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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6)

춘추좌씨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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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三年春 叔弓帥師圍費注+不書南蒯以費叛 不以告廟 하다
13년 봄에 숙궁叔弓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비읍費邑포위包圍하였다.注+남괴南蒯비읍費邑의 백성들을 거느리고서 배반背叛한 것을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 일을 종묘宗廟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經]夏四月 楚公子比自晉歸于楚하야 弑其君虔于乾谿注+比去晉而不送 書歸者 依陳蔡以入 言陳蔡猶列國也 比歸而靈王死 故書弑其君 靈王無道而弑稱 比非首謀而反書弑 比雖脅立 猶以罪加也 靈王死在五月 又不在乾谿 楚人生失靈王 故本其始禍以赴之하다
여름 4월에 나라 공자公子나라에서 나라로 돌아와서 그 임금 건계乾谿에서 시해弑害하였다.注+초공자楚公子나라를 떠나올 때 진인晉人호송護送한 것이 아닌데도 ‘’로 기록한 것은 나라와 나라의 도움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니, 나라와 나라가 아직 열국列國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가 돌아오자 영왕靈王이 죽었으므로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영왕靈王무도無道하였는데도 시해弑害한 신하의 이름을 하고, 가 앞장서서 일을 꾸민 것이 아닌데도 도리어 ‘시해弑害하였다.’고 기록한 것은 가 비록 위협威脅에 의해 마지못해 임금이 되었으나, 〈영왕靈王 때문에 죽었으므로〉 오히려 를 씌운 것이다. 영왕靈王이 죽은 것은 5월이었고, 또 시해弑害당한 곳이 건계乾谿가 아니었으나, 초인楚人영왕靈王을 살았을 때 잃었기 때문에 그 화난禍難이 처음 일어난 날을 근거로 부고赴告한 것이다.
[經]楚公子棄疾殺公子比注+比雖爲君 而未列於諸侯 故不稱爵 殺不稱人 罪棄疾하다
나라 공자公子기질棄疾공자公子를 죽였다.注+공자公子가 비록 임금이 되었으나 제후諸侯회합會合참가參加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죽인 자를 ‘’으로 칭하지 않은 것은 기질棄疾에게 돌린 것이다.
[經]秋 公會劉子晉侯齊侯宋公衛侯鄭伯曹伯莒子邾子滕子薛伯杞伯小邾子于平丘注+平丘在陳留長垣縣西南 [附注] 林曰 平丘 衛地 晉復合諸侯也 晉合諸侯 由是止 鄟陵之後 하다
가을에 소공昭公유자劉子진후晉侯제후齊侯송공宋公위후衛侯정백鄭伯조백曹伯거자莒子주자邾子등자滕子설백薛伯기백杞伯소주자小邾子평구平丘에서 회맹會盟하였다.注+평구平丘진류陳留장원현長垣縣 서남쪽에 있다. [부주]林: 평구平丘나라 땅이다. 나라가 다시 제후諸侯규합糾合한 것이다. 나라가 제후諸侯규합糾合한 것이 이번에서 끝났고, 전릉鄟陵 이후로 참맹參盟이 다시 시작되었으니, 나라가 맹주盟主가 아니었다.
[經]八月甲戌 同盟于平丘注+書同 齊服故 [附注] 林曰 書同盟 劉子與盟也하다
8월 갑술일甲戌日평구平丘에서 동맹同盟하였다.注+동맹同盟을 기록한 것은 나라가 〈나라에〉 복종服從하였기 때문이다. [부주]林: 동맹同盟을 기록한 것은 유자劉子회맹會盟참가參加하였기 때문이다.
[經]公不與盟注+魯不堪晉求 讒慝弘多 公不與盟 非國惡 故不諱하다
소공昭公동맹同盟참가參加하지 않았다.注+나라는 나라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고, 또 〈나라를〉 참소해 해치려는 사악邪惡한 자가 많기 때문에 소공昭公동맹同盟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국악國惡이 아니기 때문에 숨기지 않은 것이다.
[經]晉人執季孫意如以歸하다
진인晉人계손의여季孫意如체포逮捕해 데리고 돌아갔다.
[經]公至自會注+無傳
소공昭公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蔡侯廬歸于蔡하고 陳侯吳歸于陳注+陳蔡皆受封于楚 故稱爵 諸侯納之曰歸 [附注] 林曰 於是楚平王封陳蔡而復之 隱大子之子廬 歸于蔡 悼大子之子吳 歸于陳 則其書曰陳侯蔡侯 何 不與楚專封也 歸辭有三 突歸于鄭 公子之辭也 蔡季自陳歸于蔡 宜得國公子之辭也 衛侯鄭歸于衛 嘗失國之君之辭也 此未嘗有國也 使之如失國辭然者 不與楚專封也하다
채후蔡侯나라로 돌아가고, 진후陳侯나라로 돌아갔다.注+나라와 나라는 모두 나라에게 봉작封爵을 받았다. 그러므로 한 것이다. 제후諸侯가 들여보내는 것을 ‘’라 한다. [부주]林: 이때 초평왕楚平王이 〈나라의 군현郡縣으로 삼았던〉 나라와 나라를 에게 해주어 나라를 회복回復시켰으므로 은태자隱太子의 아들 나라로 돌아가고 도태자悼太子의 아들 나라로 돌아간 것인데, 에 ‘진후陳侯채후蔡侯’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나라가 제멋대로 한 것을 허여許與하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에는 세 가지로 쓰인 가 있으니, 환공桓公 11년의 ‘돌귀우정突歸于鄭’은 공자公子을 사모해 ‘’로 말한 것이고, 환공桓公 17년에 ‘채계자진귀우채蔡季自陳歸于蔡’는 당연히 나라를 차지할 공자公子이기 때문에 ‘’로 말한 것이고, 희공僖公 28년에 ‘위후정귀우위衛侯鄭歸于衛’는 나라를 잃은 적이 있는 임금이기 때문에 ‘’로 말한 것이다. 는 나라를 소유所有한 적이 없는데도 마치 나라를 잃은 자가 다시 돌아간 것처럼 말한 것은 나라가 제멋대로 한 것을 허여許與하지 않은 것이다.
[經]冬十月 葬蔡靈公注+蔡復而後 以君禮葬之하다
겨울 10월에 채영공蔡靈公장사葬事 지냈다.注+나라가 나라를 회복回復한 뒤에 임금의 로 장사 지낸 것이다.
[經]公如晉타가 至河乃復注+晉人辭公하다
소공昭公나라에 가다가 황하黃河에 이르러 되돌아왔다.注+진인晉人소공昭公사절謝絶하였기 때문이다.
[經]吳滅州來注+州來楚邑 用大師焉曰滅하다
나라가 주래州來하였다.注+주래州來나라 이다. 대군大軍을 사용하는 것을 ‘’이라 한다.
[傳]十三年春 叔弓圍費 不克하고 敗焉注+爲費人所敗 不書 諱之하다 平子怒하야 令見費人執之하야 以爲囚俘注+[附注] 朱曰 令叔弓每遇見費邑之人 則執而囚虜之하니 冶區夫曰 非也注+區夫 魯大夫
13년 봄에 숙궁叔弓비읍費邑포위包圍하였으나 승리勝利하지 못하고 도리어 패전敗戰하자注+비인費人에게 패전敗戰한 것이다. 이를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숨긴 것이다. , 평자平子하여 ‘비인費人을 만나거든 잡아서 포로捕虜로 삼으라.’고 을 내리니注+[부주]朱: 숙궁叔弓에게 비읍費邑 사람을 만나면 그때마다 잡아서 포로捕虜로 삼도록 명령命令한 것이다. , 야구부冶區夫가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注+구부區夫나라 대부大夫이다.
若見費人이어든 寒者衣之하고 飢者食之하야 爲之令主하야 而共其乏困注+[附注] 林曰 以美德爲費人之主 而供給其貧乏困瘁 이면 費來如歸하야 南氏亡矣注+[附注] 林曰 費人來者 得其衣食 如歸私家 如此則南蒯亡不久矣 리라
만약 비인費人을 만나거든 추위에 떠는 자에게는 옷을 주고 굶주린 자에게는 밥을 주어, 그들의 착한 주인主人이 되어 그들의 궁핍窮乏물자物資공급供給한다면注+[부주]林: 아름다운 을 베풀어 비인費人주인主人이 되어서 빈곤貧困비인費人들에게 물자物資공급供給하라는 말이다. 비인費人들은 귀순歸順해 오기를 마치 제집으로 돌아오듯이 하여 남씨南氏할 것입니다.注+[부주]林: 귀순歸順해 오는 비인費人들이 의식衣食을 얻게 된다면 마치 제집으로 돌아오듯이 귀순歸順해 올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오래지 않아 남괴南蒯멸망滅亡할 것이라는 말이다.
民將叛之리니 誰與居邑이리오
백성들이 장차 그를 배반背叛할 것이니, 누가 남씨南氏와 함께 〈포위 속에 있는〉 비읍費邑거주居住하려 하겠습니까?
若憚之以威하고 懼之以怒 民疾而叛하리니 爲之聚也注+[附注] 朱曰 使費人疾惡而叛 我乃是爲南蒯而聚其民也
만약 위력威力으로써 그들을 살상殺傷[憚]하고 분노憤怒로써 그들을 두렵게 한다면 백성들은 〈계씨季氏를 미워하여〉 배반背叛할 것이니, 이는 남씨南氏를 위해 백성들을 모아주는 것입니다.注+[부주]朱: 가령 비인費人들이 계씨季氏를 미워하여 배반背叛한다면 이는 우리가 남괴南蒯를 위해 백성들을 모아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若諸侯皆然이면 費人無歸注+[附注] 朱曰 設若鄰國皆爲我囚俘費人 則費人無所依歸 不親南氏하고 將焉入矣리오
만약 제후諸侯들도 모두 이와 같이 한다면 비인費人귀의歸依할 곳이 없으니注+[부주]朱: 가령 이웃 나라들도 모두 우리를 위해 비인費人들을 포로捕虜로 잡는다면 비인費人귀의歸依할 곳이 없다는 말이다. 남씨南氏를 가까이하지 않고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平子從之하니 費人叛南氏注+費叛南氏在明年 傳善區夫之謀 終言其效하다
평자平子가 그의 말을 따르니, 비인費人남씨南氏배반背叛하였다.注+비인費人남씨南氏배반背叛한 것은 명년明年에 보인다. 전문傳文구부區夫계모計謀를 훌륭하게 여겨 끝내 그 효과效果를 말한 것이다.
[傳]楚子之爲令尹也 殺大司馬薳掩하고 而取其室注+在襄三十年이러니 及卽位하야 奪薳居田注+居 掩之族 言薳氏所以怨하고 遷許而質許圍注+遷許在九年 圍 許大夫하다
초자楚子(靈王)가 영윤令尹으로 있을 때 대사마大司馬위엄薳掩을 죽이고서 그 가산家産하였더니注+양공襄公 30년에 있었다., 임금으로 즉위卽位함에 미쳐 또 위거薳居전지田地를 빼앗고注+위엄薳掩종족宗族이다. 위씨薳氏원한怨恨을 품게 된 원인原因을 말한 것이다. , 또 허국許國인민人民이주移住시키고서 허국許國대부大夫인질人質로 삼았다.注+나라를 옮긴 일은 소공昭公 9년에 있었다. 나라 대부大夫이다.
蔡洧有寵於王注+[附注] 林曰 洧 蔡人仕楚者 有寵於楚靈王이러니 王之滅蔡也 其父死焉注+楚滅蔡 在十一年 洧仕楚 其父在國 故死이어늘 王使與於守而行注+使洧守國 王行至乾谿하다
채유蔡洧초왕楚王에게 총애寵愛를 받았더니注+[부주]林: 나라 사람으로 나라에 와서 벼슬한 자인데, 초영왕楚靈王에게 총애寵愛를 받았다. 초왕楚王채국蔡國격멸擊滅할 때 그 아비가 〈전란중戰亂中에〉 죽었는데도注+나라가 나라를 멸망滅亡시킨 일은 소공昭公 11년에 있었다. 나라에 와서 벼슬살이하였고, 그 아버지는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전란戰亂 중에〉 죽은 것이다.초왕楚王은 그에게 국도國都위수衛戍하는 일에 참여參與하게 하고서 〈건계乾谿〉로 갔다.注+에게 국도國都수비守備하게 하고서 영왕靈王은 떠나 건계乾谿로 간 것이다.
申之會 越大夫戮焉注+申會在四年하고 王奪鬪韋龜中犫注+韋龜 令尹子文玄孫 中犫 邑名 하고 又奪成然邑하고 而使爲郊尹注+成然 韋龜子 郊尹 治郊竟大夫하다
에서 회맹會盟할 때 나라의 대부大夫모욕侮辱[戮]하였고注+에서의 회맹會盟소공昭公 4년에 있었다. , 투위구鬪韋龜봉읍封邑중주中犫를 빼앗고注+위구韋龜영윤令尹자문子文현손玄孫이고, 중주中犫의 이름이다. , 또 성연成然을 빼앗고서 그를 교윤郊尹을 삼았다.注+성연成然위구韋龜의 아들이다. 교윤郊尹교외郊外구역區域을 다스리는 대부大夫이다.
蔓成然故事蔡公注+蔡公 棄疾也 故 猶舊也 韋龜以棄疾有當璧之命 故使成然事之이라
만성연蔓成然(鬪韋龜의 아들)은 전에 채공蔡公(棄疾)을 섬겼다.注+채공蔡公기질棄疾이다. 와 같다. 위구韋龜기질棄疾이 임금이 될[當璧]운명運命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성연成然에게 기질棄疾을 섬기게 한 것이다.
故薳氏之族及薳居許圍蔡洧蔓成然 皆王所不禮也注+[附注] 朱曰 數子所以皆怨靈王
그러므로 위씨薳氏종족宗族위거薳居허위許圍채유蔡洧만성연蔓成然은 모두 초왕楚王예우禮遇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注+[부주]朱: 몇 사람들이 모두 영왕靈王에게 원한怨恨을 품게 된 원인原因을 말한 것이다.
因群喪職之族注+[附注] 林曰 因楚之群大夫失職而怨王者하고 注+常壽過 申會所戮者 [附注] 林曰 開而導之以作亂하야 圍固城하고 克息舟注+[附注] 林曰 圍固城之地 勝息舟之邑하야 城而居之注+息舟 楚邑 城之堅固者 [附注] 林曰 常壽過築息舟城而居之하다
그러므로 직위職位를 잃은 모든 종족宗族에 의지하고注+[부주]林: 나라의 대부大夫로서 관직官職을 잃어 영왕靈王원망怨望하는 자들에게 의지한 것이다. 나라 대부大夫상수과常壽過유도誘導[啓]하여 반란叛亂을 일으켜注+상수과常壽過에서 회맹會盟할 때 영왕靈王에게 죽임을 당한 자이다. [부주]林: 가르쳐 인도引導하여 반란叛亂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고성固城포위包圍하고 식주息舟함락陷落[克]하여注+[부주]林: 고성固城의 땅을 포위包圍하고 식주息舟공격攻擊승리勝利한 것이다. 을 쌓고서 그곳에 거주居住하였다.注+식주息舟나라 으로 성곽城郭견고堅固한 곳이다. [부주]林: 상수과常壽過가 전에 식주息舟을 쌓고서 그곳에 거주居住했었다.
觀起之死也 其子從在蔡하야 事朝吳注+觀起死在襄二十二年 朝吳 故蔡大夫聲子之子하다
관기觀起가 〈에서〉 죽음을 당할 때 그 아들 관종觀從나라에서 조오朝吳를 섬기고 있었다.注+관기觀起의 죽음은 양공襄公 22년에 있었다. 조오朝吳고인故人이 된 나라 대부大夫성자聲子의 아들이다.
曰 今不封蔡 蔡不封矣注+[附注] 林曰 今若不爲蔡求復其故封 失此機會 則蔡不可復封矣리니 我請注+觀從以父死怨楚 故欲試作亂하리라하고 以蔡公之命召子干子晳注+二子皆靈王弟 元年 子干奔晉 子晳奔鄭하야 及郊 而告之情注+告以蔡公不知謀하야 强與之盟하고 入襲蔡하니
관종觀從조오朝吳에게 말하기를 “지금 나라가 함을 받지 못한다면 나라는 영원히 봉함을 받지 못할 것이니注+[부주]林: 지금 만약 나라를 위해 옛 봉지封地회복恢復하기를 구하지 않았다가 이 기회機會를 잃는다면 나라는 그 봉지封地회복恢復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 내가 한 번 〈채공의 뜻을〉 떠보겠습니다.注+관종觀從은 아버지가 죽은 일로 나라를 원망하였다. 그러므로 난을 일으켜 채공蔡公의 뜻을 떠보려 한 것이다. [試]”고 하고서 채공蔡公으로 자간子干자석子晳을 〈돌아오라고〉 불러注+두 사람은 모두 초영왕楚靈王의 아우이다. 소공昭公원년元年자간子干나라로 출분出奔하고, 자석子晳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그들이 교외郊外에 당도하자, 관종觀從사정事情을 알려주고서注+채공蔡公은 이 계획計劃을 모르고 있다고 한 것이다. 강요强要해 그들과 결맹結盟하고서 들어가서 채도蔡都습격襲擊하였다.
蔡公將食이라가 見之而逃注+不知其故 驚起辟之하다
채공蔡公은 이때 밥을 먹으려다가 쳐들어오는 무리를 보고 도망갔다.注+그 계획을 몰랐기 때문에 놀라 일어나 한 것이다.
觀從使子干食하고 坎用牲加書而速行注+使子干居蔡公之牀 食蔡公之食 竝僞與蔡公盟之徵驗以示衆하고 己徇於蔡注+己 觀從也
관종觀從자간子干에게 〈채공蔡公의 자리에 앉아서〉 그 밥을 먹게 하고는, 구덩이를 파고 희생犧牲을 죽여 맹서盟書를 그 위에 올려놓고서 자간子干자석子晳에게 속히 도망가게 하고注+자간子干으로 하여금 채공蔡公의 의자에 앉아 채공蔡公이 먹으려고 차려 놓은 음식을 먹게 하고서, 자간子干과 함께 채공蔡公결맹結盟증거證據를 거짓으로 만들어 대중大衆에게 보인 것이다. , 자기는 채인蔡人들에게 돌아다니며 말하기를注+관종觀從이다.
蔡公召二子하야 將納之하야 與之盟而遣之矣注+[附注] 林曰 先遣二子入楚矣 將師而從之注+詐言蔡公將以師助二子리라 蔡人聚하여 將執之注+執觀從어늘
채공蔡公자간子干자석子晳을 불러들여 나라로 들여보내려고 그들과 결맹結盟하고서 〈먼저 나라로 가도록〉 보냈으니注+[부주]林: 먼저 두 사람을 보내어 나라 국도國都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 채공蔡公도 장차 군대를 거느리고 뒤따라갈 것이다.”注+채공蔡公도 장차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두 사람을 도우려 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고 하니, 채인蔡人이 모여들어 관종觀從을 잡으려 하였다.注+관종觀從을 잡으려 한 것이다.
辭曰 失賊成軍이어늘 而殺余何益이리오한대 乃釋之注+賊 謂子干子晳也 言蔡公已成軍 殺己不解罪하다
그러자 관종觀從이 말하기를 “(子干과 자석子晳)은 이미 놓쳤고 채공蔡公은 이미 군대를 편성編成하였으니 나를 죽인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라고 하니, 사람들은 곧 그를 놓아주었다.注+자간子干자석子晳을 이른다. 채공蔡公이 이미 군대를 편성編成하였으니, 나를 죽이더라도 를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朝吳曰 二三子하야 以待所濟注+言若能爲靈王死亡 則可違蔡公之命 以待成敗所在 若求安定이면 則如與之하야 以濟所欲注+言與蔡公 則可得安定이라
조오朝吳채인蔡人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이 만약 〈초왕楚王을 위해〉 죽거나 망명亡命할 수 있다면 채공蔡公을 어기고서 그 성패成敗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고注+만약 초영왕楚靈王을 위해 사망死亡할 수 있다면 채공蔡公을 어기고서 성패成敗소재所在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如], 만약 안정安定한다면 채공蔡公을 도와 하는 바(復國)를 이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注+채공蔡公을 도우면 안정安定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且違上하고 何適而可注+言不可違上也 上謂蔡公리오 衆曰與之라하니
그리고 또 상관上官을 어기고서 누구의 을 따르겠는가?”注+윗사람의 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윗사람은 채공蔡公을 이른다. 라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채공蔡公을 돕겠다.”고 말하였다.
乃奉蔡公하야 召二子而盟于鄧注+潁川召陵縣西南有鄧城 二子 子干子晳하야 注+國陳蔡而依之 [附注] 林曰 封陳蔡之國而依倚之하다
이에 채공蔡公을 모시고서 자간子干자석子晳을 돌아오도록 불러 에서 결맹結盟하고서注+영천潁川소릉현召陵縣 서남쪽에 등성鄧城이 있다. 두 사람은 자간子干자석子晳이다. 채공蔡公진인陳人채인蔡人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두 나라의 회복恢復허락許諾하였다.注+나라와 나라를 회복恢復시켜 주고서 그 백성들에게 의지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와 나라를 다시 해 주고서 그 백성들에게 의지한 것이다.
楚公子比注+子干公子黑肱注+子晳公子棄疾注+蔡公蔓成然蔡朝吳帥陳蔡不羹許葉之師하고 因四族之徒注+四族 薳氏許圍蔡洧蔓成然하야 以入楚注+[附注] 朱曰 時靈王次于乾谿 而蔡洧與於守 故作亂之徒 因而入楚하다
나라 공자公子注+공자公子자간子干이다. 공자公子흑굉黑肱注+공자公子흑굉黑肱자석子晳이다. 공자公子기질棄疾注+공자公子기질棄疾채공蔡公이다. 만성연蔓成然나라 조오朝吳불갱不羹의 군대를 거느리고서 사족四族의 무리에 의지해注+사족四族위씨薳氏허위許圍채유蔡洧만성연蔓成然이다. 나라로 쳐들어갔다.注+[부주]朱: 이때 초영왕楚靈王건계乾谿에 머물러 있었고, 채유蔡洧국도國都수비守備참가參加하였다. 그러므로 반란叛亂을 일으킨 무리가 채유蔡洧에 의지해 나라의 국도國都로 들어간 것이다.
及郊하야 陳蔡欲爲名이라 故請爲注+欲築壘壁以示後人 爲復讐之名 [附注] 林曰 欲築壘壁 號曰武軍以示後人하니
나라의 교외郊外당도當到하였을 때 진인陳人채인蔡人이 〈무도無道한 임금을 토벌討伐하고, 나라를 회복恢復했다는〉 명성名聲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蔡公知之하고 曰 欲速이오 且役病矣注+[附注] 林曰 言欲速入楚 且役人已告疾矣 請藩而已하노라 乃藩爲軍注+藩 籬也 하다
그러므로 무군武軍축조築造하기를 하니注+누벽壘壁(軍營 담장)을 쌓아 후인後人에게 보여 복수復讐명예名譽로 삼으려 한 것이다. [부주]林: 누벽壘壁축조築造하여 ‘무군武軍’으로 명칭名稱하고 이로써 후인後人에게 보이고자 한 것이다. , 채공蔡公이 이를 알고서 말하기를 “빨리 쳐들어가야 하고 또 군대[役]들이 지쳤으니注+[부주]林: 나라로 속히 쳐들어가고 싶고, 또 역인役人들이 이미 괴로움을 한다는 말이다. , 울타리만을 쳐서 군영軍營을 만들기를 하노라.”고 하니, 이에 울타리를 쳐서 군영軍營을 만들었다.注+은 울타리이다.
蔡公使須務牟與史猈先入하야 因正僕人殺大子祿及公子罷敵注+須務牟史猈 楚大夫 蔡公之黨也 正僕 大子之近官 하다
채공蔡公수무모須務牟사패史猈를 먼저 성내城內로 들여보내어 정복인正僕人의 도움을 받아 태자太子祿공자公子파적罷敵을 죽이게 하였다.注+수무모須務牟사패史猈나라 대부大夫채공蔡公이다. 정복正僕태자太子근관近官(가까이서 모시는 관리官吏)이다.
公子比爲王하고 公子黑肱爲令尹하야 次于魚陂注+竟陵城西北有甘魚陂 하다
공자公子이 되고 공자公子흑굉黑肱영윤令尹이 되어 어피魚陂주둔駐屯하였다.注+경릉현竟陵縣 서북쪽에 감어피甘魚陂가 있다.
公子棄疾爲司馬하야 先除王宮注+[附注] 林曰 先除治楚王之宮하고 使觀從從師于乾谿하야 而遂告之注+從乾谿之師 告使叛靈王하고 且曰 先歸復所注+[附注] 林曰 先歸國者 各安其所어니와 後者劓注+劓 截鼻 하라하니 師及訾梁而潰注+靈王還至訾梁而衆散하다
공자公子기질棄疾사마司馬가 되어 먼저 왕궁王宮청소淸掃하고서注+[부주]林: 먼저 초왕楚王궁중宮中제치除治(整理)한 것이다. , 관종觀從을 보내어 건계乾谿에 있는 영왕靈王의 군대로 가서 드디어 〈반란叛亂을 일으킨 사실을〉 알리고서注+건계乾谿의 군대에게 〈반란叛亂을 일으킨 상황狀況을〉 알려 초영왕楚靈王배반背叛하게 한 것이다. “먼저 돌아가는 자는 녹위祿位를 회복할 수 있지만注+[부주]林: 〈군중軍中을 떠나〉 먼저 나라로 돌아가는 자는 각각 그 녹위祿位(其所)를 편안히 누리게 하겠다는 말이다. 뒤에 돌아가는 자는 의형劓刑을 받을 것이다.”注+는 코를 베는 것이다. 고 말하게 하니, 영왕靈王의 군대가 자량訾梁에 이르러 흩어져 도망갔다.注+초영왕楚靈王환군還軍하여 자량訾梁에 이르렀을 때 군대가 흩어져 도망한 것이다.
王聞群公子之死也하고 自投于車下曰 人之愛其子也 亦如余乎 侍者曰 甚焉이니이다
초영왕楚靈王공자公子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 스스로 수레 아래로 몸을 던지며 말하기를 “다른 사람도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나와 같으냐?”고 하니, 시종侍從이 “대왕大王보다 심합니다.
小人老而無子하니 知擠于溝壑矣注+擠 隊也로이다
소인小人은 늙어서 자식이 없으니 〈죽은 뒤에 그 시신尸身이〉 구학溝壑에 던져질 것으로 압니다.”注+는 떨어지는 것이다. 고 하였다.
王曰 余殺人子多矣 能無及此乎
이 “내 남의 자식을 많이 죽였으니, 이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右尹子革曰 請待于郊하야注+聽國人之所與하소서 王曰 衆怒不可犯也니라
우윤右尹자혁子革이 “교외郊外에서 기다리면서 국인國人처분處分을 기다리소서.注+국인國人의 도움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聽]”라고 하니, 이 “대중大衆분노憤怒는 거스를 수 없다.”고 하였다.
曰 若入於大都 而乞師於諸侯니이다 王曰 皆叛矣注+[附注] 林曰 言大都如陳蔡不羹許葉之屬 皆同叛矣
자혁子革이 “대도大都로 들어가면 제후諸侯에게 원군援軍할 수 있습니다.”고 하니, 이 “대도大都가 모두 배반背叛하였다.”注+[부주]林: 불갱不羹 등과 같은 대도大都가 모두 함께 배반背叛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曰 若亡於諸侯 以聽大國之圖君也注+[附注] 林曰 請靈王出奔適諸侯之國 以聽大國圖謀納君니이다 王曰 大福不再 祗取辱焉이라
자혁子革이 “제후국諸侯國으로 망명亡命하면 대국大國이 임금님을 위해 도모圖謀하는 것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注+[부주]林: 영왕靈王에게 출분出奔제후국諸侯國으로 가서 대국大國이 임금님을 본국本國으로 들여보내기를 도모圖謀할 때를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고 하니, 이 “대복大福재차再次 오지 않는 것이니, 단지 치욕恥辱만을 부를 뿐이다.”고 하였다.
然丹乃歸于楚注+然丹子革棄王歸하다
그러자 연단然丹은 〈영왕靈王을 버리고〉 나라로 돌아갔다.注+연단然丹자혁子革영왕靈王을 버리고 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王沿夏하야 將欲入鄢注+夏 漢別名 順流爲沿 順漢水南至鄢하다
하수夏水(漢水)를 따라 내려가 으로 들어가려 하였다.注+한수漢水별명別名이다. 흐름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 ‘沿’이니, 한수漢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서 에 이른 것이다.
芋尹無宇之子申亥曰 吾父再奸王命注+謂斷王旌 執人於章華宮이로되 王不誅하니 惠孰大焉
우윤芋尹무우無宇의 아들 신해申亥가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두 번이나 왕명王命을 범하였는데도注+소공昭公 7년에 영왕靈王영윤令尹으로 있을 때 사냥에서〉 를 사용하려 하자 무우無宇가 그 깃발을 자르고, 〈영왕靈王즉위卽位한 뒤에 장화궁章華宮을 세워 도망자逃亡者들을 받아들이니, 무우無宇의 문지기가 그곳으로 도망해 들어가자〉 무우無宇장화궁章華宮으로 가서 그 문지기를 잡아온 일을 이른다. 께서 주륙誅戮하지 않으셨으니, 이보다 큰 은혜가 어디 있는가?
君不可忍注+[附注] 林曰 旣爲吾君 不可忍視其死亡이오 惠不可棄注+[附注] 林曰 受君之 不可棄背其患難 吾其從王하리라하고 乃求王타가 遇諸棘闈以歸注+棘 里名 闈 門也하다
위난危難을 당한〉 임금님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고注+[부주]林: 이미 우리의 임금 노릇을 하였으니, 그 임금이 죽는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은혜를 버릴 수 없으니注+[부주]林: 임금의 은혜를 받았으니 그 환란을 저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 나는 장차[其] 임금님을 따르겠다.”고 하고서, 을 찾아 헤매다가 극리棘里이문里門에서 만나 모시고 돌아왔다.注+은 마을의 이름이고, 이다.
夏五月癸亥 王縊于芋尹申亥氏注+癸亥 五月二十六日 皆在乙卯丙辰後 傳終言之 經書四月誤하니 申亥以其二女殉而葬之注+[附注] 林曰 申亥感靈王之恩 以其二女從葬하다
여름 5월 계해일癸亥日영왕靈王우윤芋尹신해씨申亥氏의 집에서 목을 매고 죽으니注+계해癸亥는 5월 26일로 을묘일乙卯日병진일丙辰日 뒤인데, 전문傳文에 〈계해일癸亥日의 일을 먼저 기록한 것은〉 그 종말終末을 말한 것이다. 에 4월로 기록한 것은 오류誤謬이다. , 신해申亥는 자기의 두 딸을 순장품殉葬品으로 삼아 영왕靈王장사葬事 지냈다.注+[부주]林: 신해申亥영왕靈王의 은혜에 감격感激하여 자기의 두 딸을 순장殉葬한 것이다.
觀從謂子干曰 不殺棄疾이면 雖得國이라도 猶受禍也리이다 子干曰 余不忍也로라
관종觀從자간子干에게 일러 말하기를 “기질棄疾을 죽이지 않으면 비록 나라를 얻더라도 도리어 를 받을 것입니다.”고 하니, 자간子干이 “나는 차마 그를 죽일 수 없다.”고 하였다.
子玉曰 人將忍子注+子玉 觀從 吾不忍俟也라하고 乃行注+[附注] 林曰 觀從乃辟難而去하다
그러자 자옥子玉(觀從)은 “그 사람은 장차 임금님에게 잔인殘忍한 짓을 할 것이니注+자옥子玉관종觀從이다. , 나는 차마 그때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고 하고서 이에 자간子干을 버리고 떠났다.注+[부주]林: 관종觀從은 이에 환난患難을 피해 떠난 것이다.
國每夜駭曰 王入矣注+相恐以靈王也 [附注] 朱曰 時國人不知靈王存亡 故夜每相恐云靈王入矣라하다
이때 도성都城[國] 안에 매일 밤 “이 들어왔다.”注+백성들이 서로 영왕靈王이 돌아왔다는 말로 겁을 준 것이다. [부주]朱: 이때 국인國人들은 영왕靈王존망存亡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밤마다 ‘이 들어왔다’는 말로 서로 겁을 준 것이다. 는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자가 있었다.
乙卯夜 棄疾使周走而呼曰 王至矣注+周 徧也 乙卯 十八日라하니 國人大驚하다
을묘일乙卯日 밤에 기질棄疾은 〈이를 이용하여〉 사람을 시켜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영왕靈王이 왔다.”注+는 ‘두루’이다. 을묘일乙卯日은 18일이다. 고 고함치게 하니 국인國人이 크게 놀랐다.
使蔓成然走告子干子晳注+[附注] 林曰 蔓成然 棄疾黨 故使走告二子曰 王至矣
기질棄疾만성연蔓成然을 시켜 달려가서 자간子干자석子晳에게注+[부주]林: 만성연蔓成然기질棄疾이다.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달려가서 하게 한 것이다. 이 왔습니다.
國人殺君司馬하니 將來矣注+司馬 謂棄疾也 言司馬見殺以恐子干 [附注] 朱曰 國人已殺我主君司馬棄疾 今又將來殺汝리이다
국인國人사마司馬(棄疾)를 죽였으니, 곧 이곳으로 몰려올 것입니다.注+사마司馬기질棄疾을 이른다. 사마司馬살해殺害되었다고 말하여 자간子干을 겁먹게 한 것이다. [부주]朱: 국인國人이 이미 나의 주군主君사마司馬기질棄疾을 죽였으니, 이제 또 이곳으로 와서 당신을 죽이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君若早自圖也 可以無辱注+[附注] 朱曰 庶可免爲國人所殺이리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만약 일찍이 스스로 계획을 세운다면 치욕恥辱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注+[부주]朱: 거의 국인國人에게 피살被殺되는 치욕恥辱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衆怒如水火焉하니 不可爲謀니이다
대중大衆의 분노는 수화水火 같으니 막을 모책謀策을 낼 수 없습니다.”고 하게 하였다.
又有呼而走至者曰 衆至矣라하니 二子皆自殺注+不書弑君 位未定也하다
이때 또 고함을 치며 달려와 “대중大衆이 몰려옵니다.”고 하는 자가 있으니, 두 사람은 모두 자살自殺하였다.注+임금을 시해弑害했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자간子干군위君位해지기 전에 자살自殺하였기 때문이다.
丙辰 棄疾卽位하야 名曰熊居注+[附注] 林曰 改名曰熊居라하다
병진일丙辰日기질棄疾즉위卽位하여 이름을 웅거熊居로 고쳤다.注+[부주]林: 이름을 ‘웅거熊居’로 고친 것이다.
葬子干于訾하니 實訾敖注+不成君無號諡者 楚皆謂之敖
자간子干장사葬事 지냈으니 바로[實]자오訾敖이다.注+임금의 지위地位고정固定되기 전에 죽어 시호諡號가 없는 자를 나라는 모두 ‘’라고 하였다.
殺囚하야 衣之王服하야 而流諸漢注+[附注] 林曰 棄疾乃取他囚殺之 衣以楚王之衣服 流諸漢水之中이라가
죄수罪囚를 죽여 의 옷을 입히고서 그 시신尸身한수漢水에 흘려보냈다.注+[부주]林: 기질棄疾은 곧 다른 죄수罪囚를 죽여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그 죄수罪囚시신尸身초왕楚王의복衣服을 입혀 한수漢水 가운데로 떠내려 보낸 것이다.
乃取而葬之하야 以靖國人注+[附注] 林曰 乃取囚 詐以爲靈王而葬之 以安靖楚國之人 하다
이내 건져다가 안장安葬하여 국인國人안정安靖시켰다.注+[부주]林: 곧 죄수罪囚시신尸身을 건져 올려 영왕靈王이라고 속이고서 장사葬事 지내어 나라 사람들을 안정安定시킨 것이다.
使子旗爲令尹注+子旗 蔓成然하다
자기子旗임명任命하여 영윤令尹으로 삼았다.注+자기子旗만성연蔓成然이다.
楚師還自徐注+前年圍徐之師 吳人敗諸豫章하야 獲其五帥注+定二年 楚人伐吳師于豫章 吳人見舟于豫章 而潛師于巢 以軍楚於豫章 又栢擧之役 吳人舍舟于淮汭 而自豫章與楚夾漢 此皆當在江北淮水南 蓋後在江南豫章 [附注] 林曰 五帥 卽蕩侯潘子司馬督囂尹午陵尹喜五人 하다
초군楚軍나라에서 돌아올 때注+전년前年나라를 포위했던 나라 군대이다.오인吳人초군楚軍예장豫章에서 패배敗北시키고서 그 다섯 장수將帥를 사로잡았다.注+정공定公 2년에 초인楚人나라를 치려고 예장豫章에 군대를 집결集結하니, 오인吳人전선戰船예장豫章출현出現시키고 에 군대를 매복시켜 초군楚軍예장豫章에서 공격[軍]하였고, 또 정공定公 4년 백거栢擧의 전쟁 때 오인吳人전선戰船회수淮水 굽이에 정박碇泊하고서 예장豫章에서 초군楚軍한수漢水를 사이에 두고 대치對峙하였으니, 이곳에 말한 예장豫章이 모두 전[當]에는 장강長江 북쪽과 회수淮水 남쪽에 있었는데 뒤에 예장豫章강남江南으로 옮겨온 듯하다. [부주]林: 다섯 장수將帥탕후蕩侯반자潘子사마독司馬督효윤오囂尹午능윤희陵尹喜 다섯 사람이다.
平王封陳蔡하고 復遷邑注+復九年所遷邑 [附注] 林曰 九年遷許于夷 遷城父人於陳 遷方城外人於許 至是皆復其舊하고 致群賂注+始擧事時所貨賂 [附注] 林曰 始擧事時 所許貨賂 今皆致之하고 施舍寬民注+[附注] 林曰 施恩惠舍逋負以寬民力하고 宥罪擧職注+擧職 修廢官 하다 召觀從하야
초평왕楚平王(棄疾)이 나라와 나라를 해주고, 옮겼던 읍인邑人을 〈원래原來주거지住居地로〉 회복回復시키고注+소공昭公 9년에 옮겼던 백성들을 원래元來거주지居住地복귀復歸시킨 것이다. [부주]林: 9년에 나라를 로 옮기고, 성보城父인민人民나라로 옮기고, 방성方城 밖의 인민人民들을 나라로 옮겼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두 그 옛 땅으로 되돌려 보낸 것이다. , 〈처음 거사擧事할 때 주기로 약속했던〉 모든 사람에게 재물財物을 주고注+처음 거사擧事할 때 주기로 한 재물財物이다. [부주]林: 처음 거사擧事할 때 주기로 허락했던 재물財物을 지금 모두 준 것이다. , 은혜를 베풀고, 백성을 너그럽게 대하고注+[부주]林: 은혜를 베풀고 부채負債탕감蕩減[舍]하여 백성들의 재력財力여유餘裕롭게[寬] 한 것이다. , 유죄자有罪者사면赦免하고, 폐기廢棄관직官職수복修復하였다.注+거직擧職폐기廢棄관직官職수복修復한 것이다.
王曰 唯爾所欲注+觀從敎子干殺棄疾 棄疾今召用之 明在君爲君之義하리라 對曰 臣之先佐開卜이니다
관종觀從을 불러 보고서 이 말하기를 “네가 하는 바를 내 들어주겠다.”注+관종觀從자간子干에게 기질棄疾을 죽이라고 가르쳤는데, 기질은 지금 〈도리어〉 그를 불러 등용登用하였으니, 임금이 있으면 임금을 위해야 하는 의리를 밝게 안 것이다. 고 하니, 관종觀從이 “조선祖先복윤卜尹부관副官이었습니다.”고 대답하였다.
乃使爲卜尹注+佐卜人 開龜兆 하다
이에 평왕平王은 그를 임명任命복윤卜尹으로 삼았다.注+복윤卜尹복인卜人을 도와 를 열고서 귀복龜卜점서占書열람閱覽하는 관직官職이다.
使枝如子躬聘于鄭注+[附注] 林曰 枝如子躬 楚大夫하고 且致犫櫟之田注+犫櫟本鄭邑 楚中之 平王新立 故還以賂鄭하다
지여자궁枝如子躬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보내어 빙문聘問하게 하고注+[부주]林: 지여자궁枝如子躬나라 대부大夫이다. , 또 전지田地나라에 돌려주게 하였다.注+은 본래 나라의 이었는데, 나라가 중년中年탈취奪取하였다. 평왕平王이 새로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에 뇌물賂物을 주는 뜻으로 이 땅을 돌려준 것이다.
事畢弗致注+知鄭自說服 不復須賂故하니 鄭人請曰 聞諸道路컨대 注+[附注] 林曰 敢請致田之命하노라 對曰 臣未聞命이라
자궁子躬빙문聘問의 일을 마친 뒤에 두 곳의 전지田地를 돌려주지 않자注+나라가 스스로 열복悅服하니, 다시 뇌물賂物을 기다리지 않을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 정인鄭人요청要請하기를 “도로道路의 소문을 듣건대 ‘초왕楚王께서 장차 을 우리 임금님께 돌려주실 것이다.’고 하니, 감히 돌려주기를 합니다.”注+[부주]林: 감히 전지田地를 돌려주겠다고 하기를 청한 것이다. 고 하니, 자궁子躬은 “은 그런 을 듣지 못했습니다.”고 대답하였다.
旣復注+[附注] 林曰 子躬旣復命於楚王 王問犫櫟한대 降服而對注+服 如今解冠也 謝違命하야 未之致也注+[附注] 林曰 臣實有過 失君之命 未及致命於鄭人니이다 王執其手曰 子毋勤하고 姑歸하라
돌아와서 복명復命한 뒤에注+[부주]林: 자궁子躬이 이미 초왕楚王에게 복명復命한 것이다. 에 대해 묻자, 자궁子躬상복上服을 벗고서 대답하기를注+강복降服은 오늘날 갓을 벗는 것과 같은 것이니, 명령命令을 어긴 것을 사죄謝罪한 것이다. 고의故意[過]로 왕명王命을 어기고서 돌려주지 않았습니다.”注+[부주]林: 은 실로 허물이 있어 임금님의 을 잊고 미처 정인鄭人에게 전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니, 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이처럼〉 근로勤勞하지 말고 우선 돌아가라.
不穀有事 其告子也注+王善其有權 有事將復使之하리라
나에게 일이 있으면 장차[其] 그대에게 하리라.”注+은 그가 임기응변臨機應變한 것을 훌륭하게 여겨, 일이 있으면 장차 그대에게 다시 시킬 것이라고 한 것이다. 고 하였다.
他年 芋尹申亥以王柩告하니 乃改葬之하다
몇 해 뒤에 우윤芋尹신해申亥영왕靈王영구靈柩가 묻힌 곳을 하니, 이에 평왕平王영왕靈王개장改葬하였다.
靈王卜曰 余尙得天下注+尙 庶幾하노라 不吉하다 投龜하고 詬天而呼曰 是區區者而不余畀注+區區 小天下 하니 余必自取之하리라
당초當初영왕靈王이 거북점을 치며 축원祝願하기를 “나는 천하天下를 얻기를 희망希望[尙]한다.”注+은 바람이다.고 하였는데, 불길不吉하자, 영왕靈王귀갑龜甲을 내던지고 큰 소리로 하늘을 꾸짖기를 “이 하찮은 천하天下를 나에게 주지 않으니 내 반드시 자력自力으로 하겠다.”注+구구區區천하天下를 하찮게 여긴 것이다. 고 하였다.
民患王之無厭也
백성들은 영왕靈王욕망慾望이 끝이 없음을 근심하였다.
故從亂如歸하니라
그러므로 반란군叛亂軍을 따르기를 마치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가듯이 한 것이다.
共王無冢適注+冢 大也하고 有寵子五人이나 無適立焉注+[附注] 朱曰 欲立爲太子 未知適從하다
당초에 초공왕楚共王에게 적자適子가 없고注+이다., 총애寵愛하는 서자庶子가 다섯이 있었으나, 공왕共王은 누구를 태자太子로 세우는 것이 적합適合한지를 몰랐다.注+[부주]朱: 태자太子를 세우고자 하는데, 누구를 세우는 것이 적합適合한지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乃大有事于群望注+群望 星辰山川而祈曰 請神擇於五人者하야 使主社稷하라하고 乃徧以璧見於群望하고 曰 當璧而拜者 神所立也 誰敢違之리오
이에 군망群望에 성대하게 제사祭祀를 지내면서注+군망群望성신星辰산천山川이다. 기원祈願하기를 “은 이 다섯 사람 중에서 하나를 선택選擇하여 사직社稷주관主管하게 하소서.” 하고서, 곧 옥벽玉璧군망群望에 두루 보이고서 말하기를 “절할 때 몸이 이 옥벽玉璧에 닿는 자가 바로 태자太子로 세우는 자이니, 누가 감히 의 뜻을 어기겠습니까?”라고 하였다.
乃與巴姬密埋璧於大室之庭注+巴姬 共王妾 大室 祖廟하고 使五人齊하고 而長入拜注+從長幼以次拜하다
제사祭祀를 마친 뒤에 곧 파희巴姬와 함께 태실太室(宗廟)의 묘정廟庭옥벽玉璧을 묻고서注+파희巴姬공왕共王이고, 태실太室조묘祖廟이다. , 다섯 사람에게 재계齋戒하고서 차례로 들어와 절을 하게 하였다.注+장유長幼순서順序에 따라 차례로 절을 하게 한 것이다.
康王跨之注+過其上也 [附注] 林曰 康王 熊昭也하고 靈王肘加焉注+[附注] 朱曰 拜時其肘加於璧上하고 子干子晳皆遠之하다
강왕康王은 그 이마가 옥벽玉璧을 지나갔고注+이마가 옥벽玉璧상단上端을 지나쳐 간 것이다. [부주]林: 강왕康王웅소熊昭이다. , 영왕靈王은 팔꿈치가 옥벽玉璧에 닿았고注+[부주]朱: 절할 때 그 팔꿈치가 옥벽玉璧상단上端에 닿은 것이다. , 자간子干자석子晳은 모두 옥벽玉璧과 거리가 멀었다.
平王弱하야 抱而入이러니 再拜皆注+微見璧紐 以爲審識 [附注] 林曰 棄疾再拜 皆壓紐之上 하다
평왕平王은 어려서 안고 들어와서 재배再拜하였는데 두 번 모두 그 이마가 벽뉴璧紐(玉璧의 상단에 끈을 매는 곳)에 닿았다.注+옥벽玉璧의 끈이 약간 보이도록 묻어, 절하는 것을 살펴 이마가 어디에 닿았는지를 안 것이다. [부주]林: 기질棄疾은 두 번의 절이 모두 끈 위에 닿은 것이다.
鬪韋龜屬成然焉注+知其將立 故託其子하고 且曰 하니 楚其危哉注+棄立長之禮 違當璧之命 終致靈王之亂 ᄂ저
투위구鬪韋龜가 그 아들 성연成然평왕平王에게 부탁하며注+기질棄疾이 장차 임금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기질棄疾에게 부탁한 것이다. 말하기를 “를 버리고 천명天命을 어겼으니 나라는 아마도 위태로워질 것입니다.”注+장자長子를 세우는 를 버리고 당벽當璧을 어기고서 끝내 영왕靈王변란變亂을 부른 것을 이른다. 고 하였다.
子干歸 韓宣子問於叔向曰 子干其濟乎 對曰 難이리라
자간子干이 돌아갈 때 한선자韓宣子숙향叔向에게 “자간子干성공成功하겠는가?”라고 묻자, 숙향叔向이 “성공成功하기 어려울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宣子曰 이니 何難注+宣子謂棄疾親恃子干 共同好惡 故言如市賈同利以相求이리오 對曰 無與同好하니 誰與同惡注+言棄疾本不與子干同好 則亦不得同惡리오
선자宣子가 “영왕靈王을 함께 증오憎惡하는 자들이 뜻을 같이하는 자를 구하는 것이 마치 장사치가 이익利益을 구하듯이 하니, 어찌 성공成功하기 어렵겠는가?”注+한선자韓宣子기질棄疾이 친히 자간子干을 모셨으니 호오好惡를 함께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마치 장사치가 함께 이익을 구하듯이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라고 하자, 숙향叔向이 “자간子干에게는 뜻을 같이하는 자가 없으니 누가 그와 증오憎惡를 함께하겠습니까?注+기질棄疾이 본래 자간子干동호同好(뜻을 같이함)하지 않았으니 동악同惡(憎惡를 함께함)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取國有五難하니 有寵而無人 一也注+寵須賢人而固 有人而無主 二也注+雖有賢人 當須內主爲應 有主而無謀 三也注+謀 策謀也 有謀而無民 四也注+民 衆 有民而無德 五也注+四者旣備 當以德成
나라를 함에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첫째는 신분身分은 가졌으되 보좌補佐인재人才가 없는 것이고注+(貴顯)은 반드시 현인賢人의 도움이 있어야 견고堅固해진다. , 둘째는 인재人才는 있으되 의지할 세력勢力[主]이 없는 것이고注+비록 현인賢人의 도움이 있어도 반드시 내주內主호응呼應이 있어야 한다. , 셋째는 의지할 세력勢力이 있으되 지모智謀가 없는 것이고注+책모策謀이다. , 넷째는 지모智謀는 있으되 백성의 지지支持가 없는 것이고注+민중民衆이다. , 다섯째는 백성의 지지支持는 있으되 이 없는 것입니다.注+네 가지가 이미 갖추어졌으면 으로써 성취成就해야 한다는 말이다.
子干在晉 十三年矣로되 晉楚之從 不聞達者하니 可謂無人注+晉楚之士從子干游 皆非達人이오 族盡親叛하니 可謂無主注+無親族在楚 [附注] 林曰 宗族旣盡 親戚亦叛 可謂無內主以爲應 無釁而動하니 可謂無謀注+召子干時 楚未有大釁 爲羈終世하니 可謂無民注+終身羈客在晉 是無民이오 亡無愛徵하니 可謂無德注+楚人無愛念之者이라
자간子干나라에 있은 지가 13년이 되었는데, 나라와 나라 사람으로 그와 종유從遊하는 자 중에 현달顯達한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인재人才가 없다고 이를 수 있고注+나라와 나라의 사람으로 자간子干교유交遊한 자들이 모두 현달顯達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 가족家族이 다 피살被殺되고 친척親戚배반背叛하였으니 의지할 세력勢力이 없다고 이를 수 있고注+나라에 있는 친족親族이 없다는 말이다. [부주]林: 종족宗族은 이미 다 죽었고, 친척親戚배반背叛하였으니, 내주內主가 되어 호응呼應할 사람이 없다고 이를 수 있다. , 나라에 이용할 만한 틈이 없는데도 함부로 움직였으니 지모智謀가 없다고 이를 수 있고注+자간子干을 불러들일 때 나라에는 이용할 만한 큰 틈이 없었다. , 일생一生을 나그네로 외국外國에서 지냈으니 백성이 없다고 이를 수 있고注+종신終身토록 나그네로 나라에 있으니, 이것이 백성이 없는 것이다. , 망명亡命하였는데도 나라에 그를 애석愛惜해하는 징상徵狀이 없으니 이 없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注+초인楚人 중에 자간子干애념愛念하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注+靈王暴虐 無所畏忌 將自亡하니 注+言楚借君子干以弑靈王 終無能成리오
초왕楚王이 비록 포학暴虐하지만 각박(박정)하지 않으니注+영왕靈王포학暴虐하여 두려워하여 꺼리는 바가 없으니 장차 스스로 할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가 자간子干을 임금으로 세우려면 다섯 난관難關을 건너 구군舊君시해弑害해야 하니, 누가 그의 성공成功을 돕겠습니까?注+초인楚人이 가령 자간子干을 임금으로 세우기 위해 영왕靈王시해弑害한다 하더라도 끝내 성공成功할 수 없다는 말이다.
有楚國者 其棄疾乎ᄂ저
나라를 소유所有할 자는 아마도 기질棄疾일 것입니다.
君陳蔡하니 城外屬焉注+城 方城也 時穿封戌旣死 棄疾幷領陳事하고 苛慝不作하니 盜賊伏隱하고 私欲不違注+不以私欲違民事하니 民無怨心이라
그는 를 다스렸으니[君]방성方城 밖의 지역地域이 모두 그에게 귀속歸屬하였고注+방성方城이다. 이때 천봉술穿封戌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기질棄疾나라의 일까지 아울러 관리管理[領]한 것이다. , 그 지역地域가혹苛酷하거나 사특邪慝정치政治가 없으니 도적盜賊잠복潛伏해 숨었으며, 사욕私欲으로 인해 백성의 농시農時를 빼앗지 않으니注+사욕私欲으로 민사民事(農期)를 빼앗지 않은 것이다. 백성들이 원망怨望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命之注+先神 謂群望하고 國民信之注+[附注] 林曰 國民信其當立爲君
선조先祖이 그를 임명任命하였고注+선신先神군망群望을 이른다. 백성들이 그를 신임信任합니다.注+[부주]林: 국민國民기질棄疾이 당연히 임금이 될 것으로 믿는다는 말이다.
芈姓有亂 必季實立하니 楚之常也
미성芈姓(楚國)에 변란變亂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막내를 임금으로 세웠으니, 이것이 나라의 상규常規였습니다.
獲神 一也注+當璧拜 有民 二也注+民信之 令德 三也注+無苛慝 寵貴 四也注+貴妃子 居常 五也注+棄疾季 有五利以去五難이면 誰能害之리오
의 도움을 받은 것이 그 이점利點의 하나이고注+옥벽玉璧에 닿게 절한 것을 말한 것이다. , 지지支持하는 백성이 있는 것이 둘이고注+백성이 그를 신임信任한 것을 말한 것이다. , 아름다운 을 가진 것이 셋이고注+가혹苛酷하거나 사특邪慝정치政治가 없었던 것을 말한 것이다. , 총애寵愛를 받아 존귀尊貴한 자리에 오른 것이 넷이고注+귀비貴妃의 아들임을 말한 것이다. , 상규常規에 맞는 것이 다섯이니注+기질棄疾이 막내임을 말한 것이다. , 다섯 가지 이점利點을 가지고 다섯 가지 난점難點제거除去한다면 누가 그를 방해妨害할 수 있겠습니까?
子干之官則右尹也注+[附注] 林曰 右尹官卑 數其貴寵則庶子也 以神所命則又遠之하니 其貴亡矣注+位不尊 其寵棄矣注+父旣沒故
자간子干관위官位로 말하면 우윤右尹에 불과하고注+[부주]林: 우윤右尹은 낮은 관직官職이다. , 그 존귀尊貴은총恩寵을 따져보면 서자庶子에 불과하고, 한 바로 말하면 또 옥벽玉璧에서 멀었으니, 그는 존귀尊貴를 잃은 것이고注+지위地位가 높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 총애寵愛를 버린 것입니다.注+아버지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民無懷焉注+非令德하고 國無與焉注+無內主하니 將何以立이리오
백성 중에 그를 생각하는 이가 없고注+아름다운 덕이 아니다. , 나라 안에 그를 돕는 이가 없으니注+내주內主(內應)가 없는 것이다. 장차 어떻게 임금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宣子曰 齊桓晉文不亦是乎注+皆庶賤
선자宣子가 “제환공齊桓公진문공晉文公자간子干처럼 서자庶子로서 망명亡命하지 않았던가?”注+제환공齊桓公진문공晉文公은 모두 서자庶子로 신분이 하였다. 라고 하자,
對曰 齊桓 衛姬之子也 有寵於僖注+衛姬 齊僖公妾하고 有鮑叔牙賓須無隰朋以爲輔佐하며 有莒衛以爲外主注+齊桓出奔莒 衛有舅氏之助하고 有國高以爲內主注+國氏高氏 齊上卿하며
숙향叔向이 “제환공齊桓公위희衛姬의 아들로서 희공僖公총애寵愛를 받았으며注+위희衛姬제희공齊僖公이다. , 포숙아鮑叔牙빈수무賓須無습붕隰朋보좌輔佐로 삼고, 나라와 나라를 외주外主(外援)로 삼고注+제환공齊桓公나라로 출분出奔하였을 때 나라 구씨舅氏(外家)의 도움이 있었다. , 국씨國氏고씨高氏내주內主(內應)로 삼았으며注+국씨國氏고씨高氏나라의 상경上卿이다. ,
從善如流注+言其疾也 하고 注+齊 嚴也 肅 敬也하며 不藏賄注+淸也하고 不從欲注+儉也하며 施舍不倦注+施舍 猶言布恩德 하고 求善不厭注+[附注] 林曰 求訪善道 不敢厭足이라
선언善言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고注+선언善言을 따르는 것이 신속迅速했다는 말이다. 행동을 신속히 하였으며注+이고 이다. , 재화財貨수장收藏하지 않고注+청렴淸廉했다는 말이다. 사욕私慾방종放縱하지 않았으며注+검소儉素했다는 말이다. , 은혜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注+시사施舍은덕恩德을 폈다는 말과 같다. 하기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注+[부주]林: 도리道理를 구하고 찾아 감히 만족滿足해 하지 않은 것이다.
是以有國하니 不亦宜乎
이로 인해 나라를 소유所有하였으니, 이 또한 당연當然하지 않습니까?
我先君文公 狐季姬之子也 有寵於獻하고 好學而不貳注+言篤志하야 生十七年 有士五人注+狐偃趙衰顚頡魏武子司空季子 五士從出이라
우리 선군先君문공文公호계희狐季姬의 아들로 헌공獻公총애寵愛를 받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딴마음을 품지 않았으며注+뜻을 독실篤實히 가진 것이다. , 17세 때 이미 현사賢士 5을 얻었습니다.注+오인五人호언狐偃조쇠趙衰전힐顚頡위무자魏武子사공계자司空季子이다. 이 다섯 사람은 진문공晉文公출망出亡했을 때 시종侍從하였다.
有先大夫子餘子犯以爲腹心注+子餘 趙衰 子犯 狐偃하고 有魏犫賈佗以爲股肱注+魏犫 魏武子也 稱五人而說四士 賈佗又不在本數 蓋叔向所賢하며 有齊宋秦楚以爲外主注+齊妻以女 宋贈以馬 楚王享之 秦伯納之하고 有欒郤狐先以爲內主注+謂欒枝郤穀狐先軫也하며 亡十九年 守志彌篤이라
선대부先大夫자여子餘자범子犯복심腹心으로 삼고注+자여子餘조쇠趙衰이고 자범子犯호언狐偃이다. , 위주魏犫가타賈佗고굉股肱으로 삼았으며注+위주魏犫위무자魏武子이다. 5이라고 하고서 네 사람을 말하였고, 가타賈佗는 본래 5에 끼지 않았는데 그를 말한 것은 숙향叔向이 그를 하게 여겨서인 듯하다. , 나라‧나라‧나라‧나라를 외주外主로 삼고注+제환공齊桓公은 딸을 진문공晉文公의 아내로 주고, 송양공宋襄公문공文公에게 말 20을 주고, 초왕楚王연회宴會를 열어 문공文公접대接待하고, 진백秦伯문공文公호송護送나라로 들여보냈다. 난씨欒氏극씨郤氏호씨狐氏선씨先氏내주內主로 삼았으며注+난지欒枝극곡郤穀호돌狐突선진先軫을 이른다. , 망명亡命외국外國에 있는 19년 동안 초지初志를 더욱 독실하게 지켰습니다.
惠懷棄民注+惠公懷公不恤民也하니 民從而與之注+[附注] 林曰 民無所歸 從而歸心於文公
혜공惠公회공懷公이 백성을 버리고 돌보지 않으니注+진혜공晉惠公회공懷公이 백성을 구휼救恤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 백성들은 문공文公을 따르고 도왔습니다.注+[부주]林: 백성들은 귀의歸依할 곳이 없으므로 인해[從而]진문공晉文公에게로 마음이 돌아간 것이다.
獻無異親하니 民無異望注+獻公之子九人 惟文公在이라
헌공獻公의 아들 중에 문공文公 말고 다른 아들이 없으니 백성은 문공文公 이외에 달리 기대企待할 곳이 없었습니다.注+진헌공晉獻公의 아들 9 중에 오직 문공文公만이 살아 있었다는 말이다.
天方相晉하니 將何以代文注+[附注] 林曰 天方助晉 成其霸業 將有何君可以代文公者이리오
그때 하늘이 바야흐로 나라를 보우保佑하였으니 누가 문공文公을 대신할 수 있었겠습니까?注+[부주]林: 하늘이 바야흐로 나라를 도와 그 패업霸業을 이루게 하려 하니, 장차 어떤 임금이 있어 문공文公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此二君者 異於子干注+[附注] 林曰 齊桓晉文 與子干大異이라
이 두 임금님은 자간子干의 경우와 달랐습니다.注+[부주]林: 제환공齊桓公진문공晉文公은 사정이 자간子干과 크게 달랐다는 말이다.
共有寵子하고 國有奧主注+謂棄疾也 [附注] 林曰 棄疾當璧 故共王以爲愛子 棄疾爲蔡公 故楚國以爲奧主로되 無施於民하고 無援於外하야 去晉而不送하고 歸楚而不逆注+[附注] 林曰 其去晉也 晉不以兵衛送其歸 其歸楚也 楚不以兵衛迎其至하니 何以冀國注+傳言子干所以蒙弑君之名 棄疾所以得國이리오
초공왕楚共王에게는 총애寵愛하는 아들이 있고, 나라에는 오주奧主(潛在的 군주君主)가 있는데도注+오주奧主기질棄疾을 이른다. [부주]林: 기질棄疾이 절할 때 이마가 옥벽玉璧을 묻은 위치位置에 닿았기[當璧] 때문에 초공왕楚共王기질棄疾을 사랑하는 아들로 여겼고, 기질棄疾채공蔡公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은 그를 오주奧主로 여긴 것이다. , 자간子干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고 외국外國응원세력應援勢力이 없어서, 나라를 떠날 때도 호송護送하는 이가 없었고, 나라로 돌아갈 때도 맞이하는 이가 없었으니注+[부주]林: 자간子干나라를 떠날 때 나라는 군대로써 보위保衛하여 돌아가는 그를 호송護送하지 않았고, 그가 나라로 돌아갈 때 나라는 군대로써 호위護衛하여 돌아오는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 그런 그가 어찌 나라를 얻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注+전문傳文자간子干시군弑君오명惡名을 쓴 까닭과 기질棄疾이 나라를 얻은 까닭을 말한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傳]晉成虒祁注+在八年 諸侯朝而歸者皆有貳心注+賤其奢也하다
나라가 사기궁虒祁宮낙성落成할 때注+소공昭公 8년에 있었다. 가서 조현朝見하고 돌아온 제후諸侯들이 모두 나라에 두마음을 품었다.注+그 사치스러움을 하게 여겨서이다.
爲取郠故注+取郠在十年 晉將以諸侯來討 叔向曰 諸侯不可以不示威注+ 欲以威服之라하니 乃竝徵會하며 告于吳注+[附注] 林曰 乃竝徵召諸侯爲會 且告吳使來會 하다
나라가 나라의 경읍郠邑점령占領한 일로注+을 취한 일은 소공昭公 10년에 있었다. 나라가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와서 토벌討伐하려 할 때 숙향叔向이 “제후諸侯에게 위력威力을 보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注+나라의 해졌음을 알고서 위력威力으로 제후諸侯복종服從시키고자 한 것이다. 고 하니, 진후晉侯는 이에 모든 제후諸侯에게 회맹會盟참가參加하도록 소집召集하고 나라에도 통고通告하였다.注+[부주]林: 이에 제후諸侯들을 모두 불러 회맹會盟하기로 하고서 또 나라에도 통고通告하여 회맹會盟에 오게 한 것이다.
晉侯會吳子于良注+有良城縣이러니 水道不可注+[附注] 林曰 水道不通 不可爲會 吳子辭한대 乃還注+辭不會하다
가을에 진후晉侯오자吳子에서 회합會合하려 하였는데注+하비下邳양성현良城縣이 있다. , 물길이 막혀 오자吳子사절謝絶하고 오지 않으니注+[부주]林: 물길이 막혀 회맹會盟에 갈 수 없었다. , 진후晉侯도 곧 돌아갔다.注+사절謝絶하고 회맹會盟에 가지 않은 것이다.
七月丙寅 治兵于邾南하니 甲車四千乘注+三十萬人이러라
7월 병인일丙寅日나라 남쪽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治兵]을 하였는데 참가參加갑거甲車가 4천 이었다.注+30만 인이다.
羊舌鮒攝司馬注+鮒 叔向弟也 攝 兼官也 하야 遂合諸侯于平丘하다
양설부羊舌鮒사마司馬대리代理하여注+숙향叔向의 아우이다. 겸직兼職이다. 드디어 평구平丘에서 제후諸侯회합會合하였다.
子産子大叔相鄭伯以會 子産以幄幕九張行注+幄幕 軍旅之帳 [附注] 林曰 四合象宮室曰幄 在上曰幕하고 子大叔以四十이러니
자산子産자태숙子太叔정백鄭伯보좌輔佐회합會合참가參加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 자산子産장막帳幕 아홉 벌을 준비해 가지고 출발하였고注+악막幄幕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장막帳幕이다. [부주]林: 사방을 막아 궁실宮室처럼 만드는 것을 ‘’이라 하고, 천정을 가리는 것을 ‘’이라 한다. , 자태숙子太叔은 40벌을 준비해 가지고 출발하였다.
旣而悔之하야 每舍損焉注+[附注] 林曰 每遇宿舍 減損其數하고 及會하야는 亦如之注+亦九張也 傳言子産之適宜 大叔之從善하다
이윽고 자태숙子太叔은 이를 후회後悔하고서 하룻밤 유숙留宿하는 곳마다 한 벌씩을 줄이니注+[부주]林: 하룻밤 머물러 묵을 때마다 그 수를 줄인 것이다. , 회합會合하는 평구平丘에 미쳐서는 그 장막의 수도 자산子産의 장막 수와 같아졌다.注+역시 아홉 벌이 된 것이다. 전문傳文자산子産이 알맞게 준비한 것과, 태숙太叔이 남의 좋은 점을 따른 것을 말한 것이다.
次于衛地하야 叔鮒求貨於衛하고 淫芻蕘者注+欲使衛患之而致貨 [附注] 朱曰 縱人刈草伐薪 以苦衛國한대 衛人使屠伯饋叔向羹與一篋錦注+屠伯 衛大夫
진군晉軍나라 땅에 주둔하여 숙부叔鮒나라에 재물財物을 요구하고, 추요자芻蕘者를 풀어놓아 초목을 남벌濫伐하게 하니注+나라가 추요자芻蕘者남벌濫伐을 걱정하여 재물財物을 바치게 하고자 한 것이다. [부주]朱: 사람들을 풀어놓아 함부로 풀과 나무를 베게 하여 나라를 괴롭힌 것이다. , 위인衛人도백屠伯진군晉軍으로 보내어 숙향叔向에게 국 한 그릇과 비단 한 상자를 주며注+도백屠伯나라 대부大夫이다. 말하기를
諸侯事晉 未敢攜貳어든 況衛在君之注+屋宇之下 喩近也하니 而敢有異志릿가
제후諸侯들이 나라를 섬김에 있어 감히 두마음을 품지 못하는데, 하물며 나라는 진군晉君의 그늘 아래 있으니注+처마 밑에 있다는 것은 친근親近하다는 것을 비유譬喩한 것이다. 감히 다른 뜻을 품겠습니까?
芻蕘者異於他日하니 敢請之注+請止之하노라 叔向受羹反錦注+受羹示不逆其意 且非貨曰 晉有羊舌鮒者하야 無厭注+瀆 數也하니 亦將及矣注+將及禍리라
다만 추요자芻蕘者들의 행위行爲전일前日과 다르니, 〈금지禁止하기를〉 감히 합니다.”注+남벌濫伐을 막아주기를 한 것이다. 고 하자, 숙향叔向은 국은 받고 비단은 돌려주며注+국을 받은 것은 도백屠伯의 뜻을 거역拒逆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고, 또 재물財物이 아니기 때문에 받은 것이다. 말하기를 “나라에 양설부羊舌鮒란 자가 있는데, 재물財物을 탐하여 만족滿足을 모르니注+은 자주이다. 장차 화난禍難에 미칠 것입니다.注+장차 화난禍難에 미칠 것이라는 말이다.
爲此役也注+役 事也 [附注] 朱曰 以其瀆貨故 特爲此淫芻蕘之事也하야 子若以君命賜之 其已注+[附注] 朱曰 汝若假衛君之命 而以錦賜叔鮒 則芻蕘者必止리라
이 일을 위하여注+이다. [부주]朱: 그가 재화財貨를 탐하기 때문에 특별히 이렇게 함부로 추요芻蕘하는 일을 한 것이다. 그대가 군명君命으로 이 비단을 그에게 주면 그는 추요자芻蕘者남벌濫伐중지中止시킬 것입니다.”注+[부주]朱: 그대가 만약 위군衛君이라고 가탁假託하여 이 비단을 숙부叔鮒에게 준다면 추요자芻蕘者들이 반드시 남벌濫伐을 멈출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客從之하니 未退而禁之注+禁芻蕘者 [附注] 林曰 客 謂屠伯하다
(屠伯)이 그 말에 따라 비단을 숙부叔鮒에게 주니, 숙부叔鮒이 물러나기도 전에 남벌濫伐금지禁止하는 을 내렸다.注+추요자芻蕘者들에게 추요芻蕘금지禁止한 것이다. [부주]林: 도백屠伯을 이른다.
晉人將尋盟한대 齊人不可注+有貳心故하다
진인晉人이 옛 맹약盟約중수重修하려 하자, 제인齊人이 반대하였다.注+두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晉侯使叔向告劉獻公注+獻公 王卿士劉子曰 抑齊人不盟하니 若之何 對曰 盟以底信注+底 致也이니 君苟有信이면 諸侯不貳리니 何患焉이리오
진후晉侯숙향叔向을 보내어 유헌공劉獻公에게 하기를注+헌공獻公주왕周王경사卿士유자劉子이다. 제인齊人맹약盟約중수重修하려 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라고 하니, 유헌공劉獻公이 대답하기를 “맹약盟約을 맺는 것은 〈그 맹약을 지키겠다는〉 신의信義를 드러내기 위함이니注+(드러냄)이다. , 임금님(晉侯를 이름)에게 진실로 신의信義가 있다면 제후諸侯가 두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니 근심할 게 뭐 있습니까?
告之以文辭하고 董之以武師 雖齊不許라도 君庸多矣注+董 督也 庸 功也 討之有辭 故功多也 리라
제인齊人에게 문사文辭(納得시킬 만한 외교문서外交文書)로써 하고 무사武師로써 독려督勵한다면 비록 제인齊人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임금님의 공로功勞다대多大하게 될 것입니다.注+이고 이다. 나라에 요구要求[討]한 말이 정당하기 때문에 다대多大하다고 한 것이다.
天子之老請帥王賦하야 十乘으로 以先啓行注+天子大夫稱老 元戎 戎車在前者 啓 開也 行 道也이나
천자天子경사卿士[老]인 내가 왕사王師를 거느리고 원융元戎(큰 전거戰車) 십승十乘으로 선봉先鋒이 되어 길을 열겠습니다.注+천자天子대부大夫는 자신을 ‘’로 칭한다. 원융元戎은 맨 앞에 있는 융거戎車이다. 는 여는 것이고, 은 길이다.
遲速唯君注+欲佐晉討齊하리라
하지만 출병出兵지속遲速은 임금님의 을 따르겠습니다.”注+나라를 도와 나라를 치고자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叔向告于齊曰 諸侯求盟하야 已在此矣어늘 今君弗利하니 寡君以爲請하노라
숙향叔向제인齊人에게 하기를 “제후諸侯들이 옛 맹약盟約중수重修하기를 요구要求하여 이미 이곳에 와 있는데, 지금 임금님(齊侯를 이름)께서는 불리不利하다 하여 이를 반대하시니, 우리 임금님께서 〈그 이유를〉 묻습니다.”고 하니,
對曰 諸侯討貳 則有尋盟이어니와 若皆用命이면 何盟之尋注+託用命以拒晉이리오
제인齊人이 대답하기를 “제후諸侯가 두마음 품은 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면 옛 맹약盟約중수重修해야겠지만, 모두 을 따른다면 맹약盟約중수重修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注+제후諸侯들이 모두 을 따른다는 말로 핑계 대어 나라의 요청要請를 거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叔向曰 國家之敗 有事而無業이면 則不經注+業 貢賦之業 [附注] 朱曰 有交好之事 而無貢賦之業 則交好之事 不得其常矣하고 有業而無禮 經則不序注+須禮而有次序 [附注] 朱曰 有貢賦之業 而無上下之禮 則事雖有常 不得次序矣하고 有禮而無威 序則不共注+禮須威嚴而後共 [附注] 朱曰 有上下之禮而無可畏之威 則雖有次序 而不恭敬矣하고 有威而不昭 共則不明注+威須昭告神明而後信義著 [附注] 朱曰 有可畏之威而不昭告神明 則雖爲恭敬 而不明著矣하니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국가國家패망敗亡은 〈항상 다음과 같은 데서 기인起因하였습니다.〉 조빙朝聘 등의 일은 있으나 바치는 공부貢賦[業]가 없으면 그 일이 있다 하더라도 상도常道에 어긋나고注+공부貢賦를 바치는 일이다. [부주]朱: 교호交好(友好)의 일만 있고 공부貢賦의 일이 없으면 교호交好의 일이 그 상도常道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不經], 공부貢賦는 있으나 가 없으면 일이 상도常道에 맞는다 하더라도 질서秩序가 없고注+가 있어야 질서秩序가 있다는 말이다. [부주]朱: 공부貢賦의 일이 있으나 상하上下가 없으면 일에 비록 상도常道가 있다 하더라도 질서秩序가 없다는 말이다. , 가 있으나 위엄威嚴이 없으면 질서秩序가 있다 하더라도 공경恭敬하지 않고注+위엄威嚴이 있은 뒤에 공경恭敬한다는 말이다. [부주]朱: 상하上下가 있으나 경외敬畏할 만한 위엄威嚴이 없으면 비록 질서秩序가 있다 하더라도 공경恭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위엄威嚴이 있으되 에게 밝게 할 수 없으면 공경恭敬한다 하더라도 신의信義가 밝게 드러나지 않습니다.注+위엄威嚴신명神明에게 밝게 한 뒤에 신의信義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부주]朱: 경외敬畏할 만한 위엄威嚴이 있어도 신명神明에게 밝게 할 수 없으면 비록 공경恭敬하여도 신의信義가 밝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不明棄共注+[附注] 林曰 信義不明 恭敬皆棄이라 百事不終이니 所由傾覆也注+信義不明則棄威 不威棄禮 無禮無經 無經無業 故百事不成
신의信義가 밝지 않으면 공경恭敬을 버리는 것이어서注+[부주]林: 신의信義가 밝지 못하면 공경恭敬을 모두 버리는 것이다. 모든 일에 좋은 결과結果가 없으니, 이것이 국가國家패망敗亡[傾覆]하는 원인原因입니다.注+신의信義가 밝지 못하면 위엄威嚴을 버리는 것이고, 위엄威嚴이 없으면 를 버리는 것이다. 가 없으면 상도常道가 없고 상도常道가 없으면 공부貢賦가 없기 때문에 백사百事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是故明王之制 使諸侯歲聘以志業注+志 識也 歲聘以修其職業 [附注] 朱曰 使諸侯每歲令大夫一聘天子 以志識貢賦之業하고 間朝以講禮注+三年而一朝 正班爵之義 率長幼之序 [附注] 朱曰 間一歲諸侯親朝天子 以講習上下之禮하고 再朝而會以示威注+六年而一會 以訓上下之則 制財用之節 [附注] 林曰 以示威服之道하고 再會而盟以顯昭明注+十二年而一盟 所以昭信義也 凡八聘四朝再會 王一巡守 盟于之下 [附注] 朱曰 以顯諸侯之昭明者也 하니
그러므로 밝으신 선왕先王제도制度제후諸侯에게 해마다 빙문聘問하여 공부貢賦의 일[業]에 전심專心[志]하게 하고注+(기록함)이다. 해마다 빙문聘問하여 그 직업職業(職務)을 수행修行하는 것이다. [부주]朱: 제후諸侯들에게 해마다 대부大夫천자天子에게 보내어 빙문聘問하게 하여 공부貢賦의 일을 기재記載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 3년마다 조현朝見하여 예절禮節를 익히게 하고注+3년마다 한 차례씩 조현朝見하여 반작班爵의리義理를 바로잡고 장유長幼순서順序를 따른 것이다. [부주]朱: 3년마다 제후諸侯가 직접 천자天子조현朝見하여 상하上下강습講習한 것이다. , 6년마다 회합會合하여 〈천자天子가〉 위엄威嚴을 보이고注+6년마다 한 차례씩 조회朝會하여 상하上下법칙法則훈도訓導하고 재용財用절도節度제정制定한 것이다. [부주]林: 위복威服도리道理를 보인 것이다. , 12년마다 맹약盟約하여 〈신의信義를〉 밝혔습니다.注+12년마다 한 차례씩 회맹會盟한 것은 신의信義를 밝히기 위함이었다. 제후諸侯대부大夫를 보내어 여덟 차례 빙문聘問하고, 제후諸侯가 직접 네 차례 조현朝見하고, 두 차례 회맹會盟하면 천왕天王은 한 번 순수巡守하여 방악方嶽 아래서 회맹會盟한다. [부주]朱: 제후諸侯 중에 신의信義를 밝힌 자를 드러내는 것이다.
志業於好注+聘也 [附注] 林曰 志貢賦之業 在於交好 故使聘하고 講禮於等注+朝也 [附注] 林曰 講上下之禮 在於等列 故使朝하고 示威於衆注+會也 [附注] 林曰 示可畏之威 在於聚衆爲會 故使會 하고 昭明於神注+盟也 [附注] 林曰 昭盟誓之信義 在於要告神明 故使盟 自古以來 未之或失也 存亡之道 恒由是興하니라
빙문聘問[好]하여 공부貢賦전심專心하게 하고注+빙문聘問이다. [부주]林: 공부貢賦의 일을 기재記載하는 것이 교호交好에 있기 때문에 빙문聘問하게 한 것이다. , 조현朝見[等]하여 예절禮節등차等次를 익히게 하고注+조현朝見이다. [부주]林: 상하上下강습講習하는 것이 등렬等列에 있기 때문에 조현朝見하게 한 것이다. , 회합會合하여 위엄威嚴을 보이고注+회합會合이다. [부주]林: 경외敬畏할 만한 위엄威嚴을 보이는 것이 대중이 모인 회합會合에 있기 때문에 회합會合하게 한 것이다. , 〈신의信義를〉 에게 밝게 하는 일을注+결맹結盟이다. [부주]林: 맹서盟誓신의信義를 밝히는 것이 신명神明하는 데 있기 때문에 결맹結盟하게 한 것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누구도 어기지 않았으니, 존망存亡(길)가 항상 이에서 출발出發[興]하였습니다.
晉禮主盟注+依先王先公舊禮 主諸侯盟이로되 懼有不治하야 奉承齊犧注+齊盟之犧牲 [附注] 林曰 猶恐諸侯之事或不治平 奉承齊盟之犧牲 [附注] 朱曰 恐諸侯之事 有不治禮者 하야 而布諸君하야 求終事也注+終 竟也 [附注] 林曰 陳布此意於齊君 求以終竟諸侯之事也어늘 君曰 余必廢之라하니 何齊之有리오
나라는 선왕先王에 따라 회맹會盟주관主管하면서도注+선왕先王선공先公구례舊禮에 의거해 제후諸侯회맹會盟주관主管한다는 말이다. 일을 잘 처리處理하지 못함이 있을까 두려워서 제맹齊盟(同盟)에 쓸 희생犧牲을 받들어注+제맹齊盟희생犧牲이다. [부주]林: 제후諸侯의 일을 혹 잘 처리處理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제맹齊盟에 쓸 희생犧牲을 받들었다(준비했다)는 말이다. [부주]朱: 제후諸侯의 일에 를 다스리지 않는 자가 있을까 두렵다는 말이다. 임금님(齊侯를 이름)께 하고서 일이 잘 마무리되기를 하였는데注+(마침)이다. [부주]林: 제군齊君에게 이런 뜻을 진포陳布(告)하여 제후諸侯의 일을 마치기를 하였다는 말이다. , 임금님께서는 ‘나는 기어이 이 일을 폐지廢止시킬 것이다.’고 하시니, 제맹齊盟할 게 뭐 있겠습니까?
唯君圖之注+[附注] 林曰 今齊君有命曰 我必欲廢好 不肯受盟 何齊肅爲盟之有 唯齊君自圖度之 하라
임금님께서 생각해 처리하기 바랍니다.注+[부주]林: 지금 제군齊君하기를 “나는 반드시 우호友好폐기廢棄하고자 한다.”고 하고서 맹약盟約접수接受하려 하지 않으니, 재계齋戒하고서 엄숙嚴肅맹약盟約할 게 뭐 있겠는가? 제군齊君 스스로 생각해 처리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寡君聞命矣리라 齊人懼하야 對曰 小國言之어든 大國制之 敢不聽從
과군寡君께서는 임금님의 을 따를 것입니다.”고 하니, 제인齊人이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소국小國이 말을 하면 대국大國재단裁斷[制]하는 것이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旣聞命矣 敬共以往이나 遲速唯君하리라 叔向曰 諸侯有間矣注+間 隙也 不可以不示衆이라
이미 을 들었으니 〈을〉 공경히 받들고 가서 회맹會盟참가參加하겠습니다만 출발出發지속遲速진군晉君에 따르겠습니다.”고 하니,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제후諸侯와 우리 나라 사이에 틈이 생겼으니注+은 틈이다. , 대중大衆에게 위력威力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八月辛未 治兵注+習戰하야 建而不旆注+建立旌旗 不曳其旆 旆 游也라가 壬申復旆之하니 諸侯畏之注+軍將戰則旆 故曳旆以恐之 하다
8월 신미일辛未日군사훈련軍事訓鍊을 하면서注+실전實戰연습練習한 것이다. 깃발만을 세우고 술은 달지 않았다가注+깃발을 세웠으되 술을 달지 않은 것이다. 는 술이다. 임신일壬申日에 다시 깃발에 술을 다니 제후諸侯가 두려워하였다.注+군대가 전투戰鬪하려면 에 술을 단다. 그러므로 술을 달아 겁을 준 것이다.
邾人莒人愬于晉曰 魯朝夕伐我하야 幾亡矣注+自昭公卽位 邾魯同好 又不朝夕伐莒 無故怨愬 晉人信之 所謂讒慝弘多
주인邾人거인莒人나라에 제소提訴하기를 “나라가 조석朝夕으로 우리나라를 공벌攻伐하여 나라가 거의 망하게 되었습니다.注+소공昭公즉위卽位하면서부터 나라와 나라는 우호友好하였고, 또 조석朝夕으로 나라를 친 일이 없다. 두 나라가 까닭 없이 나라에 억울하다고 제소提訴한 것인데 진인晉人이 이들의 말을 믿었으니, 이것이 양공襄公 31년 에 이른바 ‘참특홍다讒慝弘多(참소하는 사악邪惡한 자가 많다)’이다.
我之不共 魯故之以注+不共晉貢 以魯故也 晉侯不見公하고 使叔向來辭曰 諸侯將以甲戌盟이나
우리나라가 공물貢物을 바치지 못하는 것은 나라의 침벌侵伐 때문입니다.”注+나라에 공부貢賦를 바치지 못하는 것은 나라 때문이라는 말이다. 고 하니, 진후晉侯노소공魯昭公접견接見하지 않으려고 숙향叔向을 보내어 사절謝絶하기를 “제후諸侯갑술일甲戌日결맹結盟하기로 하였습니다.
寡君知不得事君矣 請君無勤注+託謙辭以絶魯하소서 子服惠伯對曰 君信蠻夷之訴注+蠻夷 謂邾莒 [附注] 林曰 惠伯 卽孟椒하야 以絶兄弟之國하고 棄周公之後라도 亦唯君注+[附注] 林曰 亦唯晉君之命이니 寡君聞命矣리라
그러나 과군寡君께서는 임금님(魯君)을 섬기지 못할 것으로 알고 계시니, 임금님께서는 수고하지 마소서.”注+거짓으로 겸사謙辭하여 노군魯君회맹참가會盟參加사절謝絶한 것이다. 라고 하니, 자복혜백子服惠伯이 대답하기를 “진군晉君께서 만이蠻夷제소提訴를 믿고서注+만이蠻夷나라와 나라를 이른다. [부주]林: 혜백惠伯은 바로 맹초孟椒이다. 형제국兄弟國단절斷絶하고 주공周公후예後裔를 버리시더라도 진군晉君을 따라야 하니注+[부주]林: 진군晉君의 명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과군寡君께서는 을 들으실 것입니다.”고 하였다.
叔向曰 寡君有甲車四千乘在하니 雖以無道行之라도 必可畏也어든 況其率道 其何敵之리오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과군寡君께는 갑거甲車 4천 이 있으니, 비록 도의道義무시無視하고 행사行師(出兵)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도의道義에 따라 출병出兵한다면 그 누가 대적對敵할 수 있겠습니까?
牛雖瘠이나 注+僨 仆也 [附注] 林曰 豚 小猪也 以瘠牛仆於小猪之上 牛不畏豚之不死 亦猶晉不畏魯之不亡矣 리오
소가 아무리 파리해도 작은 돼지 위에 엎어지면 어찌[其] 돼지가 죽지 않을 염려가 있겠습니까?注+은 앞으로 엎어지는 것이다. [부주]林: 은 작은 돼지이다. 파리한 소가 작은 돼지 위에 엎어지면 소는 돼지가 죽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도 나라가 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南蒯子仲之憂 其庸可棄乎注+棄 猶忘也 [附注] 林曰 事在前年
남괴南蒯자중子仲에 대한 우려憂慮를 어찌 잊을[棄] 수 있습니까?注+과 같다. [부주]林: 남괴南蒯자중子仲반란叛亂한 일은 전년前年에 있었다.
若奉晉之衆하고 用諸侯之師하야 因邾莒杞鄫之怒注+四國近魯 數以小事相忿 鄫已滅 其民猶存 故幷以恐魯하야 以討魯罪하야 間其二憂注+因南蒯子仲二憂爲間隙 何求而弗克이리오 魯人懼하야 聽命注+不敢與盟하다
만약 나라가 대군大軍을 일으켜 제후諸侯의 군대를 사용使用하고 주국邾國거국莒國기국杞國증국鄫國분노憤怒를 이용하여注+네 나라는 나라와 근접近接하였으므로 작은 일로 자주 분쟁忿爭하였다. 증국鄫國은 이미 멸망滅亡하였으나 그 백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저 세 나라와 함께 나라를 위협威脅하였다. 나라의 를 토벌하고, 두 사람에 대해 우려憂慮하고 있는 틈을 기회期會이용利用한다면注+남괴南蒯자중子仲 두 사람에 대해 우려憂慮하고 있는 것을 이용[因]해 기회期會[間隙]로 삼는다는 말이다. 무엇을 한들 성공成功[克]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하니, 노인魯人은 두려워서 나라의 을 따랐다.注+감히 회맹會盟참가參加하지 않은 것이다.
甲戌 同盟于平丘하니 齊服也注+經所以稱同ᄅ새라
갑술일甲戌日평구平丘에서 동맹同盟하였으니, 나라가 복종服從하였기 때문이다.注+동맹同盟했다고 원인原因이다.
令諸侯日中造于除注+除地爲壇 盟會處하다
진인晉人제후諸侯에게 을 내려 정오正午까지 회맹장會盟場[除]에 도착到着[造]하게 하였다.注+는 잡초를 깎아내고 땅을 깨끗이 정돈하고서 을 쌓은 회맹장會盟場이다.
癸酉 退朝注+先盟朝晉하야 子産命外僕速張於除注+張幄幕 [附注] 林曰 外僕 掌次舍大夫也 子大叔止之하야 使待明日하다
계유일癸酉日진후晉侯조현朝見하고 물러 나와서注+나라와 먼저 맹약盟約하기 위해 진군晉君조현朝見한 것이다. 자산子産외복外僕에게 하여 속히 회맹장會盟場장막帳幕설치設置하게 하였으나注+장막을 치는 것이다. [부주]林: 외복外僕은 잠시 머물 곳을 마련하는 일을 맡은 대부大夫이다. , 자태숙子太叔저지沮止하여 내일을 기다리게 하였다.
及夕하야 子産聞其未張也하고 使速往이러니 乃無所張矣注+地已滿也 傳言子産每事敏於大叔러라
저녁에 자산子産이 아직 장막帳幕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서 외복外僕에게 속히 가서 장막을 치게 하였더니, 〈이미 다른 나라의 장막이 가득 들어차 나라의〉 장막을 칠 장소場所가 없었다.注+회맹장會盟場에 이미 장막이 가득 찬 것이다. 전문傳文자산子産매사每事태숙太叔보다 민첩敏捷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及盟하야 子産爭承注+承 貢賦之次曰 昔天子班貢 輕重以列注+列 位也하니 列尊貢重 周之制也注+ 故所貢者多
결맹結盟할 때에 미쳐 자산子産공부貢賦등차等次쟁론爭論하며注+공부貢賦등차等次이다. 말하기를 “옛날에 천자天子공부貢賦의 등차를 할 때 공부貢賦경중輕重작위爵位고하高下에 따랐으니注+작위爵位이다. , 작위爵位가 높으면 공부貢賦가 많은 것이 나라의 제도制度입니다.注+영지領地가 넓기 때문에 바치는 공부貢賦가 많다는 말이다.
卑而貢重者 注+甸服 謂天子畿內共職貢者
작위爵位가 낮으면서도 공부貢賦가 많은 곳은 전복甸服뿐입니다.注+전복甸服천자天子기내畿內채지采地를 가진 공경公卿으로 직공職貢을 바치는 자를 이른다.
鄭伯 男也어늘 而使從公侯之貢注+言鄭國在甸服外 爵列伯子男 不應出公侯之貢하니 懼弗給也하야 敢以爲請하노라
정백鄭伯남복男服인데도 공후公侯공부貢賦를 따르게 하니注+나라는 전복甸服 밖에 있고 작위爵位백자남伯子男이니 공후公侯공부貢賦를 내는 것은 부당不當하다는 말이다. , 공급供給하지 못할까 두려워 감히 경감輕減하기를 청합니다.
諸侯靖兵하고 好以爲事注+靖 息也 [附注] 朱曰 自晉楚爲弭兵之盟 以和好爲事로되 行理之命注+行理 使人通聘問者 無月不至로되 貢之無藝注+藝 法制하야 小國有闕하니 所以得罪也
제후諸侯들이 전쟁戰爭정지停止하고 우호友好를 일삼는데도注+휴식休息함이다. [부주]朱: 〈양공襄公 27년에〉 나라와 나라가 〈나라 땅에서〉 전쟁戰爭정지停止하기로 맹약盟約한 뒤부터 제후諸侯들은 화친和親우호友好를 일삼았다는 말이다. , 나라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공부貢賦독촉督促하는 注+행리行理빙문聘問하는 사신使臣이다. 이르지 않는 달이 없으나, 공부貢賦한도限度[藝]가 없어注+법제法制이다. 소국小國공납貢納할 수 없으니, 이것이 소국小國를 얻게 되는 까닭입니다.
諸侯修盟 存小國也어늘 貢獻無極하야 亡可待也 存亡之制 將在今矣注+[附注] 朱曰 制貢輕則小國存 制貢重則小國亡 其定制在今日니라
제후諸侯가 옛 맹약盟約중수重修하는 것은 소국小國보존保存하기 위함인데, 공헌물貢獻物한도限度가 없어 소국小國멸망滅亡을 손꼽아 기다릴 수 있으니, 소국小國존망存亡결정決定하는 제도制度를 정하는 일이 이번에 있어야 합니다.”注+[부주]朱: 공부貢賦를 가볍게 제정制定하면 소국小國보존保存되고 공부貢賦를 무겁게 제정制定하면 소국小國할 것이니, 공부貢賦제도制度하는 일이 오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自日中以爭하야 至于昏하니 晉人許之하다
정오正午부터 시작하여 저녁 늦게까지 쟁론爭論하니, 진인晉人이 허락하였다.
旣盟 子大叔咎之曰 注+瀆 易也 [附注] 林曰 其可瀆易而勿畏乎 子産曰 晉政多門注+政不出一家 하니 貳偸之不暇어든 何暇討注+貳 不壹 偸 苟且리오
결맹結盟이 끝난 뒤에 자태숙子太叔책망責望하기를 “제후諸侯가 만약 우리나라를 토벌討伐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나라를 가벼이 여겨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注+은 가벼이 여김이다. [부주]林: 어찌 가벼이 여기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나라는 정사政事가 여러 사람에게서 나오니注+정령政令이 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 저들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아 목전目前안일安逸을 탐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인데 어느 겨를에 우리나라를 토벌討伐하겠습니까?注+일치一致하지 않는 것이고, 구차苟且(목전의 안일만을 탐함)이다.
國不競亦陵이니 何國之爲注+不競爭則爲人所侵陵 不成爲國리오
국가國家타국他國경쟁競爭하지 못하면 타국他國능멸陵蔑을 당할 것이니, 어찌 나라가 될 수 있겠습니까?”注+경쟁競爭하지 않으면 남의 업신여김을 받아 나라꼴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公不與盟注+信邾莒之訴 欲討魯故하다
소공昭公회맹會盟참가參加하지 않았다.注+나라가〉 주인邾人거인莒人제소提訴를 믿고서 나라를 토벌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晉人執季孫意如하야 以幕蒙之注+하야 使狄人守之하다
진인晉人계손의여季孫意如를 잡아 장막을 쳐서 그 안에 가두어서注+(쌈)이다. 적인狄人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司鐸射注+魯大夫懷錦하고 奉壺飮冰하야 以蒲伏焉하니 守者御之어늘 乃與之錦而入注+蒲伏竊往飮季孫 冰 箭筩蓋 可以取飮 [附注] 林曰 司鐸射懷錦奉壺飮 以冰承之하다
사탁司鐸注+사탁司鐸나라 대부大夫이다. 비단을 품고 마실 물이 담긴 (병 모양의 작은 항아리)와 (箭筒의 뚜껑)을 들고 기어들어 가니 지키는 자가 막고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자, 이에 지키는 자에게 비단을 주고서 들어갔다.注+포복해 몰래 들어가서 계손季孫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 한 것이다. 전통箭筒의 뚜껑인데, 물을 떠 마실 수 있다. [부주]林: 사탁司鐸이 비단을 몸에 품고, 마실 물이 담긴 를 들고 들어가서 전통箭筒의 뚜껑으로 그 물을 떠서 계손季孫에게 올린 것이다.
晉人以平子歸하니 子服湫從注+湫 子服惠伯 從至晉하다
얼마 뒤에 진인晉人평자平子(季孫意如)를 데리고 돌아가니 자복추子服湫가 그를 따라갔다.注+자복혜백子服惠伯이다. 계손季孫을 따라 나라로 간 것이다.
子産歸할새 未至 聞子皮卒하고 哭且曰 吾已注+已 猶決竟 [附注] 林曰 已 止也 吾止已夫로다
자산子産귀국歸國할 때 국도國都에 이르기 전에 자피子皮(罕虎)가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며 말하기를 “나도 이제 끝났구나.注+결경決竟(다 끝남)과 같다. [부주]林: (멈춤)이니, 나도 멈춰야겠다는 말이다.
爲善矣注+[附注] 林曰 無爲更爲善人矣
을 하도록 도와주던 이가 없어졌으니 말이다.注+[부주]林: 다시 을 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唯夫子知我注+言子皮知己之善하니라
오직 부자夫子만이 나를 알아주셨다.”注+자피子皮만이 나의 을 알아주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仲尼謂子産하사대 於是行也 足以爲國基矣注+[附注] 朱曰 其爭貢賦 足以立國基本로다
중니仲尼께서 자산子産을 이르시되, “자산子産이 이번 걸음에 〈한 일은〉 나라의 기본基本이 되기에 충분하였다.注+[부주]朱: 자산子産공부貢賦에 대해 논쟁論爭한 것이 나라를 세우는 기본基本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詩云樂只君子 邦家之基注+詩小雅 言樂與君子爲治 乃國家之基本라하니 子産 君子之求樂者也라하고 且曰 合諸侯하야 藝貢事 禮也注+嫌爭競不順 故以禮明之
시경詩經》에 ‘군자君子안락安樂국가國家기본基本이로세’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남산유대南山有臺〉의 시구詩句이다. 군자君子와 함께 정치政治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국가國家기본基本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는데, 자산子産군자君子로서 안락安樂한 자이다.”고 하시고, 또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공부貢賦의 일에 기준基準하는 것은 에 맞는 일이다.”注+경쟁競爭하고 순종順從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嫌]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라고 말하여 잘못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고 하셨다.
[傳]鮮虞人聞晉師之悉起也注+五年傳曰 遺守四千 今甲車四千乘 故爲悉起하고 而不警邊하며 且不修備注+言夷狄無謀어늘 晉荀吳自著雍以上軍侵鮮虞注+[附注] 林曰 晉荀吳自著雍取道 以上軍侵鮮虞 乘其無備 하야 及中人하야 驅衝競注+中山望都縣西北有中人城 驅衝車與狄爭逐하야 大獲而歸注+爲十五年晉伐鮮虞起 하다
선우인鮮虞人진군晉軍이 전부 출동出動하였다는 말을 듣고는注+5년 에 ‘남아서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4천이다.[遺守四千]’고 하였는데, 지금 〈나라 남쪽에서 거행하는 군사훈련에 참가한〉 갑거甲車가 4천 이기 때문에 ‘전부 출동했다.[悉起]’고 한 것이다.변경邊境경계警戒하지 않고 또 무비武備보수補修하지 않으니注+이적夷狄계책計策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 나라 순오荀吳저옹著雍에서 상군上軍을 거느리고 가서 선우鮮虞침입侵入하여注+[부주]林: 나라 순오荀吳저옹著雍에서 길을 잡아 상군上軍을 거느리고 가서 방비防備가 없는 틈을 이용해 선우鮮虞침공侵攻한 것이다. 중인中人에 이르러 충거衝車를 달려 적인狄人공격攻擊注+중산中山망도현望都縣 서북쪽에 중인성中人城이 있다. 충거衝車를 달려 (鮮虞)과 쟁축爭逐(서로 이기려고 다툼)한 것이다. 대승大勝하고서 많은 사람과 재물을 부획俘獲해 돌아갔다.注+소공昭公 15년에 나라가 선우鮮虞를 토벌한 일을 미리 제시提示한 것이다.
[傳]楚之滅蔡也 靈王遷許胡沈道房申於荊焉이러니 平王卽位하야 旣封陳蔡하고 而皆復之하니 禮也注+滅蔡在十一年 許胡沈小國也 道房申皆故諸侯 楚滅以爲邑 荊 荊山也 傳言平王得安民之禮 汝南有吳防縣 卽防國
나라가 나라를 멸망滅亡시켰을 때 초영왕楚靈王허국許國호국胡國심국沈國도국道國방국房國신국申國인민人民들을 형산荊山으로 옮겼었는데, 평왕平王즉위卽位하여 나라와 나라를 다시 해 주고서 옮겼던 인민人民들도 모두 전에 살던 곳으로 돌려보냈으니 에 맞았다.注+나라를 멸망滅亡시킨 일은 소공昭公 11년에 있었다. 허국許國호국胡國심국沈國소국小國이고, 도국道國방국房國신국申國은 모두 옛날의 제후諸侯였는데, 나라가 이 나라들을 멸망滅亡시키고서 나라의 으로 삼았다. 형산荊山이다. 전문傳文초평왕楚平王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를 알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여남汝南오방현吳防縣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방국防國이다.
隱大子之子廬歸于蔡하니 禮也注+隱大子 大子有也 廬 蔡平侯
은태자隱太子의 아들 나라로 돌려보냈으니 에 맞았다.注+은태자隱太子태자太子이고, 채평후蔡平侯이다.
悼大子之子吳歸于陳하니 禮也注+悼大子 偃師也 吳 陳惠公
도태자悼太子의 아들 나라로 돌려보냈으니 에 맞았다.注+도태자悼太子언사偃師이고, 진혜공陳惠公이다.
[傳]冬十月 葬蔡靈公하니 禮也注+國復 成禮以葬也 此陳蔡事 傳皆言禮 嫌楚所封不得比諸侯 故明之
겨울 10월에 채영공蔡靈公장사葬事 지냈으니 에 맞았다.注+나라를 회복하고서 를 갖추어 장사葬事 지낸 것이다. 이 나라와 나라의 일을 전문傳文에 모두 ‘에 맞았다.’고 말한 것은 나라가 한 바여서 제후諸侯비견比肩될 수 없다고 의심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傳]公如晉하다
소공昭公나라로 갔다.
荀吳謂韓宣子曰 諸侯相朝 講舊好也어늘 執其卿而朝其君 有不好焉이니 不如辭之니라 乃使士景伯辭公于河注+景伯 士文伯之子彌牟也하다
순오荀吳한선자韓宣子에게 말하기를 “제후諸侯가 서로 조현朝見하는 것은 옛 우호를 강구講究하기 위함인데, 그 을 잡고서 그 임금의 조현朝見을 받는 것은 우호적友好的이지 못하니 〈노군魯君내조來朝를〉 사절謝絶하는 것만 못합니다.”고 하니, 이에 사경백士景伯을 보내어 소공昭公하수河水 가에서 사절謝絶하게 하였다.注+경백景伯사문백士文伯의 아들 미모彌牟이다.
[傳]吳滅州來하니 令尹子旗請伐吳한대
나라가 주래州來격멸擊滅하니, 영윤令尹자기子旗나라를 치기를 청하였다.
王弗許曰 吾未撫民人하고 未事鬼神하고 未修守備하고 未定國家어늘 而用民力이라가 敗不可悔
초평왕楚平王은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는 아직 백성을 안무按撫하지도, 귀신鬼神을 섬기지도, 수비守備설치設置[修]하지도, 국가國家안정安定시키지도 못하였는데, 백성의 힘을 사용하여 토벌하였다가 실패失敗한다면 후회막급後悔莫及일 것이다.
州來在吳 猶在楚也 子姑待之注+傳言平王所以能有國 하라
주래州來나라 수중手中에 있는 것은 우리 나라 수중에 있는 것과 일반이니 그대는 우선 기다리라.”注+전문傳文평왕平王이 능히 국가國家소유所有하게 된 원인原因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季孫猶在晉하다
계손季孫(季平子)이 여전히 나라에 잡혀 있었다.
子服惠伯私於中行穆子注+私與之語曰 魯事晉 何以不如夷之小國이리오
자복혜백子服惠伯중행목자中行穆子에게 사사로이注+사사로이 목자穆子와 말한 것이다.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나라를 섬김에 있어 무엇이 만이蠻夷소국小國만 못하였습니까?
兄弟也 土地猶大하니 所命能具
나라는 나라와 형제국兄弟國이고 영토領土도 오히려 크니, 나라가 하는 공부貢賦를 갖추어 바칠 수 있습니다.
若爲夷棄之하야 使事齊楚 其何瘳於晉注+瘳 差也 [附注] 林曰 於晉之病 何所瘳差 이리오
그런데도 만약 만이국蠻夷國을 위해 우리나라를 버려 나라나 나라를 섬기게 한다면 나라에 좋을 게 무엇이 있습니까?注+이 나음이다. [부주]林: 나라의 에 어떤 이 나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親親與大하고 賞共罰否 所以爲盟主也注+[附注] 朱曰 親兄弟之國 與土地之大 賞其能供所命 罰其所不能者 行此四者 然後可爲盟主 子其圖之하라
형제국兄弟國친애親愛하고 국토國土가 큰 나라를 도와주며, 공부貢賦를 바치는 나라에 을 내리고 바치지 않는 나라에 을 내리는 것이 맹주盟主가 되는 원인原因이니注+[부주]朱: 형제兄弟의 나라를 친애親愛하고, 토지土地가 큰 나라를 도와주며, 한 바의 공부貢賦를 바치는 자에게는 을 주고, 바치지 않는 자에게는 을 내리는 이 네 가지를 행한 뒤에야 맹주盟主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대는 깊이 생각하기 바랍니다.
諺曰 臣一主二注+言一臣必有二主 道不合 得去事他國라하니 吾豈無大國注+言非獨晉可事이리오
속담俗談에 ‘신하臣下는 하나이고 임금은 둘이다.’注+한 신하가 반드시 두 임금을 가질 수 있으니, 가 맞지 않으면 이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를 섬길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였으니, 우리 나라에 어찌 섬길 수 있는 다른 대국大國이 없겠습니까?”注+단지 나라만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穆子告韓宣子하고 且曰 楚滅陳蔡 不能救하고 而爲夷執親하니 將焉用之리오 乃歸季孫하다
목자穆子가 이 말을 한선자韓宣子에게 보고報告하고, 또 말하기를 “나라가 나라와 나라를 멸망滅亡시킬 때 우리는 능히 구제救濟하지도 못하였고, 또 만이蠻夷를 위하여 형제국兄弟國을 잡았으니, 장차 이를 어디에 쓰겠습니까?”라고 하니, 이에 계손季孫방면放免해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惠伯曰 寡君未知其罪어늘
혜백惠伯이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무슨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合諸侯而執其老注+老 尊卿稱로다
그런데 나라는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우리 임금님의 [老]을 잡았습니다.注+존칭尊稱이다.
若猶有罪 死命可也注+死晉命也어니와 若曰無罪而惠免之 諸侯不聞하고 是逃命也라하리니
만약 가 있다면 나라의 에 따라 죽어도 좋습니다만注+나라의 에 죽는 것이다. , 만약 가 없는데도 은사恩赦형식形式을 빌어 방면放免한다면 제후諸侯들은 실제의 정황情況을 듣지 못하여, ‘이것은 나라의 명령命令도피逃避한 것이다.
何免之爲리오
어찌 가 없어서 방면放免한 것이겠는가?’라고 할 것입니다.
請從君惠於會注+欲得盟會見遣 不欲私去하노라
그러니 진군晉君을 따라 〈회맹會盟하는 자리로 가서 제후諸侯들이 보는 앞에서 방면放免의〉 은혜恩惠를 받기를 청합니다.”注+맹회盟會에서 보내줌을 받고자 하고, 사사로이 가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고 하였다.
宣子患之하야 謂叔向曰 子能歸季孫乎 對曰 不能이어니와 鮒也能注+鮒 叔魚이리라 乃使叔魚하다
선자宣子는 이를 곤란하게 여겨 숙향叔向에게 “그대는 〈이런 절차節次 없이〉 계손季孫을 돌아가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나는 할 수 없으나, 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注+숙어叔魚이다. 고 하니, 이에 숙어叔魚(鮒)에게 그 일을 시켰다.
叔魚見季孫曰 昔鮒也得罪於晉君하고 自歸於魯君注+蓋襄二十一年坐叔虎與欒氏黨 幷得罪 微武子之賜 不至於今注+武子 季平子祖父이라
숙어叔魚가 가서 계손季孫을 보고서 말하기를 “전에 내가 진군晉君를 짓고서 스스로 노군魯君귀의歸依했을 적에注+양공襄公 21년에 숙호叔虎난씨欒氏이란 에 걸려 함께 를 얻은 것을 이른 듯하다. 무자武子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내가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注+무자武子계평자季平子조부祖父이다.
注+[附注] 林曰 今雖得骸骨復歸於晉 猶已死枯骨而季氏再生其肉也 敢不盡情
비록 해골骸骨(몸)이 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그대의 조부祖父가 나의 마른 뼈에 살을 되살린 것과 같으니注+[부주]林: 지금 비록 몸이 나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미 죽어 마른 뼈에 계씨季氏가 살이 다시 살아나게 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 감히 그대에게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歸子而不歸注+[附注] 林曰 晉已歸子而子不肯歸하니 鮒也聞諸吏컨대 將爲子除館於西河注+近河 [附注] 朱曰 除館 除治館舍 言將囚汝於遠地也라하니 其若之何오하고 且泣注+泣以信其言한대 平子懼하여 先歸하고 惠伯待禮注+待見遣之禮하다
그대를 돌아가도록 허락하였으나 돌아가지 않으니注+[부주]林: 나라가 이미 그대에게 돌아가도록 허락許諾했는데도 그대가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내가 관리官吏에게 듣건대 장차 서하西河관사館舍를 수리하여 그대를 그곳에 가두어 두려 한다고 하니注+서사西使황하黃河 부근이다. [부주]朱: 제관除館관사館舍를 청소하고 수리하는 것이니, 그대를 원지遠地에 가두어 두려 한다는 말이다. , 그대는 어찌할 생각입니까?”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니注+눈물을 흘려 자기의 말을 믿게 한 것이다. , 평자平子는 겁이 나서 먼저 돌아오고, 혜백惠伯은 남아서 를 기다렸다.注+공식적公式的인 절차를 밟아〉 보내는 를 기다린 것이다.
역주
역주1 曰[臣] : 저본에는 ‘曰’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臣’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參盟復作 晉非盟主 : 參盟은 諸侯가 盟主의 命을 받지도 않고 恣意로 세 나라가 모여 結盟하는 것이다. 隱公 8년에 宋公‧齊侯‧衛侯가 瓦屋에서 結盟한 것이 參盟의 始初였는데, 昭公 26년 鄟陵의 會盟 이후로 參盟이 다시 시작되어, 晉나라가 盟主의 地位를 喪失하였다는 말이다.
역주3 簒[慕] : 저본에는 ‘簒’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慕’로 바로잡았다.
역주4 減[滅] : 저본에는 ‘減’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滅’로 바로잡았다.
역주5 啓越大夫常壽過作亂 : 《史記》 〈楚世家〉에 ‘初靈王會兵於申僇越大夫常壽過’라고 하였는데 《史記索隱》에 ‘僇은 辱이다.’라고 하였다. 戮은 僇과 같다. 〈楊注〉
역주6 : 試探의 뜻으로 相對方의 뜻을 떠보는 것이다.
역주7 若能死亡 則如違之 : 如는 僖公 22년 傳의 ‘若愛重傷則如勿傷’의 ‘如’와 같이 ‘當’의 뜻으로 쓰였다. 〈楊注〉
역주8 依陳蔡人以國 : 陳나라와 蔡나라가 滅亡한 뒤에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故國을 그리워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恢復시켜 주겠다고 許諾하여, 두 나라 사람들에게 의지하여 軍衆을 일으키려 한 것이다.
역주9 武軍 : 두 가지가 있다. 戰勝을 誇示하기 위해 敵軍의 屍體를 모아 한 곳에 묻고서 무덤을 크게 築造하고 그 위에 標識木을 세우는 것이 하나이고, 武力을 誇示하기 위해 軍營에 堡壘를 쌓고서 그 위에 軍旗를 세우는 것이 하나인데, 여기의 武軍은 後者에 속한다.
역주10 懸[縣] : 저본에는 ‘懸’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縣’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1 聽國人 : ‘靈王이 郢의 郊外에 이르러서 國人의 선택을 기다리게 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한 〈楊注〉를 따라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12 患[惠] : 저본에는 ‘患’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惠’로 바로잡았다.
역주13 帥[師] : 저본에는 ‘帥’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師’로 바로잡았다.
역주14 徒[徙] : 저본에는 ‘徒’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徙’로 바로잡았다.
역주15 賂[取] : 저본에는 ‘賂’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取’로 바로잡았다.
역주16 將命寡君………敢請命 : 將命의 ‘命’과 請命의 ‘命’은 모두 賜予의 뜻이라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7 附[降] : 저본에는 ‘附’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8 臣過失命 : 過는 故意의 뜻인 듯하다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9 : 압
역주20 棄禮違命 : 棄禮는 長子를 세우는 禮를 버리고서 神에게 後嗣를 물은 것을 이르고, 違命은 當璧의 命을 어기고서 棄疾을 太子로 세우지 않은 것을 이른 듯하다.
역주21 同惡相求 如市賈焉 : 靈王을 함께 미워하는 國人들이 서로 구하기를 마치 장사치가 利益을 구하듯이 할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22 王虐而不忌 : 兪樾은 ‘靈王이 비록 포학하지만 그래도 각박하지는 않았다. 그가 芋尹無宇를 용서한 일과 穿封戌을 陳公으로 삼은 두 일을 보면 꽤 임금의 도량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楊注〉
역주23 楚君子干……誰能濟之 : 楚나라가 子干을 임금으로 세우려면 건널 수 없는 五難을 건너 弑害해서는 안 될 舊君을 弑害해야 하니 어찌 成功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24 先神 : 祖先의 神이다. 비록 群望에 祈求하였으나, 先祖에게서 命을 받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先神命之’라고 한 것이다. 群望이 棄疾의 祖上이 아니니, 어찌 先神이라 할 수 있는가? 杜注는 옳지 않다.《左氏會箋》
역주25 下善齊肅 : 下善은 行動이고 齊肅은 迅速의 뜻이라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下는 下手로 着手의 뜻이니, 곧 善한 일에 着手한다는 말로 善을 行하는 것이고, 齊肅은 《爾雅》에 ‘肅과 齊는 疾速이다.’고 하였다.
역주26 實[突] : 저본에는 ‘實’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突’로 바로잡았다.
역주27 晉德薄 : 晉나라의 權威가 弱化된 것을 이른다.
역주28 丕[邳] : 저본에는 ‘丕’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邳’로 바로잡았다.
역주29 宇下 : 처마 밑이란 말로 남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역주30 瀆貨 : 재물을 탐하여 그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 〈楊注〉
역주31 元戎 : 大形戰車이다. 《詩經》 〈小雅六月朱註〉
역주32 : 〈正義〉에 의하면 事는 朝‧聘‧會‧盟 등의 일이다.
역주33 方嶽 : 四方의 山嶽으로 五嶽을 이르는데, 天子가 東方을 巡守할 경우는 東嶽泰山 밑에서, 西方인 경우에는 西嶽華山 밑에서, 南方의 경우에는 南嶽衡山 밑에서, 北方의 경우에는 北嶽恒山 밑에서 會盟하였다.
역주34 僨於豚上 其畏不死 : 畏는 念慮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소가 작은 돼지 위에 엎어지면 돼지는 당연히 깔려 죽을 것이므로 돼지가 죽지 않을 것을 염려할 게 없다는 말로, 晉나라가 비록 衰弱해졌지만 魯나라를 치면 魯나라는 반드시 滅亡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35 公侯地廣 : 公은 封地가 사방 5백리이고, 侯는 사방 4백리, 伯은 사방 3백리, 子는 사방 2백리, 男은 사방 1백리이다. 《周禮》 〈大司徒〉
역주36 甸服 : 五服의 하나로 王都로부터 5백 리 이내의 地域을 이른다.
역주37 諸侯若討 其可瀆乎 : 說이 紛紛하다. 〈正義〉에는 ‘諸侯가 만약 와서 鄭나라를 토벌한다면 어찌 그대가 晉나라를 가벼이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로 해석하고, 《左氏會箋》에는 ‘易는 慢易(업신여김)이다. 辯論이 激烈하면 혹[若]諸侯의 討伐을 부를 수도 있는데 어찌 晉나라를 업신여길 수 있는가?’로 해석하였고, 〈楊注〉에는 ‘瀆은 贖의 假借字이다. 만약 晉나라가 諸侯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의 罪를 聲討한다면 비록 貢賦를 增額하여 財貨를 더 준다 하더라도 어찌 오늘의 罪를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로 해석한 章炳麟의 說을 紹介하였다. 譯者의 생각에는 이 세 說이 모두 本旨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일단 〈正義〉에 의거해 번역해 둔다.
역주38 : 軍中에 監獄이 없기 때문에 장막으로 가리어 獄舍를 만든 것이고, 장막의 천으로 平子를 싼 것은 아니다. 《左氏會箋》
역주39 無爲 : 無助이니 내가 善을 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40 雖獲歸骨於晉 猶子則肉之 : 내 骸骨이 비록 晉나라로 돌아왔으나, 그 骸骨에 다시 살이 살아나서 오늘에 이른 것은 武子의 恩惠라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41 西使 : ‘使’는 ‘河’의 誤字인 듯하다.

춘추좌씨전(6)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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