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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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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有七年春 晉人衛人陳人鄭人伐宋하다注+自閔僖已下終於春秋 陳侯常在衛侯上 今大夫會在衛下 傳不言陳公孫寧後至 則寧位非上卿故也
17년 봄에 진인晉人위인衛人진인陳人정인鄭人나라를 토벌하였다.注+민공閔公희공僖公 이하로 《춘추春秋》가 끝날 때까지 진후陳侯가 항상 위후衛侯의 위에 기록되었는데, 지금 대부大夫회합會合에만 의 밑에 기록되었다. 나라 공손녕公孫寧이 회합에 뒤늦게 온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지위地位상경上卿이 아니기 때문이다.
[經]夏四月癸亥 葬我小君聲姜하다
여름 4월 계해일癸亥日에 우리 소군小君성강聲姜을 장사 지냈다.
[經]齊侯伐我西鄙하다注+西當爲北 蓋經誤
제후齊侯가 우리나라의 서쪽 변경邊境침벌侵伐하였다.注+西이 되어야 한다. 오자誤字가 있는 듯하다.
[經]六月癸未 公及齊侯盟于穀하다
6월 계미일癸未日제후齊侯에서 결맹結盟하였다.
[經]諸侯會于扈하다注+昭公雖以無道見弑 而文公猶宜以弑君受討 故林父伐宋以失所稱人 晉侯平宋以無功不序 明君雖不君 臣不可不臣 所以督
제후諸侯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송소공宋昭公이 비록 무도無道하기 때문에 시해弑害되었으나, 송문공宋文公도 임금을 시해弑害징벌懲罰[討]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순임보荀林父나라를 토벌하였으나 일 처리가 정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으로 칭하였고, 진후晉侯나라를 화평和平시켰으나 이 없었기 때문에 제후諸侯열기列記하지 않아서, 임금이 아무리 임금답지 못하여도 신하는 신하답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혀, 대교大敎권면勸勉[督]한 것이다.
[經]秋 公至自穀하다注+無傳
가을에 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冬 公子遂如齊
겨울에 공자수公子遂나라에 갔다.
[傳]十七年春 晉荀林父衛孔達陳公孫寧鄭石楚伐宋하야 討曰 何故弑君고하고 猶立文公而還하다
17년 봄에 나라 순임보荀林父나라 공달孔達나라 공손녕公孫寧나라 석초石楚나라를 토벌하면서 “무엇 때문에 임금을 시해弑害하였느냐?”고 꾸짖고서도 오히려 문공文公나라의 임금으로 세우고서 돌아왔다.
卿不書 注+卿不書 謂稱人 [附注] 林曰 失其所討之罪
성명姓名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 도리道理[所]를 잃었기 때문이다.注+경불서卿不書는 ‘’으로 칭한 것을 이름이다. [부주]林: 정토征討해야 할 정토征討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傳]夏四月癸亥 葬聲姜하다
여름 4월에 성강聲姜을 장사 지냈다.
有齊難이라 是以緩하다注+過五月之例
나라가 쳐들어온 난리가 있었기 때문에 장사가 늦어진 것이다.注+다섯 달만에 장사 지내는 를 넘긴 것이다.
[傳]齊侯伐我北鄙하니 襄仲請盟하야 六月 盟于穀하다注+晉不能救魯 故請服
제후齊侯가 우리나라의 북쪽 변경邊境침벌侵伐하니 양중襄仲나라에 결맹結盟하기를 요청하여 6월에 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나라가 나라를 구원救援할 수 없기 때문에 나라에 복종服從하기를 청한 것이다.
[傳]晉侯蒐于黃父注+一名黑壤 晉地하야 注+傳不列諸國而言復合 則如上十五年會扈之諸侯可知也
진후晉侯황보黃父에서 열병閱兵하고서注+황보黃父의 다른 이름은 흑양黑壤인데, 나라 땅이다. 드디어 다시 에서 제후諸侯와 회합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내란을 화평和平시키기 위함이었다.注+에 참가한 제후를 열기列記하지 않고 다시 회합했다고 말하였으니, 문공文公 15년에 에서 회합했던 제후諸侯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公不與會하니 齊難故也
이 회합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이는 나라가 쳐들어온 난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書曰 諸侯 無功也注+刺欲平宋而復不能
에 “제후諸侯”라고 기록한 것은 이 없었기 때문이다.注+나라의 내란內亂을 평정시키고자 하였으나 이번에도 다시 평정시키지 못한 것을 나무란 것이다.
於是晉侯不見鄭伯하니 以爲貳於楚也
이때 진후晉侯정백鄭伯접견接見하지 않았으니, 이는 나라가 나라에 붙어 나라에 두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鄭子家使執訊而與之書하야 以告趙宣子注+執訊 通訊問之官 爲書與宣子
나라 자가子家집신執訊에게 서신書信을 주어 나라로 가서 조선자趙宣子에게 하게 하였다.注+집신執訊서신書信[訊問]을 [通]하는 관리官吏이다. 편지를 써서 선자宣子에게 보낸 것이다.
寡君卽位三年注+魯文二年 召蔡侯而與之事君注+[附注] 林曰 時蔡未服晉 故鄭召蔡與之事晉하니 九月 蔡侯入于敝邑以行注+行 朝晉也이나 敝邑以侯宣多之難으로 寡君是以不得與蔡侯偕注+宣多旣立穆公 恃寵專權라가 十一月 侯宣多하고 而隨蔡侯以朝于執事注+減 損也 難未盡而行 言汲汲于朝晉 [附注] 朱曰 以上言蔡之事晉 皆鄭之功하고 十二年六月 歸生佐寡君之嫡夷注+歸生 子家名 夷 大子名하야 以請陳侯于楚하야 而朝諸君注+請陳于楚 與俱朝晉 [附注] 林曰 陳欲朝晉 畏楚不敢 故請于楚하고 十四年七月 寡君又朝以陳事注+蕆 勑也 勑成前好ᄅ새 十五年五月 陳侯自敝邑往朝于君注+[附注] 林曰 陳靈公初卽位 自鄭往朝于晉하고 往年正月 燭之武往하야 朝夷也注+將夷往朝晉하고 八月 寡君又往朝하니라注+[附注] 朱曰 以上言陳之事晉 皆鄭之功
그 편지에 “과군寡君즉위卽位한 3년 뒤에注+노문공魯文公 2년이다.채후蔡侯를 불러 함께 진군晉君을 섬기자고 청하니,注+[부주]林: 이때 나라가 나라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정백鄭伯채후蔡侯를 불러 함께 나라를 섬기고자 한 것이다. 9월에 채후蔡侯가 우리나라로 왔다가 조현朝見하기 위해 나라로 갔으나注+조현朝見하기 위해 나라로 간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후선다侯宣多의 난리 때문에 과군寡君채후蔡侯와 함께 가지 못하였다가注+후선다侯宣多목공穆公을 세운 뒤에 총애寵愛를 믿고 멋대로 권력權力을 휘둘렀다. 11월에 후선다侯宣多의 난리를 평정하고서 채후蔡侯를 뒤따라 나라로 가서 집사執事에게 조현朝見하였으며,注+이다. 난리가 아직 다 평정되지 않았는데도 나라로 간 것은 나라 조현朝見급급汲汲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부주]朱: 이상은 나라가 나라를 섬기게 된 것이 모두 나라의 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12년 6월에 귀생歸生과군寡君적자嫡子보좌輔佐注+귀생歸生자가子家의 이름이고 태자太子의 이름이다.나라에 가서 진후陳侯진군晉君에게 조현朝見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청하여 진후陳侯나라에 조현朝見시켰으며,注+초자楚子에게 진후陳侯나라에 조현朝見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요청하여 함께 가서 나라에 조현朝見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가 나라에 조현朝見하려 하였으나 나라가 두려워 감히 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라에 요청한 것이다. 14년 7월에 과군寡君이 또 나라에 조현朝見하여 나라가 나라를 섬기는 일을 매듭지었으므로注+이니 전일의 우호友好정리整理완성完成하는 것이다. 15년 5월에 진후陳侯가 우리나라에서 출발해 가서 진군晉君조현朝見하였으며,注+[부주]林: 진영공陳靈公즉위卽位초기初期나라에 와서 조현朝見하고서 나라에서 나라로 가서 조현朝見한 것이다. 작년 정월正月촉지무燭之武태자太子를 데리고 가서 나라에 조현朝見하였으며,注+를 데리고 가서 진군晉君에게 조현朝見한 것이다. 8월에 과군寡君이 또 가서 조현朝見하였습니다.注+[부주]朱: 이상은 나라가 나라를 섬기게 된 것이 모두 나라의 임을 말한 것이다.
以陳蔡之密邇於楚로도 而不敢貳焉 則敝邑之故也注+密邇 比近也
나라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라와 나라가 나라에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때문입니다.注+밀이密邇비근比近(隣近)이다.
雖敝邑之事君으로도 何以不免注+免 免罪也
진군晉君을 이처럼 섬긴 우리나라로서도 어째서 를 면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注+면죄免罪이다.
在位之中 一朝于襄注+襄公하고 而再見于君注+君 靈公也하고 夷與孤之二三臣相及於絳注+孤之二三臣 謂燭之武歸生自謂也 絳 晉國都 [附注] 林曰 相繼朝聘于晉하니
과군寡君재위在位기간期間나라의 선군先君양공襄公일차一次조현朝見하였고注+양공襄公이다.현재現在진군晉君재차再次조현朝見하였으며,注+진영공晉靈公이다.태자太子과군寡君[孤]의 몇몇 신하도 연달아 나라의 국도國都으로 갔습니다.注+고지이삼신孤之二三臣촉지무燭之武귀생歸生이 스스로를 이른 것이다. 나라 국도國都이다. [부주]林: 서로 계속해 나라에 조빙朝聘했다는 말이다.
雖我小國이나 則蔑以過之矣注+[附注] 朱曰 以上言鄭國事晉之勤어늘 今大國曰 爾未逞吾志注+[附注] 林曰 爾之事我 未足以快吾之志願라하니 敝邑有亡이언정 無以加焉이라
우리가 비록 소국小國이지만 나라를 섬김에는 이상 더할 수 없이 성심을 다하였는데注+[부주]朱: 이상은 나라가 나라를 부지런히 섬긴 것을 말한 것이다. 지금 대국大國에서는 ‘너희들의 섬김이 우리의 뜻에 만족하지 않다.’注+[부주]林: 너희가 우리를 섬김이 우리의 뜻을 즐겁게 하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다.고 하시니, 우리나라는 망하게 될지언정 이상 더 잘 섬길 수는 없습니다.
古人有言曰 畏首畏尾 身其餘幾注+言首尾有畏 則身中不畏者少 [附注] 林曰 喩鄭雖小國 北畏晉南畏楚 則中間之不畏者小矣오하고 又曰 鹿死不擇音注+音 所茠蔭之處 古字聲同 皆相假借 [附注] 林曰 言鹿死不擇庇蔭之所 喩鄭旣滅亡 當不擇所從之國也이라하니
옛 사람의 말에 ‘머리가 어찌 될까 두려워하고 꼬리가 어찌 될까 두려워한다면 몸에 두려워하지 않는 부분이 얼마나 되겠는가?’注+머리와 꼬리에 두려움이 있다면 일신一身 중에 두렵지 않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주]林: 나라가 비록 소국小國이지만 북으로는 나라를 두려워하고 남으로는 나라를 두려워하니 그 중간에 두려워하지 않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라고 하였고, 또 ‘사슴이 죽을 때는 그늘진 곳을 가리지 않는다.’注+은 쉴 수 있는 그늘이다. 옛날에는 글자의 이 같으면 모두 서로 가차假借해 썼다.[부주]林: 사슴이 죽을 때 그늘진 곳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여 나라가 이미 멸망滅亡하게 되었으니 복종服從할 나라를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小國之事大國也이면 則其人也注+以德加己 則以人道相事어니와 不德이면 則其鹿也
소국小國대국大國을 섬김에 있어 대국大國은덕恩德으로 대해 주면 소국小國은 사람의 도리로 대국大國을 섬기지만注+은덕恩德으로 우리를 대해 주면 사람의 도리로 섬긴다는 말이다.은덕恩德으로 대해 주지 않으면 죽게 된 사슴처럼 아무것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鋌而走險 急何能擇이리오注+鋌 疾走貌 言急則欲蔭茠於楚 如鹿赴險
빨리 달려 험한 곳으로 달아날 때 위급한데 어느 겨를에 그늘진 곳을 가리겠습니까?注+은 빨리 달리는 모양이다. 다급하면 사슴이 험한 곳으로 달아나듯이 나라의 그늘로 들어가겠다는 말이다.
命之罔極하니 亦知亡矣注+言晉命無極 [附注] 朱曰 言晉之命令 過苛無有窮極 鄭亦知不免於滅亡矣
나라가 요구하는 명이 끝이 없으니 우리도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압니다.注+나라의 명이 끝이 없다는 말이다. [부주]朱: 지나치게 가혹苛酷나라의 명령이 끝이 없으니 나라도 멸망滅亡을 면하지 못할 줄을 안다는 말이다.
將悉敝賦以待於鯈하리니 唯執事命之하라注+鯈 晉鄭之竟 言欲以兵距晉 [附注] 林曰 賦 兵也 古者以田賦兵 故兵謂之賦
그러므로 장차 우리의 군대를 모두 동원해 에서 기다리겠으니, 집사執事께서는 분부를 내리기 바랍니다.注+나라와 나라의 접경接境에 있는 땅이다. 군대를 거느리고서 나라를 막고자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다. 옛날에 전부田賦에 따라 군대를 냈기 때문에 을 ‘’라고 한 것이다.
文公二年六月壬申 朝于齊注+鄭文二年六月壬申 魯莊二十三年六月二十日하고 四年二月壬戌 爲齊注+魯莊二十五年二月無壬戌 壬戌 三月二十日하고 亦獲成於楚注+鄭與楚成하니 居大國之間하야 而從於强令 豈其罪也잇가注+令 號令也 [附注] 林曰 此言鄭文公背齊從楚 亦非其罪 蓋遠引前事之驗 以爲近世之證
우리의 선군先君문공文公께서 2년 6월 임신일壬申日나라에 가서 조현朝見하였고,注+정문공鄭文公 2년 6월 임신壬申노장공魯莊公 23년 6월 20일이다. 4년 2월 임술일壬戌日나라를 위해 나라를 침공侵攻하였으며,注+노장공魯莊公 25년 2월에는 임술일壬戌日이 없다. 임술일壬戌日은 3월 20일이다.나라와 화친和親을 맺었으니,注+나라가 나라와 화친和親한 것이다.대국大國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강국强國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어찌 소국小國이겠습니까?注+호령號令이다. [부주]林: 이것은 정문공鄭文公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에 복종服從한 것이 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여 먼 옛 일의 증거[驗]를 끌어다가 근세近世의 일을 증명證明한 것이다.
大國若弗圖 無所逃命이리다注+[附注] 林曰 言晉國若不圖恤鄭國之社稷 無所逃於見討之命 言將叛晉也
만약 대국大國소국小國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면 대국大國의 명령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注+[부주]林: 나라가 만약 나라의 사직社稷을 돌보아 주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토벌討伐하겠다는 나라의 명을 피할 길이 없다는 말로 장차 나라를 배반背叛하겠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晉鞏朔行成於鄭注+[附注] 林曰 晉服其言 故使大夫鞏朔行成於鄭하고 趙穿公壻池爲質焉하다注+趙穿 卿也 公胥池 晉侯女壻
이에 나라는 공삭鞏朔을 보내어 나라와 화친和親을 맺게 하고서注+[부주]林: 나라는 그 서신書信의 말에 감복感服하였기 때문에 대부大夫공삭鞏朔을 보내어 나라와 화친和親을 맺은 것이다.조천趙穿공서公壻나라에 인질人質로 보냈다.注+조천趙穿이고 공서公壻진후晉侯의 사위이다.
[傳]秋 周甘歜敗戎于邥垂하니 乘其飮酒也注+歜 周大夫 邥垂 周地 河南新城縣北有垂亭 爲成元年晉侯平戎于王張本
가을에 나라 감촉甘歜심수邥垂에서 융인戎人패배敗北시켰으니, 이는 융인戎人이 술을 마시는 틈을 이용한 것이다.注+나라 대부大夫이다. 심수邥垂나라 땅이다. 하남河南신성현新城縣 북쪽에 수정垂亭이 있다. 이것이 성공成公원년元年진후晉侯융인戎人주왕周王화평和平시킨 장본張本이다.
[傳]冬十月 鄭大子夷石楚爲質于晉하다注+夷 靈公也 石楚 鄭大夫 [附注] 林曰 報趙穿公壻池之質
겨울 10월에 나라 태자太子석초石楚나라에 인질人質로 갔다.注+영공靈公이고 석초石楚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조천趙穿공서公壻인질人質로 왔기 때문에 거기에 상응相應인질人質을 보낸 것이다.
[傳]襄仲如齊하야 拜穀之盟하고 復曰
양중襄仲나라에 가서 에서 결맹結盟해 준 것에 배사拜謝하고 돌아와서 문공文公에게 복명復命하였다.
臣聞齊人將食魯之麥注+[附注] 林曰 言齊人將伐魯而食魯國之麥이라하나 以臣觀之컨대 將不能이리다
이 들으니 제인齊人나라의 보리를 먹으려 한다고 합니다만注+[부주]林: 제인齊人이 장차 나라를 토벌하여 나라의 보리를 베어다가 먹겠다는 말이다.이 보기에는 아마도[將] 그리되지 않을 듯합니다.
齊君之語偸하니 臧文仲有言曰 民主偸 必死라하니이다注+偸 猶苟且
제군齊君의 말이 구차苟且(도리에 어긋남)하니 장문중臧文仲의 말에 ‘임금이 구차苟且하면 반드시 죽는다.’注+구차苟且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역주
역주1 大敎 : 임금을 높이고 신하를 낮추는 가르침이다. 〈疏〉
역주2 失其所也 : 본래는 弑君者를 토벌하기 위해 간 것인데, 도리어 弑君者를 임금으로 세우고 돌아왔기 때문에 ‘失其所’라고 한 것이다. ‘所’를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서는 處所의 所로 보아 立場으로 해석하였고, 《左氏會箋》에는 區處(처리)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道理로 번역하였다.
역주3 遂復合諸侯于扈 : 齊人이 그 임금 舍를 弑害한 다음 해에 諸侯가 扈에 會合하여 齊나라 토벌할 것을 상의하였고, 宋人이 그 임금 杵臼를 弑害한 다음 해에 諸侯가 扈에 會合하여 宋나라의 혼란을 평정시켰다. 그러므로 ‘다시 회합[復合]하였다.’고 하고 諸侯를 國別로 列記하지 않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4 克減 : 克은 能이고 減은 絶이니 능히 滅絶시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平定으로 번역하였다.
역주5 : 楊伯峻의 설에 따라 번역하였다.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 “蕆에는 完成의 뜻이 있으니, 蕆陳事는 陳나라가 晉나라에 복종하는 일을 매듭지은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6 蔡侵[侵蔡] : 저본에는 ‘蔡侵’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어순을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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