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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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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二年 春 王正月 肆大眚注+無傳 赦有罪也 易稱赦過宥罪 書稱眚災肆赦 傳稱肆眚圍鄭 皆放赦罪人 蕩滌衆故 以新其心 有時而用之 非制所常 故書하다
[經]癸丑 葬我小君文姜注+無傳 反哭成喪 故稱小君하다
[經]陳人殺其公子御寇注+宣公太子也 陳人 惡其殺太子之名 故 以國討公子告하다
[經]夏 五月注+[附注] 林曰 無事以首時書者五十九 惟此書五月 昭十年 書十二月이라
[經]秋七月丙申 及齊高徯盟于防注+無傳 高徯 齊之貴卿 而與魯之微者盟 齊桓謙接諸侯 以崇覇業하다
[經]冬 公如齊納幣注+無傳 公不使卿而親 非禮也 母喪未再期而圖昏 二傳不見所譏 左氏又無傳 失禮明故하다
[傳]二十二年春 陳人殺其大子御寇注+傳稱太子 以實言하니 陳公子完與顓孫奔齊注+公子完 顓孫 皆御寇之黨하다
顓孫自齊來奔注+不書 非卿하다
齊侯使敬仲爲卿注+敬仲 陳公子完한대
辭曰 羇旅之臣注+羇 寄也 旅 客也 幸若獲宥하야 及於寬政注+宥 赦也하고 赦其不閑於敎訓하야 而免於罪戾하고 弛於負擔注+弛 去離也 君之惠也
所獲多矣 敢辱高位하야 以速官謗注+敢 不敢也이릿가 請以死告注+以死自誓하노이다
詩云 翹翹車乘으로 招我以弓이로다
豈不欲往이리오마는 畏我友朋注+逸詩也 翹翹 遠貌 古者聘士以弓 言雖貪顯名 懼爲朋友所譏責이라하니이다
使爲工正注+掌百工之官하다
[傳]飮桓公酒하니注+齊桓賢之 故就其家會 據主人之辭 故言飮桓公酒하야
公曰 以火繼之하라 辭曰 臣卜其晝 未卜其夜하니 不敢하노이다
君子曰
酒以成禮하고 不繼以淫 義也注+夜飮爲淫樂 以君成禮하고 弗納於淫 仁也라하다
懿氏卜妻敬仲注+懿氏 陳大夫 龜曰卜 [附注] 林曰 懿氏卜以女妻陳敬仲 其妻占之曰 吉注+懿氏妻이라
是謂 鳳凰于飛하니 和鳴鏘鏘注+雄曰鳳 雌曰凰 雄雌俱飛 相和而鳴鏘鏘然 猶敬仲夫妻相隨適齊 有聲譽이라
有嬀之後 將育于姜注+嬀 陳姓 姜 齊姓하야 五世其昌하야 並于正卿하고 八世之後 莫之與京注+京 大也 [附注] 林曰 此皆所占之辭이라
陳厲公 蔡出也注+姊妹之子 曰出
故蔡人殺五父而立之注+五父 陳佗也 殺陳佗 在桓六年하다 生敬仲하다
其少也 周史有以周易見陳侯者注+周大史也어늘 陳侯使筮之注+蓍曰筮한대 遇觀☴☷注+坤下巽上觀之否☰☷注+坤下乾上否 觀六四變而爲否하다
曰 是謂觀國之光이니 注+此周易觀卦六四爻辭 易之爲書 六爻皆有變象 又有 聖人隨其義而論之이라
此其代陳有國乎注+[附注] 林曰 此下乃周史釋爻辭之義 以爲陳爲舜後 作賓于周家者也 今敬仲得此卦 其當代陳有國乎ᄂ저
不在此 其在異國이오 非此其身이라 在其子孫이리니
遠而自他有耀者也注+[附注] 朱曰 言所謂觀國之光者 其光在他處遠地而有明耀 將往而得觀之也니이다
土也 巽은 風也 天也 風爲天於土上하니 山也注+巽變爲乾 故曰風爲天 自二至四 有艮象 艮爲山
有山之材而照之以天光하고 於是乎居土上注+山則材之所生 上有乾下有坤 故言居土上 照之以天光 [附注] 林曰 艮爲山 巽爲 故曰 有山之材 此以互體言之 巽變爲乾 故曰 照之以天光 此以變卦言 山之材 天之光 皆居坤之上 故曰 居土上 此以正卦變卦互體詳言之이라 故曰 觀國之光 利用賓于王注+四爲諸侯 變而之乾 有國朝王之象이요
庭實旅百하고 奉之以玉帛하니 天地之美具焉이라 故曰 利用賓于王注+艮爲門庭 乾爲金玉 坤爲布帛 諸侯朝王 陳贄幣之象 旅 陳也 百 言物備이라하니이다
猶有觀焉이라 故曰 其在後乎注+因觀文以博占 故言猶有觀 非在己之言 故知在子孫 [附注] 林曰 尙有觀感之義焉 此以卦義言 觀感而化 非朝夕所能 故曰在後 風行而著於土 故曰 其在異國乎注+[附注] 林曰 風 動物也 故行而著於土 此亦以正卦言 行而著於土 則不在本國明矣 故曰在異國ᄂ저라하니이다
若在異國이면 必姜姓也리라
大嶽之後也注+姜姓之先 爲堯四嶽 山嶽則配天이라
物莫能兩大하니 陳衰라야 此其昌乎注+變而象艮 故知當興於大嶽之後 得大嶽之權 則有配天之大功 故知陳必衰 [附注] 林曰 山嶽之大 則興雲降雨 有配天之功 此亦以艮乾變卦互體言 凡天下之物 莫能兩大 言敬仲與陳國莫能兩大ᄂ저
及陳之初亡也注+昭八年 楚滅陳 陳桓子始大於齊注+桓子 敬仲五世孫陳無宇하고 其後亡也注+哀十七年 楚復滅陳 成子得政注+成子 陳常也 敬仲八世孫 完有禮於齊 子孫世不忘德 德協於卜 故傳備言其終始 卜筮者 聖人所以定猶豫 決疑似 因生義敎者也 尙書洪範 通龜筮以同卿士之數 南蒯卜亂而遇元吉 惠伯答以忠信則可 臧會卜僭 遂獲其應 丘明故擧諸縣驗於行事者 以示來世 而君子志其善者遠者 他皆倣此 [附注] 朱曰 敬仲八世孫陳成子 名恒 弑簡公而專齊政 應莫之與京之兆也 恒之曾孫田和 遷齊康公於海上而簒其國 所謂陳衰此其昌乎者 謂此也하다


22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注+이 없다. 있는 자를 사면赦免한 것이다. 《주역周易》 〈해괘解卦상사象辭〉의 “사과유죄赦過宥罪”(허물은 용서하고 죄는 관대寬大하게 처벌處罰한다)와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생재사사眚災肆赦”(실수로 저지른 잘못은 용서한다)와 양공襄公 9년 의 “사생위정赦眚圍鄭”(군사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나라를 포위하게 하였다.)은 모두 죄인罪人을 용서해 방면放免하고 모든 (罪過)를 씻어주어 그들이 마음을 새롭게 가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쩌다가 한 번 시행할 수는 있는 것이지 제도制度정상正常은 아니다. 그러므로 에 기록한 것이다.
계축일에 우리 소군小君문강文姜을 장사지냈다.注+이 없다.
진인陳人이 그 공자公子어구御寇를 죽였다.注+진선공陳宣公태자太子이다. 진인陳人(陳宣公)은 자기가 태자太子를 죽였다고 소문나는 것이 싫었다. 그러므로 군부君父를 칭하지 않고 국인國人공자公子를 죽인 것으로 나라에 통고한 것이다.
여름 5월이다.注+[부주]林: 기사記事가 없는데도 사시四時수월首月을 기록한 것은 《춘추春秋》에 모두 59번 보이지만, 5월과 12월을 기록한 것은 오직 이곳과 소공昭公 10년뿐이다.
가을 7월 병신일에 고혜高徯에서 맹약盟約하였다.注+이 없다. 고혜高徯나라의 존귀한 인데도 나라의 미천한 자와 맹약盟約한 것은 제환공齊桓公이 겸손하게 제후諸侯들과 접촉하여 패업覇業을 드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겨울에 장공莊公나라로 가서 납폐納幣하였다.注+이 없다. 장공莊公을 시키지 않고 직접 납폐納幣한 것은 가 아니다. 모상母喪재기再期(大祥)도 지내기 전에 혼인婚姻하기를 도모圖謀하였는데도 이전二傳(《公羊傳》‧《곡량전穀梁傳》)에 비난한 말이 보이지 않고, 좌씨左氏을 달지 않았으니, 이는 실례失禮가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22년 봄에 진인陳人이 그 태자太子어구御寇를 죽이니注+에 ‘태자太子’라고 칭한 것은 진실에 의거해 말한 것이다. 공자公子전손顓孫과 함께 나라로 도망하였다.注+공자公子전손顓孫은 모두 어구御寇이다.
전손顓孫은 또 나라에서 나라로 도망해 왔다.注+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후齊侯경중敬仲으로 삼으려 하니,注+경중敬仲공자公子이다.
사양해 말하기를 “나그네로 타국他國에 붙어 사는 注+는 붙어 사는 것이고, 는 나그네이다. 다행히 용서를 받아 너그러운 정치政治를 하는 나라에 살 수 있게 되었고,注+는 용서이다.교훈敎訓을 익히지 못한 을 용서하시고 죄과罪過사면赦免하시어 부담負擔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注+는 벗어나는 것이다. 바로 임금님의 은혜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얻은 것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감히 높은 지위를 욕되게 하여 관리官吏들의 비난非難을 부르겠습니까?注+은 감히 하지 못함이다. 죽음으로써 합니다.注+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서盟誓한 것이다.
에 ‘를 타고 와서 활로 나를 부르는구나.
어찌 가고 싶지 안으랴만 벗들의 비난이 두려워서이다.’라고 하였습니다.”고 하였다.注+일시逸詩이다. 교교翹翹는 멀리에서 오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활로 선비를 초빙招聘하였다. 비록 명성名聲을 드러내기를 탐하지만 벗들의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자 제환공齊桓公은 그를 공정工正으로 삼았다.注+백공百工(百官)을 관리管理하는 관직官職이다.
경중敬仲주연酒宴을 베풀어 제환공齊桓公을 접대하니 환공桓公은 매우 즐거워하였다.注+제환공齊桓公경중敬仲을 훌륭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의 집의 연회宴會에 간 것이다. 주인主人입장立場에서 말하였기 때문에 “음환공주飮桓公酒”(환공에게 술을 접대하다)라 한 것이다.
환공桓公이 “불을 밝히고 계속 마시자.”고 하니, 경중敬仲이 사양하기를 “은 낮에 모시는 일은 을 쳤지만 밤까지 모실 것은 점을 치지 않았으니, 감히 을 받들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술로써 를 이루고 지나치게 계속하지 않은 것은 이고,注+밤까지 마시면 지나치게 즐기는 것이 된다. 임금을 모시고서 를 이루고 지나친 데 들지 않게 한 것은 이다.”
당초에 의씨懿氏경중敬仲을 사위로 삼고자 하여 길흉吉凶을 점칠 적에注+의씨懿氏나라 대부이다. 거북점을 ‘’이라 한다.[부주]林: 의씨懿氏진경중陳敬仲을 사위로 삼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 몰라 거북점을 친 것이다. 그의 아내가 을 치고서 말하기를 “하다.注+의씨懿氏의 아내이다.
점괘占卦는 ‘이 짝지어 날으니 서로 주고받으며 우는 소리가 해맑도다.注+수놈을 ‘’이라 하고, 암놈을 ‘’이라 한다. 암수가 함께 날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우는 소리가 해맑은 것이, 경중敬仲부부夫婦가 서로 어울려 나라로 가서 명성名聲을 얻게 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규씨嬀氏후손後孫강성姜姓의 나라에서 양육養育되어注+나라의 이고, 나라의 이다. 5 뒤에는 번창하여 관위官位정경正卿대등對等해지고, 8대 뒤에는 누구도 그와 강대强大함을 다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注+이다.[부주]林: 이것은 모두 점사占辭이다.
진려공陳厲公나라 여자의 소생所生이다.注+자매姊妹출가出嫁하여 낳은 아들을 ‘’이라 한다.
그러므로 채인蔡人오보五父를 죽이고 그를 세웠는데,注+오보五父진타陳佗이다. 진타陳佗를 죽인 일은 환공桓公 6년에 보인다. 뒤에 경중敬仲을 낳았다.
경중이 어렸을 때 주사周史가 《주역周易》을 가지고 와서 진후陳侯를 뵙자,注+나라 태사太史이다. 진후는 그에게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였는데,注+시초점蓍草占을 ‘’라 한다. 관괘觀卦(☴☷)注+곤괘坤卦가 아래 있고 손괘巽卦가 위에 있는 것이 관괘觀卦이다.비괘否卦(☰☷)注+곤괘坤卦가 아래 있고 건괘乾卦가 위에 있는 것이 비괘否卦이니, 관괘觀卦육사효六四爻가 변하여 비괘否卦가 된 것이다.로 변한 를 만났다.
태사太史가 풀이하기를 “이 는 ‘왕국王國의 빛을 보는 것이니 군왕君王빈객賓客이 되는 것이 이롭다.注+이 말은 《주역周易관괘觀卦육사효사六四爻辭이다. 《주역周易》의 글은, 육효六爻에 모두 변상變象(변화하는 형상形象)이 있고 또 호체互體가 있으므로, 성인聖人이 그 뜻에 따라 논한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나라를 대신하여 나라를 갖게 될 것입니다.注+[부주]林: 이하의 말은 주사周史효사爻辭의 뜻을 해석하여, ‘나라는 의 후손으로 나라의 빈객賓客이 된 나라인데, 지금 경중敬仲이 이 를 얻었으니, 그가 나라를 대신해 나라를 갖게 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국異國에서 있을 것이고, 이 사람에게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빛은 멀리 있는 다른 곳에서 비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注+ [부주]朱: 이른바 ‘왕국王國의 빛을 본다’는 것은 그 빛은 멀리 있는 다른 곳에서 밝게 빛나는 것이니, 그곳으로 가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고 이고 인데, 토상土上에서 이 되었으니 입니다.注+이 변하여 이 되었기 때문에 이 되었다고 한 것이다. 이효二爻에서 사효四爻까지는 간괘艮卦이 있는데, 이 된다.
에는 재목이 있는데, 천광天光이 이를 비추고 토지土地의 위에 있으므로注+재목材木이 생산되는 곳인데, 위에는 이 있고 아래는 이 있기 때문에 토지土地의 위에 있으면서 천광天光의 비춤을 받는다고 말한 것이다.[부주]林: 이 되고 이 되기 때문에 ‘유산지재有山之材’라고 하였으니 이는 호괘互卦로 말한 것이고, 이 변하여 이 되었기 때문에 ‘조지이천광照之以天光’이라 하였으니 이는 변괘變卦로 말한 것이고, 재목材木과 하늘의 빛이 모두 위에 있기 때문에 ‘거토상居土上’이라 하였으니 이는 정괘正卦변괘變卦호체互體로 자세히 말한 것이다. 관국지광觀國之光이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고 한 것이고,注+사효四爻제후諸侯를 뜻하는데 그 가 변하여 건괘乾卦가 되었으니, 국가를 소유한 제후諸侯천자天子에게 조현朝見하는 이다.
뜰에는 온갖 예폐禮幣를 벌여 놓고 또 옥백玉帛진헌進獻하니, 천지天地의 아름다운 물건이 모두 구비具備되었으므로 ‘이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고 한 것입니다.注+문정門庭, 금옥金玉, 포백布帛이 되니, 제후諸侯천자天子에게 조현朝見할 때 폐백幣帛을 벌여 놓는 이다. 는 벌여 놓음이다. 은 모든 물건이 구비具備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관자觀者의 뜻이 있으므로 ‘후손後孫에게 있을 것이다.’고 한 것이고,注+관괘觀卦의 글을 인하여 널리 추측推測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유관猶有觀’이라 하였으니, 이는 나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손子孫에게 있을 것을 안 것이다.[부주]林: 오히려 관감觀感(보고서 감동함)의 뜻이 있다는 말이니, 이는 의 뜻으로 말한 것이다. 보고서 감동하여 변화하는 것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후손後孫에 있다고 한 것이다. 바람은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토상土上낙착落着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있을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注+[부주]林: 은 움직이는 물건이기 때문에 돌아다니다가 끝내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니, 이 또한 정괘正卦로써 말한 것이다. 돌아다니다가 땅으로 떨어진다면 본국本國에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하므로 이국異國에서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만약 이국異國에서 있다면 반드시 강성姜姓의 나라일 것입니다.
강성姜姓태악太嶽의 후손이니注+강성姜姓선조先祖사악四嶽(四方 제후諸侯관장管掌관명官名)이었다. 산악山嶽은 그 고대高大함이 하늘과 짝할 만합니다.
사물의 이치는 두 개의 사물이 동시에 강대强大할 수 없는 것이니, 나라가 하여야 이 사람의 후손이 창성昌盛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注+변하여 간괘艮卦이 되었기 때문에 태악太嶽후손後孫 나라에서 하리라는 것을 안 것이고, 태악太嶽권한權限을 얻는다면 하늘과 짝할 만한 대공大功이 있기 때문에 나라가 반드시 하리라는 것을 안 것이다.[부주]林: 큰 산악山嶽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하늘과 짝할 만한 이 있다는 뜻이니, 이 또한 간괘艮卦건괘乾卦변괘變卦호체互體로 말한 것이다. 천하天下의 모든 물건은 둘이 동시에 강대强大할 수 없다는 것은 경중敬仲나라 둘이 동시에 강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라가 처음 망하였을 때에 미쳐注+소공昭公 8년에 나라가 하였다. 진환자陳桓子가 비로소 나라에서 강대强大해졌고,注+환자桓子경중敬仲의 5세손 진무우陳無宇이다. 그 뒤 나라가 망하였을 때注+애공哀公 17년에 나라가 다시 하였다. 성자成子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다.注+성자成子진상陳常으로 경중敬仲의 8세손이다. 진공자陳公子나라에서 가 있었고 에 그 시종始終을 자세히 말한 것이다. 복서卜筮성인聖人이 백성으로 하여금 를 결정하여,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그러므로 좌구명左丘明행사行事징험徵驗으로 드러난 것들을 들어 내세來世에 보여 주어, 군자君子들로 하여금 그 를 기억해 잊지 않도록 한 것이다. 다른 곳도 이와 같다.[부주]朱: 경중敬仲의 8세손世孫진성자陳成子제간공齊簡公시해弑害하고서 나라의 정권政權을 마음대로 행사하였으니, “누구도 그와 강대强大함을 다툴 수 없다.[莫之與京]”는 점사占辭와 맞았다. 진항陳恒증손曾孫전화田和제강공齊康公해상海上으로 옮기고 그 나라를 탈취奪取하였으니, 점사占辭에 이른바 “진나라가 쇠하여야 그 후손이 창성할 것이다.[陳衰此其昌乎]”는 말이 바로 이를 이름이다.


역주
역주1 反哭하고……것이다. : 隱公 3년 역주 참조
역주2 不稱君父 : 君父를 칭하지 않았다는 것은 ‘陳宣公殺其太子御寇’라고 칭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역주3 納幣 : 納幣는 婚禮의 六禮 중 하나이다. 六禮는, 中媒의 말을 채택해서 婚姻을 허락해 준 데 대해 감사하는 뜻을 여자 측에 전하는 納采, 여자의 이름을 묻는 問名, 남자 측에서 占을 치고 吉함을 通報하는 納吉, 남자 측에서 禮物을 보내는 納幣, 남자 측에서 吉日을 잡아 여자 측에 通報하는 請期, 신랑이 직접 가서 신부를 맞이하는 親迎이다.
역주4 높은 수레 : ‘翹翹’를 杜氏는 遠貌로 해석하였으나, 遠貌로 쓰인 典據가 없고, 《詩經》 〈周南漢廣〉편이나 《詩經》 〈豳風鴟鴞〉편에 ‘危’ 또는 ‘秀’의 뜻으로 쓰여 高의 뜻이 있으므로 高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5 利用賓于王 : 楊伯峻은 ‘利用賓于王’ 5字를 衍文이라 하였다. 下文에 ‘利用賓于王’에 대한 해석이 따로 있는 점으로 보아 이것은 ‘觀國之光’만을 해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역주6 互體 : 互卦와 같은 말로 上下의 두 卦를 서로 섞어 象을 취하여 새로운 卦를 만든 것이다. 이를테면 觀卦의 2爻에서 4爻까지를 취하여 艮卦로 만들고, 3爻에서 5효까지를 취하면 坤卦로 만드는 類이다.
역주7 : 대본에는 ‘水’로 되어 있으나 《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風’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 대본에는 ‘傳’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陳’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자손들도…… 때문에 : 惡을 행하면 吉한 占卦를 만났어도 凶으로 변하는 것인데, 敬仲의 자손은 대대로 德을 쌓았기 때문에 경중의 占辭대로 들어맞았다는 말이다.
역주10 猶豫와 疑似 : ‘猶豫’는 贊成과 반대가 팽팽하여 결정할 수 없는 일이고, ‘疑似’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다. 《禮記》 〈曲禮上〉에는 ‘疑似’가 ‘嫌疑’로 되어 있다.
역주11 義를……것이다 : 生義의 生은 爲(하다)의 뜻이다. 《文選》 揚雄의 〈解嘲〉에 “不生則已生則上尊人君”(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다면 위로 임금을 높인다)고 하였는데, 그 註釋에 “生은 爲이다.”고 하였다.
역주12 거북점과……동일하다 : 이 말은 洪範에 “너에게 크게 의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먼저 네 마음과 상의하고 卿士와 상의하고 庶人과 상의한 뒤에 卜筮에 물으라. 너의 생각도 贊成이고 龜와 筮의 占卦도 찬성이고 卿士와 庶民도 찬성이면 이것을 大同이라 한다.”는 말의 뜻을 한 데 뭉뚱그려 말한 것이다.
역주13 南蒯(남괴)가……대답하였고, : 昭公 12년에 보임.
역주14 臧會가……있었다. : 昭公 25년에 보임.
역주15 善者 : 사람들에게 德行을 닦고 龜筮를 공경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역주16 遠者 : 大綱(要点)을 들어 사람들에게 善을 권장하는 長久한 道이고 臨時의 應驗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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