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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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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六年春正月 注+寔 實也 不言州公者 承上五年冬經如曹 間無異事 省文 從可知하다
6년 봄 정월에 순우공淳于公이 진실로 왔다.注+은 실제로이다. 주공州公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위의 5년 겨울 경문經文에 ‘여조如曹’를 이어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다른 일이 없었으니, 생략한 글임을 알 수 있다.
[經]夏 四月 公會紀侯于成注+成 魯地 在泰山鉅平縣東南하다
여름 4월에 환공桓公기후紀侯에서 회합하였다.注+나라 땅으로 태산泰山거평현鉅平縣 동남에 있다.
가을 8월 임오일에 열병식閱兵式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注+나라는 대국大國으로 북융北戎나라를 괴롭히는 일로 인해 제후諸侯의 군대를 불러 제나라를 지키게 하였는데, 이때 태자太子이 공을 세우니, 나라가 을 칭찬하였다. 그러자 군공軍功으로 서차序次를 정하기를 원하였으나, 노나라가 왕실王室작위爵位서차序次를 정하여 나라를 맨 뒤로 돌렸다. 그러자 하여 제나라에 고소告訴하니, 나라는 겁이 났다. 그러므로 불시不時거마車馬검열檢閱한 것이다.[부주]林: 성대한 열병식閱兵式을 기록한 시초始初이다.
[經]蔡人 殺陳佗注+佗立踰年 不稱爵者 簒立 未會諸侯也 傳在莊二十二年하다
채인蔡人진타陳佗를 죽였다.注+진타陳佗가 즉위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작위爵位를 칭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임금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 임금이 되었고, 제후와 회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타陳佗에 대한 장공莊公 22년에 있다.
[經]九月 丁卯 子同生注+桓公子 莊公也 十二公唯子同 是適夫人之長子 備用大子之禮 故史書之於策 不稱大子者 書始生也하다
9월 정묘일에 아들 이 출생하였다.注+환공桓公의 아들 장공莊公이다. 나라 열두 임금 중에 오직 만이 적부인適夫人의 몸에서 태어난 장자長子였으므로 태자太子가 출생한 를 갖추어 거행하였다. 그러므로 사관史官에 기록한 것이다. 태자라고 칭하지 않은 것은 처음 출생한 것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經]冬 紀侯 來朝하다
겨울에 기후紀侯가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傳]六年春 自曹來朝하다
6년 봄에 순우공淳于公나라로부터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書曰 寔來 不復其國也注+亦承五年冬傳淳于公如曹也 言奔 則來行朝禮 言朝 則遂留不去 故變文言實來
에 ‘식래寔來’라고 기록한 것은 그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注+이 또한 환공桓公 5년 겨울 의 ‘순우공여조淳于公如曹’를 이어 말하였기 때문에 순우공淳于公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라고 말하자니 와서 조현朝見를 행하였고, ‘’라고 말하자니 드디어 머물고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문체文體를 변경하여 ‘실래實來’라고 한 것이다.
[傳]楚武王侵隨注+隨國 今義陽隨縣 [附注] 朱曰 隨 姬姓國 侯爵하야 使薳章求成焉注+薳章 楚大夫 [附注] 朱曰 求成 求與之平也하고 軍於瑕以待之注+瑕 隨地 [附注] 林曰 楚軍於瑕以待隨之報하니 隨人使少師董成注+少師 隨大夫 董 正也 [附注] 朱曰 董成 如涖盟也 謂兩君不相見而使人往臨之하다
초무왕楚武王수국隨國침공侵攻해 들어가서注+수국隨國은 지금의 의양義陽수현隨縣이다.[부주]朱: 희성姬姓의 나라로 후작侯爵이다. 위장薳章을 보내어 화평和平을 요구하게 하고는注+위장薳章나라 대부大夫이다.[부주]朱: 구성求成화평和平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에 주둔하여 그 결과를 기다리니,注+나라 땅이다.[부주]林: 초무왕楚武王주둔駐屯하여 수국隨國의 회답을 기다린 것이다. 수인隨人소사少師진영陣營으로 보내어 강화講和회담會談주재主宰하게 하였다.注+소사少師나라 대부大夫이다. (처리의 뜻)이다.[부주]朱: 동성蕫成이맹涖盟(會盟에 참여함)과 같은 말인데, 두 나라 임금이 서로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어 회맹會盟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鬪伯比言於楚子曰 吾不得志於漢東也 我則使然注+鬪伯比 楚大夫 令尹子文之父 [附注] 林曰 我則失策而使之然 朱曰 漢 水名이니이다
투백비鬪伯比초자楚子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한수漢水쪽에서 뜻을 얻지 못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注+투백비鬪伯比나라 대부大夫영윤令尹자문子文의 아버지이다.[부주]林: 우리가 계책을 잘못 써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 수명水名이다.
我張吾三軍而被吾甲兵하야 以武臨之하니 彼則懼而協以謀我
우리가 우리의 삼군三軍과시誇示하고 우리의 갑옷과 무기武器를 갖추어서 무력으로 저들을 대하였기 때문에 저들은 두려워서 협심協心하여 우리에게 대항하기를 꾀한 것입니다.
故難間也注+[附注] 林曰 彼諸侯 則恐懼而協心 以謀禦我之策 故難離間其心 此楚之失策니이다
그러므로 저들을 이간시키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注+[부주]林: 저 한동漢東제후諸侯들이 두려워서 협심協心해 우리를 방어할 계책을 꾀하였기 때문에 저들의 마음을 이간離間하기 어려웠으니, 이는 바로 나라의 실책失策이라는 말이다.
漢東之國 隨爲大하니 隨張이면 必棄小國注+[附注] 張 自侈大也하리니 小國離 楚之利也注+[附注] 林曰 小國離心 則隨勢孤而無援 此楚國之利也니이다
한동漢東의 여러 나라 중에 나라가 가장 크니, 나라가 교만해지면 반드시 작은 나라들을 버릴 것이니,注+[부주]張은 스스로 잘난 체하여 교만 방자한 것이다. 작은 나라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우리 나라의 이익입니다.注+[부주]林: 작은 나라들의 마음이 나라를 떠나면 의 형세가 외로워서 원조하는 나라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나라의 이익이라는 말이다.
少師侈하니 請羸師以張之注+羸 弱也 [附注] 林曰 隨少師之心 素自侈大 請楚子藏其精兵 示以羸弱 以張大小師之心 使忽楚하소서
소사少師는 본래 잘난 체하는 사람이니, 파리하고 약한 군사만을 보여 주어 소사의 마음을 더욱 오만하게 하소서.注+한 것이다.[부주]林: 나라 소사는 마음이 본래 스스로 잘난 체하여 교만 방자하기 때문에 투백비가 초자楚子에게 정예군精銳軍은 숨기고 파리하고 약한 군사만을 보여 줌으로써 소사의 마음을 더욱 오만하게 만들어 우리 초군楚軍을 깔보게 하라고 청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熊率且比曰 季梁在하니 何益注+熊率且比 楚大夫 季梁 隨賢臣이리오 鬪伯比曰 以爲後圖 少師得其君注+言季梁之諫 不過一見從 隨侯卒當以少師爲計 故云以爲後圖 二年 蔡侯鄭伯會于鄧 始懼楚 楚子自此遂盛 終於抗衡中國 故傳備言其事 以終始之하리라
웅률차비熊率且比가 말하기를 “수국隨國에는 계량季梁이란 현신賢臣이 있으니 이런 계획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라고 하니,注+웅률차비熊率且比나라 대부이고, 계량季梁나라 대부이다.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후일을 위한 계책이니 장차 소사가 그 임금의 신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注+계량의 간언諫言은 한 번 받아들여지는데 불과할 뿐이고, 끝내는 수후隨侯가 소사를 시켜 계획을 세우게 할 것이므로 후일後日을 위한 계획이라고 한 것이다. 노환공魯桓公 2년 에 “채후蔡侯정백鄭伯에서 회합한 것은 비로소 나라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니, 초자楚子가 이때부터 강성하여 마침내 중국中國과 대항하였다. 그러므로 에 그 사실을 자세히 말하여 시종始終을 드러내었다.”라고 하였다.
王毁軍而納少師注+從伯比之謀 [附注] 林曰 毁其軍容而納少師 蓋少師來楚師董成 故藏楚精兵以示羸弱하니
그러자 초무왕楚武王은 군대의 위용威容을 무너뜨리고 소사를 영접迎接하였다.注+투백비의 계획을 따른 것이다.[부주]林: 나라 군대의 군용軍容을 무너뜨리고 소사를 맞아들인 것이다. 소사가 강화講和하기 위해 초군楚軍 진영으로 왔기 때문에 정예병精銳兵은 숨기고 파리하고 약한 군사만을 보여준 것인 듯하다.
少師歸하야 請追楚師하니 隨侯將許之注+信楚弱也하다
소사가 돌아가서 초군楚軍을 추격하기를 청하니, 수후隨侯가 이를 허락하려 하였다.注+초군楚軍이 약하다고 믿은 것이다.
季梁止之曰 天方授楚注+[附注] 朱曰 言楚勢方盛 乃天授之하니 楚之羸 其誘我也니이다
그러자 계량季梁이 저지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바야흐로 초나라를 돕고 있는데,注+[부주]朱: 초나라의 형세가 바야흐로 강성한 것은 바로 하늘의 도움이라는 말이다.나라가 파리한 군대를 보여 준 것은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입니다.
君何急焉이니잇고
임금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리 서두르십니까.
臣聞小之能敵大也 小道大淫注+[附注] 林曰 小國有道 大國淫虐無道이라하니
신이 듣건대 소국小國대국大國을 대적하는 경우는 소국은 유도有道하고 대국이 무도無道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注+[부주]林: 소국은 유도有道하고 대국은 방탕하고 포학하여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所謂道 忠於民而信於神也니이다
이른바 ‘’란 백성에게 충실忠實하고 에게 진실眞實한 것입니다.
上思利民 忠也 祝史正辭 信也注+正辭 不虛稱君美 [附注] 林曰 祝 太祝 史 太史 皆主祭니이다 今民餒而君逞欲注+逞 快也하고
윗사람이 백성을 이롭게 하기를 생각하는 것이 이고, 축사祝史가 바른 말로 에게 고하는 것이 입니다.注+바른 말은 거짓말로 임금의 미덕美德을 칭찬하지 않는 것이다.[부주]林: 태축太祝이고 태사太史인데, 모두 제사를 주관하는 벼슬이다. 지금 백성은 주리고 있는데 임금은 사욕을 만족하게 채우고,注+은 만족하여 마음이 통쾌함이다.
祝史矯擧以祭注+詐稱功德 以欺鬼神하니 臣不知其可也로소이다
축사祝史는 거짓말을 들어 제사 지내니,注+공덕功德사칭詐稱하여 귀신을 속이는 것이다.은 이런 상태로 대국을 대적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公曰 吾牲牷肥腯하며 粢盛豐備하니 何則不信注+牲 牛羊豕也 牷 純色完全也 腯 亦肥也 黍稷曰粢 在器曰盛 對曰 夫民 神之主也注+言鬼神之情 依民而行니이다
공이 대답하기를 “내가 제사에 올리는 희생犧牲의 색깔이 순색純色이고 살이 쪘으며, 자성粢盛이 풍부하고 구비되었는데, 어째서 에게 진실하지 못했다고 하는가?注+은 소‧양‧돼지이다. 순색純色이 완전한 것이다. 도 살찐 것이다. 서직黍稷라 하고 그릇에 담은 것을 이라 한다.”라고 하니, 계량季梁이 대답하기를 “백성은 의 주인입니다.注+귀신鬼神의 뜻은 백성에 의지하여 행해진다는 말이다.
是以聖王先成民而後致力於神注+[附注] 林曰 先養人民 使之成就而後 致力於事鬼神이니이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은 먼저 백성의 생활을 풍족하게 한 뒤에 을 섬기는 일에 힘을 다하였습니다.注+[부주]林: 먼저 인민人民을 길러 성취成就시킨 뒤에 귀신을 섬기는 일에 힘을 다했다는 말이다.
故奉牲以告曰 博碩肥腯이라하니 謂民力之普存也注+博 廣也 碩 大也 [附注] 朱曰 言告神以博碩肥腯者 蓋緣民力之普徧安存 所以能如此也 謂其畜之碩大蕃滋也 謂其不疾瘯蠡也 謂其備腯咸有也注+雖告神以博碩肥腯 其實皆當兼此四 謂民力適完 則六畜旣大而滋也 皮毛無疥癬 兼備而無有所闕니이다
그러므로 희생을 올리며 ‘박석비돌博碩肥腯’이라고 하니, 이는 백성의 재력財力이 널리 축적蓄積되었다는 것을 이름이며,注+은 넓음이고, 은 큼이다.[부주]朱: 에게 ‘박석비돌博碩肥腯’이라고 하는 것은 백성들의 재력財力이 두루 안정安定생활生活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을 수 있다는 말인 듯하다.가축家畜비대肥大하고 번성蕃盛하다는 것을 이름이며, 가축이 병이 없고 피부에 버짐이 없다는 것을 이름이며, 비대肥大한 가축이 구비되어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름입니다.注+비록 에게 ‘박석비돌博碩肥腯’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 네 가지를 다 겸한 것이다. 백성들의 재력財力이 부족함이 없으면 육축六畜비대肥大하고 번성蕃盛하여 피부에 버짐이 없고 모든 가축이 구비되어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奉盛以告曰 絜粢豐盛注+[附注] 林曰 言黍稷潔淨而在器豊厚이라하니 謂其三時不害而民和年豐也注+三時春夏秋 [附注] 林曰 謂其政不奪農時 春夏秋無有災害 使得盡力耕耘 故和氣致祥 而年穀豐登也
자성粢盛을 올리며 ‘결자풍성潔粢豐盛注+[부주]林: 서직黍稷이 정결하고 그릇에 담긴 것이 풍성하다는 말이다.’이라고 하니, 이는 세 철에 재해災害가 없어 백성들이 화목하고 농사가 풍년이 들었다는 것을 이름이고,注+세 철은 봄‧여름‧가을이다.[부주]林: 농시農時를 빼앗는 정치를 하지 않고, 봄‧여름‧가을에 재해災害를 방지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에 힘을 다하도록 하기 때문에 화평和平한 기운이 상서를 불러 1년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말이다.
奉酒醴以告曰 注+嘉 善也 栗 謹敬也 [附注] 林曰 言有嘉善敬謹之德 以將其美酒라하니 謂其上下皆有嘉德而無違心也 所謂馨香無讒慝也注+馨香之遠聞 [附注] 林曰 此言牲牷粢盛酒醴之所以馨香者 上下皆無讒諛邪慝之行 所以馨香也 書曰 黍稷非馨 明德惟馨 此卽無讒慝也니이다
술을 바치며 ‘가율지주嘉栗旨酒’라고 고하니,注+함이고, 근경謹敬함이다.[부주]林: 하고 경근敬謹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술을 올린다는 말이다. 이는 상하가 모두 아름다운 덕을 지녀 사심邪心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물祭物의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에 참소와 사특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注+향기로운 냄새가 멀리 퍼지는 것이다.[부주]林: 이것은 생전牲牷자성粢盛주례酒醴가 향기로운 이유는 상하에 모두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특邪慝한 행동을 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향기롭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군진君陳〉에 “서직黍稷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이 향기롭다.”고 한 것이r 바로 참특讒慝이 없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故務其三時하며 修其五敎注+父義 母慈 兄友 弟恭 子孝 [附注] 朱曰 修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之五敎 而使民有常心하며 親其九族하야 以致其禋祀注+禋 絜敬也 九族 謂外祖父 外祖母 從母子 及妻父 妻母 姑之子 姊妹之子 女子之子 幷己之同族 皆外親有服而異族者也 [附注] 朱曰 親其上至高祖 下及玄孫之九族 而使家道可和 然後致力於神 而竭精意以享之하나니 於是乎民和而神降之福이라
그러므로 세 철의 농사에 힘을 다하고, 오교五敎수명修明하고,注+아비는 도의道義로 자식을 인도하고, 어미는 자식을 자애慈愛하고,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에게 공손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다.[부주]朱: 군신君臣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붕우朋友에 관한 오교五敎수명修明하여 백성들에게 상심常心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구족九族친애親愛하고서 제사에 힘을 다하였기 때문에注+정결精潔하고 경건敬虔함이다. 구족九族외조부外祖父외조모外祖母종모從母(母親의 자매)의 아들 및 처부妻父처모妻母고모姑母의 아들, 자매姉妹의 아들, 딸의 아들과 모든 나의 동족同族을 이르는데, 모두 외친外親으로 은 있으나 씨족氏族이 다른 자들이다.[부주]朱: 위로 고조高祖에서 아래로 현손玄孫까지 구족九族을 친애하여 가도家道를 화목하게 한 뒤에 에게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제향祭享한다는 말이다. 백성들이 화목하여 이 복을 내렸습니다.
故動則有成이니이다
그러므로 행동하는 일마다 성공이 있었습니다.
今民各有心하야 而鬼神乏主注+民飢餒也 [附注] 朱曰 民爲神之主 民心不和 是鬼神無主也하니 君雖獨豐이나 其何福之有注+[附注] 朱曰 君之事神 雖獨豊厚 神將吐之 必不降福也리잇가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의 마음이 각각 달라서 귀신에게 주인이 없으니,注+백성들이 굶주린다는 말이다.[부주]朱: 백성이 의 주인이니, 민심民心이 화목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귀신에게 주인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임금께서 혼자 아무리 제사를 풍성하게 지낸들 무슨 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朱: 임금이 을 섬기는 것이 아무리 풍성하여도 은 그 제물祭物해내고 반드시 복을 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君姑修政하야 而親兄弟之國이면
그러니 임금께서는 우선 정치를 닦고 형제의 나라를 친애하소서.
庶免於難하리이다 隨侯懼而修政하니
그렇게 하면 거의 화난禍難에서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楚不敢伐注+[附注] 林曰 爲八年楚伐隨張本하다
그러자 수후隨侯는 두려워하여 정치를 닦으니, 나라가 감히 침벌侵伐하지 못하였다.注+[부주]林: 이것이 노환공魯桓公 8년에 침공侵攻장본張本이다.
[傳]夏 會于成하니 紀來諮謀齊難也注+齊欲滅紀 故來謀之
여름에 환공桓公기후紀侯에서 회합하였으니, 이는 기후紀侯가 와서 나라가 기국紀國토멸討滅하려는 화난禍難에 대처할 방책을 자문諮問한 것이다.注+나라가 나라를 격멸擊滅하고자 하기 때문에 와서 모의謀議한 것이다.
[傳]北戎伐齊어늘 齊侯使乞師于鄭하니 鄭大子忽帥師救齊하다
북융北戎나라를 공격하자 제후齊侯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니, 정태자鄭太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六月 大敗戎師하고 獲其二帥大良小良 甲首三百하야 以獻於齊注+甲首 被甲者首 [附注] 林曰 大良 小良 二帥名하다
6월에 북융北戎의 군대를 대패大敗시키고서 북융北戎장수將帥대량大良소량小良을 잡고, 갑수甲首 3백의 목을 베어 나라에 바쳤다.注+갑수甲首는 갑옷 입은 자의 머리이다.[부주]林: 대량大良소량小良은 두 장수將帥의 이름이다.
於是諸侯之大夫戍齊러니 齊人饋之餼注+生曰餼할새 使魯爲其班한대
이때 제후諸侯의 대부가 나라를 지키고 있었는데, 제인齊人이 그들에게 음식飮食호궤犒饋할 때注+날것을 라 한다. 나라로 하여금 음식을 주는 선후의 차례를 정하게 하였다.
後鄭注+班 次也 魯親班齊饋 則亦使大夫戍齊矣 經不書 蓋史闕文하니 鄭忽以其有功也
나라가 나라의 차례를 맨 뒤로 정하니,注+은 차례이다. 나라가 친히 제나라의 호궤물犒饋物을 나누어 주었으니, 그렇다면 나라도 대부大夫를 보내어 나라를 지킨 것인데,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사관史官이 빠뜨린 것인 듯하다.태자太子은 자기가 이번 전쟁에 공이 있다고 하여 크게 노하였다.
故有郞之師注+郞師 在十年하다
그러므로 뒤에 의 전쟁이 발생하였다.注+의 전쟁은 환공桓公 10년에 있었다.
公之未昏於齊也 齊侯欲以文姜妻鄭大子忽하니 大子忽辭하다
환공이 제나라와 혼인하기 전에 제후齊侯문강文姜을 정 태자 홀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태자太子이 사양하였다.
人問其故한대 大子曰 人各有耦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태자太子가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각각 합당한 짝이 있는 것이다.
齊大하니 非吾耦也 詩云 自求多福注+詩 大雅 文王 言求福由己 非由人也이라하니
나라는 강대强大하니 강대한 나라의 딸은 나의 배우자配偶者로 적합하지 않다. 《시경詩經》에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한다.’고 하였으니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문왕文王〉篇이다. 을 구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렸고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在我而已
나에게 달렸을 뿐이다.
大國何爲
대국大國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君子曰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善自爲謀注+言獨絜其身 謀不及國로다
“자신을 위한 계책은 훌륭하였다.注+그 자신만을 깨끗이 지키고 국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及其敗戎師也 注+欲以他女妻之하니 固辭어늘
정홀鄭忽북융北戎의 군대를 격파함에 미쳐 제후齊侯가 또 사위 삼기를 청하니,注+다른 딸을 아내로 주고자 한 것이다.이 굳이 사양하였다.
人問其故한대 大子曰 無事於齊라도 吾猶不敢이온 今以君命奔齊之急이라가 而受室以歸 是以師昏也 民其謂我何注+言必見怪於民오하고 遂辭諸鄭伯注+假父之命 以爲辭 爲十一年鄭忽出奔衛傳 [附注] 朱曰 愚按 詩鄭國風 有女同車序云 鄭人刺忽之不昏于齊 卒以無大國之助 至於見逐 又按左氏曰 善自爲謀 其載祭仲之言曰 必取之 君多內寵 子無大援 將不立 三公子皆君也 與詩序之言 實相表裏 然此皆以成敗論是非也 忽得之於辭昏而失之於微弱 使其不辭而娶文姜 則拉幹之禍 不在魯而在鄭 誠哉是言也하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태자가 말하기를 “나라에 아무 일이 없다 하더라도 내 감히 아내를 할 수 없는데, 지금 임금의 명령을 받고 제나라의 위급함을 구원하러 왔다가 아내를 얻어 돌아간다면 이는 전쟁을 이용하여 혼인하는 것이니, 백성들이 나를 뭐라 하겠는가.注+반드시 백성들에게 괴상히 여김을 당한다는 말이다.”라 하고 마침내 정백鄭伯에게 고하여 사절하게 하였다.注+아비의 가탁假托하여 사절한 것이다. 이것이 노환공魯桓公 11년에 나라로 출분出奔한 일의 배경이다.[부주]朱: 내가 고찰하건대 《시경詩經》 〈정풍鄭風유녀동거有女同車〉에 “정인鄭人나라와 혼인하지 않았다가 끝내 강대한 외원外援이 없어 축출되는 데 이른 것을 꼬집은 것이다.”고 하였고, 또 《좌전左傳》을 고찰하건대 “자신을 위한 계획은 훌륭하였다.”고 하였고, 환공桓公 11년에 “반드시 취하십시오. 현재 임금께는 사랑하는 여자가 많으니, 태자께 강대强大외원外援이 없으면, 아마도 임금이 되지 못할 것이고, 세 공자公子가 모두 임금이 될 가망이 있습니다.”고 한 채중祭仲의 말이 기재記載되었는데, 이는 시서詩序의 말과 실로 서로 보완補完이 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성패成敗를 가지고 시비를 논하였고, 오직 여동래呂東萊만이 “홀이 혼인을 사절한 것은 잘한 일이고, 미약해진 것은 잘못한 일이다. 가령 그가 사절하지 않고 문강文姜을 아내로 맞았다면 납간拉幹노환공魯桓公에게 있지 않고 에게 있었을 것이다.”고 하였으니, 진실되도다 이 말이여.
[傳]秋 大閱하니 簡車馬也
가을에 열병식閱兵式을 성대하게 거행하였으니, 거마車馬검열檢閱하기 위함이었다.
[傳]九月丁卯 子同生하니 以大子生之禮擧之하야 接以大牢注+ 牛羊豕也 以禮接夫人 重適也하고 卜士負之하고 士妻食之注+禮 世子生三日 卜士負之 射人以桑弧蓬矢 卜士之妻 爲乳母하다
9월 정묘일에 아들 출생出生하니, 태자太子가 출생한 를 거행하여 태뢰太牢로써 부인夫人접대接待하고,注+태뢰太牢이다. 로 부인을 접대하는 것은 적자適子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점을 쳐서 사인士人선택選擇하여 태자를 업히고 그 아내로 하여금 젖을 먹이게 하였다.注+세자世子가 출생하면 3일째 되는 날에 점을 쳐서 중에 길인吉人을 골라 세자世子를 업히고, 사인射人을 시켜 뽕나무 활에 쑥대 화살로 천지 사방을 향해 쏘게 한다. 그리고 점을 쳐서 고른 사인士人의 아내를 유모乳母로 삼는다.
公與文姜宗婦命之注+世子生三月 君夫人沐浴於外寢 立於阼階 西鄕 世婦抱子升自西階 君命之乃降 蓋同宗之婦 [附注] 林曰 公與文姜 及同宗之婦 命之名也할새 公問名於申繻注+申繻 魯大夫한대 對曰 名有五하니 有信 有義 有象 有假 有類니이다
환공桓公이 부인 문강文姜종부宗婦들과 함께 이름을 지었을 때에注+세자世子가 출생한 지 석 달째 되는 날에 군부인君夫人외침外寢에서 목욕한 다음 조계阼階(東階)에서 서향西嚮해 선다. 그러면 세부世婦가 세자를 안고 서계西階로 올라와서 세자世子를 임금에게 보이면 임금이 세자의 이름을 지은 뒤에 물러나 내려간다. 종부宗婦동종同宗부인婦人이다.[부주]林: 환공桓公문강文姜동종同宗부인婦人들과 함께 이름을 지은 것이다. 환공桓公신수申繻에게 이름에 대해 물으니,注+신수申繻나라 대부이다. 대답하기를 “이름에는 다섯 종류 있으니, 입니다.
以名生爲信注+若唐叔虞 魯公子友 [附注] 林曰 若唐叔虞 魯公子友 生而有文在其手 故曰以名生이오 以德命爲義注+若文王名昌 武王名發 [附注] 朱曰 若文王名昌 知其必能昌盛周國 武王名發 知其必能發兵誅暴也 以類命爲象注+若孔子首象尼丘이오 取於物爲假注+若伯魚生 人有饋之魚 因名之曰鯉 取於父爲類注+若子同生 有與父同者니이다
출생할 때의 특징을 사용해 이름을 짓는 것이 이고,注+당숙唐叔노공자魯公子 같은 경우이다.[부주]林: 당숙唐叔나라 공자우公子友 같은 경우라는 것은, 그들이 출생할 때 손바닥에 ‘’字와 ‘’字 꼴의 문양文樣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의 특징을 사용해 이름을 지었다는 말이다. 덕행德行을 나타내는 글자를 사용해 이름을 짓는 것이 이고,注+문왕文王의 이름을 이라 하고, 무왕武王의 이름을 이라고 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부주]朱: 문왕文王의 이름을 이라 한 것은 그가 반드시 주국周國창성昌盛하게 할 줄을 안 것이고, 무왕武王의 이름을 이라 한 것은 그가 반드시 군사를 (일으킴)하여 폭군暴君주벌誅伐할 줄을 안 것이다. 유사類似한 물체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짓는 것이 이고,注+공자孔子의 머리가 이구산尼丘山 모양과 유사하므로 이름을 ‘’라고 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물명物名가차假借해 이름을 짓는 것이 이고,注+백어伯魚(孔子의 아들)가 출생했을 때 어떤 사람이 잉어를 선물膳物하였으므로 이름을 ‘’라 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부친父親유관有關한 글자를 사용해 이름을 짓는 것이 입니다.注+아들 출생일出生日이 아버지의 생일生日동일同日이므로 이름을 ‘’이라고 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不以國注+國君之子 不自以本國爲名也하며 不以官注+[附注] 林曰 不以本國官職之號 爲名하며 不以山川注+[附注] 林曰 不以本國山川之名 爲名하며 不以隱疾注+隱 痛 疾 患 辟不祥也하며 不以畜牲注+畜牲 六畜하며 不以器幣注+幣 玉帛니이다
국명國名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으며,注+국군國君의 아들은 본국의 국명을 이름字로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관명官名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으며,注+[부주]林: 본국本國관직官職의 명칭을 이름字로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산천山川의 이름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으며,注+[부주]林: 본국本國산천山川의 이름을 이름字로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은질隱疾의 이름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으며,注+고통苦痛이고 병환病患이니, 상서롭지 못함을 피하는 것이다. 축생畜牲의 이름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으며,注+축생畜牲육축六畜이다. 기물器物폐백幣帛의 이름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注+옥백玉帛이다.
周人以諱事神하니 終將諱之注+君父之名 固非臣子所斥然 禮 旣卒哭 以木鐸徇曰 舍故而諱新 謂舍親盡之祖 而諱新死者 故言以諱事神 名 終將諱之 自父至高祖 皆不敢斥言 [附注] 林曰 人死曰終 朱曰 旣有諱法 則命名之後 終久諱之而不敢道也니이다
주인周人함으로써 을 섬기니, 사후死後에는 반드시 이름을 합니다.注+군부君父의 이름은 진실로 신자臣子가 드러내 놓고 부를 수 없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졸곡卒哭이 지난 뒤에 재부宰夫목탁木鐸을 치며 ‘전에 하던 는 버리고 신사자新死者한다.’고 궁중宮中에 선포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친진親盡조상祖上하지 않고 신사자新死者를 휘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휘함으로써 을 섬기니, 사후에는 반드시 이름을 휘한다.”고 말한 것이다. 아비로부터 고조高祖까지는 모두 감히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다.[부주]林: 사람이 죽는 것을 ‘’이라 한다. : 이미 하는 이 있다면 이름을 지은 뒤에 죽으면 오래도록 휘하고 감히 부르지 않는 것이다.
故以國則廢名注+國不可易 故廢名 [附注] 林曰 廢名 不諱 朱曰 以國爲名 則終 諱其國之號 是廢其國名也하고 以官則廢職注+[附注] 朱曰 以官爲名 則終 諱此官之號 是廢其官職也하고 以山川則廢主注+改其山川之名 [附注] 林曰 國主山川 今以山川爲名 當改其山川之名 是廢主하며 以畜牲則廢祀注+名豬 則廢豬 名羊則廢羊 [附注] 朱曰 以六畜爲名 則不敢用此牲以祭 是廢祀禮也하고 以器幣則廢禮注+[附注] 朱曰 以器幣爲名 則不敢用此器幣以行禮 是廢其禮也니이다
그러므로 국명國名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그 이름을 폐기廢棄하게 되고,注+국명國名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인명人名을 폐기하고 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부주]林: 폐명廢名하지 않는 것이다. : 국명國名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사후死後에 그 나라의 국명을 하게 되니, 이는 그 나라의 국명을 폐기廢棄하는 것이다. 관명官名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관명官名칭을 폐기하게 되고,注+[부주]朱: 관명官名을 이용해 이름을 지으면 사후死後에 그 관직의 호칭을 해야 하니, 이는 그 관직을 폐기하는 것이다. 산천山川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산천)의 이름을 폐기하게 되고,注+산천山川의 이름을 고치는 것이다.[부주]林: 국가는 산천山川을 주인으로 삼는데, 지금 산천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그 산천의 이름을 고쳐야 하니, 이는 주인을 폐기하는 것이다. 축생畜牲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제사祭祀폐기廢棄하게 되고,注+이름을 ‘’라고 지으면 의 이름을 폐기하고, 이름을 ‘’이라고 지으면 의 이름을 폐기한다는 말이다.[부주]朱: 육축六畜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감히 그 짐승들을 제사祭祀에 올릴 수 없으니, 이는 제례祭禮를 폐기하는 것이다. 기물器物폐백幣帛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를 폐기하게 됩니다.注+[부주]朱: 기물器物폐백幣帛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지으면 감히 이 기물과 폐백으로 를 행할 수 없으니, 이는 그 를 폐기하는 것이다.
晉以僖侯廢司徒注+僖侯名司徒 廢爲中軍 [附注] 朱曰 此引實事以證之하고 宋以武公廢司空注+武公名司空 廢爲司城하고 先君獻武廢二山注+二山 具敖也 魯獻公名具 武公名敖 更以其鄕名山하니
나라는 희후僖侯 때문에 사도司徒를 폐기하였고,注+희후僖侯의 이름이 사도司徒였기 때문에 사도라는 관명官名을 폐기하고 중군中軍으로 고쳤다.[부주]朱: 이는 실제의 일을 끌어다가 증명한 것이다. 나라는 무공武公 때문에 사공司空을 폐기하였으며,注+무공武公의 이름이 사공司空이었기 때문에 사공이라는 관명官名을 폐기하고 사성司城으로 고쳤다. 나라는 선군先君헌공獻公무공武公 때문에 두 의 이름을 폐기하였습니다.注+구산具山오산敖山이다. 노헌공魯獻公의 이름이 이고, 무공武公의 이름이 였기 때문에 두 산의 이름을 그 고을 이름으로 고쳤다.
是以大物不可以命이니이다
그러므로 큰 사물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公曰 是其生也 與吾同物이라하고 命之曰同注+物 類也 謂同日이라하다
그러자 환공桓公은 “이 아이의 생일生日이 나의 생일과 동일同日이다.”라 하고 이름을 ‘’이라 하였다.注+이니 동일同日을 이른다.
[傳]冬 紀侯來朝하야 請王命以求成于齊하니 公告不能注+紀微弱 不能自通於天子 欲因公以請王命 公無寵於王 故告不能하다
겨울에 기후紀侯가 와서 조현朝見하고 환공桓公에게 나라로 가서 주왕周王을 받아 나라와 화평을 이루게 해 달라고 청하니, 환공이 할 수 없다고 하였다.注+기국紀國은 미약하여 스스로 천자天子와 교통할 수 없으므로 환공桓公을 통하여 주왕周王을 청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환공은 주왕에게 총애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고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寔’을 杜氏는 ‘實’로 해석하였으나, 李惟樟‧朴致遠‧朴世采‧李震相 등은 州公의 이름으로 해석하였다.
역주2 齊爲大國……故以非時簡車馬 : 이 부분은 原文대로 옮기면 말이 잘 이어지지 않고 내용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아래의 傳文과 桓公 10년의 傳文에 의거해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3 嘉栗旨酒 :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는 “栗은 ‘洌’의 假借字로 淸의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嘉栗旨酒’는 아름답고 맑은 맛있는 술이라는 말이다.
역주4 齊侯又請妻之 : 이때 文姜은 이미 魯나라로 시집왔다.
역주5 惟東萊云 : 呂東萊의 말은 그의 著書인 《左氏博議》 卷五鄭太子忽辭昏에 보인다. 魯桓公 3년에 公子翬가 齊나라로 가서 桓公의 夫人으로 文姜을 맞이해 왔으니, 文姜이 魯桓公의 夫人이 된 지가 이미 4년이 되었다. 그렇다면 齊侯가 文姜이 아닌 다른 딸로 鄭忽을 사위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東萊는 다른 딸을 文姜으로 오해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고, 朱氏도 전후의 사정을 따져 보지 않고 東萊의 말에 찬동하였으니, 이들 모두 《春秋》의 經文을 자세히 檢討하지 못한 실수를 범하였다고 하겠다.
역주6 : 대본에는 ‘牢’가 ‘豕’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바로 잡았다.
역주7 射四方 : 천지 사방에 활을 쏘는 것은 앞으로 이 世子가 천지 사방에 뜻을 펼칠 것을 象徵하는 것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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