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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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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二年春王三月 莒人伐我東鄙하야 圍台注+琅邪費縣南有台亭 하다
12년 봄 주왕周王삼월三月거인莒人이 우리나라의 동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여 태읍台邑포위包圍하였다.注+낭야琅邪비현費縣 남쪽에 태정台亭이 있다.
[經]季孫宿帥師救台하고 遂入鄆注+鄆 莒邑 하다
계손숙季孫宿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태읍台邑구원救援하고서 드디어 운읍鄆邑으로 쳐들어갔다.注+나라 이다.
[經]夏 晉侯使士魴來聘하다
여름에 진후晉侯사방士魴을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經]秋九月 吳子乘卒注+五年會於戚 公不與盟 而赴以名 [附注] 林曰 吳始書卒 하다
가을 9월에 오자吳子하였다.注+양공襄公 5년에 에서 회합會合하였다. 양공襄公오자吳子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나라가 이름을 적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부주]林: 오자吳子을 비로소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經]冬 楚公子貞帥師侵宋하다
겨울에 나라 공자公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經]公如晉
양공襄公나라에 갔다.
[傳]十二年春 莒人伐我東鄙하야 圍台하니 季武子救台하고 遂入鄆注+乘勝入鄆 報見伐 하야 取其鐘以爲公盤注+[附注] 林曰 盤 食器也 以鐘之金鑄爲襄公之盤器 하다
12년 봄에 거인莒人이 우리나라의 동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여 태읍台邑포위包圍하니, 계무자季武子태읍台邑구원救援하고서 드디어 운읍鄆邑으로 쳐들어가注+승세勝勢를 타고 운읍鄆邑으로 쳐들어가 침벌侵伐당한 것을 보복報復한 것이다.나라의 탈취奪取해 와서 〈그 을 녹여〉 양공襄公반기盤器(食器)를 만들었다.注+[부주]林: 식기食器이다. 을 녹여 그 쇠로 양공襄公반기盤器를 만든 것이다.
[傳]夏 晉士魴來聘하고 且拜師注+謝前年伐鄭師 하다
여름에 나라 사방士魴이 와서 빙문聘問하고 또 원군援軍을 보내준 데 대해 배사拜謝하였다.注+전년前年나라를 토벌討伐할 때 군대를 보내준 데 대해 사례謝禮한 것이다.
[傳]秋 吳子壽夢卒注+壽夢 吳子之號 이어늘 하니 禮也注+周廟 文王廟也 周公出文王 故魯立其廟 吳始通 故曰禮
가을에 오자吳子수몽壽夢하자,注+수몽壽夢오자吳子이다.양공襄公주묘周廟에 가서 하였으니 에 맞았다.注+주묘周廟문왕文王이다. 〈나라 시조始祖주공周公문왕文王에서 나왔기 때문에 나라가 문왕文王를 세운 것이다. 나라가 비로소 나라와 교통交通하였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凡諸侯之喪 異姓臨於外注+於城外 向其國 하고 同姓於宗廟注+所出王之廟 하며 同宗於祖廟注+始封君之廟 하며 同族於禰廟注+父廟也 同族 謂高祖以下 니라
모든 제후諸侯에, 이성異姓에는 성외城外에서 그 나라를 하고,注+성외城外에서 그 나라를 하는 것이다. 동성同姓에는 종묘宗廟에서 하고,注+종묘宗廟시조始祖가 나온 (始祖의 아버지)의 이다. 동종同宗에는 조묘祖廟에서 하고,注+조묘祖廟는 처음으로 해진 임금의 이다. 동족同族에는 예묘禰廟에서 하는 것이다.注+예묘禰廟는 아버지의 이다. 동족同族고조高祖 이하(8이내以內)이다.
是故魯爲諸姬하얀 臨於周廟注+諸姬 同姓國 하고 爲邢凡蔣茅胙祭하얀 臨於周公之廟注+卽祖廟也 六國皆周公之支子 別封爲國 共祖周公 하니라
그러므로 노군魯君이 여러 희성제후姬姓諸侯를 위해서는 주묘周廟에서 하고注+제희諸姬동성국同姓國이다. 등 나라를 위해서는 주공周公에서 하였다.注+바로 조묘祖廟이다. 6은 모두 주공周公지자支子로 따로 해진 나라들이니, 주공周公을 함께 조상祖上으로 모신다.
[傳]冬 楚子囊秦庶長無地伐宋하야 師于楊梁하니 以報晉之取鄭也注+取鄭在前年 梁國睢陽縣東有地名楊梁
겨울에 나라 자낭子囊나라 서장庶長무지無地나라를 토벌하고서 양량楊梁주둔駐屯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나라를 한 것을 보복報復하기 위함이었다.注+나라가 나라를 한 일은 전년前年에 있었다. 나라 수양현睢陽縣 동쪽에 지명地名양량楊梁이란 곳이 있다.
[傳]靈王求后于齊어늘 齊侯問對於晏桓子한대
주영왕周靈王나라 여인女人왕후王后로 맞기를 청하자, 제후齊侯안환자晏桓子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물었다.
桓子對曰 先王之禮辭有之注+[附注] 林曰 先王講禮之辭命有之 하니
환자桓子가 대답하기를 “선왕先王규정規定예사禮辭가 있습니다.注+[부주]林: 선왕先王를 행할 때 쓰도록 강정講定사명辭命(應對하는 언사言辭)이 있다는 말이다.
天子求后於諸侯 諸侯對曰 夫婦所生注+不敢譽 亦不敢毁 故曰若如人 妾婦之子若而人注+言非適也 이라하고
천자天子제후諸侯에게 왕후王后를 구하면 제후諸侯는 ‘부부夫婦가 낳은 모모某某注+감히 칭찬해 말할 수도 없고 감히 헐뜯어 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약여인若如人’이라고 한 것이다. 첩부妾婦가 낳은 모모某某가 있습니다.’注+적실適室소생所生이 아님을 이른다. 라고 하고,
無女而有姊妹注+[附注] 林曰 謂諸侯自無所生之女 而有女兄女弟及其父之女兄女弟 則曰先守某公之遺女若而人注+[附注] 林曰 先守某公遺腹之女 이라하니이다
딸이 없고 자매姊妹고자매姑姊妹만이 있으면注+[부주]林: 제후諸侯가 자기의 딸은 없고, 누이나 누이동생 및 아버지의 누이나 누이동생이 있는 경우를 이른 것이다. 수신守臣(先君) 모공某公이 남긴 모모某某가 있습니다.’注+[부주]林: 선수先守(先君) 모공某公유복녀遺腹女라는 말이다. 고 합니다.”고 하였다.
齊侯許昏하니 王使陰里結之注+陰里 周大夫 結 成也 爲十五年劉夏逆王后傳 하다
제후齊侯허혼許婚하니 영왕靈王음리陰里를 보내어 혼약婚約결정決定하였다.注+음리陰里나라 대부大夫이다. 은 이룸이다. 양공襄公 15년에 유하劉夏왕후王后를 맞이해 온 의 배경이다.
[傳]公如晉朝하고 且拜士魴之辱하니 禮也注+士魴聘在此年夏 嫌君臣不敵
양공襄公나라에 가서 조현朝見하고, 또 사방士魴나라에 빙문聘問해 준 데 대해 배사拜謝하였으니, 에 맞았다.注+사방士魴빙문聘問은 이해 여름에 있었다. 군신君臣필적匹敵(對等)할 수 없는데, 〈진신晉臣내방來訪노군魯君답방答訪한 것으로〉 혐의嫌疑(誤解)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에 맞았다’라고 한 것이다.
[傳]秦嬴歸于楚注+秦景公妹 爲楚共王夫人 [附注] 林曰 歸 嫁也 하다
진영秦嬴나라로 시집갔다.注+진경공秦景公의 누이동생이 초공왕楚共王부인夫人이 된 것이다. [부주]林: 는 시집가는 것이다.
楚司馬子庚聘于秦하다
나라 사마司馬자경子庚나라에 빙문聘問하였다.
爲夫人寧하니 禮也注+子庚 莊王子午也 諸侯夫人 父母旣沒 歸寧使卿 故曰禮
이는 부인夫人을 대신해 귀녕歸寧하기 위함이었으니, 에 맞았다.注+자경子庚초장왕楚莊王의 아들 이다. 제후諸侯부인夫人친가親家부모父母가 이미 죽고 없으면 을 보내어 귀녕歸寧(出嫁한 딸이 친정親庭부모형제父母兄弟를 찾아뵙는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臨於周廟 : 臨은 喪에 哭하는 것이다. 《禮記》 〈檀弓〉 鄭注
역주2 若而人 : 若而人은 某某란 말과 같다고 한 成海應의 《杜注考異》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3 及姑姊妹 : 옛사람들은 姑母를 ‘姑姊妹’라 하였으니, 아버지의 누이를 ‘姑姊’라 하고 아버지의 누이동생을 ‘姑妹’라고 한 듯하다. 〈正義〉
역주4 故〈曰〉禮之[也] :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故’ 아래에 ‘曰’을 넣고, ‘之’를 ‘也’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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