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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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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八年春王正月 公如晉하다
[經]夏 葬鄭僖公注+無傳
[經]鄭人侵蔡하야 獲蔡公子燮注+鄭子國稱人 刺其無故侵蔡 以生國患 燮 蔡莊公子 하다
[經]季孫宿會晉侯鄭伯齊人宋人衛人邾人于邢丘注+時公在晉 晉悼難勞諸侯 唯使大夫聽命 故季孫在會而公先歸 하다
[經]公至自晉注+無傳 하다
[經]莒人伐我東鄙하다
[經]秋九月 大雩하다
[經]冬 楚公子貞帥師伐鄭하다
[經]晉侯使士匄來聘하다
[傳]八年春 公如晉朝 且聽朝聘之數注+晉悼復修霸業 故朝而稟其多少
[傳]鄭群公子以僖公之死也 謀子駟한대 子駟先之하야 夏四月庚辰 辟殺子狐子熙子侯子丁注+辟 罪也 加罪以戮之 하니孫惡出奔衛注+二孫 子狐之子 하다
[傳]庚寅 鄭子國子耳侵蔡하야 獲蔡司馬公子燮注+鄭侵蔡 欲以求媚於晉 子耳 子良之子 不言敗 唯以獲告 하니 鄭人皆喜로되 唯子産不順注+子産 子國子 不順衆而喜 曰 小國無而有武功하니 禍莫大焉이라
楚人來討 能勿從乎
從之 晉師必至리라
晉楚伐鄭이리니 自今鄭國不四五年弗得寧矣리라 子國怒之曰 爾何知
國有大命하고 而有正卿이어늘 童子言焉하니 注+大命 起師行軍之命리라
[傳]五月甲辰 會于邢丘하야 以命朝聘之數할새 使諸侯之大夫聽命하니 季孫宿齊高厚宋向戌衛寗殖邾大夫會之注+晉難重煩諸侯 故使大夫聽命 하다
鄭伯獻捷于會 故親聽命注+獻蔡捷也 하다
注+晉悼復文襄之業 制朝聘之節 故退諸侯大夫以[附注] 林曰 大皆書曰人
[傳]莒人伐我東鄙하야 以疆鄫田注+莒旣滅鄫 魯侵其西界 故伐魯東鄙 以正其封疆 하다
[傳]秋九月 大雩하니 旱也
[傳]冬 楚子囊伐鄭하니 討其侵蔡也注+[附注] 林曰 果如子産之言
子駟子國子耳欲從楚하고 子孔子蟜子展欲待晉注+待晉來救 子孔 穆公子 子蟜 子游子 子展 子罕子 하다
子駟曰 周詩有之하니 曰 俟河之淸이면 人壽幾何注+逸詩也 言人壽促而河淸遲 喩晉之不可待 [附注] 林曰 黃河水濁 一千年而一淸
兆云詢多 職競作羅注+兆 卜 詢 謀也 職 主也 言旣卜且謀多 則競作羅網之難 無成功 라하니라
謀之多族하야 民之多違注+族 家也 [附注] 林曰 鄭之主謀 多有族類 民各有心 多相違戾 事滋無成注+滋 益也 이라
民急矣 姑從楚하야 以紓吾民注+[附注] 林曰 紓 緩也 以緩吾民之死 이라가 晉師至 吾又從之리라
敬共幣帛하야 以待來者 小國之道也 犧牲玉帛으로 待於二竟注+二竟 晉楚界上 하야 以待彊者而庇民焉이면 寇不爲害하야 民不罷病이리니 不亦可乎
子展曰 小所以事大 信也 小國無信이면 兵亂日至하야 亡無日矣리라
五會之信注+謂三年會雞澤 五年會戚 又會城棣 七年會鄬 八年會邢丘 今將背之 雖楚救我라도 將安用之注+言失信得楚 不足貴 리오
注+晉親鄭 이라하야 注+楚欲以鄭爲鄙邑而反欲與成 하리라 注+言子駟不可從
不如待晉이니라
晉君方明하고 四軍하며 和睦하니 必不棄鄭注+四軍 謂上中下新軍也 軍有二卿 이리라
楚師遼遠하야 糧食將盡하야 必將速歸하리니 何患焉
舍之聞之注+舍之 子展名 컨대 杖莫如信이라하니 完守以老楚하고 杖信以待晉 不亦可乎
子駟曰 詩云 謀夫孔多 是用不集注+詩 小雅 孔 甚也 集 就也 言人欲爲政 是非相亂而不成 이라
發言盈庭이나 誰敢執其咎注+言謀者多 若有不善 無適受其咎
注+匪 彼也 行邁謀 謀於路人也 不得于道 衆無適從 라하니 請從楚하야 騑也受其咎注+騑 子駟名 하리라
乃及楚平하고 使王子伯騈告于晉注+伯騈 鄭大夫 曰 君命敝邑하야 注+[附注] 朱曰 而 汝也 賦 兵也 하고 儆而師徒하야 以討亂略이라
蔡人不從하니 敝邑之人不敢寧處하야 注+索 盡也 하야 以討于蔡하야 獲司馬燮하야 獻于邢丘니라
今楚來討曰 女何故稱兵于蔡注+稱 擧也 오하야 注+郭外曰郊 保 守也 하고 馮陵我城郭注+馮 迫也 하니 敝邑之衆 夫婦男女 不皇啓處以相救也注+皇 暇也 啓 跪也 호되
注+翦 盡也 控 引也 오라
民死亡者 非其父兄이면 卽其子弟 夫人愁痛注+夫人 猶人人也 하야 不知所庇
民知窮困하야 而受盟于楚하니 孤也與其二三臣不能禁止注+孤 鄭伯 하야 不敢不告로라
知武子使行人子員對之曰 君有楚命注+見討之命 이로되
亦不使一个行李告于寡君注+一个 獨使也 行李 行人也 하고 而卽安于楚
君之所欲也 誰敢違君이리오
寡君將帥諸侯以見于城下하리니 唯君圖之注+爲明年晉伐鄭傳 하라
[傳]晉范宣子來聘하야 且拜公之辱注+謝公此春朝 하고 告將用師于鄭하다
公享之할새 宣子賦摽有梅注+摽有梅 詩召南 摽 落也 梅盛極則落 詩人以興女色盛則有衰 衆士求之 宜及其時 宣子欲魯及時共討鄭 取其汲汲相赴 어늘 季武子曰 誰敢哉注+言誰敢不從命 리오
注+言同類 [附注] 林曰 如草木香氣滋味之同者
歡以承命注+[附注] 林曰 歡樂以奉承晉之命 이니 注+遲速無時 [附注] 林曰 遲速唯命 何拘於時 리오하고 武子賦角弓注+角弓 詩小雅 取其兄弟婚姻 無相遠矣 하다
賓將出 武子賦彤弓注+彤弓 天子賜有功諸侯之詩 欲使晉君繼文之業 復受彤弓한대 宣子曰 城濮之役注+在僖二十八年 我先君文公獻功于衡雍하고 受彤弓于襄王하야 以爲子孫藏注+藏之以示子孫 하니라
匄也 先君守官之嗣也 敢不承命注+言己嗣其父祖爲先君守官 不敢廢命 欲匡晉君
君子以爲知禮注+彤弓之義 義在晉君 故范匄受之 所謂知禮 라하니라


8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양공襄公나라에 갔다.
여름에 정희공鄭僖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정인鄭人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나라 공자公子을 사로잡았다.注+나라 자국子國을 ‘’으로 한 것은 그가 까닭 없이 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나라의 환란患亂을 만든 것을 풍자諷刺한 뜻이다. 채장공蔡莊公의 아들이다.
계손숙季孫宿진후晉侯정백鄭伯제인齊人송인宋人위인衛人주인邾人형구邢丘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이때 양공襄公나라에 있었다. 진도공晉悼公제후諸侯(魯君을 이름)를 수고롭게 하기 싫어서[難]대부大夫만 와서 을 듣게 하였다. 그러므로 계손숙季孫宿회합會合에 가고, 양공襄公은 먼저 귀국歸國하였다.
양공襄公나라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거인莒人이 우리나라의 동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였다.
가을 9월에 우제雩祭를 지냈다.
겨울에 나라 공자公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진후晉侯사개士匄를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8년 봄에 양공襄公나라에 가서 조현朝見하고 또 조빙朝聘에 대한 을 들었다.注+진도공晉悼公이 다시 패업霸業수행修行하였다. 그러므로 양공襄公나라에 조회朝會하여 다소多少(朝聘 때 바치는 재폐財幣수량數量)에 대한 을 받은 것이다.
나라 군공자群公子가, 희공僖公시해弑害하였다는 이유로 자사子駟살해殺害하려고 모의謀議하자, 자사子駟선수先手를 쳐서 여름 4월 경진일庚辰日자호子狐자희子熙자후子侯자정子丁에게 를 씌워 죽이니,注+이니, 를 씌워 죽인 것이다.손격孫擊손악孫惡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손자孫子자호子狐의 아들이다.
경인일庚寅日나라 자국子國자이子耳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나라 사마司馬공자公子을 사로잡으니,注+나라가 나라를 침공侵攻한 것은 나라에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자이子耳자량子良의 아들이다. 에 ‘나라를 패배敗北시켰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오직 사로잡은 것만을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이다. 정인鄭人은 모두 기뻐하였으나, 유독 자산子産만은 덩달아 기뻐하지 않으며注+자산子産자국子國의 아들이다. 대중大衆을 따라 덩달아 기뻐하지 않은 것이다. 말하기를 “소국小國문덕文德이 없으면서 무공武功을 세웠으니, 이보다 큰 가 없습니다.
초인楚人이 와서 를 물으면 복종服從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라에 복종服從하면 반드시 진군晉軍이 쳐들어올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가 번갈아 우리 나라를 칠 것이니, 이제부터 4~5년 동안은 평안平安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자국子國하여 말하기를 “네가 무엇을 아느냐?
국가國家에는 대명大命(出兵하는 대사大事)이 있고 또 정경正卿이 있어 그 일을 주관主管하는데, 어린놈이 함부로 말하니, 장차 죽임을 당할 것이다.”注+대명大命은 군대를 일으켜 행군行軍(出征)을 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5월 갑진일甲辰日형구邢丘에서 회합會合하여 조빙朝聘할 적에 제후諸侯대부大夫들로 하여금 와서 을 듣게 하니, 계손숙季孫宿, 나라 고후高厚, 나라 상술向戌, 나라 영식寗殖, 나라 대부大夫회합會合에 참여하였다.注+진후晉侯제후諸侯의 임금들을 거듭 번거롭게 하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대부大夫들에게 와서 을 듣게 한 것이다.
정백鄭伯회합會合에 와서 나라를 쳐서 얻은 전리품戰利品[捷]을 바쳤으므로 직접 을 들은 것이다.注+나라를 쳐서 얻은 전리품戰利品을 바친 것이다.
대부大夫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진후晉侯를 높이기 위해서이다.注+진도공晉悼公이 다시 문공文公양공襄公패업霸業수행修行하여 조빙朝聘예절禮節제정制定하되, 검소儉素하고 가 있어서 덕행德行신의信義가 높일 만하였다. 그러므로 제후諸侯대부大夫를 ‘’으로 폄하하여 진후晉侯를 높인 것이다. [부주]林: 대부大夫를 모두 ‘’으로 기록한 것을 이른 것이다.
거인莒人이 우리나라 동쪽 변읍邊邑을 치고서, 증전鄫田(鄫國의 토지土地)의 경계境界획정劃定하였다.注+거인莒人증국鄫國격멸擊滅한 뒤에 나라가 증국鄫國의 서쪽 변경邊境침공侵攻하였기 때문에 거인莒人나라 동쪽 변경邊境을 쳐서 그 경계境界획정劃定한 것이다.
가을 9월에 우제雩祭를 지냈으니 가물었기 때문이다.
겨울에 나라 자낭子囊나라를 토벌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나라를 침공侵攻하였기 때문에 토벌討伐한 것이었다.注+[부주]林: 과연 자산子産의 말대로 되었다.
자사子駟자국子國자이子耳나라에 복종服從하고자 하고, 자공子孔자교子蟜자전子展나라의 구원救援을 기다리고자 하였다.注+나라가 와서 구원救援하기를 기다리고자 한 것이다. 자공子孔목공穆公의 아들이고, 자교子蟜자유子游의 아들이고, 자전子展자한子罕의 아들이다.
자사子駟가 말하기를 “나라 에 ‘하수河水가 맑아지길 기다리려면 사람의 수명壽命이 얼마가 되어야 하겠는가?注+일시逸詩이다. 사람의 수명壽命은 짧고 하수河水가 맑아지는 일은 더디다는 것을 말하여 나라의 구원救援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비유譬喩한 것이다. [부주]林: 황하黃河는 물이 흐린데, 천년千年에 한 번씩 맑아진다고 한다.
을 치고 또 많은 계책計策을 물으면 서로의 주장主張을 다투어 〈스스로를 얽어매는〉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注+이고 이고, 이다. 이미 을 치고서 또 모의謀議함이 많으면 〈서로의 주장主張을〉 경쟁競爭해 스스로 그물에 걸리는 곤난困難을 만들어 성공成功할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계책計策을 내는 사람이 많아 어기는 백성이 많으면注+(사람)이다. [부주]林: 나라에 계모計謀주도主導하는 가문家門이 많으므로 백성들도 각각 마음이 달라서 서로 어그러짐이 많다는 말이다. 일은 더욱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注+(더욱)이다.
백성들이 위급危急하게 되었으니 우선 나라에 복종服從하여 백성의 위급危急완화緩和시켰다가注+[부주]林: 는 늦춤이니 우리 백성들의 죽음을 늦춘다는 말이다. 진군晉軍이 쳐들어오면 우리가 다시 나라에 복종服從하면 될 것이다.
공경히 폐백幣帛을 마련하여 쳐들어오는 나라를 기다리는 것은 소국小國생존生存하는 방법이니, 희생犧牲(結盟하기 위한 것)과 옥백玉帛(結盟하고서 예물禮物로 바치기 위한 것)을 가지고서 나라와 나라 국경國境에서 기다리다가注+국경國境나라와 나라의 국경國境이다. 강자强者를 기다려 우리 백성을 보호保護한다면 외구外寇를 끼치지 않아 우리 백성이 피폐疲弊하지 않을 것이니,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자전子展이 말하기를 “소국小國대국大國을 섬기는 길은 신의信義뿐이니, 소국小國신의信義가 없으면 병란兵亂이 나날이 닥쳐 멸망滅亡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다섯 차례의 회합會合에서 나라와 맺은 신의信義注+오회五會양공襄公 3년의 계택雞澤회합會合과 5년의 회합會合과 또 성체城棣회합會合과 7년의 회합會合과 8년의 형구邢丘회합會合을 이른다. 지금 배반背叛한다면 비록 나라가 우리를 구원救援한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注+신의信義를 잃고 나라의 구원救援을 얻는다 해도 족히 하게 여길 게 못 된다는 말이다.
나라는 우리와 화친和親하여도 좋은 성과成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겨注+나라가 나라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저의 나라 변읍邊邑으로 삼고자 할 것이니注+나라는 나라를 나라의 변읍邊邑으로 삼고자 하여 도리어 강화講和하고자 할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에 복종服從해서는 안 된다.注+자사子駟의 말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라의 구원救援을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
진군晉君현명賢明하고 나라의 사군四軍졸승卒乘갑병甲兵완비完備되었으며 팔경八卿은 서로 화목和睦하니 반드시 우리 나라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注+사군四軍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 신군新軍을 이른다. 마다 두 명의 이 있다.
초군楚軍은 먼 길을 와서 군량軍糧이 거의 떨어졌으므로 반드시 속히 돌아가려 할 것이니 근심할 게 뭐 있는가?
나는 듣건대注+사지舍之자전子展의 이름이다. ‘믿고 의지할 것[杖]은 신의信義만한 게 없다.’고 하였으니, 견고堅固히 지켜 초군楚軍을 지치게 하고 신의信義를 믿고서 나라의 구원救援을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자사子駟가 말하기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계모計謀를 내는 사람 매우 많으니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소민편小旻篇〉의 시구詩句이다. 이고, 성취成就이다. 사람마다 정사政事를 하고자 하니, 시비是非가 어지러워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말을 하는 사람 뜰에 가득하지만 누가 감히 그 잘못에 책임을 지려 하는가?注+계획計劃을 내는 자는 많지만 그 결과結果가 좋지 않으면 전적으로 그 잘못에 대한 책임責任을 지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길은 가지 않고 앉아서 갈 길만을 계획하는 꼴이라, 이러므로 갈 길을 알지 못한다.’注+이다. 행매모行邁謀는 길 가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고, 부득우도不得于道대중大衆이 믿고 따를 곳이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으니, 나라에 복종하여 내가 그 책임을 지겠노라.”注+자사子駟의 이름이다. 고 하였다.
자사子駟나라와 화평和平하고서, 왕자王子백병伯騈을 보내어 나라에 하기를注+백병伯騈나라 대부大夫이다. “일찍이 진군晉君이 우리나라에 하기를 ‘너희들의 거승車乘수선修繕하고注+[부주]朱: 이고 이다. 너희들의 병사兵士경계警戒하여 남의 국경國境을 어지럽히고 침략侵略하는 자를 토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채인蔡人복종服從하지 않으니, 우리는 감히 편안히 있을 수가 없어 전군全軍동원動員注+이다. 나라를 토벌하여 사마司馬을 잡아 형구邢丘회합會合에 가서 바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초군楚軍이 와서 우리나라를 토벌하며 말하기를 ‘너희는 무엇 때문에 나라를 토벌하였느냐?’注+거병擧兵이다. 라고 하면서 우리의 교보郊堡를 불태우고注+성곽城郭 밖을 ‘’라 한다. 이다. 우리의 성곽城郭핍박逼迫하니,注+(핍박)이다. 우리 백성들은 부부夫婦남녀男女(처녀 총각)할 것 없이 모두 앉아 있을 겨를 없이 서로 구원하였습니다.注+은 겨를이고, 는 앉는 것이다.
패전敗戰국가國家하게 되었는데도 호소呼訴할 곳이 없었습니다.注+이고, 이다.
이번 전쟁戰爭에 죽은 백성은 부형父兄이 아니면 자제子弟이므로 사람마다 괴로워하고 애통哀痛해 하는데도注+부인夫人인인人人(사람마다)과 같다. 어떻게 비호庇護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곤궁困窮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서 나라의 맹약盟約을 받아들이니, 나(鄭君)와 몇몇 신하臣下는 이를 막을 수 없어注+정백鄭伯이 자신을 이른 말이다. 감히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사람을 보내어 하는 바입니다.”라고 하였다.
지무자知武子행인行人자원子員을 보내어 대답하기를 “께서 나라의 토벌[命]을 받고도注+토벌討伐하겠다는 나라의 이다. 한 사람의 사신使臣을 보내어 과군寡君에게 하지 않고注+일개一个는 한 사람의 사신使臣이고, 행리行李행인行人(外交官)이다. 즉시 나라에 굴복屈服한 것은 께서 하신 것이니 누가 감히 의 뜻을 어기겠습니까?
과군寡君께서는 장차 제후諸侯를 거느리고서 나라 성하城下에서 을 만날 것이니 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注+명년明年나라가 나라를 토벌한 의 배경이다. 라고 하였다.
나라 범선자范宣子가 와서 빙문聘問하고서 또 지난번 양공襄公나라에 조현朝見한 것에 대해 배사拜謝하고,注+양공襄公이 금년 봄에 나라에 조현朝見한 것에 대해 배사拜謝한 것이다. 이어 나라에 용병用兵(토벌)하려 한다는 것을 하였다.
양공襄公연향燕享할 때 선자宣子가 〈표유매편摽有梅篇〉을 읊거늘注+표유매편摽有梅篇〉은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篇名이다. 이다. 매실梅實함이 에 달하면 떨어지니, 시인詩人이 이를 보고 여인女人의 얼굴이 한껏 피어나면 함이 있는 것을 (詩의 한 체제體制로 어떤 사물을 보고 느낌이 있으면 그 느낌을 먼저 말하여 읊고 싶은 말을 일으키는 것임)하여 총각總角들이 아내를 구하려면 제때에 미치는 것이 좋다고 읊은 것이다. 선자宣子나라가 제때에 맞춰 출병出兵하여 나라와 함께 나라 토벌하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이 를 읊어 그 뜻을 한 것이니〉 서둘러 달려오라는 뜻을 한 것이다. 계무자季武子가 말하기를 “누가 감히 을 따르지 않겠습니까?注+누가 감히 나라의 을 따르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지금 초목草木에 비유하면 과군寡君진군晉君에 있어 진군晉君취미臭味입니다.注+같은 무리라는 말이다. [부주]林: 화초花草향기香氣와 나무의 열매처럼 냄새와 맛이 같다는 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을 받들 것이니注+[부주]林: 즐거운 마음으로 나라의 을 받들어 따르겠다는 말이다. 어찌 시기의 지속遲速이 있겠습니까?”注+시기時期지속遲速이 없다는 말이다. [부주]林: 출병出兵지속遲速에 따를 뿐이니, 어찌 시기에 구애되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무자武子가 〈각궁편角弓篇〉을 읊었다.注+각궁편角弓篇〉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형제兄弟인척姻戚은 서로 멀리하지 말라는 뜻을 한 것이다.
(宣子)이 물러가려 할 때 무자武子가 〈동궁편彤弓篇〉을 읊으니,注+동궁편彤弓篇〉은 천자天子이 있는 제후諸侯에게 궁시弓矢하사下賜할 때 읊는 이다. 무자武子진군晉君문공文公패업霸業계승繼承하여 다시 주왕周王동궁彤弓을 받기를 바란 것이다. 선자宣子가 말하기를 “성복城濮전쟁戰爭에서 승리勝利하고서注+성복城濮전쟁戰爭희공僖公 28년에 있었다. 우리 선군先君문공文公께서 형옹衡雍으로 가서 전공戰功(戰利品)을 바치고 주양왕周襄王동궁彤弓을 받아 자손子孫에게 보장寶藏(家寶)으로 삼았습니다.注+이것을 가보家寶로 간직하여 자손子孫에게 보인다는 말이다.
선군先君수관守官후손後孫이니 어찌 감히 그대의 을 받들지 않겠습니까?”注+선자宣子는 자기가 선군先君수관守官(卿)이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어 수관守官이 되었으니, 감히 (武子의 )을 버리지 않고 진군晉君광보匡輔(바르게 인도함)하고자 한다고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군자君子선자宣子를 알았다고 하였다.注+동궁편彤弓篇〉을 읊은 뜻은 그 뜻이 진군晉君에 있었기 때문에 범개范匄(宣子)가 받아들인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를 알았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繫[擊] : 저본에는 ‘繫’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文德 : 文德은 禮樂의 敎化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역주3 將爲戮 : 將爲戮은 子國이 그 아들 子産에게 이렇게 입바른 말을 하기 좋아하면 앞으로 禍를 부르기 쉽다고 경계한 말이다.
역주4 大夫不書 尊晉侯 : 卿이 公侯와 會合하지 않는 것이 禮이므로 卿이 公侯와 會合한 경우에는 그 卿을 貶下하여 이름을 稱하지 않고 ‘人’으로 稱하는 것이 常例이다. 이번 會合은 晉侯가 大夫들에게 와서 命을 듣게 하였으니 大夫들을 貶下할 이유가 없으나, 晉侯를 높이기 위해 大夫들을 ‘人’으로 稱했다는 말이다.
역주5 儉而有禮 德義可尊 : 諸侯 임금들을 번거롭히기를 싫어하여 大夫들에게 와서 命을 듣게 한 것을 이른 것이다. 〈正義〉
역주6 夫[崇] : 저본에는 ‘夫’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崇’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崇[夫] : 저본에는 ‘崇’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夫’로 바로잡았다.
역주8 親我無成 : 楚나라 立場에서 말한 것이다. 楚人은 鄭나라와 和親하여도 좋은 成果를 얻을 수 없다고 여길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9 鄙我是欲 : 鄭나라는 信義를 지키지 않고 楚나라가 쳐들어오면 楚나라에 붙었다가 晉나라가 쳐들어오면 다시 晉나라에 붙기 때문에 楚人은 鄭나라와 和親하더라도 끝내 鄭나라를 楚나라 편으로 잡아 두는 成果를 얻을 수 없다고 여겨, 鄭나라를 占領하여 自國의 邊邑으로 삼으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10 不可從也 : 杜注를 따르지 않고 〈楊注〉 등의 說을 取해 ‘楚나라에 服從해서는 안 된다.’로 번역하였다.
역주11 無闕 : 無闕은 卒乘甲兵이 完備된 것을 이른다. 〈楊注〉
역주12 八卿 : 軍마다 卿이 두 사람씩이기 때문에 ‘八卿’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3 如匪行邁謀 是用不得于道 : 如匪行邁謀는 길은 가지 않으면서 앉아서 먼 길을 가기를 꾀한다는 말로 일을 행하지는 않고 쓸데없이 그 是非得失만을 論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不得于道는 가고자 하는 길을 알 수 없다는 말로 좋은 계책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4 修而車賦 : 〈楊注〉에 “車賦는 車乘과 같은 말이다.”고 하였다.
역주15 悉索敝賦 : 悉索은 同意詞를 連用한 것으로 盡의 뜻이다. 우리나라 군대를 다 動員하겠다는 말이다.
역주16 焚我郊保 : 郊保는 郊外의 堡壘이다.
역주17 翦焉傾覆 無所控告 : 翦焉은 形容辭로 顚覆해 沈陷(沈沒)하는 모양이라고 한 〈楊注〉의 뜻을 취해 번역하였고, 控은 赴告(달려가 고함)라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8 亦不使一个行李告于寡君 而卽安于楚 : 事前에 미리 通知하지 않고 즉시 楚나라에 屈服하였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19 今譬於草木……君之臭味也 : 宣子가 ‘摽有梅’를 읊었기 때문에 武子가 草木으로 比喩한 것이다. 晉君이 꽃과 과일이라면 魯君은 단지 그 꽃의 香氣와 과일의 맛일 뿐이라고 하여 晉君을 높이고서, 또 兩國의 情이 一體와 같다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20 何時之有 : 꽃과 香氣, 과일과 맛이 서로 분리될 수 없듯이, 魯나라와 晉나라는 一體여서 서로 떨어질 수 없으니 어찌 시기의 遲速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21 欲[於] : 저본에는 ‘欲’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於’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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