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年春 新作南門하다注+魯城南門也 本名稷門 僖公更高大之 今猶不與諸門同 改名高門也 言新以易舊 言作以興事 皆更造之文也
[經]夏 郜子來朝하다注+無傳 郜 姬姓國
[經]五月乙巳 西宮災하다注+無傳 西宮 公別宮也 天火曰災 例在宣十六年
[經]鄭人入滑하다注+
[經]秋 齊人狄人盟于邢하다
[經]冬 楚人伐隨하다
[傳]二十年春 新作南門하니 不時也注+失土功之時
凡啓塞 從時니라注+門戶道橋謂之啓 城郭牆塹謂之塞 皆官民之開閉 不可一日而闕 故特隨壞時而治之 今僖公脩飾城門 非開閉之急 故以土功之制譏之 傳嫌啓塞皆從土功之時 故別起從時之例
[傳]滑人叛鄭而服於衛하니 鄭公子士洩堵寇帥師入滑하다注+公子士 鄭文公子 洩堵寇 鄭大夫
[傳]秋 齊狄盟于邢하니 爲邢謀衛難也
於是衛方病邢하다注+[附注] 林曰 衛自前年伐邢 至今常爲邢病
[傳]隨以漢東諸侯叛楚하니 楚鬪穀於菟帥師伐隨하야 取成而還하다
君子曰
隨之見伐 不量力也
量力而動이면 其過鮮矣
善敗由己 而由人乎哉注+[附注] 林曰 善 成也
詩曰豈不夙夜리오 謂行多露ᄅ새니라注+詩 召南 言豈不欲早暮而行 懼多露之濡己 以違禮而行 必有汚辱 是亦量宜相時而動之義
[傳]宋襄公欲合諸侯하니 臧文仲聞之하고
以欲從人則可注+屈己之欲 從衆之善어니와 以人從欲이면 鮮濟라하다注+爲明年鹿上盟傳


20년 봄에 새로 남문南門을 지었다.注+노성魯城남문南門이다. 본래의 이름은 직문稷門인데 희공僖公이 다시 더 높이고 키운 것이다. 지금 오히려 여러 과 그 크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고문高門으로 개명改名한 것이다. ‘’이라 말한 것은 옛 것을 바꾼 것이고, ‘’이라 말한 것은 공사工事를 일으킨 것이니, 모두 다시 건조建造한 것을 표현한 문사文辭이다.
여름에 고자郜子가 와서 조현朝見하였다.注+이 없다. 희성국姬姓國이다.
5월 을사乙巳서궁西宮에 불이 났다.注+이 없다. 서궁西宮희공僖公별궁別宮이다. 낙뢰落雷나 또는 물체物體자연발화自然發火에 의해 일어난 불을 ‘’라 한다. 선공宣公 16년에 보인다.
정인鄭人나라로 쳐들어갔다. 注+양공襄公 13년에 있다.
가을에 제인齊人적인狄人나라에서 결맹結盟하였다.
겨울에 초인楚人나라를 토벌하였다.
20년 봄에 새로 남문南門을 지었으니 이를 기록한 것은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注+토목공사土木工事시기時期를 잃었다는 말이다.
계새啓塞에 한해 무너진 때에 따라 즉시 보수補修한다.注+도로道路교량橋梁을 ‘’라 하고, ‧담장‧해자를 ‘’이라 하는데, 이는 모두 관민官民출입出入개통開通폐색閉塞하는 것으로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무너지는 즉시 보수補修해야 하지만 지금 희공僖公수식脩飾성문城門개통開通폐색閉塞에 급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토목공사土木工事제도制度로써 비난 한 것이다. 계새啓塞도 모두 토목공사土木工事의 때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에 별도로 무너진 때에 따라 보수하는 를 일으킨 것이다.
활인滑人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에 복종하니 여름에 나라 공자公子설도구洩堵寇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로 쳐들어갔다.注+공자公子정문공鄭文公의 아들이고, 설도구洩堵寇나라 대부大夫이다.
가을에 제인齊人적인狄人나라에서 회맹會盟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위해 나라가 침공侵攻하는 환난患難대비책對備策모의謀議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나라가 바야흐로 나라를 괴롭혔다.注+[부주]林: 나라가 전년前年나라를 침벌侵伐한 뒤로 지금까지 항상 나라의 고통苦痛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나라가 한수漢水이동以東제후諸侯를 거느리고서 나라를 배반하니, 겨울에 나라 투누오도鬪穀於菟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화친和親을 맺고 돌아왔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나라가 토벌討伐당한 것은 스스로의 힘을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을 헤아려 행동하면 과실過失이 적은 것이다.
성패成敗는 자기에게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겠는가?注+[부주]林: 이다.
에 ‘어찌 밤낮으로 가고 싶지 않으랴만 길에 이슬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注+는 《시경詩經》 〈소남召南〉이다. 어찌 아침저녁으로 가고 싶지 않으랴만 많은 이슬이 내 옷을 적실까 두렵다고 말하여 예의禮儀를 어기고 행동하면 반드시 오욕汚辱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 또한 사리事理의 마땅함을 헤아리고 시기時期를 보아 움직이는 뜻이다.
송양공宋襄公제후諸侯규합糾合하려 하니 장문중臧文仲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욕망을 따르면注+나의 욕심을 버리고 많은 이들의 을 따른다는 말이다.성공成功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욕망을 따르게 한다면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이다.”注+명년明年녹상鹿上에서 회맹會盟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入例在襄十三年 : 襄公 13년 傳에 “쳐들어가기만 하고 占有하지 않는 것을 ‘入’이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2 踰[喩] : 저본에는 ‘踰’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喩’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