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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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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三年春 齊侯衛侯次于垂葭注+二君將使師伐晉 次垂葭以爲之援 [附注] 林曰 垂葭 衛地하다
[經]夏 築蛇淵囿注+無傳 書 不時也하다
[經]大蒐于比蒲注+無傳 夏蒐非時하다
[經]衛公孟彄帥師伐曹注+無傳하다
[經]秋 晉趙鞅入于晉陽以叛注+書叛 惡可知하다
[經]冬 晉荀寅士吉射入于朝歌以叛注+吉射 士鞅子 하다
[經]晉趙鞅歸于晉注+韓魏請而復之 故曰歸 言韓魏之彊 猶列國 하다
[經]薛弑其君比注+無傳 稱君 君無道하다
[傳]十三年春 齊侯衛侯次于垂葭하니 實郥氏注+垂葭 改名郥氏 高平鉅野縣西南有郥亭
使師伐晉하야 將濟河러니 諸大夫皆曰 不可라호되 邴意玆曰 可注+意玆 齊大夫하다
銳師伐河內注+今河內汲郡 必數日而後及絳注+傳 告晉이오 絳不三月이면 不能出河리니 則我旣濟水矣注+[附注] 林曰 晉自絳都 非九十日 不能出河而救河內 則我已卒事 濟河而歸矣라한대 乃伐河內하다
齊侯
皆斂諸大夫之軒注+[附注] 林曰 大夫乘軒皆收斂之 以示薄罰하고 唯邴意玆乘軒
注+以其言當하다
齊侯欲與衛侯乘注+共載하야 與之宴而駕乘廣하고 載甲焉注+[附注] 林曰 駕乘廣之兵車 載甲其上하고 使告曰 晉師至矣라하다
齊侯曰 比君之駕也注+[附注] 林曰 比 猶待也 言待衛君之駕 恐緩不及事 寡人請攝注+以己車攝代衛車 하노라하고 乃介而與之乘하고 驅之하다
或告曰 無晉師라하니 注+傳言齊侯輕 所以不能成功 [附注] 林曰 介 甲也하다
[傳]晉趙鞅謂邯鄲午曰 歸我衛貢五百家하라
吾舍諸晉陽하리라 午許諾注+十年 趙鞅圍衛 衛人懼 貢五百家 鞅置之邯鄲 今欲徙著晉陽 晉陽 趙鞅邑하고 歸告其父兄한대 父兄皆曰 不可하다
注+言衛以五百家在邯鄲 常爲是故 與邯鄲親이어늘 而置諸晉陽이면 絶衛之 不如侵齊而謀之注+侵齊則齊當來報 欲因懼齊而徙 則衛與邯鄲好不絶 니라
乃如之하고注+欲如是謀而後歸衛貢하다
趙孟怒하야 召午而囚諸晉陽注+趙鞅不察其謀 謂午不用命 故囚之하고 使其從者劒而入한대 涉賓不可注+涉賓 午家臣 不肯說劒入 欲謀叛어늘
乃使告邯鄲人曰 吾私有討于午也 二三子唯所欲立注+午 趙鞅同族 別封邯鄲 故使邯鄲人 更立午宗親 [附注] 林曰 趙鞅乃使人告邯鄲父兄 言我私討午 不與邯鄲事하라하고 遂殺午하니 趙稷涉賓以邯鄲叛注+稷 趙午子하다
夏六月 上軍司馬籍秦圍邯鄲이로되
邯鄲午 荀寅之甥也注+[附注] 林曰 午之母 荀寅姊妹 故爲甥 荀寅 范吉射之姻也注+父曰姻 荀寅子娶吉射女 而相與睦이라 故不與圍邯鄲하고 將作亂注+作亂 攻趙鞅 [附注] 林曰 荀氏范氏將攻趙鞅 以解邯鄲之圍하다
董安于聞之注+安于 趙氏臣하고 告趙孟曰 先備諸ᄂ저
趙孟曰 晉國有命하니 始禍者死라하니
爲後可也注+[附注] 林曰 爲禍首者 必殺無赦 待其先發而後 應之可也니라
安于曰 與其害於民으론 寧我獨死注+懼見攻必傷害民하리니 請以我說하라 趙孟不可注+晉國若討 可殺我以自解說라하다
秋七月 范氏中行氏伐趙氏之宮한대 趙鞅奔晉陽이어늘 晉人圍之하다
范臯夷無寵於范吉射하야 而欲爲亂於范氏注+臯夷 范氏側室子하고 梁嬰父嬖於知文子注+文子 荀躒하야 하고 韓簡子與中行文子相惡注+簡子 韓起孫不信也 中行文子 荀寅也하고 魏襄子亦與范昭子相惡注+襄子 魏舒孫曼多也 昭子 士吉射하다
故五子謀注+五子 范皐夷梁嬰父知文子韓簡子魏襄子하야 將逐荀寅하고 而以梁嬰父代之하며 逐范吉射하고 而以范臯夷代之하다
荀躒言於晉侯曰 君命大臣호대 始禍者死라하고 載書在河注+爲盟書 沈之河
今三臣始禍이어늘 而獨逐鞅하니 刑已不鈞矣
請皆逐之하소서
冬十一月 荀躒韓不信魏曼多奉公以伐范氏中行氏 弗克하다
二子將伐公한대 齊高彊曰 三折肱이라야 知爲良醫注+高彊 齊子尾之子 昭十年 奔魯 遂適晉 [附注] 林曰 言人三折其臂 歷病痛多者 然後深知良醫治療之法 [附注] 朱曰 言譬如人三次折臂 然後深知治療之法 成良醫也니라
唯伐君爲不可 民弗與也
我以伐君在此矣注+[附注] 朱曰 言己如良醫識病 知不可伐公也 伐公則國人不與己 我因伐君 所以出奔在此
三家未睦注+三家 知韓魏 [附注] 林曰 未相親睦 必不相救하니 可盡克也
克之 君將誰與注+[附注] 林曰 旣勝三家 君欲舍我 復與誰哉리오
若先伐君이면 是使睦也注+[附注] 林曰 若先伐公室 是急三家使相親睦而拒我也 弗聽하고 遂伐公하다
國人助公하니 二子敗어늘
從而伐之注+[附注] 林曰 國人從而伐范中行氏하니 丁未 荀寅士吉射奔朝歌하다
韓魏以趙氏爲請注+經所以書趙鞅歸 [附注] 林曰 以趙鞅非始禍 請復趙氏하니 十二月辛未 趙鞅入于絳하야 盟于公宮注+傳錄晉衰亂 하다
[傳]初 衛公叔文子朝하야 而請享靈公注+欲令公臨其家 하고 退하야 見史鰌而告之注+史鰌 史魚한대 史鰌曰 子必禍矣리라
子富而君貪하니 罪其及子乎ᄂ저
文子曰 然하다
吾不先告子하니 是吾罪也
君旣許我矣 其若之何注+[附注] 林曰 今君旣許臨我家矣 其又何以處之 史鰌曰 無害注+[附注] 林曰 言亦無所害로다
子臣하니 可以免注+言能執臣禮이라
富而能臣이면 必免于難이니 上下同之注+言尊卑皆然 니라
戍也驕하니 其亡乎注+戍 文子之子ᄂ저
富而不驕者鮮이니 吾唯子之見注+[附注] 林曰 我之所見 惟有子耳이와라
驕而不亡者 未之有也 戍必與焉注+與禍難하리라
及文子卒하야 衛侯始惡於公叔戍하니 以其富也
公叔戍又將去夫人之黨注+靈公夫人南子 黨 宋朝之徒하니 夫人愬之曰 戍將爲亂注+爲明年戍來奔傳이라하다


12년 봄에 제후齊侯, 위후衛侯수가垂葭에 주둔하였다.注+두 나라 임금이 장차 군대를 보내어 나라를 토벌하려고 수가垂葭에 주둔하여 응원應援하려 한 것이다. [부주]林: 수가垂葭나라 땅이다.
여름에 사연유蛇淵囿축조築造하였다.注+이 없다. 이를 기록한 것은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포比蒲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을 대대적으로 거행하였다.注+이 없다. 여름 훈련訓練은 때가 아니다.
나라 공맹구公孟彄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注+이 없다.
가을에 나라 조앙趙鞅진양晉陽으로 들어가서 배반背叛하였다.注+이라고 기록하였으니 악행惡行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겨울에 나라 순인荀寅, 사길석士吉射조가朝歌로 들어가서 배반背叛하였다.注+길석吉射사앙士鞅의 아들이다.
나라 조앙趙鞅나라로 돌아왔다.注+한씨韓氏위씨魏氏요청要請하여 회복回復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라고 한 것이다. 한씨韓氏위씨魏氏강성强盛함이 열국列國과 같았음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그 임금 시해弑害하였다.注+이 없다. ‘’이라 칭한 것은 임금이 무도無道하였기 때문이다.
13년 봄에 제후齊侯위후衛侯수가垂葭에 주둔하였으니 수가垂葭는 바로 패씨郥氏이다.注+수가垂葭패씨郥氏개명改名하였다. 고평高平거야현鉅野縣 서남쪽에 패정郥亭이 있다.
군대를 보내어 나라를 토벌하고자 황하黃河를 건너게 하려 하니, 대부大夫들이 모두 “불가不可하다.”고 하였으나, 병의자邴意玆만이 “합니다.注+의자意玆나라 대부大夫이다.
정예군精銳軍을 보내어 하내河內공벌攻伐하면注+지금의 하내河內급군汲郡이다. 전거傳車로 달려도 반드시 수일數日이 지난 뒤에야 (晉의 국도國都)에 도착할 것이고注+나라에 함이다. , 병마兵馬출동出動하려면 3개월의 시일時日을 경과하지 않고는 황하黃河진출進出할 수 없을 것이니, 〈그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황하를 건너 돌아온 뒤일 것입니다.注+[부주]林: 진군晉軍강도絳都에서 출발하면 90일을 경과하지 않고는 황하로 진출進出하여 하내河內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고, 〈그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일을 마치고 황하를 건너 돌아왔을 것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자, 제후齊侯는 이에 하내河內공벌攻伐하였다.
제후齊侯대부大夫들의 수레를 모두 몰수하고注+[부주]林: 대부大夫들의 승헌乘軒을 모두 몰수沒收하여 경벌輕罰을 보인 것이다. 오직 병의자邴意玆에게만 수레를 타게 하였다.注+그 말이 합당하였기 때문이다.
제후齊侯위후衛侯와 함께 수레를 타고 싶어서注+한 수레에 함께 탐이다., 위후衛侯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위후衛侯 몰래〉 사람을 시켜 승광乘廣에 말을 메우고 갑옷을 실어두고서注+[부주]林: 승광乘廣병거兵車에 말을 메우고 그 수레 위에 갑옷을 실은 것이다. , 사람을 시켜 “진군晉軍이 오고 있다.”고 하게 하였다.
그러자 제후齊侯위후衛侯에게 말하기를 “임금님의 수레에 말을 메울 때까지注+[부주]林: 와 같으니, 위군衛君의 수레에 말을 메우기를 기다리면 늦어서 사기事機에 미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말이다. 대신 과인寡人의 수레를 타시기를 청합니다.注+자기의 수레로 나라 수레를 대신하겠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이에 갑옷을 입고서 위후衛侯와 함께 수레를 타고 달렸다.
이때 어떤 자가 “진군晉軍이 없습니다.”고 하니, 곧 수레를 멈추었다.注+전문傳文제후齊侯경박輕薄하여 성공成功하지 못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갑옷)이다.
나라 조앙趙鞅한단오邯鄲午에게 “나라가 진공進貢한 5백 를 나에게 돌려달라.
나는 이들을 진양晉陽으로 옮기겠다.”고 하니, 한단오邯鄲午허락許諾하고서注+정공定公 10년에 조앙趙鞅나라를 포위하자, 위인衛人이 겁이 나서 5백 를 바치니, 조앙趙鞅은 그 5백 를 데리고 와서 한단邯鄲에 두었었는데, 지금 그 5백 진양晉陽으로 옮겨 정착定着시키고자 한 것이다. 진양晉陽조앙趙鞅이다. 돌아가서 그 부형父兄에게 고하자, 부형父兄은 모두 “안 된다.
나라가 이들로 인해 한단邯鄲을 돕는 것인데注+나라는 이 5백 한단邯鄲에 있어서 항상 이들을 위하기 때문에 한단邯鄲친목親睦한다는 말이다. , 만약 이들을 진양晉陽으로 옮긴다면 나라와 우호友好의 길을 단절斷絶하는 것이니, 우선 나라를 침공侵攻하고 나서 그 일을 꾀하는 것만 못하다.注+나라를 침공侵攻하면 나라는 당연히 와서 보복할 것이니, 나라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때를 이용해 이들을 진양晉陽으로 옮겨 나라와 한단邯鄲우호友好단절斷絶되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였다.
이에 한단오邯鄲午부형父兄의 말과 같이 나라를 침공侵攻하고 나서 그들을 진양晉陽으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注+이 계획과 같이 한 뒤에 나라가 바친 5백 를 돌려주고자 한 것이다.
조맹趙孟하여 한단오邯鄲午를 불러 진양晉陽수금囚禁하고注+조앙趙鞅은 그런 계획을 알지 못하고서 한단오邯鄲午가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를 수금囚禁한 것이다. , 그 종자從者들에게 을 풀어놓고 들어오게 하니, 섭빈涉賓동의同意하지 않았다.注+섭빈涉賓한단오邯鄲午가신家臣이다. 을 풀어놓고 들어가지 않으려 한 것은 반란叛亂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자 조앙趙鞅은 사람을 보내어 한단邯鄲 사람들에게 고하기를 “나는 개인적個人的으로 한단오邯鄲午징벌懲罰하는 것이니, 그대들은 세우고 싶은 사람을 한단오邯鄲午후계자後繼者로 세우라.注+한단오邯鄲午조앙趙鞅동족同族으로 따로 한단邯鄲해진 자이다. 그러므로 한단인邯鄲人으로 하여금 다시 한단오邯鄲午종친宗親 중에 한 사람을 한단오邯鄲午의 후계자로 세우게 한 것이다. [부주]林: 조앙趙鞅은 이에 사람을 보내어 한단邯鄲부형父兄들에게 “내가 개인적個人的으로 한단오邯鄲午징벌懲罰하는 것이고, 한단邯鄲과는 무관한 일이다.”고 고하게 한 것이다. ”고 하고서 드디어 한단오邯鄲午를 죽이니, 조직趙稷섭빈涉賓한단邯鄲 사람들을 거느리고서 배반背叛하였다.注+조직趙稷조오趙午의 아들이다.
여름 6월에 상군上軍사마司馬적진籍秦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한단邯鄲을 포위하였으나,
한단오邯鄲午순인荀寅생질甥姪이고注+[부주]林: 한단오邯鄲午의 어머니는 순인荀寅자매姊妹이다. 그러므로 ‘’이라 한 것이다., 순인荀寅범길야范吉射의 사돈[姻]이어서注+사위의 아버지를 ‘’이라 한다. 순인荀寅의 아들이 범길야范吉射의 딸에게 장가갔다. 서로 화목和睦하였으므로 한단邯鄲을 포위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고 변란變亂을 일으키려 하니注+변란變亂을 일으켜 조앙趙鞅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부주]林: 순씨荀氏범씨范氏조앙趙鞅을 공격하여 한단邯鄲의 포위를 풀게 하려 한 것이다. ,
동안우董安于가 이 사실을 듣고注+동안우董安于조씨趙氏의 신하이다. 조맹趙孟에게 “먼저 대비하라.”고 하자,
조맹趙孟이 말하기를 “나라에 명령命令이 있으니 화난禍難을 먼저 일으킨 자를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저들이 먼저 변란變亂을 일으킨 뒤에 대응하는 것이 좋다.注+[부주]林: 화난禍難을 먼저 일으킨 자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저들이 먼저 화난禍難을 일으킨 뒤에 대응對應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그러자 동안우董安于가 말하기를 “백성들에게 를 끼치기보다 차라리 나 혼자 죽겠으니注+공격攻擊을 받으면 반드시 백성들이 다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 〈모든 죄는〉 내가 저지른 것이라고 설명說明하십시오.”라고 하니, 조맹趙孟이 허락하지 않았다.注+나라가 만약 토벌討伐한다면 〈모든 죄를 나에게 돌려〉 나를 죽여 스스로 〈무죄함을〉 설명說明하라는 말이다.
가을 7월에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조씨趙氏의 집을 공격하자 조앙趙鞅진양晉陽으로 도망가니 진인晉人진양晉陽을 포위하였다.
범고이范臯夷범길야范吉射(范昭子)에게 총애를 받지 못하여 범씨范氏종족宗族에게 반란叛亂을 일으키고자 하였고注+범고이范臯夷범씨范氏측실자側室子(庶子)이다., 양영보梁嬰父지문자知文子(荀躒)에게 총애를 받아注+지문자知文子순락荀躒이다. , 지문자知文子양영보梁嬰父으로 삼고자 하였고, 한간자韓簡子(韓不信)와 중행문자中行文子(荀寅)는 서로 사이가 나빴고注+한간자韓簡子한기韓起의 손자 한불신韓不信이다. 중행문자中行文子순인荀寅이다. , 위양자魏襄子범소자范昭子와 서로 사이가 나빴다.注+위양자魏襄子위서魏舒의 손자 위만다魏曼多이고, 범소자范昭子사길석士吉射이다.
그러므로 다섯 사람이 모의하여注+오자五子범고이范皐夷, 양영보梁嬰父, 지문자知文子, 한간자韓簡子, 위양자魏襄子이다. 순인荀寅을 축출하고서 양영보梁嬰父를 대신 그 자리에 앉히고, 범길야范吉射를 축출하고서 범고이范臯夷를 대신 그 자리에 앉히고자 하였다.
순락荀躒진후晉侯에게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대신大臣에게 명하시기를 ‘화난禍難을 먼저 일으킨 자는 사형死刑에 처한다.’고 하시고서 맹서盟書작성作成하여 황하黃河 속에 가라앉혔습니다.注+맹서盟書작성作成하여 황하黃河 속에 가라앉힌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 세 신하(趙鞅, 순인荀寅, 범길야范吉射)는 모두 화난禍難을 먼저 일으킨 자들인데, 유독 조앙趙鞅만을 축출하시니 형벌刑罰이 매우 공평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두 축출하소서.”라고 하였다.
겨울 11월에 순락荀躒, 한불신韓不信, 위만다魏曼多진정공晉定公을 모시고 가서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를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두 사람(范吉射와 순인荀寅)이 진정공晉定公을 치려 하자, 나라 고강高彊이 말하기를 “팔이 세 번 부러져보아야 양의良醫치료법治療法을 압니다.注+고강高彊나라 자미子尾의 아들로 노소공魯昭公 10년에 나라로 도망해 왔다가 드디어 나라로 갔다. [부주]林: 사람이 팔이 세 번 부러져서 병통을 많이 겪은 뒤에야 양의良醫치료법治療法을 깊이 안다는 말이다. [부주]朱: 비유하면 사람이 팔이 세 번 부러진 뒤에야 치료법治療法을 깊이 알아서 양의良醫가 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오직 임금을 공격하는 일만은 해서는 안 되니, 백성들이 돕지 않습니다.
나도 임금을 공격한 잘못으로 인해 망명亡命해 이곳에 와 있습니다.注+[부주]朱: ‘나는 양의良醫을 아는 것처럼 임금을 쳐서는 안 됨을 안다. 임금을 치면 국인國人이 나를 돕지 않는다. 나는 임금을 친 잘못으로 인해 출분出奔하여 이곳에 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가문家門(知氏, 한씨韓氏, 위씨魏氏)이 화목和睦하지 못하니注+삼가三家지씨知氏, 한씨韓氏, 위씨魏氏이다. [부주]林: 서로 친목親睦하지 않으니 반드시 서로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 공격하면 모두 이길 수 있습니다.
그들을 이기고 나면 임금님께서 〈당신들을 버리고〉 장차 누구를 가까이하겠습니까?注+[부주]林: 삼가三家를 이기고 나면 임금이 우리를 버리고 다시 누구를 가까이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먼저 임금을 공격한다면 이는 세 가문을 화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注+[부주]林: 만약 먼저 공실公室을 친다면 이는 삼가三家를 몰아붙여 서로 친목親睦하여 우리를 막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으나, 두 사람은 고강高彊의 말을 듣지 않고, 드디어 진정공晉定公을 공격하였다.
국인國人진정공晉定公을 도우니 두 사람이 패배敗北하였다.
그러자 삼가三家가 뒤따라 두 사람을 공격하니注+[부주]林: 국인國人이 뒤따라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를 친 것이다. , 정미일丁未日순인荀寅사길석士吉射조가朝歌로 달아났다.
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회국回國시키기를 청하니注+경문經文에 ‘조앙趙鞅이 돌아왔다.’고 기록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조앙趙鞅화난禍難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다고 여겨 조씨趙氏를 회복시키기를 청한 것이다. , 12월 신미일辛未日조앙趙鞅강도絳都로 들어와서 공궁公宮에서 맹약盟約하였다.注+전문傳文나라가 쇠란衰亂했음을 기록한 것이다.
당초에 나라 공숙문자公叔文子상조上朝하여 영공靈公향연享宴초청招請하고서注+영공靈公으로 하여금 자기의 집에 왕림枉臨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퇴조退朝하여 사추史鰌를 만나 그 일을 말하자注+사추史鰌사어史魚이다. , 사추史鰌가 말하기를 “그대는 반드시 를 당할 것입니다.
그대는 부유富裕하고 임금님은 탐욕스러우니 아마도 [罪]가 그대의 신상身上에 미칠 것입니다.”고 하였다.
공숙문자公叔文子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
내가 그대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나의 과실過失이다.
하지만 임금님께서 이미 나의 초청에 응하겠다고 허락하셨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注+[부주]林: 지금 임금님께서 이미 나의 집에 오시겠다고 허락하셨으니, 그 일을 또 어찌 처리해야 하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사추史鰌가 말하기를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注+[부주]林: 〈임금님이 초대에 응해 당신의 집에 오더라도〉 손해 입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대는 신하의 도리를 잘 지키니 를 면할 수 있습니다.注+신하의 를 잘 지켰다는 말이다.
부유富裕하되 신하의 도리를 잘 지키면 반드시 화난禍難을 면할 수 있으니, 이는 상하上下동일同一합니다.注+존비尊卑가 모두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대의 아들 는 교만하니 장차[其]망명亡命하게 될 것입니다.注+공숙문자公叔文子의 아들이다.
부유富裕하면서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드문데, 나는 오직 그대에게서 그런 점을 보았습니다.注+[부주]林: 내가 본 사람으로는 오직 그대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교만하고서 망명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으니, 는 반드시 화난禍難을 당할 것입니다.注+화난禍難에 참여함이다. ”고 하였다.
공숙문자公叔文子가 죽은 뒤에 미쳐 위후衛侯가 비로소 공숙수公叔戍를 미워하였으니 그가 부유富裕하기 때문이었다.
공숙수公叔戍가 또 부인夫人을 제거하려 하니注+영공靈公부인夫人남자南子이다. 송조宋朝의 무리이다. , 부인夫人영공靈公에게 “을 일으키려 한다.注+명년明年공숙수公叔戍나라로 도망해 온 의 배경이다. ”고 고소告訴[愬]하였다.


역주
역주1 : 傳車를 이르니 바로 驛傳이다. 河內는 絳都에서 멀기 때문에 傳車로 달려가도 반드시 數日이 지난 뒤에야 絳都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 皆斂諸大夫之軒 唯邴意玆乘軒 : 大夫들은 모두 伐晉을 반대하였고, 오직 邴意玆만이 敵情을 헤아려 河內의 토벌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楊注〉
역주3 而[乃] : 저본에는 ‘而’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乃’로 바로잡았다.
역주4 衛是以爲邯鄲 : 衛나라는 이들로 인해 邯鄲을 돕는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5 : 行李(使者)가 往來하는 길이다. 《左氏會箋》
역주6 歸之于晉陽 : 제나라를 침공한 뒤에 5백 家를 晉陽으로 돌려보내려 한 것이다. 〈楊注〉
역주7 : 탈
역주8 胥[壻] : 저본에는 ‘胥’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壻’로 바로잡았다.
역주9 文子欲以爲卿 : 梁嬰父를 卿으로 세우려면 范吉射와 中行文子를 제거하여야 비로소 그를 卿으로 세울 수 있으니, 이것은 知文子도 亂을 일으키고자 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左氏會箋》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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