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六年春王三月壬午 杞伯姑容卒하다
6년 봄 주왕周王 3월 임오일壬午日기백杞伯고용姑容하였다.
[經]夏 宋華弱來奔注+華椒孫 하다
여름에 나라 화약華弱나라로 도망해 왔다.注+화약華弱화초華椒의 손자이다.
[經]秋 葬杞桓公注+無傳 하다
가을에 기환공杞桓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經]滕子來朝하다
등자滕子가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經]莒人滅鄫하다
거인莒人증국鄫國격멸擊滅하였다.
[經]冬 叔孫豹如邾하다
겨울에 숙손표叔孫豹나라에 갔다.
[經]季孫宿如晉注+行父之子 하다
계손숙季孫宿나라에 갔다.注+계손숙季孫宿계손행보季孫行父(季文子)의 아들이다.
[經]十有二月 齊侯滅萊注+書十二月 從告 하다
12월에 제후齊侯내국萊國격멸擊滅하였다.注+12월로 기록한 것은 통고通告문서文書의 기록을 따른 것이다.
[傳]六年春 杞桓公卒하다
6년 봄에 기환공杞桓公하였다.
始赴以名하니 同盟故也注+杞入春秋 未嘗書名 桓公三與成同盟 故赴以名
처음으로 이름을 기재하여 부고赴告하였으니, 이는 나라와 동맹同盟하였기 때문이다.注+나라가 《춘추春秋》에 기입記入된 이래로 기군杞君의 이름을 기록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은〉 기환공杞桓公성공成公과 세 차례 동맹同盟하였으므로 이름을 기재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傳]宋華弱與樂轡少相狎하고 長相優하고 又相謗也注+狎 親習也 優 調戲也 [附注] 林曰 華弱樂轡 皆宋大夫 하다
나라 화약華弱악비樂轡가 어려서는 서로 친압親狎(흉허물 없이 절친切親함)했고, 장성해서는 서로 놀리고 또 서로 비방하였다.注+친근親近한 것이고 는 놀리는 것이다. [부주]林: 화약華弱악비樂轡는 모두 나라 대부大夫이다.
子蕩怒하야 以弓梏華弱于朝注+子蕩 樂轡也 張弓以貫其頸 若械之手 故曰梏 하니 平公見之하고注+司武 司馬 言其懦弱不足以勝敵 라하고 遂逐之하다
하루는 자탕子蕩(樂轡)이 하여 조정朝廷에서 활을 화약華弱의 목에 씌우니,注+자탕子蕩악비樂轡이다, 활에 시위를 걸어 화약華弱의 목에 씌운 것이 마치 손에 수갑手匣을 채운 것과 같기 때문에 ‘’이라고 한 것이다. 송평공宋平公이 이를 보고 말하기를 “군대를 맡은 사마司馬로서 조정朝廷에서 질곡桎梏을 당하니, 전쟁戰爭승리勝利하기 어려울 것이다.”注+사무司武사마司馬이다. 그가 나약懦弱하여 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드디어 화약華弱축출逐出하였다.
宋華弱來奔하다
여름에 나라 화약華弱이 우리나라로 도망해 왔다.
司城子罕曰 同罪異罰 非刑也
사성司城자한子罕이 말하기를 “는 같은데 처벌處罰을 달리하는 것은 형법刑法에 맞지 않습니다.
專戮於朝하니 罪孰大焉고하니 亦逐子蕩하다
조정朝廷에서 멋대로 남을 모욕侮辱하였으니 이보다 큰 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니, 송공宋公자탕子蕩축출逐出하였다.
子蕩射子罕之門曰 幾日而不我從注+言我射女門 女亦當以不勝任見逐 이리오 子罕善之如初注+言子罕雖見辱 不追忿 所以得安 하다
그러자 자탕子蕩하여 자한子罕의 대문에 활을 쏘며, “며칠이 되어 너도 나를 따르지 않겠는가(며칠 안 있어 너도 나처럼 추방될 것이다).”注+내가 너의 대문에 활을 쏘았으니, 너도 임무任務감당堪當하지 못했다고 하여 축출逐出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으나, 자한子罕은 〈개의介意치 않고〉 그를 전처럼 잘 대우待遇하였다.注+자한子罕이 비록 치욕恥辱을 당하였으나, 지난 일을 분한忿限하지 않은 것이 편안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傳]秋 滕成公來朝하니 始朝公也
가을에 등성공滕成公이 와서 조현朝見하였으니, 처음으로 양공襄公에게 조현朝見한 것이다.
[傳]莒人滅鄫하니 鄫恃賂也注+鄫有貢賦之賂在魯 恃之而慢莒 滅之
거인莒人증국鄫國격멸擊滅하였으니, 이는 증인鄫人뇌물賂物을 준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注+증국鄫國공부貢賦재물財物나라에 바쳤기 때문에 이를 믿고서 나라에 대한 방비防備를 태만히 하였다. 그러므로 나라가 격멸擊滅한 것이다.
[傳]冬 穆叔如邾하야하고 且修平注+平四年狐駘戰 하다
겨울에 목숙穆叔나라에 가서 빙문聘問하고 또 수호修好하였다.注+양공襄公 4년에 있었던 호태狐駘전쟁戰爭으로 인한 원한怨恨을 씻고 서로 화평和平하기로 한 것이다.
[傳]晉人以鄫故來討曰 何故亡鄫注+鄫屬魯 恃賂而慢莒 魯不致力輔助 無何以還晉 尋便見滅 故晉責魯 고하니 季武子如晉見하고 且聽命注+始代父爲卿見大國 且謝亡鄫 聽命受罪 하다
진인晉人증국鄫國격멸擊滅된 일로 와서 “무엇 때문에 증국鄫國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注+증국鄫國나라에 귀속歸屬되어 나라에 공부貢賦 바친 것을 믿고 나라에 대한 대비對備태만怠慢히 하였다. 나라는 힘을 다해 증국鄫國을 돕지 않았고 또 얼마 되지 않아 증국鄫國나라에 되돌려 주었다. 돌려준 지 오래지 않아 증국鄫國멸망滅亡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나라를 꾸짖은 것이다. 라고 꾸짖으니[討], 계무자季武子나라에 가서 진후晉侯를 뵙고 나라의 을 들었다.注+계무자季武子가 비로소 그 아비를 대신해 이 되었으므로 대국大國에 가서 임금을 알현謁見하고, 또 증국鄫國을 망하도록 버려둔 데 대해 사과謝過하고서 을 듣고 를 받아들였다.
[傳]十一月 齊侯滅萊하니 萊恃謀也注+ 事在二年
11월에 제후齊侯내국萊國격멸擊滅하였으니, 이는 내국萊國계모計謀를 믿었기 때문이다.注+숙사위夙沙衛에게 뇌물을 주어 를 면한 계모計謀를 이른다. 이 일은 양공襄公 2년에 있었다.
於鄭子國之來聘也 四月 晏弱城東陽하야 而遂圍萊注+子國聘在五年 二年晏弱城東陽 至五年四月 復託治 因遂圍萊 하고 甲寅 堙之環城하야 傅於堞注+堞 女牆也 堙 土山也 周城爲土山及女牆 하다
나라 자국子國나라에 빙문聘問 왔던 작년 4월에 안약晏弱동양東陽을 쌓고서 드디어 내국萊國포위包圍하고,注+나라 자국子國(公子 )이 나라에 빙문聘問 온 것은 양공襄公 5년에 있었다. 양공襄公 2년에 안약晏弱동양東陽을 쌓았는데, 양공襄公 5년 4월에 이르러 다시 보수補修한다는 핑계로 동양東陽으로 와서 드디어 내국萊國포위包圍한 것이다. 갑인일甲寅日내성萊城주위周圍토산土山을 쌓아 성가퀴에 닿게 하였다.注+은 성가퀴이고, 토산土山이니, 주위에 토산土山을 쌓아 성가퀴에 닿게 한 것이다.
及杞桓公卒之月注+此年三月 하야 乙未 王湫帥師及正輿子棠人軍齊師注+ 正輿子 萊大夫 棠 萊邑也 北海卽墨縣有棠鄕 三人帥別邑兵來解圍 어늘 齊師大敗之注+敗湫等 하고 丁未 入萊하니 萊共公浮柔奔棠注+[附注] 林曰 浮柔 萊共公名 하다
기환공杞桓公이 죽은 금년今年 3월注+이해 3월이다. 을미일乙未日왕추王湫가 군사를 거느리고서 정여자正輿子당읍인棠邑人과 함께 제군齊軍공격攻擊하자,注+왕추王湫는 원래 나라 사람으로 성공成公 18년에 내국萊國으로 도망한 자이다. 정여자正輿子내국萊國대부大夫이고, 내국萊國이다. 북해北海즉묵현卽墨縣당향棠鄕이 있다. 세 사람이 별읍別邑의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제군齊軍포위包圍를 풀고자 한 것이다. 제군齊軍이 그들을 대패大敗시키고서注+왕추王湫 등을 패배敗北시킨 것이다. 정미일丁未日내국萊國으로 쳐들어가니, 내공공萊共公부유浮柔으로 달아났다.注+[부주]林: 부유浮柔내공공萊共公의 이름이다.
正輿子王湫奔莒하니 莒人殺之注+[附注] 林曰 莒附齊 故殺正輿子王湫 하다
정여자正輿子왕추王湫나라로 달아나니, 거인莒人이 그들을 죽였다.注+[부주]林: 나라는 나라에 붙었기 때문에 정여자正輿子왕추王湫를 죽인 것이다.
四月 注+無宇 桓子 陳完玄孫 襄宮 齊襄公廟 하다
4월에 진무우陳無宇내국萊國종묘宗廟에 있는 보기寶器를 가져다가 제양공齊襄公종묘宗廟에 바쳤다.注+무우無宇진환자陳桓子진완陳完현손玄孫이다. 양궁襄宮제양공齊襄公종묘宗廟이다.
晏弱圍棠하야 十一月丙辰 而滅之하고 注+遷萊子于郳國 하다
안약晏弱당읍棠邑포위包圍하여, 11월 병진일丙辰日격멸擊滅하고 내국萊國유민遺民예국郳國으로 이주移住시켰다.注+내자萊子(萊君)를 예국郳國으로 이주移住시킨 것이다.
高厚崔杼注+定其疆界 高厚 高固子 하다
고후高厚최저崔杼내국萊國토지土地구획區劃하였다.注+토지土地경계境界획정劃定한 것이다. 고후高厚고고자高固子이다.
역주
역주1 左[在] : 저본에는 ‘左’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在’로 바로잡았다.
역주2 司武而梏於朝 難以勝矣 : 宋나라의 司馬는 武事를 管掌하는 職이다. 宋平公은 國家의 武事를 主管하는 長官이 朝廷에서 남에게 束縛을 당하였으니 他國과의 戰爭에서 勝利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긴 것이다. 〈楊注〉
역주3 敗[故] : 저본에는 ‘敗’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故’로 바로잡았다.
역주4 賂夙沙衛之謀也 : 賂物을 써서 禍를 면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賂物을 쓰면 될 것으로 믿고 防備를 設置하지 않았으므로 滅亡하였다는 말이다.
역주5 地[城] : 저본에는 ‘地’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城’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王湫……成十八年奔萊 : 王湫는 國佐의 黨이다. 成公 18년에 齊나라가 國佐를 죽이자, 王湫가 萊國으로 도망하였다.
역주7 陳無宇獻萊宗器于襄宮 : 襄公의 ‘襄’은 ‘惠’의 誤字인 듯하다. 齊襄公은 靈公의 8代祖이니, ‘諸侯五廟’의 禮로 보면 당연히 宗廟가 毁撤되었을 것이다. 宗廟가 남아 있지 않은데 어떻게 올릴 수 있겠는가. 文公 11년 傳에도 齊惠公을 齊襄公으로 誤記한 前例가 있다. 宣公 7년과 9년에 齊惠公이 萊國을 토벌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萊國의 宗器를 惠廟에 올린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본인의 《譯註春秋左氏傳》 文公 11년 傳 역주] 12번 참고할 것.
역주8 遷萊于郳 : 杜注에는 萊君을 옮긴 것으로 解釋하였으나, 이를 따르지 않고 萊國의 遺民을 移住시킨 것으로 번역하였다. 《左氏會箋》에 “遷國과 遷邑은 모두 그 人民을 옮기는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9 定其田 : 萊國의 백성들을 移住시키고서 그 土地를 區劃해 齊나라의 君臣에게 分配한 것이다.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