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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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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有六年春王正月戊申朔 隕石于宋五하다注+隕 落也 聞其隕 視之石 數之五 各隨其聞見先後而記之 莊七年 星隕如雨 見星之隕而隊於四遠若山若水 不見在地之驗 此則見在地之驗 而不見始隕之星 史各據事而書
16년 봄 주왕周王 정월 초하루 무신일戊申日나라에 다섯 개의 돌이 떨어졌다.注+은 떨어지는 것이다.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살펴보니 돌이었고 세어보니 다섯 개였다. 이는 각각 듣고 본 순서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장공莊公 7년에 별이 비처럼 쏟아진 것은 별똥이 사방의 먼 산과 물에 떨어지는 것을 본 것이고 땅에 떨어져 있는 실물實物을 본 것은 아니었고, 이번의 별똥은 땅에 떨어져 있는 실물을 본 것이므로 사관史官이 각각 사실에 의거해 기록한 것이다.
是月 六鷁退飛하야 過宋都하다注+是月 隕石之月 重言是月 嫌同日 鷁 水鳥 高飛遇風而退 宋人以爲災 告於諸侯 故書
이 달에 여섯 마리의 바닷새가 바람에 밀려 뒤로 날아 나라 도성都城을 지나갔다.注+이 달은 별똥이 떨어진 달이다. ‘이 달’이라고 거듭 말한 것은 별똥이 떨어진 날과 동일同日로 의심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수조水鳥인데 높이 날다가 바람을 만나 뒤로 밀린 것이다. 송인宋人은 이를 재변災變으로 여겨 제후諸侯에게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經]三月壬申 하다注+無傳 稱子者 貴之 公與小斂 故書日 [附注] 林曰 自是季氏世爲卿
3월 임신일壬申日공자公子계우季友하였다.注+이 없다. ‘’라고 칭한 것은 그를 존귀尊貴하게 여긴 것이다. 희공僖公이 그의 소렴小斂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한 날짜를 기록한 것이다. [부주]林: 이로부터 계씨季氏가 대대로 나라의 이 되었다.
[經]夏四月丙申 하다注+無傳
여름 4월 병신일丙申日증계희鄫季姬하였다.注+이 없다.
[經]秋七月甲子 公孫玆卒하다注+無傳
가을 7월 갑자일甲子日공손자公孫玆하였다.注+이 없다.
[經]冬十有二月 公會齊侯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邢侯曹伯于淮하다注+臨淮郡左右 [附注] 林曰 兵車之會四
겨울 12월에 희공僖公제후齊侯송공宋公진후陳侯위후衛侯정백鄭伯허남許男형후邢侯조백曹伯에서 회합會合하였다. 注+임회군臨淮郡좌우左右에 있다.[부주]林: 이것이 네 번째 병거지회兵車之會이다.
[傳]十六年春 隕石于宋五하니 隕星也注+但言星 則嫌星使石隕 故重言隕星 [附注] 林曰 星 陽物 隕至地 則化爲石
16년 봄에 나라에 다섯 개의 돌이 떨어졌으니, 이는 운성隕星이다.注+단지 ‘’이라고만 말하면 별이 돌을 떨어뜨린 것으로 의심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거듭 운성隕星이라고 말한 것이다. [부주]林: 별은 양물陽物이기 때문에 떨어져 땅에 닿으면 변화해 돌이 된다.
六鷁退飛하야 過宋都하니 風也注+六鷁遇迅風而退飛 風高不爲物害 故不記風之異
여섯 마리의 바닷새가 바람에 밀려 뒤로 날아 나라 도성都城을 지나갔으니, 이는 바람 때문이었다.注+여섯 마리의 바닷새가 거센 바람을 만나 뒤로 밀려 날은 것이다. 높은 바람이어서 곡물穀物에는 재해災害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의 재이災異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周內史叔興聘于宋하니 宋襄公問焉曰 是何祥也
나라 내사內史숙흥叔興나라를 빙문聘問하니, 송양공宋襄公이 “이것이 무슨 조짐인가?
吉凶焉在注+祥 吉凶之先見者 襄公以爲石隕鷁退 能爲禍福之始 故問其所在 對曰今玆魯多大喪注+今玆 此歲 [附注] 林曰 大喪 魯季友公孫玆卒하고 明年齊有亂하고 君將得諸侯而不終이리이다注+魯喪 齊亂 宋襄不終 退而告人曰
길흉吉凶이 어느 나라에 있겠는가?”注+길흉吉凶의 조짐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양공襄公은 돌이 떨어지고 바닷새가 뒤로 밀려 날은 것이 화복禍福의 조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길흉이 어느 나라에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라고 묻자, 숙흥叔興은 “금년에 나라에는 상사喪事가 많을 것이고,注+금자今玆금년今年이다.[부주]林: 대상大喪나라의 계우季友공손자公孫玆가 죽은 것이다.나라에는 난리가 날 것이고, 임금께서는 제후諸侯패주霸主가 될 것이나 결과가 좋지 못할[不終] 듯합니다.”注+나라의 상사喪事의 난리와 송양공宋襄公부종不終숙흥叔興각국各國정사政事형벌刑罰선악善惡[吉凶]과 다른 일에 나타난 조짐을 보고서 안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물러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君失問이로다
께서는 잘못 물으셨다.
是陰陽之事 非吉凶所生也注+言石鷁 所爲 非人所生 襄公不知陰陽而問人事 故曰君失問 叔興自以對非其實 恐爲有識所譏 故退而告人
이는 음양陰陽의 일이고 길흉吉凶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注+별똥이 떨어지는 것과 바닷새가 밀려 뒤로 날 정도로 거세게 부는 바람은 음양陰陽착역錯逆으로 생긴 일이고 사람으로 인해 생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양공襄公음양陰陽의 일인 줄을 모르고 인사人事를 물었기 때문에 임금께서는 잘못 물었다고 한 것이다. 숙흥叔興은 자신의 대답이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므로 지식인知識人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물러 나와서 사람에게 고한 것이다.
吉凶由人이니라
길흉吉凶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吾不敢逆君故也注+積善餘慶 積惡餘殃 故曰吉凶由人 君問吉凶 不敢逆之 故假他占以對
그러나 임금의 명을 거역拒逆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상과 같이 대답한 것이다.” 注+을 쌓으면 자손子孫을 받고 을 쌓으면 자손子孫재앙災殃을 받는다. 그러므로 길흉吉凶은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길흉吉凶에 대한 임금의 물음을 감히 거역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을 빌어 대답했다는 말이다.
[傳]夏 齊伐厲不克하고 救徐而還하다注+十五年 齊伐厲以救徐
여름에 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나라를 구원救援하고서 돌아왔다.注+희공僖公 15년에 나라가 나라를 쳐서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傳]秋 狄侵晉하야 取狐廚受鐸하고 涉汾하야 及昆都하니 因晉敗也注+狐廚受鐸昆都 晉三邑 平陽臨汾縣西北有狐谷亭 汾水出大原 南入河
가을에 적인狄人나라를 침공侵攻하여 호주狐廚수탁受鐸하고 분수汾水를 건너 곤도昆都까지 침입侵入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패전敗戰한 기회를 이용[因]한 것이다.注+호주狐廚수탁受鐸곤도昆都나라의 세 이다. 평양平陽임분현臨汾縣 서북쪽에 호곡정狐谷亭이 있다. 분수汾水태원太原에서 발원發源하여 남쪽으로 흘러 황하黃河로 들어간다.
[傳]王以戎難告于齊하니 齊徵諸侯而戍周하다注+十一年 戎伐京師以來 遂爲王室難
주왕周王융인戎人화난禍難나라에 통고通告하니, 제후齊侯제후諸侯의 군대를 징집徵集하여 나라를 수호守護하였다.注+희공僖公 11년에 융인戎人경사京師침벌侵伐한 뒤로 드디어 융인戎人왕실王室화난禍難이 되었다.
冬十一月乙卯 鄭殺子華하다注+終管仲之言 事在七年
겨울 11월 을묘일乙卯日나라가 태자太子를 죽였다.注+관중管仲의 말이 끝내 들어맞았다. 이 일은 희공僖公 7년에 보인다.
十二月 會于淮하니 謀鄫이오 且東略也注+鄫爲淮夷所病故 [附注] 林曰 略 巡行也 終九年宰孔之言
12월에 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구원救援과 또 동방東方경략經略을 모의하기 위함이었다.注+나라가 회이淮夷의 괴롭힘을 받기 때문이다. [부주]林: 순행巡行이다. 희공僖公 9년의 재공宰孔의 말이 끝내 들어맞았다.
하야 有夜登丘而呼曰 齊有亂이라하니 不果城而還하다注+役人遇厲氣 不堪久駐 故作妖言
나라를 위해 을 쌓는데, 역부役夫들이 노역勞役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어떤 자가 밤중에 언덕에 올라가 ‘나라에 난리가 났다.’고 고함치니, 축성築城완료完了하지 않고 돌아갔다.注+역부役夫들이 전염병傳染病을 만나 오래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요언妖言을 지어낸 것이다.
역주
역주1 公子季友卒 : 李震相은 “大夫가 죽으면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 例이다. 季子는 僖公을 도와 임금으로 추대한 功이 있기 때문에 僖公은 그에게 生時에 氏를 주어 대대로 卿이 되도록 命하여, 權臣이 國權을 탈취하는 禍를 불렀는데도 聖人께서 단지 사실에만 의거해 기록한 것이 애석하다.”고 하였다.
역주2 鄫季姬卒 : 李震相은 “諸侯에게 出嫁한 魯나라 임금의 딸이기 때문에 卒을 기록한 것이다. 葬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省略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3 別以政刑吉凶他占知之 : 叔興이 당시 各國의 政治‧刑罰과 혹은 다른 일에 나타난 조짐을 보고서 안 것이지 隕石과 六鷁로 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주4 陰陽錯逆 : 錯逆은 陰陽이 正常을 잃어 어지러운 것이다.
역주5 城鄫……不果城而還 : 李震相은 “淮夷가 中國을 괴롭히는데도 齊桓公은 淮夷를 물리치지 못하고 鄫나라에 城을 쌓아 백성들을 괴롭혔고, 밤에 위급한 소문이 들리자 城役을 停止하였으니 桓公의 뜻이 나태하고 霸業이 衰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6 : 傳文의 ‘病’을 杜注에는 厲氣 곧 傳染病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이 설을 따르지 않고 괴로움으로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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