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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8)

춘추좌씨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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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傳]十八年春 宋殺皇瑗하다
18년 봄에 나라가 황원皇瑗을 죽였다.
하고 復皇氏之族하야 使皇緩爲右師注+言宋景公無常也 緩瑗從子하다
송경공宋景公은 그 정황을 듣고서 황씨皇氏가족家族을 회복시키고서 황완皇緩우사右師로 삼았다.注+송경공宋景公의 변덕이 무상無常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황원皇瑗의 조카이다.
[傳]巴人伐楚圍鄾注+鄾 楚邑하다
파인巴人나라를 침벌侵伐하여 를 포위하였다.注+나라 이다.
右司馬子國之卜也 觀瞻曰 如志注+子國未爲令尹時 卜爲右司馬 得吉兆 如其志 觀瞻 楚開卜大夫觀從之後라하다
당초에 〈초왕楚王이〉 자국子國우사마右司馬로 삼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거북점을 칠 적에 관첨觀瞻이 말하기를 “〈임금님의〉 지망志望부합符合할 것입니다.注+자국子國영윤令尹이 아직 되지 않았을 때 〈초왕楚王자국子國을〉 우사마右司馬로 삼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점을 쳐서 ‘그 지망志望에 부합한다.’는 를 얻은 것이다. 관첨觀瞻나라 개복대부開卜大夫관종觀從후손後孫이다. ”라고 하였다.
故命之注+命以爲右司馬하다
그러므로 자국子國우사마右司馬임명任命하였다.注+임명任命하여 그를 우사마右司馬로 삼은 것이다.
及巴師至하야 將卜帥한대 王曰 寧如志하니 何卜焉注+寧 子國也가하고 使帥師而行하다
파군巴軍이 쳐들어올 때에 미쳐 점을 쳐서 장수將帥를 뽑으려 하자, 이 말하기를 “이 나의 지망志望에 부합한다고 하였으니, 다시 점을 칠 게 뭐 있는가?注+자국子國이다. ”라고 하고서 자국子國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가게 하였다.
請承注+承 佐한대 王曰 注+柏擧之役 寢尹吳由于以背受戈 工尹固執燧象奔吳師 皆爲先君勤勞
자국子國부수副帥[承]를 임명任命하기를 청하자注+(副帥)이다. , 이 말하기를 “침윤寢尹공윤工尹선군先君근로勤勞한 사람들이다.注+정공定公 4년에 있었던〉 백거柏擧의 전쟁 때 침윤寢尹오유우吳由于가 등으로 창을 받은 것과 공윤工尹가 코끼리 꼬리에 횃불을 매달아 오군吳軍으로 달려가게 한 것이 모두 선군先君을 위하여 근로勤勞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三月 楚公孫寧吳由于薳固敗巴師于鄾하다
3월에 나라 공손公孫오유우吳由于위고薳固(工尹)가 파군巴軍에서 패배시켰다.
故封子國於析하니라
그러므로 자국子國봉읍封邑으로 준 것이다.
君子曰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惠王知志注+知用其意로다
혜왕惠王은 〈사람들의〉 지망志望을 알았도다.注+사람들의 의망意望을 들어줄 줄을 안 것이다.
夏書曰 官占 唯能蔽志오사 昆命于元龜注+逸書也 官占 卜筮之官 蔽 斷也 昆 後也 言當先斷意 後用龜也라하니 其是之謂乎ᄂ저
하서夏書〉에 ‘복관卜官이 점을 칠 때에는 먼저 뜻을 결정한 뒤에 원귀元龜(大龜)에 (告)한다.注+일서逸書이다. 관점官占복서卜筮를 맡은 관원官員이다. 결단決斷함이고, 이니, 먼저 의사意思결단決斷한 뒤에 귀갑龜甲을 사용해 점을 친다는 말이다. ’고 하였으니, 아마도 혜왕惠王의 경우를 이른 듯하다.
志曰 聖人不煩卜筮라하니 注+不疑 故不卜也이로다
옛 기록에 ‘성인聖人빈번頻煩하게 거북점과 시초점蓍草占을 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혜왕惠王에게도 그런 점이 있다.注+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점을 치지 않은 것이다.
[傳]夏 衛石圃逐其君起하니 起奔齊注+齊所立故하다
여름에 나라 석포石圃가 그 임금 축출逐出하니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나라가 세운 임금이기 때문에 〈축출한 것이다.〉
衛侯輒自齊復하야 逐石圃하고 而復石魋與大叔遺注+皆蒯聵所逐하다
위후衛侯나라에서 복귀復歸하여 석포石圃를 축출하고서 석퇴石魋대숙大叔를 〈원래의 관작官爵에〉 회복시켰다.注+이들은 모두 괴외蒯聵가 축출한 자들이다.
역주
역주1 聞其情 : 情은 實이다. 宋景公이 얼마 뒤에 皇瑗父子가 無罪였음을 들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 寢尹工尹勤先君者也 : 定公 4년 傳에 의하면 柏擧의 전쟁 때 寢尹吳由于는 등으로 盜賊의 창을 받아 〈楚昭王을 保護하였고,〉 箴尹固는 王을 위하여 코끼리 꼬리에 횃불을 매달아 〈吳軍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哀公 16년 傳에는 ‘箴尹固’로 되어 있는데, 이때에 또 工尹으로 官職이 바뀐 듯하다. 〈楊注〉
역주3 惠王其有焉 : 元帥를 임명하고 副元帥를 임명할 때 모두 점을 치지 않은 것을 이른다. 〈楊注〉
역주4 復歸 : 成公 18년 傳에 의하면 國人이 맞이해 復位시키는 것을 ‘復歸’라 한다고 하였다.

춘추좌씨전(8)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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