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5)

춘추좌씨전(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七年春王正月 曁齊平注+曁 與也 燕與齊平 前年冬 齊伐燕 間無異事 故不重言燕 從可知 [附注] 林曰 平不書 必關天下之大故而後書 是故昭定而下 春秋多罪齊 書伐衛 遂伐晉 同圍齊 襲莒 曁齊平 盟于鹹 次于伍氏 皆特筆也 夫子曰 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得而稱焉 蓋不予齊也 하다
7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注+이다.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한 것이다. 전년前年 겨울에 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한 뒤로 중간中間에 다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생략省略하고 거듭 나라를 말하지 않은 것이니, 이에 의거해 북연北燕나라와 화평和平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주]林: 화평和平한 것을 에 기록하지 않았다. 반드시 천하天下에 관계된 대사大事인 뒤에야 에 기록한다. 그러므로 소공昭公정공定公 이하로는 《춘추春秋》에 나라에 를 돌린 곳이 많다. ‘제후齊侯나라를 치고서 드디어 나라를 쳤다(襄公 23)’, ‘노양공魯襄公제후諸侯와 함께 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襄公 18)’, ‘제후齊侯나라를 습격襲擊하였다(襄公 23)’, ‘북연北燕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昭公 7)’, ‘제후齊侯정백鄭伯에서 결맹結盟하였다(定公 7)’, ‘제후齊侯위후衛侯와 함께 오씨伍氏주둔駐屯하였다(定公 9)’고 기록한 것들은 모두 특필特筆(특별히 기록함)이다. 부자夫子(孔子)께서 “제경공齊景公이 말 4천 소유所有하였으나, 그가 죽는 날에 백성 중에 그를 이 있다고 칭송稱頌하는 이가 없었다.(論語 계씨季氏)”고 하셨으니, 제후齊侯허여許與하지 않으신 것이다.
[經]三月 公如楚하다
3월에 소공昭公나라에 갔다.
[經]叔孫婼如齊涖盟注+無傳 公將遠適楚 故叔孫如齊尋舊好 하다
숙손야叔孫婼나라에 가서 회맹會盟참가參加하였다.注+이 없다. 소공昭公이 멀리 나라에 가려 하였기 때문에 숙손야叔孫婼나라에 가서 옛 우호友好중수重修한 것이다.
[經]夏四月甲辰朔 日有食之하다
여름 4월 초하루 갑진일甲辰日일식日食이 있었다.
[經]秋八月戊辰 衛侯惡卒注+元年 大夫盟于虢 하다
가을 8월 무신일戊辰日위후衛侯하였다.注+소공昭公원년元年나라 대부大夫나라 대부大夫에서 동맹同盟하였다.
[經]九月 公至自楚하다
9월에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왔다.
[經]冬十有一月癸未 季孫宿卒하다
겨울 11월 계미일癸未日계손숙季孫宿하였다.
[經]十有二月癸亥 葬衛襄公하다
12월 계해일癸亥日위양공衛襄公장사葬事 지냈다.
[傳]七年春王正月 曁齊平하니 齊求之也注+齊伐燕 燕人賂之 反從求平 如晏子言
에 “7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북연北燕이〉 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화평和平을 요구한 것이다.注+나라가 나라를 치니 연인燕人제후齊侯에게 뇌물賂物을 주었다. 그러자 제후齊侯는 도리어 연인燕人에게 화평和平을 요구하였으니, 안자晏子의 말(들여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한 말)처럼 되었다.
癸巳 齊侯次于虢注+虢 燕竟 이러니 燕人曰 敝邑知罪 敢不聽命
계사일癸巳日제후齊侯주둔駐屯하자注+나라 경내境內에 있는 땅이다. , 연인燕人화친和親요청要請하며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를 알고 있으니 감히 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先君之敝器 請以謝罪注+敝器 瑤罋玉櫝之屬 하노라 公孫晳曰 受服而退라가 俟釁而動 可也注+晳 齊大夫
선군先君폐기敝器로써 사죄謝罪하기를 청합니다.注+폐기敝器는 옥항아리, 으로 만든 따위이다. ”고 하니, 공손公孫이 〈제후齊侯에게〉 말하기를 “저들의 항복降服을 받아들여 퇴군退軍하였다가 기회機會를 기다려 다시 출동出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注+나라 대부大夫이다. ”고 하였다.
二月戊午 盟于濡上注+濡水出高陽縣東北 至河間鄭縣入易水 하다
2월 무오일戊午日유수濡水 가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유수濡水고양현高陽縣동북東北에서 발원發源하여 하간河間정현鄭縣에 이르러 역수易水유입流入한다.
燕人歸燕姬注+嫁女與齊侯 하고 賂以瑤罋玉櫝斝耳하니
연인燕人연희燕姬를 〈제후齊侯에게〉 시집보내고注+딸을 제후齊侯에게 시집보낸 것이다. , 요옹瑤罋옥독玉櫝가이斝耳뇌물賂物로 바쳤다.
不克而還注+瑤 玉也 櫝 匱也 斝耳 玉爵 [附注] 林曰 不克納簡公而歸 하다
〈그러므로 간공簡公을 들여보내려던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注+이고, 이고 가이斝耳옥작玉爵이다. [부주]林: 간공簡公을 들여보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傳]楚子之爲令尹也 爲王旌以田注+析羽爲旌 王旌游至於軫 [附注] 林曰 僭爲王旌 以從田獵 하니 芋尹無宇斷之注+[附注] 林曰 芋尹 楚官 無宇名也 斷子圍之旌 曰 一國兩君이면 其誰堪之리오
초자楚子영윤令尹으로 있을 때 정기旌旗를 만들어 사냥에 사용하니注+새 깃으로 장식한 이라 한다. 정기旌旗는 깃발이 거상車箱횡목橫木까지 내려온다. [부주]林: 참람僭濫하게 정기旌旗를 만들어 사냥에 수종隨從하게 한 것이다. , 우윤芋尹무우無宇가 그 의 깃발을 잘라내며 말하기를注+[부주]林: 우윤芋尹나라 관명官命이고, 무우無宇는 그의 이름이다. 자위子圍을 자른 것이다.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다면 그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及卽位하야 爲章華之宮하야 納亡人以實之注+章華 南郡華容縣 [附注] 林曰 爲宮名曰章華 納有罪而逃亡者以實宮內 하다
초자楚子즉위卽位함에 미쳐 장화궁章華宮을 지어 를 짓고 도망逃亡한 자들을 받아들여 살게 하였다.注+장화章華남군南郡화용현華容縣이다. [부주]林: 의 이름을 장화章華라 하고서, 를 짓고 도망한 자들을 받아들여 궁내宮內에 채운 것이다.
無宇之閽入焉注+有罪 亡入章華宮 하니 無宇執之한대 有司弗與注+王有司也 曰 執人於王宮 其罪大矣라하고 執而謁諸王注+執無宇也 하다
무우無宇혼인閽人도망逃亡하여 그곳으로 들어가니注+를 짓고 도망해 장화궁章華宮으로 들어간 것이다. 무우無宇가 가서 그 혼인閽人을 잡아 오려 하자, 유사有司(章華宮을 관리管理하는 관원官員)가 내어 주지 않으며注+초왕楚王유사有司이다. 왕궁王宮에서 사람을 잡으려는 것은 그 가 크다.”고 하고서 무우無宇를 잡아가지고 가서 초왕楚王알현謁見하였다.注+무우無宇를 잡은 것이다.
王將飮酒注+遇其歡也
초왕楚王은 이때 〈기분이 좋아〉 술을 마시려던 참이었다.注+초왕楚王의 기분이 좋을 때를 만난 것이다.
無宇辭曰 天子經略注+經營天下 略有四海 故曰經略하고 諸侯注+封疆有定分 古之制也니이다 封略之內 何非君土 食土之 誰非君民注+毛 草也 이릿가
무우無宇가 말하기를 “천자天子천하天下를 다스리고注+천하天下경영經營하고 사해四海약유略有(所有)하였기 때문에 ‘경략經略’이라 한 것이다. , 제후諸侯봉지封地를 다스리는 것이注+봉지封地로 받은 강역疆域해진 몫이 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제도制度이니, 봉지封地 안이 어느 곳인들 임금님의 땅이 아니며, 토지土地에서 생산生産되는 곡물穀物을 먹고 사는 자들이 누군들 임금님의 신하臣下가 아니겠습니까?注+이다.
故詩曰 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注+詩小雅 濱 涯也이라하니이다
그러므로 《시경詩經》에 ‘온 하늘 아래가 토지土地가 아님이 없고, 온 해내海內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신하臣下가 아님이 없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북산편北山篇〉의 시구詩句이다. 이다. ’고 하였습니다.
天有十日注+甲至癸 하고 人有十等注+王至臺 하니 下所以事上이오共神也注+[附注] 林曰 下之人所以服事其長上 上之人所以敬共其鬼神也 니이다
하늘에는 열흘의 날짜(甲日에서 계일癸日까지)가 있고注+십일十日갑일甲日에서 계일癸日까지이다. , 사람에는 열 등급等級위계位階가 있어注+십등十等에서부터 까지이다. , 낮은 사람은 높은 이를 섬기고 높은 사람은 을 섬깁니다.注+[부주]林: 아랫사람이 그 장상長上을 섬기는 바이고, 윗사람이 그 귀신鬼神을 공경해 봉사奉祀[共]하는 바이라는 말이다.
故王臣公하고 公臣大夫하고 大夫臣士하고 士臣皂하고 皂臣輿하고 輿臣隷하고 隷臣僚하고 僚臣僕하고 僕臣臺注+[附注] 朱曰 臣者 以之爲臣也 公者 五等諸侯之總名也 大夫 謂能扶成人也 士謂能理庶事也 皂 謂造成事也 輿 衆也 謂佐皂擧衆事也 隷 謂隷屬於吏也 僚 勞也 謂供勞事也 僕 僕竪主藏者也 臺 給臺下微名也 以上卽人之十等 하며 馬有圉하고 牛有牧注+養馬曰圉 養牛曰牧하야 以待百事注+[附注] 林曰 上下相承 니이다
그러므로 신하臣下로 삼고, 대부大夫를, 대부大夫를, 를, 輿를, 輿를, 를, 을, 신하臣下로 삼으며注+[부주]朱: 은 그를 신하臣下로 삼는 것이고, 오등五等제후諸侯총칭總稱이고, 대부大夫성인成人보좌輔佐할 수 있는 자를 이르고, 는 각종 사무事務처리處理할 수 있는 자를 이르고, 는 일을 조성造成하는 자를 이르고, 輿으로 를 도와 많은 일들을 거행擧行하는 자를 이르고, 예속隷屬된 자를 이르고, 로 수고로운 일을 봉행奉行하는 자를 이르고, 복수僕竪(僕人)로 창고倉庫저장貯藏재물財物주관主管하는 자이고, 대하臺下(官府)에서 급사給使 노릇 하는 미관微官명칭名稱이니, 이상이 바로 사람의 열 등급等級이다. , 말에는 어인圉人이 있고 소에는 목인牧人이 있어注+말 기르는 일을 맡은 자를 ‘’라 하고, 소를 기르는 일을 맡은 자를 이라 한다. , 백사百事처리處理[待]합니다.注+[부주]林: 상하上下가 서로 의탁依託[相承]하는 것은 백사百事공대供待하기 위함이다.
今有司曰 女胡執人於王宮가하니 將焉執之注+[附注] 林曰 如此 則將安所執其逃亡之臣 릿가
그런데 지금 유사有司는 ‘너는 어찌하여 왕궁王宮에서 사람을 잡으려 하는가?’라고 하니, 〈죄인罪人왕궁王宮으로 도망갔는데, 왕궁王宮에서 잡지 않고〉 장차 어디에서 잡으란 말입니까?注+[부주]林: 이와 같다면 장차 어디에서 도망간 신복臣僕을 잡겠느냐는 말이다.
周文王之法曰 有亡荒閲注+荒 大也 閲 蒐也 有亡人當大蒐其衆 이라하니 所以得天下也 吾先君文王注+楚文王 作僕區之法注+僕區 刑書名 [附注] 林曰 僕 隱也 區 匿也 作爲隱匿亡人之法 하야 曰 盜所隱器注+隱盜所得器 與盜同罪라하니 所以封汝也注+行善法 故能啓疆北至汝水 니이다
주문왕周文王에 ‘도망간 자가 있으면 대대적으로 검열檢閱하라.注+이고 이니, 도망간 자가 있으면 대대적으로 그 무리를 검열檢閱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으니, 이것이 문왕文王천하天下를 얻게 된 원인原因이고, 우리 선군先君문왕文王께서도注+초문왕楚文王이다. 복구법僕區法을 만들어注+복구僕區형서刑書의 이름이다. [부주]林: 이고 이니, 도망자逃亡者은닉隱匿한 자에 대해 〈처벌處罰하는〉 을 만든 것이다. ‘도적질한 기물器物을 숨긴 자는注+도적질하여 얻은 기물器物을 숨긴 자이다. 도적盜賊과 같은 처벌處罰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여수汝水까지 봉강封疆을 넓히게 된 원인입니다.注+좋은 시행施行하였기 때문에 강역疆域개척開拓하여 으로 여수汝水까지 강토疆土를 넓혔다는 말이다.
若從有司 是無所執逃臣也 逃而舍之 是無陪臺也注+言皆將逃 王事無乃闕乎잇가
만약 유사有司의 말을 따른다면 도망逃亡신복臣僕을 잡을 수 없고, 도망갔는데도 그대로 버려둔다면 이는 배대陪臺(가장 천한 노예奴隷)가 없어질 것이니注+모두 장차 도망갈 것이라는 말이다. , 왕사王事(國事)에 궐실闕失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昔武王數紂之罪하야 以告諸侯曰 紂爲天下逋逃主하야 注+萃 集也 天下逋逃 悉以紂爲淵藪集而歸之라하니이다
옛날에 무왕武王상주商紂죄목罪目열거列擧[數]해 제후諸侯에게 하기를 ‘상주商紂천하天下도망자逃亡者들의 와주窩主(장물아비)가 되어 물고기가 심연深淵에 모여들고 짐승이 초지草地에 모여들 듯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注+이다. 천하天下를 짓고 도망逃亡한 자들이 모두 상주商紂연수淵藪로 삼아 모여들어 그에게 귀의歸依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
故夫致死焉注+人欲致死討紂 이니이다
그러므로 사람[夫]들이 상주商紂토벌討伐하는 데 죽을힘을 바쳤습니다.注+사람들이 죽을힘을 바쳐 상주商紂토벌討伐하고자 했다는 말이다.
君王始求諸侯而則紂하시니 無乃不可乎잇가
그런데 임금님께서는 비로소 제후諸侯추대推戴를 얻고서 상주商紂를 본받으시니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
注+言王亦爲盜 리이다 王曰 取而臣以往注+往 去也 [附注] 林曰 而 汝也하라
만약 두 문왕文王에 따라 도적盜賊체포逮捕[取]해야 한다면 도적盜賊이란 죄명罪名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注+초왕楚王 또한 도적盜賊이 된다는 말이다. (楚王에게 있다는 말)”고 하니, 초왕楚王은 “네 신복臣僕이나 잡아가지고 가라.注+이다. [부주]林: 이다.
盜有寵하니 未可得也注+盜有寵 王自謂 爲葬靈王張本 [附注] 朱曰 若以我爲盜而欲取之 則我方爲君 正有權寵 未可得而取也 라하고 遂赦之注+赦無宇하다
도적盜賊(楚王 자신을 이름)은 하늘의 총애寵愛을 받고 있으니 체포逮捕할 수 없을 것이다.注+도유총盜有寵초왕楚王 자신을 이른 말이다. 〈이것이 무우無宇의 아들이〉 영왕靈王장사葬事 지낸 장본張本이다. 〈소공昭公 13년 [부주]朱: 만약 나를 도적盜賊이라 하여 체포逮捕하고자 한다면 나는 현재 임금으로 권력權力과 하늘의 총애寵愛가 있으니, 체포逮捕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드디어 무우無宇사면赦免하였다.注+무우無宇사면赦免한 것이다.
[傳]楚子成章華之臺하야 願與諸侯落之注+宮室始成 祭之爲落 臺今在華容城內 [附注] 朱曰 欲會諸侯 而擧落成之祭 하니 大宰薳啓彊曰 臣能得魯侯注+[附注] 林曰 言臣召魯侯 使之來會 니이다
초자楚子장화대章華臺완성完成하고서 제후諸侯들을 초청招請낙성식落成式거행擧行하기를 하자注+궁실宮室이 처음 완성完成되면 제사 지내는 것을 ‘’이라 한다. 는 지금 화용성華容城 안에 있다. [부주]朱: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낙성제落成祭거행擧行하고자 한 것이다. , 태재太宰위계강薳啓彊이 “노후魯侯를 오게 할 수 있습니다.注+[부주]林: 노후魯侯를 불러 회합會合에 오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薳啓彊來召公하야 辭曰
위계강薳啓彊나라에 와서 소공昭公초청招請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昔先君成公 命我先大夫嬰齊注+[附注] 林曰 嬰齊 楚令尹子重也 曰 吾不忘先君之好注+[附注] 朱曰 言我不忘先君之與楚和好 하야 將使衡父照臨楚國하야 鎭撫其社稷하야 以輯寧爾民하리라하니
“옛날에 나라의 선군先君성공成公께서 우리나라 선대부先大夫영제嬰齊에게 하기를注+[부주]林: 영제嬰齊나라 영윤令尹자중子重이다. ‘나는 선군先君우호友好를 잊을 수 없으니注+[부주]朱: 나는 선군先君나라와 우호友好를 맺어 화목和睦하게 지내기로 한 맹약盟約을 잊을 수 없다는 말이다. , 형보衡父를 보내어 나라에 가서 나라 사직社稷(國家)을 안무按撫하여 그대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嬰齊受命于蜀注+蜀盟在成二年 衡父 公衡 [附注] 林曰 成二年 魯使公衡爲質於楚以請盟 故言照臨楚國 鎭按撫綏楚國之社稷 以和輯安寧楚國之民人 하고 奉承以來하야 弗敢失隕하고 而致諸宗祧注+言奉成公此語以告宗廟 니이다
영제嬰齊에서 을 받고注+결맹結盟성공成公 2년에 있었다. 형보衡父공형公衡이다. [부주]林: 성공成公 2년에 나라는 공형公衡나라에 인질人質로 보내고서 결맹結盟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므로 나라에 가서 나라의 사직社稷을 안정시켜 나라의 인민人民화목和睦하고 편안하게 지내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 이 을 받들고 돌아와서 감히 한마디도 빼지 않고 종묘宗廟[致]하였습니다.注+성공成公의 이 말을 받들고 가서 종묘宗廟하였다는 말이다.
日我先君共王引領北望하야 日月以冀注+冀魯朝 [附注] 朱曰 往日楚共王 引領北向 以望魯國 傳序相授하야 於今四王矣注+四王 共康郟敖及靈王 로되 嘉惠未至注+[附注] 林曰 朝楚嘉惠 未嘗一至 하고 唯襄公之辱臨我喪注+襄公二十八年 如楚臨康王喪이니이다
과거에 우리 선군先君공왕共王께서는 목을 빼고 북쪽을 바라보며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나라의 사자使者가 오기를 바랐으나注+노군魯君이 와서 조근朝覲하기를 바란 것이다. [부주]朱: 지난날에 초공왕楚共王이 목을 빼고 북쪽을 향해 나라를 바라보았다는 말이다. , 왕위王位전수傳授하여 지금 이미 네 분의 이 바뀌었는데도注+사왕四王공왕共王강왕康王겹오郟敖영왕靈王이다. 나라의 은혜恩惠(朝覲을 뜻함)가 이르지 않고注+[부주]林: 나라에 조근朝覲하는 은혜恩惠가 한 번도 이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 단지 노양공魯襄公께서 우리나라의 상사喪事왕림枉臨하셨을 뿐입니다.注+양공襄公 28년에 양공襄公나라에 가서 초강왕楚康王친림親臨하였다.
與其二三臣悼心失圖注+在哀喪故하야 社稷之不皇이온 況能懷思君德注+皇 暇也 言有大喪 多不暇 [附注] 林曰 思念魯君來朝之德이릿가
그러나 그때 우리 사왕嗣王[孤]과 신하臣下들은 마음이 슬퍼 어찌할 바를 몰라注+슬픈 상중喪中에 있기 때문이다. 국가國家의 일도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데 하물며 노군魯君은덕恩德을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注+(여가)이니, 대상大喪이 있어 대단히 여가를 낼 수 없다는 말이다. [부주]林: 노군魯君이 와서 조근朝覲을 생각하는 것이다.
今君若步玉趾하야 辱見寡君注+趾 足也하고 楚國注+[附注] 林曰 寵光威靈 及於楚國 하야 以信蜀之役하야 致君之嘉惠注+[附注] 林曰 以示于蜀之言有信 致魯君之嘉惠於楚 是寡君旣受貺矣 何蜀之敢望注+言但欲使君來 不敢望如蜀復有質子이릿가
지금 노군魯君께서 만약 옥지玉趾를 옮겨 우리 임금님을 찾아보시고注+이다. 나라에 은총恩寵복록福祿을 내려注+[부주]林: 은총恩寵광영光榮위풍威風나라에 미치게 하는 것이다. , 결맹結盟[役]을 실천實踐[信]하여 임금님의 은혜恩惠하신다면注+[부주]林: 에서 맹약盟約한 말을 실천實踐하겠다는 뜻을 보여 나라에 노군魯君은혜恩惠[致]하라는 말이다. 우리 임금님은 이미 은사恩賜를 받은 것이니, 어찌 감히 의 〈결맹結盟 때처럼 인질人質을〉 바라겠습니까?注+단지 노군魯君께서 오시기만을 바랄 뿐이고, 에서처럼 다시 인질人質을 보내기를 바라지 않는 다는 말이다.
其先君鬼神 實嘉賴之리니 豈唯寡君注+[附注] 林曰 其二國先君與盟誓之鬼神 嘉實美而依賴之 이릿가
우리 선군先君귀신鬼神도 실로 노군魯君칭찬稱讚하며 의뢰依賴할 것이니 어찌 우리 임금님만이 의뢰할 뿐이겠습니까?注+[부주]林: 맹서盟誓참여參與한 두 나라 선군先君귀신鬼神칭찬稱讚[嘉]하며 실로 아름답게 여겨 의뢰依賴할 것이라는 말이다.
君若不來 使臣注+問魯見伐之期하니 寡君將承質幣而見于蜀하야 以請先君之貺注+請 問也 [附注] 林曰 謙言楚君得奉承相見之執贄幣帛 而見魯於往日盟蜀之地 以問成公所賜 何不踐言 하리다
임금님(魯君)께서 만약 오실 수 없다면 으로 하여금 임금님(魯君)께 출병出兵시기時期를 묻게 하셨으니注+나라가 토벌討伐을 당할 시기時期를 물은 것이다. , 우리 임금께서는 장차 예폐禮幣를 가지고 으로 가서 임금님을 만나 나라 선군先君은사恩賜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注+이다. [부주]林: 초군楚君상견相見할 때 사용使用예폐禮幣를 받들고 가서 지난날 결맹結盟했던 의 땅에서 노군魯君을 만나 보고서 성공成公이 내리신 말씀을 어째서 실천實踐하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라고 겸손謙遜히 말한 것이다.
公將往 夢襄公祖注+하다
소공昭公나라에 가려 할 때 양공襄公조도제祖道祭를 지내는 꿈을 꾸었다.注+도로道路제사祭祀하는 것이다.
梓愼曰 君不果行이리다
재신梓愼이 말하기를 “임금님께선 과연 가시지 못할 것입니다.
襄公之適楚也 夢周公祖而行이어니와 今襄公實祖하니 君其不行注+[附注] 林曰 襄公二十八年 如楚 嘗夢周公祖道 而後成行 今襄公實爲昭公祖道 魯君其將不去 하소서 子服惠伯曰 行하소서
양공襄公께서 나라에 가실 적에 주공周公조도제祖道祭를 지내는 꿈을 꾸고서 가셨지만, 지금 양공襄公께서 실로 조도제祖道祭를 지내는 꿈을 꾸셨으니, 임금님께선 가지 마소서.注+[부주]林: 양공襄公 28년에 양공襄公나라에 갈 적에 일찍이 주공周公조도제祖道祭를 지내는 꿈을 꾼 뒤에 가기로 결정決定하였는데, 지금 〈주공周公이 아닌〉 양공襄公이 실로 소공昭公을 위해 조도제祖道祭를 지냈으니 노군魯君은 아마도 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자, 자복혜백子服惠伯이 말하기를 “가소서.
先君未嘗適楚 故周公祖以道之注+[附注] 林曰 先君 謂襄公 하고 襄公適楚矣 而祖以道하니 君不行이면 何之릿가
선군先君께선 나라에 가신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공周公께서 조도제祖道祭를 지내어 길을 인도引導하셨고注+[부주]林: 선군先君양공襄公을 이른다. , 양공襄公께선 나라에 가신 적이 있기 때문에 조도제祖道祭를 지내어 임금님을 인도引導하신 것이니, 나라에 가시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三月 公如楚 鄭伯勞于師之梁注+鄭城門 하다
3월에 소공昭公나라에 갈 때 정백鄭伯사지량師之梁에서 소공昭公위로慰勞하였다.注+나라 국도國都성문城門이다.
孟僖子爲介러니 不能相儀注+僖子 仲孫貜 [附注] 林曰 爲介相禮 하고 及楚 不能答郊勞注+爲下僖子病不能相禮張本 하다
이때 맹희자孟僖子사개使介였는데, 의전儀典을 잘 보좌輔佐하지 못하였고注+희자僖子중손확仲孫貜이다. [부주]林: 사개使介가 되어 보좌輔佐한 것이다. , 나라에 이른 뒤에 나라의 교로郊勞답례答禮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注+아래 9월 희자僖子보좌輔佐하지 못한 것을 자기의 치욕恥辱으로 여긴 장본張本이다.
[傳]夏四月甲辰朔 日有食之하다
여름 4월 초하루 갑진일甲辰日일식日食발생發生하였다.
晉侯問於士文伯曰 注+受其凶惡 衛大魯小하리이다
진후晉侯사문백士文伯(士匄)에게 “누가 장차 이 일식日食를 받을 것인가?”라고 묻자, 사개士匄가 “나라와 나라가 [惡]를 당할 것입니다만注+흉악凶惡재앙災殃을 받는 것이다. 나라는 가 크고 나라는 가 작을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公曰 何故 對曰 注+衛地 韋也 魯地 降婁也 日食於承[豕]韋之末 及降婁之始乃息 故禍在衛大 在魯小也 周四月 今二月 故日在降婁 하니 於是有災 魯實受之注+災發於衛 而魯受其餘禍 리이다
진평공晉平公이 “무엇 때문인가?”고 묻자, 사개士匄가 대답하기를 “일식日食할 때 태양太陽나라 분야分野를 떠나 나라 분야分野로 옮겨 갔으니注+나라 땅은 시위豕韋(室宿, 곧 영실성營室星)의 분야分野이고, 나라 땅은 항루降婁(奎宿와 누수婁宿)의 분야分野이다. 태양太陽시위豕韋의 끝에서 먹히기 시작하여 항루降婁의 첫머리에 이르러 일식日食이 그쳤기 때문에 나라는 크고 나라에는 작은 것이다. 주정周正 4월은 지금의 2월이기 때문에 태양太陽항루降婁에 있다. , 이로 인해[於是]재화災禍발생發生한다면 나라도 실로 재화災禍를 받을 것입니다.注+재앙災殃나라에서 발생發生하지만 나라도 그 여화餘禍를 받는다는 말이다.
其大咎 其衛君乎ᄂ저 魯將上卿注+八月衛侯卒 十一月季孫宿卒 이리다
그러나 그 큰 재화災禍는 아마도 위군衛君이 받게 될 것이고, 나라는 상경上卿이 받게 될 것입니다.注+8월에 위후衛侯하고, 11월에 계손숙季孫宿하였다. ”고 하였다.
公曰 何也注+感日食而問詩 對曰 不善政之謂也니이다
진평공晉平公이 “《시경詩經》에 ‘저 해가 먹혔으니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인가?’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注+일식日食에 느낌이 있어 를 물은 것이다. ”라고 묻자, 사개士匄가 대답하기를 “선정善政을 행하지 않는 것을 이름입니다.
國無政하고 不用善이면 則自取謫于日月之災注+니이다
나라에 선정善政이 없고 선인善人등용登用하지 않으면 견책譴責하는 일월日月재화災禍자초自招하는 것입니다.注+이다.
故政不可不愼也니이다
그러므로 정사政事는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務三而已 一曰擇人注+擇賢人 이오 二曰因民注+因民所利而利之 이오 三曰從時注+順四時之所務 니이다
세 가지를 힘쓸 뿐이니, 첫째는 인재人材선택選擇하는 것이고注+현인賢人선택選擇하는 것이다. , 둘째는 백성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고注+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바에 따라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 셋째는 때를 따르는 것입니다.注+네 철의 일을 그 철에 맞게 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傳]晉人來治杞田注+前汝叔侯不盡歸 今公適楚 晉人恨 故復來治杞田 하니 季孫將以成與之注+成 孟氏邑 本杞田하다
진인晉人나라에 와서 기전杞田나라에 반환返還하게 하니注+(襄公 29년)에 〈나라 대부大夫여숙후汝叔侯가 와서 〈기전杞田나라에 반환返還하게 할 때 나라는 기전杞田을〉 다 돌려주지 않았었다. 이번에 소공昭公나라에 간 것에 대해 진인晉人원한怨恨을 품었다. 그러므로 다시 와서 기전杞田처리處理한 것이다. , 계손季孫성읍成邑나라에 주려 하였다.注+맹씨孟氏인데, 본래는 나라의 땅이었다.
謝息爲孟孫守러니 不可注+謝息 僖子家臣 曰 人有言曰 雖有挈缾之知라도 守不假器 禮也注+挈缾 汲者 喩小知 爲人守器 猶知不以借人 라하니
이때 사식謝息맹손孟孫을 위해 성읍成邑을 지키고 있었는데, 반대하며注+사식謝息맹희자孟僖子가신家臣이다. 말하기를 “사람들의 말에 ‘비록 물을 기를 수 있는 작은 지혜만 있어도 자기의 기물器物을 지키고 남에게 빌려 주지 않는 것이 이다.注+설병挈缾은 물을 기르는 자이니, 작은 지혜를 비유한다. 남을 위해 기물을 지키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지 않을 줄을 안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
夫子從君이어늘 而守臣喪邑注+夫子 謂孟僖子 從公如楚 이면 雖吾子亦有猜焉注+言季孫亦將疑我不忠하리라 季孫曰 君之在楚 於晉罪也注+言晉罪君之至楚 어늘 이면 魯罪重矣
부자夫子(孟僖子)께서 노군魯君을 따라 출국出國하고 없는데, 수신守臣성읍成邑을 잃는다면注+부자夫子맹희자孟僖子를 이른다. 이때 소공昭公을 따라 나라에 갔다. 비록 당신이라 하더라도 나를 의심할 것입니다.注+계손季孫도 아마 내가 불충不忠한 것으로 의심할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니, 계손季孫이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이 나라에 가 계신 것이 나라에 를 졌기 때문인데注+나라는 노군魯君나라에 간 것을 로 여긴다는 말이다. , 또 나라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라의 가 더욱 무거워진다.
晉師必至리니 吾無以待之
진군晉軍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니, 우리는 그들을 방어防禦[待]할 수 없다.
不如與之라가 間晉而取諸杞注+候晉間隙 可復伐杞取之 니라
그러니 우선 그들에게 주었다가 나라의 틈을 엿보아 다시 나라를 토벌하여 성읍成邑을 다시 찾아오는 것만 못하다.注+나라의 틈을 엿보아 다시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그 땅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吾與子桃注+魯國卞縣東南有桃虛하리라
나는 성읍成邑 대신 그대에게 도읍桃邑을 주겠다.注+나라 변현卞縣 동남쪽에 도허桃虛가 있다.
成反이면 誰敢有之注+[附注] 林曰 他日取成而歸 必復歸之孟氏 誰敢有此成邑 리오
성읍成邑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면 맹손孟孫이 아닌 누가 감히 그 소유所有하겠는가?注+[부주]林: 후일後日성읍成邑탈취奪取해 돌아온다면 반드시 다시 맹씨孟氏에게 돌려줄 것이니, 누가 감히 이 성읍成邑소유所有하겠느냐는 말이다.
是得二成也
이는 두 개의 성읍成邑을 얻는 것이다.
魯無憂하고 而孟孫益邑이니 子何病焉
나라는 〈나라의 침공侵攻을 받는〉 우환憂患이 없어지고 맹손孟孫봉읍封邑을 보태는 일인데, 자네는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가?”라고 하였다.
辭以無山이어늘 與之萊柞注+萊柞 二山 [附注] 林曰 謝息又辭以爲桃邑無山 與之萊柞하니 乃遷于桃注+謝息遷也하다
사식謝息도읍桃邑에는 이 없다는 이유로 사절謝絶하자 그에게 내산萊山작산柞山을 주니注+는 두 산명山名이다. [부주]林: 사식謝息이 또 도읍桃邑에는 이 없다고 사절謝絶하므로 그에게 내산萊山작산柞山을 준 것이다. , 사식謝息은 그제야 도읍桃邑으로 옮겨 갔다.注+사식謝息이 옮겨 간 것이다.
晉人爲杞取成注+不書 非公命하다
진인晉人나라를 위해 성읍成邑하였다.注+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소공昭公이 아니기 때문이다.
[傳]楚子享公于新臺注+章華臺也 [附注] 林曰 設享以落其成 할새 注+鬛 鬚也 欲光夸魯侯 하다
초자楚子신대新臺에서 연회宴會를 열어 소공昭公접대接待할 때注+신대新臺장화대章華臺이다. [부주]林: 잔치를 열어 장화대章華臺완성完成을 알리는 낙성식落成式거행擧行한 것이다. 수염이 긴 자에게 를 돕게 하였다.注+(수염)이다. 노후魯侯에게 과시誇示하고자 해서이다.
好以大屈注+宴好之賜 大屈 弓名 [附注] 林曰 寶金 可以爲劒 出大屈也 하고 旣而悔之하다
초자楚子연석宴席에서 우호友好하기 위해 소공昭公에게 대굴궁大屈弓을 주고는注+연석宴席에서 우호友好하기 위해 준 것이다. 대굴大屈궁명弓名이다. [부주]林: 벌금寶金(良質의 금속金屬)은 을 만들 수 있는데, 대굴大屈(地名)에서 생산生産한다. 오래지 않아 이를 후회後悔하였다.
薳啓彊聞之하고 見公하니 公語之하다
위계강薳啓彊초자楚子후회後悔한다는 말을 듣고는 소공昭公을 찾아가 뵈니, 소공昭公대굴궁大屈弓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拜賀한대 公曰 何賀
위계강薳啓彊이 절하고서 축하祝賀하자, 소공昭公이 “무엇 때문에 축하祝賀하는가?”고 물었다.
對曰 齊與晉越欲此久矣로되 寡君無與也注+[附注] 林曰 不知適與何人 러니 而傳諸君이니이다
위계강薳啓彊이 대답하기를 “나라와 나라‧나라가 이 물건을 갖고 싶어 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우리 임금님께서는 그중 한 사람에게만 줄 수 없으므로 〈주지 않았던 것인데,〉 지금 임금님(昭公)께 전하셨습니다.注+[부주]林: 누구를 오로지 중시重視하여 주어야 할지 몰랐다는 말이다.
君其備禦三鄰注+言齊晉越將伐魯而取之 하야 愼守寶矣리니 敢不賀乎잇가 公懼하야 乃反之注+傳言楚靈不信 所以不終하다
임금님께서는 아마도 세 이웃 나라를 대비하고 방어하여注+나라‧나라‧나라가 나라를 침벌侵伐하여 대굴大屈탈취奪取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보궁寶弓을 신중히 지키실 것이니, 어찌 감히 축하祝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소공昭公은 겁이 나서 곧 그 보궁寶弓을 되돌려 주었다.注+전문傳文초영왕楚靈王신의信義가 없어, 제명에 죽지 못하게 된 원인原因을 말한 것이다.
[傳]鄭子産聘于晉이러니 晉侯有疾하다
나라 자산子産나라에 빙문聘問하였는데, 이때 진후晉侯을 앓고 있었다.
韓宣子逆客하야 私焉注+私語曰 寡君寢疾 於今三月矣
한선자韓宣子(子産)을 맞이하면서 은밀隱密히 말하기를注+은밀隱密히 말한 것이다. “우리 임금께서 으로 자리에 누우신 지 지금 석 달이 되었습니다.
竝走群望注+晉所望祀山川 皆走往祈禱 호되 有加而無瘳
응당應當제사祭祀 지낼 모든 산천山川에 달려가서 기도祈禱하였으나注+나라가 망제望祭를 지내는 산천山川에 모두 가서 기도祈禱했다는 말이다. 이 더하기만 하고 낫지 않았습니다.
今夢黄熊入於寢門하니 其何厲鬼也 對曰 以君之明으로 子爲大政하니 其何厲之有리오
오늘 임금님의 꿈에 황웅黃熊침실寢室으로 들어왔으니, 그것이 무슨 여귀厲鬼(惡鬼)입니까?”라고 하니, 자산子産이 대답하기를 “진군晉君영명英名함으로 그대를 대정大政(正卿)으로 삼았으니, 어찌 여귀厲鬼가 있겠습니까?
昔堯殛鯀于羽山注+羽山在東海祝其縣西南 한대 其神化爲黄熊하야 以入于羽淵이러니 實爲ᄅ새 三代祀之注+鯀 禹父 夏家郊祭之 歷殷周二代 又通在群神之數 幷見祀 [附注] 林曰 解者曰 獸非入水之物 故是三足鼈也 一曰旣爲神 何妨是獸 按說文及字林皆云 能熊屬 足似鹿 然則能旣熊屬 爲鼈類 今本作能勝也 東海人祭禹廟 不用熊白及鼈爲膳 斯豈鯀化爲二物乎 니라
옛날에 제요帝堯우산羽山에서 죽이자注+우산羽山동해東海축기현祝其縣 서남쪽에 있다.귀신鬼神황웅黃熊으로 변하여 우연羽淵으로 들어갔는데, 이 이 실로 하교夏郊가 되었으므로 삼대三代가 모두 그 에게 제사祭祀를 지냈습니다.注+우왕禹王의 아버지인데, 하왕조夏王朝교제郊祭에 그를 배향配享하였다. 이대二代를 거치면서도 하왕조夏王朝와 같이 군신群神에 들었던 것이 모두 사전祀典에 보인다. [부주]林: 해설解說하는 자는 “짐승은 물에 들어갈 수 있는 동물動物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삼족별三足鼈이다.”고 하고, 일설一說은 “이미 귀신鬼神이 되었다면 이것이 짐승이라 한들 해로울 게 뭐 있는가?”라고 하였다. 《설문說文》 및 자림字林을 상고하건대 모두 “(곰)의 종류種類로 발은 사슴과 같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종류種類로 물로 들어가 종류種類가 된 것이다. 금본今本능자能字로 되어 있으니 〈웅자熊字로 되어 있는 고본古本보다〉 낫다. 동해東海 사람들이 우묘禹廟제사祭祀할 때 웅백熊白(곰 등 부위의 지방)과 자라를 제수祭需로 쓰지 않으니, 어찌 하여 이 두 동물動物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晉爲盟主하야 其或者未之祀也乎注+言周衰 晉爲盟主 得佐天子祀群神
나라는 맹주盟主가 되어, 혹시 그 에게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注+나라가 하자, 나라가 맹주盟主가 되어 천자天子를 도와 군신群神제사祭祀 지내게 된 것이다. ”고 하였다.
韓子祀夏郊注+祀鯀 하니 晉侯有間注+間 差也하다
한자韓子하교夏郊(鯀의 )에 제사祭祀를 지내니注+에게 제사祭祀 지낸 것이다. 진후晉侯차도差度가 있었다.注+이 조금 나은 것이다.
賜子産莒之二注+方鼎 莒所貢하다
진후晉侯자산子産에게 나라에서 바친 방정方鼎 두 개를 하사下賜하였다.注+방정方鼎나라가 바친 것이다.
子産爲豐施하야 歸州田於韓宣子注+豐施 鄭公孫段之子 三年 晉以州田賜段 [附注] 曰 日君以夫公孫段爲能任其事라하야 而賜之州田注+[附注] 林曰 往日 晉君以段能任其父舊事 이러니 今無祿早世하야 不獲久享君德이라
자산子産풍시豐施를 위하여 〈그를 대신해〉 주전州田(州縣의 토지土地)을 한선자韓宣子에게 돌려주며注+풍시豐施나라 공손公孫의 아들이다. 소공昭公 3년에 진후晉侯주전州田공손公孫에게 하사下賜하였다. [부주]林: 지금 공손公孫이 죽었기 때문에 자산子産이 그 땅을 나라에 돌려준 것이다. 말하기를 “전일前日진군晉君께서 공손公孫이 그 일을 능히 감당堪當[任]했다 하여 그에게 주전州田하사下賜하셨는데注+[부주]林: 지난날에 진군晉君공손公孫이 그 아버지가 했던 옛일을 능히 감당堪當했다고 여겨 〈주전州田하사下賜하였다.〉 , 지금 불행不幸[無祿]하게 일찍 죽어 임금님의 은덕恩德을 오래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其子弗敢有로되 不敢以聞於君하야 私致諸子注+此年正月 公孫段卒 [附注] 林曰 聞于晉君 敢私致邑於韓宣子 하노라
그 아들은 감히 주전州田소유所有할 수 없으나 감히 이 일을 진군晉君께 아뢸 수 없어서, 사사로이 그대에게 바칩니다.注+이해 정월正月공손公孫하였다. [부주]林: 감히 주전州田반환返還하는 일을 진군晉君께 아뢸 수 없으므로 감히 사사로이 한선자韓宣子에게 바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宣子辭어늘 子産曰 古人有言曰 其父析薪이어늘 注+荷 擔也 以微薄喩重貴 라하니 施將懼不能任其先人之祿이어든 其況能任大國之賜리오
선자宣子가 사양하자,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옛사람의 말에 ‘그 아비가 나무를 베어 팬 장작을 그 아들이 집으로 져 나르지 못한다.注+이다. 하찮은 일로 귀중貴重한 일을 비유한 것이다. ’고 하였으니, 풍시豐施는 장차 선인先人녹위祿位를 〈계승繼承하는 일도〉 감당할 수 없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대국大國하사下賜한 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縱吾子爲政而可注+[附注] 朱曰 縱使汝爲執政時 容可不歸此田 後之人若屬有疆埸之言이면 敝邑獲戾注+恐後代宣子者 將以鄭取晉邑罪鄭 하고 而豐氏受其大討리라
비록 그대가 집정執政으로 있는 동안은 할 수 있겠지만注+[부주]朱: “비록 그대가 집정執政으로 있을 때는 이 땅을 돌려주지 않아도 혹 괜찮을 수 있다 하더라도.”라는 말이다. 그대의 뒤를 이어 집정執政이 된 사람이 만약 그때[屬]강역疆域에 대해 말한다면(領土로 문제問題제기提起한다면) 우리나라는 를 받고注+뒤에 선자宣子를 대신해 집정執政이 되는 자는 장차 나라가 나라의 한 것으로 나라의 를 삼을 것이라는 말이다. 풍씨豐氏는 엄한 징벌懲罰을 받을 것입니다.
吾子取州 是免敝邑於戾 而建置豐氏也 敢以爲請注+傳言子産貞而不諒 하노라
그대가 주전州田하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를 에서 벗어나게 하고 풍씨豐氏를 도와 존립存立시키는 것이므로 감히 하는 것입니다.注+전문傳文자산子産정도正道를 굳게 지키고 작은 신의信義에 얽매이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宣子受之하야 以告晉侯한대 晉侯以與宣子하다
선자宣子가 이를 접수接受하고서 진후晉侯에게 하니 진후晉侯는 그 땅을 선자宣子에게 주었다.
宣子爲初言으로 病有之注+初言 謂與趙文子爭州田 [附注] 林曰 以自取州田爲己病 하야 以易原縣於樂大心注+樂大心 宋大夫 原 晉邑 以賜樂大心也 하다
그러나 선자宣子는 전에 한 말 때문에 주전州田점유占有하는 것을 치욕恥辱[病]으로 여겨注+초언初言은 〈소공昭公 3년에 한선자韓宣子가〉 조문자趙文子주전州田을 다툴 때 한 말을 이른다. [부주]林: 스스로 주전州田하는 것을 자기의 치욕恥辱으로 여긴 것이다. 주전州田악대심樂大心원현原縣과 바꾸어 가졌다.注+악대심樂大心나라 대부大夫이다. 악대심樂大心에게 준 나라 이다.
[傳]鄭人相驚以伯有曰 伯有至矣라하면 則皆走하야 不知所往注+襄三十年 鄭人殺伯有 言其鬼至 이라
나라 사람들이 백유伯有귀신鬼神으로 서로 놀라게 하여 “백유伯有귀신鬼神이 나타났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면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허둥대었다.注+양공襄公 30년에 정인鄭人백유伯有를 죽였다. 백유伯有귀신鬼神이 나타났다고 말한 것이다.
鑄刑書之歲二月注+在前年 或夢伯有介而行注+介 甲也曰 壬子 余將殺帶也注+駟帶助子晳殺伯有 壬子 六年三月三日 하고 明年壬寅 余又將殺段也注+公孫段 豐氏黨 壬寅 此年正月二十八日 리라
형서刑書주조鑄造한 해 2월에注+전년前年에 있었다. 어떤 사람의 꿈에 백유伯有가 갑옷을 입고 가면서注+(갑옷)이다. 임자일壬子日에 내가 사대駟帶를 죽일 것이고注+사대駟帶자석子晳을 도와 백유伯有를 죽였다. 임자壬子소공昭公 6년 3월 3일이다. , 명년明年임인일壬寅日에 내가 또 공손公孫을 죽일 것이다.注+공손公孫풍씨豐氏이다. 임인壬寅금년今年정월正月 28일이다. ”고 하였다.
及壬子하야 駟帶卒하니 國人益懼하다
임자일壬子日에 미쳐 과연 사대駟帶가 죽으니, 국인國人들은 더욱 두려워하였다.
齊燕平之月注+此年正月 壬寅 公孫段卒하니 國人愈懼하다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을 맺던 달注+금년今年정월正月이다. 임인일壬寅日공손公孫이 죽으니 국인國人은 더더욱 두려워하였다.
其明月 子産立公孫洩及良止以撫之하니 乃止注+公孫洩 子孔之子也 襄十九年 鄭殺子孔 良止 伯有子也 立以爲大夫 使有宗廟 [附注] 林曰 立其子 使有宗廟 以撫慰伯有之靈 伯有乃止 不爲厲 하다
그 다음 달에 자산子産이 〈자공子孔의 아들〉 공손公孫과 〈백유伯有의 아들〉 양지良止대부大夫로 세워 백유伯有망령亡靈위무慰撫하니, 이에 귀신鬼神의 장난이 그쳤다.注+공손公孫자공子孔의 아들이다. 양공襄公 19년에 정인鄭人자공子孔을 죽였다. 양지良止백유伯有의 아들이다. 두 사람을 세워 대부大夫로 삼아 백유伯有자공子孔종묘宗廟가 있게 한 것이다. [부주]林: 그 아들을 대부大夫로 세워 종묘宗廟를 두어 백유伯有혼령魂靈위무慰撫하게 하니 백유伯有이 곧 중지中止하고 해악害惡을 끼치지 않은 것이다.
子大叔問其故한대 子産曰 鬼有所歸라야 乃不爲厲 吾爲之歸也注+[附注] 林曰 我立二人 使有宗廟 以爲之依歸也
자태숙子太叔이 그 까닭을 묻자,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귀신鬼神귀의歸依할 곳이 있어야 여귀厲鬼가 되지 않는 것이니, 나는 백유伯有귀신鬼神을 위해 귀의歸依할 곳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注+[부주]林: 내가 두 사람을 대부大夫로 세워, 종묘宗廟를 두어 두 귀신鬼神귀의歸依할 곳으로 삼게 하였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大叔曰 公孫洩何爲注+子孔不爲厲 問何爲復立洩 子産曰 說也注+[附注] 朱曰 答言此所以解說於民也
태숙太叔이 “공손公孫대부大夫로 세운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注+자공子孔여귀厲鬼가 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공손公孫까지 대부大夫로 세웠느냐고 물은 것이다. ”라고 묻자,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설명說明하기 위함이었습니다.注+[부주]朱: 이는 백성에게 해설解說하기 위함이었다고 대답해 말한 것이다.
爲身無義而圖說注+伯有無義 以妖鬼故立之 恐惑民 幷立洩 使若自以大義存誅絶之後者 以解說民心 이니라
백유伯有자공子孔은 몸소 불의不義를 행한 사람들이니, 〈후사後嗣를 세우는 것이 부당不當합니다. 그런데 만약 양지良止만 세울 경우, 사람들은 백유伯有여귀厲鬼가 두려워서 그 후사後嗣를 세웠다고 의심할 것이므로 공손公孫까지 함께 세워 여귀厲鬼가 두려워서가 아니고 대의大義에 의거해 주살誅殺된 자의 후사後嗣존속存續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설명說明하기 위해서였습니다.注+백유伯有도의道義가 없었으니 〈후사後嗣를 세우는 것이 부당不當한데,〉 요귀妖鬼가 되어 〈해악害惡을 끼치기 때문에〉 그 후사後嗣를 세워준 것으로 백성들이 의심할까 두려워서, 공손公孫까지 함께 대부大夫로 세워 스스로 대의大義의거依據주살誅殺된 자의 후사後嗣존속存續시킨 것처럼 하여, 백성들의 마음(의심하는 마음)에 대해 해설解說(解明)한 것이다.
從政有所反之하야 以取媚也注+民不可使知之 故治政或當反道以求媚於民 니라
정치政治정도正道위반違反하더라도 백성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注+백성은 〈도리道理를 따르게 할 수는 있으나,〉 그 이치를 알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치政治는 혹 정도正道위반違反하더라도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不媚 不信注+說而後信之 이오 不信이면 民不從也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신임信任을 받지 못하고注+기뻐한 뒤에야 신임信任한다는 말이다. 신임信任을 받지 못하면 〈백성들은 집정執政을〉 따르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及子産適晉하야 趙景子問焉注+景子 晉中軍佐趙成 曰 伯有猶能爲鬼乎注+[附注] 林曰 言伯有旣死 尙能爲鬼 有是乎 子産曰
자산子産나라에 감에 미쳐 조경자趙景子注+경자景子나라 중군좌中軍佐(中軍의 부원수副元帥) 조성趙成이다.백유伯有도 오히려 여귀厲鬼가 될 수 있습니까?注+[부주]林: 백유伯有는 죽은 뒤에도 오히려 여귀厲鬼가 되어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라고 물으니, 자산子産이 아래와 같이 대답하였다.
注+[附注] 林曰 答言何故不能 이라
“될 수 있습니다.注+[부주]林: 무엇 때문에 할 수 없겠느냐고 대답해 말한 것이다.
注+魄 形也 이오 旣生魄 陽曰魂注+陽 神氣也 이라
사람이 태어나서 변화變化한 것을 이라 하고注+(體魄)이다., 이 생긴 뒤에 이라 합니다.注+신기神氣이다.
則魂魄彊注+物 權勢 [附注] 林曰 精 精爽也 用權勢致精爽之多 居移氣 故魂强 養移體 故魄强 이라
사용한 물건이 정미精美하고 많으면 혼백魂魄해집니다.注+권세權勢이다. [부주]林: 정상精爽(精神)이니, 권세權勢를 사용하고 정상精爽을 쌓은 것이 많았다는 말이다. 거처居處기질氣質변화變化시켰기 때문에 하고, 봉양奉養체질體質변화變化시켰기 때문에 한 것이다.
是以有精爽 至於神明注+爽 明也 [附注] 林曰 精者 神之未著 爽者 明之未融 是以積精而至於神 積爽而至於明 이라
그러므로 정상精爽(情神)이 신명神明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도〉 있습니다.注+이다. [부주]林: 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고, 이 아직 밝아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을 쌓아 에 이르고 을 쌓아 에 이른다는 말이다.
匹夫匹婦强死라도 其魂魄猶能馮依於人하야 以爲淫厲注+强死 不病也 人謂匹夫匹婦賤身 [附注] 林曰 淫昏厲惡之鬼 況良霄 我先君穆公之冑 子良之孫이오 子耳之子 敝邑之卿으로 從政三世矣注+[附注] 林曰 鄭穆公生公子去疾字子良 子良生公孫輒字子耳 子耳生良霄卽伯有 世爲鄭卿 去疾輒良霄三世執鄭政
보통 남녀男女비명非命에 죽어도[强死] 그 혼백魂魄이 오히려 사람에게 붙어 요괴妖怪한 짓을 하는데注+강사强死도 없이 〈비명非命에 죽는 것이다.〉 필부필부匹夫匹婦한 몸을 이른다. [부주]林: 음려淫厲음혼淫昏하고 사악邪惡귀신鬼神이다. , 하물며 양소良霄(伯有)는 우리 선군先君목공穆公후손後孫이고 자량子良손자孫子이고 자이子耳의 아들이고 우리나라의 으로 3 동안 국정國政담당擔當한 사람인 데이겠습니까?注+[부주]林: 정목공鄭穆公공자公子거질去疾자량子良을 낳고, 자량子良공손公孫자이子耳를 낳고, 자이子耳양소良霄 바로 백유伯有를 낳았다. 대대로 나라의 이 되어, 거질去疾, , 양소良霄 3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다.
鄭雖無腆注+腆 厚也 이나 抑諺曰 蕞爾國注+蕞 小貌 이라하야늘 而三世執其政柄하니 其用物也弘矣 其取精也多矣 其族又大하니 所馮厚矣注+良霄魂魄所馮者貴重어늘
나라가 비록 작지만注+이다. 속담俗談에 ‘작지만 하나의 나라이다.注+는 작은 모양이다. ’고 하는데, 3 동안 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으니, 사용한 물건이 많고 정미精美한 것을 취한 것이 많았으며, 그 종족宗族 또한 성대盛大하여 의지할 세력勢力이 많았습니다.注+양소良霄혼백魂魄이 의지할 귀중貴重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而强死하니 能爲鬼 不亦宜乎注+傳言子産之博敏
그런데 비명非命에 죽었으니 여귀厲鬼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注+전문傳文자산子産박민博敏(該博하고 민첩敏捷함)을 말한 것이다.
[傳]子皮之族飮酒無度注+相尙以奢 相困以酒
자피子皮종족宗族이 술을 마시는데 절도節度가 없었다.注+서로 사치를 숭상崇尙하고, 서로 술로써 어지럽게 한 것이다.
故馬師氏與子皮氏有惡注+馬師氏 公孫鉏之子罕朔也 襄三十年 馬師頡出奔 公孫鉏代之爲馬師 與子皮俱同一族하다
그러므로 마사씨馬師氏자피씨子皮氏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注+마사씨馬師氏공손公孫의 아들 한삭罕朔이다. 양공襄公 30년에 마사馬師출분出奔한 뒤에 공손公孫가 그 뒤를 이어 마사馬師가 되었는데, 자피子皮동족同族이다.
齊師還自燕之月注+在此年二月 罕朔殺罕魋注+魋 子皮弟 [附注] 朱曰 公孫鉏子展之弟也 展生罕虎罕魋 鉏生罕朔 至是而朔殺魋하고 罕朔奔晉注+[附注] 朱曰 恐討而奔 하다
제군齊軍북연北燕에서 돌아오던 달에注+금년 2월에 있었다. 한삭罕朔한퇴罕魋를 죽이고서注+자피子皮의 아우이다. [부주]朱: 공손公孫자전子展(舍之)의 아우이다. 자전子展한호罕虎한퇴罕魋를 낳고, 한삭罕朔을 낳았다. 이때에 이르러 한삭罕朔이 〈그 사촌四寸한퇴罕魋를 죽인 것이다. 한삭罕朔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부주]朱: 토벌討伐당할 것이 두려워 출분出奔한 것이다.
韓宣子問其位於子産注+問朔可使在何位 한대 子産曰 君之 苟得容以逃死 何位之敢擇注+[附注] 林曰 罕朔出奔 乃晉君羈旅之臣 苟得容身以逃死罪 何敢擇所處高下之位 이리오
한선자韓宣子한삭罕朔에게 무슨 관위官位를 주어야 할지에 대해 자산子産에게 묻자注+한삭罕朔을 어떤 관위官位에 두어야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한삭罕朔은〉 임금님의 기려신羈旅臣이 되었으니, 진실로 몸을 보존保存해 죽음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어찌 감히 관위官位를 고르겠습니까?注+[부주]林: 한삭罕朔이 〈나라로〉 출분出奔하였으니 바로 진군晉君기려신羈旅臣이다. 진실로 몸을 보존保存하여 사죄死罪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어찌 감히 관위官位고하高下선택選擇하겠느냐는 말이다.
卿違 從大夫之位注+謂以禮去者 降位一等 하고 罪人以其罪降注+罪重則降多 古之制也
외국外國도망逃亡해 오면 대부大夫관위官位대우待遇하고注+로써 〈본국本國을〉 떠나온 자에게는 그 관위官位를 〈본국本國에 있을 때의 관위官位보다〉 한 등급等級 낮추어 준다는 말이다. , 죄인罪人인 경우에는 그 에 따라 등급等級을 낮추는 것이注+가 무거우면 많이 강등降等한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제도制度입니다.
朔於敝邑 亞大夫也 其官馬師也注+大夫位 馬師職 獲戾而逃하니 唯執政所寘之
한삭罕朔은 우리나라에서 아대부亞大夫로 그 관직官職마사馬師였는데注+대부大夫작위爵位이고 마사馬師관직官職이다. 를 짓고 도망逃亡하였으니, 집정執政께서 처치處置하는 대로 따를 것입니다.
得免其死 爲惠大矣 又敢求位
죽음을 하게 된 것만도 은혜恩惠가 큰데, 또 감히 관위官位요구要求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宣子爲子産之하야 使從嬖大夫注+爲子産故 使降一等 不以罪降 [附注] 林曰 嬖大夫 下大夫也 하다
선자宣子자산子産의 말을 합당合當[敏]하게 여겨, 한삭罕朔폐대부嬖大夫(下大夫)의 반열班列을 따르게 하였다.注+자산子産 때문에 한 등급等級만을 낮추게 하고 로써 강등降等시키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폐대부嬖大夫하대부下大夫이다.
[傳]秋八月 衛襄公卒하다
가을 8월에 위양공衛襄公하였다.
晉大夫言於范獻子曰 衛事晉爲睦注+睦 和也이로되 晉不禮焉하고 注+賊人 孫林父 其地 戚也
나라 대부大夫범헌자范獻子(范鞅)에게 말하기를 “나라는 나라를 섬겨 화목和睦하게 대하였으나注+이다. , 나라는 나라를 예우禮遇하지 않고 나라의 반역자叛逆者(孫林父)를 비호庇護하고 나라의 땅(戚田)을 하였습니다.注+적인賊人손임보孫林父이고, 그 땅은 척전戚田이다.
故諸侯貳니라
그러므로 제후諸侯들이 나라에 두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詩曰 注+詩小雅 䳭鴒 雝渠也 飛則鳴 行則搖 喩兄弟相救於急難 不可自舍 이라하고 又曰 死喪之威 兄弟孔懷注+威 畏也 言有死喪 則兄弟宜相懷思 라하야늘 兄弟之不睦하야 注+不相弔恤 하니 況遠人 誰敢歸之리오
시경詩經》에 ‘할미새 언덕에 있으니 형제兄弟위급危急재난災難구원救援하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상체편常棣篇〉의 시구詩句이다. 䳭鴒은 옹거雝渠이다. 날 때는 소리 내어 울고 걸을 때 꼬리를 흔든다. 형제兄弟위급危急재난災難에 서로 구원救援해야 하고 자기自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라고 하고, 또 ‘사상死喪의 두려움 있으면 형제兄弟만이 매우 그립게 생각하네.注+이다. 사상死喪이 있으면 형제兄弟는 서로 그리며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는데, 형제兄弟 사이인데도 화목和睦하지 못하여 이처럼[於是乎]친선親善하지 못하니注+서로 조위弔慰하지 않는 것이다. , 하물며 소원疏遠한 사람이야 누가 감히 나라에 귀의歸依하려 하겠습니까?
今又不禮於衛之嗣注+嗣 新君也 衛必叛我하리니 是絶諸侯也
그런데 지금 또 나라의 사군嗣君에게 를 행하지 않는다면注+신군新君이다. 나라는 반드시 우리를 배반背叛할 것이니, 이는 제후諸侯관계關係단절斷絶하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獻子以告韓宣子한대 宣子說하야 使獻子如衛弔하고 且反戚田注+傳言戚田所由還하다
헌자獻子가 이 말을 한선자韓宣子(韓起)에게 하자, 선자宣子는 기뻐하여 헌자獻子에게 나라에 가서 조위弔慰하게 하고, 또 척전戚田을 돌려주게 하였다.注+전문傳文척전戚田나라에 돌려주게 된 유래由來를 말한 것이다.
衛齊惡告喪于周하고 且請하니 王使成簡公如衛弔注+簡公 王卿士也 하고 且追命襄公曰
나라 제오齊惡나라에 가서 하고, 또 추명追命을 내려 주기를 청하니, 주왕周王성간공成簡公나라로 보내어 조상弔喪하고注+간공簡公주왕周王경사卿士이다., 또 위양공衛襄公에게 〈아래와 같이〉 추명追命을 내렸다.
叔父하야 在我先王之左右하야 以佐事上帝注+陟 登也 恪 敬也 帝 天也 叔父謂襄公 命如今之哀策 리니 注+二圉 周之先也 爲殷諸侯 亦受殷王追命者
숙부叔父가 하늘로 올라가서 우리 선왕先王좌우左右에 있으면서 상제上帝보좌輔佐해 섬길 것이니注+이고 이고, 천제天帝이다. 숙부叔父위양공衛襄公을 이른다. 은 지금의 애책哀策(生前의 행적行蹟찬양讚揚하며 애도哀悼하는 글)과 같은 것이다. , 내 어찌 감히 고어高圉아어亞圉를 잊겠는가?注+고어高圉아어亞圉나라의 선조先祖나라의 제후諸侯가 되어, 은왕殷王추명追命을 받은 자이다.
[傳]九月 公至自楚하다
9월에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왔다.
孟僖子病不能相禮注+不能相儀答郊勞 以此爲己病 하야 乃講學之注+講習也 하야 苟能禮者 從之注+[附注] 朱曰 苟有能禮之人 則從而師問之 하다
맹희자孟僖子를 잘 보좌輔佐하지 못한 것을 수치羞恥[病]로 여겨注+〈금년 3월에 소공昭公나라에 갔을 때 희자僖子는〉 예의禮儀보좌輔佐하는 사람으로서 나라의 교로郊勞에 잘 응대應對하지 못했으므로 〈희자僖子는〉 이것을 자기의 수치羞恥로 여긴 것이다. 학습學習하였는데注+강학講學강습講習하는 것이다. , 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를 찾아가서 배웠다.注+[부주]朱: 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서 그를 스승으로 섬기며 물은 것이다.
及其將死也注+二十四年孟僖子卒 傳終言之 召其大夫注+僖子屬大夫曰 禮 人之幹也 無禮 無以立이라
그러다가 죽을 때에 미쳐注+소공昭公 24년에 맹희자孟僖子하였는데, 〈7년 희자僖子가 죽을 때 한 말을 기록한 것은, 희자僖子상례相禮를 잘하지 못한 것을 수치羞恥로 여긴 일을〉 종결終結한 것이다. 수하手下대부大夫를 불러놓고注+대부大夫희자僖子속대부屬大夫이다. 말하기를 “는 사람이 되는 근본根本이니, 가 없으면 입신立身(處世)할 수가 없다.
吾聞將有達者曰孔丘注+僖子卒時 孔子年三十五 하니 注+聖人 殷湯 而滅於宋注+孔子六代祖孔父嘉 爲宋督所殺 其子奔魯 이라
내 듣건대 장차 현달顯達할 자로 공구孔丘라는 사람이 있는데注+맹희자孟僖子할 때 공자孔子의 나이 35세였다. , 그는 성인聖人후예後裔注+성인聖人은탕殷湯이다. 가문家門나라에서 멸망滅亡하였다고 한다.注+공자孔子 6대조代祖공보가孔父嘉송독宋督에게 피살被殺되었으므로 그 아들이 나라로 망명亡命한 것이다.
其祖弗父何以有宋而授厲公注+弗父何 孔父嘉之高祖 宋閔公之子 厲公之兄 何適嗣當立 以讓厲公 하고 及正考父注+何之曾孫 하야 佐戴武宣注+三人皆宋君 하야 三命玆益共注+三命 上卿也 言位高益共하니라
조상祖上불보하弗父何나라를 소유所有할 수 있었으나 나라를 그 아우 여공厲公에게 주었고注+불보하弗父何공보가孔父嘉고조高祖송민공宋閔公의 아들이고 송여공宋厲公이다. 불보하弗父何민공閔公적사適嗣로서 당연히 임금이 될 것인데도 임금 자리를 여공厲公에게 사양하였다. , 정고보正考父에 미쳐注+정고보正考父불보하弗父何증손曾孫이다.나라의 대공戴公무공武公선공宣公보좌輔佐하여注+세 사람은 모두 나라 임금이다. , 삼명三命을 받아 상경上卿이 되었으나 더욱더 공손恭遜하였다.注+삼명三命상경上卿이다. 지위地位가 높아질수록 더욱 공손恭遜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故其鼎銘云注+考父廟之鼎 一命而僂하고 再命而傴하고 三命而俯注+俯共於傴 傴共於僂 하야 注+言不敢安行 [附注] 林曰 恭敬之甚 不敢安行於通都大道之中 하니 亦莫余敢侮注+其共如是 今亦不敢侮慢之
그러므로 그 정명鼎銘注+정고보正考父에 〈비치備置한〉 이다. 일명一命을 받아 대부大夫가 되어서는 고개를 숙이고, 재명再命을 받아 이 되어서는 허리를 굽히고, 삼명三命을 받아 상경上卿이 되어서는 몸을 굽히고서注+보다 공손恭遜하고 보다 공손恭遜한 것이다. , 길을 갈 때도 담장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니注+감히 편안히 걸어 다니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공경恭敬이 심하여 감히 도시都市대로大路중앙中央으로 편안히 걸어 다니지 않은 것이다. , 감히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없었다.注+공손恭遜함이 이와 같으니 사람들 또한 그를 감히 업신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饘於是하고 鬻於是하야 以糊余口注+於是鼎中爲饘鬻 饘鬻 餬屬 言至儉 라하니 其共也如是니라
에서 된죽을 끓이고 묽은 죽을 끓여 내 입에 풀칠을 하리라.注+ 속에서 죽을 끓인 것이다. 전죽饘鬻(죽)의 이니, 지극히 검소儉素했음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으니, 그 공손恭遜함이 이와 같았다.
臧孫紇有言注+紇 武仲也 曰 聖人有明德者 若不當世 其後必有達人注+聖人之後 有明德而不當大位 謂正考父이라하니 今其將在孔丘乎ᄂ저
장손흘臧孫紇의 말에注+장무중臧武仲다. 성인聖人후예後裔로서 밝은 을 가진 사람이 당세當世(國君이 되어 국정國政담당擔當함)하지 못하면 그 후손後孫에 반드시 달인達人이 나온다.注+성인聖人후예後裔로 밝은 을 가졌으면서도 대위大位(君位)를 담당擔當하지 못한 것이니, 정고보正考父를 이른다. ’고 하였으니, 지금 그 달인達人이 아마도 공구孔丘인 듯하다.
我若獲没注+得以壽終 이면 必屬說與何忌於夫子하야 使事之注+說 南宮敬叔 何忌 孟懿子 皆僖子之子 [附注] 林曰 夫子 謂仲尼 하야 而學禮焉하야 以定其位注+知禮則位安하라
내가 만약 수명壽命을 다하고 죽는다면注+수명壽命을 다하고 죽는 것이다. 반드시 (南宮敬叔)과 하기何忌(孟懿子)를 부자夫子에게 맡겨, 부자夫子사사師事하여注+남궁경숙南宮敬叔이고, 하기何忌맹의자孟懿子인데, 모두 희자僖子의 아들이다. [부주]林: 부자夫子중니仲尼를 이른다. 를 배워 그 지위地位안고安固(安定 공고鞏固)하게 하라.注+를 알면 지위地位안정安定된다. ”고 하였다.
故孟懿子與南宮敬叔師事仲尼하니라
그러므로 맹의자孟懿子남궁경숙南宮敬叔중니仲尼사사師事한 것이다.
仲尼曰 能補過者 君子也
중니仲尼가 말하기를 “능히 자기의 과오過誤보완補完하는 자는 군자君子이다.
詩曰 君子是則是效注+詩小雅 라하니 孟僖子可則效已矣注+[附注] 林曰 能補過 合此詩 則效之義 로다
시경詩經》에 ‘군자君子를 본받는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녹명편鹿鳴篇〉의 시구詩句이다. ’고 하였으니, 맹희자孟僖子는 본받을 만하다.注+[부주]林: 능히 과오過誤보완補完한 것이 이 에 본받은 뜻에 부합符合한다. ”고 하였다.
[傳]單獻公棄親用羈注+獻公 周卿士 單靖公之子 頃公之孫 羈 寄客也 [附注] 林曰 棄其親戚而用羈旅之士 하니 冬十月辛酉 襄頃之族 殺獻公而立成公注+襄公 頃公之父 成公 獻公弟 하다
선헌공單獻公친족親族을 버리고 외국外國에서 온 나그네를 등용登用하니注+선헌공單獻公나라 경사卿士선정공單靖公의 아들이고 선경공單頃公의 손자이다. 기객寄客(타국他國에서 와서 거류居留하는 나그네)이다. [부주]林: 그 친척親戚을 버리고 기려羈旅(타국他國에서 와서 나그네로 거류居留함)하는 인사人士등용登用한 것이다. , 겨울 10월 신유일辛酉日선양공單襄公선경공單頃公족속族屬들이 선헌공單獻公을 죽이고서 선성공單成公을 임금으로 세웠다.注+선양공單襄公선경공單頃公의 아버지이고, 선성공單成公선헌공單獻公의 아우이다.
[傳]十一月 季武子卒하다
11월에 계무자季武子하였다.
晉侯謂伯瑕注+伯瑕 士文伯 曰 吾所問日食 從矣 注+衛侯武子皆卒故 [附注] 林曰 皆順從子之言 對曰 不可니이다
진후晉侯백하伯瑕(士文伯)에게 일러注+백하伯瑕사문백士文伯이다. 말하기를 “전에 내가 물었던 일식日食가 그대의 말대로 되었으니, 〈일식日食이 있을 때마다〉 항상 그 를 미리 알 수 있는가?注+위후衛侯무자武子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부주]林: 모두 그대의 말을 순종順從하였다는 말이다. 〈그대의 말이 틀리지 않고 모두 맞았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백하伯瑕가 대답하기를 “알 수 없습니다.
六物不同注+各異時 하고 注+政敎殊 하며 注+有變易 하고 注+治官居職非一法 하며 하니 胡可常也릿가
육물六物이 같지 않고注+각각 때가 다른 것이다. , 민심民心동일同一하지 않으며注+정교政敎가 다른 것이다. , 사서事序(事理)가 같지 않고注+변역變易이 있는 것이다. , 관직官職이 같지 않으며注+관직官職에 있으면서 직무職務처리處理하는 이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 시초始初는 같으나 종말終末이 다르니, 어찌 항상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詩曰 或燕燕居息이어늘 或憔悴事國注+詩小雅 言不同 이라하니 其異終也如是니이다
시경詩經》에 ‘누구는 편안히 집에서 쉬고 있는데, 누구는 국사國事에 힘을 다하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북산편北山篇〉의 시구詩句인데,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그 종말終末이 다른 것이 이와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公曰 何謂六物 對曰 歲時日月星辰 是謂也니이다
진평공晉平公이 “무엇을 육물六物이라 하는가?”라고 물으니, 백하伯瑕는 “(歲星), (四時), (甲日에서 계일癸日까지), (正月에서 12월까지), (28宿), (日月이 만나는 12)을 이릅니다.”고 대답하였다.
公曰 多語寡人注+[附注] 林曰 言詳以告我 辰而莫同하니 何謂辰注+[附注] 林曰 凡謂之辰 如北辰大辰之類 其義莫同 何者謂之辰 對曰 日月之會是謂辰注+一歲日月十二會 所會謂之辰 이라
진평공晉平公이 말하기를 “과인寡人에게 ‘’에 대해 말한 사람이 많은데注+[부주]林: 나에게 에 대해 자세히 하였다는 말이다. 그 말이 모두 같지 않으니, 무엇을 ‘’이라 하는가?注+[부주]林: 모든 이가 나에게 말한 ‘’은 북신北辰(北極星), 대신大辰(大火心星) 같은 로 그 뜻이 같지 않으니, 무엇을 ‘’이라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라고 하니, 백하伯瑕가 대답하기를 “해와 달이 만나는 곳을 ‘’이라 합니다.注+1년에 해와 달이 열두 번 만나는데, 만나는 곳을 ‘’이라 한다.
故以配日注+謂以子丑配甲乙 이니이다
그러므로 지지地支천간天干[日]에 배합配合하여 날짜를 기록記錄합니다.注+자축子丑(地支)을 갑을甲乙(天干)에 배합配合한 것을 이른다. ”고 하였다.
[傳]衛襄公夫人姜氏無子注+姜氏 宣姜하고 嬖人婤姶生孟縶하다
위양공衛襄公부인夫人강씨姜氏는 아들을 낳지 못하였고注+강씨姜氏선강宣姜이다., 폐인嬖人주압婤姶맹집孟縶을 낳았다.
孔成子夢康叔謂己호되 立元注+成子 衛卿 孔達之孫烝鉏也 元 孟縶弟 夢時元未生 하라
공성자孔成子의 꿈에 강숙康叔(衛나라의 시조始祖)이 공성자孔成子에게 말하기를 “을 임금으로 세우라.注+성자成子나라 으로 공달孔達의 손자 증서烝鉏이다. 맹집孟縶의 아우이다. 꿈을 꿀 때는 이 태어나기 전이다.
余使羈之孫圉與史苟相之注+羈 烝鉏子 苟 史朝子 하리라
손자孫子와 〈사조史朝의 아들〉 사구史苟로 하여금 을 섬기게 하겠다.注+증서烝鉏의 아들이고, 사조史朝의 아들이다. ”고 하였다.
史朝亦夢康叔謂己호되 余將命而子苟與孔烝鉏之曾孫圉相元하리라
사조史朝 역시 꿈에 강숙康叔사조史朝에게 말하기를 “내 장차 너의 아들 공증서孔烝鉏증손曾孫에게 하여 을 섬기게 하겠다.”고 하였다.
史朝見成子하고 告之夢하니 夢協注+協 合也이라
사조史朝성자成子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하니, 두 사람의 꿈이 같았다.注+이다.
晉韓宣子爲政하야 聘于諸侯之歲注+在二年 婤姶生子하니 名之曰元이라하다
나라 한선자韓宣子집정執政이 되어 제후諸侯빙문聘問하던 해에注+소공昭公 2년에 있었다. 주압婤姶이 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이라 하였다.
맹집孟縶은 발이 온전하지 못하여 걸음을 잘 걷지 못하였다.注+절뚝발이이다.
孔成子以周易筮之하니 曰 元尙亨衛國하야 主其社稷注+令蓍辭 하노라 遇屯☵☳注+震下坎上屯 하다
공성자孔成子주역周易으로 점을 치며 〈태서泰筮(蓍草로 만든 산가지)에 하기를〉 “나라를 향유享有하여 그 사직社稷주관主管하기를 바란다.注+시초蓍草한 말이다. ”고 하고서 〈설시揲蓍(蓍草占을 칠 때 산가지를 세어 를 만듦)하니〉 둔괘屯卦가 나왔다.注+진괘震卦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이다.
又曰 余尙立縶하노니 尙克嘉之注+嘉 善也 [附注] 林曰 再占曰 我庶幾立孟縶 庶幾縶能善於元하노라 遇屯☵☳之比☵☷注+坤下坎上比 屯初九爻變 하다
또 〈태서泰筮하기를〉 “나는 맹집孟縶을 임금으로 세우기를 희망希望하니 좋은 가 나오기를 바란다.注+(좋음)이다. [부주]林: 재차再次을 치며 “내가 맹집孟縶을 세우기를 희망希望하니 보다 좋은 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한 것이다. ”고 하고서 〈설시揲蓍하니〉 둔괘屯卦비괘比卦가 나왔다.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비괘比卦인데, 둔괘屯卦초구효初九爻한 것이다.
以示史朝한대 이라하니 又何疑焉注+周易曰 屯 元亨 [附注] 林曰 所筮乃元與縶 是元亨也 이리오
사조史朝에게 보여 주니, 사조史朝가 말하기를 “〈괘사卦辭에〉 ‘원형元亨’이라 하였으니, 또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注+주역周易》에 “원형元亨(크게 형통亨通함)하다.”고 하였다. [부주]林: 을 친 원형元亨하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成子曰 非長之謂乎注+言屯之元亨 謂年長 非謂名元 對曰 康叔名之하시니 可謂長矣注+善之長也 [附注] 林曰 言元乃康叔所命之名 可以當元長之義
성자成子가 “원형元亨장자長子를 이름이 아니겠습니까?注+둔괘屯卦원형元亨연장자年長者를 이른 것이고, 의 이름을 이른 것이 아니다.”고 하니, 사조史朝가 대답하기를 “강숙康叔으로 명명命名하셨으니 장자長子라 이를 수 있습니다.注+ 중에 으뜸(長)이다. [부주]林: 은 바로 강숙康叔한 이름이니, ‘원선지장元善之長(元은 모든 의 으뜸)’의 뜻에 해당該當한다는 말이다.
孟非人也 將不하리니 不可謂長注+足跛非全人 不可列爲宗主 이라
맹집孟縶합당合當한 사람이 아니라서 장차 종사宗社주관主管할 수 없을 것이니 장자長子라 할 수 없습니다.注+절뚝발이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므로 선군先君의 뒤를 이어 종주宗主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且其繇曰 利建侯注+繇 卦辭 라하니 嗣吉이면 何建이리오
또 그 괘사卦辭에 ‘로 세우는 것이 이롭다.注+괘사卦辭이다.’고 하였으니, 사자嗣子를 세우는 것이 하다면 〈당연히 사자嗣子가 임금이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로 세운다.’고 하였겠습니까?
建非嗣也注+嗣子有常位 故無所卜 又無所建 今以位不定 卜嗣得吉 則當從吉而建之也
사자嗣子가 아닌 자를 세우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注+사자嗣子해진 지위地位가 있기 때문에 점을 칠 필요도 없고, 또 세울 필요도 없다. 지금 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점을 쳐서 길괘吉卦를 얻었다면 점괘占卦에 따라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二卦皆云注+謂再得屯卦 皆有建侯之文하니 子其建之하라
에 모두 그렇게 말하였으니注+재차再次 점을 쳐서 나온 둔괘屯卦에도 모두 ‘건후建侯’라는 글이 있음을 이른 것이다., 당신께서는 을 세우십시오.
康叔命之하고 二卦告之하니 筮襲於夢 武王所用也 弗從何爲注+外傳云 大誓曰 朕夢協朕卜 襲於休祥 戎商必克 此武王辭 리오
강숙康叔이 명하셨고 두 가 그리 하였으니, 시초점蓍草占이 꿈과 부합符合한 것은 무왕武王께서도 따르신 바니 무엇 때문에 따르지 않겠습니까?注+외전外傳(國語)에 이르기를 “태서泰誓에 ‘의 꿈이 귀복龜卜일치一致하여 아름다운 상서가 거듭하였으니, 나라를 정벌征伐하면 반드시 승리勝利할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왕武王의 말이다.”고 하였다.
弱足者居注+跛則偏弱 居其家 不能行니라
절뚝발이는 집안에 한가로이 있어야 합니다.注+절뚝발이는 한쪽 다리가 하므로 집안에 있어야 하고 돌아다닐 수 없다는 말이다.
侯主社稷하야 臨祭祀하고 奉民人하고 事鬼神하고 從會朝 又焉得居리오
(君主)는 사직社稷주관主管하여 제사祭祀친림親臨하고 인민人民봉양奉養하고 귀신鬼神을 섬기고 회맹會盟조회朝會참가參加해야 하니 어찌 집안에 한가로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各以所利 不亦可乎注+孟跛利居 元吉利建
각각 이로운 바를 따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注+맹집孟縶은 절뚝발이이니 집안에 있는 것이 이롭고, 하니 로 세우는 것이 이롭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故孔成子立靈公하다
그러므로 공성자孔成子영공靈公을 세웠다.
十二月癸亥 葬衛襄公注+靈公 元也하다
12월 계해일癸亥日위양공衛襄公장사葬事 지냈다.注+위영공衛靈公이다.
역주
역주1 行成 : 和親을 요구하는 것이다.
역주2 正封 : 正封의 正은 治이다. 〈楊注〉
역주3 : 穀食과 菜蔬이다.
역주4 所以 : 可以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5 所以供待百事 : 供待가 무슨 말인지 正確히는 알 수 없으나, 上命에 이바지[供]해 對待(일을 처리함)함인 듯하다.
역주6 萃淵藪 : 淵藪는 물고기가 모여드는 深淵과 짐승이 모여드는 草地인데, 罪를 짓고 逃亡한 자들이 모여드는 巢窟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7 若以二文之法取之 盜有所在矣 : ‘盜賊을 隱匿한 자는 盜賊과 같은 罪로 處罰한다.’고 한 周文王과 楚文王의 法에 따라 盜賊을 逮捕해야 한다면 楚王에게도 隱匿罪를 犯한 盜賊이란 罪名이 있으니, 당연히 逮捕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주8 : 喪中에 있는 君王을 稱하는 말이다.
역주9 寵靈 : 靈은 福이다. 傳에 말한 ‘君之靈’과 ‘大夫之靈’의 靈은 모두 福이다. 〈楊注〉
역주10 請問行期 : 請問行期는 魯侯가 蜀에 이를 時期를 물은 것이다. 成公 2년 겨울에 楚軍이 衛나라를 侵攻하고서, 드디어 蜀에서 우리 군대를 侵攻하고 楊橋에까지 侵入하니, 孟孫이 楚軍에 使者로 가기를 請하여, 楚나라에 執斲(木工) 執鍼(女工) 織紝(織工) 등 1백 人을 뇌물로 주고, 公衡을 人質로 보내고서 結盟하기를 청하니 楚人이 和平을 허락하였다. 이 蜀의 結盟은 魯나라가 楚나라의 討伐을 받고서 겨우 和平의 허락을 받은 것이었는데, 薳啓彊이 蜀盟을 들먹인 것은 魯나라가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장차 討伐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魯나라를 討伐하는 時期는 본래 楚나라가 決定할 일이지만, 그 時期를 決定하는 것은 魯侯의 可否(同意하느냐 拒否하느냐)에 달렸다. 魯侯가 속히 拒否하면 楚나라가 속히 出師할 것이고, 더디게 拒否하면 더디게 出師할 것이니, 出師의 遲速은 오직 魯侯의 可否에 달렸다. 그러므로 婉曲한 말로 ‘請問行期’라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1 祭道神 : 옛사람은 出行할 때 반드시 路神에게 祭祀를 지냈다. 〈楊注〉
역주12 誰將當日食 對曰 魯衛惡之 : 古人은 迷信하여 日食을 하늘의 譴責으로 여겨, 사람이 禍를 받는 것으로 믿었다. 〈楊注〉
역주13 去衛地如魯地 : 古代에는 하늘의 星宿를 12位次로 나누어 各國에 配屬시켜, 〈그 星宿의 움직임을 觀測하여〉 그 나라의 吉凶을 占쳤는데, 이를 ‘分野’라고 하였다. 娵訾(室宿와 壁宿)는 衛나라 分野이고 降婁는 魯나라 分野이다. ‘去衛地’는 이번 日食이 娵訾의 끝에서 먼저 시작했다는 말이고, ‘如魯地’는 太陽이 降婁에 이른 뒤에 비로소 太陽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14 承[豕] : 저본에는 ‘承’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豕’로 바로잡았다.
역주15 詩所謂彼日而食 于何不臧者 : 詩는 《詩經》 〈小雅十月之交篇〉의 詩句이다. 《詩經》에는 ‘彼日’이 ‘此日’로 되어 있다.
역주16 譴也「擇」 : 저본에는 ‘譴也’ 밑에 ‘擇’字가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削除하였다.
역주17 又不聽晉 : 魯나라가 奪取한 杞田을 杞나라에 返還하라는 晉나라의 要求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역주18 使長鬛者相 : 吳나라와 楚나라의 사람들은 수염이 적기 때문에 수염이 긴 자를 뽑아 禮를 輔佐하게 한 것이다. 〈正義〉
역주19 : 專主로 오로지 依存하거나 重視하는 것이다.
역주20 夏郊 : 夏나라가 天祭인 郊祭를 지낼 때 鯀을 配享하는 神으로 삼은 것이다.
역주21 又[入] : 저본에는 ‘又’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入’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2 者[字] : 저본에는 ‘者’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字’로 바로잡았다.
역주23 方鼎 : 발이 네 개 달린 鼎이다. 〈正義〉에 “발이 세 개 달인 鼎은 圓形이고, 발이 네 개 달린 鼎은 方形이다.”고 하였다.
역주24 林曰 今段卒 故子産歸之於晉 : 이 林注와 아래 注602의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25 不敢以歸曰 : ‘曰’字는 ‘田’字의 誤字인 듯하다.
역주26 其子弗克負荷 : 아비가 일으킨 家業을 그 자식이 繼承하지 못함을 譬喩하는 말이다.
역주27 人生始化曰魄 :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는 눈으로 보지도, 귀로 듣지도, 손으로 물건을 잡지도, 발로 걷지도 못하다가 얼마 뒤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잡고 발로 걷는 것을 ‘化’라 하니. 바로 이른바 ‘魄’이다. 魂과 魄은 서로 돕는 물건이기 때문에 魄이 생기면 魂도 따라서 생긴다. 陽을 魂이라 하니 魄은 陰으로서 形에 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밝고 神靈한 것은 魂이고 運動作爲하는 것은 魄으로 形體에 의지해 存立하지만 魂은 볼 수 있는 形體가 없다. 촛불에 비교하면 심지는 形이고 불꽃은 魄이고 光明은 魂이다. 《左氏會箋》
역주28 用物精多 : 〈正義〉에 의하면 物은 衣食에 필요한 物資의 總稱이다. 〈楊注〉에도 “物은 養生의 物件으로 衣食住에 필요한 物資를 이른다. 이런 物資가 이미 精美하고도 많았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이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29 羈臣 : 他國에서 와서 나그네로 居留하는 臣下이다.
역주30 : 敏은 審이니, 오늘날의 ‘恰當’이라는 말과 같다. 〈楊注〉
역주31 庇其賊人而取其地 : 賊人은 襄公 14년에 그 임금 衛獻公을 逐出하고, 16년에 戚邑을 가지고 晉나라로 도망간 孫林父를 이르고, 其地는 孫林父가 가지고 간 그 封邑戚田을 이른다.
역주32 䳭鴒在原 兄弟急難 : 할미새는 날 때는 울고 걸을 때는 항상 꼬리를 아래위로 흔들어, 急難을 알리는 것 같으므로 急難의 비유로 쓰인다. 그런데 지금 물가에 사는 할미새가 언덕에 와 있으니, 이는 災難을 만나 處所를 잃은 것이니, 兄弟에게 災難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33 於是乎不弔 : ‘不弔는 不淑으로 바로 不善이다.’고 한 〈楊注〉의 說를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34 歸[衛] : 저본에는 ‘歸’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衛’로 바로잡았다.
역주35 : 追命으로 諸侯의 죽음에 天子가 功德을 讚揚하는 命을 내리는 것이다.
역주36 陟恪 : 恪은 格으로 읽어야 한다. 《爾雅》에 “格陟은 登陞이다.”고 하였으니, 格과 陟은 同意詞이다. 陟格은 魂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이른다. 《左氏會箋》
역주37 余敢忘高圉亞圉 : 高圉는 公劉의 玄孫으로 亞圉를 낳았는데, 亞圉는 바로 太王의 祖父이다. 高圉와 亞圉는 遠祖인데도 감히 잊을 수 없는데, 하물며 文王의 後孫인 衛나라를 감히 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38 聖人之後也 : 聖人은 正考父를 가리킨 것이다. 考父는 弗父何의 曾孫이니, 弗父何가 讓位하지 않았다면 考父는 당연히 宋君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不當世’라고 한 것이다. 傳에 ‘滅於宋’이라 한 것은 바로 孔父嘉의 後孫이 魯나라로 亡命하여 宋나라에서 그 祭祀가 끊긴 것을 이른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9 父弗[弗父] : 저본에는 ‘父弗’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弗父’로 바로잡았다.
역주40 循牆而走 : 道路의 中央을 피해 갓길로 간 것이다.
역주41 可常乎 : 可常은 常可의 倒置로 日食이 있을 때마다 항상 그 禍가 누구에게 닥칠 것인지 미리 알 수 있느냐는 말이다.
역주42 民心不壹 : 政治과 敎化가 다름으로 인해 民心이 統一되지 않는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43 事序不類 : 事理는 언제나 같은 것이 아니고 時代에 따라 變易한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44 官職不則 : 則은 類와 같으니, 不類와 不則은 모두 上文의 不同, 不壹과 同義이다. 事理가 바르고 官職이 다스려지면 民心이 和合하여 日食의 災禍를 避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그 災禍가 반드시 클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45 同始異終 : 今日이 後日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46 孟縶之足不良能行 : 〈楊注〉에 “杜氏는 不良에 句를 떼고, 能行을 別個의 句로 보았으나, 正確하지 않은 것 같다. ‘孟縶之足不良能行’을 한 句로 보는 것이 옳다. 良은 善이니 不善能行(잘 걸을 수 없음)이라는 말이다.”고 하였다. 이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47 弱[能] : 저본에는 ‘弱’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8 史朝曰 元亨 : 元亨은 屯卦의 卦辭인데, 史朝는 元이 衛나라를 享有한다는 뜻으로 解釋하였다. 〈楊注〉
역주49 列於宗 : 살아서는 先君의 뒤를 잇고, 죽어서는 先君의 禰廟에 들어가는 것이다. 《左氏會箋》

춘추좌씨전(5)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