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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5)

춘추좌씨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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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七年春 齊侯使慶封來聘注+景公卽位 通嗣君也하다
27년 봄에 제후齊侯경봉慶封을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注+제경공齊景公즉위卽位하고서 자기가 사군嗣君이 된 것을 통고通告한 것이다.
[經]夏 叔孫豹會晉趙武楚屈建蔡公孫歸生衛石惡陳孔奐鄭良霄許人曹人于宋注+案傳 會者十四國 齊秦不交相見 邾滕爲私屬 皆不與盟 宋爲主人 地於宋 則與盟可知 故經唯序九國大夫 楚先晉歃 而書先晉 貴信也 陳于晉會 常在衛上 孔奐非上卿 故在石惡下 [附注] 林曰 晉楚始同主夏盟也 以諸侯分爲晉楚之從而交相見於是始 則是南北二伯也 天下之大變也 於湨梁而無君臣之分 於宋而無夷夏之辨 하다
여름에 숙손표叔孫豹나라 조무趙武나라 굴건屈建나라 공손公孫귀생歸生나라 석악石惡나라 공환孔奐나라 양소良霄허인許人조인曹人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전문傳文에 의하면 회합會合한 나라가 14이었으나, 나라와 나라는 국교國交가 없어 서로 회견會見하지 않았고, 나라와 나라는 남의 속국屬國이었기 때문에 모두 맹약盟約에 참가하지 않았다. 나라는 주인主人이 되었으니, 나라 땅에서 회맹會盟하였다면 나라도 맹약盟約에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에 오직 아홉 나라의 대부大夫만을 서차序次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나라 대부大夫가 먼저 삽혈歃血하였는데도 나라 대부大夫를 먼저 말한 것은 나라가 신의信義를 지킨 것을 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라가 주재主宰하는 회맹會盟나라가 항상 나라 위에 있었으나, 이번에는 공환孔奐상경上卿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 석악石惡의 아래에 기재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와 나라가 비로소 함께 중하中夏회맹會盟주재主宰한 것이다. 나라와 나라의 종속국從屬國으로 나뉜 제후諸侯들이 이때 비로소 서로 나라와 나라에 조현朝見한 것은 남북의 두 후백侯伯(霸者)을 알현謁見한 것이니 천하天下의 큰 변고變故이다. 격량湨梁회맹會盟(襄公 6년)에서는 군신君臣분수分數를 무시하였고, 회맹會盟에서는 이하夷夏구분區分을 무시하였으니, 소공昭公정공定公애공哀公의 《춘추春秋》가 장차 나라와 나라의 일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經]衛殺其大夫寗喜注+寗喜弑剽立衎 衎今雖不以弑剽致討 於大義宜追討之 故經以國討爲文書名也 書在宋會下 從赴 하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영희寗喜를 죽였다.注+영희寗喜(殤公)를 시해弑害하고 (獻公)을 세웠으니, 이 지금은 비록 시해弑害를 물어 영희寗喜토벌討伐하지 않았으나, 대의大義에 있어서는 추토追討(그 죄를 끝까지 캐어 처벌함)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국토國討(國家가 토벌討伐함)한 것으로 말을 만들어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회맹會盟 아래에 이 일을 기록한 것은 부고赴告를 따른 것이다.
[經]衛侯之弟鱄出奔晉注+衛侯始者云政由寗氏祭則寡人 而今復患其專 緩答免餘 旣負其前信 且不能友于賢弟 使至出奔 故書弟以罪兄하다
위후衛侯의 아우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위후衛侯가 처음에는 “국정國政영씨寗氏주재主宰하고 제사祭祀과인寡人주재主宰하겠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다시 영씨寗氏전횡專橫을 근심하여 면여免餘에게 느슨한 말로 대답[緩答]하였으니, 이미 앞서 한 약속을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어진 아우와 우애友愛하지 못하여 출분出奔하게까지 하였으므로 ‘아우’라고 기록하여 에게 를 돌린 것이다.
[經]秋七月辛巳 豹及諸侯之大夫盟于宋注+夏會之大夫也 豹不倚順 以顯 而辨小是以自從 故以違命貶之 釋例論之備矣 [附注] 林曰 於是晉楚爭先 乃先楚人 則其書先晉何 春秋不以夷狄先中國也 自宋以來 晉不專主盟矣 虢之盟 讀舊書 加于牲上而已 至鄟陵 則齊諸侯 至皐鼬 則魯及諸侯 晉之不足以主夏盟 自宋始 宋之盟 趙武之偷也 孔子曰 庭燎之百 自齊桓公始也 大夫之奏肆夏 自趙文子始也 此王伯之所以興하다
가을 7월 신사일辛巳日제후諸侯대부大夫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여름에 회합會合대부大夫들이다. 순리順理(邾‧를 따르는 것)에 따라 한 임금의 을 드러내지 않고 소시小是(國家의 자존심自尊心을 세워 를 따른 것)를 따져 자기의 생각대로 하고 임금의 을 어겼기 때문에 〈‘숙손叔孫’이란 을 버리고 ‘’라고만 기록하여〉 그를 폄하貶下한 것이다. 《춘추석례春秋釋例》에 자세히 논하였다. [부주]林: 이때 나라와 나라가 먼저 삽혈歃血하기를 다투어, 초인楚人이 먼저 삽혈歃血하였는데, 나라를 먼저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춘추春秋》에 이적夷狄중국中國보다 먼저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맹會盟 이후로는 나라가 단독으로 회맹會盟주관主管하지 못하였다. 회맹會盟(昭公 원년元年)에는 구서舊書(宋의 회맹會盟 때 사용한 맹서盟書)를 읽고서 그 맹서盟書희생犧牲 위에 올려놓았을 뿐이고, 전릉鄟陵회맹會盟(昭公 26년)에는 나라가 제후諸侯회맹會盟주관主管하였고, 고유皐鼬회맹會盟(定公 4년)에는 나라와 제후諸侯회맹會盟주관主管하였다. 나라가 중하中夏회맹會盟주관主管하지 못하게 된 것이 회맹會盟으로부터 비롯하였는데, 회맹會盟에서 〈나라가 먼저 삽혈歃血하게 한 것은〉 조무趙武태만怠慢[偸]했기 때문이다. 공자孔子께서 “제후諸侯가 1백 개의 정료庭燎(횃불)를 설치하는 것은 제환공齊桓公으로부터 비롯하였고, 대부大夫가 〈사하肆夏〉를 연주演奏하는 것은 조문자趙文子로부터 비롯하였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천자天子제후諸侯(侯伯)의 권위權威쇠퇴衰頹한 원인이다.
[經]冬十有二月乙亥朔 日有食之注+今長曆推十一月朔 非十二月 傳曰辰在申 再失閏 若是十二月 則爲三失閏 故知經誤 하다
겨울 12월 초하루 을해일乙亥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지금 장력長曆으로 추산推算하면 11월 삭일朔日이고 12월 삭일朔日이 아니다. 에 “두병斗柄(辰)이 신방申方을 가리켰으니 윤월閏月을 두 번 빠뜨린 것이다.”고 하였으니, 만약 12월이라면 윤월閏月을 세 번 빠뜨린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傳]二十七年春 胥梁帶使諸喪邑者具車徒以受地호되 必周注+諸喪邑 謂齊魯宋也 周 密也 必密來 勿以受地爲名하고 使烏餘具車徒以受封注+烏餘以地來 故詐許封之한대 烏餘以其衆出注+出受封也 [附注] 林曰 烏餘信之 以其衆出 受封地이어늘
27년 봄에 서량대胥梁帶을 잃은 제후諸侯들에게 병거兵車보졸步卒을 거느리고 와서 잃었던 땅을 돌려받게 하되 반드시 은밀히 움직이게 하고注+을 잃은 제후諸侯나라 나라 나라이다. 이니 반드시 은밀히 오고 땅을 돌려받는 것으로 명분名分을 삼지 말게 한 것이다. , 오여烏餘에게도 병거兵車보졸步卒을 거느리고 와서 봉지封地를 받게 하자注+오여烏餘가 땅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땅을 해 주겠다고 거짓 허락한 것이다. , 오여烏餘가 그 무리를 거느리고 출동出動하였다.注+봉지封地를 받기 위해 나온 것이다. [부주]林: 오여烏餘서량대胥梁帶의 말을 믿고서 그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봉지封地를 받으려 한 것이다.
使諸侯僞效烏餘之封者注+效 致也 使齊魯宋僞若致邑封烏餘者하야 而遂執之하고 盡獲之注+皆獲其徒衆 하고서 皆取其邑而歸諸侯하니 諸侯是以睦於晉注+傳言趙文子賢 故平公雖失政 而諸侯猶睦하다
그러자 서량대胥梁帶제후諸侯들을 오여烏餘에게 봉지封地를 바치는 자로 위장僞裝시켜注+(바침)이니, 의 군대를 마치 을 바치고서 오여烏餘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위장僞裝시킨 것이다. 드디어 오여烏餘를 잡고 그 무리들을 다 사로잡고서注+그 무리를 다 사로잡은 것이다. 을 모두 회수回收하여 제후諸侯에게 돌려주니 제후諸侯들은 이로 인해 나라와 화목和睦하였다.注+전문傳文조문자趙文子가 어질었기 때문에 진평공晉平公이 비록 정치政治를 잘못하였으나 제후諸侯는 오히려 나라와 화목和睦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傳]齊慶封來聘하다
나라 경봉慶封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其車美하니 孟孫謂叔孫曰 慶季之車 不亦美乎注+季 慶封字 叔孫曰 豹聞之컨대 服美不稱이면 必以惡終이라하니 美車何爲
그가 타고 온 수레가 매우 아름다우니, 맹손孟孫숙손叔孫에게 말하기를 “경계慶季의 수레가 아름답지 않은가?注+경봉慶封이다. ”라고 하자, 숙손叔孫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거복車服이 아름다워 그 신분身分에 맞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으로 끝난다고 하니, 아름다운 수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叔孫與慶封食 不敬注+[附注] 林曰 慶封不敬이어늘 爲賦相鼠로되 亦不知也注+相鼠 詩鄘風 曰 相鼠有皮 人而無儀 人而無儀 不死何爲 慶封不知此詩爲己 言其闇甚 爲明年慶封來奔傳 하다
숙손叔孫경봉慶封식사食事를 하는데 경봉慶封공경恭敬하지 않자注+[부주]林: 경봉慶封공경恭敬하지 않은 것이다. , 숙손叔孫상서시相鼠詩를 읊었는데도 경봉慶封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注+상서相鼠〉는 《시경詩經》 〈용풍鄘風〉의 편명篇名이다. 그 에 “쥐를 보면 가죽이 있는데 사람으로서 위의威儀가 없을쏜가? 사람으로서 위의威儀가 없으면 죽지 않고 무엇 하리.”라고 하였다. 경봉慶封이 자기의 불경不敬 때문에 이 를 읊는 줄을 몰랐다는 것은 그가 매우 혼암昏闇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명년明年경봉慶封나라로 도망해 온 의 배경이다.
[傳]衛寗喜專注+[附注] 林曰 衛寗喜旣弑剽納衎 遂專國政하니 公患之하다
나라 영희寗喜국정國政전단專斷하니注+[부주]林: 나라 영희寗喜(殤公)를 시해弑害한 뒤에 (獻公)을 받아들이고서 드디어 국정國政전단專斷하였다.위헌공衛獻公이 이를 근심하였다.
公孫免餘請殺之注+免餘 衛大夫한대 公曰 微寗子 不及此注+及此 反國也리라
공손公孫면여免餘영희寗喜를 죽이기를 청하자注+면여免餘나라 대부大夫이다. , 헌공獻公이 말하기를 “영자寗子가 아니었으면 내가 돌아와서 복위復位하지 못했을 것이다.注+급차及此는 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吾與之言矣注+言政由寗氏
내가 이미 그에게 정권政權을 맡기겠다고 말하였다.注+국정國政영씨寗氏주재主宰하라고 한 말이다.
事未可知注+恐伐之未必勝 祗成惡名이니 止也注+祗 適也 하라
저를 죽이는 일은 성패成敗를 알 수 없고注+영희寗喜토벌討伐하더라도 승리勝利하지 못할까 두렵다는 말이다. , 실패失敗하면 오명汚名만 쓸 뿐이니 그만두라.注+(다만)이다. ”고 하였다.
對曰 臣殺之리니 君勿與知하소서 乃與公孫無地公孫臣謀注+二公孫 衛大夫 하야 使攻寗氏로되 弗克하고 皆死注+無地及臣皆死하다
면여免餘가 대답하기를 “이 그를 죽일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간여하지 마소서.”라고 하고서, 공손公孫무지無地공손公孫모의謀議하여注+공손公孫나라 대부大夫이다. 영씨寗氏공격攻擊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注+공손公孫무지無地공손公孫이 모두 죽은 것이다.
公曰 臣也無罪
그러자 헌공獻公은 “공손公孫가 없다.
父子死余矣注+獻公出時 公孫臣之父爲孫氏所殺로다
부자父子가 모두 나를 위해 죽었구나.注+헌공獻公출망出亡할 때 공손公孫의 아비가 손씨孫氏에게 살해殺害되었다. ”고 하였다.
免餘復攻寗氏하야 殺寗喜及右宰榖하야 尸諸朝注+榖不書 非卿也 [附注] 林曰 右宰榖 寗喜之黨하다
여름에 공손公孫면여免餘가 다시 영씨寗氏를 공격하여 영희寗喜우재右宰을 죽여 그 시신屍身조정朝廷에 늘어놓았다.注+우재右宰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주]林: 우재右宰영희寗喜이다.
石惡將會宋之盟注+[附注] 林曰 石惡 寗喜之黨하야 受命而出注+[附注] 林曰 旣受命而遇亂이라가 衣其尸하고 注+[附注] 林曰 衣寗喜之尸 枕尸於股하다
석악石惡나라의 회맹會盟참가參加하려고注+[부주]林: 석악石惡영희寗喜이다. 을 받고 조정朝廷을 나오다가注+[부주]林: 석악石惡을 받은 뒤에 영희寗喜화란禍亂을 당한 것이다. 영희寗喜시신屍身에 옷을 입히고 시신屍身의 다리에 베고서 엎드려 하였다.注+[부주]林: 영희寗喜시신屍身에 옷을 입히고서 시신屍身의 머리를 자기의 다리를 베게 한 것이다.
欲斂以亡注+[附注] 林曰 欲斂其尸而出奔이나 懼不免하야 且曰受命矣注+[附注] 林曰 受命出使矣라하고 乃行注+行會于宋 爲明年石惡奔傳하다
석악石惡은 그 시신屍身염습斂襲하고서 도망가고자 하였으나注+[부주]林: 그 시신屍身을 거두어 염습斂襲하고서 출분出奔하려 한 것이다. 를 면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을 받았다注+[부주]林: 임금의 을 받고 사신使臣으로 나아간다고 말한 것이다. ’고 하고서 즉시 나라로 갔다.注+나라로 가서 회맹會盟한 것이다. 명년明年석악石惡출분出奔의 배경이다.
子鮮曰 逐我者出注+謂孫林父하고 納我者死注+謂寗喜하니 賞罰無章이라
자선子鮮이 말하기를 “우리를 축출逐出한 자(孫林父)는 살아서 출분出奔하고注+손임보孫林父를 이른다., 우리를 받아들인 자(寗喜)는 죽임을 당하였으니注+영희寗喜를 이른다. , 상벌賞罰이 없다.
何以沮勸注+[附注] 林曰 何以沮惡而勸善 이리오
어떻게 을 막고 권장勸獎할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무엇으로써 을 막고 권장勸獎하겠느냐는 말이다.
君失其信하고 而國無刑하니 不亦難乎注+難以治國
임금이 신의信義를 잃고 나라에 형벌刑罰이 없으니 나라를 다스리기 어렵지 않겠는가.注+나라를 다스리기 어렵다는 말이다.
且鱄實使之注+使寗喜納君라하고 遂出奔晉하다
사실은 내가 영희寗喜에게 임금을 복위復位시키도록 시킨 것이다.注+영희寗喜에게 임금을 받아들이도록 시켰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드디어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公使止之 不可注+不肯留하다
헌공獻公이 사람을 보내어 만류挽留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注+머물려 하지 않은 것이다.
及河 又使止之하니 止使者而盟於河注+誓不還하고 託於木門注+木門 晉邑하야 不鄕衛國而坐注+怨之深也하다
하수河水에 이르렀을 때 헌공獻公이 또 사람을 보내어 만류挽留하자, 자선子鮮은 그 사자使者저지沮止하고서 하수河水맹서盟誓하고는注+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나라 목문木門우거寓居하면서注+목문木門나라 이다. 나라를 향해 앉지도 않았다.注+원한怨恨이 깊기 때문이다.
木門大夫勸之仕한대 不可曰 注+從之 謂治其事也 事治則明己出欲仕 無所自愬
목문木門대부大夫가 그에게 출사出仕를 권하자, 자선子鮮은 반대하며 말하기를 “벼슬아치로서 맡은 직무職務폐기廢棄하면 가 되고, 직무職務를 잘 처리處理하면 내가 출분出奔한 것이 임금 때문이라는 것을 세상에 밝게 드러내는 것이니 장차 누구에게 호소하겠는가?注+종지從之는 맡은 일을 잘 다스림을 이른다. 일이 잘 다스려지면 자기가 출분出奔한 것이 벼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어서 자기의 진심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말이다.
吾不可以立於人之朝矣라하고 終身不仕注+自誓不仕終身하다
나는 남의 조정에 벼슬하지 않을 것이다.”고 하고서, 종신終身토록 벼슬하지 않았다.注+종신終身토록 벼슬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서盟誓한 것이다.
公喪之終身注+稅卽繐也 喪服 繐縗裳 縷細而希 非五服之常 本無月數 痛愍子鮮 故特爲此服 此服無月數 而獻公尋薨 故言終身 하다
〈그가 죽자〉 헌공獻公은 그를 위해 죽을 때까지 세복稅服을 입었다.注+는 바로 (올이 가늘고 올과 올 사이가 성긴 베)이다. 《의례儀禮》 〈상복喪服〉에 “세포繐布로 지은 최상縗裳(上衣下裳)은 올이 가늘고 올과 올 사이가 성기다.”고 하였으니 오복五服정상복正常服이 아니고 본래 해진 월수月數도 없다. 헌공獻公자선子鮮의 죽음을 비통悲痛해하고 가여워했기 때문에 특별히 이 을 입은 것이다. 이 은 본래 정해진 월수月數가 없는데 헌공獻公이 이내 하였기 때문에 ‘종신終身’이라고 한 것이다.
公與免餘邑六十한대 辭曰 唯卿備百邑이어늘 니이다
헌공獻公공손公孫면여免餘에게 60을 주자 사양하기를 “오직 만이 1백 개의 구유具有(所有)할 수 있는데, 은 이미 60개의 을 가졌습니다.
下有上祿 亂也注+ 非四井之邑 論語稱千室 又云十室 明通稱 [附注] 林曰 唯卿祿邑滿百 臣滿六十邑矣 臣弗敢聞이로이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祿향유享有하는 것은 을 부르는 것이니注+일승一乘이고 사정四井이 아니다. 《논어論語》에 ‘천실千室’로 칭하기도 하고 또 ‘십실十室’로 이르기도 하여, 천실千室십실十室통칭通稱임을 밝혔다. [부주]林: 오직 녹읍祿邑만이 1백 을 채우니, 은 60으로 만족하다는 말이다. 신은 감히 을 들을 수 없습니다.
且寗子唯多邑故死하니 臣懼死之速及也니이다
그리고 영자寗子이 많았기 때문에 죽었으니 은 죽음이 빨리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公固與之한대 受其半하다
헌공獻公이 굳이 주자 면여免餘는 그 만을 받았다.
以爲少師하다
위후衛侯는 그를 소사少師로 삼았다.
公使爲卿한대 辭曰 大叔儀不貳注+[附注] 林曰 事君無貳心 하야 能贊大事注+贊 佐也 하니 君其命之하소서 乃使文子爲卿注+文子 大叔儀하다
얼마 뒤에 헌공獻公이 그를 으로 삼으려 하자, 사양하기를 “태숙의太叔儀는 두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이어서注+[부주]林: 임금을 섬김에 있어 두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국가의 대사大事를 도울 수 있으니注+은 돕는 것이다. 임금님께서는 그를 임명任命하소서.”라고 하니, 헌공獻公은 이에 문자文子으로 삼았다.注+문자文子태숙의太叔儀이다.
[傳]宋向戌善於趙文子하고 又善於令尹子木하다
나라 상술向戌나라 조문자趙文子(趙武)와도 사이가 좋고 또 나라 영윤令尹자목子木과도 사이가 좋았다.
欲弭諸侯之兵以爲名注+欲獲息民之名 하야 如晉告趙孟하니 趙孟謀於諸大夫하다
상술向戌제후간諸侯間전쟁戰爭종식終熄시켜 자신의 명성名聲을 높이고자 하여注+백성을 안식安息시켰다는 명성名聲을 얻고자 한 것이다. , 나라에 가서 조맹趙孟(趙武)에게 이런 뜻을 고하니 조맹趙孟대부大夫들과 이 문제를 상의하였다.
韓宣子曰 兵 民之殘也 財用之蠧注+蠧 害物之蟲 小國之大菑也
한선자韓宣子가 말하기를 “전쟁戰爭은 백성을 잔해殘害하고 재용財用소모消耗하니注+(좀)는 물건을 해치는 벌레이다. 소국小國의 큰 재앙災殃입니다.
將或弭之 雖曰라도 必將許之注+言雖知兵不得久弭 今不可不許 니라
누군가 전쟁戰爭종식終熄시키려 한다고 하면 비록 가능성可能性이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허락해야 합니다.注+비록 전쟁戰爭이 오래도록 종식終熄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지금 허락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弗許라가 楚將許之하야 以召諸侯 則我失爲盟主矣리라
우리가 허락許諾하지 않았다가 나라가 허락許諾하고서 제후諸侯들을 부른다면 우리는 맹주盟主의 자리를 잃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晉人許之하다
진인晉人허락許諾하였다.
如楚하니 楚亦許之하다
나라에 가니 나라도 허락許諾하였다.
如齊하니 齊人難之注+[附注] 林曰 齊人以爲難어늘
나라에 가니 제인齊人난색難色을 표하였다.注+[부주]林: 제인齊人이 이를 곤난困難하게 여긴 것이다.
陳文子曰 晉楚許之하니 我焉得已리오
그러자 진문자陳文子가 말하기를 “나라와 나라가 허락하였으니 우리가 어찌 허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且人曰弭兵이라하야늘 而我弗許 則固攜吾民矣注+[附注] 林曰 攜貳吾民之心 將焉用之리오
남들은 전쟁戰爭종식終熄시키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우리 백성들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것이니注+[부주]林: 우리 백성들의 마음을 떠나게 한다는 말이다. 장차 백성들을 어찌 부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齊人許之하다
제인齊人허락許諾하였다.
告於秦하니 秦亦許之하다
나라에 하니 나라도 허락許諾하였다.
皆告於小國하여 爲會於宋하다
그러자 상술向戌소국小國에도 모두 통고通告하여 나라에서 회합會合하였다.
五月甲辰 晉趙武至於宋하고 丙午 鄭良霄至하다
5갑진일甲辰日나라 조무趙武나라에 도착하고, 병오일丙午日나라 양소良霄가 도착하였다.
六月丁未朔 宋人享趙文子할새 叔向爲介注+[附注] 林曰 相也하다
6 초하루 정미일丁未日송인宋人연회宴會를 열어 조문자趙文子접대接待할 때 숙향叔向개빈介賓이 되었다.注+[부주]林: 이다.
司馬置折俎하니 禮也注+折俎 體解節折 升之於俎 合卿享宴之禮 故曰禮也 周禮 司馬掌會同之事
사마司馬절조折俎(익힌 고기를 썰어 도마에 담아 올림)하였으니 에 맞았다.注+절조折俎희생犧牲을 잡아 해체解體한 뒤에 골절骨節분해分解하여 도마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것이 향연享宴에 맞았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주례周禮》 〈대사마大司馬〉에 “사마司馬회동會同의 일을 맡는다.”고 하였다.
注+宋向戌自美弭兵之意 敬逆趙武 趙武叔向因享宴之會 展賓主之辭 故仲尼以爲多文辭 [附注] 林曰 擧 謂記録之也
중니仲尼제자弟子에게 이 를 기록하게 한 것은 문사文辭가 많다고 여겨서이다.注+나라 상술向戌전쟁戰爭종식終熄시키려 한 자기의 의사意思를 아름답게 여겨, 조무趙武를 공경히 맞이한 것이다. 조무趙武숙향叔向이 이 향연享宴회합會合으로 인해 빈주賓主 사이의 말을 전개展開하였기 때문에 중니仲尼께서 ‘문사文辭가 많았다’고 한 것이다. [부주]林: 는 그 일을 기록記錄한 것을 이른다.
戊申 叔孫豹齊慶封陳須無衛石惡至注+須無 陳文子하다
무신일戊申日숙손표叔孫豹, 나라 경봉慶封, 진수무陳須無, 나라 석악石惡이 도착하였다.注+수무須無진문자陳文子이다.
甲寅 晉荀盈從趙武至注+趙武命盈追己 故言從趙武 後武遣盈如楚하다
갑인일甲寅日나라 순영荀盈조무趙武를 뒤따라 도착하였다.注+조무趙武순영荀盈에게 자기를 뒤따라오라고 하였기 때문에 ‘종조무從趙武’라 한 것이다. 뒤에 조무趙武순영荀盈나라로 보냈다.
丙辰 邾悼公至注+小國 故君自來하다
병진일丙辰日주도공邾悼公이 도착하였다.注+소국小國이기 때문에 임금이 직접 온 것이다.
壬戌 楚公子黑肱先至하야 成言於晉注+時令尹子木止陳 遣黑肱就晉大夫成盟載之言 兩相然可하다
임술일壬戌日나라 공자公子흑굉黑肱이 먼저 도착하여 진인晉人나라가 맹서盟書에 기재하고 싶어 하는 말을 약정約定[成言]하였다.注+이때 영윤令尹자목子木나라에 머물러 있으면서 흑굉黑肱나라로 보내어 나라 대부大夫맹서盟書에 기재할 말을 약정約定하여 양쪽이 서로 연가然可(同意)하게 한 것이다.
丁卯 宋向戌如陳하야 從子木成言於楚注+就於陳 成楚之要言하다
정묘일丁卯日나라 상술向戌나라로 가서 자목子木나라가 맹서盟書에 기재하고 싶어 하는 말을 약정約定하였다.注+상술向戌나라로 가서 나라가 맹서盟書에 기재하고 싶어 하는 말을 의정議定한 것이다.
戊辰 滕成公至注+亦小國 君自來하다
무신일戊辰日등성공滕成公이 도착하였다.注+나라도 소국小國이기 때문이 임금이 직접 온 것이다.
子木謂向戌하야 請晉楚之從 交相見也注+使諸侯從晉楚者 更相朝見하다
자목子木상술向戌에게 이르기를 “나라를 따르는 제후諸侯나라를 따르는 제후諸侯가 서로 나라와 나라에 조현朝見하게 하라.注+나라를 따르는 제후諸侯나라를 따르는 제후諸侯들로 하여금 번갈아 가며 서로 나라와 나라에 조현朝見하게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庚午 向戌復於趙孟하니 趙孟曰 晉楚齊秦 匹也
경오일庚午日상술向戌이 돌아와서 조맹趙孟에게 자목子木의 말을 전하니 조맹趙孟이 말하기를 “나라, 나라, 나라, 나라는 서로 대등對等한 나라이다.
晉之不能於齊 猶楚之不能於秦也注+不能服而使之 楚君若能使秦君辱於敝邑이면 寡君敢不固請於齊注+請齊使朝楚리오
나라가 나라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것이 나라가 나라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것과 같으니注+복종服從시켜 〈마음대로〉 부릴 수 없다는 말이다. , 초군楚君이 만약 진군秦君을 우리나라에 조현朝見하게 한다면 우리나라 임금도 감히 나라에게 〈나라에 조현朝見하도록〉 재삼再三[固]하지 않겠는가?注+나라에게 나라에 조현朝見하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壬申 左師復言於子木한대 子木使馹謁諸王注+馹 傳也 謁 告也 하니 王曰 釋齊秦하고 他國請相見也注+經所以不書齊秦 [附注] 林曰 舍齊與秦二國하라
임신일壬申日좌사左師(向戌)가 〈조무趙武의 말을 가지고 나라로 가서〉 자목子木에게 전하자, 자목子木사자使者에게 역마驛馬를 타고 달려가서 초왕楚王에게 하게 하니注+(驛馬)이고, 이다. , 초왕楚王이 말하기를 “나라와 나라는 제외除外하고 다른 나라들만 서로 조현朝見하도록 청하라.注+나라와 나라를 기록記錄하지 않은 이유이다. [부주]林: 이것이 두 나라를 빼버리고 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이다. ”고 하였다.
秋七月戊寅 左師至注+從陳還하다
가을 7무인일戊寅日좌사左師나라에서 나라로 돌아왔다.注+나라에서 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是夜也 趙孟及子晳盟하고注+子晳 公子黑肱 素要齊其辭 至盟時 不得復訟爭 [附注] 林曰 齊二國之辭하다
이날 밤에 조맹趙孟자석子晳맹약盟約하고서 양쪽의 맹사盟辭통일統一시켰다.注+자석子晳공자公子흑굉黑肱이다. 미리 양쪽의 맹사盟辭통일統一시키기를 요구하여 맹약盟約할 때 다시 논쟁論爭거리를 없앤 것이다. [부주]林: 두 나라의 맹사盟辭를 같게 만든 것이다.
庚辰 子木至自陳하다
경진일庚辰日자목子木나라에서 나라로 왔다.
陳孔奐蔡公孫歸生至注+二國大夫與子木俱至하고 曹許之大夫皆至하다
나라 공환孔奐나라 공손公孫귀생歸生이 도착하고注+두 나라 대부大夫자목子木과 함께 온 것이다. 나라와 나라 대부大夫도 모두 도착하였다.
以藩爲軍注+示不相忌 [附注] 朱曰 以藩籬爲軍 不築壘塹 하다
이때 각국各國의 군대는 울타리를 쳐서 군영軍營경계境界를 표시하였다.注+서로 꺼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부주]朱: 울타리를 쳐서 군영軍營의 경계를 표시하고, 보루堡壘참호塹壕축조築造하지 않은 것이다.
晉楚各處其偏注+晉處北 楚處南이러니
나라와 나라는 각자 남북南北으로 나뉘어 한쪽에 주둔駐屯하였다.注+진군晉軍은 북쪽에 주둔駐屯하고 초군楚軍은 남쪽에 주둔駐屯한 것이다.
伯夙謂趙孟注+伯夙 荀盈曰 楚氛甚惡하니 懼難注+氛 氣也 言楚有襲晉之氣 이라 趙孟曰 吾左還하야 入於宋이면 若我何注+營在宋北 東頭爲上 故晉營在東 有急 可左迴入宋東門 [附注] 林曰 楚必無奈我何리오
백숙伯夙(荀盈)이 조맹趙孟에게 말하기를注+백숙伯夙순영荀盈이다. 나라 진영陣營분위기雰圍氣가 매우 험악險惡하니 변란變亂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注+은 기운이다. 나라 군중軍中진군晉軍습격襲擊하려는 기운이 있다는 말이다. ”고 하니, 조맹趙孟이 말하기를 “우리가 왼쪽으로 돌아 나라 국도國都로 들어간다면 저들이 우리를 어찌하겠는가?注+각국各國군영軍營나라 국도國都 북쪽에 있었다. 동쪽이 상위上位이기 때문에 진군晉軍진영陣營이 동쪽에 있었으니, 위급한 일이 생기면 왼쪽으로 돌아 나라의 동문東門으로 들어갈 수 있다. [부주]林: 초인楚人은 반드시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辛巳 將盟於宋西門之外할새 楚人衷甲注+甲在衣中 欲因會擊晉 이어늘 伯州犂曰 合諸侯之師하야 以爲不信注+[附注] 朱曰 行詐以劫晉 이면 無乃不可乎
신사일辛巳日나라 서문西門 밖에서 맹약盟約하려 할 때에 초인楚人이 속에 갑옷을 입자注+갑옷을 겉옷 안에 입고서 회맹會盟하는 기회를 이용해 진군晉軍습격襲擊하려 한 것이다. , 백주리伯州犂가 말하기를 “제후諸侯의 군대를 모아 놓고서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다면注+[부주]朱: 속임수를 써서 나라를 협박脅迫하려 한 것이다.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
夫諸侯望信於楚 是以來服이어늘 若不信이면 是棄其所以服諸侯也라하고 固請釋甲한대
제후諸侯들은 나라가 신의信義를 지킬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에 와서 복종服從한 것인데, 만약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다면 제후諸侯복종服從시키는 도구道具를 버리는 것입니다.”라고 하고서 갑옷을 벗기기를 굳이 하였다.
子木曰 晉楚無信久矣
그러자 자목子木이 말하기를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은 지 오래이니 오직 자국自國유리有利한 일만을 할 뿐이다.
苟得志焉이면 焉用有信이리오
진실로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신의信義를 지켜 무엇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大宰退注+大宰 伯州犂 하야 告人曰 令尹將死矣로다
태재太宰(伯州犂)가 물러나와注+태재太宰백주리伯州犂이다. 어떤 사람에게 하기를 “영윤令尹은 장차 죽을 것이다.
不及三年이리라
길어도 3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求逞志而棄信하니 志將逞乎
뜻을 이루기를 구하면서 신의信義를 버렸으니 뜻을 어찌[將] 이룰 수 있겠는가?
志以發言하고 言以出信하고 信以立志하니 參以定之注+志言信三者具 而後身安存어늘
뜻이 있어야 말로써 표현하고, 말이 있어야 신의信義표출表出하고, 신의信義가 있어야 의지意志확립確立할 수 있으니,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진 뒤에야 편안히 생존할 수 있다.注+이 세 가지가 갖추어진 뒤에야 몸 편히 생존生存할 수 있다는 말이다.
信亡하니 何以及三注+爲明年子木死起本 [附注] 林曰 志言信其數三 故知其不能及三年이리오
그런데 지금 영윤令尹신의信義를 버렸으니 어찌 3을 넘길 수 있겠는가?注+명년明年자목子木이 죽는 장본張本이다. [부주]林: 의 수가 3이기 때문에 그가 3년을 넘기지 못할 줄을 안 것이다. ”라고 하였다.
趙孟患楚衷甲하야 以告叔向한대 叔向曰 何害也리오
조맹趙孟초군楚軍이 속에 갑옷을 입은 것을 걱정하여 이를 숙향叔向에게 하자,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해로울 게 뭐 있습니까?
匹夫一爲不信이라도 猶不可注+[附注] 朱曰 且不能濟事 하야 注+單 盡也 斃 踣也 [附注] 朱曰 言不信之人 無得生者어늘
필부匹夫가 한 번 신의信義를 버려도 세상에 용납容納되지 못하여注+[부주]朱: 오히려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不可] 모두 앞으로 엎어져 죽었습니다注+이고 이다. [부주]朱: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생존生存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非命에 죽었다는 말).
若合諸侯之卿하야 以爲不信이면 必不捷矣리라
만약 제후諸侯을 불러 모아 놓고서 신의信義를 버린다면 반드시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입니다.
食言者注+不病者 單斃於死 [附注] 朱曰 楚人食言 尙不自以爲病 이니 非子之患也注+楚食言當死 晉不食言 故無患
식언食言을 하는 자는 남을 해칠 수 없으니注+불병不病은 모두 엎어져 죽는 것이다. [부주]朱: 초인楚人식언食言하고서도 오히려 스스로 잘못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당신께서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注+나라 자목子木식언食言하였으니 죽게 될 것이지만 나라 조맹趙孟식언食言하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게 없다는 말이다.
夫以信召人하야 而以僭濟之注+濟 成也 [附注] 林曰 僭 不信也 必莫之與也리니 安能害我리오
자목子木신의信義로써 사람들을 불러 놓고서 불신不信[僭]으로 뜻을 이루려 한다면注+는 이루는 것이다. [부주]林: 불신不信이다. 반드시 돕는 자가 없을 것이니 어찌 우리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且吾因宋以注+爲楚所病 則欲入宋城이면能致死리니 與宋致死 雖倍楚可也注+宋爲地主 致死助我 則力可倍楚 어늘 子何懼焉
또 우리가 나라에 의지하여 우리를 해치려는 초군楚軍수어守禦한다면注+만약 초군楚軍의 괴롭힘(病)을 당하게 된다면 나라 도성都城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는 말이다. 우리 군대[夫]가 사력死力을 다해 싸울 것이니, 송군宋軍과 힘을 합쳐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면 우리의 힘이 초군楚軍의 갑절이 될 수 있는데注+나라는 지주地主이니 죽을힘을 다해 우리를 돕는다면 우리 쪽의 힘이 나라의 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당신께서는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注+[附注] 林曰 又不及於此 言不幸而死리라
그리고 또 초인楚人이 이처럼 사나운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注+[부주]林: 우불급어차又不及於此불행不幸하여 죽는 데는 이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曰弭兵以召諸侯하야 而稱兵以害我注+稱 擧也 吾庸多矣 非所患也注+晉獨取信 故其功多
전쟁戰爭종식終熄시킨다는 명분名分으로 제후諸侯소집召集해 놓고서 군대를 출동出動하여 우리를 해친다면注+(出動)이다. 우리에게 이 많게 될 것이니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注+나라만이 혼자 신의信義하였기 때문에 이 많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季武子使謂叔孫以公命曰 視邾滕注+兩事晉楚則貢賦重 故欲比小國 武子恐叔孫不從其言 故假公命以敦之하라
계무자季武子가 사람을 보내어 양공襄公으로 숙손叔孫에게 이르기를 “나라‧나라의 를 따르라.注+ 두 나라를 섬기면 공부貢賦과중過重하기 때문에 소국小國를 따르고자 한 것이다. 계무자季武子숙손叔孫이 자기의 말을 따르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이라고 가탁假託하여 그를 권면勸勉(敦)한 것이다. ”고 하였다.
旣而齊人請邾하고 宋人請滕하니 皆不與盟注+私屬二國故 하다
얼마 뒤에 나라가 나라를 속국屬國으로 삼기를 청하고, 나라가 나라를 속국屬國으로 삼기를 청하니, 나라와 나라는 모두 결맹結盟참가參加하지 않았다.注+두 나라를 속국屬國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叔孫曰 邾滕 人之私也注+[附注] 林曰 人之私屬也 列國也 何故視之注+[附注] 林曰 何故欲視邾滕 리오
숙손叔孫이 말하기를 “나라와 나라는 남의 속국屬國이고注+[부주]林: 남의 속국屬國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제후국諸侯國(列國)인데 어찌 저 를 따르겠는가?注+[부주]林: 무엇 때문에 나라‧나라의 를 따르고자 하느냐는 말이다.
宋衛 吾匹也라하고 乃盟注+[附注] 林曰 乃視宋衛以受盟하다
우리는 동등同等한 나라이다.”라고 하고서 결맹結盟참가參加하였다.注+[부주]林: 나라‧나라의 를 따라 맹약盟約을 받아들인 것이다.
故不書其族하니 言違命也注+季孫專政於國 魯君非得有命 今君唯以此命告豹 豹宜崇大順以顯 故貶之
에 ‘숙손叔孫’이란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을 어겼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注+계손季孫나라의 정사政事전단專斷하였으니 노군魯君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 노군魯君숙손표叔孫豹에게 이 명을 내렸으니, 대순大順도리道理를 높여 한 임금의 을 드러내는 것이 마땅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소시小是’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그를 폄하貶下한 것이다.
晉楚爭先注+爭先歃血하다
나라와 나라가 먼저 삽혈歃血하기를 다투었다.注+먼저 삽혈歃血하기를 다툰 것이다.
晉人曰 晉固爲諸侯盟主하니 未有先晉者也 楚人曰 子言晉楚匹也
진인晉人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본래 제후諸侯맹주盟主였으니 우리 나라보다 먼저 삽혈歃血한 나라는 없었다.”고 하자, 초인楚人이 말하기를 “그대가 나라와 나라는 대등對等하다고 말하였다.
若晉常先이면 是楚弱也
그런데 만약 나라가 항상 먼저 삽혈歃血한다면 이는 우리 나라가 나라보다 한 것이 된다.
且晉楚狎主諸侯之盟也久矣注+狎 更也 豈專在晉이리오
그리고 또 나라와 나라가 교대交代제후諸侯회맹會盟주관主管한 지 오래이니注+(交代)이다. , 어찌 나라만이 회맹會盟주관主管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叔向謂趙孟曰 諸侯歸晉之德只注+只 辭 非歸其尸盟也注+尸 主也 子務德이오 無爭先注+[附注] 朱曰 當務德以服諸侯 不必爭先歃血하라
그러자 숙향叔向조맹趙孟에게 말하기를 “제후諸侯나라에 귀의歸依한 것은 덕행德行 때문이고注+어사語辭이다. 우리가 회맹會盟주관主管한다 해서 귀의歸依한 것이 아니니注+주관主管이다. 당신은 덕행德行에 힘쓰고 삽혈歃血선후先後를 다투지 마십시오.注+[부주]朱: 마땅히 덕행德行을 힘써서 제후諸侯복종服從시켜야 하고, 삽혈歃血선후先後를 다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且諸侯盟 小國固必有尸盟者注+小國主하니 楚爲晉細 不亦可乎注+欲推使楚主盟 [附注] 林曰 楚欲尸盟 自同於小國 任晉之細事 不亦可從其請乎 乃先楚人하다
제후諸侯회맹會盟에는 본래부터 회맹會盟주관主管하는 소국小國이 있었으니注+소국小國변구辨具주관主管한다. , 나라를 회맹會盟주관主管하는 소국小國으로 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注+사양(推)하여 초인楚人에게 회맹會盟주관主管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부주]林: 초인楚人회맹會盟주관主管하고자 하여 스스로 소국小國과 같이 처신處身하니 나라의 작은 일들을 맡겨 그들의 을 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조맹趙孟초인楚人에게 먼저 삽혈歃血하게 하였다.
書先晉 晉有信也注+蓋孔子追正之
나라를 먼저 기록한 것은 나라가 신의信義가 있었기 때문이다.注+대개 공자孔子께서 뒤에 개정改正한 것인 듯하다.
壬午 宋公兼享晉楚之大夫할새 趙孟爲客注+客 一坐所尊 故季孫飮大夫酒 臧紇爲客 하다
임오일壬午日송평공宋平公연회宴會를 열어 대부大夫들을 함께 접대接待할 때 조맹趙孟주빈主賓이 되었다.注+(主賓)은 온 좌중座中존경尊敬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양공襄公 23년 에〉 “계손季孫대부大夫들에게 술을 접대接待할 때 장흘臧紇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子木與之言하니 弗能對하야 使叔向侍言焉하니 子木亦不能對也注+[附注] 林曰 楚子木與趙文子言 趙文子不能對 使叔向侍坐代言焉 子木亦不能答하다
자목子木조맹趙孟에게 말을 거니 조맹趙孟은 그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어서 숙향叔向으로 하여금 자기 대신 자목子木을 모시고 앉아서 말을 하게 하니 자목子木도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注+[부주]林: 나라 영윤令尹자목子木조문자趙文子에게 말을 걸자 조문자趙文子는 그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어서 숙향叔向으로 하여금 자기 대신 자목子木을 모시고 앉아서 말하게 하니 자목子木도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乙酉 宋公及諸侯之大夫盟于蒙門之外注+前盟 諸大夫不敢敵公 禮也 今宋公以近在其國 故謙而重盟 重盟 故不書 蒙門 宋城門하다
을유일乙酉日송평공宋平公제후諸侯대부大夫몽문蒙門 밖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종전從前회맹會盟에는 제후諸侯대부大夫가 감히 상대相對하지 않는 것이 였다. 그러나 지금은 송공宋公이 그 나라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겸손하게 거듭 결맹結盟한 것이다. 거듭 결맹結盟하였기 때문에 에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몽문蒙門나라 성문城門이다.
子木問於趙孟曰 范武子之德何如注+士會賢 聞於諸侯 故問之 對曰 夫子之家事治注+[附注] 林曰 夫子 謂范武子 身修家齊 故事無不治 하야 言於晉國無隱情注+[附注] 林曰 所行之事 皆可告人 故情無所隱 하고 其祝史陳信於鬼神無愧辭注+祝陳馨香 德足副之 故不愧 [附注] 林曰 祝 大祝 史 大史니라
자목子木조맹趙孟에게 “범무자范武子(士會)의 이 어떠하냐?注+사회士會현덕賢德제후諸侯 나라에 소문났기 때문에 사회士會을 물은 것이다. ”고 묻자, 조맹趙孟이 대답하기를 “그분의 집안은 일이 잘 다스려져서注+[부주]林: 부자夫子범무자范武子를 이른다. 심신心身수양修養되고 가정家庭정제整齊되었기 때문에 다스려지지 않은 일이 없다는 말이다. 나라 사람들에게 숨기고 말 못할 사정事情이 없었으며注+[부주]林: 한 일들을 모두 남에게 〈떳떳이〉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정을 숨기고 말 못할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분의 축사祝史(祭祀를 주관主管하는 사람)는 귀신鬼神에게 진실眞實만을 (陳)하고 부끄러운 말이 없습니다.注+대축大祝형향馨香(黍稷)을 올린다고 하는데 주제자主祭者형향馨香처럼 향기롭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대축大祝이고 대사大史이다.”고 하였다.
子木歸하야 以語王한대 王曰 尙矣哉注+尙 上也 [附注] 朱曰 言士會可嘉尙矣
자목子木귀국歸國하여 초강왕楚康王께 이 말을 고하니, 강왕康王이 말하기를 “가상嘉尙하다.注+이다. [부주]朱: 사회士會가상嘉尙하다는 말이다.
神人注+歆 享也 使神享其祭 人懷其德하니 宜其光輔五君하야 以爲盟主也注+五君 謂文襄靈成景로다
과 사람을 기쁘게 하였으니注+이니, 으로 하여금 그 제사祭祀흠향歆饗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은덕恩德을 생각하게 한다는 말이다. 다섯 임금을 보좌輔佐하여 맹주盟主가 되게 한 것이 당연當然하다.注+다섯 임금은 나라 문공文公양공襄公영공靈公성공成公경공景公이다. ”고 하였다.
子木又語王曰 宜晉之伯也로이다
자목子木이 또 강왕康王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후백侯伯이 된 것은 당연합니다.
有叔向以佐其卿注+[附注] 朱曰 趙武爲政 而叔向佐之이어늘 楚無以當之注+[附注] 朱曰 楚人無足當叔向者하니 不可與爭이니이다
숙향叔向이 있어 그 보좌輔佐하는데注+[부주]朱: 조무趙武집정執政하고 숙향叔向이 그를 보좌輔佐한다는 말이다. 나라에는 그를 대적對敵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注+[부주]朱: 초인楚人 중에는 숙향叔向대적對敵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나라와 경쟁競爭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晉荀盈遂如楚涖盟注+重結晉楚之好하다
순영荀盈나라로 가서 결맹結盟참가參加하였다.注+나라와 나라가 거듭 우호友好를 맺은 것이다.
鄭伯享趙孟于垂隴注+自宋還 過鄭할새 子展伯有子西子産子大叔二子石從注+二子石 印段公孫段하다
정백鄭伯수롱垂隴에서 연회宴會를 열어 조맹趙孟접대接待할 때注+조맹趙孟나라에서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나라를 지난 것이다.자전子展백유伯有자서子西자산子産자태숙子太叔과 두 자석子石정백鄭伯시종侍從하였다.注+자석子石인단印段공손公孫이다.
趙孟曰 七子從君하야 以寵武也注+[附注] 林曰 武 趙文子名 言以光寵於我하니 請皆賦하야 以卒君貺注+[附注] 林曰 請七子皆賦詩 以終鄭君之賜 하노라
조맹趙孟이 말하기를 “일곱 분이 임금님을 시종侍從하여 나를 영광榮光[寵]스럽게 하니注+[부주]林: 조문자趙文子의 이름이다. 로써 나에게 광영光榮을 내려 달라는 말이다. 모두 를 읊어 임금님이 내리신 이 연회宴會를 잘 마치기 바랍니다.注+[부주]林: 일곱 사람이 모두 를 읊어 정군鄭君사연賜宴을 마치기를 청한 것이다.
武亦以觀七子之志注+詩以言志하리라
나 또한 를 듣고서 일곱 분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注+로써 뜻을 말한다. ”라고 하였다.
子展賦草蟲注+草蟲 詩召南 曰 以趙孟爲君子한대 趙孟曰 善哉
자전子展이 〈초충편草蟲篇〉을 읊자注+초충草蟲〉은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篇名이다. 그 에 “군자를 만나지 못해 근심으로 마음이 뛰었네. 군자를 보고 군자와 교합交合(覯)하면 내 마음이 가라앉으련만.”이라고 하였다. 조맹趙孟군자君子에 비유한 것이다. , 조맹趙孟이 말하기를 “훌륭합니다.
民之主也注+在上不忘降 故可以主民어니와 抑武也 不足以當之注+辭君子로다
〈그대는 참으로〉 백성의 주인主人이 될 수 있지만注+윗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낮추기를 잊지 않기 때문에 백성의 주인主人이라고 한 것이다. 나는 〈이런 칭찬을〉 받을 만하지 못합니다.注+자기를 군자君子에 비유한 것을 사양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伯有賦鶉之賁賁注+鶉之賁賁 詩鄘風 衛人刺其君淫亂 鶉鵲之不若 義取人之無良 我以爲兄 我以爲君也 한대 趙孟曰 牀之言不踰閾이온 況在野乎
백유伯有가 〈순지분분편鶉之賁賁篇〉을 읊자注+순지분분鶉之賁賁〉은 《시경詩經》 〈용풍鄘風〉의 편명篇名이다. 위인衛人이 그 임금의 음란淫亂풍자諷刺하여 메추라기나 까치만도 못하다고 한 것이다. “선량하지 못한 사람을 나는 그를 이라고 하고 나는 그를 임금이라 하네.”라고 한 뜻을 취한 것이다. 조맹趙孟이 “잠자리의 말은 문지방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하물며 교야郊野이겠습니까?
非使人之所得聞也注+笫 簀也 此詩刺淫亂 故云牀笫之言 閾 門限 使人 趙孟自謂 니라
사신使臣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注+는 자리이다. 이 음란淫亂풍자諷刺한 것이다. 그러므로 잠자리의 말이라고 한 것이다. 은 문지방이다. 사인使人조맹趙孟자신自身을 이른 것이다. ”고 하였다.
子西賦黍苗之四章注+黍苗 詩小雅 四章曰 肅肅謝功 召伯營之 烈烈征師 召伯成之 比趙孟於召伯 한대 趙孟曰 注+推善於其君이리오
자서子西가 〈서묘편黍苗篇〉의 4을 읊자注+서묘黍苗〉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그 4에 “신속迅速히 이룬 사읍謝邑공역工役소백召伯경영經營한 것이고, 무용武勇스러운 행역군行役軍소백召伯편성編成한 것이네.”라고 하였다. 조맹趙孟소백召伯에 비유한 것이다. 조맹趙孟이 “우리 임금께서 계시니 내가 무슨 능력能力이 있겠습니까?注+잘한 일을 그 임금에게 사양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子産賦隰桑注+隰桑 詩小雅 義取思見君子 盡心以事之 曰 旣見君子 其樂如何 한대 趙孟曰 武請受其卒章注+卒章曰 心乎愛矣 遐不謂矣 中心藏之 何日忘之 趙武欲子産之見規誨 하로라
자산子産이 〈습상편隰桑篇〉을 읊자注+습상隰桑〉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군자를 만나 보기를 생각하여 마음을 다해 섬긴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그 에 “이미 군자를 만나 보았으니 그 즐거움이 어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조맹趙孟이 “나는 그 졸장卒章만을 받아들이겠습니다.注+졸장卒章에 “마음에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 어찌 그에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니 언제고 잊을 날이 잊겠는가?”라고 하였다. 조무趙武자산子産경계警戒해 가르쳐주기를 바란 것이다. ”라고 하였다.
子大叔賦野有蔓草注+野有蔓草 詩鄭風 取其邂逅相遇 適我願兮한대 趙孟曰 吾子之惠也注+大叔喜於相遇 故趙孟受其惠
자태숙子太叔이 〈야유만초편野有蔓草篇〉을 읊자注+야유만초野有蔓草〉는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편명篇名이다. “우연히 서로 만나니 나의 소원에 맞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조맹趙孟이 “그대의 은혜입니다.注+태숙太叔조맹趙孟과 서로 만난 것을 기뻐하였기 때문에 조맹趙孟이 그 은혜恩惠를 받았다고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印段賦蟋蟀注+蟋蟀 詩唐風 曰 無以大康 職思其居 好樂無荒 良士瞿瞿 言瞿瞿然顧禮儀한대 趙孟曰 善哉
인단印段이 〈실천편蟋蟀篇〉을 읊자注+실솔蟋蟀〉은 《시경詩經》 〈당풍唐風〉의 편명篇名이다. 그 에 “너무 안락安樂하게 지내지 말고 오히려[職] 자기의 직분職分[其居]을 생각하여 안락을 좋아하되 직무職務황기荒棄(廢棄)하지 않는 것이 양사良士가 경계[瞿瞿]할 바이다.”라고 하였으니, 두려운 마음으로 예의禮儀를 돌아본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조맹趙孟이 “훌륭합니다.
保家之主也 吾有望矣注+能戒懼不荒 所以保家로다
집안을 보존保存주인主人이니, 내 기대期待해 보겠습니다.注+경계警戒하고 두려워하여 직분職分폐기廢棄하지 않는 것이 집안을 보존保存하는 방법이다. ”라고 하였다.
公孫段賦桑扈注+桑扈 詩小雅 義取君子有禮文 故能受天之祐한대 趙孟曰 匪敖 福將焉往注+此桑扈詩卒章 趙孟因以取義 이리오
공손公孫이 〈상호편桑扈篇〉을 읊자注+상호桑扈〉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군자君子예문禮文이 있기 때문에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조맹趙孟이 “사람을 사귐에 있어 오만傲慢하지 않으니 이 어디로 가겠습니까?注+상호시桑扈詩졸장卒章이다. 조맹趙孟은 〈공손公孫를 읊었으므로〉 인하여 〈졸장卒章의〉 뜻을 취한 것이다.
若保是言也 欲辭福祿인들 得乎
이 말을 잘 지킨다면 복록福祿을 사양하고자 한들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卒享 文子告叔向曰 伯有將爲戮矣리라
연회宴會를 마친 뒤에 문자文子(趙孟)가 숙향叔向에게 말하기를 “백유伯有는 장차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詩以言志어늘 志誣其上而公怨之하야 以爲賓榮注+言誣 則鄭伯未有其實 趙孟倡賦詩以自寵 故言公怨之以爲賓榮 [附注] 林曰 譏刺鄭伯 故公怨之 하니 其能久乎
는 자신의 뜻을 말하는 것인데, 그의 뜻은 임금을 무함誣陷하고 공공연히 원망怨望하는 데 있고, 또 이 시로써 빈객賓客광영光榮스럽게 하였으니注+무함誣陷이라고 말하였으니 정백鄭伯에게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것이다. 조맹趙孟이 “를 읊어 자신을 영광榮光스럽게 하라.”고 유도誘導[倡]하였기 때문에 백유伯有가 공공연히 원망怨望하여 빈객賓客영광榮光스럽게 한 것이다. [부주]林: 정백鄭伯비난非難하였기 때문에 ‘공공연히 원망하였다.’고 한 것이다. 어찌 오래 살 수 있겠습니까?
幸而後亡注+言必先亡이리라 叔向曰 然하다
행운幸運이 있은 뒤에야 죽지 않고 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注+반드시 〈제일〉 먼저 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已侈注+[附注] 林曰 伯有汰侈已甚하니 所謂不及五稔者 夫子之謂矣注+稔 年也 爲三十年鄭殺良霄傳로다
너무 오만傲慢[侈]하니注+[부주]林: 백유伯有교만驕慢사치奢侈가 너무 심하다는 말이다. 이른바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는 말이 바로 저 사람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注+이다. 양공襄公 30나라가 양소良霄(伯有)를 죽인 의 배경이다. ”고 하였다.
文子曰 其餘 皆數世之主也注+[附注] 林曰 其餘六子 皆澤及數世者也 子展其後亡者也 在上不忘降注+謂賦草蟲 曰我心則降 하니라
문자文子가 말하기를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여러 주인主人이지만注+[부주]林: 그 밖의 여섯 사람은 모두 그 유택遺澤이 여러 에 미칠 것이라는 말이다. 그중에 자전子展이 가장 뒤에 망할 사람이니 윗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을 낮추기를 잊지 않습니다.注+초충시草蟲詩의 “내 마음이 가라앉으련만.”이란 를 읊은 것을 말한 것이다.
印氏其次也 樂而不荒注+謂賦蟋蟀 曰好樂無荒하니라
인씨印氏가 그 다음으로 오래갈 사람이니 안락安樂을 즐기되 직무職務폐기廢棄[荒]하지 않습니다.注+실천시蟋蟀詩의 “안락을 좋아하되 직분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를 읊은 것을 말한 것이다.
樂以安民注+[附注] 林曰 樂與民同 故民得其安하고 不淫以使之注+[附注] 林曰 不淫從其欲以虐使之하니 後亡 不亦可乎
안락安樂으로 백성들을 안정安定시키고注+[부주]林: 안락安樂을 백성과 함께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안정安定을 얻은 것이다. 과도하게 백성을 부리지 않으니注+[부주]林: 욕심慾心절제節制하지 않고 지나치게 방종放縱하여 백성을 모질게 부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남보다 뒤에 하는 것이 당연當然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傳]宋左師請賞曰 注+欲宋君稱功加厚賞 故謙言免死之邑也 [附注] 朱曰 旣合晉楚 而請賞於其君하노이다하니 公與之邑六十注+[附注] 林曰 此亦非四井之邑 說與上文與免餘邑六十同 하다
나라 좌사左師(向戌)가 하며 말하기를 “죽음을 한 데 대한 으로 합니다.注+상술向戌송군宋君으로 하여금 자기의 을 칭찬하여 을 내리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겸손하게 ‘면사지읍免死之邑’이라고 말한 것이다. [부주]朱: 상술向戌나라와 나라를 화합和合시키고 나서 송군宋君에게 을 달라고 한 것이다. ”고 하니, 송평공宋平公은 그에게 60개를 주었다.注+[부주]林: 여기의 도 4이 아니다. 상문上文에 ‘면여免餘에게 60개를 주었다.’고 한 말과 같다.
以示子罕注+[附注] 朱曰 向戌執其賞書 以示司城樂喜 한대 子罕曰 凡諸侯小國 晉楚所以兵威之
상술向戌이 그 물목物目이 기록된 간책簡冊을〉 자한子罕(樂喜)에게 보이자注+[부주]朱: 상술向戌상사賞賜 받은 물목物目이 적힌 문서文書를 가지고 가서 사성司城악희樂喜에게 보인 것이다. , 자한子罕이 말하기를 “제후諸侯 중에 약소국弱小國들은 나라와 나라가 병기兵器(武力)로 위협威脅하는 대상對象[所]이었습니다.
畏而後上下慈和注+[附注] 朱曰 言凡諸侯之爲小國者 惟以晉楚大國之兵威爲可畏也 然後其君民慈愛而和順하고 慈和而後能安靖其國家하야 以事大國하니 所以存也
소국小國은〉 두려움을 느낀 뒤에 상하上下가 서로 자애慈愛하고 화목和睦하였으며注+[부주]朱: 제후諸侯 중에 소국小國들은 오직 대국大國병위兵威(군대의 위세)만을 두려워한다. 그런 뒤에야 그 임금과 백성이 서로 자애慈愛하고 화목和睦하여 순종順從한다는 말이다. 자애하고 화목한 뒤에 그 나라를 안정安定시켜 대국大國을 섬겼으니 이것이 소국小國보존保存원인原因이었습니다.
無威則驕하고 驕則亂生하고 亂生必滅하니 所以亡也
대국大國위협威脅이 없으면 소국小國교만驕慢해지고 교만하면 동란動亂발생發生하고 동란이 발생하면 반드시 멸망滅亡하였으니 이것이 소국小國이 멸망한 원인原因이었습니다.
天生五材注+金木水火土也 民竝用之하니 어늘 誰能去兵注+[附注] 林曰 兵是五材之金 故不可去이리오
하늘이 낸 오종五種재료材料注+오재五材이다. 백성들은 아울러 사용使用하니 이 중에 하나만 없어도 안 되는데 누가 병기兵器(戰爭을 뜻함)를 없앨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林: 병기兵器오재五材 중의 에 해당하기 때문에 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兵之設久矣 所以威不軌而昭文德也
병기를 설치設置한 지 오래인데, 〈그 목적目的은〉 상도常道를 벗어나는 를 위협하고 문덕文德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聖人以興注+謂湯武하고 亂人以廢注+謂桀紂 하니 廢興存亡昏明之術 皆兵之由也注+[附注] 林曰 明君善於用兵 則以之而興 以之而存 術之善也 昏主不善用兵 則以之而廢 以之而亡 術之不善也 어늘 而子求去之하니 不亦誣乎
성인聖人무력武力[兵]으로 인해 흥성興盛하였고注+성인聖人상탕商湯주무왕周武王을 이른다. 난인亂人은 무력으로 인해 패망敗亡하였으니注+난인亂人하걸夏桀상주商紂를 이른다. , 폐흥廢興존망存亡혼명昏明의 방법이 모두 무력武力에서 유래由來하는데注+[부주]林: 밝은 임금은 용병用兵을 잘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나라가 흥성興盛하고 이로 인해 나라가 보존保存되었으니, 이는 용병술用兵術이 훌륭해서였고, 어두운 임금은 용병用兵을 잘못하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실패失敗[廢]하고 이로 인해 멸망滅亡하였으니 이는 용병술用兵術이 훌륭하지 못해서였다. , 당신은 이를 제거除去하기를 하였으니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까.
以誣道蔽諸侯하니 罪莫大焉注+[附注] 林曰 欺蔽諸侯 이라
속임수로 제후諸侯들을 속였으니[蔽] 이보다 큰 죄가 없습니다.注+[부주]林: 제후諸侯를 속이는 것이다.
縱無大討라도 而又求賞하니 無厭之甚也라하고 削而投之注+削賞左師之書 하다
가령 크게 토벌討伐을 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토벌을 당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뜻) 도리어 요구要求하였으니 탐욕貪慾이 지나칩니다.”고 하고서 죽간竹簡에 기록된 문자文字삭제削除하고서 그 죽간을 땅에 던졌다.注+좌사左師에게 으로 준 물목物目이 적힌 문서文書문자文字삭제削除한 것이다.
左師辭邑하다
이에 좌사左師을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向氏欲攻司城注+司城 子罕 [附注] 朱曰 向戌之黨欲伐子罕 한대 左師曰 我將亡이어늘 夫子存我注+[附注] 林曰 言我邑多將有滅亡之禍 子罕責我以義 是存我也하니 德莫大焉이라
상씨向氏(向戌의 족인族人)가 사성司城공격攻擊하려 하자注+사성司城자한子罕이다. [부주]朱: 상술向戌족당族黨자한子罕을 치려 한 것이다. , 좌사左師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마터면 멸망滅亡할 뻔하였는데, 부자夫子(子罕)가 우리를 보존保存시켰으니注+[부주]林: 나에게 이 많으면 장차 멸망滅亡를 입을 것인데 자한子罕이 나를 의리義理책망責望하였으니 이것이 나를 보존保存시킨 것이라는 말이다. 이보다 큰 은덕恩德이 없다.
又可攻乎
그런데 도리어[又]공격攻擊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君子曰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邦之注+詩鄭風 司 主也이라하니 樂喜之謂乎注+樂喜 子罕也 善其不阿向戌 ᄂ저 何以恤我리오
“《시경詩經》에 ‘저 사람이여, 국가國家사직司直이로다.注+는 《시경詩經》 〈정풍鄭風〉이다. 이다. ’고 하였으니, 이는 악희樂喜를 이른 것이고注+악희樂喜자한子罕이다. 그가 상술向戌에게 아첨하지 않은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 《시경詩經》에 ‘무엇으로 나를 근심해 주려는가?
我其收之注+逸詩 恤 憂也 收 取也 라하니 向戌之謂乎注+善向戌能知其過 ᄂ저
내 그대의 말을 받아들이겠다.注+일시逸詩이다. 이고 이다. ’고 하였으니, 이는 상술向戌을 이른 것이다.注+상술向戌이 자기의 허물을 안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傳]齊崔杼生成及彊而寡注+偏喪曰寡 寡 特也하니 東郭姜注+[附注] 林曰 卽東郭偃之姊 事在二十五年 하야 生明하다
나라 최저崔杼의 아내가 아들 을 낳고서 죽으니注+짝을 잃는 것을 ‘’라 하니, (홀로됨)이다.최저崔杼동곽강東郭姜을 아내로 맞아注+[부주]林: 동곽강東郭姜동곽언東郭偃의 누이이다. 이 일은 양공襄公 25년에 있었다. 아들 을 낳았다.
東郭姜以孤入하니 曰棠無咎注+無咎 棠公之子 [附注] 林曰 無父曰孤 蓋東郭姜以先夫之子自隨 與東郭偃相崔氏注+東郭偃 姜之弟하다
동곽강東郭姜이 시집올 때 전 남편의 아들 당무구棠無咎를 데리고 들어왔는데注+무구無咎당공棠公의 아들이다. [부주]林: 아비 없는 아이를 ‘’라 한다. 동곽강東郭姜이 전 남편의 아들을 데리고 시집온 것이다. , 무구無咎동곽언東郭偃과 함께 최씨崔氏보좌輔佐하였다.注+동곽언東郭偃동곽강東郭姜의 동생이다.
崔成有疾而廢之注+有惡疾也 하고 而立明하다
최성崔成에 걸리자 그를 하고注+못된 병이 있었던 것이다. 사자嗣子로 세웠다.
成請老于崔注+濟南東朝陽縣西北有崔氏城 成欲居崔邑以終老하니 崔子許之하다
최읍崔邑으로 가서 일생을 마치기를 청하니注+제남濟南 동쪽 조양현朝陽縣 서북쪽에 최씨성崔氏城이 있다. 최성崔成최읍崔邑에 살면서 일생一生을 마치려 한 것이다. 최자崔子는 이를 허락하였다.
偃與無咎弗予曰 崔 宗邑也 必在宗主注+宗邑 宗廟所在 宗主 謂崔明라한대
무구無咎최읍崔邑을 주지 못하게 하며 말하기를 “최읍崔邑종묘宗廟가 있는 이니 반드시 종주宗主(嗣子)가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注+종읍宗邑종묘宗廟가 있는 이고, 종주宗主최명崔明을 이른다. ”고 하였다.
成與彊怒하야 將殺之하야 告慶封曰
그러자 은 노하여 무구無咎를 죽이고자 하여,
夫子之身 亦子所知也注+[附注] 林曰 夫子 謂崔杼 言其身事 亦慶封之所素知也 唯無咎與偃是從注+[附注] 林曰 崔杼平日 惟棠無咎與東郭偃之言是從일새 注+[附注] 林曰 凡崔氏諸父諸兄 皆莫得進用矣 大恐害夫子하야 敢以告注+夫子 謂崔杼하노라 慶封曰 子姑退하라
경봉慶封에게 말하기를 “부자夫子(崔杼를 이름)의 신상身上의 일은 당신께서도 알다시피注+[부주]林: 부자夫子최저崔杼를 이른다. 그 일신상의 일은 경봉慶封도 평소 알고 있는 바이라는 말이다. 무구無咎의 말만을 따르므로注+[부주]林: 최저崔杼평소平素에 오직 당무구棠無咎동곽언東郭偃의 말만을 따른다는 말이다. 부형父兄(宗族)들이 진언進言할 수 없으니注+[부주]林: 최씨崔氏부형父兄들은 모두 등용登用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부자夫子가 생길까 크게 두려워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注+부자夫子최저崔杼를 이른다. ”라고 하니, 경봉慶封이 말하기를 “자네들은 우선 물러가 있게나.
吾圖之하리라하고 告盧蒲嫳注+嫳 慶封屬大夫 封以成彊之言告嫳 한대 盧蒲嫳曰 彼 君之讐也 天或者將棄彼矣로다
내 생각해 보겠네.”라고 하고서, 노포별盧蒲嫳에게 말하자注+경봉慶封속대부屬大夫이다. 경봉慶封최성崔成최강崔彊이 한 말을 에게 고한 것이다. 노포별盧蒲嫳이 말하기를 “저 최저崔杼는 우리 임금의 원수怨讐이니 아마도 하늘이 그를 버리려는 모양입니다.
彼實家亂이니 子何病焉注+君 謂齊莊公 爲崔杼所弑 [附注] 林曰 彼 謂崔杼
저들이 실로 가족간家族間내란內亂을 일으킨 것이니 당신께서 걱정할 게 뭐 있습니까?注+최저崔杼에게 시해弑害당한 제장공齊莊公을 이른다. [부주]林: 최저崔杼를 이른다.
崔之薄 慶之厚也注+崔敗 則慶專權 니라
최씨崔氏해지는 것은 경씨慶氏해지는 것입니다.注+최씨崔氏패망敗亡하면 경씨慶氏정권政權독점獨占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他日又告注+成彊復告한대 慶封曰 苟利夫子 必去之注+[附注] 林曰 苟有利於崔杼 必去偃與無咎하라
얼마 뒤에 경봉慶封에게 또 이 일을 고하니注+최성崔成최강崔彊이 다시 고한 것이다. 경봉慶封이 말하기를 “만약 부자夫子에게 유리有利하다면 반드시 그들을 제거除去하게나.注+[부주]林: 만약 최저崔杼에게 유리有利하다면 반드시 무구無咎제거除去하겠다는 말이다.
이면 吾助女注+[附注] 林曰 若有危難 我助汝去之 하리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 그대들을 돕겠네.注+[부주]林: 만약 위급危急환난患難이 생기면 내가 그대를 도와 그들을 제거除去하겠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九月庚辰 崔成崔彊殺東郭偃棠無咎於崔氏之朝하다
9월 경진일庚辰日최성崔成최강崔彊최씨崔氏외조外朝에서 동곽언東郭偃당무구棠無咎를 죽였다.
崔子怒而出하니 其衆皆逃注+[附注] 林曰 崔氏之衆 皆避亂而逃匿 하야 求人使駕로되 不得하야 使圉人駕하고 寺人御而出注+圉人 養馬者 寺人 奄士 하다
최자崔子는 노하여 〈구원救援을 청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자 하였으나, 그 수하手下의 무리가 모두 도망가서注+[부주]林: 최씨崔氏가중家衆(家臣)들이 모두 난리를 피해 도망가서 숨은 것이다. 수레에 말을 메울 사람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어서 어인圉人을 시켜 수레에 말을 메우게 하고 시인寺人을 시켜 수레를 몰게 하여 집을 나가면서注+어인圉人은 말을 기르는 자이고, 시인寺人환관宦官이다. 말하기를
且曰 崔氏有福하야 止余猶可注+恐滅家 禍不止其身라하고 遂見慶封注+[附注] 林曰 往見慶封告急한대 慶封曰崔慶一也注+言如一家 어늘 是何敢然注+[附注] 林曰 崔成崔彊何故敢如此
최씨崔氏에게 이 있어서 가 나에게서 그친다면 오히려 좋으련만.注+집안이 멸망滅亡할 것이고 자신自身에서 그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라고 하고서 드디어 경봉慶封을 찾아가니注+[부주]林: 경봉慶封에게 가서 위급危急한 사정을 고한 것이다. 경봉慶封이 말하기를 “최씨崔氏경씨慶氏는 한집안 같은데注+한집안과 같다는 말이다. , 저들이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였단 말입니까?注+[부주]林: 최성崔成최강崔彊이 무엇 때문에 감히 이런 짓을 하였느냐는 말이다.
請爲子討之하리라하고 使盧蒲嫳帥甲以攻崔氏하다
당신을 위하여 그들을 토벌하겠습니다.”라고 하고서 노포별盧蒲嫳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崔氏堞其宮而守之注+堞 短垣 使其衆居短垣內以守하니 弗克하야 使國人助之하야 遂滅崔氏하고 殺成與彊하고 而盡俘其하니 其妻縊注+妻 東郭姜하다
최씨崔氏가 그 궁장宮牆 위에 성가퀴를 쌓고 지키니注+은 낮은 담장이니, 그 무리에게 낮은 담장 안에 있으면서 지키게 한 것이다. 이길 수가 없어서 국인國人(都城 주민住民)에게 공격을 돕게 하여 드디어 최씨崔氏멸망滅亡시키고서 을 죽이고 그 집안의 사람을 다 포로로 잡으니, 그 아내 동곽강東郭姜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注+동곽강東郭姜이다.
嫳復命於崔子하고 且御而歸之注+嫳爲崔子御 [附注] 林曰 御而歸其家 하다
노포별盧蒲嫳이 돌아가서 최저崔杼에게 복명復命하고서 직접 수레를 몰아 최저崔杼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注+노포별盧蒲嫳최자崔子를 위해 수레를 몬 것이다. [부주]林: 최저崔杼를 수레에 태우고서 이 직접 그 수레를 몰아 최저崔杼를 그 집으로 데려다 준 것이다.
至則無歸矣하니 乃縊注+ [附注] 林曰 妻死家滅 故無所歸하다
최저崔杼가 집에 도착하자 그 아내가 죽고 없으니 곧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注+‘그 집으로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볼 수 없으니 하다’는 점괘占卦가 마침내 들어맞은 것이다. [부주]林: 아내가 죽고 집안이 멸망滅亡하였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한 것이다.
崔明夜辟諸大墓注+開先人之冢以藏之 하고 辛巳 崔明來奔하다
최명崔明이 밤에 최저崔杼최씨崔氏선영先塋매장埋葬[辟]하고서注+선인先人의 무덤을 열고 최저崔杼를 묻은 것이다. , 신사일辛巳日나라로 도망해 왔다.
慶封當國注+當國 秉政 하다
경봉慶封나라의 정권政權담당擔當하였다.注+당국當國정권政權을 잡는 것이다.
[傳]楚薳罷如晉涖盟注+罷 令尹子蕩 報荀盈也 하니 晉侯享之하다
나라 위파薳罷나라에 가서 결맹結盟참가參加하니注+위파薳罷영윤令尹자탕子蕩이다. 순영荀盈나라로 가서 결맹結盟참가參加한 데 대한 보답報答으로 위파薳罷나라로 가서 결맹結盟참가參加한 것이다. 진후晉侯연회宴會를 열어 그를 접대接待하였다.
將出 賦旣醉注+旣醉 詩大雅 曰 以美晉侯 比之太平君子也 한대 叔向曰
연회宴會를 마치고 나오려 할 때 위파薳罷가 〈기취旣醉를 읊자注+기취旣醉〉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篇名이다. 그 에 “이미 술로써 취하게 하셨고 이미 은덕恩德으로써 배부르게 하셨으니, 군자君子(周成王)께서는 만년萬年장수長壽 누리소서. 하늘이 큰 으로 당신을 도우실[介] 겁니다.”라고 하였는데, 위파薳罷가 이 로써 진후晉侯찬미讚美하여 태평太平을 이룩한 군자君子(成王)에 비유한 것이다. , 숙향叔向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薳氏之有後於楚國也 宜哉로다
위씨薳氏후손後孫나라에서 대대로 녹위祿位를 누리는 것이 당연當然하다.
承君命하야 不忘敏注+[附注] 林曰 不忘其臨事之敏達 하니 子蕩將知政矣리라
임금의 을 받고 나와서 민첩敏捷하게 응대應對하기를 잊지 않았으니注+[부주]林: 그가 일에 임해 민첩敏捷달성達成하기를 잊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탕子蕩(薳罷)은 장차 정권政權을 잡게 될 것이다.
敏以事君이면 必能養民이니 政其焉往注+言政必歸之 이리오
민첩敏捷함으로 임금을 섬긴다면 반드시 백성을 잘 양육養育할 수 있으니 정권政權이 어디로 가겠는가?注+정권政權이 반드시 그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傳]崔氏之亂注+在二十五年 申鮮虞來奔注+[附注] 林曰 申鮮虞 莊公之黨하야 僕賃於野注+[附注] 林曰 申鮮虞貧無資 爲人僕賃於魯之野하야 以喪莊公注+爲齊莊公服喪 하다
최씨崔氏반란叛亂注+최씨崔氏반란叛亂양공襄公 25년에 있었다.신선우申鮮虞나라로 도망해 와서注+[부주]林: 신선우申鮮虞제장공齊莊公이다. 교야郊野에서 머슴 노릇을 하면서注+[부주]林: 신선우申鮮虞가 가난하여 자생資生(生活)할 수 없으므로 나라 교야郊野에서 남의 머슴 노릇을 한 것이다. 제장공齊莊公을 위해 상복喪服을 입었다.注+제장공齊莊公을 위해 상복喪服을 입은 것이다.
楚人召之하니 遂如楚하야 爲右尹注+傳言楚能用賢 하다
겨울에 나라가 그를 부르니 드디어 나라로 가서 우윤右尹이 되었다.注+전문傳文나라가 능히 현자賢者등용登用한 것을 말한 것이다.
[傳]十一月乙亥朔 日有食之하다
11월 초하루 을해일乙亥日일식日食이 있었다.
辰在申하니 司曆過也 再失閏矣注+謂斗建指申 周十一月 今之九月 斗當建戌而在申 故知再失閏也 文十一年 三月甲子 至今年七十一歲 應有二十六閏 今長曆推得二十四閏 通計少再閏 釋例言之詳矣 [附注] 林曰 司曆之過差也
이때 두병斗柄(辰)이 신방申方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을 맡은 자가 잘못 계산하여 윤달을 두 번 넣어야 하는데 넣지 않았다.注+두병斗柄신방申方을 가리킨 것을 이른다. 주력周曆 11월은 지금의 9월이니, 두병斗柄술방戌方을 가리켜야 하는데 신방申方을 가리켰다. 그러므로 윤달이 두 번 빠진 것을 안 것이다. 문공文公 11년 3월 갑자일甲子日로부터 금년까지 71년이니, 응당 윤달이 26번 들었어야 하는데 지금 장력長曆으로 추산推算해보면 윤달이 24번에 불과하니, 통산通算하면 두 번의 윤달이 부족하다. 《춘추석례春秋釋例》에 자세히 말하였다. [부주]林: 을 맡은 자의 과실過失이다.
역주
역주1 昭定哀之春秋 將以終於吳越焉爾矣 : 未詳이다.
역주2 弱命之君 : 弱君之命의 倒置인 듯하다.
역주3 王[主]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主’로 바로잡았다.
역주4 妄[衰] : 저본에는 ‘妄’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衰’로 바로잡았다.
역주5 枕之股而哭之 : 僖公 28년 傳의 “枕之股而哭之”를 杜氏도 林注와 같이 解釋하였으나, 譯者는 杜注를 따르지 않고 〈楊注〉를 취해 衛成公이 武叔의 다리를 베고 곡한 것으로 번역하였다. 여기서도 林注를 따르지 않고 石惡이 寗喜의 다리를 벤 것으로 번역하였다.
역주6 仕而廢其事……將誰愬乎 : 人臣이 國外로 出奔하되 本國君王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出奔하는 자의 道理이다. 子鮮이 晉나라에 벼슬하여 職務를 제대로 修行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子鮮이 無能하기 때문에 逐出된 것으로 여길 것이니 衛君의 惡이 드러나지 않지만, 만약 子鮮이 晉나라에 벼슬하여 職務를 잘 修行하면 사람들은 子鮮이 才能이 있는데도 그 임금이 逐出했다 하여 衛君을 비난할 것이니, 이는 임금의 惡을 드러내는 것이다. 남의 나라에 벼슬하여 그 職務를 修行하지 않는 것도 罪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衛君을 非難하게 하는 것도 罪이니, 이런 苦衷을 누구에게 호소하겠느냐는 뜻이다.
역주7 如稅服 : 〈正義〉에 “禮에 稅服이란 名稱이 없으니, ‘如稅服’이 무슨 服인지 모르겠다.”고 하였고, 服虔의 說에 의하면 “脫喪한 뒤에 喪事의 소식을 듣고서 비로소 服을 입는 것을 ‘稅服’이라 한다.”고 하였다. 〈楊注〉에 의하면 “繐服은 올이 가늘고 성겨 小功服의 올수와 같다. 繐服은 小功五月服에 불과한데 여기에 ‘終身’이라 한 것은 5개월이 되기 전에 衛獻公이 죽었기 때문인 듯하다.”고 하였다.
역주8 臣六十矣 : 나는 이미 60개의 邑을 所有하였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9 一乘之邑 : 一乘의 邑은 四方 10里이고 四井之邑은 四方 2里이다. 〈正義〉
역주10 不可 : 戰爭을 반드시 終熄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11 : 介는 主賓의 補佐이다.
역주12 仲尼……文辭 : 〈楊注〉‧《左氏會箋》 등에 의하면 孔子가 뒤에 이때의 史料를 읽다가 賓主 사이에 文辭가 많았던 것을 보고서 弟子들에게 이 禮를 기록하여 參考에 對備하게 한 것이다. 文은 禮節의 儀式이고, 辭는 相對를 說服하는 말이다.
역주13 齊言 : 양쪽의 盟辭를 統一시키는 것이다. 〈楊注〉
역주14 事利而已 : 오직 이익만을 일삼을 뿐이라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15 由[猶] : 저본에는 ‘由’로 되어 있으나 朱申의 《左傳句解》에 의거하여 ‘猶’로 바로잡았다.
역주16 單斃其死 : 信義가 없는 사람은 제명으로 죽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17 不病 : 杜氏는 病도 없이 急死하는 뜻으로 풀고, 朱氏는 스스로의 병통(缺點)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었으나, 이 설들을 따르지 않고, 食言은 信義를 지키지 않는 것이고, 不病은 남을 해칠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한 〈楊注〉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8 守病 : 晉軍을 괴롭히는 楚軍을 守禦한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19 : 晉軍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20 又不及是 : 楚人의 마음이 이처럼 사나운 데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正義〉
역주21 弱命之君……小是 : 經秋七月條의 杜注 참고할 것.
역주22 辨具 : 未詳이다. 《漢語大辭典》에는 飮食을 準備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正義〉에는 牛耳를 잡는 類라고 하였다.
역주23 : 欣喜의 뜻이니, 神人을 모두 기쁘게 한 것이라고 한 〈楊注〉 및 《左氏會箋》 등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24 未見君子……我心則降 : 이 詩는 出役한 大夫의 아내가 풀벌레의 암수가 울음소리로 서로 짝을 찾고 메뚜기의 암수가 서로 붙어 있는 것을 보자, 남편 생각이 나서 “君子(남편)를 보지 못해 근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네. 군자를 보고 군자와 交合하면 내 마음이 가라앉으련만.”이라고 읊은 詩인데, 子展은 詩의 原義와 관계없이 斷章取義하여 鄭나라를 도와줄 君子를 만나지 못해 근심하였는데 이미 君子를 만나 서로 뜻이 통하였으니 몸을 낮추어 晉나라에 복종하겠다는 뜻으로 이 詩를 읊은 것이다. 覯는 男女가 交合하는 것이다.
역주25 除[降] : 저본에는 ‘除’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6 第[笫] : 저본에는 ‘第’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笫’로 바로잡았다.
역주27 寡君在 武何能焉 : 經營해 成功한 것이 모두 晉君의 功이고 趙孟 자신의 能力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주28 匪交 : 《毛詩正義》 및 《詩經集傳》에는 ‘彼交’로 되어 있다. 〈楊注〉에 “匪와 彼는 古字에 通用이었다. 成公 14년 傳에는 이 詩를 ‘彼交匪敖’로 인용하였다.”고 하였다.
역주29 請免死之邑 : 이번에 周旋한 結盟이 失敗로 끝났다면 向戌은 죽음을 免하지 못할 것이지만, 다행히 結盟의 일이 잘 마무리되어 죽음을 免하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賞으로 邑을 달라고 要請한 것이다.
역주30 廢一不可 : 兵器의 材料는 쇠와 나무이지만 製造할 때 물과 불이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工場을 세울 敷地(흙)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五材 중에 하나가 없어도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역주31 彼己之子 : 彼己의 ‘己’가 今本에는 ‘其’로 되어 있다. 語中助辭로 뜻이 없다. 〈楊注〉
역주32 司直 : 官員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맡은 職名이다.
역주33 取[娶] : 저본에는 ‘取’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娶’로 바로잡았다.
역주34 父兄莫得進 : 棠無咎와 東郭偃의 말만을 따르므로 父兄들이 進言할 수도 없거니와 설사 進言한다 하더라도 듣지 않는다는 말이다. 進을 進用(任用)으로 풀이한 林氏의 說은 옳지 않은 듯하다.
역주35 : 家族과 家臣 등을 이른다.
역주36 入於其宮……凶 : 《周易》 困卦六三爻辭인데, 崔杼가 東郭姜을 아내로 취하기 위해 占을 쳤을 때 이 卦가 나왔다. 〈襄公 25년 傳〉
역주37 旣醉以酒……介爾景福 : 毛詩에 의하면 이 詩는 周成王이 宗廟에 祭祀를 마치고서 群臣을 接待한 것을 읊은 詩이다. 毛詩와 朱子注에는 介를 大로 訓詁하여 “너의 큰 복을 크게 하리라.”로 해석하였고, 鄭玄의 箋에는 介를 助로 訓詁하여 “하늘이 너에게 큰 복으로 도와줄 것이다.”로 해석하였다. 鄭玄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5)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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