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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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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三年春王正月 溺會齊師伐衛注+溺 魯大夫 疾其專命而行 故去氏하다
[經]夏四月 葬宋莊公注+無傳하다
[經]五月 葬桓王하다
[經]秋 紀季以酅入于齊注+季 紀侯弟 酅 紀邑 在齊國東安平縣 齊欲滅紀 故季以邑入齊爲附庸 先祀不廢 社稷有奉 故書字貴之하다
[經]冬 公次于滑注+滑 鄭地 在陳留襄邑縣西北 傳例曰 凡師 過信爲次 兵未有所加 所次則書之 旣書兵所加 則不書其所次 以事爲宜 非虛次 [附注] 林曰 此書次之始하다
[傳]三年春 溺會齊師하야 伐衛라하니 疾之也注+傳重明上
[傳]夏五月 葬桓王하니 緩也注+以桓十五年三月崩 七年乃葬 故曰緩
[傳]秋 紀季以酅入于齊하니 紀於是乎始判注+判 分也 言分爲附庸始於此이라
[傳]冬 公次于滑하니 將會鄭伯하야 謀紀故也注+[附注] 林曰 鄭伯 子儀也
鄭伯辭以難注+厲公在櫟故하다
凡師一宿爲舍 再宿爲信이오 過信爲次注+爲經書次例也 舍宿不書 輕也 言凡師 通君臣


3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나라 군대와 회합하여 나라를 토벌하였다.注+나라 대부이다. 그가 임금의 명을 받들지 않고 제멋대로 군대를 거느리고 간 것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여름 4월에 송장공宋莊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5월에 환왕桓王을 장사 지냈다.
가을에 기계紀季휴읍酅邑을 가지고 나라로 들어갔다.注+기후紀侯의 아우이다. 기국紀國인데 제국齊國 동쪽 안평현安平縣에 있다. 나라가 기국紀國격멸擊滅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휴읍酅邑을 가지고 나라로 귀순歸順해 들어가 부용국附庸國이 되어, 선조의 제사를 폐하지 않고 사직社稷을 받들었다. 그러므로 를 기록하여 그를 귀하게 여긴 것이다.
겨울에 장공莊公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에 주둔[次] 하였다.注+나라 땅이다. 진류陳留양읍현襄邑縣 서북에 있다. 전례傳例에 “군대가 이틀 이상 주둔하는 것을 ‘’라 한다.”고 하였다. 군대가 전쟁戰爭을 하지 않았어도 2일 이상 주둔한 곳은 기록하고, 이미 전쟁을 기록하였으면 주둔한 곳은 기록하지 않으니, 이는 정당한 일을 위해 주둔한 것이고 헛되이 주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부주]林: 이것이 ‘’를 기록한 시초이다.
3년 봄에 이 제나라 군대와 회합하여 나라를 토벌하였으니, 그 이름을 칭한 것은 그를 미워해서이다.注+은 위의 를 거듭 밝힌 것이다.
여름 5월에 환왕桓王을 장사 지냈으니, 장례葬禮가 너무 늦었다.注+노환공魯桓公 15년 3월에 하였는데 7년이 지난 뒤에 장사 지냈기 때문에 늦었다고 한 것이다.
가을에 기계紀季휴읍酅邑을 가지고 나라로 들어오니, 기국紀國이 이때부터 비로소 갈라졌다.注+은 갈라짐이니, 나라가 갈라져서 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 된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는 말이다.
겨울에 환공桓公에 주둔하였으니, 이는 정백鄭伯과 회합하여 기국紀國의 일을 모의하고자 한 것이다.注+[부주]林: 정백鄭伯자의子儀이다.
그러나 정백鄭伯국내國內화난禍難이 있다는 이유로 사절하였다.注+여공厲公에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하루 묵는 것을 ‘’라 하고, 이틀 묵는 것은 ‘’이라 하고 이틀 이상 묵는 것을 ‘’라 한다.注+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 를 기록한 것이다. 宿을 기록하지 않는 것은 에 비해 가볍기 때문이다. ‘범사凡師’는 임금이 거느린 군대나 신하가 거느린 군대 모두를 통틀어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위의 例는 隱公 4년 傳에 “故書曰翬帥師疾之也”를 이른다.
역주2 (莊公이……않았다.) : ( )안은 번역 臺本에는 수록되지 않았으나 ‘辭以難’의 이해를 돕기 위해 《左傳杜林合注》本의 林注를 보충해 번역한 것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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