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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6)

춘추좌씨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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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二年春 齊侯伐莒하다
22년 봄에 제후齊侯나라를 토벌하였다.
[經]宋華亥向寧華定 自宋南里出奔楚注+言自南里 別從國去하다
나라 화해華亥상녕向寧화정華定나라 남리南里에서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자남리自南里’라고 말하여 나라 국도國都에서 떠난 것과 구별하였다.
[經]大蒐于昌間注+無傳하다
창간昌間에서 성대盛大하게 열병식閱兵式을 거행하였다.注+이 없다.
[經]夏四月乙丑 天王崩하다
여름 4월 을축일乙丑日천왕天王하였다.
[經]六月 叔鞅如京師하야 葬景王注+叔鞅 叔弓子 三月而葬 亂故速하다
6월에 숙앙叔鞅경사京師에 가서 경왕景王장례葬禮회장會葬하였다.注+숙앙叔鞅숙궁叔弓의 아들이다. 석 달 만에 장사葬事 지낸 것이다. 난리亂離 때문에 빨리 지낸 것이다.
[經]王室亂注+承叔鞅言而書之 未知誰是 故但曰亂 하다
왕실王室변란變亂이 일어났다.注+숙앙叔鞅의 말을 듣고 기록한 것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이라고만 기록한 것이다.
[經]劉子單子以王猛居于皇注+河南鞏縣西南有黃亭 辟子朝難 出居皇 王猛書名 未卽位하다
유자劉子단자單子왕자王子을 모시고 거주居住하였다.注+하남河南공현鞏縣 서남쪽에 황정黃亭이 있다. 왕자王子을 피해 나가서 거주居住한 것이다. 왕자王子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아직 즉위전卽位前이기 때문이다.
[經]秋 劉子單子以王猛入于王城注+王城郟鄏 今河南縣 晉助猛 故得還王都하다
가을에 유자劉子단자單子왕자王子을 모시고 왕성王城으로 들어갔다.注+왕성王城겹욕郟鄏으로 지금의 하남현河南縣이다. 나라가 을 도왔기 때문에 왕도王都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經]冬十月 王子猛卒注+未卽位 故不言崩 하다
겨울 10에 왕자王子하였다.注+즉위卽位하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經]十有二月癸酉朔 日有食之注+無傳 此月有庚戌 又以長歷推校前後 當爲癸卯朔 書癸酉誤하다
12월 초하루 계유일癸酉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이 달에 경술일庚戌日이 있고, 또 장력長歷으로 전후前後추산推算해 따져보면 계묘삭癸卯朔이 되는 것이 마땅하니, 계유癸酉로 기록한 것은 오류誤謬이다.
[傳]二十二年春王二月甲子 齊北郭啓帥師伐莒注+啓 齊大夫 北郭佐之後하다
22년 봄 주왕周王 2월 갑자일甲子日나라 북곽계北郭啓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나라 대부大夫북곽좌北郭佐후예後裔이다.
莒子將戰하니 苑羊牧之諫注+牧之 莒大夫曰 齊帥賤注+[附注] 林曰 言北郭啓非卿帥師 하야 其求不多리니 不如下之니이다
거자莒子응전應戰하려 하니 원양목지苑羊牧之하기를注+목지牧之나라 대부大夫이다. 나라 장수將帥신분身分비천卑賤하여注+[부주]林: 이 아닌 북곽계北郭啓가 군대를 거느렸기 때문에 ‘’하다고 말한 것이다. 요구要求가 많지 않을 것이니 항복降服[下]하는 것만 못합니다.
大國不可怒也니이다 弗聽하고 敗齊師于壽餘注+莒地하다
대국大國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고 하였으나, 거자莒子는 듣지 않고서 제군齊軍수여壽餘에서 패배敗北시켰다.注+수여壽餘나라 땅이다.
齊侯伐莒注+怒敗하니 莒子行成하다
제후齊侯가 〈대노大怒하여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니注+대국大國하게 하였으므로 패배敗北한 것이다. , 거자莒子화친和親하였다.
司馬竈如莒涖盟注+竈 齊大夫하고 莒子如齊涖盟하야 盟于稷門之外注+稷門 齊城門也하다
사마司馬나라로 들어가서 결맹結盟에 참여하고注+나라 대부大夫이다. 거자莒子나라로 가서 결맹結盟에 참여하고서 직문稷門 밖에서 맹약盟約하였다.注+직문稷門나라 성문城門이다.
莒於是乎大惡其君注+爲明年莒子來奔傳하다
나라 사람들은 이로 인해 그 임금을 크게 미워하였다.注+명년明年거자莒子나라로 도망해 온 의 배경이다.
[傳]楚薳越使告于宋曰 寡君聞君有不令之臣爲君憂注+[附注] 林曰 宋君有不用命令之臣 如華向等 爲宋君之憂患하니 無寧以爲宗羞注+無寧 寧也 言華氏爲宋宗廟之羞恥 寡君請受而戮之라한대
나라 위월薳越사자使者를 보내어 나라에 하기를 “우리 임금님께서는 임금님(宋君을 이름)께 불선不善한 신하가 있어 임금님의 근심이 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注+[부주]林: 송군宋君에게 명령命令을 따르지 않는 화씨華氏상씨向氏 같은 신하들이 있어서 송군宋君우환憂患거리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어찌 종묘宗廟수치羞恥가 아니겠는가?注+무녕無寧(어찌)이다. 화씨華氏나라 종묘宗廟수치羞恥가 된다는 말이다. ’라고 하시면서 우리 임금께서 그 불선不善한 자들을 접수接受하여 처벌處罰하기를 청하십니다.”고 하자,
對曰 孤不佞하야 不能媚於父兄注+華向 公族也 故稱父兄하야 以爲君憂하니 拜命之辱하노라
송원공宋元公이 대답하기를 “내가 변변치 못해 부형父兄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여注+화씨華氏상씨向氏공족公族이기 때문에 ‘부형父兄’이라고 한 것이다. , 임금님(楚君)께 걱정을 끼쳤는데도 〈임금님께서 관심關心을 보이시어〉 이렇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抑君臣日戰注+[附注] 林曰 宋之君臣每日爭戰 君曰 余必臣是助라도 亦唯命이어니와 人有言曰 喩亂門之無過라하니 君若惠保敝邑인댄 하야 以獎亂人하라
그러나 우리 군신君臣이 날마다 서로 싸우는 것인데注+[부주]林: 나라의 군신君臣이 매일 쟁전爭戰한다는 말이다. , 임금님(楚君)께서 ‘나는 반드시 신하를 돕겠다.’고 하시더라도 나는 을 따르겠습니다만 사람들의 말에 ‘을 일으킨 자의 문 앞을 지나지 말라.’고 하였으니, 임금님께서 만약 우리나라를 보호保護하려 하신다면 불충不忠[不衷]한 자들을 비호庇護[亢]하여 난인亂人들을 장려獎勵하지 마십시오.
孤之望也 唯君圖之注+[附注] 林曰 無爲高亢 不叶中正之事하라 楚人患之注+患宋以義距之하다
이것이 나의 바람이니 임금님께서는 깊이 생각하십시오.注+[부주]林: 고상高尙하고 강직剛直[亢]하여 중정中正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라고 하니, 초인楚人이 걱정하였다.注+송군宋君의리義理로써 거절距絶하기 때문에 걱정한 것이다.
諸侯之戍謀注+[附注] 林曰 諸侯之大夫戍宋者聚謀曰 若華氏知困而致死하고 楚恥無功而疾戰이면 非吾利也 不如出之하야 以爲楚功注+[附注] 林曰 不如解圍 聽華向出奔이라
나라를 수위戍衛하고 있는 제후국諸侯國장수將帥들이注+[부주]林: 제후諸侯대부大夫나라를 수위戍衛하는 자들이 모여 상의[謀]한 것이다. 상의하기를 “만약 화씨華氏곤난困難해질 것을 알고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초군楚軍이 없이 돌아가는 것을 수치羞恥로 여겨 속전速戰한다면 우리에게 불리不利하니, 화씨華氏를 내보내어 나라가 을 세우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注+[부주]林: 포위包圍를 풀어 화씨華氏상씨向氏출분出奔하도록 허락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其亦無能爲也已注+言華氏不能復爲宋患리라
화씨華氏는 다시 아무 짓도 할 수 없을 것이다.注+화씨華氏가 다시 나라에 환해患害를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救宋而除其害 又何求리오 乃固請出之하니 宋人從之하다
나라를 구원救援하고 그 해악害惡제거除去할 수 있다면 다시 무엇을 바라겠는가?”라고 하고서, 화씨華氏를 내보내기를 굳이 요청하니, 송인宋人이 그 요청을 따랐다.
己巳 宋華亥向寧華定華貙華登皇奄傷省臧士平出奔楚注+華貙已下五子不書 非卿하다
기사일己巳日나라 화해華亥상녕向寧화정華定화추華貙화등華登황엄상皇奄傷성장省臧사평士平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화추華貙 이하 다섯 사람을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기 때문이다.
宋公使公孫忌爲大司馬注+代華費遂하고 邊卬爲大司徒注+卬 平公曾孫 代華定하고 樂祁爲司注+祁 子罕孫樂祁犂하고 仲幾爲左師注+幾 仲江孫 代向寧하고 樂大心爲右師注+代華亥하고 樂輓爲大司寇注+輓 子罕孫하야 以靖國人注+終梓愼之言 三年而後弭 하다
송원공宋元公공손公孫대사마大司馬注+화비수華費遂의 뒤를 이은 것이다. , 변앙邊卬대사도大司徒注+평공平公증손曾孫이다. 화정華定의 뒤를 이은 것이다. , 악기樂祁사성司城으로注+자한子罕의 손자 악기리樂祁犂이다. , 중기仲幾좌사左師注+중강仲江의 손자이다. 상녕向寧의 뒤를 이은 것이다. , 악대심樂大心우사右師注+화해華亥의 뒤를 이은 것이다. , 악만樂輓대사구大司寇로 삼아注+자한子罕의 손자이다. 국인國人안정安靖시켰다.注+20년 에 “3년이 지난 뒤에 안정安定될 것이다.”고 한 재신梓愼의 말대로 되었다.
[傳]王子朝賓起有寵於景王注+子朝 景王之長庶子 賓起 子朝之傅이러니
왕자王子빈기賓起경왕景王총애寵愛를 받았다.注+자조子朝경왕景王장서자長庶子이고, 빈기賓起자조子朝사부師傅이다.
王與賓孟하야 欲立之注+孟 卽起也 王語賓孟 欲立子朝爲大子하다
경왕景王빈맹賓孟자조子朝를 좋아하여 그를 태자太子로 세우고자 하였다.注+은 바로 이다. 경왕景王빈맹賓孟에게 자조子朝를 세워 태자太子로 삼고자 한다고 말한 것이다.
劉獻公之庶子伯蚡事單穆公注+獻公 劉摯 伯蚡 劉狄 穆公 單旗이러니 惡賓孟之爲人也하야 願殺之하고 又惡王子朝之言하야 以爲亂이라하야 願去之注+子朝有欲位之言 故劉蚡惡之하다
유헌공劉獻公서자庶子백분伯蚡단목공單穆公을 섬기고 있었는데注+헌공獻公유지劉摯이고, 백분伯蚡유적劉狄이고, 목공穆公단기單旗이다. , 빈맹賓孟의 사람됨을 미워하여 죽이고자 하였고, 또 왕자王子의 말을 미워하여 반란叛亂을 일으키려 한다고 여겨 제거除去하고자 하였다.注+자조子朝왕위王位에 오르고자 한다는 말을 하였기 때문에 유분劉蚡이 그를 미워한 것이다.
賓孟適郊하야 見雄雞自斷其尾하고 問之하니 侍者曰 自憚其犧也注+畏其爲犧牲奉宗廟 故自殘毁니라
빈맹賓孟교외郊外로 가서 수탉이 스스로 그 꼬리를 부리로 쪼아 없앤 것을 보고서 그 까닭을 물으니, 그 시종侍從이 “희생犧牲이 되는 것을 싫어하여 스스로 꼬리를 쪼아 없앤 것입니다.注+닭은 제가 희생犧牲이 되어 종묘宗廟에 바쳐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스스로 훼손毁損한 것이다. ”고 하였다.
遽歸告王하고 且曰 雞其憚爲人用乎ᄂ저 人異於是注+雞犧雖見寵飾 然卒當見殺 若人見寵飾 則當貴盛 故言異於雞하니이다
빈맹賓孟은 급히 돌아와서 경왕景王께 이 일을 하고, 또 “닭은 아마도 사람의 희생犧牲으로 쓰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만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注+희생犧牲으로 기르는 닭은 비록 사람의 사랑과 꾸며줌을 받지만 끝내는 죽임을 당한다. 사람의 경우는 〈임금의〉 사랑과 꾸며줌을 받으면 당연히 귀성貴盛해지기 때문에 닭과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
犧者實用人注+[附注] 林曰 爲犧者 實爲人所用이니 人犧實難이어니와 己犧何害注+言設使寵人如寵犧 則不宜假人以招禍難 使犧在己 則無患害 己喩子朝 欲使王早寵異之리잇가 王弗應注+十五年大子壽卒 王立子猛 後復欲立子朝而未定 賓孟感雞 盛稱子朝 王心許之 故不應하다
희생犧牲은 실로 사람의 쓰임이 되는 것이니注+[부주]林: 희생이 되는 것이 실로 사람의 쓰임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 다른 사람을 희생犧牲(太子를 비유함)으로 삼는다면 실로 화난禍難을 부를 우려가 있지만 내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자(子朝)를 희생犧牲으로 삼는다면 무슨 해가 있겠습니까?注+설사 총인寵人총희寵犧와 같다 하더라도 총인寵人에게 권한權限을 빌려주어 화난禍難을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조子朝[己]를 총희寵犧(太子)로 삼는다면 환해患害가 없다는 말이다. 자조子朝를 비유한 것이니, 경왕景王으로 하여금 조속早速자조子朝를 특별히 총애寵愛하여 〈태자太子로 세우게〉 하고자 한 것이다. ”라고 하니, 경왕景王은 대답하지 않았다.注+소공昭公 15년에 태자太子하자, 경왕景王왕자王子태자太子로 세웠다. 뒤에 다시 자조子朝태자太子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아직 결정決定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빈맹賓孟희계犧雞에서 느낌을 받고서 자조子朝를 성대하게 칭찬하니 경왕景王은 마음속으로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夏四月 王田北山 使公卿皆從하야 將殺單子劉子注+北山 洛北芒也 王知單劉不欲立子朝 欲因田獵先殺之러니 王有心疾하야 乙丑 崩于錡氏注+四月十九日 河南鞏縣西有樂[榮]錡澗하다
여름 4월에 경왕景王북산北山에서 사냥할 때 공경公卿들을 다 따르게 하고서 단자單子유자劉子를 죽이려 하였는데注+북산北山낙양洛陽북망산北芒山이다. 경왕景王단목공單穆公유헌공劉獻公자조子朝태자太子로 세우는 일에 순종順從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냥하는 기회를 이용해 그들을 먼저 죽이고자 한 것이다. , 경왕景王심질心疾발생發生하여 을축일乙丑日영기씨榮錡氏의 집에서 하였다.注+을축일乙丑日은 4월 19일이다. 하남河南공현鞏縣 서쪽에 영기간榮錡澗이 있다.
戊辰 劉子摯卒注+二十二日하다
무신일戊辰日유자劉子하였다.注+무신일戊辰日은 22일이다.
無子하니 單子立劉蚡注+蚡事單子故하다
뒤를 이을 적자適子가 없으니 단자單子가 그 서자庶子유분劉蚡후사後嗣로 세웠다.注+유분劉蚡단자單子를 섬겼기 때문이다.
五月庚辰 見王注+見王猛하고 遂攻賓起하야 殺之注+黨子朝故하고 盟群王子于單氏注+王子猛次正 故單劉立之 懼諸王子或黨子朝 故盟之하다
유분劉蚡이〉 5월 경진일庚辰日왕맹王猛(悼王)을 알현謁見하고서注+왕맹王猛알현謁見한 것이다. 빈기賓起를 공격해 죽이고注+자조子朝를 도왔기 때문이다. , 왕자王子들과 단씨單氏의 집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왕자王子차정次正(正室夫人의 차자次子)이다. 그러므로 단목공單穆公유헌공劉獻公이 그를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여러 왕자王子들이 혹 자조子朝를 도울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왕자王子들과 맹약盟約한 것이다.
[傳]晉之取鼓也注+在十五年 旣獻而反鼓子焉注+獻於廟이러니 又叛於鮮虞注+叛晉屬鮮虞하다
나라가 고국鼓國하였을 때注+소공昭公 15년에 있었다.종묘宗廟부로俘虜를 바친 뒤에 고자鼓子를 돌려보냈더니注+종묘宗廟에 바친 것이다. , 고국鼓國이 또 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선우鮮虞에 붙었다.注+나라를 배반하고 선우鮮虞에 붙은 것이다.
六月 荀吳略東陽注+略 行也 東陽 晉之山東邑 魏郡廣平以北할새 使師僞糴者負甲以息於昔陽之門外注+昔陽 故肥子所都라가 遂襲鼓滅之하고 以鼓子鳶鞮歸하다
6월에 순오荀吳동양東陽순행巡行할 때注+순행巡行함이다. 동양東陽나라 산동山東으로 위군魏郡광평廣平 이북을 이른다. 군대를 양곡을 구매購買하는 자로 위장시켜 속에 갑옷을 입고서 석양문昔陽門 밖에서 쉬게 하였다가注+석양昔陽은 옛날에 비자肥子도읍都邑했던 곳이다. 드디어 고국鼓國습격襲擊멸망滅亡시키고서 고자鼓子연제鳶鞮를 잡아 데리고 돌아왔다.
使涉佗守之注+守鼓之地 涉佗 晉大夫하다
섭타涉佗를 보내어 고국鼓國을 지키게 하였다.注+고국鼓國의 땅을 지키게 한 것이다. 섭타涉佗나라 대부大夫이다.
[傳]丁巳 葬景王하다
정사일丁巳日경왕景王을 장사 지냈다.
王子朝因舊官百工之喪職秩者與靈景之族以作亂注+百工 百官也 靈王 景王之子孫하야 帥郊要餞之甲注+三邑 周地하야 以逐劉子注+逐伯蚡하니 壬戌 劉子奔揚注+揚 周邑하다
왕자王子가 옛 관료官僚백관百官 중에 관직官職을 잃은 자와 영왕靈王경왕景王족인族人을 거느리고 반란叛亂을 일으켜注+백공百工백관百官이다. 영왕靈王경왕景王자손子孫이다. , 전읍餞邑의 군대를 거느리고서注+나라 땅이다. 유자劉子추격追擊하니注+백분伯蚡추격追擊한 것이다. , 임술일壬戌日유자劉子으로 달아났다.注+나라 이다.
單子逆悼王于莊宮以歸注+悼王 子猛也러니 王子還夜取王以如莊宮注+王子還 子朝黨也 不欲使單子得王猛 故取之하다
단자單子장궁莊宮으로 가서 도왕悼王을 맞이해 자기 집으로 모시고 왔는데注+도왕悼王자맹子猛이다. , 왕자王子이 밤에 을 빼앗아 장궁莊宮으로 데리고 갔다.注+왕자王子자조子朝이다. 단자單子왕맹王猛을 데리고 있지 못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왕맹王猛을 빼앗아간 것이다.
癸亥 單子出注+失王 故出奔하다
계해일癸亥日단자單子도성都城 밖으로 탈출脫出하였다.注+을 잃었기 때문에 출분出奔한 것이다.
王子還與召莊公謀注+莊公 召伯奐 子朝黨也曰 不殺單旗 不捷注+旗 單子也이니 與之重盟이면 必來注+[附注] 林曰 若與單子重爲盟誓 單子必信而來歸 리라
왕자王子소장공召莊公과 상의하기를注+장공莊公소백召伯으로 자조子朝이다. 단기單旗를 죽이지 않고는 승리勝利할 수 없으니注+단자單子이다. , 그에게 거듭 결맹結盟하자고 청하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注+[부주]林: 만약 단자單子에게 거듭 맹서盟誓하자고 하면 단자單子는 반드시 믿고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이다.
背盟而克者多矣니라 從之注+從還謀也하다
맹약盟約배반背叛하고서 승리勝利한 자가 많습니다.”고 하니, 소장공召莊公이 그의 말을 따랐다.注+왕자王子계모計謀를 따른 것이다.
樊頃子曰 非言也 必不克注+頃子 樊齊 單劉黨 [附注] 林曰 王子還之謀 非有德之言 하리라
번경자樊頃子가 말하기를 “사리에 맞는 말이 아니니 반드시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注+경자頃子번제樊齊단자單子유자劉子이다. [부주]林: 왕자王子계모計謀유덕자有德者의 말이 아니니 〈반드시 승리勝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遂奉王以追單子注+王子還奉王하야 及領하야 大盟而復注+領 周地 欲重盟 令單子劉子復歸하야 殺摯荒以說注+委罪於荒 [附注] 林曰 王子還委罪於摯荒而殺之 以自解說 하다
왕자王子을 모시고 단자單子를 뒤쫓아 가서注+왕자王子을 모시고 간 것이다. 에 이르러 〈단자單子를 만나〉 결맹結盟하고 돌아와서注+나라 땅이다. 거듭 결맹結盟하자고 요청하여 단자單子유자劉子가 다시 돌아오게 하려 한 것이다. 지황摯荒을 죽여 〈밤에 을 빼앗아간 것이 지황摯荒의 짓이고 자기의 짓이 아님을〉 해명解明[說]하였다.注+지황摯荒에게 를 떠넘긴 것이다. [부주]林: 왕자王子지황摯荒에게 떠넘겨 그를 죽여, 자신의 무죄無罪함을 해명解明한 것이다.
劉子如劉注+歸其采邑하고 單子亡하다
유자劉子유읍劉邑으로 가고注+자기의 채읍采邑으로 돌아간 것이다. , 단자單子는 도망하였다.
乙丑 奔于平畤注+平畤 周地 知王子還欲背盟 故亡走러니 群王子追之어늘 單子殺還姑發弱鬷延定稠注+八子 靈景之族 因戰而殺之하니 子朝奔京注+其黨死故하다
을축일乙丑日평치平畤로 도망하였는데注+평치平畤나라 땅이다. 왕자王子맹약盟約배반背叛하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도망간 것이다. , 왕자王子들이 그를 추격追擊하자 단자單子를 죽이니注+여덟 사람은 영왕靈王경왕景王족인族人이다. 교전交戰하는 기회를 이용해 그들을 죽인 것이다. , 자조子朝경읍京邑으로 달아났다.注+자기의 무리가 죽었기 때문이다.
丙寅 伐之注+單子伐京하니 京人奔山하다
병인일丙寅日단자單子경읍京邑을 공격하니注+단자單子경읍京邑을 친 것이다. 경인京人들이 으로 도망갔다.
劉子入于王城注+子朝奔京 故得入하다
유자劉子왕성王城으로 들어왔다.注+자조子朝경읍京邑으로 도망갔기 때문에 〈유자劉子왕성王城으로〉 들어온 것이다.
辛未 鞏簡公敗績于京하다 乙亥 甘平公亦敗焉注+甘鞏二公 周卿士 皆爲子朝所敗하다
신미일辛未日공간공鞏簡公에서 대패大敗하고, 을해일乙亥日감평공甘平公 역시 패배敗北하였다.注+감평공甘平公공간공鞏簡公나라 경사卿士이다. 둘 다 자조子朝에게 패배敗北한 것이다.
叔鞅至自京師注+葬景王還하야 言王室之亂也注+經所以書하니 閔馬父曰 子朝必不克하리라
숙앙叔鞅경사京師에서 돌아와서注+경왕景王장사葬事회장會葬하고서 돌아온 것이다.왕실王室변란變亂이 일어난 것을 말하니注+에 기록한 이유이다. , 민마보閔馬父가 말하기를 “자조子朝는 반드시 승리勝利하지 못할 것이다.
其所與者 天所廢也注+閔馬父 閔子馬 魯大夫 天所廢 謂群喪職秩者
그가 가까이하는 자들은 하늘이 버린 자들이다.注+민마보閔馬父민자마閔子馬나라 대부大夫이다. 천소폐天所廢관직官職을 잃은 무리들을 이른다. ”고 하였다.
單子欲告急於晉하야 秋七月戊寅 以王如平畤라가 遂如圃車하야 次于皇注+出次以示急 戊寅 七月三日 經書六月 誤하다
단자單子위급危急정황情況나라에 알리기 위해 가을 7월 무인일戊寅日을 모시고 평치平畤로 갔다가 드디어 포거圃車로 가서 에 머물렀다.注+출차出次(都城 밖으로 나아가 머무름)하여 위급危急함을 보인 것이다. 무인일戊寅日은 7월 3일이다. 에 ‘6월’로 기록한 것은 오류誤謬이다.
劉子如劉하니 單子使王子處守于王城注+王子處 子猛黨 守王城 距子朝하고 盟百工于平宮注+平宮 平王廟하다
유자劉子유읍劉邑으로 가니 단자單子왕자王子를 보내어 왕성王城을 지키고注+왕자王子자맹子猛이다. 왕성王城을 지켜 자조子朝를 막게 한 것이다. 백공百工평궁平宮에서 결맹結盟하게 하였다.注+평궁平宮평왕平王이다.
辛卯 鄩肸伐皇注+鄩肸 子朝黨이어늘 大敗하니 獲鄩肸하야 壬辰 焚諸王城之市注+焚鄩肸 하다
신묘일辛卯日심힐鄩肸공격攻擊하니注+심힐鄩肸자조子朝이다. 왕사王師대패大敗시키고서 심힐鄩肸을 잡아서 임진일壬辰日왕성王城 저자에서 불태워 죽였다.注+심힐鄩肸을 불태워 죽인 것이다.
八月辛酉 司徒醜以王師敗績于前城注+醜 悼王司徒 前城 子朝所得邑하니 百工叛注+司徒醜 敗故하다 己巳 伐單氏之宮이어늘 敗焉注+百工伐單氏 爲單氏所敗하고 庚午 反伐之注+單氏反伐百工하야 辛未 伐東圉注+百工所在 洛陽東南有圉鄕 하다
8월 신유일辛酉日사도司徒왕사王師를 거느리고 전성前城공격攻擊하다가 대패大敗하니注+도왕悼王사도司徒이다. 전성前城자조子朝점령占領이다. 백공百工배반背叛하여注+사도司徒패배敗北하였기 때문이다. , 기사일己巳日단씨單氏궁전宮殿공격攻擊하거늘 그들을 패배敗北시키고서注+백공百工단씨單氏공격攻擊하다가 도리어 단씨單氏에게 패배敗北당한 것이다. 경오일庚午日반격反擊하여注+단씨單氏백공百工반격反擊한 것이다. 신미일辛未日동어東圉공격攻擊하였다.注+동어東圉백공百工주재駐在한 곳이다. 낙양洛陽 동남쪽에 어향圉鄕이 있다.
冬十月丁巳 晉籍談荀躒帥九州之戎注+九州戎 陸渾戎 十七年滅 屬晉 州 鄕屬也 五州爲鄕 及焦瑕溫原之師注+焦瑕溫原 晉四邑 하야 以納王于王城注+丁巳 在十月 經書秋 誤 하다
겨울 10월 정사일丁巳日나라 적담籍談순락荀躒구주九州注+구주융九州戎육혼융陸渾戎이다. 소공昭公 17년에 멸망滅亡하고 나라에 귀속歸屬하였다. 구역區域이다. 5가 1이다. 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注+나라의 네 이다. 왕성王城으로 들여보냈다.注+정사일丁巳日은 10월에 들었으니, 에 ‘가을’로 기록한 것은 오류誤謬이다.
庚申 單子劉蚡以王師敗績于郊注+爲子朝之黨所敗하다
경신일庚申日단자單子유분劉蚡이 거느린 왕사王師에서 대패大敗하였다.注+자조子朝에게 패배敗北당한 것이다.
前城人敗陸渾于社注+前城 子朝衆 社 周地하다
전성前城 사람들이 에서 육혼陸渾패배敗北시켰다.注+전성前城 사람은 자조子朝의 무리이다. 나라 땅이다.
十一月乙酉 王子猛卒注+乙酉 在十一月 經書十月 誤 雖未卽位 周人諡曰悼王이라하니
11월 을유일乙酉日왕자王子하였다.注+을유일乙酉日은 11월에 들었으니, 에 ‘10월’로 기록한 것은 오류誤謬이다. 왕맹王猛즉위卽位하기 전에 하였으되, 주인周人은 ‘도왕悼王’이란 시호諡號를 올렸다.
不成喪也注+釋所以不稱王崩
에 ‘’이라 하지 않고 ‘’이라 한 것은〉 천자天子장사葬事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에 ‘하였다.’로 하지 않은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己丑 敬王卽位注+敬王 王子猛母弟王子匄하야 館于子旅氏注+子旅 周大夫하다
기축일己丑日경왕敬王즉위卽位하여注+경왕敬王왕자王子모제母弟왕자王子이다. 자려씨子旅氏의 집에 머물렀다.注+자려子旅나라 대부大夫이다.
[傳]十二月庚戌 晉籍談荀躒賈辛司馬督注+司馬烏帥師軍于陰注+籍談所軍 于侯氏注+荀躒所軍 于谿泉注+賈辛所軍 鞏縣西南有明谿泉 次于社注+司馬督所次하고 王師軍于汜于解次于任人注+王師分在三邑 洛陽西南有大解小解하다
12월 경술일庚戌日나라 적담籍談순락荀躒가신賈辛사마司馬注+사마司馬사마司馬이다. 군대를 거느리고서 注+적담籍談주둔駐屯한 곳이다. 후씨侯氏注+후씨侯氏순락荀躒주둔駐屯한 곳이다. 계천谿泉注+계천谿泉가신賈辛주둔駐屯한 곳이다. 공현鞏縣 서남쪽에 명계천明谿泉이 있다. 주둔駐屯하고注+사마司馬주둔駐屯한 곳이다. , 왕사王師임인任人에 주둔하였다.注+왕사王師분산分散해 세 주둔駐屯한 것이다. 낙양洛陽 서남쪽에 대해大解소해小解가 있다.
閏月 晉箕遺樂徵右行詭 濟師取前城注+三子 晉大夫 濟師 渡伊洛하야 軍其東南하고 王師軍于京楚하다
12월에 나라 기유箕遺악징樂徵우행궤右行詭는 군대를 거느리고 도하渡河하여 전성前城공격攻擊함락陷落하고서注+세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제사濟師이수伊水낙수洛水를 건넌 것이다. 그 동남에 주둔駐屯하고, 왕사王師경초京楚에 주둔하였다.
辛丑 伐京하여 毁其西南注+京楚 子朝所在하다
신축일辛丑日경읍京邑공격攻擊하여 그 서남쪽 을 허물었다.注+경초京楚자조子朝주재駐在한 곳이다.
역주
역주1 無亢不衷 : 亢은 昭公元年傳의 ‘吉不能亢身焉能亢宗(나 游吉은 내 몸도 保護할 수 없는데 어찌 宗族을 保護할 수 있겠습니까?)’의 亢과 같으니, 保護 또는 庇護의 뜻이다. 〈楊注〉
역주2 成[城] : 저본에는 ‘成’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城’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說之 : 杜氏는 ‘語’로 註釋하였으나, 譯者는 ‘悅’로 번역하였다.
역주4 樂[榮] : 저본에는 ‘樂’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榮’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必不勝〉 : 저본에는 ‘必不勝’이 빠져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을 참조하여 보충하였다.

춘추좌씨전(6)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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