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二十年春
에 新作南門
하다注+魯城南門也 本名稷門 僖公更高大之 今猶不與諸門同 改名高門也 言新以易舊 言作以興事 皆更造之文也
[經]五月乙巳
에 西宮災
하다注+無傳 西宮 公別宮也 天火曰災 例在宣十六年
傳
[傳]二十年春
에 新作南門
하니 書
는 不時也
라注+失土功之時
凡啓塞
은 從時
니라注+門戶道橋謂之啓 城郭牆塹謂之塞 皆官民之開閉 不可一日而闕 故特隨壞時而治之 今僖公脩飾城門 非開閉之急 故以土功之制譏之 傳嫌啓塞皆從土功之時 故別起從時之例
傳
[傳]滑人叛鄭而服於衛
하니 夏
에 鄭公子士洩堵寇帥師入滑
하다注+公子士 鄭文公子 洩堵寇 鄭大夫
傳
於是衛方病邢
하다注+[附注] 林曰 衛自前年伐邢 至今常爲邢病
傳
[傳]隨以漢東諸侯叛楚하니 冬에 楚鬪穀於菟帥師伐隨하야 取成而還하다
善敗由己
오 而由人乎哉
아注+[附注] 林曰 善 成也
詩曰豈不夙夜
리오 謂行多露
ᄅ새니라注+詩 召南 言豈不欲早暮而行 懼多露之濡己 以違禮而行 必有汚辱 是亦量宜相時而動之義
傳
以欲從人則可
注+屈己之欲 從衆之善어니와 以人從欲
이면 鮮濟
라하다注+爲明年鹿上盟傳
20년 봄에 새로
남문南門을 지었다.
注+노성魯城의 남문南門이다. 본래의 이름은 직문稷門인데 희공僖公이 다시 더 높이고 키운 것이다. 지금 오히려 여러 문門과 그 크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고문高門으로 개명改名한 것이다. ‘신新’이라 말한 것은 옛 것을 바꾼 것이고, ‘작作’이라 말한 것은 공사工事를 일으킨 것이니, 모두 다시 건조建造한 것을 표현한 문사文辭이다.
여름에
고자郜子가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고郜는 희성국姬姓國이다.
5월
을사乙巳에
서궁西宮에 불이 났다.
注+전傳이 없다. 서궁西宮은 희공僖公의 별궁別宮이다. 낙뢰落雷나 또는 물체物體의 자연발화自然發火에 의해 일어난 불을 ‘재災’라 한다. 예例가 선공宣公 16년에 보인다.
정인鄭人이
활滑나라로 쳐들어갔다.
注+입入의 예例는 양공襄公 13년에 있다.
가을에 제인齊人과 적인狄人이 형邢나라에서 결맹結盟하였다.
傳
20년 봄에 새로
남문南門을 지었으니 이를 기록한 것은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注+토목공사土木工事의 시기時期를 잃었다는 말이다.
계새啓塞에 한해 무너진 때에 따라 즉시
보수補修한다.
注+문門‧호戶‧도로道路‧교량橋梁을 ‘계啓’라 하고, 성城‧곽郭‧담장‧해자를 ‘새塞’이라 하는데, 이는 모두 관민官民의 출입出入을 개통開通‧폐색閉塞하는 것으로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무너지는 즉시 보수補修해야 하지만 지금 희공僖公이 수식脩飾한 성문城門은 개통開通과 폐색閉塞에 급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토목공사土木工事의 제도制度로써 비난 한 것이다. 계새啓塞도 모두 토목공사土木工事의 때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전傳에 별도로 무너진 때에 따라 보수하는 예例를 일으킨 것이다.
傳
활인滑人이
정鄭나라를 배반하고
위衛나라에 복종하니 여름에
정鄭나라
공자公子사士와
설도구洩堵寇가 군대를 거느리고
활滑나라로 쳐들어갔다.
注+공자公子사士는 정문공鄭文公의 아들이고, 설도구洩堵寇는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
傳
가을에 제인齊人과 적인狄人이 형邢나라에서 회맹會盟하였으니 이는 형邢나라를 위해 위衛나라가 침공侵攻하는 환난患難의 대비책對備策을 모의謀議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위衛나라가 바야흐로
형邢나라를 괴롭혔다.
注+[부주]林: 위衛나라가 전년前年에 형邢나라를 침벌侵伐한 뒤로 지금까지 항상 형邢나라의 고통苦痛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傳
수隨나라가 한수漢水이동以東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서 초楚나라를 배반하니, 겨울에 초楚나라 투누오도鬪穀於菟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수隨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화친和親을 맺고 돌아왔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수隨나라가 토벌討伐당한 것은 스스로의 힘을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을 헤아려 행동하면 과실過失이 적은 것이다.
성패成敗는 자기에게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겠는가?
注+[부주]林: 선善은 성成이다.
시詩에 ‘어찌 밤낮으로 가고 싶지 않으랴만 길에 이슬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注+시詩는 《시경詩經》 〈소남召南〉이다. 어찌 아침저녁으로 가고 싶지 않으랴만 많은 이슬이 내 옷을 적실까 두렵다고 말하여 예의禮儀를 어기고 행동하면 반드시 오욕汚辱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 또한 사리事理의 마땅함을 헤아리고 시기時期를 보아 움직이는 뜻이다.
傳
송양공宋襄公이 제후諸侯를 규합糾合하려 하니 장문중臧文仲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욕망을 따르면
注+나의 욕심을 버리고 많은 이들의 선善을 따른다는 말이다.성공成功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욕망을 따르게 한다면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이다.”
注+명년明年에 녹상鹿上에서 회맹會盟한 전傳의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