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年春王二月 邾子益來奔하다
10년 봄 주왕周王 2월에 주자邾子나라로 도망해 왔다.
[經]公會吳伐齊注+書會 從하다
애공哀公오군吳軍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하였다.注+’라고 기록한 것은 ‘불여모不與謀’의 를 따른 것이다.
[經]三月戊戌 齊侯陽生卒注+以疾赴 故不書弑 하다
3월 무술일戊戌日제후齊侯양생陽生하였다.注+질병疾病으로 하였다고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로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經]夏 宋人伐鄭注+無傳하다
송인宋人나라를 토벌하였다.注+이 없다.
[經]晉趙鞅帥師侵齊하다
나라 조앙趙鞅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經]五月 公至自伐齊注+無傳하다
5월에 애공哀公나라 토벌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葬齊悼公注+無傳하다
제도공齊悼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經]衛公孟彄自齊歸于衛注+無傳 書歸 齊納之하다
나라 공맹구公孟彄나라에서 나라로 돌아갔다.注+이 없다. ‘’라고 기록한 것은 나라가 그를 들여보냈기 때문이다.
[經]薛伯夷卒注+無傳 赴以名 故書하다
설백薛伯하였다.注+이 없다. 이름을 기록하여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經]秋 葬薜惠公注+無傳하다
가을에 벽혜공薜惠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經]冬 楚公子結帥師伐陳하다
겨울에 나라 공자公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經]吳救陳注+季子不書 陳人來告 不以名 [附注] 林曰 此延州來季子也 不書 誼不在季子也 吳救陳 諸夏幾於亡也하다
나라가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注+계자季子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진인陳人이 와서 통고通告할 때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주]林: 나라를 구원한 것은 연주래延州來계자季子이다. 〈그런데도 계자季子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관史官이 이를 기록한〉 의의意義계자季子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가 나라를 구원한 것은 제하諸夏가 거의 망하는 데 이르렀기 때문이다.
[傳]十年春 邾隱公來奔하다
10년 봄에 주은공邾隱公나라로 도망해 왔다.
齊甥也 故遂奔齊注+하다
그는 나라의 외생外甥(사위)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나라로 도망갔다.注+끝내 자공子貢의 말과 같이 되었다.
[傳]公會吳子邾子郯子伐齊南鄙하고 師于鄎注+鄎 齊地 邾郯不書 兵幷屬吳 不列於諸侯하다
애공哀公오자吳子, 주자邾子, 담자郯子연합聯合하여 나라 남쪽 변비邊鄙를 토벌하고서 에 주둔하였다.注+나라 땅이다. 주자邾子담자郯子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군대가 나라에 병합倂合되어 제후諸侯에 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傳]齊人弑悼公하고 赴于師注+以說吳 하니 吳子三日哭于軍門之外注+[附注] 林曰 擧哀于軍門之外하다
제인齊人도공悼公시해弑害하고서 연합군聯合軍부고赴告하니注+도공悼公의 죽음으로써〉 나라에 해명解明[說]하기 위해서이다.오자吳子가 3일 동안 군문軍門 밖에서 하였다.注+[부주]林: 군문軍門 밖에서 큰 소리로 하여 애도哀悼[擧哀]한 것이다.
徐承帥舟師將自海入齊러니 齊人敗之하니 吳師乃還注+承 吳大夫하다
서승徐承주사舟師(水軍)를 거느리고 해상海上에서 나라로 쳐들어가려 하였는데, 제인齊人이 이들을 패배시키니, 오군吳軍은 이에 환군還軍하였다.注+서승徐承나라 대부大夫이다.
[傳]夏 趙鞅帥師伐齊注+經書侵 以侵告 大夫請卜之注+[附注] 林曰 晉大夫請卜其吉凶한대 趙孟曰 吾卜於此起兵注+謂往歲卜伐宋不吉 利以伐姜 故今興兵하니 注+再令 瀆也이오
여름에 조앙趙鞅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려 할 때注+에 ‘’으로 기록한 것은 ‘’으로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이다.대부大夫들이 점을 치기를 청하자注+[부주]林: 나라 대부大夫들이 그 길흉吉凶을 점치기를 청한 것이다. , 조맹趙孟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나라에 군대를 일으킬 것에 대해 점을 쳤으니注+작년에 친 점에 나라를 토벌하는 것은 불길不吉하고, 강성姜姓의 나라를 토벌하는 것은 이롭다고 하였기 때문에 지금 군대를 일으킨 것이라는 말이다. , 이 일로 재차 거북에게 하지 않을 것이오.注+재차 〈거북에게〉 하는 것은 을 모독함이라는 말이다.
卜不襲吉注+襲 重也이니 行也리라 於是乎取犂及轅注+犂 一名隰 濟南有隰陰縣 祝阿縣西有轅城하고 毁高唐之郭하고 侵及賴而還하다
점은 거듭 하지 않는 것이니注+(거듭)이다. 행사行師(出兵)할 것이오.”라고 하고서, 이에 〈출병出兵하여〉 하고注+의 일명은 이다. 제남濟南습음현隰陰縣이 있고, 축아현祝阿縣 서쪽에 원성轅城이 있다. 고당高唐외곽外郭을 헐고 에까지 침입侵入하였다가 환군還軍하였다.
[傳]秋 吳子使來復儆師注+伐齊未得志故 爲明年吳伐齊傳하다
가을에 오자吳子사신使臣을 보내와서 다시 출병出兵할 것을 고계告戒하였다.注+나라 토벌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명년明年나라가 나라를 친 의 배경이다.
[傳]冬 楚子期伐陳注+陳卽吳故 한대 吳延州來季子救陳注+[附注] 林曰 延陵州來 皆季札邑 故曰延州來季子이러니 謂子期曰 二君不務德注+二君 吳楚而力爭諸侯하니 民何罪焉
겨울에 나라 자기子期나라를 토벌하자注+나라가 나라에 붙었기 때문이다., 나라 연주래延州來계자季子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가서注+[부주]林: 연릉延陵주래州來는 모두 계찰季札식읍食邑이다. 그러므로 연주래延州來계자季子라고 한 것이다. , 자기子期에게 말하기를 “두 나라 임금이 덕행德行은 힘쓰지 않고注+이군二君오군吳君초군楚君이다. 무력武力으로 제후諸侯와 전쟁하기만을 힘쓰니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我請退하야 以爲子名注+[附注] 林曰 以成子期伐陳之名하리니 務德而安民하라하고 乃還注+季子 吳王壽夢少子也 壽夢以襄十二年卒 至今七十七歲 壽夢卒 季子已能讓國 年當十五六 至今蓋九十餘하다
나는 퇴군退軍하여 그대로 하여금 〈승리하였다는 아름다운〉 명성名聲을 얻게 할 것이니注+[부주]林: 자기子期나라를 토벌한 명성을 이루게 하겠다는 말이다. , 덕행德行을 힘써 백성들을 안정시키십시오.”라고 하고서 이에 환군還軍하였다.注+계자季子오왕吳王수몽壽夢의 작은 아들이다. 수몽壽夢노양공魯襄公 12년이 하였으니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이다. 수몽壽夢하였을 때 계자季子가 나라를 사양한 것으로 보면 그의 나이가 15세나 16세는 되었을 것이니, 지금 그의 나이가 대개 90여 세였을 것이다.
역주
역주1 不與謀 : 宣公 7년 傳에 “出師를 기록함에 있어 謀議에 참여하였으면 ‘及’으로 기록하고, 참여하지 않았으면 ‘會’로 기록한다.”고 하였다.
역주2 子貢之言 : 定公 15년에 邾隱公이 來朝하여 禮를 행하는 것을 보고서 子貢이 “二君者皆有死亡焉……何以能久”라고 한 말을 이른다.
역주3 事不再令 : 令은 命龜이니, 한 가지 일에 대해 재차 점을 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 〈楊注〉 命龜는 점을 칠 때 점치는 일을 거북에게 告하는 것이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