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五年春 하다注+稱晉侯 惡用讒 書春 從告
5년 봄에 진후晉侯가 그 세자世子신생申生을 죽였다.注+진후晉侯라고 칭한 것은 참소를 따른 것을 미워해서이고, 봄이라고 기록한 것은 나라가 통고通告한 대로 따른 것이다.
[經]하다注+無傳 伯姬來寧 寧成風也 朝其子者 時子年在十歲左右 因有諸侯子得行朝義 而卒不成朝禮 故繫於母而曰 朝其子
기백희杞伯姬가 와서 그 아들을 노희공魯僖公에게 조현朝見시켰다.注+이 없다. 백희伯姬귀녕歸寧한 것은 성풍成風에게 귀녕歸寧한 것이다. 그 아들을 조현朝見시켰다는 것은 이때 아들의 나이가 10세 좌우였다. 제후의 아들은 조현朝見하는 의리가 있으므로 인해 조현시켰으나, 끝내 조현의 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어머니에게 매어 “그 아들을 조현시켰다.”고 한 것이다.
[經]夏 하다注+叔孫戴伯娶於牟 卿非君命不越竟 故奉公命聘於牟 因自爲逆 [附注] 林曰 牟 小國
여름에 공손자公孫玆나라에 갔다.注+숙손대백叔孫戴伯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해 왔다. 은 임금의 을 받지 않고는 국경國境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희공僖公의 명을 받들고 빙문聘問하는 사신使臣으로 나라에 간 기회에 스스로 아내를 맞이한 것이다. [부주]林: 소국小國이다.
[經]公及齊侯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曹伯會王世子于首止하다注+惠王大子鄭也 尊之也 首止 衛地 陳留襄邑縣東南有首鄕 [附注] 林曰 衣裳之會七 殊會世子 不以世子夷於諸侯 所以定世子也
희공僖公제후齊侯송공宋公진후陳侯위후衛侯정백鄭伯허남許男조백曹伯과 함께 수지首止에서 왕세자王世子회견會見하였다. 注+왕세자王世子혜왕惠王태자太子이다. 세자世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회견會見을 달리 기록한 것은 세자世子를 높인 것이다. 수지首止나라 땅이다. 진류陳留양읍현襄邑縣 동남쪽에 수향首鄕이 있다. [부주]林: 이것이 일곱 번째의 의상지회衣裳之會이다. 세자와의 회견會見을 달리 기록한 것은 세자를 제후와 대등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니, 이는 세자世子를 정하기 위함이었다.
[經]秋八月 諸侯盟于首止하다注+ 王之世子尊與王同 齊桓行霸 翼戴天子 尊崇王室 故殊貴世子
가을 8월에 제후諸侯수지首止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중간에 다른 일이 없었는데도 다시 제후諸侯라고 칭한 것은 왕세자王世子결맹結盟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자世子는 그 존귀尊貴함이 과 같다. 제환공齊桓公이 제후의 맹주盟主가 되어 천자天子보좌輔佐하고 왕실王室존중尊重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세자世子존귀尊貴하게 여긴 것이다.
鄭伯逃歸不盟하다注+逃其師而歸也 逃例在文三年
정백鄭伯은 도망해 돌아가고 결맹結盟에 참여하지 않았다.注+그 군대는 그대로 두고 혼자 도망해 돌아간 것이다. 도망에 관한 문공文公 3년에 보인다.
[經]楚人滅하니 子奔黃하다注+弦國 在弋陽軑縣東南
초인楚人나라를 격멸擊滅하니, 현자弦子나라로 도망갔다.注+나라는 익양弋陽대현軑縣 동남쪽에 있다.
[經]九月戊申朔 日有食之하다注+無傳
9월 무신삭戊申朔일식日食하였다.注+이 없다.
[經]冬 晉人執虞公하다注+虞公貪璧馬之寶 距絶忠諫 稱人以執 同於無道於其民之例 所以罪虞 且言易也 晉侯修虞之祀 而歸其職貢於王 故不以滅同姓爲譏
겨울에 진인晉人우공虞公을 잡았다. 注+우공虞公과 말을 탐하고, 충신忠臣간언諫言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진인晉人’이 잡았다고 기록하여, 백성에게 무도無道한 자를 기록하는 와 같이 기록하였다. 성공成公 15년에 보인다. 우공虞公에게 죄를 돌리고, 또 힘들이지 않고 쉽게 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진후晉侯나라의 제사를 지내고, 나라의 직공職貢주왕周王에게 바쳤기 때문에 동성국同姓國한 것으로 비난하지 않은 것이다.
[傳]五年春王正月辛亥朔 日南至하다注+周正月 今十一月 冬至之日 日南極
5년 봄 주왕周王 정월 신해삭辛亥朔동지冬至가 들었다.注+나라의 정월正月은 지금의 11월이다. 동지일冬至日에는 태양太陽이 남쪽 끝에 있다.
公旣視朔하고 遂登觀臺以望而書하니 禮也注+視朔 親告朔也 觀臺 臺上構屋 可以遠觀者也 審別陰陽 叙事訓民 魯君不能常修此禮 故善公之得禮
희공僖公시삭視朔하고서 드디어 관대觀臺에 올라 운물雲物관망觀望하고서 기록하였으니 이다.注+시삭視朔은 친히 곡삭告朔하는 것이다. 관대觀臺는 멀리 관망觀望할 수 있게 위에 지은 집이다. 11월 삭일朔日동지冬至역수曆數의 시작이기 때문에 추산推算하는 자가 이에 의거해 을 정하면 그 술수術數명확明確히 하고 음양陰陽을 분별하여 일의 순서를 정하여 백성을 교훈敎訓할 수 있다. 나라 임금들이 항상 이 를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공僖公이 이 를 행한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凡分至啓閉 必書雲物注+分 春秋分也 至 冬夏至也 啓 立春立夏 閉 立秋立冬 爲備故也注+素察妖祥 逆爲之備
에 반드시 운물雲物을 기록하니,注+춘분春分추분秋分이고, 동지冬至하지夏至이며, 입춘立春입하立夏이고, 입추立秋입동立冬이다. 운물雲物운기雲氣재변災變이다. 에 거듭 나라의 구전舊典를 말하고, 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일관日官이 그 직무職務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는 재해災害예비豫備하기 위함이다.注+평소에 요상妖祥을 살피는 것은 미리 대비對備하기 위함이다.
[傳]晉侯使以殺大子申生之故來告하다注+釋經必須告乃書
진후晉侯사자使者나라에 보내와서 태자太子신생申生을 죽인 일을 고하였다.注+반드시 알려 온 뒤에야 에 기록한다는 것을 해석한 것이다.
晉侯使士蔿爲二公子築蒲與屈이러니 不愼하고 置薪焉注+不謹愼 [附注] 林曰 寘薪於土 雜而築之 不堅實이어늘 夷吾訴之한대
당초에 진후晉侯사위士蔿에게 두 공자公子를 위해 에 성을 쌓게 하였는데, 사위士蔿신중愼重히 쌓지 않고 흙 속에 섶을 넣으니,注+근신謹愼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섶을 흙에 섞어 견실堅實하게 쌓지 않은 것이다.이오夷吾가 이를 고소告訴하였다.
公使讓之注+譴讓之하니 士蔿稽首而對曰
헌공獻公이 사람을 보내어 사위士蔿를 책망하니注+견책譴責한 것이다.사위士蔿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臣聞之컨대 無喪而慼이면 憂必讎焉注+讎 猶對也하고 無戎而城이면 必保焉注+保而守之이라하니 寇讎之保 又何愼焉이릿가
“신이 듣건대 상사喪事가 없는데 슬퍼하면 근심스러운 일이 반드시 응대應對하고注+와 같다.전쟁戰爭이 없는데 성을 쌓으면 원수가 반드시 그곳을 보루保壘로 삼는다고 하니,注+그곳을 보루로 삼아 지킨다는 말이다.구수寇讐의 보루를 무엇 때문에 신중히 쌓겠습니까.
守官廢命 不敬注+[附注] 林曰 言若不往築 則守官而廢君之命이요 固讎之保 不忠이니 失忠與敬이면 何以事君이릿가
관직官職에 있으면서 군명君命을 어기는 것은 불경不敬이고,注+[부주]林: 만약 가서 쌓지 않는다면 관직官職에 있으면서 임금의 명을 버리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적의 보루를 견고하게 쌓는 것은 불충不忠이니 충성과 공경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임금을 섬기겠습니까.
詩云懷德惟寧이오 宗子惟城注+詩 大雅 懷德以安 則宗子之固若城이라하니 君其修德而固宗子 何城如之릿가注+言城不如固宗子
시경詩經》에 ‘으로 회유懷柔하면 국가가 안정되고 종자宗子견고堅固이 된다.’고 하였으니,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판편板篇〉이다. 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면 종자宗子견고堅固함이 과 같다는 말이다. 임금님께서는 덕을 닦으시고 종자宗子위치位置를 견고히 하신다면 이만한 성이 다시 어디 있겠습니까.注+성을 쌓는 것이 종자宗子의 위치를 견고히 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三年將尋師焉이리니 焉用愼이릿가注+尋 用也 [附注] 林曰 蓋當時驪姬欲殺三公子之謀已露
3년 안에 군사를 쓰게 될 것이니 무엇 때문에 신중히 쌓겠습니까.”注+은 쓰는 것이다. [부주]林: 이때 세 공자公子살해殺害하고자 한 여희驪姬음모陰謀가 이미 드러났다.
退而賦曰
물러나와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
狐裘尨茸하니 一國三公이로소니 吾誰適從注+士蔿自作詩也 尨茸 亂貌 公與二公子爲三 言城不堅則爲公子所訴 爲公所讓 堅之則爲固讎不忠 無以事君 故不知所從 [附注] 林曰 以狐腋爲裘 貴者之裘也 尨茸 亂貌 言貴者之多 蒲屈大都耦國 故獻公與二公子鼎立爲三公 朱曰 言以狐皮爲裘 其毛亂雜 以興下句之意
“여우 갖옷에 털이 난잡亂雜하여 한 나라에 이 셋이니 내 누구를 오로지 믿고 따를까?” 注+사위士蔿자작시自作詩이다. 방용尨茸은 어지러운 모양이다. 셋은 헌공獻公과 두 공자公子이다. 성을 견고히 쌓지 않으면 공자公子고소告訴를 당하여 헌공獻公견책譴責을 받고, 성을 견고히 쌓으면 원수의 보루를 견고히 쌓는 것이어서 불충不忠이 되어 임금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부주]林: 여우 겨드랑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은 존귀尊貴한 사람의 갖옷이다. 방용尨茸은 어지러운 모양이니, 존귀한 자가 많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국도國都와 맞먹는 대도大都이기 때문에 헌공獻公이 두 공자와 더불어 세 발 솥처럼 삼공三公이 되었다는 말이다.[부주]朱: 여우 가죽으로 만든 갖옷에 그 털이 난잡하다는 것을 말하여 아래 글귀의 뜻을 일으킨 것이다.
及難하야 公使寺人披伐蒲한대
난이 일어나자 헌공獻公시인寺人를 보내어 를 치게 하였다.
重耳曰 君父之命不校注+[附注] 林曰 言披以君父之命來伐 不敢與校强弱勝負라하고 乃徇曰校者 吾讎也라하고 踰垣而走하니 披斬其袪하다
중이重耳는 “군부君父의 명은 대항對抗[校]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서注+[부주]林: 시인寺人군부君父의 명으로 와서 치기 때문에 감히 그와 강약强弱승부勝負를 겨룰 수 없다는 말이다. 대중에게 “대항對抗하는 자는 나의 원수이다.”고 선포宣布하고는 담을 넘어 도주하니 시인 피가 도주하는 중이重耳의 소맷자락을 잘랐다.
遂出奔翟하다注+袪 袂也
중이重耳는 드디어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는 소매이다.
[傳]夏 公孫玆如牟娶焉하다注+因聘而娶 故傳實其事
여름에 공손자公孫玆나라로 가서 아내를 맞이하였다.注+빙문聘問 간 기회를 이용하여 아내를 맞이했기 때문에 에 그 일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다.
[傳]會于首止하야 會王大子鄭하니 謀寧周也注+惠王以惠后故 將廢大子鄭而立王子帶 故齊桓帥諸侯會王大子 以定其位
제후諸侯수지首止에서 회합會合하여 왕태자王太子회견會見하였으니, 이는 나라 왕실王室안정安定모의謀議하기 위함이었다. 注+혜왕惠王혜후惠后 때문에 태자太子하고 왕자王子태자太子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므로 제환공齊桓公이 제후를 거느리고 왕태자王太子와 회합하여 그 위치를 안정시킨 것이다.
[傳]陳轅宣仲怨鄭申侯之反己於召陵이라注+宣仲轅濤塗
나라 원선중轅宣仲나라 신후申侯소릉召陵에서 자기를 배반한 것을 원망하였다.注+선중宣仲원도도轅濤塗이다.
故勸之城其賜邑注+齊桓所賜虎牢曰 美城之하라
그러므로 신후申侯에게 하사받은 에 성을 쌓으라고 권하기를注+제환공齊桓公이 하사한 호뢰虎牢이다. “아름답게 성을 쌓아라.
大名也注+[附注] 林曰 城虎牢而美設樓櫓之備 可以存莫大之名 子孫不忘하리라
명성名聲을 크게 하는 것이니注+[부주]林: 호뢰虎牢에 성을 쌓고서 망루望樓 등의 설비設備를 아름답게 꾸미면 큰 명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손들이 잊지 않을 것이다.
吾助子請하리라하고 乃爲之請於諸侯而城之하니注+樓櫓之備 美設어늘
내가 그대를 도와 청하겠다.”고 하고서, 신후申侯를 위해 제후諸侯에게 요청하여 성을 쌓으니 그 성이 아름다웠다.注+망루望樓의 설비를 아름답게 꾸민 것이다.
遂譖諸鄭伯曰 美城其賜邑하니 將以叛也
그러자 원선중轅宣仲은 드디어 정백鄭伯에게 “신후申侯가 하사 받은 에 성을 아름답게 쌓았으니, 이는 장차 그 성을 근거지根據地로 삼아 배반하려는 것입니다.”고 참소하였다.
申侯由是得罪하다注+爲七年鄭殺申侯傳
신후申侯는 이로 인해 를 얻었다.注+7년에 나라가 신후申侯를 죽인 의 배경이다.
[傳]秋 諸侯盟할새 王使周公召鄭伯曰
가을에 제후가 결맹結盟할 때에 주혜왕周惠王주공周公을 보내어 정백鄭伯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였다.
吾撫女以從楚하고 輔之以晉하리니 可以少安이리라注+周公 宰孔也 王恨齊桓定大子之位 故召鄭伯使叛齊也 晉楚不服於齊 故以鎭安鄭
“내가 그대를 위무慰撫나라를 따르게 하고 또 나라에게 그대를 돕게 할 것이니, 그러면 그대 나라가 조금은 평안해질 것이다.”注+주공周公재공宰孔이다. 혜왕惠王제환공齊桓公태자太子의 위치를 안정시킨 것을 통한痛恨으로 여겼기 때문에 정백鄭伯을 불러 제환공齊桓公을 배반하게 한 것이다. 이때 나라와 나라는 나라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를 안정시키게 한 것이다.
鄭伯喜於王命而懼其不朝於齊也
정백鄭伯왕명王命에 대해서는 기뻐하였으나 나라에 조현朝見하지 않는 것이 두려웠다.
故逃歸不盟하다
그래서 도망해 돌아오고 맹약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였다.
孔叔止之曰 國君不可以輕이니
그러자 공숙孔叔이 말리며 말하기를 “국군國君은 경솔히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輕則失親注+孔叔 鄭大夫 親 黨援也하고 失親이면 患必至하리이다
경솔하면 가까운 나라를 잃고,注+공숙孔叔나라 대부大夫이다. 은 한 편이 되어 구원救援하는 나라이다. 가까운 나라를 잃으면 환란患亂이 반드시 닥칩니다.
病而乞盟이면 所喪多矣리니 君必悔之리이다 弗聽하고 逃其師而歸하다注+[附注] 林曰 君行師從 時鄭文公已會首止 故逃其師而歸
환란이 닥친 뒤에 맹약하기를 구걸求乞한다면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으나 듣지 않고서 군대는 그대로 두고서 혼자 도망해 돌아갔다.注+[부주]林: 임금이 거둥하면 사단師團이 따른다. 이때 정문공鄭文公이 이미 수지首止회합會合하였기 때문에 그 군대는 그대로 두고서 혼자서 도망해 돌아간 것이다.
[傳]楚鬪穀於菟滅弦하니 弦子奔黃하다
나라 투누오도鬪穀於菟나라를 격멸擊滅하니 현자弦子나라로 도망갔다.
於是江黃道栢方睦於齊하니 皆弦姻也注+姻 外親也 道國在汝南安陽縣南 栢 國名 汝南西平縣有栢亭
이때에 나라가 바야흐로 나라와 화목和睦하였으니 모두 나라의 인척姻戚이었다.
弦子恃之而不事楚하고 又不設備 故亡하다
현자弦子가 이를 믿고 나라를 섬기지 않고, 또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注+외친外親이다. 도국道國여남汝南안양현安陽縣에 있다. 국명國名으로 여남汝南서평현西平縣백정栢亭이 있다.
[傳]晉侯復假道於虞以伐虢하니 宮之奇諫曰
진후晉侯가 다시 나라에 길을 빌려 나라를 치려 하니, 궁지기宮之奇하였다.
虞之表也注+[附注] 林曰 以虢爲表 以虞爲裏 言虢爲虞之外護 虢亡이면 虞必從之하리이다
나라는 나라의 울타리이니,注+[부주]林: 나라는 밖에 있고 나라는 안에 있으니, 나라는 밖에서 나라를 보호하는 울타리라는 말이다.나라가 망하면 나라도 반드시 따라 망합니다.
晉不可啓 寇不可翫注+翫 習也 [附注] 林曰 晉心無厭 不可開啓 晉兵爲寇 不可翫習이니
나라에게 길을 열어 주어서도 안 되고 적을 가벼이 보아서도 안 됩니다.注+은 가벼이 여겨 무시하는 것이다. [부주]林: 진후晉侯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되고, 진병晉兵의 침략을 가벼이 보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一之謂甚이어늘 其可再乎잇가注+爲二年假晉道滅下陽
한 번 길을 빌려 준 것도 심하다 할 수 있는데 다시 빌려 줘서야 되겠습니까.注+희공僖公 2년에 나라는 나라에게 길을 빌려 주고, 나라와 연합聯合나라를 쳐서 하양下陽을 멸망시켰다.
諺所謂輔車相依하고 脣亡齒寒者 其虞虢之謂也니이다注+輔頰輔 車牙車
속담에 ‘광대뼈[輔]와 잇몸[車]은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은 나라와 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注+는 광대뼈이고. 는 잇몸이다.
公曰
우공虞公이 말하였다.
吾宗也 豈害我哉
나라는 우리의 동종同宗이니 어찌 우리를 해치겠는가.”
對曰
궁지기宮之奇가 대답하였다.
大伯虞仲 大王之昭也로되 大伯不從이라 是以不嗣注+大伯虞仲 皆大王之子 不從父命 俱讓適吳 仲雍支子 別封西吳 虞公其後也 穆生昭 昭生穆 以世次計 故大伯虞仲 於周爲昭하고 虢仲虢叔 王季之穆也注+王季者 大伯虞仲之母弟也 虢仲虢叔 王季之子 文王之母弟也 仲叔 皆虢君字 爲文王卿士하여 勳在王室하야 藏於盟府注+盟府 司盟之官로되 將虢是滅하니 何愛於虞릿가
태백泰伯우중虞仲태왕太王의 아들[昭]이었으되 태백泰伯이 아버지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왕위王位계승繼承하지 못하였고,注+태백泰伯우중虞仲은 모두 태왕太王의 아들로 아버지의 명을 따르지 않고, 함께 왕위王位을 사양하고서 로 갔다. 뒤에 중옹仲雍지자支子서오西吳에 봉하였는데, 우공虞公은 바로 그 후손이다. 를 낳고 을 낳으니, 세계世系의 차례로 계산하면 태백泰伯우중虞仲주태왕周太王가 된다.괵중虢仲괵숙虢叔왕계王季의 아들[穆]로서注+왕계王季태백泰伯우중虞仲동모제同母弟이고, 괵중虢仲괵숙虢叔왕계王季의 아들로 문왕文王동모제同母弟이다. 은 모두 괵군虢君이다.문왕文王경사卿士가 되어 나라 왕실王室공훈功勳을 세워 함을 받을 때의 맹약문서盟約文書맹부盟府에 간직되어 있는데도注+맹부盟府사맹司盟관부官府이다.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데, 어찌 우리 나라에 애정愛情을 두겠습니까?
且虞能親於桓莊乎잇가
나라가 환숙桓叔장백莊伯의 자손보다 더 친근親近할 수가 있습니까?
其愛之也ᄂ댄 桓莊之族何罪완대 而以爲戮이닛까
진후晉侯동종同宗을 사랑한다면 환숙桓叔장백莊伯의 자손[族]은 무슨 죄가 있기에 죽였다는 말입니까?
不唯偪乎잇가注+桓叔莊伯之族 晉獻公之從祖昆弟 獻公患其偪 盡殺之 事在莊二十五年 [附注] 林曰 桓叔莊伯之子孫 皆獻公之曾祖父母祖父母之黨也 言晉若有愛祖宗之心 桓莊二公之子孫 以何得罪於獻公 獻公圍聚盡殺
자신을 위협한다고 여겨서가 아닙니까?注+환숙桓叔장백莊伯의 자손은 모두 헌공獻公의 6촌 형제인데, 헌공獻公은 그들의 위협을 근심하여 다 살해殺害하였다. 이 일은 장공莊公 25년에 보인다. [부주]林: 환숙桓叔장백莊伯의 자손은 모두 헌공獻公증조부모曾祖父母조부모祖父母친당親黨이다. 진후晉侯조종祖宗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환숙桓叔장백莊伯의 자손이 어찌 헌공獻公에게 죄를 얻었겠으며, 헌공獻公은 어찌 취읍聚邑포위包圍하고서 그들을 다 죽였겠느냐는 말이다.
親以寵偪으로도 猶尙害之 況以國乎잇가注+[附注] 林曰 至親而以恃寵逼害晉國 獻公猶尙盡殺害之 況以虞有一國之寵利 晉豈無幷呑虞公之心
친족親族권세權勢로 자신을 위협하는 것도 오히려 살해殺害하였는데 하물며 나라를 가지고 위협하는 것이겠습니까?”注+[부주]林: 지친至親총애寵愛를 믿고 나라 공실公室을 위협한 것도 헌공獻公은 오히려 다 살해하였는데, 하물며 우공虞公은 한 나라의 군위君位이록利祿을 가졌으니 나라가 병탄幷呑할 마음이 어찌 없겠느냐는 말이다.
公曰
우공虞公이 말하였다.
吾享祀豐絜하니 神必據我리라注+據 猶安也
“나는 풍성하고 깨끗한 제물祭物로 제사를 지냈으니, 이 반드시 우리나라를 편안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注+과 같다.
對曰臣聞之컨대
궁지기宮之奇가 대답하였다.
鬼神非人實親이라 惟德是依라하니이다
이 듣건대 귀신鬼神은 사람을 친애親愛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있는 사람에게 의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서周書〉에 ‘하늘은 특별히 친애親愛함이 없고 오직 있는 사람을 돕는다.’고 하고,注+주서周書〉는 일서逸書이다.
又曰 注+馨 香之遠聞이라하고
또 ‘서직黍稷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이 향기로운 것이다.’注+은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는 것이다. 고 하고
又曰 이라하니이다注+黍稷牲玉 無德則不見饗 有德則見饗 言物一而異用 [附注] 林曰 民不易物以祭 而神有享有不享者 惟有德則是物而神享之 無德則雖有其物而神不享
또 ‘백성이 제물祭物을 바꾸지 않아도 오직 이 제물이다.’라고 하였으니注+제사에 서직黍稷희생犧牲옥벽玉璧을 올려도 덕이 없으면 흠향歆饗하지 않고, 덕이 있으면 흠향하니, 제물은 동일해도 그 작용作用이 다르다. [부주]林: 백성이 제물을 바꾸지 않고 제사를 지내도 이 흠향하기도 하고 흠향하지 않기도 하는 것은 오직 덕이 있으면 이 제물이 올바른 제물이 되어 신이 흠향하지만 덕이 없으면 아무리 제물을 차려 놓아도 이 흠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如是則非德이면 民不和하고 神不享矣 神所馮依 將在德矣리이다
이 말대로라면 이 없으면 백성이 화목和睦하지 않고 흠향歆饗하지 않을 것이니, 이 의지하는 곳은 아마 에 있을 것입니다.
若晉取虞하야 而明德以薦馨香이면 神其吐之乎잇가
만약 나라가 나라를 취하여 밝은 덕으로써 향기로운 제물을 올린다면 이 어찌 해 내겠습니까.”
弗聽하고 許晉使하다
우공虞公은 듣지 않고 나라 사신使臣에게 길을 허락했다.
宮之奇以其族行注+行 去也
궁지기宮之奇가족家族을 이끌고 떠나며 말하였다.注+은 떠나는 것이다.
虞不臘矣리라注+臘 歲終祭衆神之名
나라는 납제臘祭를 지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注+세말歲末에 여러 에게 지내는 제사 이름이다.
在此行也 晉不更擧矣리라注+不更擧兵 [附注] 林曰 言將滅虢而遂滅虞
은 이번 걸음에 병탄幷呑할 것이니 재차 군대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注+다시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주]林: 장차 나라를 격멸擊滅하고는 드디어 나라를 격멸擊滅할 것이라는 말이다.
八月甲午 晉侯 圍上陽注+上陽 虢國都 在弘農陝縣東南하고 問於卜偃曰
8월 갑오일甲午日진후晉侯상양上陽을 포위하고서注+상양上陽나라의 국도國都이다. 홍농弘農섬현陝縣의 동남쪽에 있다.복언卜偃에게 물었다.
吾其濟乎
“우리가 성공成功하겠는가?”
對曰
복언卜偃이 대답하였다.
克之리이다
승리勝利할 것입니다.”
公曰
진후晉侯가 물었다.
何時
“언제쯤이겠는가?”
對曰
복언卜偃이 대답하였다.
童謠云 丙之晨 龍尾伏辰注+龍尾 尾星也 日月之會曰辰 日在尾 故尾星伏不見이어든 均服振振하야 取虢之旂로다注+戎事 上下同服 振振 盛貌 旂 軍之旌旗
동요童謠에 ‘병자일丙子日 새벽 용미성龍尾星이 태양 가까이에 있어 보이지 않을 때에注+용미龍尾미성尾星이다. 해와 달이 만나는 곳을 이라 한다. 해가 미성尾星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미성尾星이 빛을 내지 못하여 보이지 않은 것이다.군복軍服을 씩씩하게 차려 입고서 나라의 깃발을 빼앗는다.注+전사戰事에는 높은 장군과 졸개가 같은 옷을 입는다. 진진振振은 성대한 모양이다. 는 군대의 정기旌旗이다.
鶉之賁賁하고 天策焞焞하며 火中成軍하야 虢公其奔注+鶉 鶉火星也 賁賁 鳥星之體也 天策 傳說星 時近日 星微 焞焞 無光曜也 言丙子平旦 鶉火中 軍事有成功也 此已上皆童謠言也 童齔之子 未有念慮之感 而會成嬉戲之言 似若有馮者 其言或中或否 博覽之士 能懼思之人 兼而志之 以爲鑒戒 以爲將來之驗 有益於世敎하리라하니 其九月十月之交乎注+以星驗推之 知九月十月之交 謂夏之九月十月也 交 晦朔交會ᄂ저
순화성鶉火星이 새의 깃처럼 펼쳐지고 천책성天策星이 빛을 잃고 순화성鶉火星이 남쪽 하늘에 뜰 때 군대가 승전勝戰하여 괵공虢公이 도망갈 것이다.’라고 하니注+순화성鶉火星이다. 분분賁賁조성鳥星형체形體이다. 천책天策부열성傅說星이다. 이때 순화성鶉火星이 태양 가까이에 있으므로 빛이 희미하다. 돈돈焞焞은 빛이 없는 것이다. 병자일丙子日 새벽 순화성鶉火星이 남쪽 하늘에 뜰 때 군사軍事성공成功한다는 말이다. 이상은 모두 동요童謠의 말이다. 이갈이 나이 어린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해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데도 함께 모여 놀면서 희롱하는 말을 만들어 내니, 신빙성信憑性이 있을 듯하다. 그 말이 혹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지만 박람博覽한 선비와 과거의 실패를 두려워하여 반성해 생각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모두 기억하여 경계로 삼고 장래의 징험徵驗으로 삼는다면 세교世敎에 도움이 있을 것이다. 아마 구시월 어름일 것입니다.注+별의 징험徵驗으로 미루어 구시월 어름일 것임을 안 것이다. 하정夏正의 구시월이다. 어름[交]은 그믐과 초하루가 교차하는 시기이다.
丙子旦 日在尾하고 月在策注+是夜日月於尾 月行疾 故至旦而過在策하고 鶉火中하니 必是時也리이다
병자일 아침에 해는 미성尾星 자리에 있고 달은 천책성天策星 자리에 있고注+이날 밤에 해와 달이 미성尾星의 위치에서 합삭合朔한다. 달은 운행이 빠르기 때문에 새벽이 되면 미성尾星을 지나 천책天策성의 위치로 온다.순화성鶉火星이 남쪽에 뜨니 반드시 이때일 것입니다.”
冬十二月丙子朔 晉滅虢하니 虢公醜奔京師하다注+不書 不告也 周十二月 夏之十月 [附注] 朱曰 醜 虢公名也 皆如童謠之言 然所謂童謠者 恐無此理 恐好事者附會爲之 未可信也
겨울 12월 병자일 초하루에 진군晉軍나라를 하니 괵공虢公경사京師로 달아났다.注+괵공虢公이 도망간 것을 《춘추春秋》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 12월은 의 10월이다. [부주]朱: 괵공虢公의 이름이다. 모두 동요童謠의 말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동요란 것이 이처럼 맞을 리가 없다. 호사자好事者부회附會해서 만든 것인 듯하니, 신빙信憑할 만하지 못하다.
師還 館于虞라가 遂襲虞滅之하고 執虞公及其大夫井伯하야 以媵秦穆姬하다注+秦穆姬 晉獻公女 送女曰媵 以屈辱之하다
진군晉軍이 돌아올 때에 나라에 머물다가 드디어 나라를 습격하여 멸망시키고 우공虞公과 그 대부大夫정백井伯을 사로잡아 목희穆姬잉신媵臣으로 삼고,注+진목희秦穆姬진헌공晉獻公의 딸이다. 시집가는 여자를 호송護送하는 것을 ‘’이라 한다. 우공虞公잉신媵臣을 삼아 모욕한 것이다.나라의 4제사를 대신 지내고, 또 나라의 직공職貢주왕周王에게 바쳤다.注+나라가 주왕周王의 명을 받아 지내던 제사이다.
故書曰 晉人執虞公이라하니 罪虞 且言易也注+虞所命祀
그러므로 에 ‘진인晉人우공虞公을 잡았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우공虞公에게 죄를 돌리고, 또 나라가 나라를 힘들이지 않고 멸망시켰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晉侯殺其世子申生 : 李震相은 이에 대해 “그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여 晉侯의 惡을 드러낸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 杞伯姬來朝其子 : 徐壽錫은 “이해에 杞惠公이 卒하고 成公이 嗣位하였는데, 惠公의 卒이 經에 記載되지 않았다. 이때 杞君의 喪을 어찌 魯나라에 赴告하지 않았을 理가 있겠는가? 《史記》에는 成公 한 代가 없으니, 아마도 僖公 23년의 ‘杞子卒’이 바로 惠公인데 傳에 成公으로 잘못 기록한 듯하다.”고 하였다. 李震相은 “이때 杞惠公이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伯姬가 그 아들을 데리고 魯나라에 와서 아버지를 대신해 朝禮를 행하게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미리 그를 魯나라에 부탁하고자 한 것이다. 이해에 惠公이 죽고 成公이 嗣位하였다.”고 하였다.
역주3 公孫玆如牟 : 徐壽錫은 이에 대해 “牟는 小國이다. 桓公 15년에 한번 魯나라에 朝見한 뒤로는 서로 交通한 禮가 전혀 없었다. 君子가 盟邦에 대해서 작은 나라라 하여 소홀히 대해서도 안 되지만 交接하는 사이에 體統을 지켜야 한다. 작은 牟나라에 아무 까닭 없이 卿을 보내어 聘問하게 한 것은 나라 사이에 교접하는 체통이 아니다. 左氏가 서술한 그런 일이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玆의 私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大夫의 私行은 기록하지 않는 것이고 또 公의 命으로 聘問한 것을 기록하는 것과 書法에 구별이 없어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역주4 不名而殊會 : 일반적으로 公이 누구누구와 어디에서 會見하였다고 기록하는 것이 通例인데, 여기서는 특수하게 公이 누구누구와 어디에서 王世子를 會見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徐壽錫은 “齊桓公이 비록 世子를 정하여 王室을 안정시킨 功이 있으나 王世子를 列國으로 불러내어 사사로이 諸侯들과 會合하게 한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이때 齊桓公의 權威는 天子도 두려워하였으니, 성심으로 周王을 輔佐하였다면 어찌 이런 방법이 아니고는 天王의 뜻을 돌릴 길이 없었겠는가? 首止의 會合은 諸侯는 신하의 禮를 잃고 王世子는 자식의 도리를 잃은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5 間無異事……王世子不盟故也 : 이번에 結盟한 諸侯는 여름에 會見한 諸侯이기 때문에 생략하고 諸侯를 列記하지 않는 것이다. 회합한 뒤 결맹할 때까지의 사이에 일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제후를 기록하기도 하고 기록하지 않기도 한다. 昭公 13년 가을에 “公이 劉子‧晉侯‧齊侯‧宋公‧衛侯‧鄭伯‧曹伯‧莒子‧滕子‧薛伯‧杞伯‧小邾子와 平丘에서 會合하여 8월 甲戌日에 平丘에서 同盟하였다.”고 기록하여 諸侯를 말하지 않은 것은 중간에 일이 없었기 때문이고, 僖公 9년 여름에 “公이 宰周公‧齊侯‧宋子‧衛侯‧鄭伯‧許男‧曹伯과 葵丘에서 會合하여 가을 9월 戊辰日에 諸侯가 葵丘에서 결맹하였다.”고 기록하여 諸侯를 말한 것은 중간에 伯姬가 죽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중간에 다른 일이 없었는데도 제후라고 기록한 것은 王世子를 높여 감히 함께 결맹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수하게 기록한 것이다. 이에 대해 朴致遠은 “首止의 結盟에 王世子를 말하지 않고 諸侯만을 말한 것은 諸侯는 감히 王世子와 盟約할 수 없고, 王世子도 諸侯의 맹약을 접수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6 : 徐壽錫은 “弦은 黃의 隣國이다.”고 하였다.
역주7 例在成十五年 : 成公 15년 傳에 “백성에게 無道한 임금을 제후가 토벌하여 잡으면 ‘某人이 某侯를 잡았다.’고 기록한다.”고 하였다. 朴致遠은 “執은 戰爭하지 않고 잡는 것이다. 出奔하지 않고 자기 나라에서 잡혔기 때문에 ‘虞公’이라고 기록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8 朔日冬至……叙事訓民 : 孔疏에 의하면 “19년마다 한 차례씩 11월 초하루에 冬至가 든다. 해는 운행이 더디고 달은 운행이 빠르기 때문에 매번 29日하고 半日이 조금 넘을 때마다 달이 해를 따라 잡는데, 이를 한 달이라 한다. 그러므로 前月朔日부터 後月朔日까지의 날수가 29일하고 반일이 조금 넘을 뿐이다. 1년으로 계산하면 11일이 남기 때문에 閏月을 만들어 조정한다. 19년 사이에 일곱 번의 윤달을 두면 남은 날짜가 다 消盡되기 때문에 다시 11월 朔日에 동지가 든다. 그러므로 19년을 1章이라 하는데, 4章이 쌓여 部가 되고 20部가 쌓여 紀가 된다. 曆을 推算하는 자는 이 章‧部를 법칙으로 삼기 때문에 術數를 명확히 추산해 氣朔을 알고 (氣朔은 氣候와 朔日이다. 5日이 1候, 3候가 1氣, 6氣가 1時가 된다. 1년은 24氣 72候이다.) 陰陽寒暑를 분별해 철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철마다의 일의 순서를 정하여 백성들을 교훈한다.”고 하였다.
역주9 術數 : 天文을 觀察하여 曆數를 推算하는 방법이다.
역주10 雲物 氣色灾變也 : 雲物의 기색을 보고서 水旱과 豊凶을 예측하는 것이다.
역주11 傳重申周典……日官掌其職 : 《左傳》의 모든 凡例는 周나라의 舊典이므로 이미 ‘禮’라고 기록하고서 다시 凡字를 쓴 것은 거듭 周의 舊典을 밝히기 위함이란 뜻이고, ‘반드시 雲物을 기록한다.[必書雲物]’고만 쓰고 다시 ‘공이 운물을 기록했다.[公書雲物]’고 쓰지 않은 것은 日官이 기록하는 職務를 맡았기 때문이다.
역주12 : 國內에서 叛亂을 일으킨 무리이다.
역주13 周書曰 皇天無親 惟德是輔 : 이 말은 《書經》 〈蔡仲之命〉에 보인다.
역주14 黍稷非馨 明德惟馨 : 이 말은 《書經》 〈君陳〉에 보인다.
역주15 民不易物 惟德繄物 : 이 글은 逸書인 듯하다.
역주16 事[擧] : 저본에는 ‘事’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擧’로 바로잡았다.
역주17 合朔 : 合朔은 해와 地球와 달이 一直線으로 놓여 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역주18 虞所命祀 且歸其職貢於王 : 虞나라의 제사는 周王이 虞公에게 명하여 그 境內山川의 神에게 지내게 한 제사이다. 晉나라가 이미 虞나라를 멸하였기 때문에 虞나라를 대신해 제사 지내고, 虞나라가 周王에게 바치던 공물을 晉나라가 대신 바친 것이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