실침實沈이었습니다.注+고신高辛은 제곡帝嚳이다.
그들은 광림曠林에 살면서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여注+광림曠林은 소재지所在地를 알 수 없어 주해註解하지 않았다. [부주]林: 두 아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말이다. 날마다 간과干戈를 사용해 서로 공격攻擊하니注+심尋은 사용使用이다. , 후제后帝(堯)는 그들을 좋지 않게 여겨注+후제后帝는 요堯이다. 장臧은 선善이다. 알백閼伯을 상구商丘로 옮겨 진성辰星(大火星)의 제사祭祀를 주관主管하게 하였더니注+상구商丘는 송宋나라 땅이다. 진성辰星의 제사祭祀를 주관主管한 것이다. 진성辰星은 대화성大火星이다. , 상인商人이 이 일을 인습因襲하였습니다.注+상인商人은 탕왕湯王의 선조先祖상토相土이다. 상구商丘를 봉지封地로 받아 알백閼伯의 옛 나라를 이어 진성辰星의 제사祭祀를 주관主管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성辰星이 상商나라의 별이 된 것입니다.
실침實沈을 대하大夏로 옮겨 삼성參星의 제사祭祀를 주관主管하게 하였더니注+대하大夏는 지금의 진양현晉陽縣이다. , 당인唐人이 이 일을 인습因襲하여 하왕조夏王朝와 상왕조商王朝에 복종服從해 섬겼습니다.注+당인唐人은 유루劉累등等이다. 〈그러나〉 누累는 노현魯縣으로 옮겼으니, 여기에 〈말한 당인唐人은〉 대하大夏에 있는 자들을 이른다.
당唐나라 말세末世의 임금이 당숙우唐叔虞이었습니다.注+당인唐人의 말세末世에 그 임금이 숙우叔虞이다.
무왕武王의 후비后妃읍강邑姜이 태숙太叔을 임신姙娠할 때를 당하여注+읍강邑姜은 무왕武王의 왕후王后로 제齊나라 태공太公의 딸이다. 잉태孕胎를 진震이라 한다. 태숙太叔은 성왕成王의 아우 숙우叔虞이다. , 꿈에 천제天帝가 읍강邑姜에게 ‘내가 너의 아들을 우虞로 명명命名하고서注+제帝는 천제天帝이다. 당군唐君의 이름을 취取한 것이다. , 장차 이 아이에게 당唐나라를 주어 삼성參星분야分野의 땅을 귀속歸屬시켜注+[부주]林: 그에게 삼성參星분야分野의 땅을 귀속歸屬시키겠다는 말이다. 자손子孫을 번육蕃育(繁昌)하게 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출생出生함에 미쳐 손바닥에 ‘우虞’자 모양의 무늬가 있으니, 드디어 ‘우虞’로 이름을 지었습니다.注+[부주]林: 드디어 〈당군唐君의 이름을 취取하여〉 태숙太叔의 이름을 ‘우虞’로 지은 것이다.
성왕成王에 미쳐 당국唐國을 멸滅하고 태숙太叔을 그곳에 봉封하였으므로 삼성參星이 진晉나라의 별이 된 것입니다.注+숙우叔虞를 당唐에 봉封하였으니, 이가 진후晉侯이다. [부주]林: 진晉나라가 당唐나라 땅에 거주居住하며 삼성參星분야分野의 땅을 통속統屬하였기 때문에 삼성參星이 진晉나라의 주성主星이 된 것이다.
이로써 보면 실침實沈은 삼성參星의 신神입니다.
옛날에 금천씨金天氏의 후예後裔에 매昧라는 자가 있었더니, 현명사玄冥師가 되어 윤격允格과 대태臺駘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注+금천씨金天氏는 제帝소호少皥이다. 예裔는 원遠이다. 현명玄冥은 수관水官이니, 매昧가 수관水官의 장長이 된 것이다. [부주]林: 사師는 장長이다. 매昧가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이 윤격允格이고 작은아들이 대태臺駘이다.
대태臺駘는 능히 그 세업世業을 계승繼承하여注+매昧의 업業을 계승繼承한 것이다. 분수汾水와 조수洮水를 소통疏通시키고注+선宣은 통通과 같다. 분조汾洮는 두 물의 이름이다. 대택大澤에 제방堤防을 쌓아注+제방堤防을 쌓아 물을 막은 것이다. 광대廣大한 평원平原에 인민人民들을 편히 살게 하니, 제帝(顓頊)가注+대원大原은 진양晉陽이니, 대태臺駘가 거주居住한 곳이다. 이를 가상嘉尙히 여겨 그를 분천汾川에 봉封하였으므로注+제帝는 전욱顓頊이다. 〈그 후손後孫인〉 심국沈國‧사국姒國‧욕국蓐國‧황국黃國이 실로 그 제사祭祀를 대대로 지내왔는데注+네 나라는 대태臺駘의 후손後孫이다. , 지금 진晉나라가 분수汾水일대一帶를 주재主宰(統治)하면서 이 네 나라들을 멸滅하였습니다.注+네 나라를 멸망滅亡시킨 것이다. [부주]林: 진晉나라가 분천汾川의 땅을 점유占有(主有)한 것이다.
이로써 보면 대태臺駘는 분수汾水의 신神입니다.
그러나 이 두 신神은 진군晉君의 신병身病과는 무관無關합니다.注+[부주]林: 그러나 이 두 신神이 내린 재앙災殃과 복福이 국군國君의 신상身上에 미쳐 그 질병疾病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