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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8)

춘추좌씨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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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傳]二十七年春 越子使后庸來聘注+[附注] 朱曰 句踐使其大夫后庸來聘於魯하고 且言邾田하고 封于駘上注+欲使魯還邾田 封竟至駘上하다
二月盟于平陽注+西平陽할새 三子皆從注+季康子叔孫文子孟武伯 皆從后庸盟이러니 康子病之注+恥從蠻夷盟하야 言及子贛注+思子贛曰 若在此 吾不及此夫注+不及與越盟 [附注] 林曰 子貢十二年 嘗辭吳盟 故思之ᄂ저 武伯曰 然하다
何不召
曰 固將召之하노라 文子曰 他日請念注+言季孫不能用子贛 臨難而思之 [附注] 朱曰 叔孫文子恐康子他日忘之 故云如此 하노라
[傳]夏四月己亥 季康子卒하다
公弔焉 降禮注+禮不備也 言公之多妄하다
[傳]晉荀瑤帥師伐鄭하야 次于桐丘하니 鄭駟弘請救于齊注+弘 駟歂子하다
齊師將興할새 陳成子屬孤子하야 三日朝注+屬會死事者之子 使朝三日 以禮之하다
設乘車兩馬하고 注+乘車兩馬 大夫服 又加之五邑하야 召顔琢聚之子晉注+[附注] 林曰 晉 涿聚子名
隰之役 而父死焉注+隰役 在二十三年 [附注] 林曰 卽犂丘戰 而 汝也 이나 以國之多難으로 未女恤也러니 今君命女以是邑也하니 服車而朝하고 毋廢前勞하라
乃救鄭하야 及留舒하다
違穀七里로되 穀人不知注+言其整也 留舒 齊地 違 去也하다
及濮하야 雨不涉注+濮水 自陳留酸棗縣傍河東北經濟陰至高平入濟하니 子思曰 是以告急이어늘 今師不行하니 注+子思 國參 [附注] 林曰 以齊爲大國近在鄭之宇下也
成子衣製杖戈注+製 雨衣也하고 立於阪上注+[附注] 林曰 立於水之阪上하야 馬不出者 助之鞭之注+[附注] 林曰 助軍人鞭其馬하다
知伯聞之하고 乃還注+畏其得衆心曰 我卜伐鄭이오 不卜敵齊로라하고 使謂成子曰 大夫陳子 陳之自出注+[附注] 林曰 謂陳成子實出自陳이오 陳之不祀 鄭之罪也注+十七年 楚獨滅陳 非鄭之罪 蓋知伯誣陳子 故陳子怒 謂其多陵人
故寡君使瑤注+衷 善也 [附注] 林曰 晉君使己察陳之善 以討鄭罪하야注+[附注] 林曰 大夫 謂成子 其恤陳國 而與我共討鄭아하니라
若利本之顚注+[附注] 林曰 若成子利根本之傾覆이면 瑤何有焉注+言陳滅於己無傷이리오 成子怒曰 多陵人者皆不在하니 知伯其能久乎注+[附注] 林曰 言人之多侵侮他人者 皆不在於其位
中行文子告成子注+文子 荀寅 此時奔在齊曰 有自晉師告寅者하니 將爲輕車千乘하야 注+[附注] 林曰 以壓齊師之門 迫與齊戰 則齊師可盡克也라하니라
成子曰 寡君命恒曰 無及寡하고 無畏衆注+[附注] 林曰 寡弱者無陵暴之 衆强者無畏避之하라하니 雖過千乘이라도 敢辟之乎
將以子之命告寡君注+成子疑其有爲晉之心호리라
文子曰 吾乃今知所以亡注+自恨己無知 [附注] 林曰 自恨無知以致滅亡이로라
君子之謀也 注+謀一事 則當慮此三變 然後入而行之 所謂君子三思 [附注] 林曰 凡君子之謀事 旣思其始 又思其中 復慮其終 三者皆謀之이어늘 今我三不知而入之하니 注+悔其言不可復
[傳]公患三桓之侈也하야 欲以諸侯去之注+欲求諸侯師以逐三桓하니 三桓亦患公之妄也하다
故君臣多間注+間 隙也하니라
公游于陵阪타가 遇孟武伯于孟氏之衢注+[附注] 林曰 遇孟孫于衢道하야 曰 請有問於子하노니 余及死乎注+問己可得以壽死不 對曰 臣無由知之니라
三問이나 卒辭不對하다
公欲以越伐魯而去三桓하야 秋八月甲戌 公如公孫有陘氏注+有陘氏 卽有山氏하야 因孫于邾라가 乃遂如越注+[附注] 林曰 自邾遂奔越하니 國人注+以公從其家出故也 終子贛之言 君不沒于魯 [附注] 林曰 施罪於有山氏하다
[傳]悼之四年 晉荀瑤帥師圍鄭注+悼公 哀公之子寧也 哀公出孫 魯人立悼公하다
未至 鄭駟弘曰 知伯愎而好勝하니 早下之 則可行也注+行 去也 [附注] 林曰 早服而爲之下則 可以去其師라하고 乃先保南里以待之注+保 守也 南里 在城外러니 知伯入南里하야 門于桔柣之門하다
鄭人俘酅魁壘注+酅魁壘 晉士하야 賂之以知政注+欲使反爲鄭 [附注] 林曰 以知政賂魁壘하니 閉其口而死注+[附注] 林曰 晉魁壘閉口不答而死하다
將門注+攻鄭門할새 知伯謂趙孟入之注+[附注] 林曰 使趙襄子先入鄭門하니 對曰 注+主 謂知伯也 言主在此 何不自入니라
知伯曰 惡而無勇하니 何以爲子注+惡 貌醜也 簡子廢嫡子伯魯而立襄子 故知伯言其醜且無勇 何故立以爲子리오 對曰 以能忍恥일새 庶無害趙宗乎ᄂ저 知伯不悛하다
趙襄子由是惎知伯注+惎 毒也하니 遂喪之하다
知伯貪而愎이라 故韓魏反而喪之注+史記 晉懿公之四年 魯悼公之十四年 知伯帥韓魏圍趙襄子於晉陽 韓魏反與趙氏謀 殺知伯於晉陽之下 在春秋後二十七年하다


27년 봄에 월자越子후용后庸을 보내와서 빙문聘問하고注+[부주]朱: 구천句踐이 그 대부大夫후용后庸나라에 보내어 빙문聘問한 것이다., 또 〈나라가 침탈한〉 나라 토지를 반환하고 양국의 국경을 태상駘上으로 정할 것을 말하였다.注+나라로 하여금 나라의 토지土地를 돌려주고 태상駘上국경國境으로 정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2월에 평양平陽에서 결맹할 때注+서평양西平陽이다. 세 사람이 모두 애공哀公수행隨行하였는데注+계강자季康子, 숙손문자叔孫文子, 맹무백孟武伯이 모두 후용后庸결맹結盟한 것이다. , 계강자季康子가 〈만이국蠻夷國결맹結盟하는 것을〉 수치羞恥로 여겨注+만이蠻夷결맹結盟하는 것을 수치羞恥로 여긴 것이다. 자공子贛(子貢)을 언급言及하며注+자공子贛을 생각한 것이다. 말하기를 “만약 자공子贛이 이곳에 있었다면 우리가 이런 맹약盟約을 맺는 데는 미치지 않았을 것이오.注+나라와 결맹結盟하는 데는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부주]林: 자공子貢(子贛)이 애공哀公 12년에 나라가 요구하는 심맹尋盟을 사절한 적이 있기 때문에 계강자季康子가 그를 생각한 것이다. ”라고 하니, 무백武伯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어찌하여 그를 부르지 않았습니까?”라고 하였다.
강자康子가 말하기를 “본래 그를 부르려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문자文子가 말하기를 “앞으로는 〈그를 잊지 말고〉 생각하십시오.注+계손季孫이 능히 자공子贛을 등용하지 못하고, 곤난困難한 일이 닥치자 그를 생각한 것이다. [부주]朱: 숙손문자叔孫文子강자康子가 후일에 자공子贛을 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여름 4월 기해일己亥日계강자季康子하였다.
애공哀公조상弔喪할 때 를 낮추어 시행하였다.注+를 갖추지 않은 것이다. 애공哀公의 망령된 행동이 많았음을 말한 것이다.
나라 순요荀瑤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가서 동구桐丘에 주둔하니, 나라 사홍駟弘나라에 구원救援을 요청하였다.注+사천駟歂의 아들이다.
나라가 원군援軍출동出動[興]시키려 할 때 진성자陳成子전사자戰死者의 아들들을 불러모아 3일 동안 조정朝廷注+국사國事에 죽은 자들의 아들들을 소집召集하여 3일 동안 입조入朝시켜 예우禮遇한 것이다. 출사出仕시켜 예우禮遇하였다.〉
두 마리의 말을 메운 수레(大夫의 수레)를 설치設置하고 다섯 개 의 이름을 써서注+승거양마乘車兩馬대부大夫복식服飾이다. 또 거기에다가 오읍五邑을 보탠 것이다. 〈그 수레에〉 매달아놓고서, 안탁취顔涿聚의 아들 을 불러注+[부주]林: 탁취涿聚의 아들 이름이다. 말하기를
전쟁戰爭 때 너의 부친父親전사戰死하였으나注+의 전쟁은 애공哀公 23년에 있었다. [부주]林: 바로 이구犂丘전쟁戰爭이다. (너)이다. , 국가國家환난患難이 많음으로 인해 너에게 아직 휼전恤典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이제 임금님께서 너에게 이 (下賜)하셨으니, 이 수레를 타고 가 조현朝見하고서 〈출전出戰하여〉 네 선인先人공로功勞폐기廢棄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발하여 유서留舒에 다다랐다.
이곳은 에서 7 거리인데도 곡인穀人은 〈제군齊軍이 온 것을〉 알지 못하였다.注+제군齊軍정숙整肅했음을 말한 것이다. 유서留舒나라 땅이다. (距離)이다.
복수濮水에 당도하여 큰비를 만나 제군齊軍이 물을 건너려 하지 않으니注+복수濮水진류陳留산조현酸棗縣방하傍河에서 동북으로 흘러 제음濟陰을 지나 고평高平에 이르러 제수濟水로 들어간다. , 자사子思가 〈성자成子에게〉 말하기를 “대국大國(晉)이 우리나라 처마 밑에 와 있기 때문에 나라에 위급危急함을 고한 것인데, 지금 제군齊軍행진行進하려 하지 않으니 미칠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注+자사子思국참國參이다. [부주]林: 나라가 대국大國으로 가까이 나라의 우하宇下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니,
성자成子우의雨衣를 입고 창을 짚고注+우의雨衣이다. 복수濮水의 둑 위에 서서注+[부주]林: 복수濮水의 둑 위에 선 것이다. 앞으로 나가지 않는 말에게는 군인을 도와 대신 채찍질을 하였다.注+[부주]林: 군인軍人을 도와 그 말에 채찍을 친 것이다.
지백知伯은 이 소식을 듣고 곧 환군還軍하며注+성자成子군중軍衆의 마음을 얻은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말하기를 “나는 나라 토벌만을 점쳤고, 제군齊軍대적對敵하는 것은 점치지 않았다.”고 하고서, 사람을 보내어 성자成子에게 말하기를 “대부大夫진자陳子는 근본이 나라에서 나왔고注+[부주]林: 진성자陳成子가 실로 〈그 근본이〉 나라에서 나온 것을 이른다. , 나라가 멸망한 것은 나라의 죄입니다.注+17년에 나라가 단독으로 나라를 멸망시켰으니 나라의 죄가 아니다. 지백知伯진자陳子에게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에 진자陳子가 노하여 그가 남을 업신여김이 많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임금께서 나를 보내어 나라가 멸망滅亡내정內情[衷]을 살피게 하시면서注+이다. [부주]林: 진군晉君이 나를 보내어 나라의 좋은 점을 살펴 나라의 를 토벌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대부大夫는 어찌하여 나라를 걱정하느냐고 이르라.注+[부주]林: 대부大夫진성자陳成子를 이른다. ‘그가 나라를 걱정하여 우리와 함께 나라를 토벌할 것인가.’라는 말이다. ’고 하셨습니다.
만약 대부大夫께서 근본이 전복顚覆된 것을 이롭게 여기신다면注+[부주]林: ‘만약 진성자陳成子근본根本경복傾覆된 것을 이롭게 여긴다면’이라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상관하겠습니까?注+나라가 멸망한 것이 자기에게 해로울 게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성자成子가 노하여 말하기를 “남을 많이 업신여긴 자는 모두 그 자리에 있지 못하였으니, 지백知伯이 어찌 장구長久할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남을 많이 침모侵侮한 자는 모두 그 지위地位에 있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중행문자中行文子진성자陳成子에게注+중행문자中行文子순인荀寅이다. 이때 도망해 와서 나라에 있었다. 고하기를 “어떤 자가 나라 군중軍中에서 나에게 통고通告하기를 ‘진군晉軍경거輕車천승千乘출동出動하여 제군齊軍군문軍門제압制壓하면 제군齊軍을 다 섬멸殲滅할 수 있다고 한다.注+[부주]林: 제군齊軍영문營門제압制壓하고서 근접近接제군齊軍교전交戰하면 제군齊軍을 다 죽이고 승리勝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성자成子가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나에게 명하기를 ‘적군이 적다 하여 추급追及(追擊)하지 말고, 많다 하여 두려워하지 말라.注+[부주]林: 적군敵軍이 적고 약하다 하여 업신여겨 학살虐殺하지 말고, 많고 강하다 하여 두려워 피하지 말라는 말이다. ’고 하셨으니, 〈진군晉軍전거戰車가〉 비록 천승千乘이 넘는다 하더라고 어찌 감히 피하겠습니까?
내 장차 그대의 말을 우리 임금님께 보고하겠습니다.注+진성자陳成子중행문자中行文子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문자文子가 〈한탄恨歎하며〉 말하기를 “나는 이제야 내가 망명亡命하게 된 까닭을 알았다.注+자기의 무지無知를 스스로 한탄한 것이다. [부주]林: 무지無知하여 멸망滅亡자초自招한 것을 스스로 한탄한 것이다.
군자君子가 일을 계획함에 있어 시작과 중간과 끝을 〈생각하여〉 모두 거행할 만한 뒤에야 들어가서 윗사람에게 고하는 것인데注+한 가지 일을 계획할 때는 응당 이 세 번의 변화를 고려考慮한 뒤에 들어가서 시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군자의 삼사三思’이다. [부주]林: 무릇 군자君子가 일을 계획함에는 그 시작을 생각한 뒤에 또 그 중간을 생각하고, 다시 그 끝을 생각하여 시작과 중간과 끝을 모두 계획하는 것이다. , 지금 나는 세 번 생각해야 함을 알지 못하고서 들어가 고하였으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注+자기의 말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을 후회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애공哀公삼환三桓위세威勢를 걱정하여 제후諸侯를 이용하여 삼환三桓을 제거하고자 하니注+제후諸侯의 군대를 청구請求하여 삼환三桓을 축출하려 한 것이다., 삼환三桓애공哀公의 망령됨을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군신 사이에 틈이 많이 생겼다.注+은 틈이다.
애공哀公능판陵阪에서 노닐다가 맹무백孟武伯맹씨孟氏의 갈림길에서 만나注+[부주]林: 맹손孟孫구도衢道(갈림길)에서 만난 것이다.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에게 묻노니 내가 수명으로 죽을 수 있겠는가?注+내가 수명으로 죽을 수 있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라고 하니, 맹무백孟武伯은 “신은 알 수 없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세 차례 물었으나, 끝내 사양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애공哀公나라를 이용해 나라를 쳐서 삼환三桓을 제거하려 하여 가을 8월 갑술일甲戌日애공哀公공손公孫유형씨有陘氏의 집으로 가서注+유형씨有陘氏는 바로 유산씨有山氏이다. 기회를 타 나라로 갔다가 드디어 나라로 가니注+[부주]林: 나라에서 드디어 나라로 도망간 것이다. , 국인國人공손公孫유산씨有山氏에게 시행施行하였다.注+애공哀公유산씨有山氏의 집에서 출분出奔하였기 때문이다. 끝내 ‘임금님은 나라에서 죽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자공子贛의 말과 같이 되었다. [부주]林: 유산씨有山氏에게 을 시행한 것이다.
노도공魯悼公 4년에 나라 순요荀瑤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포위하였다.注+노도공魯悼公애공哀公의 아들 이다. 애공哀公이 도망[出孫]갔으므로 노인魯人도공悼公을 세웠다.
진군晉軍나라에 이르기 전에 나라 사홍駟弘이 말하기를 “지백知伯은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이기기를 좋아하니, 우리가 조기早期에 항복하면 진군晉軍을 돌아가게 할 수 있다.注+은 떠나감이다. [부주]林: 일찍이 항복하여 몸을 낮추면 나라 군대를 떠나가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이에 먼저 남리南里로 가서 지키면서 진군晉軍을 기다리고 있었는데注+는 지킴이다. 남리南里성외城外에 있다. , 지백知伯남리南里로 들어와서 길질桔柣성문城門을 공격하였다.
정인鄭人휴괴루酅魁壘생포生捕하여注+휴괴루酅魁壘나라의 이다. 지정知政으로 유인誘引하니注+그로 하여금 나라를 배반背反하고 나라를 위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부주]林: 지정知政(卿)을 뇌물賂物로 삼아 휴괴루酅魁壘유인誘引한 것이다. , 휴괴루酅魁壘는 입을 닫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서〉 죽었다.注+[부주]林: 나라 휴괴루酅魁壘가 입을 닫고 대답하지 않고 죽은 것이다.
진군晉軍성문城門을 공격하려 할 때注+나라 성문城門을 공격한 것이다. 지백知伯조맹趙孟에게 쳐들어가라고 하니注+[부주]林: 조양자趙襄子에게 먼저 나라 성문城門으로 쳐들어가게 한 것이다. , 조맹趙孟이 “주장主將이 이곳에 계시는데注+지백知伯을 이른다. 주장主將은 이곳에 있으면서 어찌하여 직접 쳐들어가지 않느냐는 말이다. , 〈내가 어찌 감히 먼저 쳐들어가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지백知伯이 말하기를 “못생긴 데다가 용맹마저 없으면서 어떻게 〈조씨가趙氏家의〉 사자嗣子가 되었는가?注+은 얼굴이 못생긴 것이다. 조간자趙簡子적자嫡子백로伯魯하고 조양자趙襄子를 세웠기 때문에 지백知伯이 “양자襄子는 못생기고 또 용기勇氣도 없는데, 무슨 이유로 그를 세워 사자嗣子로 삼았느냐.”고 말한 것이다. ”라고 〈조롱하니〉, 조맹趙孟이 “나는 치욕恥辱을 잘 참기 때문에 거의 조씨趙氏종족宗族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지백知伯은 끝내 뉘우치지 않았다.
조양자趙襄子가 이 일로 인해 지백知伯해독害毒으로 여기니注+이다. , 지백知伯은 드디어 조맹趙孟멸망滅亡[喪]시키려 하였다.
지백知伯이 탐욕스럽고 강퍅하기 때문에 한씨韓氏위씨魏氏가 도리어 〈조맹趙孟공모共謀하여〉 지백知伯을 멸망시켰다.注+사기史記》에 의하면 진의공晉懿公 4년, 곧 노도공魯悼公 14년에 지백知伯한씨韓氏위씨魏氏를 거느리고서 진양晉陽에서 조양자趙襄子를 포위하였는데, 한씨韓氏위씨魏氏가 도리어 조씨趙氏모의謀議하여 지백知伯진양성晉陽城 아래서 죽였다. 이 일은 《춘추春秋》 27년 뒤에 있다.


역주
역주1 繫五邑焉 : 邑을 걸어놓은 것이 아니라 下賜할 邑의 圖籍을 기록한 竹簡을 매달아 놓은 것인 듯하다.
역주2 大國在敝邑之宇下 : 大國은 晉나라이니, 晉나라가 코앞까지 쳐들어왔다는 말이다. 《左氏會箋》에 “이때 晉軍이 桐丘에 駐屯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처마 밑에 있다.’고 한 것이다. 或者의 말처럼 大國이 齊나라라면 ‘敝邑在大國之宇下’라고 해야 되고, ‘大國在敝邑之宇下’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역주3 恐無及也 : 나라가 亡하기 전에 미처 救援할 수 없을까 두렵다는 말이다.
역주4 漢[濮] : 저본에는 ‘漢’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濮’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察陳衷焉 : 衷는 情實(實際의 情況)이니, 陳나라가 滅亡한 실제의 정황을 살피게 하였다는 말이다. 衷을 善으로 訓釋한 〈杜注〉는 옳지 않다. 參考文獻 《左氏會箋》, 〈楊注〉 등.
역주6 大夫其恤陳乎 : 其는 豈不의 合詞로 쓰인 듯하니, 大夫는 어찌하여 陳나라를 걱정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역주7 以厭(압)齊師之門 則可盡也 : 厭은 壓과 같다. 晉軍이 장차 輕車로써 齊軍 가까이 와서 軍門을 공격하면 齊軍을 다 殲滅할 수 있는 말이다. 〈楊注〉
역주8 始衷終皆擧之 而後入焉 : 시작을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중간에 진행을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끝을 어찌 맺어야 할지를 생각하여, 세 번의 생각에 의심이 없어 모두 거행할 만한 뒤에야 들어가 윗사람에게 고한다는 말이다. 《正義》에는 ‘擧’를 ‘擧行’의 뜻으로, ‘入’을 ‘注入’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며, 《左氏會箋》에는 ‘擧’를 ‘모두’의 뜻으로, ‘入’을 ‘과감하게 가서 그 일을 실행함’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며, 〈楊注〉에는 ‘擧’를 ‘謀’로 해석하고, ‘入’을 ‘들어가서 윗사람에게 고함’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譯者는 ‘擧’는 《正義》의 설을 취하고, ‘入’은 〈楊注〉의 설을 취하여 번역하였다.
역주9 不亦難乎 : 함부로 행동하여 禍를 취한 것을 후회한 것이다. ‘言不可復’이라고 한 〈杜注〉는 妥當하지 않다. 《左氏會箋》
역주10 施公孫有山氏 : ‘施’는 哀公 26년 傳의 ‘使國人施于大尹’의 譯註 참고.
역주11 主在此 : 趙孟은 知伯이 鄭人의 손을 빌려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것을 알고서, ‘나는 進退를 오직 知伯을 따랐는데, 지금 知伯이 이곳에 있으니, 감히 먼저 들어갈 수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 것이다. 《左氏會箋》

춘추좌씨전(8)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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