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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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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四年春王三月 刻桓宮桷注+刻 鏤也 桷 椽也 將逆夫人 故爲盛飾하다
24년 봄 주왕周王 3월에 환공桓公 서까래에 조각彫刻을 하였다.注+은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기는 것이다. 은 서까래이다. 장차 부인夫人을 맞이하려 하였기 때문에 성대하게 꾸민 것이다.
[經]葬曹莊公注+無傳하다
조장공曹莊公을 장사지냈다.注+이 없다.
[經]夏 公如齊逆女注+無傳 親逆 禮也하다
여름에 장공莊公나라로 가서 아내를 맞이하였다.注+이 없다. 친히 가서 맞이하는 것이 이다.
[經]秋 公至自齊注+無傳하다
가을에 장공莊公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八月丁丑 夫人姜氏入注+哀姜也 公羊傳 以爲姜氏要公 不與公俱入 故丁丑入而明日乃朝廟하다
8월 정축일에 부인夫人강씨姜氏나라로 들어왔다.注+강씨姜氏애강哀姜이다. 《공양전公羊傳》에 “강씨姜氏장공莊公과 약속하고서 장공莊公과 함께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 것은 맹임孟任 때문인 듯하다. 그러므로 정축일丁丑日에 들어와서 그 이튿날 종묘宗廟알현謁見한 것이다.
[經]戊寅 大夫宗婦覿할새 用幣注+宗婦 同姓大夫之婦 禮 小君至 大夫執贄以見 明臣子之道 莊公欲奢夸夫人 故使大夫宗婦同贄俱見하다
무인일에 대부大夫종부宗婦들이 부인夫人을 뵐 적에 예폐禮幣를 사용하였다.注+종부宗婦동성同姓대부大夫의 아내이다. 소군小君이 시집오면 대부大夫예폐禮幣를 가지고 알현謁見하여 신하의 도리를 밝히는 것인데, 장공莊公부인夫人을 사치스럽게 대우하고자 하였으므로 대부와 종부宗婦들로 하여금 동일하게 예폐禮幣를 가지고 알현하게 한 것이다.
[經]大水注+無傳
큰 물이 졌다.注+이 없다.
[經]冬 戎侵曹注+無傳하다
겨울에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이 없다.
曹羇出奔陳注+無傳 羇 蓋曹世子也 先君旣葬而不稱爵者 微弱不能自定 曹人以名赴하다
조기曹羇나라로 도망하였다.注+이 없다. 나라 세자世子인 듯하다. 선군先君조장공曹莊公을 이미 장사葬事지냈는데도 을 칭하지 않은 것은 미약微弱하여 스스로 위치位置를 안정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조인曹人이 이름을 기록해 나라에 통고通告한 듯하다.
赤歸于曹注+無傳 赤 曹僖公也 蓋爲戎所納 故曰하다
나라로 돌아갔다.注+이 없다. 조희공曹僖公이다. 이 들여보냈기 때문에 ‘’라 한 듯하다.
[經]郭公注+無傳 蓋經闕誤也 又不可通之於左氏 故不采用이라
곽공郭公이다.注+이 없다. 아마도 경문經文이 빠지거나 잘못된 듯하다. 그러나 조기曹羇 이하에 대해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의 이 이미 분명하지 않다. 또 이 을 인용해 《좌전左傳》을 해석하기에는 적합지 않기 때문에 채용採用하지 않은 것이다.
[傳]二十四年春 刻其桷하니 皆非禮也注+幷非丹楹 故言皆
24년 봄에 의 서까래에 조각彫刻을 하였으니 모두 가 아니다.注+ 서까래에 붉은 칠을 한 것과 함께 모두 가 아니기 때문에 ‘’라고 말한 것이다.
御孫諫曰 臣聞之하니 德之共也 惡之大也注+御孫 魯大夫라하니이다
어손御孫하기를 “신이 듣건대 ‘검약儉約 중에 큰 것이고, 사치는 중에 큰 것이다.’고 하였습니다.注+어손御孫나라 대부이다.
先君有共德이어늘 而君納諸大惡하니 無乃不可乎注+以不丹楹刻桷爲共잇가
선군先君께서는 가지셨는데 께서는 선군先君대악大惡 속에 모시려 하시니,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注+기둥에 붉은 칠을 하지 않고 서까래에 조각을 하지 않는 것이 공손共孫이다.
[傳]秋 哀姜至어늘 公使宗婦覿 用幣하니 非禮也注+傳不言大夫 唯擧非常
가을에 애강哀姜나라로 오자, 장공莊公종부宗婦들에게 애강哀姜알현謁見할 때 폐백幣帛을 올리게 하였으니, 가 아니다.注+대부大夫을 말하지 않은 것은 정상正常이 아닌 거행擧行하였기 때문이다.
御孫曰 男贄 大者玉帛注+公侯伯子男執玉 諸侯世子附庸孤卿執帛이오 小者禽鳥注+卿執羔 大夫執鴈 士執雉하야 以章物也注+章所執之物 別貴賤 [附注] 林曰 羔取其群而不失其類 鴈取其而行 雉取其守介而死不失其節 女贄 不過榛栗棗脩하야 以告虔也注+榛 小栗 脩 脯 虔 敬也 皆取其名以示敬 [附注] 林曰 栗取其戰栗也 棗取其早起也 脩取其自脩也 唯榛無設 蓋以榛聲近虔 取其虔於事也어늘 今男女同贄하니 是無別也니이다
어손御孫이 말하기를 “남자男子의 폐백은 신분身分존귀尊貴한 자는 옥백玉帛을 가지고 가서 알현하고注+을, 제후諸侯세자世子부용국附庸國고경孤卿을 가지고 가서 알현謁見한다. 신분이 낮은 자는 금조禽鳥를 가지고 가서 알현謁見하여注+은 염소, 대부는 기러기, 는 꿩을 가지고 가서 알현謁見한다. 각각 같지 않은 물건으로 신분身分등급等級을 드러내고,注+가지고 간 물건을 드러내 보여 신분身分귀천貴賤을 구별하는 것이다.[부주]林: 염소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를 이루어 그 무리를 잃지 않는 것을 취한 것이고, 기러기를 사용하는 것은 때를 기다려 가는 것을 취한 것이고, 꿩을 사용하는 것은 절개를 지켜 죽어도 절개를 잃지 않는 것을 취한 것이다.여자女子의 폐백은 개암‧밤‧대추‧건육乾肉을 사용하여 정성을 표시表示할 뿐인데,注+소율小栗이고, 이고, 이니, 모두 그 명칭名稱을 취하여 공경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부주]林: 전율戰栗의 뜻을, 조기早起(일찍 일어남)의 뜻을, 자수自脩(지신을 닦음)의 뜻을 취한 것이다. 오직 에만 설명說明이 없으니, 이는 에 가깝기 때문에 일에 경건하다는 뜻을 취한 것인 듯하다. 지금 남녀男女가 동일한 폐백을 사용하게 하였으니 이는 남녀男女분별分別을 무시한 것입니다.
男女之別 國之大節也注+[附注] 林曰 家齊而後國治 所以爲國之大節어늘 而由夫人亂之하니 無乃不可乎잇가
남녀의 분별은 나라의 큰 예절禮節인데,注+[부주]林: 집안이 다스려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기 때문에 남녀의 분별이 나라의 큰 예절이 되는 것이다.부인夫人으로 말미암아 이 분별을 어지럽혔으니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傳]晉士蔿又與羣公子謀하야 使殺游氏之二子注+游氏二子 亦桓莊之族하다 士蔿告晉侯曰 可矣
사위士蔿가 또 여러 공자公子들과 모의謀議하여 유씨游氏의 두 아들을 죽이게 하고서,注+유씨游氏의 두 아들도 환숙桓叔장백莊伯종족宗族이다.진후晉侯에게 하기를 “됐습니다.
不過二年하야 君必無患이리이다
2년이 지나지 않아서 임금께서는 반드시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蓋以孟任 : 孔穎達의 《正義》에는 “《公羊傳》에 다만 약속했다고만 말하였을 뿐이니, 약속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孟任 때문인 듯하다고 한 것이다.”고 하였다. 孟任은 魯나라 大夫黨氏의 딸로 莊公과 팔뚝을 베어 맹세하고 莊公의 아내가 되어 公子般을 낳은 여자이다. 莊公 32년 傳에 보인다.
역주2 : 外國으로 도망가 있는 諸侯를 다른 제후들이 도와서 歸國시키는 것을 ‘歸’라고 한다. 《春秋左傳成公十八年傳》
역주3 自曹羇……旣不了 : 《公羊傳》에는 “曹羇는 누구인가? 曹나라 大夫이다. 曹나라에는 大夫가 없는데, 여기에 어째서 大夫라고 기록했는가? 훌륭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을 훌륭하게 여겼는가? 戎이 曹나라를 치려 할 때 曹羇가 曹伯에게 諫하기를 ‘戎은 군대가 많고 禮義가 없으니, 君께서 스스로 대적하지 마소서.’라고 하였으나, 曹伯은 듣지 않았다. 세 차례 간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으니, 曹羇는 드디어 나라를 떠났다. 그러므로 君子는 그가 君臣의 의리를 옳게 행하였다고 여긴 것이다.”라고 하였고, 《穀梁傳》에는 “赤은 郭公인 듯하다. 어째서 이름을 기록했는가? 禮에 諸侯는 外國에 歸依하는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外國에 歸依하는 것은 正道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역주4 洪德(큰 德) : 杜注에는 ‘共’을 ‘恭’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恭德과 大惡은 서로 對가 되지 않으니, 아무리 보아도 해석이 구차하다. 《集韻》에 “共은 ‘洪’과 通用하니 ‘大’의 뜻이다.”고 하였고,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도 “共은 洪으로 읽어야 하니 大의 뜻이다. 從前에 ‘共’을 ‘恭’의 뜻으로 읽은 것은 잘못이다.”고 하였다. 楊氏의 說에 따라 ‘洪德’으로 번역하였다.
역주5 : 대본에는 ‘侯’로 되어 있으나 《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時’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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