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왕王이 영숙榮叔을 보내어 함含과 봉賵을 주었다.注+주옥珠玉을 ‘함含’이라 하는데, 함含은 죽은 사람의 입에 채워 넣는 것이다. 거마車馬를 ‘봉賵’이라 한다.
3월 신해일辛亥日에 우리 소군小君성풍成風을 장사 지냈다.注+전傳이 없다. 반곡反哭 등의 상례喪禮를 갖추었기 때문에 ‘장아소군葬我小君’이라고 한 것이다.
왕王이 소백召伯을 보내어 와서 회장會葬하였다.注+소백召伯은 천자天子의 경卿이다. 소召는 채지采地이고 백伯은 작爵이다. 장사 때에 미쳐 오지 않았는데도 비난하지 않은 것은 다섯 달 이내에 오는 예禮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주]林: 왕王을 천왕天王으로 칭하지 않은 것이 환공桓公의 명命을 추석追錫할 때 보였고, 이번에 다시 보였으니, 폄하貶下한 것이다. 그리고 또 남아南雅에 드러나 있는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가르침에는 군부인君夫人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게 여긴 것이 없는데, 환공桓公은 소자少子로서 장자長子의 자리를 찬탈簒奪하였고 성풍成風은 서첩庶妾으로 적부인嫡夫人의 자리를 어지럽혔으니, 왕도王道가 종식終熄되었다. 장공莊公과 양공襄公은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또 포상褒賞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에 천명天命에 따라 천토天討를 시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천왕天王이라고 칭하지 않은 것이다.
겨울 10월 갑신일甲申日에 허남許男업業이 졸卒하였다.注+전傳이 없다. 희공僖公과 여섯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傳
5년 봄에 왕王의 사신 영숙榮叔이 와서 함含과 봉賵을 주고, 소소공召昭公이 와서 회장會葬하였으니 예禮에 맞았다.注+성풍成風은 장공莊公의 첩妾인데도 천자天子가 부인夫人의 예禮를 적용適用해 함含과 봉賵을 주어, 어머니는 아들로 인해 귀貴해진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예禮’라고 한 것이다.
傳
처음에 약鄀나라가 초楚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진秦나라에 붙었다가 또 두 마음을 품고서 초楚를 따르니,注+[부주]林: 이미 진秦나라에 붙었다가 또 두 마음을 품고서 초楚나라를 따르기 때문이다. 여름에 진인秦人이 약鄀나라로 쳐들어갔다.
傳
육인六人이 초楚나라를 배반하고 동이東夷에 붙으니, 가을에 초楚나라 성대심成大心과 중귀仲歸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육六나라를 멸하였다.注+중귀仲歸는 자가子家이다. [부주]林: 성대심成大心은 자옥子玉의 아들이다.
傳
겨울에 초楚나라 공자公子섭燮이 요蓼나라를 멸滅하였다.
장문중臧文仲이 육국六國과 요蓼나라가 멸망滅亡하였다는 말을 듣고서注+요蓼나라는 지금의 안풍安豊요현蓼縣이다. 말하였다.
“고요皐陶와 정견庭堅의 제사祭祀가 갑자기 끊기게 되었구나.
덕德을 세우지 않아 백성들이 구원救援하지 않아서이니 슬프도다.”注+요蓼나라와 육六나라는 모두 고요皐陶의 후손이다. 두 나라의 임금이 덕德을 세우지 않고 대국大國과 원한怨恨을 맺어 갑자기 망亡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긴 것이다.
傳
진晉나라 양처보陽處父가 위衛나라에 가서 빙문聘問하고 돌아올 때注+[부주]林: 문공文公 4년에 위衛나라 영유寗兪가 진晉나라에 와서 빙문聘問하였기 때문에 처보處父가 답빙答聘한 것이다.영寗에 들르니, 영영寗嬴이 따라오다가注+영寗은 진晉나라 읍邑으로 급군汲郡수무현脩武縣이다. 영嬴은 역려逆旅의 관리를 맡은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처보處父의 사람됨을 좋아하여 그를 따라간 것이다.온溫에까지 와서는 되돌아갔다.
그 아내가 그 까닭을 묻자, 영嬴이 대답하였다.
“너무 강剛하기 때문이다.注+[부주]林: 처보處父의 사람됨이 순전히 강剛만을 믿는다는 말이다.
〈상서商書〉에 ‘성질이 가라앉고 유약柔弱한 자는[沈漸]강剛으로 그 유약柔弱을 극복克服하고, 성질이 강하고 쾌활한 자는[高明]유순柔順으로 그 강剛을 극복克服한다.’고 하였는데,注+침점沈漸은 체닉滯溺과 같고 고명高明은 항상亢爽과 같다. 각각 강剛과 유柔로 자기 본성本性에 부족한 점을 극복克服하여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홍범洪範〉에 있는데, 지금은 〈주서周書〉라고 한다. [부주]林: 침점沈漸이 《상서尙書》에는 침잠沈潛으로 되어 있다. 그 분은[夫子] 한결같이 강剛만을 믿으니 아마도 수명壽命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注+양처보陽處父의 성품은 순전히 강剛뿐이라는 말이다. [부주]朱: ‘일지壹之’는 처보處父가 강剛에만 오로지 마음을 쓰고 침잠沈潛의 의사意思가 부족하니 반드시 제명대로 죽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늘은 강剛을 덕德으로 삼는데도 사시四時의 운행運行을 범犯하지 않는데注+한서寒暑가 서로 범하지 않고 순서를 따른다는 말이다.[부주]林: 사시四時의 순서順序를 범犯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또 말만 번지르르하고[華] 진실이 없는 것은 원망이 모이는 것인데注+말이 그 행동보다 지나친다는 말이다. 그는 남을 침범侵犯하여 원망을 모으고 있으니, 몸을 편안히[定]보전保全하지 못할 것이다.注+강剛하면 남을 침범한다.
나는 그에게서 이익은 얻지 못하고 그의 화난禍難에 걸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그를 버리고 돌아왔다.”注+문공文公 6년에 진晉나라가 처보處父를 죽인 전傳의 배경이다. [부주]林: 이離는 걸리는 것이다.
진晉나라의 조성자趙成子, 난정자欒貞子, 곽백霍伯, 구계臼季가 모두 졸卒하였다.注+성자成子는 조쇠趙衰로 신상군新上軍의 장수와 중군中軍의 좌佐였고, 정자貞子는 난지欒枝로 하군下軍의 장수였고, 곽백霍伯은 선차거先且居로 중군中軍의 장수였고, 구계臼季는 서신胥臣으로 하군下軍의 좌佐였다. 문공 6년에 이夷에서 군사 훈련을 한 전傳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林曰……是故皆不稱天 :
林註의 뜻은 桓公은 兄을 죽이고 簒奪한 자인데도 그의 死後에 天子가 功德을 讚揚하는 命을 내렸고, 成風은 僖公의 妾이었는데도 天子가 含賵을 내렸으며, 莊公은 桓公의 弑害에 가담한 罪로 亡命하였다가 被殺된 어머니 文姜을 夫人의 禮로 장사 지냈고, 襄公은 先君의 妾인 자기의 어머니 定姒를 夫人의 禮로 장사 지내어 褒賞하였기 때문에 天命에 따라 天討를 행하는 뜻에서 모두 天王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南雅는 《詩經》의 〈周南〉‧〈召南〉과 〈小雅〉‧〈大雅〉를 이르는 말이다. 《春秋》에 ‘王使’라고 칭한 곳이 3곳, ‘天子使’라고 칭한 곳이 1곳, ‘天王使’라고 칭한 곳이 12곳이 보이는데, 이 세 유형의 기록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林氏는 ‘天’을 쓰고 쓰지 않은 것에 큰 의미를 두어 ‘云云’하였으니, 穿鑿이 아닌지 모르겠다.
역주2皐陶庭堅 :
文公 18년 傳의 杜注에 庭堅은 皐陶의 字라고 하여 皐陶庭堅을 한 사람으로 보았으나,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 “典과 謨에 皐陶를 칭한 곳이 많은데, 帝가 그를 칭하고 同朝人이 그를 칭하고 史臣이 그를 칭할 때에 모두 ‘皐陶’로 칭하였고 한사람도 ‘庭堅’으로 칭한 사람이 없는데 무엇을 보고서 庭堅이 皐陶의 字임을 알 수 있는가?”라고 한 崔述의 《考信錄》의 말을 소개하면서 皐陶와 庭堅은 두 사람이고, 六나라는 皐陶의 후손이고 蓼나라는 庭堅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기타에도 두 사람으로 해석한 註釋이 많으므로 譯者도 두 사람으로 번역하였다.
역주3沈漸……猶亢爽也 :
滯溺은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고 가라앉은 것이고, 亢爽은 기상이 드높고 쾌활한 것이다.
역주4猶不干犯四時之序 :
四時를 범하면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겨울에 천둥이 치고, 가을에 꽃이 피고, 봄에 열매를 맺는 災變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