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夏四月
에 五卜郊
나 不從
하니 乃
注+無傳 卜常祀 不郊 皆非禮 故書 하다
[經]五月
에 公會晉侯齊侯宋公衛侯曹伯伐鄭
注+晉侯 大子州蒲也 稱爵 見其生代父居位 失人子之禮 하다
[經]齊人來媵
注+無傳 媵伯姬也 異姓來媵 非禮也
[經]丙午
에 晉侯獳卒
注+六同盟 據傳 丙午 六月七日 有日無月 하다
傳
[傳]十年春
에 晉侯使糴茷如楚
注+糴茷 晉大夫 하야 報大宰子商之使也
注+子商 楚公子辰 使在前年 라
傳
[傳]衛子叔黑背侵鄭
하니 晉命也
注+晉命衛使侵鄭 라
傳
[傳]鄭公子班聞叔申之謀
注+改立君之謀 [附注] 林曰 叔申 卽公孫申也 하고 三月
에 子如立公子繻
注+子如 公子班 하다
夏四月
에 鄭人殺繻
하고 立髡頑
하니 子如奔許
注+髡頑 鄭成公大子 하다
欒武子曰 鄭人立君
하니 이 何益
注+[附注] 林曰 我執成公 只是一人 이리오
晉侯有疾
이어늘 五月
에 晉立大子州蒲以爲君
하고 而會諸侯伐鄭
注+生立子爲君 此父不父 子不子 經因書晉侯 其惡明 하다
鄭子罕賂以襄鐘
注+子罕 穆公子 襄鐘 鄭襄公之廟鐘 하고 子然盟于脩澤
하고 子駟爲質
注+子然子駟 皆穆公子 熒陽卷縣東有脩武亭 하니 辛巳
에 鄭伯歸
注+鄭伯歸不書 鄭不告入 하다
傳
[傳]晉侯夢
에 大厲
가 被髮及地
하고 搏膺而踊曰 殺余孫
하니 不義
注+厲 鬼也 趙氏之先祖也 八年 晉侯殺趙同趙括 故怒 [附注] 林曰 膺 胸也 以手搏胸而踊躍로다
余得請於帝矣
注+[附注] 朱曰 言我訴其寃於上帝 旣得請矣 라하고 壞大門及寢門而入
이어늘 公懼
하야 入于室
하니 又壞戶
하다
公覺
하야 召桑田巫
注+桑田 晉邑 하니 巫言如夢
注+巫云鬼怒 如公所夢 이어늘
公曰 何如
注+[附注] 朱曰 問其吉凶 오 曰 不食新矣
注+言公不得及食新麥 리이다
公疾病
하야 求醫于秦
하니 秦伯使醫緩爲之
注+緩 醫名 爲 猶治也 하다
未至
에 公夢疾爲二豎子
注+[附注] 林曰 景公夢疾病化爲二豎子 曰 彼
는 良醫也
라 懼傷我
하니
焉逃之
오 其一曰 居肓之上 膏之下
면 若我何
注+肓 鬲也 心下爲膏 리오
在肓之上膏之下
하야 攻之不可
注+[附注] 林曰 攻 熨灸也 言不可以火攻하고 達之不及
하고 藥不至焉
하니 不可爲也
注+達 針 [附注] 林曰 言不可以針達 로이다 公曰 良醫也
라하고 厚爲之禮而歸之
하다
六月丙午
에 晉侯欲麥
注+周六月 今四月 麥始熟 [附注] 林曰 欲食新麥 하야 使甸人獻麥
注+甸人 主爲公田者 하고 饋人爲之
注+[附注] 朱曰 饋人 主治飮食者 使之供具 하야 召桑田巫
하야 示而殺之
하다
將食
에 하야 如厠
타가 陷而卒
注+張 腹滿也 [附注] 林曰 陷於厠中而死 竟不及食新麥 하다
小臣有晨夢負公以登天이러니 及日中하야 負晉侯出諸厠하다
遂以爲殉
注+傳言巫以明術見殺 小臣以言夢自禍 하다
傳
[傳]鄭伯討立君者
하야 戊申
에 殺叔申叔禽
注+叔禽 叔申弟 하다
忠爲令德
이나 非
이면 猶不可
온 況不令乎
注+言叔申爲忠 不得其人 還害身 아
傳
[傳]秋
에 公如晉
注+親弔 非禮 하니 晉人止公
하야 使送葬
하다
於是糴茷未反
注+是春晉使糴茷至楚結成 晉謂魯貳於楚 故留公 須糴茷還 驗其虛實 하다
冬에 葬晉景公할새 公送葬하니 諸侯莫在하다 魯人辱之라
10년 봄에 위후衛侯의 아우 흑배黑背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정鄭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여름 4월에 다섯 차례
복교卜郊하였으나
길吉하지 않으니,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다.
注+전傳이 없다. 해마다 정기적定期的으로 지내는 제사祭祀[常祀]에 점占을 친 것과,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은 것은 모두 예禮가 아니다. 그러므로 기록한 것이다.
5월에
성공成公이
진후晉侯‧
제후齊侯‧
송공宋公‧
위후衛侯‧
조백曹伯과
회합會合하여
정鄭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注+진후晉侯는 태자太子주포州蒲이다. ‘후侯’라는 작爵을 칭稱한 것은 그 아비가 살아 있는데도 그 아비를 대신해 군위君位에 앉아 자식의 예禮를 잃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제인齊人이
여인女人을 데리고 와서
잉녀媵女로 주었다.
注+전傳이 없다. 백희伯姬의 잉녀媵女로 준 것이다. 이성국異姓國이 여인女人을 데리고 와서 잉녀媵女로 준 것은 예禮가 아니다.
병오일丙午日에
진후晉侯누獳가
졸卒하였다.
注+노魯나라와 여섯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병오일丙午日은 전傳에 근거하면 6월 7일이다. 일日만 기록하고 월月은 기록하지 않았다.
傳
10년 봄에
진후晉侯가
적패糴茷를
초楚나라에 보내어
注+적패糴茷는 진晉나라 대부大夫이다.태재太宰자상子商이
진晉나라에
사자使者로 왔던 일을
회보回報하였다.
注+자상子商은 초楚나라 공자公子신辰이다. 그가 진晉나라에 사자使者로 왔던 것은 전년前年에 있었다.
傳
위衛나라
자숙흑배子叔黑背가
정鄭나라를
침공侵攻하였으니, 이는
진晉나라의
명령命令이었다.
注+진晉나라가 위衛나라에 명命하여 정鄭나라를 침공侵攻하게 한 것이다.
傳
정鄭나라
공자公子반班이
숙신叔申의
계략計略을 듣고서
注+다시 다른 사람을 새 임금으로 세우자는 계모計謀이다. [부주]林: 숙신叔申은 바로 공손公孫신申이다. 3월에
자여子如가
공자公子수繻를 새 임금으로 세웠다.
注+자여子如는 공자公子반班이다.
여름 4월에
정인鄭人이
수繻를 죽이고
곤완髡頑을 임금으로 세우니,
자여子如가
허許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注+곤완髡頑은 정성공鄭成公의 태자太子이다.
난무자欒武子가 말하기를, “
정인鄭人이 새 임금을 세웠으니, 우리가 한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이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注+[부주]林: 우리가 정성공鄭成公을 잡고 있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일 뿐이라는 말이다.
정鄭나라를 토벌討伐하고서 그 임금을 돌려보내어 화친和親을 요구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진후晉侯가
병病을 앓자, 5월에
진인晉人은
태자太子주포州蒲를 새 임금으로 세우고서,
제후諸侯와
회합會合해
정鄭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注+아비가 생존生存하였는데도 그 아들을 세워 임금으로 삼았으니, 아비는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경經에 ‘진후晉侯’로 기록하였으니, 미워한 것이 분명하다.
정鄭나라
자한子罕이
양종襄鐘을
진晉나라에
뇌물賂物로 주고
注+자한子罕은 정목공鄭穆公의 아들이다. 양종襄鐘은 정양공鄭襄公의 종묘宗廟에 걸린 종鐘이다. 자연子然이
수택脩澤에서
진晉나라와
결맹結盟하고
자사子駟를
진晉나라에
인질人質로 보내니,
注+자연子然과 자사子駟는 모두 정목공鄭穆公의 아들이다. 형양熒陽권현卷縣 동쪽에 수무정脩武亭이 있다. 신사일辛巳日에
정백鄭伯이 돌아갔다.
注+정백鄭伯이 돌아온 것을 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정鄭나라가 입국入國한 것을 부고赴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傳
진후晉侯의 꿈에 큰
여귀厲鬼가 머리는 풀어헤쳐 땅에 끌리고, 가슴을 치고 뛰면서 말하기를, “네가 나의 손자를 죽였으니,
의리義理를 모르는 놈이다.
注+여厲는 귀신鬼神인데, 조씨趙氏의 선조先祖이다. 성공成公 8년에 진후晉侯가 조동趙同과 조괄趙括을 죽였기 때문에 노怒한 것이다. [부주]林: 응膺은 가슴이다. 손으로 가슴을 치며 뛴 것이다.
내가 너에게
복수復讐할 것을
상제上帝께
청請하여 허락을 받았다.”
注+[부주]朱: 내가 상제上帝에게 원통寃痛함을 호소呼訴해 이미 허락許諾을 받았다는 말이다. 고 하면서
대문大門과
침문寢門을 부수고 들어오자,
경공景公은 겁이 나서
내실內室로 들어가니 또
내실內室의
문門을 부수었다.
경공景公이 꿈에서 깨어
상전桑田에 사는 무당을 불러 점을 치게 하니,
注+상전桑田은 진晉나라 읍邑이다. 무당의 말도 꿈에서 들었던 것과 같았다.
注+귀신鬼神이 노怒했다는 무당의 말이 진경공晉景公이 꿈에서 들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경공景公이 “그
길흉吉凶이 어떠하냐?”
注+[부주]朱: 꿈이 길한지 흉한지를 물은 것이다. 고 물으니, 무당은 “
신맥新麥(새로 생산된 보리)을 먹지 못하실 것입니다.”
注+진경공晉景公이 신맥新麥을 먹을 때까지 살 수 없다는 말이다. 고 대답하였다.
경공景公이 과연 병이
위중危重해져서
진秦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의원醫員을 보내주기를
요구要求하니,
진백秦伯은
의원醫員완緩을 보내어
치료治療하게 하였다.
注+완緩은 의원醫員의 이름이고, 위爲는 치治와 같다.
의원醫員이
도착到着하기 전에
경공景公이 꿈을 꾸니,
병病이 두 더벅머리 아이[豎子]가 되어
注+[부주]林: 진경공晉景公의 꿈에 질병疾病이 변화變化해 두 수자豎子가 된 것이다. 한 아이가 말하기를, “저 의원은
양의良醫이니, 우리를 다치게 할까 두렵다.
어디로 도망해야 하겠는가?”라고 하자, 한 아이가 말하기를, “
황肓의 위와
고膏의 아래로 가서 있으면 우리를 어찌하겠는가?”
注+황肓은 격막膈膜이고, 심장心腸 아래를 고膏라 한다. 라고 하였다.
의원醫員이 와서 진찰診察한 다음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병을 치료治療할 수 없습니다.
병病이
황肓의 위와
고膏의 아래에 있으므로 뜸으로도 다스릴 수 없고,
注+[부주]林: 공攻은 뜸을 뜨는 것이니, 불로도 병病을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이다. 침針[達]도 그곳까지 미치지 않고,
약藥의 힘도 그곳까지 이르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습니다.”
注+달達은 침針이다. [부주]林: 침針이 도달到達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니,
경공景公은 “참으로
양의良醫이다.”라고 하고서 후하게
예우禮遇하여 돌려보냈다.
6월
병오일丙午日에
진후晉侯는
신맥新麥을 먹고자 하여
注+주정周正의 6월은 지금의 4월로 보리가 비로소 익는 때이다. [부주]林: 신맥新麥을 먹고자 한 것이다. 전인甸人에게 보리를 바치게 하고
注+전인甸人은 공전公田을 주관主管하는 사람이다. 궤인饋人에게
신맥新麥으로 밥을 짓게 하고서,
注+[부주]朱: 궤인饋人은 음식飮食 만드는 일을 주관主管하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음식飮食을 장만하게 한 것이다. 상전桑田의 무당을 불러
신맥新麥으로 만든 음식을 보이고는 그를 죽였다.
그리고서 막 그 밥을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배가
팽창膨脹하여
변소便所에 갔다가
변소便所에 빠져 죽었다.
注+장張은 배가 가득 차오르는 것이다. [부주]林: 변소 속에 빠져 죽어, 끝내 신맥新麥을 먹지 못한 것이다.
어떤 소신小臣이 새벽에 경공景公을 업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는데, 정오正午에 진후晉侯를 업고 변소便所에서 나왔다.
드디어 그를
순장殉葬시켰다.
注+전문傳文은, 무당은 무술巫術에 밝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고, 소신小臣은 꿈을 말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화禍를 부른 것임을 말한 것이다.
傳
정백鄭伯이 임금을 세운 자들을
징벌懲罰하여
무신일戊申日에
숙신叔申과
숙금叔禽을 죽였다.
注+숙금叔禽은 숙신叔申의 아우이다.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
충忠이 아름다운
덕德이지만
충성忠誠스러운 사람이 아니면 오히려 행할 수 없는데, 하물며
선善하지 못한 사람이겠는가?”
注+숙신叔申이 충신忠臣이었지만 충성忠誠을 바칠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도리어 몸을 해쳤다는 말이다.
傳
가을에
성공成公이
진晉나라에 가니,
注+성공成公이 직접 조상弔喪한 것은 예禮가 아니다.진인晉人이
성공成公을
억류抑留하여
진경공晉景公을
송장送葬하게 하였다.
이때
초楚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보낸
적패糴茷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注+이 해 봄에 진晉나라가 적패糴茷를 초楚나라에 보내어 화친和親을 맺게 하였다. 진晉나라는 노魯나라가 초楚나라에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성공成公을 억류抑留하고서 적패糴茷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그 허실虛實을 증명證明하려 한 것이다.
겨울에 진경공晉景公을 장사葬事 지낼 때 성공成公만이 송장送葬하고 그 밖에는 참여한 제후諸侯가 없으니, 노인魯人은 이를 치욕恥辱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경經에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를 숨긴 것이다.
注+휘諱하여 진晉나라의 장사葬事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