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기계紀季가 휴읍酅邑을 가지고 제齊나라로 들어갔다.注+계季는 기후紀侯의 아우이다. 휴酅는 기국紀國의 읍邑인데 제국齊國 동쪽 안평현安平縣에 있다. 제齊나라가 기국紀國을 격멸擊滅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계季가 휴읍酅邑을 가지고 제齊나라로 귀순歸順해 들어가 부용국附庸國이 되어, 선조의 제사를 폐하지 않고 사직社稷을 받들었다. 그러므로 자字를 기록하여 그를 귀하게 여긴 것이다.
겨울에 장공莊公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활滑에 주둔[次] 하였다.注+활滑은 정鄭나라 땅이다. 진류陳留양읍현襄邑縣 서북에 있다. 전례傳例에 “군대가 이틀 이상 주둔하는 것을 ‘차次’라 한다.”고 하였다. 군대가 전쟁戰爭을 하지 않았어도 2일 이상 주둔한 곳은 기록하고, 이미 전쟁을 기록하였으면 주둔한 곳은 기록하지 않으니, 이는 정당한 일을 위해 주둔한 것이고 헛되이 주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부주]林: 이것이 ‘차次’를 기록한 시초이다.
傳
3년 봄에 익溺이 제나라 군대와 회합하여 위衛나라를 토벌하였으니, 그 이름을 칭한 것은 그를 미워해서이다.注+전傳은 위의 예例를 거듭 밝힌 것이다.
傳
여름 5월에 환왕桓王을 장사 지냈으니, 장례葬禮가 너무 늦었다.注+노환공魯桓公 15년 3월에 붕崩하였는데 7년이 지난 뒤에 장사 지냈기 때문에 늦었다고 한 것이다.
傳
가을에 기계紀季가 휴읍酅邑을 가지고 제齊나라로 들어오니, 기국紀國이 이때부터 비로소 갈라졌다.注+판判은 갈라짐이니, 기紀나라가 갈라져서 제齊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 된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는 말이다.
傳
겨울에 환공桓公이 활滑에 주둔하였으니, 이는 정백鄭伯과 회합하여 기국紀國의 일을 모의하고자 한 것이다.注+[부주]林: 정백鄭伯은 자의子儀이다.
그러나 정백鄭伯이 국내國內에 화난禍難이 있다는 이유로 사절하였다.注+여공厲公이 역櫟에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하루 묵는 것을 ‘사舍’라 하고, 이틀 묵는 것은 ‘신信’이라 하고 이틀 이상 묵는 것을 ‘차次’라 한다.注+경經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차次’의 예例를 기록한 것이다. 사舍와 숙宿을 기록하지 않는 것은 차次에 비해 가볍기 때문이다. ‘범사凡師’는 임금이 거느린 군대나 신하가 거느린 군대 모두를 통틀어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