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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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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年春王三月辛卯에 臧孫辰卒하다注+無傳 公與小斂 故書日
[經]楚殺其大夫宜申하다注+宜申 子西也 謀弑君 故書名
[經]自正月不雨하야 至于秋七月하다注+無傳 義與二年同
[經]及蘇子盟于女栗하다注+女栗 地名 闕 蘇子 周卿士 頃王新立 故與魯盟 親諸侯也
[經]冬에 狄侵宋하다注+無傳
[經]楚子蔡侯次于厥貉하다注+厥貉 地名 闕 將伐宋而未行 故書次 [附注] 林曰 書次以見楚之圖霸而未集也 是故書次于郞以見齊霸之難 書次厥貉以見楚霸之難
傳
[傳]十年春에 晉人伐秦하야 取少梁하다注+少梁 馮翊夏陽縣
傳
[傳]夏에 秦伯伐晉하야 取北徵하다注+報少梁
傳
[傳]初에 楚范巫矞似가注+矞似 范邑之坐 謂成王與子玉子西曰 三君皆將强死注+[附注] 林曰 言三君 皆將不得以壽終하리다
城濮之役에 王思之라注+[附注] 林曰 成王思范巫强死之言
故使止子玉曰 毋死라하나 不及注+[附注] 林曰 子玉已死하고
止子西하다
子西縊而縣絶注+在僖二十八年이러니 王使適至하야 遂止之하고 使爲商公하다注+商 楚邑 今上雒商縣 [附注] 林曰 楚僭王 其縣尹皆稱公 使子西爲商公
沿漢泝江하야 將入郢注+沿 順流 泝 逆流에 王在渚宮注+小洲曰渚이라가 下見之注+[附注] 林曰 成王下而見子西하니 懼而辭注+[附注] 林曰 子西倉卒見王 而懼以辭謝王 曰 臣免於死나 又有讒言하야 謂臣將逃라하니 니이다注+陳楚名司寇爲司敗 子西畏讒言 不敢之商縣
注+掌百工之官하니
又與子家謀弑穆王하다 穆王聞之하고 五月에 殺鬪宜申及仲歸하다注+仲歸 子家 不書 非卿 [附注] 林曰 宜申 則子西
傳
[傳]秋七月에 及蘇子盟于女栗하니 頃王立故也라注+僖十年狄滅溫 蘇子奔衛 今復見 蓋王復之
傳
[傳]陳侯鄭伯會楚子于息하다注+[附注] 朱曰 息 楚邑
冬에 遂及蔡侯次于厥貉注+ 故不列於諸侯 宋鄭猶然 則陳侯必同也하야 將以伐宋하다
宋華御事曰 楚欲也하니 先爲之弱乎인저
何必使誘我리오
我實不能하니 오하고
注+時 楚欲誘呼宋共戰 御事 華元父하고
遂道以田孟諸하다注+孟諸 宋大藪也 在梁國睢陽縣東北
注+盂田獵陳名하고 期思公復遂爲右司馬注+復遂 楚期思邑公 今戈陽期思縣하고 子朱及文之無畏爲左司馬하다注+將獵張兩甄 故置二左司馬 然則右司馬一人當中央 [附注] 林曰 子朱無畏 皆楚大夫
命夙駕載燧注+燧 取火者로되 宋公違命注+不夙駕載燧하니 無畏抶其僕以徇하다注+[附注] 林曰 抶 撻也 僕 御也 無畏爲司馬 撻宋昭公之御者 以徇于諸侯 正違命之罰
或謂子舟曰 國君不可戮也라한대 子舟曰
當官而行에 何彊之有리오注+子舟 無畏字 [附注] 林曰 言當官而行刑罰 不當以宋君爲强而避之也
詩曰 剛亦不吐하고 柔亦不茹注+詩 大雅 美仲山甫不辟彊라하고 注+詩 大雅 詭人隨人 無正心者 謹 猶愼也 罔 無也 極 中也이라하니 是亦非辟彊也라 敢愛死以乎아注+爲宣十四年宋人殺子舟張本
傳
[傳]厥貉之會에 子逃歸하다注+爲明年楚大伐麇傳


10년 봄 주왕周王 3월 신묘일辛卯日에 장손신臧孫辰이 졸卒하였다.注+전傳이 없다. 공公이 소렴小殮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일日을 기록한 것이다.
여름에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토벌하였다.注+장수將帥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고사告辭에 생략省略하였기 때문이다. [부주]林: 진秦나라를 이적夷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초楚나라가 패자霸者가 된 것이 진秦나라의 도움이었으므로 진秦나라를 이적夷狄으로 여겼고, 중화中華가 이적夷狄으로 변變한 것도 진秦나라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또 30년 뒤에는 정鄭나라를 이적夷狄으로 여겼고 50년 뒤에는 진晉나라를 이적夷狄으로 여겼다. 정鄭나라를 이적夷狄으로 여긴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진晉나라를 이적夷狄으로 여긴 것은 심하였다.
초楚나라가 그 대부大夫의신宜申을 죽였다.注+의신宜申은 자서子西이다. 임금을 시해弑害하려고 모의謀議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정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注+전傳이 없다. 문공文公 2년의 기록과 뜻이 같다.
소자蘇子와 여율女栗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여율女栗은 지명地名인데, 그 소재지所在地를 알 수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았다. 소자蘇子는 주周나라 경사卿士이다. 경왕頃王이 새로 즉위卽位하였기 때문에 노魯나라와 결맹結盟하여 제후諸侯와 친밀親密히 지내고자 한 것이다.
겨울에 적인狄人이 송宋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전傳이 없다.
초자楚子와 채후蔡侯가 궐맥厥貉에 주둔하였다.注+궐맥厥貉은 지명地名인데 그 소재지를 알 수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았다. 송宋나라를 토벌하려 하였으나 아직 출동出動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次’라고 기록한 것이다. [부주]林: ‘차次’라고 기록하여 초楚나라가 패업霸業을 도모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것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차우랑次于郞’이라고 기록하여(莊公 8년) 제齊나라가 패업霸業을 이루기 어려움을 드러내고, ‘차궐맥次厥貉’이라고 기록하여 초楚나라가 패업霸業을 이루기 어려움을 드러내었다.
傳
10년 봄에 진인晉人이 진秦나라를 토벌하여 소량少梁을 취하였다.注+소량少梁은 풍익馮翊하양현夏陽縣이다.
傳
여름에 진백秦伯이 진晉나라를 토벌하여 북징北徵을 취하였다.注+소량少梁을 빼앗겼던 원한怨恨을 보복한 것이다.
傳
당초에 초楚나라 범읍范邑의 무당 율사矞似가注+율사矞似는 범읍范邑의 무당이다.성왕成王과 자옥子玉‧자서子西에게 “세 분께서는 장차 모두 비명非命에 죽을[强死] 것입니다.”注+[부주]林: 세 사람 모두 수명壽命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성복城濮의 전쟁 때 성왕成王은 무당의 이 말을 생각하였다.注+[부주]林: 성왕成王은 비명非命으로 죽는다는 범무范巫의 말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옥子玉의 자살自殺을 저지沮止하기 위해 사자使者를 보내며 “죽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注+[부주]林: 자옥子玉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자서子西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자살을 저지하게 하였다.
자서子西는 목을 매었으나 끈이 끊어졌는데注+이 일은 희공僖公 28년에 있었다. 마침 그때 왕王의 사자使者가 와서 마침내 그의 자살을 막고서 그를 상읍商邑의 공公(長)으로 삼았다.注+상商은 초楚나라 읍邑으로 지금의 상락上雒상현商縣이다. [부주]林: 초楚나라는 왕王의 명호名號를 참칭僭稱하였기 때문에 그 현縣의 윤尹(長)을 모두 ‘공公’이라 칭하였다. 자서子西를 상읍商邑의 공公으로 삼은 것이다.
자서子西는 한수漢水를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장강長江을 거슬러 올라가서 초楚나라의 국도國都영郢으로 들어가려 할 때注+연沿은 물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고, 소泝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성왕成王이 저궁渚宮에 있다가注+작은 모래톱을 ‘저渚’라 한다. 내려와서 자서子西를 만나니,注+[부주]林: 성왕成王이 내려와서 자서子西를 만난 것이다.자서子西는 겁이 나서 변명하기를注+[부주]林: 자서子西는 갑자기 성왕成王을 보고는 겁이 나서 변명으로 성왕成王에게 사죄謝罪한 것이다. “신臣이 죽음을 면하였으나 또 신臣이 도망가려 한다는 참언讒言이 있으니, 신臣은 사패司敗에게 가서 죽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注+진陳나라와 초楚나라는 사구司寇를 사패司敗라고 하였다. 자서子西는 참언讒言이 두려워 감히 상읍商邑으로 가지 못한 것이다.
성왕成王은 그를 공윤工尹으로 삼았다.注+백공百工을 맡아 다스리는 관직官職이다.
그는 또 자가子家와 목왕穆王을 시해弑害하려고 음모陰謀하니 목왕穆王이 그 음모陰謀를 듣고서 5월에 투의신鬪宜申과 중귀仲歸를 죽였다.注+중귀仲歸는 자가子家이다. 경經에 자가子家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경卿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주]林: 의신宜申은 바로 자서子西이다.
傳
가을 7월에 소자蘇子와 여율女栗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이는 경왕頃王이 즉위卽位하였기 때문이다.注+희공僖公 10년에 적인狄人이 온溫을 격멸擊滅할 때 소자蘇子가 위衛나라로 도망갔는데 지금 경經에 다시 보이니 아마도 주왕周王이 복귀復歸시킨 듯하다.
傳
진후陳侯‧정백鄭伯이 식息에서 초자楚子와 회합會合하였다.注+[부주]朱: 식息은 초楚나라 읍邑이다.
겨울에 세 나라가 드디어 채후蔡侯와 함께 궐맥厥貉에 주둔하여注+진후陳侯‧정백鄭伯‧송공宋公‧균자麇子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송공宋公과 정백鄭伯은 친히 비굴卑屈하게 처신하여 초자楚子의 복임僕任(御者)이 되는 것은 구차히 면하였으나, 사마司馬의 부림을 받으니 균자麇子는 이를 치욕恥辱으로 여겨 드디어 도망해 돌아갔다. 세 나라 임금은 지위地位를 잃고 작爵을 낮추었기 때문에[失位降爵]경經에 제후諸侯로 열기列記하지 않은 것이다. 송공宋公과 정백鄭伯이 이러하였다면 진후陳侯도 반드시 같았을 것이다.송宋나라를 토벌하려 하였다.
송宋나라 화어사華御事가 말하기를 “초楚나라가 우리를 복종服從시키려 하니 우리가 먼저 복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저들이 우리를 전쟁戰爭으로 유인誘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가 실로 무능無能해서이니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송공宋公은 초자楚子를 영접迎接해 위로慰勞하고서 복종의 뜻을 표시하였다.注+이때 초楚나라는 송宋나라를 유인해 전쟁으로 불러들여 함께 전투하고자 하였다. 어사御事는 화원華元의 아버지이다.
그리고는 드디어 초자楚子를 인도하여 맹저孟諸에서 사냥하였다.注+맹저孟諸는 송宋나라의 큰 습지濕地로 양梁나라 수양현睢陽縣 동북쪽에 있다.
사냥할 때 송공宋公은 우우右盂, 정백鄭伯은 좌우左盂가 되고,注+우盂는 사냥할 때에 펼치는 진陣의 명칭名稱이다.기사공期思公복수復遂가 우사마右司馬,注+복수復遂는 초楚나라 기사읍期思邑의 공公(長)이다. 지금의 과양戈陽기사현期思縣이다.자주子朱와 문지무외文之無畏가 좌사마左司馬가 되었다.注+사냥할 때는 양익兩翼으로 진陣[甄]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두 명의 좌사마左司馬를 둔 것이다. 그렇다면 우사마右司馬는 중앙中央을 담당한 것이다. [부주]林: 자주子朱와 무외無畏는 모두 초楚나라 대부大夫이다.
초자楚子가 새벽 일찍이 수레에 수燧를 실으라고 명命하였으나,注+수燧는 불을 채취採取하는 기구器具이다.송공宋公이 명命을 어기니注+새벽 일찍 수레에 수燧를 실어 놓지 않은 것이다.무외無畏가 송공宋公의 어자御者에게 채찍을 쳐서 전군全軍에 조리돌렸다.注+[부주]林: 질抶은 달撻(매질함)이고 복僕은 어御이다. 무외無畏는 사마司馬로서 송소공宋昭公의 어자御者에게 매질을 하여 제후군諸侯軍에 조리돌려 명命을 어긴 죄罪를 다스린[正] 것이다.
어떤 자가 자주子舟에게 “국군國君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자주子舟가 말하였다.
“관직官職을 맡아 직무職務를 수행함에 있어 강자彊者를 의식意識한 필요가 뭐 있는가?注+자주子舟는 무외無畏의 자字이다. [부주]林: 관직官職을 맡아 형벌刑罰을 시행施行하는 것이니 송군宋君을 강자强者라 하여 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이다.
시詩에 ‘강하여도 뱉지 않고 부드러워도 먹지 않는다.’고 하였고,注+시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증민편蒸民篇〉인데, 강자强者를 피하지 않은 중산보仲山甫를 찬미讚美한 시詩이다. 또 ‘겉으로만 복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비난하는 자를[詭隨] 놓아주지 말아서 행동에 준칙準則이 없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하였으니,注+시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민로편民勞篇〉이다. 궤인詭人과 수인隨人은 바른 마음이 없는 자이다. 근謹은 신愼과 같고, 망罔은 무無이고 극極은 중中이다. 이 또한 강자를 피하지 않은 뜻이니, 내 어찌 감히 죽음을 아껴 관직官職을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注+선공宣公 15년에 송인宋人이 자주子舟를 죽인 장본張本이다.
傳
궐맥厥貉의 회합會合에서 균자麇子가 도망해 돌아갔다.注+명년明年에 초楚나라가 균麇나라를 크게 토벌한 전傳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狄秦也……狄晉甚矣 : 林氏는 《穀梁傳》의 설에 의거해 이곳의 ‘秦伐晉’을 秦나라를 夷狄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로부터 30년 뒤인 成公 3년의 ‘鄭伐許’와 또 50여 년 뒤인 昭公 12년의 ‘晉伐鮮虞’를 穀梁氏는 모두 夷狄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林氏는 《穀梁傳》에 夷狄인 楚나라를 도와 諸夏인 許國을 攻伐한 鄭나라를 夷狄으로 여긴 것은 可하지만 中華를 지키기 위해 夷狄인 鮮虞를 토벌한 晉나라를 夷狄으로 여긴 것은 심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討伐軍의 主將을 기록하지 않은 것에 과연 이런 뜻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역주2 臣歸死於司敗也 : 임금님의 은덕으로 죽음을 면하였으나, 臣이 만약 外方인 商邑으로 간다면 사람들은 ‘臣이 장차 王을 배반하고 도망갈 것이라.’고 참소할 것이니, 外方으로 가서 배반해 도망갈 것이라는 惡名을 얻기보다 차라리 司敗에게 가서 刑官에게 목을 바치겠다는 말이다.
역주3 王使爲工尹 : 子西가 商邑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에 商公으로 任命한 것을 取消하고 工尹에 임명한 것이다.
역주4 陳鄭及執……失位降爵 : 《左氏會箋》에 “이 곳에 주둔한 것은 宋나라를 치기 위함이었으니, 宋公이 그 주둔한 곳에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下文에 ‘楚子를 迎接해 위로하고서 복종의 뜻을 보였다.’고 하였고 보면 宋公이 厥貉에 없었던 것이 틀림없으니, 杜注에 ‘宋鄭執卑’라고 한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또 司馬에게 부림을 받은 것은 孟諸에서 사냥할 때의 일이고, 孟諸의 사냥은 宋나라가 복종한 뒤에 있었으니, 厥貉에 주둔한 일과는 별개의 일이다.”고 하였다. 失位降爵은 公爵인 宋君, 侯爵인 陳君, 伯爵인 鄭君이 子爵인 楚子의 左右盂가 된 것은 國君으로서의 地位를 잃은 것이고 爵을 降等한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5 弱我 : 弱은 楊伯峻의 설에 따라 服從으로 번역하였다. 楊伯峻은 “强하면 抗拒하지만 弱하면 服從한다. 그러므로 ‘弱我’는 우리를 복종시키려 한다는 뜻이다.”고 하였다.
역주6 民何罪 : 우리가 실로 無能해서 楚나라의 侵伐을 부른 것이니, 만약 楚軍이 쳐들어온다면 백성들은 아무 죄 없이 災難을 입게 된다는 말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역주7 乃逆楚子勞且聽命 : 宋公이 스스로 厥貉으로 가서 楚子를 迎接하고 楚軍을 위로하여 服從의 뜻을 보인 것이다. 聽命은 시키는 대로 順從하는 것이다.
역주8 宋公爲右盂 鄭伯爲左盂 : 宋나라는 18년 동안, 鄭나라는 16년 동안 楚나라를 背叛하였기 때문에 武力으로 威脅하여 두 임금을 左右盂로 삼아 侮辱을 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9 毋縱詭隨 以謹罔極 : 詭隨의 本意는 是非를 돌아보지 않고 함부로 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詭隨를 本意대로 해석하면 宋公이 是非를 돌아보지 않고 남을 따랐기 때문에 侮辱을 준 것이 된다. 宋公을 侮辱한 것은 服從하겠다는 뜻을 보여 놓고서 명을 어겼기 때문이니, 詭隨를 本意대로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詭隨는 《左氏會箋》의 설을 취하여 번역하고, 罔極은 楊伯峻의 설을 취하여 번역하였다. 《左氏會箋》에 “詭隨는 겉으로는 따르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옳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고 하였다. 楊伯峻의 注에 “罔極은 방탕하고 醜惡하여 행동에 準則이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謹은 경계의 뜻이다.
역주10 亂官 : 맡은 職責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 官職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역주11 麋[麇] : 저본에는 ‘麋’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麇’으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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