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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6)

춘추좌씨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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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年春王正月이라
20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經]夏 曹公孫會自鄸出奔宋注+無傳 鄸 曹邑하다
여름에 나라 공손公孫에서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이 없다. 일찍이 옥백玉帛사자使者로 와서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나라 이다.
가을에 위후衛侯도살盜殺하였다.注+제표齊豹가 한 행위가 의롭지 못하였기 때문에 ‘’로 기록한 것이니, 〈31년 에〉 이른바 ‘명성名聲을 구하지만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經]冬十月 宋華亥向寧華定出奔陳注+與君爭而出 皆書名 惡之하다
겨울 10월에 나라 화해華亥상녕向寧화정華定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임금과 다투다가 출분出奔한 것이다. 모두 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들을 미워한 것이다.
[經]十有一月辛卯 蔡侯廬卒注+無傳 未同盟而赴以名 하다
11월 신묘일辛卯日채후蔡侯하였다.注+이 없다. 동맹국同盟國이 아니었으나,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傳]二十年春王二月己丑 日南至注+是歲朔旦 冬至之歲也 當言正月己丑朔 日南至 時史失閏 閏更在二月後 故經因史而書正月 傳更具於二月記南至日 以正歷也하다
20년 봄 주왕周王 2월 기축일己丑日동지冬至[日南至]가 들었다.注+이해는 삭단朔旦(正月 초하루)에 동지冬至가 든 해이니, 마땅히 ‘정월기축삭일남지正月己丑朔日南至’라고 말해야 한다. 〈작년 12월에 윤월閏月을 넣었어야 했는데〉 당시 사관史官윤월閏月을 빠뜨리고서 넣지 않았다가 윤월閏月을 다시 2월 뒤에 넣었다. 그러므로 사관史官의 기록에 따라 ‘정월正月’로 기록하였고, 은 다시 2월에 구체적으로 남지일南至日을 기록하여 을 바로잡았다.
梓愼注+氛 氣也 時魯侯不行登臺之禮 使梓愼望氣하고 曰 今玆宋有亂하야 國幾亡이라가 三年而後弭하고 蔡有大喪注+爲宋華向出奔 蔡侯卒傳하리라 叔孫昭子曰 然則戴桓也注+戴族 華氏 桓族 向氏
재신梓愼망분望氛하고서注+이다. 이때 노후魯侯에 올라 망기望氣하는 를 행하지 않고 재신梓愼을 보내어 망기望氣하게 한 것이다. 말하기를 “금년에 나라에는 난리가 나서 나라가 거의 망하게 되었다가 3년이 지난 뒤에 안정 될 것이고, 나라에는 대상大喪이 있을 것입니다.注+나라 화씨華氏상씨向氏출분出奔하고 채후蔡侯의 배경이다. ”고 하니, 숙손소자叔孫昭子가 말하기를 “나라에 난리가 일어난다면 〈난리를 일으키는 자가〉 대공戴公환공桓公종족宗族일 것이다.注+대족戴族화씨華氏이고 환족桓族상씨向氏이다.
汰侈無禮已甚하니 亂所在也注+傳言妖由人興
그들은 교만하고 사치하여 무례無禮함이 너무 심하니 화란禍亂원인原因내재內在한 바이다.注+전문傳文재화災禍[妖]는 사람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費無極言於楚子曰 建與伍奢將以方城之外叛이니이다
비무극費無極초자楚子에게 말하기를 “태자太子오사伍奢와 함께 방성方城 밖의 인민人民들을 거느리고서 반란叛亂을 일으키려 합니다.
自以爲猶宋鄭也注+[附注] 朱曰 自比於宋鄭之國어늘 齊晉又交輔之하야 將以害楚 其事集矣리이다
저들은 스스로 나라‧나라 같은 제후諸侯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데注+[부주]朱: 스스로 나라나 나라와 같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 나라와 나라가 또 서로 저들을 도와 나라를 해치려 하니, 그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고 하였다.
王信之하야 問伍奢한대 伍奢對曰 君一過多矣注+一過 納建妻어늘 何信於讒이닛고 王執伍奢注+忿奢切言하고 使城父司馬奮揚殺大子한대
초평왕楚平王은 그 말을 믿고서 오사伍奢에게 물으니, 오사伍奢가 대답하기를 “임금님께서는 〈무극無極참언讒言을 듣고서 며느리로 맞이한 여인女人을 아내로 삼으신〉 한 번의 잘못도 그 과오過誤가 매우 큰데注+일과一過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삼은 것을 이른다. , 어째서 또 참언讒言을 믿으십니까?”라고 하니, 평왕平王오사伍奢를 잡아 가두고서注+오사伍奢직언直言[切言]에 분노忿怒한 것이다. , 성보城父사마司馬분양奮揚을 보내어 태자太子를 죽이게 하였다.
未至 而使遣之注+知大子寃 故遣令去 [附注] 林曰 奮揚 楚大夫 時爲城父司馬 朱曰 奮揚未至城父 先使人報大子 遣之使行 하니
분양奮揚성보城父에 당도하기 전에 태자太子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망가게 하였다.注+태자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떠나도록 보내준 것이다. [부주]林: 분양奮揚나라 대부大夫로 이때 성보城父사마司馬가 되었다. [부주]朱: 분양奮揚성보城父에 당도하기 전에 먼저 태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떠나도록 일러 도망가게 한 것이다.
三月 大子建奔宋하다
3월에 태자太子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王召奮揚한대 奮揚使城父人執己以至하다
평왕平王분양奮揚소환召還하니 분양奮揚성보城父 사람들에게 자기를 체포逮捕국도國都로 가게 하였다.
王曰 言出於余口하야 大於爾耳 誰告建也 對曰 臣告之니이다
평왕平王분양奮揚에게 “말이 내 입에서 나와 너의 귀로 들어갔을 뿐인데, 누가 에게 알렸단 말이냐?”고 하니, 분양奮揚이 대답하기를 “이 알려주었습니다.
君王命臣曰 事建如事余하라하시니
전에 임금님께서 에게 ‘태자太子 섬기기를 나를 섬기듯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注+佞 才也 이나 不能苟貳하야 奉初以還注+奉初命以周旋 [附注] 林曰 不能苟且而懷二心하니 不忍後命이니이다 故遣之注+[附注] 林曰 不忍奉後命以殺大子 니이다
이 변변치 못하지만注+이다. 구차하게 두마음을 품을 수 없어서 초명初命을 받들어 주선周旋[還]하였으니注+처음에 내린 명을 받들어 주선周旋(輔佐)하였다는 말이다. [부주]林: 구차하게 두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말이다. 차마 후명後命을 받들 수 없기 때문에 도망가게 한 것입니다.注+[부주]林: 차마 후명後命을 받들어 태자太子를 죽일 수 없었다는 말이다.
旣而悔之 亦無及已이니다
이윽고 후회後悔하였으나 이미 미칠 수 없었습니다.”고 하였다.
王曰 而敢來 何也 對曰 使而失命하고 召而不來 是再奸也注+奸 犯也 逃無所入이니이다 王曰 歸하야 從政如他日注+善其言 舍使還하라
평왕平王이 “감히 온 것은 어째서이냐?”고 묻자, 분양奮揚이 “사명使命을 받고도 사명使命완수完遂하지 못하고, 소명召命을 받고도 오지 않는다면 이는 재차 왕명王命하는 것이니注+함이다. , 도망간다 해도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고 대답하니, 평왕平王은 “돌아가서 전일처럼 정무政務를 살피라.注+그 말을 착하게 여겨 용서容恕[舍]해 돌려보낸 것이다. ”고 하였다.
無極曰 奢之子材하니 若在吳 必憂楚國注+[附注] 朱曰 伍奢之子 皆有知謀 若使出奔在吳 必能貽楚之憂 이리니
무극無極평왕平王에게 말하기를 “오사伍奢의 아들들은 인재人才이니, 그들이 만약 나라에 머문다면 반드시 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注+[부주]朱: 오사伍奢의 아들은 모두 지모知謀가 있으니, 만약 출분出奔하여 나라에 체재滯在한다면 반드시 나라에 근심을 끼칠 것이라는 말이다.
盍以免其父召之니잇고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그 아비를 사면赦免한다는 조건條件으로 그들을 부르지 않으십니까?
彼仁하니 必來리이다
저들은 인자仁者이니 반드시 올 것입니다.
不然이면 將爲患이리이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장차 우환憂患거리가 될 것입니다.”고 하였다.
王使召之曰 來하라
그러자 평왕平王사자使者를 보내어 그들을 부르며 말하기를 “돌아오라.
吾免而父하리라
내 너희 아비를 사면赦免하겠다.”고 하였다.
棠君尙謂其弟員注+棠君 奢之長子尙也 爲棠邑大夫 員 尙弟子胥曰 爾適吳하라
당군棠君오상伍尙이 그 아우 오원伍員에게 말하기를注+당군棠君오사伍奢장자長子오상伍尙이다. 당읍棠邑대부大夫가 되었다. 오원伍員오상伍尙의 아우 자서子胥이다. “너는 나라로 가거라.
我將歸死하리라
나는 장차 나라로 돌아가서 죽겠다.
吾知不逮注+自以知不及員하니 我能死어니와 爾能報리라
나의 지혜知慧가 너에 미치지 못하니注+스스로 지혜知慧오원伍員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긴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죽을 수 있을 뿐이지만 너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
聞免父之命이면 不可以莫之奔也 親戚爲戮이면 不可以莫之報也
아버지를 사면赦免하겠다는 을 들었으면 달려가지 않을 수 없고, 친척親戚(父母를 이름)이 죽음을 당하였으면 원수怨讐를 갚지 않을 수 없다.
奔死免父 孝也 度功而行 仁也注+仁者貴成功 擇任而往 知也注+員任報讐 知死不辟 勇也注+尙爲勇
달려가 아버지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이고, 성공成功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은 이고注+인자仁者성공成功을 중요[貴]하게 여긴다. , 〈감당할 수 있는〉 임무任務를 선택해서 〈그 길로〉 가는 것은 이고注+오원伍員임무任務복수復讐이다. , 죽을 줄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것은 이다.注+오상伍尙은 〈가면 반드시 죽을 줄을 알면서도 갔으니〉 용감勇敢함이 된다.
父不可棄注+俱去爲棄父 名不可廢注+俱死爲廢名 爾其勉之하라
아버지를 버릴 수도 없고注+함께 떠나가는 것은 아버지를 버리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명예名譽를 버릴 수도 없으니注+함께 죽는 것은 명예名譽를 버리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 너는 복수復讐에 힘쓰라.
相從爲愈注+愈 差也 [附注] 林曰 比之相從俱奔俱死 皆爲差勝也니라
함께 가서 죽는 것보다 낫다.注+는 나음이다. [부주]林: 서로 따라 함께 출분出奔하거나 함께 죽는 것에 비해 모두 나음이 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伍尙歸하니 奢聞員不來하고 曰 楚君大夫其注+將有吳憂 不得早食ᄂ저
오상伍尙이 돌아오니, 오사伍奢오원伍員이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나라 임금과 대부大夫들은 아마도 간식旰食하게 될 것이다.注+장차 나라에 대한 근심으로 아침밥도 일찍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楚人皆殺之하다
초인楚人은 그 부자父子를 다 죽였다.
員如吳하야 言伐楚之利於州于注+州于 吳子僚하니 公子光曰 是宗爲戮하야 而欲反其讐 不可從也注+光 吳公子闔廬也 反 復也
오원伍員나라로 가서 오왕吳王주우州于에게 나라를 토벌討伐할 수 있는 이점利點을 말하니注+주우州于오자吳子이다., 공자公子오왕吳王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종족宗族나라에서 피살被殺되었기 때문에 그 원수怨讐를 갚으려는 것이니 그 말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注+나라 공자公子합려闔廬이다. 이다. ”고 하였다.
員曰 彼將有他志注+光欲弑僚 不利員用事 故破其議 而員亦知之하니 余姑爲之求士하고 而鄙以待之注+計未得用 故進勇士以求入於光 退居邊鄙하리라 乃見鱄設諸焉注+鱄諸 勇士 [附注] 林曰 見之於公子光하고 而耕於鄙注+爲二十七年吳弑僚傳하다
오원伍員은 “저 공자公子은 아마도 다른 뜻을 가진 것 같으니注+시해弑害하고자 하여 오원伍員용사用事(執權)하는 것을 불리不利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의 건의建議파괴破壞한 것이다. 오원伍員도 그가 다른 뜻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 나는 우선 그를 위해 용사勇士해 주고서, 나는 시골에서 때를 기다리겠다.注+오원伍員은 자기의 계모計謀가 쓰이지 않기 때문에 용사勇士추천推薦[進]해 에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서 자기는 물러나 변비邊鄙에 산 것이다. ”고 하고서, 이에 전설제鱄設諸를 그에게 추천推薦[見]하고 물러나注+전제鱄諸용사勇士이다. [부주]林: 전제鱄諸공자公子에게 추천推薦한 것이다. 시골에서 밭을 갈았다.注+27년에 나라가 그 임금 시해弑害의 배경이다.
[傳]宋元公無信多私하야 而惡華向하다
송원공宋元公신의信義가 없고 사심私心이 많아서 화씨華氏상씨向氏를 미워하였다.
華定華亥與向寧謀曰 亡愈於死 先諸注+恐元公殺己 欲先作亂라하니 華亥僞有疾하야 以誘群公子하다
화정華定화해華亥상녕向寧모의謀議하기를 “망명亡命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으니 우리가 먼저 손을 씁시다.注+원공元公이 자기들을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반란叛亂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고 하니, 화해華亥이 난 것으로 위장僞裝하여 공자公子들을 유인誘因하였다.
公子問之하니 則執之注+[附注] 林曰 群公子來問病 則因而執之 하다
공자公子들이 문병問病하기 위해 오니 그들을 잡아 가두었다.注+[부주]林: 공자公子들이 문병問病하러 오자, 그 기회를 이용해 공자公子들을 잡은 것이다.
夏六月丙申 殺公子寅公子御戎公子朱公子固公孫援公孫丁하고 拘向勝向行於其廩注+八子 皆公黨하다
여름 6월 병신일丙申日공자公子공자公子어융御戎공자公子공자公子공손公孫공손公孫을 죽이고, 향승向勝향행向行을 곳간에 가두었다.注+여덟 사람은 모두 원공元公이다.
公如華氏請焉하니 弗許하고 遂劫之注+劫公하다
원공元公화씨華氏에게 가서 석방釋放하기를 청하니 허락許諾하지 않고서 드디어 원공元公협박脅迫하였다.注+원공元公협박脅迫한 것이다.
癸卯 取大子欒與母弟辰公子地以爲質注+欒 景公也 辰及地 皆元公弟 하니 公亦取華亥之子無慼向寧之子羅華定之子啓하야 與華氏盟하고 以爲質注+爲此冬華向出奔傳하다
계묘일癸卯日태자太子모제母弟공자公子를 잡아 인질人質로 삼으니注+경공景公이고, 는 모두 원공元公의 아우이다. , 원공元公화해華亥의 아들 무척無慼상녕向寧의 아들 화정華定의 아들 를 잡아 가두고서 화씨華氏결맹結盟하고서 그들을 인질人質로 삼았다.注+이해 겨울에 화씨華氏상씨向氏출분出奔의 배경이다.
[傳]衛公孟縶狎齊豹注+公孟 靈公兄也 齊豹齊惡之子 爲衛司寇 狎 輕也하야 奪之司寇與鄄注+鄄 豹邑하야 有役則反之하고 無則取之注+縶足不良 故有役則以官邑還豹使行하다
나라 공맹公孟제표齊豹경시輕視하여注+공맹公孟위영공衛靈公이다. 제표齊豹제오齊惡의 아들로 나라 사구司寇가 되었다. 경시輕視함이다. 그의 관직官職사구司寇와 그의 채지采地견읍鄄邑을 빼앗고는注+제표齊豹채읍采邑이다. 일이 있으면 되돌려 주고 없으면 다시 빼앗았다.注+공맹公孟은 다리가 불인不仁(완전하지 못함)하기 때문에 역사役事가 있으면 관직官職채읍采邑제표齊豹에게 돌려주어 역사役事처리處理[行]하게 한 것이다.
公孟惡北宮喜褚師圃하야 欲去之注+喜 貞子하다
공맹公孟북궁희北宮喜저사포褚師圃를 미워하여 그들을 제거하고자 하였다.注+정자貞子이다.
公子朝通于襄夫人宣姜注+宣姜 靈公嫡母이러니하야 而欲以作亂하다
공자公子위양공衛襄公부인夫人선강宣姜하고는注+선강宣姜영공靈公적모嫡母이다. 겁이 나서 변란變亂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故齊豹北宮喜褚師圃公子朝作亂하다
그러므로 제표齊豹북궁희北宮喜저사포褚師圃공자公子변란變亂을 일으킨 것이다.
齊豹見宗魯於公孟注+薦達也하야注+爲公孟驂乘이러니 將作亂而謂之曰 公孟之不善 子所知也 勿與乘하라
당초當初제표齊豹종로宗魯공맹公孟에게 추천推薦하여注+추천推薦[薦達]함이다.참승驂乘으로 삼게 하였더니注+공맹公孟참승驂乘이 된 것이다. , 제표齊豹을 일으키려 할 때 종로宗魯에게 말하기를 “공맹公孟불선不善은 그대도 아는 바이니 그와 함께 수레를 타지 말라.
吾將殺之하노라 對曰 吾由子事公孟하니 子假吾名焉이라 故不吾遠也注+言子借我以善名 故公孟親近我니라
내 그를 죽이려 한다.”고 하니, 종로宗魯가 대답하기를 “내가 그대의 천거薦擧로 인해 공맹公孟을 섬기게 되었는데, 그대가 나를 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있는 사람으로 추천推薦[假]하였기 때문에 공맹公孟이 나를 멀리하지 않았습니다.注+그대가 나를 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있는 사람으로 추천推薦[借]하였기 때문에 공맹公孟이 나를 가까이하였다는 말이다.
雖其不善 吾亦知之 抑以利故 不能去하니 是吾過也
그가 불선不善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지만 이익利益 때문에 그를 떠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나의 잘못입니다.
今聞難而逃 是僭子也注+使子言不信也
지금 그에게 화난禍難이 닥칠 것을 듣고서 도망한다면 이는 그대의 말(전에 훌륭한 사람이라고 천거했던 말)을 거짓말[僭]로 만드는 것입니다.注+그대의 말을 거짓말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다.
子行事乎ᄂ저
그대는 뜻한 일을 거행擧行하십시오.
吾將死之하리라
나는 장차 이 일(그대의 말을 거짓말로 만들지 않기 위한 일)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注+周 猶終竟也하고 而歸死於公孟 其可也니라
비밀秘密[周]을 누설漏泄하지 않는 것으로 그대의 은혜恩惠보답報答하고注+종경終竟(끝까지)과 같다. , 돌아가서 공맹公孟을 위해 죽는 것이 아마도 옳을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丙辰 衛侯在平壽注+平壽 衛下邑하다
병진일丙辰日위후衛侯평수平壽에 있었다.注+평수平壽나라 하읍下邑이다.
公孟有事於蓋獲之門外注+有事 祭也 蓋獲 衛郭門하니 齊子氏帷於門外하야 而伏甲焉注+齊豹之家 [附注] 林曰 齊豹之家 帷設於蓋獲門外 若今하고 使祝鼃寘戈於車薪以當門注+要其前也하고 使一乘從公孟以出注+亦如前車寘戈於薪 尋其後하다 使華齊御公孟注+[附注] 林曰 又使其黨華齊爲公孟御車以出하고 宗魯驂乘하다
공맹公孟개획문蓋獲門 밖에서 제사祭祀를 지내기로 하였는데注+유사有事제사祭祀이다. 개획蓋獲나라 성곽城郭이다. , 제자씨齊子氏는 문밖에 장막을 치고 그 속에 갑사甲士매복埋伏시키고서注+제자씨齊子氏제표齊豹가솔家率이다. [부주]林: 제표齊豹가솔家率개획문蓋獲門 밖에 장막을 친 것이니, 지금의 ‘간위看位’ 같은 것이다. , 축사祝史에게 섶을 실은 수레에 창을 숨겨 문을 막게 하고注+그 앞을 막은 것이다. , 수레 한 채를 보내어 공맹公孟의 수레를 따라 성 밖으로 나오게 하고注+역시 앞의 수레처럼 창을 섶 속에 숨기고서 그 뒤를 따라오게[尋] 한 것이다. , 화제華齊에게 공맹公孟의 수레를 몰게 하고注+[부주]林: 또 그 화제華齊에게 공맹公孟의 수레를 몰고 나오게 한 것이다. 종로宗魯에게 참승驂乘하게 하였다.
及閎中注+ 齊氏用戈擊公孟한대 宗魯以背蔽之하니 斷肱하고 以中公孟之肩하다
공맹公孟의 수레가 곡문曲門 안[閎中]에 이르렀을 때注+곡문曲門 가운데이다. 제씨齊氏가 창으로 공맹公孟을 치자 종로宗魯가 등으로 그 창을 막으니 창이 종로宗魯의 팔을 자르고 나가 공맹公孟의 어깨에 꽂혔다.
皆殺之注+[附注] 林曰 齊氏之衆 以戈擊公孟縶 宗魯己以背代公孟受戈 斷宗魯之肱 因擊中公孟肩하다
제표齊豹는 그들을 모두 죽였다.注+[부주]林: 제씨齊氏의 무리가 창으로 공맹公孟을 치자, 종로宗魯공맹公孟을 대신해 자기의 등으로 그 창을 받으니, 그 창이 종로宗魯의 팔을 자르고 나가 공맹公孟의 어깨에 꽂힌 것이다.
公聞亂하고하야 驅自閱門入注+[附注] 林曰 閱門 衛門名 靈公乘驅車 自閱門入國하다
위영공衛靈公변란變亂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수레를 타고서 급히 달려 열문閱門을 통해 국도國都로 들어갔다.注+[부주]林: 열문閱門나라 성문城門의 이름이다. 영공靈公이 수레를 타고서 수레를 달려 열문閱門을 통해 국도國都로 들어간 것이다.
慶比御公하고 公南楚驂乘하고 使華寅乘貳車注+公副車하다
이때 경비慶比의 수레를 몰고 공남초公南楚참승驂乘하고, 화인華寅에게 부거副車[貳車]를 타고注+이거貳車영공靈公부거副車이다. 〈따르게 하였다.
及公宮 鴻駵魋于公注+鴻駵魋復就公乘 一車四人하다
의 수레가〉 공궁公宮에 이르렀을 때 홍류퇴鴻駵魋의 수레에 사승駟乘하였다.注+홍류퇴鴻駵魋가 다시 의 수레에 올라 한 수레에 네 사람이 탄 것이다.
公載寶以出하다
보물寶物을 수레에 싣고 공궁公宮을 나왔다.
褚師子申遇公于馬路之衢하야 遂從注+從公出 [附注] 林曰 馬路 衢名하다
저사자신褚師子申마로馬路의 네거리에서 을 만나 드디어 을 따랐다.注+을 따라 나간 것이다. [부주]林: 마로馬路는 거리의 이름이다.
過齊氏 使華寅肉袒하고 執蓋以當其闕注+肉袒 示不敢與齊氏爭 執蓋蔽公而去 闕 空也 以蓋當侍從空闕之處하다
제씨齊氏의 집 앞을 지날 때 화인華寅에게 윗옷을 벗고[肉袒] 수레의 덮개를 들고서 빈 곳을 막게 하였다.注+윗옷을 벗어 감히 제씨齊氏와 다투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고서 수레의 덮개를 들어 을 가리고서 나간 것이다. 은 빈 곳이니, 수레 덮개를 가지고 시종侍從이 없는 곳을 막은[當] 것이다.
齊氏射公하니 中南楚之背하다
제씨齊氏에게 활을 쏘니 그 화살이 남초南楚의 등에 꽂혔다.
公遂出하니 寅閉郭門注+不欲令追者出하고 踰而從公注+踰郭出하다
이 드디어 성외城外로 나가니 화인華寅성곽城郭의 문을 닫고서注+추격군追擊軍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성을 넘어 을 따랐다.注+을 넘어 나온 것이다.
公如死鳥注+死鳥 衛地하니 析朱鉏宵從竇出하야 徒行從公注+朱鉏 成子黑背孫하다
사조死鳥로 가니注+사조死鳥나라 땅이다. 석주서析朱鉏가 밤에 수챗구멍으로 빠져나와 걸어서 을 따라갔다.注+주서朱鉏성자흑배成子黑背의 손자이다.
齊侯使公孫靑聘于衛注+靑 頃公之孫하다
제후齊侯공손公孫나라에 빙문사聘問使로 보내었다.注+제경공齊頃公의 손자이다.
旣出 聞衛亂하고 使請所聘注+[附注] 林曰 使請命於齊侯 問所致聘 하니 公曰 猶在竟內하니 則衛君也
공손公孫은 출발한 뒤에 나라에 변란變亂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본국本國으로〉 사람을 보내어 빙문聘問할 상대[所]를 묻게 하니注+[부주]林: 제후齊侯에게 사람을 보내어 지시指示를 청하여[請命], 빙문聘問거행擧行상대相對를 묻게 한 것이다. , 제경공齊景公이 “위군衛君이 아직 나라 경내境內에 있으니 그가 나라 임금이다.”고 하였다.
乃將事焉注+將事 行聘事하야 遂從諸死鳥하야 請將事注+[附注] 林曰 遂從衛侯於死鳥 한대 辭曰 亡人不佞하야 失守社稷하고 越在草莽하니 吾子無所辱君命이라
공손公孫은 이에 위영공衛靈公에게 빙문聘問를 거행하기 위해注+장사將事빙문聘問의 일을 거행擧行함이다. 드디어 사조死鳥로 가서 빙례聘禮를 거행하기를 청하니注+[부주]林: 드디어 위후衛侯를 찾아 사조死鳥로 간 것이다. , 영공靈公사절謝絶하며 말하기를 “내가 변변치 못하여 나라[社稷]를 지키지 못하고 난리를 피해[越] 나와서 초목草木이 우거진 산야山野[草莽]에 머물고 있으니, 그대에게 그대 임금의 봉행奉行[辱]하게 할 만한 장소場所가 없다.”고 하였다.
賓曰 寡君命下臣於朝曰 注+阿 比也 命己使比衛臣下하라하시니 臣不敢貳注+貳 違命也로소이다
그러자 (靑)이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조정朝廷에서 에게 하기를 ‘집사執事(衛君을 가리킴)께 몸을 낮추고서 친근하게 대하라[阿下].注+(親近)이다. 나에게 나라 신하臣下들을 가까이하라고 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셨으니, 은 감히 군명君命을 어길 수 없습니다.注+을 어김이다. ”고 하니
主人曰 君若惠顧先君之好하야 照臨敝邑하야 鎭撫其社稷이면 則有宗祧在注+言受聘當在宗廟也 라하니 乃止注+止 不行聘事하다
주인主人[靈公]이 말하기를 “제군齊君께서 만약 우리 두 나라 선군先君우호友好를 생각하여 우리나라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우리나라[社稷]를 안정시키려는 것이라면 종묘宗廟가 있다.注+빙문聘問을 받는 일은 종묘宗廟에서 거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니, 공손公孫빙례聘禮를 거행하지 않았다.注+빙문聘問의 일을 거행擧行하지 않은 것이다.
衛侯固請見之注+欲與靑相見한대 不獲命하야 以其良馬見注+以爲相見之禮 [附注] 林曰 公孫靑辭不獲命 以良馬爲相見之禮하니 爲未致使故也注+未致使 故不敢以客禮見
위후衛侯나라 사자使者를 만나 보기를 굳이 요청하자注+과 서로 만나 보고자 한 것이다. , 은 마지못해 자기의 양마良馬를 알현의 예물禮物로 바쳤으니,注+양마良馬상견相見예물禮物로 삼은 것이다. [부주]林: 공손公孫은 사양하였으나 승락承諾하지 않으므로 양마良馬상견相見예물禮物로 삼은 것이다. 이는 사명使命봉행奉行[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注+사명使命봉행奉行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감히 객례客禮(使臣의 )로 알현謁見하지 않은 것이다.
衛侯以爲乘馬注+喜其敬己 故貴其物하다
위후衛侯는 그 말을 승마乘馬로 삼았다.注+위후衛侯이 자기를 공경恭敬하는 것이 기뻤기 때문에 그가 준 물건을 귀중貴重하게 여긴 것이다.
賓將掫注+掫 行夜 [附注] 林曰 靑將行夜以助守備하니 主人辭曰 亡人之憂 不可以及吾子注+[附注] 林曰 不可以其憂患 累及賓客 草莽之中 不足以辱從者 敢辭하노라 賓曰 寡君之下臣 君之牧圉也
위후衛侯를 위해 야경夜警[掫]을 돌려 하니注+야간夜間순찰巡察하며 경비警備[行夜]하는 것이다. [부주]林: 야순夜巡하며 수비守備를 도우려 한 것이다. , 위영공衛靈公은 “나의 근심을 그대에게 미치게 할 수 없고注+[부주]林: 나의 우환憂患빈객賓客에 미치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초망草莽 가운데서 그대[從者]를 욕되게 할 수 없으니 사절謝絶한다.”고 하자, 공손公孫은 “은 우리 임금의 하신下臣이니 위군衛君목어牧圉와 같습니다.
若不獲扞外役이면 是不有寡君也注+
그런데 만약 밖의 침입자侵入者를 막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이는 우리 임금을 무시無視하는 것입니다.注+는 서로 친유親有함이다.
臣懼不免於戾 請以除死注+[附注] 林曰 請助行夜以除死罪하노이다하고 親執鐸하야 終夕與於燎注+設火燎以備守 하다
를 면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임금님께서는 에게 이 일을 하도록 허락하시어〉 이 죽음에서 면할 수 있게 하시기를 청합니다.注+[부주]林: 야간夜間순찰巡察을 도와 사죄死罪에서 면제免除할 수 있게 하기를 청한 것이다. ”고 하고서 몸소 목탁木鐸을 들고 밤새도록 모닥불을 피우는 일에 참여하였다.注+모닥불을 피워놓고서 수비守備한 것이다.
齊氏之宰渠子召北宮子注+北宮喜也 [附注] 林曰 召之同叛한대 北宮氏之宰不與聞注+[附注] 林曰 北宮喜之家宰 不與聞其謀 하고 謀殺渠子하야 遂伐齊氏하야 滅之하다
제표齊豹가재家宰거자渠子북궁자北宮子(北宮喜)를 초청招請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자注+북궁자北宮子북궁희北宮喜이다. [부주]林: 그를 불러 함께 반란叛亂하고자 한 것이다. , 북궁씨北宮氏가재家宰주인主人에게 알리지 않고注+[부주]林: 북궁희北宮喜가재家宰가 그 계획을 북궁희北宮喜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모의謀議거자渠子살해殺害하고서 드디어 제씨齊氏공격攻擊하여 멸망滅亡시켰다.
丁巳晦 公入하야 與北宮喜盟于彭水之上注+喜本與齊氏同謀 故公先與喜盟하고 秋七月戊午朔 遂盟國人하다
그믐 정사일丁巳日위영공衛靈公국도國都로 들어가서 북궁희北宮喜팽수彭水 가에서 결맹結盟하고注+북궁희北宮喜제씨齊氏공모共謀하였기 때문에 영공靈公이 먼저 북궁희北宮喜결맹結盟한 것이다. , 가을 7월 초하루 무오일戊午日에 드디어 국인國人결맹結盟하였다.
八月辛亥 公子朝褚師圃子玉霄子高魴出奔晉注+皆齊氏黨하다
8월 신해일辛亥日공자公子저사포褚師圃자옥소子玉霄자고방子高魴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모두 제씨齊氏이다.
閏月戊辰 殺宣姜注+與公子朝通謀故하다
8월 무신일戊辰日선강宣姜을 죽였다.注+공자公子통모通謀(共謀)하였기 때문이다.
衛侯賜北宮喜諡曰貞子注+滅齊氏故라하고 賜析朱鉏諡曰成子注+霄從公故라하고 而以齊氏之墓予之注+死而賜諡及墓田 傳終言之 하다
위후衛侯북궁희北宮喜에게 ‘정자貞子’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注+제씨齊氏격멸擊滅하였기 때문이다. , 석주서析朱鉏에게 ‘성자成子’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서注+밤에 〈수챗구멍으로 빠져나와〉 을 따랐기 때문이다. , 제씨齊氏묘지墓地를 그들에게 주었다.注+모두 죽은 뒤에 시호諡號묘지墓地[墓田]를 준 것인데, 전문傳文은 그 종말終末을 〈미리〉 말한 것이다.
衛侯告寧于齊하고 且言子石注+子石 公孫靑 言其有禮하다
위후衛侯나라에 국내國內안정安定되었음을 통고通告하고 또 자석子石(公孫 )에 대해 말하였다.注+자석子石공손公孫이다. 그는 가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齊侯將飮酒러니 徧賜大夫曰 二三子之敎也注+喜靑敬衛侯 [附注] 林曰 言靑之能敬衛侯 諸大夫之敎訓也 苑何忌辭曰 與於靑之賞이면 必及於其罰注+何忌 齊大夫 言靑若有罪 亦當幷受其罰이니이다
이때 제후齊侯는 술을 마시려는 참이었는데 대부大夫들에게 두루 술을 주며 말하기를 “〈공손公孫이 이처럼 위후衛侯공경恭敬한 것은〉 그대들의 가르침 때문이다.注+위후衛侯공경恭敬한 것을 기뻐한 것이다. [부주]林: 위후衛侯공경恭敬한 것은 여러 대부大夫들의 교훈敎訓 때문이라는 말이다. ”고 하자, 원하기苑何忌가 술을 사양하며 말하기를 “공손公孫상사賞賜참여參與한다면 반드시 그의 죄벌罪罰에도 연루連累되어야 합니다.注+하기何忌나라 대부大夫이다. 에게 만약 가 있다면 우리 또한 그 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在康誥하니 曰父子兄弟 罪不相及注+尙書 康誥이라하니 況在群臣이릿가
강고康誥〉에 ‘부자父子형제兄弟에는 연루連累시키지 않는다.注+강고康誥는 《상서尙書》의 편명篇名이다. ’고 하였는데 더구나 군신群臣이겠습니까?
臣敢貪君賜하야 以干先王注+言受賜則犯康誥之義이릿가
이 감히 임금님의 상사賞賜를 탐하여 선왕先王의 법을 하겠습니까?注+상사賞賜를 받으면 〈강고康誥〉의 뜻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聞宗魯死注+琴張 孔子弟子 字子開 名牢하고 將往弔之한대 仲尼曰
금장琴張종로宗魯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注+금장琴張공자孔子제자弟子자개子開이고 이름은 이다.조상弔喪 가려 하자, 중니仲尼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齊豹之盜 而孟縶之賊이니 女何弔焉注+言齊豹所以爲盜 孟縶所以見賊 皆由宗魯
제표齊豹가 〈위후衛侯을〉 도살盜殺하고 맹집孟縶피살被殺된 것이 〈모두 그로 인해 생긴 일인데,〉 너는 무엇 때문에 그런 자를 조상弔喪하려 하느냐?注+제표齊豹도살盜殺원인原因맹집孟縶피살被殺원인原因이 모두 종로宗魯에서 유래由來하였다는 말이다.
君子 不食姦注+知公孟不善 而受其祿 是食姦也하고 不受亂注+許豹行事 是受亂也하며 不爲利疚於回注+疚 病 回 邪也 以利故不能去 是病身於邪하고 不以回待人注+知難不告 是以邪待人하며 不蓋不義注+以周事豹 是蓋不義하고 不犯非禮注+以二心事縶 是非禮니라
군자君子악인惡人[姦人]의 祿을 먹지 않고注+공맹公孟불선不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주는 祿을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악인惡人祿을 먹은 것이다. 변란變亂을 받아들이지 않으며注+제표齊豹행사行事(公孟을 죽이려는 일)를 허락許諾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변란變亂을 받아들인 것이다. , 이익利益을 위해 사악邪惡에 병들지 않고注+이고 사악邪惡이다. 이익 때문에 능히 떠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몸이 사악邪惡에 병든 것이다. 사악邪惡한 마음으로 남을 대하지 않으며注+난리가 일어날 것을 알고도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사악邪惡한 마음으로 남을 대한 것이다. , 불의不義를 덮어주지 않고注+비밀秘密[周]을 지키는 것으로 제표齊豹를 섬겼으니, 이것이 바로 불의不義를 덮어준 것이다. 비례非禮를 범하지 않는다.注+두마음으로 공맹公孟을 섬겼으니, 이것이 바로 비례非禮이다.
[傳]宋華向之亂 公子城注+平公子公孫忌樂舍注+舍 樂喜孫司馬彊向宜向鄭注+宜鄭 皆向戌子楚建注+楚平王之亡大子 注+小邾穆公子出奔鄭注+八子 宋大夫 皆公黨 辟難出하다
나라 화씨華氏상씨向氏반란叛亂을 일으켰을 때에 공자公子注+공자公子평공平公의 아들이다.公孫 악사樂舍注+악희樂喜의 손자이다. 司馬 상의向宜상정向鄭注+상의向宜상정向鄭은 모두 상술向戌의 아들이다. 楚建‧注+초건楚建나라로 망명亡命초평왕楚平王태자太子이다. 郳甲이注+소주목공小邾穆公의 아들이다.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여덟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로 모두 송공宋公이므로 난리를 피해 출분出奔한 것이다.
其徒與華氏戰于鬼閻注+八子之徒衆也 潁川長平縣西北有閻亭이라가 敗子城하다 子城適晉注+子城爲華氏所敗 別走至晉 爲明年子城以晉師至起本하다
그 무리가 귀염鬼閻에서 화씨華氏전투戰鬪하였으나注+기도其徒는 여덟 사람의 무리다. 영천潁川장평현長平縣 서북쪽에 염정閻亭이 있다. , 화씨華氏자성子城패배敗北시키니, 자성子城나라로 도망갔다.注+자성子城화씨華氏에게 패배敗北 당하고서 따로 도망해 나라로 간 것이다. 명년明年자성子城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온 기본起本(原因)이다.
華亥與其妻 必盥而食所質公子者而後食하고 公與夫人每日必適華氏하야 食公子而後歸하니
화해華亥는 그 아내와 함께 매일 아침마다 반드시 세면洗面하고서 인질人質로 잡혀와 있는 공자公子들에게 밥을 먹인 뒤에 밥을 먹었고, 송원공宋元公도 그 부인夫人과 함께 날마다 화씨華氏의 집으로 가서 공자公子들에게 밥을 먹인 뒤에 돌아갔다.
華亥患之하야 欲歸公子한대 向寧曰 唯不信이라 故質其子어늘 若又歸之 死無日矣리라
화해華亥는 이를 걱정하여 공자公子들을 돌려보내고자 하자, 상녕向寧이 말하기를 “임금이 신의信義가 없기 때문에 그 아들들을 인질人質로 삼은 것인데, 만약 인질人質을 돌려보낸다면 머지않아 우리에게 죽음이 닥칠 것이오.”라고 하였다.
公請於華費遂하야 將攻華氏注+費遂 大司馬 華氏族한대 對曰 臣不敢愛死어니와 無乃求去憂而滋長乎注+恐殺大子 憂益長잇가
송원공宋元公화비수華費遂에게 도움을 청하여 화씨華氏공격攻擊하려 하자注+비수費遂대사마大司馬화씨華氏종족宗族이다. , 화비수華費遂가 말하기를 “은 감히 죽음을 애석哀惜해 하지는 않습니다만, 우환憂患을 없애려다가 도리어 우환憂患을 키우게 되지 않겠습니까?注+태자太子살해殺害할까 두려워 근심이 더욱 커진다는 말이다.
臣是以懼하야 敢不聽命이로이다 公曰 子死亡有命이어니와 余不忍其訽注+訽 恥也하노라
은 이렇게 될 것이 두려워 감히 을 따를 수 없습니다.”고 하니, 원공元公이 말하기를 “공자公子들의 사생死生천명天命이지만 나는 저들이 받는 치욕恥辱을 차마 볼 수 없다.注+치욕恥辱이다.”고 하였다.
冬十月 公殺華向之質而攻之하니 戊辰 華向奔陳하고 華登奔吳注+登 費遂之子 黨華向者하다
겨울 10월에 송원공宋元公화씨華氏상씨向氏인질人質들을 죽이고서 화씨華氏상씨向氏공격攻擊하니, 무신일戊辰日화씨華氏상씨向氏나라로 달아나고, 화등華登나라로 달아났다.注+비수費遂의 아들로 화씨華氏상씨向氏를 도운 자이다.
向寧欲殺大子한대 華亥曰 干君而出하고 又殺其子 其誰納我리오
상녕向寧태자太子를 죽이려 하자, 화해華亥가 말하기를 “임금을 하고서 도망가면서 또 임금의 아들을 죽인다면 그 누가 우리를 받아들이겠습니까?
且歸之有庸注+可以爲功善이라 使少司寇牼以歸注+以三公子歸公也 牼 華亥庶兄曰 子之齒長矣 不能事人注+[附注] 林曰 牼之年齒已長 不能出外服事他人이라 以三公子爲質이면 必免注+質 信也 送公子歸 可以自明不叛之信하리라
돌려보내어 을 세우는 것만 못합니다.注+훌륭한 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소사구少司寇에게 인질人質들을 데리고 돌아가게 하며注+공자公子에게 돌려보낸 것이다. 화해華亥서형庶兄이다. 말하기를 “그대는 나이가 많아 외국外國으로 가서 타국他國의 임금을 섬길 수 없으니注+[부주]林: 의 나이가 너무 많으므로 외국外國으로 출분出奔하여 타국他國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말이다. , 세 공자公子를 데리고 가서 신의信義를 밝힌다면 반드시 처벌處罰할 수 있을 것입니다.注+이니, 공자公子들을 호송護送해 돌려보내면 배반背叛하지 않은 신의信義를 스스로 밝힐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公子旣入 華牼將注+從公門去하니 公遽見之하고 執其手曰 余知而無罪也
화경華牼공자公子들을 데리고 가서 공궁公宮으로 들여보낸 뒤에 궁문宮門을 나오려 하는데注+공문公門에서 떠나려 한 것이다. 송원공宋元公이 급히 불러 그를 만나 보고는 그의 손을 잡고서 말하기를 “나는 네가 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면 復而所注+而 汝也 所 所居官하리라
네가 다시 조정朝廷으로 들어오면 너의 옛 관직官職회복恢復시켜 주겠다.注+(너)이고, 는 전에 있던 관직官職이다. ”고 하였다.
[傳]齊侯疥러니 遂痁注+痁 瘧疾 [附注] 林曰 疥當作痎 字之誤也 謂之瘧疾者 非痁瘧疾也 因痎變爲瘧疾也 朱曰 疥當爲痎 小瘧也 痁 大瘧也 景公初患痎 而後乃變爲大瘧 하야 期而不瘳하니 諸侯之賓問疾者多在注+多在齊 [附注] 朱曰 周一年而不瘥하다
제후齊侯가 앓던 개질疥疾(하루건너 발열發熱하는 학질瘧疾)이 드디어 점질痁疾(매일 발열發熱하는 학질瘧疾)로 발전하여注+학질瘧疾이다. [부주]林: 는 ‘(하루거리)’로 써야 하니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이를 ‘학질瘧疾’이라 한 것은 점학질痁瘧疾(매일 발열하는 학질)이 아니고 로 인해 학질瘧疾로 변한 것이다. [부주]朱: 는 ‘’가 되어야 하니 ‘소학小瘧’이고, 은 ‘대학大瘧’이다. 경공景公이 처음에는 를 앓다가 뒤에 대학大瘧으로 변한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낫지 않으니, 제후국諸侯國에서 문병問病하기 위해 와서 체류滯留하는 빈객賓客들이 많았다.注+나라에 체류滯留해 있는 빈객賓客이 많았다는 말이다. [부주]朱: 1년이 되었는데도 낫지 않은 것이다.
梁丘據與裔款注+二子 齊嬖大夫言於公曰 吾事鬼神豊 於先君有加矣注+[附注] 朱曰 二子言齊之祭祀 爲禮豊厚 比之先君 有增加矣로대 今君疾病하야 爲諸侯憂하니 是祝史之罪也
양구거梁丘據예관裔款注+두 사람은 나라 폐대부嬖大夫이다. 제경공齊景公에게 아뢰기를 “우리가 귀신鬼神을 섬기는데 풍후豊厚함이 선군先君 때보다 더 풍후豊厚하였는데도注+[부주]朱: 두 사람이 ‘나라의 제사祭祀에 거행하는 풍후豊厚함이 선군先君 때보다 증가增加함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 임금님의 병이 더욱 심해져서 제후諸侯들의 근심이 되고 있으니, 이는 축사祝史입니다.
諸侯不知하고 其謂我不敬注+[附注] 林曰 將謂我不能致敬鬼神以獲福祐이라하리니 君盍注+欲殺嚚固以辭謝來問疾之賓이닛고 公說하야 告晏子하니
그러나 제후諸侯들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서 우리가 귀신鬼神공경恭敬하지 않아서라고 여길 것이니注+[부주]林: 〈빈객들은〉 아마도 우리가 귀신鬼神에게 공경恭敬을 다하지 않아, 과 도움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여길 것이라는 말이다. , 어찌 축관祝官사관史官을 죽여 빈객賓客들에게 해명解明[辭]하지 않으십니까?注+를 죽여 문병問病하기 위해 와 있는 빈객賓客들을 사사辭謝(謝絶)하고자 한 것이다. ”라고 하니, 경공景公은 기뻐하여 이 말을 안자晏子에게 하였다.
晏子曰 日宋之盟注+日 往日也 宋盟 在襄二十七年 屈建問范會之德於趙武한대 趙武曰
안자晏子가 말하기를 “전에 나라에서 맹약盟約할 때注+은 지난날이다. 나라에서의 맹약盟約양공襄公 27년에 있었다. 굴건屈建조무趙武에게 범회范會에 대해 묻자, 조무趙武가 대답하기를
夫子之家事治하고 言於晉國 竭情無私하며 其祝史祭祀 陳信不愧注+[附注] 林曰 其出言於晉國 竭盡眞情 無有私曲 其祝史祭祀於鬼神也 陳其誠信而無愧怍 하고 其家事無猜하며 其祝史不祈注+라하니이다
‘그분의 집안은 일이 다스려졌고, 나라에서 말을 할 때는 진정을 다하고 사심私心이 없었으며, 그 축사祝史제사祭祀 때 진실만을 진술陳述하고 부끄러운 말이 없었고注+[부주]林: 그가 나라 국정國政에 대해 말할 때에는 진정眞情을 다하고 사곡私曲(公正하지 않음)함이 없었고, 그 축사祝史귀신鬼神에게 제사祭祀 지낼 때에 성신誠信진술陳述하고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말이다. , 그 집안에는 의심하는 일이 없었으며, 그 축사祝史기구祈求하는 일이 없었다.注+집안에 의심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축사祝史귀신鬼神에게 기구祈求함이 없었던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建以語康王注+楚王한대 康王曰 神人無怨하니 宜夫子之光輔五君하야 以爲諸侯主也注+五君 文襄靈成景라하니이다
굴건屈建이 이 말을 초강왕楚康王하자注+강왕康王나라 이다. , 강왕康王이 말하기를 ‘귀신鬼神과 사람이 모두 원한怨恨함이 없었으니, 그가 다섯 임금을 보좌輔佐하여 제후諸侯맹주盟主가 되게 한 것이 당연하다.注+다섯 임금은 문공文公양공襄公영공靈公성공成公경공景公이다. ’고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公曰 據與款謂寡人能事鬼神이라
경공景公이 말하기를 “양구거梁丘據예관裔款과인寡人귀신鬼神을 잘 섬긴다고 하였다.
故欲誅於祝史어늘 子稱是語 何故 對曰 若有德之君 外內不廢注+無廢事하야 上下無怨하고 動無違事 其祝史薦信이라도 無愧心矣注+君有功德 祝史陳說之 無所愧
그러므로 축사祝史를 죽이고자 한 것인데, 그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자, 안자晏子가 대답하기를 “가령 이 있는 임금이 외내外內(府中과 궁중宮中)에 폐기廢棄하는 일이 없어서注+폐기廢棄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상하上下원망怨望이 없고 행동行動도리道理를 어긋남이 없다면 그 축사祝史귀신鬼神에게 진실眞實하여도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注+임금에게 공덕功德이 있으면 축사祝史가 그 공덕功德진술陳述하여도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是以鬼神用饗하야 國受其福하고 祝史與焉注+이라
그러므로 귀신鬼神이 그 제사祭祀흠향歆饗하여 국가國家을 받고 축사祝史도 그 참여參與합니다.注+국가國家와 함께 을 받는다는 말이다.
其所以蕃祉老壽者 爲信君使也注+[附注] 朱曰 以其爲誠信之君所使 故神降之福 하야 其言忠信於鬼神注+[附注] 朱曰 其所以告於鬼神者 皆忠信之言也이니이다
축사祝史[其]가 다복多福[蕃祉]하고 장수長壽하는 까닭은 성실誠實한 임금이 사자使者가 되어注+[부주]朱: 축사祝史성신誠信한 임금의 사자使者가 되었기 때문에 이 그에게도 을 내린다는 말이다. 귀신鬼神에게 한 말이 충신忠信하였기 때문입니다.注+[부주]朱: 축사祝史귀신鬼神에게 한 것이 모두 충직忠直하고 성실誠實한 말이라는 말이다.
其適遇淫君하야 外內頗邪하야 上下怨疾하며 動作辟違하고 從欲厭私注+使私情厭足하며 高臺深池하야 撞鍾舞女하며 斬刈民力하고 輸掠其聚注+掠 奪取也 [附注] 林曰 奪取民財 如逢寇掠하야 以成其違注+[附注] 林曰 成其違邪之事하고 不恤後人하며 暴虐淫從하고 肆行非度하야 無所還忌注+還 猶顧也하며 不思謗讟하고 不憚鬼神하야 神怒民痛이로되 無悛於心 其祝史薦信이면 是言罪也注+以實白神 是爲言君之罪 其蓋失數美 是矯誣也注+蓋 掩也 [附注] 林曰 其蓋覆君之過失 數君之休美以白神 是爲矯詐誣罔於神 니이다
가령[其]황음荒淫한 임금을 만나서 외내外內의 일이 편벽되고 사악邪惡하여 상하上下원망怨望하고 미워하며, 행동行動사벽邪辟하고 도리道理에 어긋나며, 욕망慾望을 억제하지 않고 사욕私慾을 만족히 채우며注+사정私情만족滿足하게 하는 것이다. , 누대樓臺를 높이 짓고 연못을 깊이 파고서 종고鐘鼓를 울리면서 무희舞姬들의 가무歌舞를 즐기며, 백성들의 노동력勞動力착취搾取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掠奪하여注+탈취奪取이다. [부주]林: 백성의 재물財物탈취奪取하기를 마치 외구外寇침입侵入하여 약탈掠奪하듯이 한 것이다.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고注+[부주]林: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사악邪惡한 일을 성취成就한 것이다. 후대後代자손子孫을 생각지 않으며, 포학暴虐하고 방종放縱하여 부도不道한 짓을 자행恣行하여 돌아보아 꺼리는 바가 없으며注+와 같다. , 비방誹謗원망怨望을 생각지 않고 귀신鬼神을 두려워하지 않아 하고 백성이 통한痛恨하는데도 마음에 뉘우침이 없는 경우에 축사祝史가 사실대로 하면 이는 임금의 를 말하는 것이고注+사실대로 에게 아뢰면 임금의 를 말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잘못을 덮고 아름다운 일만을 열거列擧하면 이는 귀신鬼神을 속이는 것입니다.注+(덮음)이다. [부주]林: 임금의 과실過失은 덮어두고 임금의 아름다운 일만을 열거列擧[數]해 께 아뢰면 이는 거짓말로 을 속이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進退無辭 則虛以求媚注+作虛辭以求媚於神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거짓으로 말할 수도 없으면 관계도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 하여 에게 잘 보아주기를 합니다.注+거짓말을 꾸며 에게 잘 보아주기를 구한다는 말이다.
是以鬼神不饗其國以禍之하고 祝史與焉注+[附注] 林曰 是以鬼神不歆饗其國之祭祀 以降之禍 祝史與受國家之禍 이라
그러므로 귀신鬼神이 그 제사祭祀흠향歆饗하지 않고서 그 나라에 를 내리고, 축사祝史도 그 에 참여합니다.注+[부주]林: 그러므로 귀신鬼神이 그 나라의 제사祭祀흠향歆饗하지 않고서 를 내리는데, 축사祝史도 그 국가國家와 함께 를 받는다는 말이다.
所以夭昏孤疾者 爲暴君使也하야 其言僭嫚於鬼神이니이다
축사祝史요절夭折하거나 질병疾病을 앓는 까닭은 폭군暴君사자使者가 되어 귀신鬼神에게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公曰 然則若之何 對曰 不可爲也注+言非誅祝史所能治니이다
경공景公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라고 묻자, 안자晏子가 대답하기를 “축사祝史를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注+축사祝史를 죽인다 하여 치료治療될 수 있는 바가 아니라는 말이다.
山林之木 衡鹿守之하고 澤之萑蒲 舟鮫守之하며 藪之薪蒸 虞候守之하고 海之鹽蜃 祈望守之注+衡鹿舟鮫虞候望 皆官名也 言公專守山澤之利 不與民共하며 縣鄙之人 入從其政이어늘 偪介之關 暴征其私注+介 隔也 迫近國都之關 言邊鄙旣入服政役 又爲近關所征稅枉暴 奪其私物하고 承嗣大夫 强易其賄注+承嗣 大夫世位者 [附注] 朱曰 此言縣鄙從政之人 爲大夫强抑 以移易其貨賄也하며 布常無藝注+藝 法制也 言布政無法制하고 徵斂無度하며 宮室日更하고 淫樂不違注+違 去也하며 內寵之妾 肆奪於市注+肆 放也하고 外寵之臣 僭令於鄙注+詐爲敎令於邊鄙하야 私欲養求호되 不給則應注+養 長也 所求不給 則應之以罪하니 民人苦病하야 夫婦皆詛注+[附注] 林曰 國之民人 莫不困苦而病患之 匹夫匹婦 莫不詛祝 이니다
산림山林의 나무는 형록衡鹿이 지키고 호택湖澤의 갈대는 주교舟鮫가 지키며, 숲 속의 땔감은 우후虞候가 지키고 바다의 소금과 조개는 기망祈望이 지키며注+형록衡鹿주교舟鮫우후虞候기망祈望은 모두 관명官名이다. 공가公家산택山澤이익利益독점獨占하기 위해 지키고, 백성들과 그 이익을 공유共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변방邊方의 백성들이 국도國都로 들어와서 정역政役(政府 각부서各府署잡역雜役)에 종사從事하는데, 국도國都 가까이에 있는 에서는 그들의 사물私物가혹苛酷하게 징세徵稅하고注+이니, 국도國都에서 가까운 관문關門이다. 변방邊方의 사람들이 이미 국도國都로 들어와 정역政役복무服務하는데, 또 가까운 에서 법을 어기고 포학暴虐하게 징수徵收함으로 인해 그 사물私物탈취奪取당하였다는 말이다. 세습世襲대부大夫들은 그들의 재물財物강매强買[强易]하며注+승사承嗣세습世襲대부大夫에 있는 자이다. [부주]朱: 이것은 변방邊方에서 와서 정역政役종사從事하는 사람들이 대부大夫들의 강압强壓에 의해 그 재물財物이역移易(交易)하였다는 말이다. , 정사政事시행施行[布]하는데 법제法制가 없고注+법제法制이다. 정사政事시행施行하는데 법제法制가 없다는 말이다. 부세賦稅징수徵收하는데 법도法度가 없으며, 궁실宮室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음란한 음악은 떠나지 않으며注+(떠남)이다. , 궁내宮內총첩寵妾은 멋대로 시장市場의 물건들을 강탈强奪하고注+(放恣)이다. 외부外部총신寵臣변방邊方에 거짓 왕명王命하여注+거짓 교령敎令(王命)을 만들어 변비邊鄙한다는 말이다. 사욕私欲을 부려 자신을 봉양奉養할 물건들을 요구하되 주지 않으면 를 주니注+이다. 요구要求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응대應對한다는 말이다. , 인민人民들은 고통苦痛으로 괴로워하며 부부夫婦가 모두 저주詛呪합니다.注+[부주]林: 국내國內인민人民 중에 빈곤貧困고통苦痛으로 괴로워하지 않는 자가 없고, 필부匹夫필부匹婦저축詛祝하지 않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祝有益也 詛亦有損注+[附注] 林曰 祝史禱祝 若有所益 夫婦詛祝 亦有所損이어늘 聊攝以東注+聊攝 齊西界也 平原聊城縣東北有攝城 姑尤以西注+姑尤 齊東界也 姑水尤水 皆在城陽郡 東南入海 其爲人也多矣 雖其善祝이라도 豈能勝億兆人之詛注+萬萬曰億 萬億曰兆릿가
축도祝禱유익有益한 것이라면 저주詛呪 또한 해로움이 있을 것인데注+[부주]林: 축사祝史축도祝禱가 이로운 바가 있다면 부부夫婦저축詛祝도 해로운 바가 있다는 말이다. , 요읍聊邑섭읍攝邑 이동과注+요읍聊邑섭읍攝邑나라 서쪽 국경國境에 있다. 평원平原요성현聊城縣 동북쪽에 섭성攝城이 있다. 고수姑水우수尤水 이서에注+고읍姑邑우읍尤邑나라 동쪽 국경國境에 있다. 고수姑水우수尤水는 모두 성양군城陽郡에 있는데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저주詛呪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 아무리 잘 빈다 하더라도 어찌 억조인億兆人저주詛呪를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注+만만萬萬을 ‘’이라 하고, 만억萬億을 ‘’라 한다.
君若欲誅於祝史ᄂ댄 修德而後可니이다 公說하야 使有司寬政하야 毁關去禁薄斂已注+除逋責 [附注] 林曰 乃命有司 寬其政令 毁偪介之關 去山澤之禁 輕薄賦斂 已除逋責 하다
임금님께서 만약 축사祝史를 죽이고자 하신다면 을 닦으신 뒤에야 죽이실 수 있습니다.”고 하니, 경공景公은 기뻐하여 유사有司들에게 정치政治를 너그럽게 하여 관문關門을 헐고 금령禁令제거除去하고 부세賦稅경감輕減하고 채무債務면제免除하게 하였다.注+갚지 못한 채무債務면제免除하는 것이다. [부주]林: 각 부서府署담당관擔當官에게 하여 정령政令을 너그럽게 시행施行하여 국도國都 가까이 있는 을 허물고, 산택山澤금령禁令제거除去하고, 부세賦稅경감輕減하고서 갚지 못한 채무債務면제免除하게 한 것이다.
[傳]十二月 齊侯田于沛注+言疾愈行獵 沛 澤名할새 招虞人以弓한대 不進注+虞人 掌山澤之官이어늘 公使執之한대
12월에 제후齊侯에서 사냥할 때注+쾌유快瘉하여 사냥한 것을 말한 것이다. (늪)의 이름이다. 활을 흔들어 우인虞人을 불렀으나 우인虞人이 가지 않으니注+우인虞人산택山澤을 맡은 관원官員이다. , 제경공齊景公이 사람을 시켜 그를 잡아오게 하였다.
辭曰 昔我先君之田也 旃以招大夫하고 弓以招士하고 皮冠以招虞人注+[附注] 朱曰 周禮孤卿建旃 大夫尊 故麾旃以招之也 逸詩云 翹翹車乘 招我以弓 古者聘士以弓 故弓以招士也 諸侯服皮冠以田 虞人掌田獵 故皮冠以招虞人也 하시니
우인虞人해명解明하기를 “전에 선군先君께서 사냥하실 때에는 을 흔들어 대부大夫를 부르시고 활을 흔들어 를 부르시고, 피관皮冠을 흔들어 우인虞人을 부르셨습니다.注+[부주]朱: 《주례周禮》 〈춘관春官사상司常〉에 “고경孤卿(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은 을 세운다.”고 하였으니, 대부大夫존귀尊貴하기 때문에 을 흔들어 부른다. 〈일시逸詩〉에 “높은 수레를 몰고 와서 나를 활로써 부른다.[翹翹車乘 招我以弓]”고 하였다. 옛날에는 활로써 초빙招聘하였기 때문에 〈사냥터에서도〉 활을 흔들어 를 부른다. 제후諸侯는 사냥할 때 피관皮冠을 쓴다. 우인虞人은 사냥을 맡은 관직官職이기 때문에 피관皮冠을 흔들어 우인虞人을 부른 것이다.
臣不見皮冠이라 故不敢進이니이다 乃舍之하다
피관皮冠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오지 않은 것입니다.”고 하니, 이에 그를 풀어주었다.
仲尼曰 守道不如守官注+君招當往 道之常也 非物不進 官之制也이라하시니 君子韙之注+韙 是也니라
중니仲尼가 이에 대해 “도리道理를 지키는 것이 관리官吏제도制度를 따르는 것만 못하다.注+임금이 부르면 가는 것은 상도常道이고, 자기를 부르는 물건이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은 관리官吏제도制度이다. ”고 하셨는데, 군자君子는 이 말을 옳게 여겼다.注+는 옳게 여김이다.
齊侯至自田 晏子侍于遄臺注+[附注] 林曰 遄臺 臺名러니 子猶馳而造焉注+子猶 梁丘據 한대 公曰 唯據與我和夫注+[附注] 林曰 惟梁丘據 與我和順 不逆於我ᄂ저 晏子對曰 據亦同也 焉得爲和릿가
제후齊侯가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 안자晏子천대遄臺에서 모시고 있었더니注+[부주]林: 천대遄臺의 이름이다., 자유子猶(梁丘據)가 수레를 달려 천대遄臺에 이르자注+자유子猶양구거梁丘據이다. , 제경공齊景公이 말하기를 “오직 양구거梁丘據만이 나와 화합和合하는구나.注+[부주]林: 오직 양구거梁丘據만이 나와 화순和順하여 나에게 거역拒逆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안자晏子가 대답하기를 “양구거梁丘據 또한 뇌동雷同하는 자이니 어찌 화합和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公曰 和與同異乎 對曰 異니이다
경공景公이 “가 다르냐?”고 묻자, 안자晏子가 대답하기를 “다릅니다.
如羹焉하니 水火醯醢鹽梅注+[附注] 朱曰 水火燥濕不同性 醯醢鹽梅不同味 以烹魚肉호대 燀之以薪注+燀 炊也 [附注] 朱曰 以此六物相濟爲用 而烹煮魚肉 益以柴薪而炊之하고 宰夫和之注+[附注] 林曰 宰夫 治庖之官 使宰夫調和之하야 齊之以味하야 濟其不及하고 以洩其過注+濟 益也 洩 減也이니이다 君子食之하야 以平其心이니이다
는 국을 끓이는 것과 같으니, 물과 불, 식초와 육장肉醬, 소금과 매실로注+[부주]朱: 성질性質이 같지 않고, 는 맛이 같지 않다. 어육魚肉조리調理[烹]하여 불을 때어 익히고서注+(불을 땜)이다. [부주]朱: 이 여섯 가지 물건을 서로 보조補助하는 물품物品으로 쓰고서 어육魚肉을 삶고 화덕에 땔감을 더 넣어 불을 때는 것이다. 재부宰夫(料理師)가 간을 맞추어注+[부주]林: 재부宰夫주방廚房을 다스리는 관원官員이다. 재부宰夫에게 여러 종류의 양념을 넣어 국에 간을 맞추게 한 것이다. [和] 〈짜고 신〉 맛을 알맞게[齊] 조절하여 모자라면 〈소금과 매실을〉 첨가하고 지나치면 〈물을 더 부어 짜고 신 맛을〉 줄이는데注+추가追加함이고, 감축減縮함이다. , 군자君子가 이 국을 먹고서 그 마음을 화평和平하게 합니다.
君臣亦然注+亦如羹 하야 君所謂可而有否焉注+否 不可也이면 臣獻其否하야 以成其可注+獻君之否 以成君可하고 君所謂否而有可焉이면 臣獻其可하야 以去其否니이다
군신君臣 사이도 이와 같아서注+군신君臣 사이도 국을 끓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임금이 ‘하다’고 하더라도 그중에 ‘불가不可’한 점이 있으면注+불가不可이다. 신하臣下는 그 불가不可한 점을 말하여 그 한 것을 이루게 하고注+임금의 불가不可한 점을 말하여 임금의 한 점을 이루게 함이다. , 임금이 ‘불가不可하다’고 하더라도 그중에 한 점이 있으면 신하臣下는 그 ‘’한 점을 말하여 그 불가不可한 것을 버리게 합니다.
是以政平而不干하야 民無爭心注+[附注] 林曰 政事和平 不相干犯 이니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화평和平하여 서로 침범侵犯하는 일이 없어서 백성들도 쟁탈爭奪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注+[부주]林: 정사政事화평和平하여 서로 침범侵犯하지 않는 것이다.
故詩曰 亦有和羹하니 旣戒旣平注+詩 頌殷中宗 言中宗能與賢者 이라
그러므로 시에 ‘또 화갱和羹(양념을 한 육장肉醬)이 있으니 이미 경계해 간을 맞춘 것이네.注+나라 중종中宗찬송讚頌한 것이다. 중종中宗현자賢者들과 가부可否화제和齊하여 그 정사政事가 〈마치 재부宰夫가 여러 가지 양념으로 간을 맞추어〉 국을 끓이는 것과 같았으므로 〈그 신하臣下들이 자기의 직무職務를〉 경계하고 〈심성心性이〉 화평和平하였다는 말이다. 화갱和羹오미五味구비具備된 것으로 대갱大羹과 다르다.
鬷嘏無言하니 時靡有爭注+鬷 總也 大也 言總大政 能使上下 皆如和羹이라하니 先王之五味注+濟 成也하고 和五聲也 以平其心하고 成其政也注+[附注] 朱曰 聲味皆和而後心平 心平而後政成也 니이다
국을 올리며 말이 없으니 이에 다투는 이 없네.注+이고 이니, 대정大政총독總督하여 상하上下로 하여금 모두 조화된 국처럼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하였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으니, 선왕先王오미五味로써 음식의 맛을 맞추고注+이다. , 오성五聲으로써 조화調和한 것은 그 마음을 화평和平하게 하고 그 정사政事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注+[부주]朱: 가 모두 조화調和를 이룬 뒤에 마음이 화평和平해지고 마음이 화평和平한 뒤에 정사政事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聲亦如味하야 注+須氣以動 二體注+舞者 有文武 三類注+風雅頌四物注+雜用四方之物以成器五聲注+宮商角徵羽 六律注+黃鐘大簇姑洗蕤賓夷則無射也 陽聲爲律 陰聲爲呂 此十二月氣 七音注+ [附注] 林曰 七音 宮商角徵羽變宮變徵八風注+八方之風 [附注] 朱曰 樂應八方之風 亦應八八節也九歌注+九功之德 皆可歌也 六府三事 謂之九功 以相成也注+言此九者合然後 相成爲和樂하고 淸濁小大短長疾徐哀樂剛柔遲速高下出入周疏以相濟也注+周 密也 [附注] 朱曰 此十者 言樂聲如此相反 乃能相濟 以成其聲音 亦猶羹之水火相反 君臣之可否相濟者也 君子聽之하야 以平其心이니이다
와 같아서 일기一氣注+기운을 기다려 움직이는 것이다. 二體‧注+춤에 문무文舞무무武舞가 있는 것이다. 三類‧注+이다. 四物‧注+사방四方에서 생산生産물건物件들을 섞어서 악기樂器를 만드는 것이다. 五聲‧注+이다. 六律‧注+황종黃鐘태주太簇고선姑洗유빈蕤賓이칙夷則무역無射이다. 양성陽聲이 되고, 음성陰聲가 되는데 이것이 열두 달의 기후氣候이다. 七音‧注+주무왕周武王상주商紂정벌征伐기간期間오일午日로부터 자일子日까지 모두 7일이었다. 무왕武王은 이로 인해 를 합하여 소리로써 드러내 밝혔다. 그러므로 로써 그 [同]하고 로써 그 소리를 조화調和시키고서 이를 ‘칠음七音’이라 하였다. [부주]林: 칠음七音변궁變宮변치變徵이다. 八風‧注+팔방八方의 바람을 이른다. [부주]朱: 팔방八方의 바람과 상응相應하고, 또 팔괘八卦(乾‧)와 팔절八節(立春‧입하立夏입추立秋입동立冬춘분春分추분秋分하지夏至동지冬至)과도 상응相應한다. 九歌注+구공九功을 모두 노래할 만한 것이다. 육부六府(水‧)와 삼사三事(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를 구공九功이라 한다. 가 합하여 을 이루고注+이 아홉 가지가 합한 뒤에야 서로 도와[成]조화調和음악音樂이 된다는 말이다. , 청탁淸濁대소大小장단長短질서疾徐애락哀樂강유剛柔지속遲速고하高下출입出入주소周疏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데注+(세밀)이다. [부주]朱: 이 열 가지는 성음聲音이 이와 같이 상반相反되어야 서로 도와서 그 성음聲音을 이루는 것이 마치 국을 끓이는데 수화水火상반相反되고 군신君臣 사이에 가부상제可否相濟(可에서 를 찾고 에서 를 찾아 서로 보완補完함)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군자君子가 이것을 듣고서 그 마음을 화평和平하게 합니다.
心平이면 德和
마음이 화평和平하면 온화溫和해집니다.
故詩曰 德音不瑕注+詩 豳風也 義取心平則德音無瑕闕라하니이다
그러므로 에 ‘덕음德音(令聞)에 흠이 없다.注+는 《시경詩經》 〈빈풍豳風낭발편狼跋篇〉의 시구詩句이다. 마음이 화평和平하면 덕음德音하자瑕疵가 없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今據不然하야 君所謂可 據亦曰可라하고 君所謂否 據亦曰否라하야 若以水濟水하니 誰能食之注+[附注] 林曰 譬如以水益水 不成羹矣 誰能食此味 若琴瑟之專壹하니 誰能聽之릿가
그런데 지금 양구거梁丘據는 그렇지 못하여, 임금님께서 옳다고 하는 것은 양구거梁丘據도 옳다고 하고, 임금님께서 그르다고 하는 것은 양구거梁丘據도 그르다고 하여 마치 물로써 물을 조미調味한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먹으려 하겠으며注+[부주]林: 비교하자면 물에 물을 탄 것과 같아서 국이라 할 수 없으니 누가 이런 국을 먹으려 하겠느냐는 말이다. , 금슬琴瑟이 오로지 한 소리만 내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同之不可也如是注+[附注] 林曰 同之爲害 其不可如此 니이다
뇌동雷同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注+[부주]林: 뇌동雷同가 되니 뇌동雷同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飮酒樂하야 公曰 古而無死 其樂若何注+[附注] 林曰 使自古有生而無死 其爲樂當如何哉 晏子對曰 古而無死 則古之樂也 君何得焉이릿가
술을 마시고는 기분이 좋아서 제경공齊景公이 “예로부터 죽음이 없었다면 그 즐거움이 어떠하겠는가?注+[부주]林: 예로부터 만 있고 가 없었다면 그 즐거움이 어떠하겠느냐는 말이다.”라고 하자, 안자晏子가 대답하기를 “예로부터 죽음이 없었다면 이는 옛사람의 즐거움이니 임금님께서 어찌 그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昔爽鳩氏始居此地注+爽鳩氏 少皞氏之司寇也러니 季萴因之注+季萴 虞夏諸侯 代爽鳩氏者하고 有逢伯陵因之注+逢伯陵 殷諸侯 姜姓하고 蒲姑氏因之注+蒲姑氏 殷周之間 代逢公者하고 而後大公因之니이다
옛날에 상구씨爽鳩氏가 비로소 이 땅에 거주居住하였는데注+상구씨爽鳩氏소호씨少皞氏사구司寇이다., 계즉季萴이 그 뒤를 이어 이 땅에 거주하였고注+계즉季萴나라와 나라의 제후諸侯상구씨爽鳩氏의 뒤를 이은 자이다. , 또 봉백릉逢伯陵이 그 뒤를 이었고注+봉백릉逢伯陵나라의 제후諸侯강성姜姓이다. , 또 포고씨蒲姑氏가 그 뒤를 이었고注+포고씨蒲姑氏나라가 나라로 바뀌던 시기時期봉공逢公의 뒤를 이은 자이다. , 최후最後태공太公께서 뒤를 이어 이 땅에 거주하셨습니다.
古若無死 爽鳩氏之樂이니 非君所願也注+齊侯甘於所樂 志於不死 晏子稱古 以節其情願니이다
예로부터 만약 죽음이 없었다면 상구씨爽鳩氏의 즐거움이니, 임금님께서 할 바가 아닙니다.注+제후齊侯가 즐기기를 [甘]하여 죽지 않기를 지망志望하니, 안자晏子가 옛일을 말하여 그의 지원志願[情願]을 억제抑制[節]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鄭子産有疾 謂子大叔曰 我死 子必爲政하리라
나라 자산子産에 걸리자, 자태숙子太叔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그대가 반드시 집정執政이 될 것이네.
唯有德者 能以寬服民이니 其次莫如猛이라
오직 이 있는 사람만이 관대寬大정치政治로 백성을 복종服從시킬 수 있고, 그 다음은 엄격嚴格하게 다스리는 것만 한 게 없네.
夫火하니 民望而畏之 故鮮死焉이어니와 懦弱하니 民狎而翫之注+狎 輕也하야 則多死焉이라
불은 맹열猛熱하니 사람들이 바라보고는 두려워하기 때문에 불에 타 죽는 자가 적지만 물은 나약懦弱하니 사람들이 경시輕視하여 함부로 대하기 때문에注+경시輕視함이다. 빠져 죽는 자가 많은 것이네.
故寬難注+難以治이라
그러므로 관정寬政으로 다스리기가 어려운 것이네.注+관정寬政으로 다스리기 어렵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疾數月而卒하다
을 앓은 지 몇 달 만에 자산子産하였다.
大叔爲政하야 不忍猛而寬하니 鄭國多盜하야 取(聚)人於萑苻之澤注+萑苻 澤名 於澤中劫人하다
자태숙子太叔집정執政이 되어 차마 정치政治를 할 수 없어 관대寬大정치政治를 하니, 나라에 도적이 많이 생겨 추부萑苻의 늪에 모여 살면서 사람들의 재물財物겁탈劫奪[取]하였다.注+추부萑苻는 늪의 이름이다. 늪 속에 모여 살면서 사람들의 재물을 겁탈劫奪한 것이다.
大叔悔之曰 吾早從夫子러면 不及此리라하고 興徒兵以攻萑苻之盜하야 盡殺之하니 盜少止하다
자태숙子太叔후회後悔하며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그분의 말을 따랐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고 하고서 보병步兵을 일으켜 추부萑苻의 도적을 공격하여 다 죽이니 도적盜賊이 조금 잠잠해졌다.
仲尼曰 善哉
중니仲尼는 이에 대해 논평論評하기를 “훌륭하다.
政寬則民慢하니 慢則糾之以猛注+糾 猶攝也하고 猛則民殘하니 殘則施之以寬이라
정치政治관대寬大하면 백성들이 태만怠慢해지니 태만怠慢해지면 한 정치로 규정糾正(罪를 살펴 바로잡음)하고注+(威脅)과 같다. , 정치政治엄격嚴格하면 백성이 상해傷害를 입으니 상해傷害를 입으면 관대寬大정치政治를 베풀었다.
寬以濟猛하고 猛以濟寬이면 政是以和하나니라
관대寬大로써 엄격嚴格조절調節하고 엄격嚴格으로써 관대寬大조절調節하였으니 정치政治가 이로 인해 화평和平하였다.
詩曰 民亦勞止하야 可小康하니 惠此中國하야 以綏四方이라하니 施之以寬也注+詩 大雅 汔 其也 康綏 皆安也 周厲王暴虐 民勞於苛政 故詩人刺之 欲其施之以寬
에 ‘백성들 또한 괴로워서 조금 편안하기를 바라니, 중국中國에 은혜를 베풀어 사방을 편안하게 하라.’고 하였으니 이는 관대寬大하게 시정施政할 것을 말한 것이고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민로편民勞篇〉의 시구詩句이다. 이고, 는 모두 이다. 나라 여왕厲王포학暴虐하니 백성들이 가혹한 정치에 괴로워하였다. 그러므로 시인詩人이 이를 풍자諷刺하여 여왕厲王관대寬大정치政治를 펴기를 바란 것이다. ,
毋從注+詭人隨人 無正心 不可從하야 以謹無良注+謹 勑愼也하며 遏寇虐 慘不畏明이라하니 糾之以猛也注+式 用也 遏 止也 慘 曾也 言爲寇虐 曾不畏明法者 亦當用猛政糾治之
또 ‘시비是非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남의 의견意見을 따르는 자[詭隨]의 말을 따르지 말아서注+궤인詭人수인隨人은 바른 마음이 없으니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불량不良한 자를 조심하며注+은 경계하고 조심함이다. , 약탈掠奪자행恣行하는 포학暴虐한 자[寇虐]가 끝내[慘] 밝은 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막으라.’고 하였으니, 이는 엄격한 정치로 규정糾正할 것을 말한 것이고注+(以)이고 이고 (끝내)이니, 약탈掠奪자행恣行하는 포학暴虐한 짓을 하여 끝내 밝은 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엄준嚴峻정치政治규치糾治(罪科를 조사해 처벌處罰함)해야 한다는 말이다. ,
이라하니 平之以和也注+柔 安也 邇 近也 遠者懷附 近者各以能進 則王室定
또 ‘먼 곳 백성들을 회유懷柔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친애親愛하여 우리 왕국王國안정安定시키라.’고 하였으니, 이는 화합和合으로 천하天下평정平定할 것을 말한 것이다.注+이고, 이니, 원방遠方의 백성은 귀부歸附[懷附]하게 하고 가까운 곳의 백성은 각자 재능才能으로 진출進出하게 하면 왕실王室안정安定된다는 말이다.
又曰 不競不하며 不剛不柔注+詩 殷頌 言湯政得中和 競 强也 絿 急也하야 布政하니 百祿是遒注+優優 和也 遒 聚也라하니 和之至也
에 ‘강하게 조이지도 말고 느슨하게 풀지도 말며, 하게 하지도 말고 하게 하지도 말아注+는 《시경詩經》 〈상송商頌장발편長發篇〉의 시구詩句이니, 탕왕湯王정치政治중화中和에 맞은 것을 말한 것이다. 이고, 絿이다. 정치政治를 너그럽게 펴면 온갖 이 모이리.注+우우優優이고 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화합和合극치極致를 말한 것이다.”고 하셨다.
及子産卒 仲尼聞之하시고 出涕曰 古之遺愛也注+子産見愛 有古人之遺風 라하다
자산子産이 죽자, 중니仲尼는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자산子産고인古人유풍遺風이 있는 인애仁愛한 사람이다.注+자산子産자애慈愛를 보임이 고인古人유풍遺風이 있다는 말이다. ”고 하셨다.
역주
역주1 嘗有玉帛之使來告 故書 : 曹會가 일찍이 魯나라에 聘問使로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經에 기록하였다는 말이다.
역주2 盜殺 : 在下者가 在上者를 不法으로 殺害하는 것이다.
역주3 齊豹作而不義……求名而不得 : 昭公 31년 傳에 이 일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역주4 望氛 : 望氣와 같은 말로 雲氣를 관찰하여 吉凶을 점치는 것이다.
역주5 不佞 : 재주가 없다는 말로 자기에 대한 謙稱이다.
역주6 旰食 : 밤늦게 저녁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임금이 政務에 勤勞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楚나라 君臣이 吳나라의 侵入을 防備하기에 바빠서 밥도 제때에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7 驂乘 : 높은 사람을 護衛하기 위해 수레 오른쪽에 타는 사람을 이른다.
역주8 以周事子 : 周는 密이니 秘密을 漏泄하지 않는 것으로 齊豹의 恩惠에 報答하겠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9 看位 : 未詳이다.
역주10 曲門 : 未詳이다.
역주11 駟乘 : 兵車에 將軍은 왼쪽, 御는 중앙, 車右는 오른쪽에 타는 것이 常例인데, 이 밖에 한 사람이 더 탈 경우 이를 ‘駟乘’이라 하는데, 그 職은 車右의 助手이다.
역주12 阿下執事 : 阿下는 자신을 낮추고서 親近하게 대하는 것이고, 執事는 衛侯를 가리킨 것이라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3 相親有 :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서로 親愛하는 마음을 갖는 것인 듯하다.
역주14 {未} : 底本에는 ‘未’字가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未’字를 빼고서 번역하였다.
역주15 琴張 : 이 琴張은 孔子의 弟子가 아니다. 이때 孔子의 나이가 31세였다. 《史記仲尼弟子列傳》에 의거하면 子張이 孔子보다 40여 歲가 적다고 하였으니, 이때는 子張이 태어나지도 않았다. 〈楊注〉
역주16 申[甲] : 저본에는 ‘申’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甲’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7 自門行 : 牼이 公子들을 護送해 公門까지 오자, 公子들은 公門 안으로 들어갔다. 牼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곧장 公門 밖에서 떠나려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8 誅於祝固史嚚以辭賓 : 辭賓의 ‘辭’를 杜氏는 ‘辭謝’로 註釋하였으나, 譯者는 僖公 4년 傳의 ‘子辭君必辯之(太子께서 辨明[辭]하시면 임금님께서 반드시 〈罪의 有無를〉 分辨하실 것입니다)’의 用例를 취하여 ‘解明’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9 家無猜疑……無求於鬼神 : 의심하지 않은 것과 祈求하지 않은 것은 別個의 일이니 杜注에 ‘故’字는 옳지 않다. 《左氏會箋》
역주20 與受國福 : ‘與國受福’의 倒置인 듯하다.
역주21 祁[祈] : 저본에는 ‘祁’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祈’로 바로잡았다.
역주22 : 채
역주23 和齊可否……異於大羹 : 和齊는 여러 가지 양념을 섞어[和] 간을 맞추는 것[齊]인데, 여기서는 可否를 따져 事理에 맞는 것을 選擇해 施行하는 뜻으로 쓰였다. 和羹은 양념을 한 肉汁이고 大羹은 양념을 하지 않은 肉汁이다.
역주24 蝦[嘏] : 저본에는 ‘蝦’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嘏’로 바로잡았다.
역주25 : 調和라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26 一氣 : 사람은 기운으로 인해 生存하니 움직임은 모두 기운에서 由來한다. 絃樂을 타고 石磬을 치는 데 기운을 쓰지 않음이 없으니 기운은 바로 음악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먼저 말한 것이다. 〈正義〉
역주27 周武王伐紂……謂之七音 : 이 말은 《國語》 〈周語下〉의 伶人(樂官) 州鳩의 말을 간추려 引用한 것이다. 《國語》 注에 “以數合之는 七의 數를 취한 것을 이르고, 以聲昭之는 律로써 音을 調節하는 것이다.”고 하였을 뿐, ‘以數合之’와 ‘以七同其數’의 ‘數’와 ‘之’와 ‘其’가 指示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으니, 律曆에 어두운 譯者로서는 그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없으므로 그저 글자에 따라 번역하였을 뿐이다.
역주28 封[卦] : 저본에는 ‘封’으로 되어 있으나 《左傳句解》에 의거하여 ‘卦’로 바로잡았다.
역주29 : 《詩傳集註》에 ‘幾(希望)이다.’고 한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30 詭隨 : 杜氏는 ‘詭’를 남을 속이는 사람으로, ‘隨’를 남을 따르는 사람으로 註釋하였으나, 譯者는 이 설을 따르지 않고 《詩傳集註》의 ‘詭隨不顧是非而妄隨人也’라고 한 설을 취하여 번역하였다.
역주31 : 詩에 대부분 語辭로 쓰였다.
역주32 柔遠能邇 以定我王 : 柔는 懷柔이고 能은 親愛이니, 遠方의 백성을 懷柔하고 近方의 백성을 親愛하여 王室을 安定시킨다는 말이다.
역주33 絿 : 下文에 ‘不强不柔’라고 하였으니, 이곳의 ‘競’과 ‘絿’도 相反의 뜻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絿는 緩이다.’고 한 《詩傳集註》의 설을 취하여 번역하였다.
역주34 優優 : 寬裕의 뜻이라고 한 《詩傳集註》의 설을 취하여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6)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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