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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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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四年春 公至自晉하다注+無傳
4년 봄에 나라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注+稱婦 有姑之辭하다
여름에 나라에서 부강婦姜을 맞이해 왔다.注+’로 호칭呼稱하는 것은 시어머니가 있을 때 쓰는 말이다.
[經]하다注+無傳
적인狄人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이 없다.
[經]秋 楚人滅江하다注+滅例在十五年
가을에 초인楚人나라를 하였다.注+문공文公 15년에 보인다.
[經]晉侯伐秦하다
진후晉侯나라를 토벌하였다.
[經]衛侯使甯兪來聘하다
위후衛侯영유甯兪를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經]冬十有一月壬寅 夫人風氏薨하다注+僖公母 赴同 故稱夫人
겨울 11월 임인일壬寅日부인夫人풍씨風氏하였다.注+희공僖公의 어머니로 풍성風姓이다. 동맹국同盟國부고赴告하였고, 부고祔姑하였기 때문에 ‘부인夫人’이라고 칭한 것이다.
[傳]四年春 晉人歸孔達于衛하니
4년 봄에 진인晉人공달孔達나라로 돌려보냈다.
以爲衛之良也 故免之하다注+二年 衛執孔達以說晉
그를 나라의 양신良臣으로 여겼기 때문에 방면放免한 것이다.注+문공文公 2년에 나라 공달孔達을 잡아 보내어 나라에 해명解明했었다.
[傳]夏 衛侯如晉拜하다注+謝歸孔達
여름에 위후衛侯나라에 가서 배사拜謝하였다.注+공달孔達을 돌려보낸 것에 대해 사례謝禮한 것이다.
[傳]曹伯如晉會하다注+會受貢賦之政也 傳言 襄公能繼文之業 而諸侯服從
조백曹伯나라에 가서 공부貢賦하는 정사政事회합會合하였다.注+공부貢賦를 정하는 정사政事에 회합하여 결정된 액수額數을 받아들인 것이다. 의 말은 양공襄公이 능히 문공文公패업霸業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제후諸侯가 복종하였다는 뜻이다.
[傳]逆婦姜於齊 卿不行하니 非禮也注+禮 諸侯有故 則使卿逆
부강婦姜을 맞이해 올 때 이 가지 않았으니 가 아니다.注+제후諸侯유고有故하면 을 보내어 맞이하는 것이 이다.
君子是以知注+允 信也 始來不見尊貴 故終不爲國人所敬信也 文公薨而見出 故曰出姜
군자君子는 이로 인해 출강出姜나라에서 신임信任을 받지 못할 것을 알고서注+이다. 처음 올 때 존귀尊貴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끝내 국인國人존경尊敬신임信任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문공文公이 죽은 뒤에 축출되었기 때문에 ‘출강出姜’이라 한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貴聘而賤逆之注+公子遂納幣 是貴聘也 [附注] 林曰 逆婦 卿不行 是使賤者逆하고 君而卑之하고 立而廢之注+君 小君也 不以夫人禮迎 是卑廢之하고 棄信而壞其主하니 在國必亂이오 在家必亡이리라注+主 內主也 [附注] 林曰 棄納幣之信 而壞其內主 朱曰 在魯言之謂之國 在宮中言之謂之家
한 자가 빙문聘問하고 한 자가 맞이하였으며,注+공자수公子遂가 가서 납폐納幣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한 자가 빙문聘問한 것이다. [부주]林: 부인婦人을 맞이해 오는 일에 이 가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천자賤者를 보내어 맞이해 온 것이다.소군小君인데도 비천卑賤대우待遇하였으며, 부인夫人으로 세우고도 상응相應하였으며,注+소군小君이다. 부인의 예로 맞이하지 않았으니 이는 비천한 예로 대우하여 합당한 예를 한 것이다.신의信義를 버리고 내주內主권위權威를 무너뜨렸으니, 나라에 이런 일이 있으면 나라가 반드시 어지러워지고, 집에 이런 일이 있으면 집이 반드시 망한다.注+내주內主이다. [부주]林: 납폐納幣할 때 언약한 신의를 버리고 그 내주의 권위를 무너뜨렸다는 말이다.[부주]朱: 나라의 처지에서 말하면 ‘’이고, 궁중宮中의 처지에서 말하면 ‘’이다.
不允宜哉注+[附注] 林曰 爲十八年姜氏歸齊張本
그러니 존경과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注+[부주]林: 문공文公 18년에 강씨姜氏나라로 돌아간 장본張本이다.
詩曰 畏天之威하야 于時保之라하니 敬主之謂也注+詩 頌 言畏天威 於是保福祿 [附注] 朱曰 名分不可犯處 卽天威也 今魯不畏內主 卽是犯分也
에 ‘하늘의 위엄威嚴을 두려워하여 내주內主보전保全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注+는 《시경詩經》 〈주송周頌아장편我將篇〉이다.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복록福祿을 보전한다는 말이다. [부주]朱: 범할 수 없는 명분名分이 바로 하늘의 위엄인데, 지금 나라는 내주內主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바로 이것이 명분名分한 것이다.
[傳]秋 晉侯伐秦하야 圍邧新城하야 以報王官之役하다注+邧新城 秦邑也 王官役 在前年
가을에 진후晉侯나라를 토벌해 신성新城을 포위하여 왕관王官의 전쟁을 보복하였다.注+신성新城나라의 이다. 왕관王官의 전쟁은 전년前年에 있었다.
[傳]楚人滅江하니 秦伯爲之降服出次하야 不擧過數하다注+降服 素服也 出次 辟正寢 不擧 去盛饌 隣國之禮有數 今秦伯過之
초인楚人나라를 하니 진백秦伯나라를 위해 소복素服을 입고 정전正殿을 패해 다른 곳에 머물면서 성찬盛饌을 들지 않기를 정해진 예수禮數(예의 등급)보다 지나치게 하였다.注+강복降服소복素服을 입는 것이고, 출차出次정침正寢을 피하는 것이고, 불거不擧성찬盛饌을 들지 않는 것이다. 이웃나라에 대한 에는 정해진 (등급)가 있는데 지금 진백秦伯은 그 수보다 지나치게 한 것이다.
大夫諫한대 公曰
대부大夫하자, 목공穆公이 말하였다.
同盟滅하니 雖不能救 敢不矜乎
동맹국同盟國멸망滅亡하였으니 비록 구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감히 가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吾自懼也注+秦江同盟 不告 故不書
이는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注+나라와 나라는 동맹국同盟國이다. 나라의 멸망을 나라에 통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君子曰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詩云 惟彼二國 其政不獲일새 惟此四國 爰究爰度이라하니 로다注+詩 大雅 言夏商之君 政不得人心 故四方諸侯 皆懼而謀度其政事也 言秦穆亦能感江之滅 懼而思政 爰 於也 究度 皆謀也
에 ‘저 두 나라는 정치가 인심人心을 얻지 못해 망하였기 때문에 사방의 나라들이 나라 보존하기를 계획하였다.’고 하였으니, 이 진목공秦穆公의 경우를 이름인 듯하다.”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황의편皇矣篇〉이다. 두 나라 임금들의 정치가 인심을 얻지 못하여 나라가 멸망하였기 때문에 사방의 제후들은 그 멸망을 보고서 모두 두려워하여 자기 나라의 정사政事를 계획했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진목공秦穆公나라의 멸망에 느낌이 있어 두려워하며 정치를 잘할 것을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에)이고, 구탁究度은 모두 계획하는 것이다. 注+정상正常이 아니다. 이 특별히 악인樂人에게 명하여 자신의 뜻을 보이게 하였기 때문에 ‘위부爲賦’라고 한 것이다. 〈잠로湛露〉와 〈동궁彤弓〉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傳]衛寗武子來聘하다
나라 영무자寗武子가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公與之宴 爲賦湛露及彤弓注+非禮之常 公特命樂人以示意 故言爲賦 湛露彤弓 詩小雅하니 不辭하고 又不答賦하다
연회宴會를 열어 그를 접대할 때 〈잠로湛露〉‧〈동궁彤弓〉을 읊으니,注+사사로이 묻게 한 것이다.무자武子사례謝禮도 하지 않고, 또 답부答賦하지도 않았다.
使行人私焉注+私問之하니 對曰
행인行人을 보내어 사사로이 그 이유를 묻게 하니注+는 익히는 것이다. 노인魯人이 읊어서는 안 될 를 읊었는데도 영무자寗武子는 모르는 체하였으니, 이 점이 바로 ‘기우불가급其愚不可及’이다.[부주]林: 악공樂工이 이 악가樂歌연습演習하다가 우연히 이 에 미친 것으로 여겼고 을 접대하기 위해 연주演奏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대답하였다.
臣以爲肄業及之也니이다注+肄 習也 魯人失所賦 甯武子佯不知 此[附注] 林曰 臣以爲樂工肄習樂歌 自及此詩 非爲宴臣而設也
“신은 악공樂工들이 연습으로 그 연주演奏하는 줄 알았습니다.注+조회朝會하여 정교政敎를 받는 것이다.
昔諸侯注+朝而受政敎也이면 王宴樂之 於是乎賦湛露하야 則天子當陽하고 諸侯用命也니이다注+湛露曰 湛湛露斯 匪陽不晞 晞 乾也 言露見日而乾 猶諸侯稟天子命而行 諸侯敵王所愾하야 而獻其功注+敵 猶當也 愾 恨怒也이면 王於是乎賜之彤弓一 彤矢百 玈弓矢千하야 以覺報宴이니이다注+覺 明也 謂諸侯有四夷之功 王賜之弓矢 又爲歌彤弓 以明報功宴樂
제후諸侯정월正月조현朝見하면注+잠로湛露〉에 ‘촉촉히 젖은 이슬은 태양이 아니고는 말릴 수 없네.’라고 하였는데, (마름)이다. 이슬이 해를 보면 마르는 것이 제후諸侯천자天子을 받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연회를 열어 함께 즐기는데, 이때에 〈잠로湛露〉을 읊어 천자天子태양太陽에 해당하고 제후諸侯에 복종한다는 뜻을 표현하고,注+과 같고 한노恨怒이다.제후諸侯통한痛恨하는 상대를 대적하여 을 바치면注+이다. 제후諸侯사이四夷를 토벌해 공을 세우면 왕이 궁시弓矢를 하사하고 또 〈동궁彤弓를 노래하여 을 보답하는 연락宴樂임을 밝힌다는 말이다. 왕이 이에 동궁彤弓 하나, 동시彤矢 1백, 검은 궁시弓矢 1천 개를 하사下賜하여 을 보답하는 연회宴會임을 밝힙니다.注+바야흐로 천자天子음악音樂을 논하였기 때문에 ‘배신陪臣’이라고 자칭自稱한 것이다.
今陪臣來繼舊好注+方論天子之樂 故自稱陪臣어늘 君辱貺之하시니 其敢干大禮하야 以自取戾릿가注+貺 賜也 干 犯也 戾 罪也
지금 배신陪臣은 옛 우호를 계승하기 위해 왔는데 께서 이러한 연회宴會를 열어 주시니 어찌 감히 대례大禮하여 스스로 를 취하겠습니까?”注+이고, 이고, 이다.
[傳]冬 成風薨하다注+爲明年王使來含賵傳
겨울에 성풍成風하였다.注+명년明年사자使者가 와서 함봉含賵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逆婦姜于齊 : ‘女’라고 칭하지 않고 ‘婦姜’이라고 기록한 것은 文公이 喪中에 아내를 취한 것을 나무란 것이다. 아내를 맞이해 온 것은 비록 3년이 지난 뒤에 있었지만 3년 이전에 이미 納幣하였으니, 喪이 끝나기 전에 아내를 맞이한 것과 일반이다. 그러므로 ‘婦姜’이라고 기록하여 納幣하는 날에 이미 成婚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婦는 며느리의 婦가 아니라 夫婦의 婦이다. 朴致遠 《雪溪隨錄》
역주2 狄侵齊 : 僖公 33년에 狄人이 箕에서 敗戰한 뒤로 3년 동안 꼼짝도 하지 못하다가 晉나라와 秦나라가 연달아 전쟁함에 미쳐 狄人이 齊나라와 魯나라를 침범하고, 楚나라가 江나라와 六國을 擊滅하는데도 晉나라는 팔짱을 끼고 앉아서 구경만 하니 霸者로서의 권세가 드디어 떨쳐지지 못하였다. 《左氏會箋》
역주3 風姓也 : 經에 ‘風氏’라고 하였으니 注에 風姓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林註에 ‘成風’이라 하였고, 正義에도 ‘杜氏는 成風은 본시 莊公의 첩이다.’라고 하였으니, 杜注舊本에는 본래 ‘成風’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 今本에 風姓으로 잘못 된 듯하다. 《左氏會箋》
역주4 祔姑 : 隱公 3년 君氏卒傳의 杜注 참고할 것.
역주5 : 杜注에는 正을 政으로 해석하였으나, 《左氏會箋》에는 “〈周官宰夫職〉에 ‘歲末에 群吏로 하여금 歲會를 正하게 하고 月末에 月要를 정하게 한다.’고 한 注에 ‘正은 定이다.’고 하였으니, 會正은 해마다 바칠 貢賦의 액수를 定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歲會는 한 해의 수입 지출을 決算하는 帳簿이고, 月要는 한 달간의 수입 지출을 決算하는 장부이다. 《左氏會箋》의 해석이 一說이 될만 하므로 紹介했다.
역주6 出姜之不允於魯也 : 楊伯峻은 允을 終의 뜻으로 해석하여, 出姜이 魯나라에서 평생을 마치지 못하고 다시 齊나라로 돌아가게 될 줄을 알았다는 말이라고 하였다. 出姜이 逐出된 情況으로 미루어 보면 終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을 같으나, 允에 終의 訓詁가 없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역주7 이는 內主를 尊敬하라는 말이다 : 楊伯峻 《春秋左傳注》의 해석을 취해 번역하였다. 杜注는 詩의 本義로 해석하여 于是保之의 之를 福祿으로 해석하였으나, 傳의 引用은 斷章取義이니 之는 內主를 指示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아래 글에 ‘敬主之謂’가 바로 그 증거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역주8 楚人滅江……其秦穆之謂矣 : 同盟國이 滅亡하자 素服을 입고 正殿을 피해 거처하며 痛惜의 뜻을 나타내었으니, 남의 나라를 倂呑해 滅亡시키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시의 제후들에 비해 크게 훌륭하였다. 그러나 단지 가엾게 여길 줄만 알았고, 위로 천자에게 보고하고 아래로 방백에게 고하여, 楚나라를 聲討해 망한 나라를 보존시키고 끊어진 대를 계승시켜 中國을 높이고 夷狄을 물리칠 줄은 몰랐으니, 그의 지혜가 이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朴致遠 《雪溪隨錄》
역주9 其愚不可及 : 이 말은 《論語》 〈公冶長篇〉에 있는 말로 孔子께서 寗武子를 칭찬한 말씀이다. 《論語》에 “孔子께서 寗武子를 두고 말씀하기를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지혜를 숨기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처신하니,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
역주10 朝正於王 : 朝正을 杜氏는 王께 朝會하여 政敎를 받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楊伯峻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襄公 29년 傳에 “經에 ‘봄 周王正月에 公이 楚나라에 있었다.’고 한 것은 正月에 祖廟에 朝見하지 않은 것을 해석한 것이다.”고 하였다. 新正에는 祖廟로 가서 賀正하는 것을 ‘朝正於廟’라고 하니, 이 곳의 ‘朝正於王’도 正月에 王께 朝見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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