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二十有二年 春
주왕王正月
에 肆大眚
注+無傳 赦有罪也 易稱赦過宥罪 書稱眚災肆赦 傳稱肆眚圍鄭 皆放赦罪人 蕩滌衆故 以新其心 有時而用之 非制所常 故書하다
[經]癸丑
에 葬我小君
문강文姜注+無傳 反哭成喪 故稱小君하다
[經]
진인陳人殺其公子
어구御寇注+宣公太子也 진인陳人 惡其殺太子之名 故 以國討公子告하다
[經]夏 五月
注+[附注] 林曰 無事以首時書者五十九 惟此書五月 昭十年 書十二月이라
[經]秋七月丙申
에 及
제齊고혜高徯盟于
방防注+無傳 고혜高徯 제齊之貴卿 而與魯之微者盟 제齊桓謙接諸侯 以崇覇業하다
[經]冬
에 장공公如
제齊納幣
注+無傳 장공公不使卿而親 非禮也 母喪未再期而圖昏 二傳不見所譏 左氏又無傳 失禮明故하다
傳
[傳]二十二年春
에 진인陳人殺其大子
어구御寇注+傳稱太子 以實言하니 진인陳公子
완完與
전손顓孫奔
제齊注+公子완完 전손顓孫 皆어구御寇之黨하다
제후齊侯使
경중敬仲爲
경卿注+경중敬仲 진陳公子완完한대
辭曰 羇旅之臣
注+羇 寄也 旅 客也이 幸若獲宥
하야 及於寬政
注+宥 赦也하고 赦其不閑於敎訓
하야 而免於罪戾
하고 弛於負擔
注+弛 去離也이 君之惠也
라
所獲多矣
니 敢辱高位
하야 以速官謗
注+敢 不敢也이릿가 請以死告
注+以死自誓하노이다
豈不欲往
이리오마는 畏我友朋
注+逸詩也 翹翹 遠貌 古者聘士以弓 言雖貪顯名 懼爲朋友所譏責이라하니이다
傳
[傳]飮
제환공桓公酒
하니 樂
注+제환공齊桓賢之 故就其家會 據主人之辭 故言飮제환공桓公酒하야
환공公曰 以火繼之하라 辭曰 臣卜其晝오 未卜其夜하니 不敢하노이다
酒以成禮
하고 不繼以淫
은 義也
注+夜飮爲淫樂오 以君成禮
하고 弗納於淫
은 仁也
라하다
初
에 의씨懿氏卜妻
경중敬仲注+의씨懿氏 陳大夫 龜曰卜 [附注] 林曰 의씨懿氏卜以女妻陳경중敬仲에 其妻占之曰 吉
注+의씨懿氏妻이라
是謂 鳳凰于飛
하니 和鳴鏘鏘
注+雄曰鳳 雌曰凰 雄雌俱飛 相和而鳴鏘鏘然 猶경중敬仲夫妻相隨適齊 有聲譽이라
有
규씨嬀之後
가 將育于
강성姜注+규씨嬀 陳강성姓 강성姜 齊강성姓하야 五世其昌
하야 並于
정경正卿하고 八世之後
엔 莫之與京
注+京 大也 [附注] 林曰 此皆所占之辭이라
故
채인蔡人殺
오보五父而立之
注+오보五父 陳佗也 殺陳佗 在桓六年하다 生
경중敬仲하다
其少也
에 주사周史有以
주역周易見
진후陳侯者
注+주사周大주사史也어늘 진후陳侯使筮之
注+蓍曰筮한대 遇觀☴☷
注+坤下巽上觀之否☰☷
注+坤下乾上否 觀六四變而爲否하다
曰 是謂觀國之光
이니 注+此주역周易觀卦六四爻辭 주역易之爲書 六爻皆有變象 又有 聖人隨其義而論之이라
此其代
진陳有國乎
注+[附注] 林曰 此下乃주사周史釋爻辭之義 以爲진陳爲舜後 作賓于주사周家者也 今경중敬仲得此卦 其當代진陳有國乎ᄂ저
不在此라 其在異國이오 非此其身이라 在其子孫이리니
光
은 遠而自他有耀者也
注+[附注] 朱曰 言所謂觀國之光者 其光在他處遠地而有明耀 將往而得觀之也니이다
坤
은 土也
오 巽은 風也
오 乾
은 天也
라 風爲天於土上
하니 山也
注+巽變爲乾 故曰風爲天 自二至四 有艮象 艮爲山라
有山之材而照之以天光
하고 於是乎居土上
注+山則材之所生 上有乾下有坤 故言居土上 照之以天光 [附注] 林曰 艮爲山 巽爲 故曰 有山之材 此以互體言之 巽變爲乾 故曰 照之以天光 此以變卦言 山之材 天之光 皆居坤之上 故曰 居土上 此以正卦變卦互體詳言之이라 故曰 觀國之光 利用賓于王
注+四爲諸侯 變而之乾 有國朝王之象이요
庭實旅百
하고 奉之以玉帛
하니 天地之美具焉
이라 故曰 利用賓于王
注+艮爲門庭 乾爲金玉 坤爲布帛 諸侯朝王 陳贄幣之象 旅 陳也 百 言物備이라하니이다
猶有觀焉
이라 故曰 其在後乎
注+因觀文以博占 故言猶有觀 非在己之言 故知在子孫 [附注] 林曰 尙有觀感之義焉 此以卦義言 觀感而化 非朝夕所能 故曰在後요 風行而著於土
라 故曰 其在異國乎
注+[附注] 林曰 風 動物也 故行而著於土 此亦以正卦言 行而著於土 則不在本國明矣 故曰在異國ᄂ저라하니이다
강성姜은 大
태악嶽之後也
注+강성姜姓之先 爲堯四태악嶽니 山
태악嶽則配天
이라
物莫能兩大
하니 진陳衰
라야 此其昌乎
注+變而象艮 故知當興於大태악嶽之後 得大태악嶽之權 則有配天之大功 故知진陳必衰 [附注] 林曰 山태악嶽之大 則興雲降雨 有配天之功 此亦以艮乾變卦互體言 凡天下之物 莫能兩大 言경중敬仲與진陳國莫能兩大ᄂ저
及
진陳之初亡也
注+昭八年 楚滅진陳에 진환자陳桓子始大於
제齊注+진환자桓子 敬仲五世孫진陳無宇하고 其後亡也
注+哀十七年 楚復滅진陳에 성자成子得政
注+성자成子 진陳常也 敬仲八世孫 完有禮於제齊 진환자子孫世不忘德 德協於卜 故傳備言其終始 卜筮者 聖人所以定猶豫 決疑似 因生義敎者也 尙書洪範 通龜筮以同卿士之數 南蒯卜亂而遇元吉 惠伯答以忠信則可 臧會卜僭 遂獲其應 丘明故擧諸縣驗於行事者 以示來世 而君진환자子志其善者遠者 他皆倣此 [附注] 朱曰 敬仲八世孫진陳성자成子 名恒 弑簡公而專제齊政 應莫之與京之兆也 恒之曾孫田和 遷제齊康公於海上而簒其國 所謂진陳衰此其昌乎者 謂此也하다
22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注+전傳이 없다. 죄罪 있는 자를 사면赦免한 것이다. 《주역周易》 〈해괘解卦상사象辭〉의 “사과유죄赦過宥罪”(허물은 용서하고 죄는 관대寬大하게 처벌處罰한다)와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생재사사眚災肆赦”(실수로 저지른 잘못은 용서한다)와 양공襄公 9년 전傳의 “사생위정赦眚圍鄭”(군사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정鄭나라를 포위하게 하였다.)은 모두 죄인罪人을 용서해 방면放免하고 모든 고故(罪過)를 씻어주어 그들이 마음을 새롭게 가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쩌다가 한 번 시행할 수는 있는 것이지 제도制度의 정상正常은 아니다. 그러므로 경經에 기록한 것이다.
계축일에 우리
소군小君문강文姜을 장사지냈다.
注+전傳이 없다.
진인陳人이 그
공자公子어구御寇를 죽였다.
注+진선공陳宣公의 태자太子이다. 진인陳人(陳宣公)은 자기가 태자太子를 죽였다고 소문나는 것이 싫었다. 그러므로 군부君父를 칭하지 않고 국인國人이 공자公子를 죽인 것으로 노魯나라에 통고한 것이다.
여름 5월이다.
注+[부주]林: 기사記事가 없는데도 사시四時의 수월首月을 기록한 것은 《춘추春秋》에 모두 59번 보이지만, 5월과 12월을 기록한 것은 오직 이곳과 소공昭公 10년뿐이다.
가을 7월 병신일에
제齊고혜高徯와
방防에서
맹약盟約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고혜高徯는 제齊나라의 존귀한 경卿인데도 노魯나라의 미천한 자와 맹약盟約한 것은 제환공齊桓公이 겸손하게 제후諸侯들과 접촉하여 패업覇業을 드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겨울에
장공莊公이
제齊나라로 가서
납폐納幣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장공莊公이 경卿을 시키지 않고 직접 납폐納幣한 것은 예禮가 아니다. 모상母喪에 재기再期(大祥)도 지내기 전에 혼인婚姻하기를 도모圖謀하였는데도 이전二傳(《公羊傳》‧《곡량전穀梁傳》)에 비난한 말이 보이지 않고, 좌씨左氏도 전傳을 달지 않았으니, 이는 실례失禮가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傳
22년 봄에
진인陳人이 그
태자太子어구御寇를 죽이니
注+전傳에 ‘태자太子’라고 칭한 것은 진실에 의거해 말한 것이다. 진陳공자公子완完이
전손顓孫과 함께
제齊나라로 도망하였다.
注+공자公子완完과 전손顓孫은 모두 어구御寇의 당黨이다.
전손顓孫은 또
제齊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도망해 왔다.
注+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경卿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후齊侯가
경중敬仲을
경卿으로 삼으려 하니,
注+경중敬仲은 진陳공자公子완完이다.
사양해 말하기를 “나그네로
타국他國에 붙어 사는
신臣이
注+기羇는 붙어 사는 것이고, 여旅는 나그네이다. 다행히 용서를 받아 너그러운
정치政治를 하는
제齊나라에 살 수 있게 되었고,
注+유宥는 용서이다.교훈敎訓을 익히지 못한
신臣을 용서하시고
죄과罪過를
사면赦免하시어
신臣이
부담負擔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
注+이弛는 벗어나는 것이다. 바로 임금님의 은혜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신臣이 얻은 것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감히 높은 지위를 욕되게 하여
관리官吏들의
비난非難을 부르겠습니까?
注+감敢은 감히 하지 못함이다. 죽음으로써
고告합니다.
注+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서盟誓한 것이다.
시詩에 ‘
를 타고 와서 활로 나를 부르는구나.
어찌 가고 싶지 안으랴만 벗들의 비난이 두려워서이다.’라고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注+일시逸詩이다. 교교翹翹는 멀리에서 오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활로 선비를 초빙招聘하였다. 비록 명성名聲을 드러내기를 탐하지만 벗들의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자
제환공齊桓公은 그를
공정工正으로 삼았다.
注+백공百工(百官)을 관리管理하는 관직官職이다.
傳
경중敬仲이
주연酒宴을 베풀어
제환공齊桓公을 접대하니
환공桓公은 매우 즐거워하였다.
注+제환공齊桓公이 경중敬仲을 훌륭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의 집의 연회宴會에 간 것이다. 주인主人의 입장立場에서 말하였기 때문에 “음환공주飮桓公酒”(환공에게 술을 접대하다)라 한 것이다.
환공桓公이 “불을 밝히고 계속 마시자.”고 하니, 경중敬仲이 사양하기를 “신臣은 낮에 모시는 일은 점占을 쳤지만 밤까지 모실 것은 점을 치지 않았으니, 감히 명命을 받들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술로써
예禮를 이루고 지나치게 계속하지 않은 것은
의義이고,
注+밤까지 마시면 지나치게 즐기는 것이 된다. 임금을 모시고서
예禮를 이루고 지나친 데 들지 않게 한 것은
인仁이다.”
당초에
의씨懿氏가
경중敬仲을 사위로 삼고자 하여
길흉吉凶을 점칠 적에
注+의씨懿氏는 진陳나라 대부이다. 거북점을 ‘복卜’이라 한다.[부주]林: 의씨懿氏가 진경중陳敬仲을 사위로 삼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 몰라 거북점을 친 것이다. 그의 아내가
점占을 치고서 말하기를 “
길吉하다.
注+의씨懿氏의 아내이다.
이
점괘占卦는 ‘
봉鳳과
황凰이 짝지어 날으니 서로 주고받으며 우는 소리가 해맑도다.
注+수놈을 ‘봉鳳’이라 하고, 암놈을 ‘황凰’이라 한다. 암수가 함께 날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우는 소리가 해맑은 것이, 경중敬仲의 부부夫婦가 서로 어울려 제齊나라로 가서 명성名聲을 얻게 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규씨嬀氏의
후손後孫이
강성姜姓의 나라에서
양육養育되어
注+규嬀는 진陳나라의 성姓이고, 강姜은 제齊나라의 성姓이다. 5
대代 뒤에는 번창하여
관위官位가
정경正卿과
대등對等해지고, 8대 뒤에는 누구도 그와
강대强大함을 다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
注+경京은 대大이다.[부주]林: 이것은 모두 점사占辭이다.
진려공陳厲公은
채蔡나라 여자의
소생所生이다.
注+자매姊妹가 출가出嫁하여 낳은 아들을 ‘출出’이라 한다.
그러므로
채인蔡人이
오보五父를 죽이고 그를 세웠는데,
注+오보五父는 진타陳佗이다. 진타陳佗를 죽인 일은 환공桓公 6년에 보인다. 뒤에
경중敬仲을 낳았다.
경중이 어렸을 때
주사周史가 《
주역周易》을 가지고 와서
진후陳侯를 뵙자,
注+주周나라 태사太史이다. 진후는 그에게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였는데,
注+시초점蓍草占을 ‘서筮’라 한다. 관괘觀卦(☴☷)
注+곤괘坤卦가 아래 있고 손괘巽卦가 위에 있는 것이 관괘觀卦이다.가
비괘否卦(☰☷)
注+곤괘坤卦가 아래 있고 건괘乾卦가 위에 있는 것이 비괘否卦이니, 관괘觀卦의 육사효六四爻가 변하여 비괘否卦가 된 것이다.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태사太史가 풀이하기를 “이
괘卦는 ‘
왕국王國의 빛을 보는 것이니
군왕君王의
빈객賓客이 되는 것이 이롭다.
注+이 말은 《주역周易》 관괘觀卦육사효사六四爻辭이다. 《주역周易》의 글은, 육효六爻에 모두 변상變象(변화하는 형상形象)이 있고 또 호체互體가 있으므로, 성인聖人이 그 뜻에 따라 논한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진陳나라를 대신하여 나라를 갖게 될 것입니다.
注+[부주]林: 이하의 말은 주사周史가 효사爻辭의 뜻을 해석하여, ‘진陳나라는 순舜의 후손으로 주周나라의 빈객賓客이 된 나라인데, 지금 경중敬仲이 이 괘卦를 얻었으니, 그가 진陳나라를 대신해 나라를 갖게 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국異國에서 있을 것이고, 이 사람에게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빛은 멀리 있는 다른 곳에서 비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注+ [부주]朱: 이른바 ‘왕국王國의 빛을 본다’는 것은 그 빛은 멀리 있는 다른 곳에서 밝게 빛나는 것이니, 그곳으로 가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곤坤은
토土이고
손巽은
풍風이고
건乾은
천天인데,
풍風이
토상土上에서
천天이 되었으니
산山입니다.
注+손巽이 변하여 건乾이 되었기 때문에 풍風이 천天이 되었다고 한 것이다. 이효二爻에서 사효四爻까지는 간괘艮卦의 상象이 있는데, 간艮은 산山이 된다.
산山에는 재목이 있는데,
천광天光이 이를 비추고
토지土地의 위에 있으므로
注+산山은 재목材木이 생산되는 곳인데, 위에는 천天이 있고 아래는 곤坤이 있기 때문에 토지土地의 위에 있으면서 천광天光의 비춤을 받는다고 말한 것이다.[부주]林: 간艮은 산山이 되고 손巽은 풍風이 되기 때문에 ‘유산지재有山之材’라고 하였으니 이는 호괘互卦로 말한 것이고, 손巽이 변하여 건乾이 되었기 때문에 ‘조지이천광照之以天光’이라 하였으니 이는 변괘變卦로 말한 것이고, 산山의 재목材木과 하늘의 빛이 모두 곤坤 위에 있기 때문에 ‘거토상居土上’이라 하였으니 이는 정괘正卦‧변괘變卦‧호체互體로 자세히 말한 것이다. ‘
관국지광觀國之光이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고 한 것이고,
注+사효四爻는 제후諸侯를 뜻하는데 그 효爻가 변하여 건괘乾卦가 되었으니, 국가를 소유한 제후諸侯가 천자天子에게 조현朝見하는 상象이다.
뜰에는 온갖
예폐禮幣를 벌여 놓고 또
옥백玉帛을
진헌進獻하니,
천지天地의 아름다운 물건이 모두
구비具備되었으므로 ‘
이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고 한 것입니다.
注+간艮은 문정門庭, 건乾은 금옥金玉, 곤坤은 포백布帛이 되니, 제후諸侯가 천자天子에게 조현朝見할 때 폐백幣帛을 벌여 놓는 상象이다. 여旅는 벌여 놓음이다. 백百은 모든 물건이 구비具備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관자觀者의 뜻이 있으므로 ‘
후손後孫에게 있을 것이다.’고 한 것이고,
注+관괘觀卦의 글을 인하여 널리 추측推測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유관猶有觀’이라 하였으니, 이는 나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손子孫에게 있을 것을 안 것이다.[부주]林: 오히려 관감觀感(보고서 감동함)의 뜻이 있다는 말이니, 이는 괘卦의 뜻으로 말한 것이다. 보고서 감동하여 변화하는 것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후손後孫에 있다고 한 것이다. 바람은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토상土上에
낙착落着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있을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注+[부주]林: 풍風은 움직이는 물건이기 때문에 돌아다니다가 끝내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니, 이 또한 정괘正卦로써 말한 것이다. 돌아다니다가 땅으로 떨어진다면 본국本國에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하므로 이국異國에서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만약 이국異國에서 있다면 반드시 강성姜姓의 나라일 것입니다.
강성姜姓은
태악太嶽의 후손이니
注+강성姜姓의 선조先祖는 요堯의 사악四嶽(四方 제후諸侯를 관장管掌한 관명官名)이었다. 산악山嶽은 그
고대高大함이 하늘과 짝할 만합니다.
사물의 이치는 두 개의 사물이 동시에
강대强大할 수 없는 것이니,
진陳나라가
쇠衰하여야 이 사람의 후손이
창성昌盛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변하여 간괘艮卦의 상象이 되었기 때문에 태악太嶽의 후손後孫 나라에서 흥興하리라는 것을 안 것이고, 태악太嶽의 권한權限을 얻는다면 하늘과 짝할 만한 대공大功이 있기 때문에 진陳나라가 반드시 쇠衰하리라는 것을 안 것이다.[부주]林: 큰 산악山嶽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하늘과 짝할 만한 공功이 있다는 뜻이니, 이 또한 간괘艮卦와 건괘乾卦의 변괘變卦와 호체互體로 말한 것이다. 천하天下의 모든 물건은 둘이 동시에 강대强大할 수 없다는 것은 경중敬仲과 진陳나라 둘이 동시에 강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진陳나라가 처음 망하였을 때에 미쳐
注+소공昭公 8년에 초楚나라가 진陳을 멸滅하였다. 진환자陳桓子가 비로소
제齊나라에서
강대强大해졌고,
注+환자桓子는 경중敬仲의 5세손 진무우陳無宇이다. 그 뒤
진陳나라가 망하였을 때
注+애공哀公 17년에 초楚나라가 다시 진陳을 멸滅하였다. 성자成子가
제齊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다.
注+성자成子는 진상陳常으로 경중敬仲의 8세손이다. 진공자陳公子완完은 제齊나라에서 예禮가 있었고 전傳에 그 시종始終을 자세히 말한 것이다. 복서卜筮는 성인聖人이 백성으로 하여금 를 결정하여,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그러므로 좌구명左丘明이 행사行事에 징험徵驗으로 드러난 것들을 들어 내세來世에 보여 주어, 군자君子들로 하여금 그 와 를 기억해 잊지 않도록 한 것이다. 다른 곳도 이와 같다.[부주]朱: 경중敬仲의 8세손世孫진성자陳成子항恒이 제간공齊簡公을 시해弑害하고서 제齊나라의 정권政權을 마음대로 행사하였으니, “누구도 그와 강대强大함을 다툴 수 없다.[莫之與京]”는 점사占辭와 맞았다. 진항陳恒의 증손曾孫전화田和가 제강공齊康公을 해상海上으로 옮기고 그 나라를 탈취奪取하였으니, 점사占辭에 이른바 “진나라가 쇠하여야 그 후손이 창성할 것이다.[陳衰此其昌乎]”는 말이 바로 이를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