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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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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二年春正月이라
12년 봄 정월이다.
[經]夏 六月壬寅 公會紀侯莒子하야 盟于曲池注+曲池 魯地 魯國汶陽縣北 有曲水亭하다
여름 6월 임인일에 환공桓公기후紀侯거자莒子회합會合하여 곡지曲池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곡지曲池나라 땅이다. 노국魯國문양현汶陽縣 북쪽에 곡수정曲水亭이 있다.
[經]秋七月丁亥 公會宋公燕人하야 盟于穀丘注+穀丘 宋地 燕人 南燕大夫하다
가을 7월 정해일에 환공桓公송공宋公연인燕人과 회합하여 곡구穀丘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곡구穀丘나라 땅이다. 연인燕人남연南燕대부大夫이다.
[經]八月壬辰 陳侯躍卒注+無傳 厲公也 十一年與魯大夫盟於折 不書葬 魯不會也 壬辰 七月十三日 書於八月 從赴하다
8월 임진일에 진후陳侯하였다.注+이 없다. 진후陳侯여공厲公이다. 환공桓公 11년에 나라 대부와 에서 결맹結盟하였다. 장사葬事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회장會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진은 7월 13일인데 8월로 기록한 것은 부고에 적힌 대로 따른 것이다.
[經]公會宋公于虛注+虛 宋地하다
환공桓公송공宋公에서 회합하였다.注+나라 땅이다.
[經]冬十有一月 公會宋公于龜注+龜 宋地하다
겨울 11월에 환공桓公송공宋公에서 회합하였다.注+나라 땅이다.
[經]丙戌 公會鄭伯盟于武父注+武父 鄭地 陳留濟陽縣東北 有武父城하다
병술일에 환공桓公정백鄭伯과 회합하여 무보武父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무보武父나라 땅이니, 진류陳留제양현濟陽縣 동북에 무부성武父城이 있다.
[經]丙戌 衛侯晉卒注+無傳 重書丙戌 非義例 因史成文也 未同盟而赴以名하다
병술일에 위후衛侯하였다.注+이 없다. 병술丙戌을 거듭 기록한 것은 의례義例가 아니고, 사책史策구문舊文에 따라 글을 만든 것이다. 동맹국同盟國이 아닌데도 이름을 기록해 부고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經]十有二月 及鄭師伐宋하고 丁未 戰于宋注+旣書伐宋 又重書戰者 以見宋之無信也 莊十一年傳例曰 皆陳曰戰 尤其無信 故하다
12월에 나라가 나라 군대와 연합해 송나라를 토벌하고, 정미일에 나라에서 전쟁하였다.注+이미 나라를 토벌하였다고 기록하고, 또 거듭 전쟁했다고 기록한 것은 나라가 신의信義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장공莊公 11년 전례傳例에 “쌍방이 모두 진세陣勢를 갖춘 뒤에 교전交戰하는 것을 이라 한다.”고 하였다. 나라의 신의가 없는 것을 허물하였기 때문에 홀로 전쟁한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傳]十二年夏 盟于曲池하니 平杞莒也注+隱四年 莒人伐杞 自是遂不平
12년 여름에 곡지曲池에서 결맹하였으니 이는 기국杞國거국莒國화평和平시키기 위함이었다.注+은공隱公 4년에 거인莒人기국杞國을 토벌하였다. 이때부터 드디어 양국兩國불화不和하였다.
[傳]公欲平宋鄭하야 公及宋公盟于句瀆之丘注+句瀆之丘 卽穀丘也 宋以立厲公 故多責賂於鄭 鄭人不堪 故不平하다
환공桓公나라와 나라를 화평시키고자 하여, 가을에 송공宋公구독句瀆의 언덕에서 맹약하였다.注+구독句瀆의 언덕은 바로 곡구穀丘이다. 나라는 정여공鄭厲公을 임금으로 세운 것을 생색내었다. 그러므로 나라에 많은 뇌물을 요구하니, 정인鄭人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불화不和한 것이다.
宋成未可知也 故又會于虛하고 又會于龜하다
그러나 나라가 진정으로 나라와 강화講和할는지 알 수 없으므로 또 나라와 에서 회합하고 겨울에 또 에서 회합하였다.
宋公辭平하다注+宋公貪鄭賂 故與公三會 而卒辭不與鄭平
그런데도 송공宋公이 끝내 화평和平을 거절하였다.
故與鄭伯盟于武父하고 遂帥師而伐宋하야 戰焉하니 宋無信也注+[附注] 林曰 言宋旣許魯來會 而中背之 無信也
그러므로 환공桓公정백鄭伯무보武父에서 결맹結盟하고注+송공宋公나라의 뇌물을 탐하였기 때문에 환공桓公과 세 차례 회합하고서도 끝내 나라와의 강화講和를 거절하였다. 드디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송나라를 토벌하고 전쟁하였으니, 이는 송나라가 신의信義가 없기 때문이었다.注+[부주]林: 송공宋公이 와서 회합하겠다고 나라에게 허락하고서 중간에 배반하고 오지 않았으니, 이는 신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君子曰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평론하였다.
苟信不繼 盟無益也
“만약 신의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결맹結盟은 아무 소용이 없다.
詩云 君子屢盟이라 亂是用長이라하니 無信也注+詩 小雅 言無信 故數盟 數盟卽情疏 情疏而憾結 故云長亂
시경詩經》에 ‘군자君子가 자주 맹약盟約을 맺기 때문에 난리가 점점 늘어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신의가 없음을 이른 것이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교언巧言〉篇이다. 이 의 내용은, 신의가 없기 때문에 자주 맹약하고, 자주 맹약하면 소원疏遠해지고, 정이 소원해지면 원한이 맺히기 때문에 난리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傳]楚伐絞하야 軍其南門注+[附注] 林曰 屯軍以攻絞之南門하다
나라가 교국絞國을 토벌하기 위해 교국의 남문南門에 주둔하였다.注+[부주]林: 군대를 주둔시켜 교국絞國남문南門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莫敖屈瑕曰 絞小而輕하니 輕則寡謀니이다
막오莫敖굴하屈瑕가 말하기를 “교국絞國국토國土가 작고 사람들이 경박輕薄하니, 경박하면 지모智謀가 부족합니다.
請無扞采樵者以誘之注+扞 衛也 樵 薪也 [附注] 朱曰 行軍之法 別有役徒以共采樵之役 必使正軍扞衛以往하소서
그러니 나무하는 채초병采樵兵에게 호위병을 붙이지 말고 내보내어 저들을 유인하소서.注+호위護衛이고, 는 땔나무이다.[부주]朱: 행군行軍하는 에는 따로 사역병使役兵을 두어 나무하는 일을 하게 하는데, 반드시 정규군正規軍을 호위로 붙여 보낸다.”라고 하였다.
從之하니 絞人獲三十人注+獲楚人也하다
초자楚子가 그의 말에 따라 그대로 하니, 교인絞人나라의 채초병采樵兵 30명을 포로로 잡아갔다.注+초인楚人을 포로로 잡은 것이다.
明日 絞人爭出하야 驅楚役徒於山中이어늘
이튿날에는 교인絞人이 앞 다투어 나와서 나라의 채초병을 산중까지 추격하였다.
楚人坐其北門하고 而覆諸山下注+坐 猶守也 覆 設伏兵而待之하야 大敗之하고 爲城下之盟而還注+城下盟 諸侯所深恥하다
그러자 초인楚人은 교국의 북문北門을 지키고 산밑에 군대를 매복埋伏시켜注+는 ‘’(지키다)와 같다. 복병伏兵을 설치하고서 기다리는 것이다.교군絞軍대패大敗시키고서 성하지맹城下之盟을 맺고 돌아왔다.注+성하맹城下盟은 제후가 매우 수치로 여기는 맹약이다.
伐絞之役 楚師分涉於彭注+彭水 在新城昌魏縣 [附注] 林曰 言涉者 深厲賤揭 非以舟濟也하니 羅人欲伐之하야 使伯嘉諜之하니 三巡數之注+羅 熊姓國 在宜城縣西山中 後徙南郡枝江縣 伯嘉 羅大夫 諜 伺也 巡 徧也 [附注] 林曰 三徧數其師之多小하다
초군楚軍교국絞國을 치는 전쟁을 할 때 군대를 나누어 팽수彭水를 건너니,注+팽수彭水신성新城창위현昌魏縣에 있다.[부주]林: 은 물이 깊으면 옷을 입은 채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고서 건너는 것이고, 배[舟] 로 건너는 것이 아니다. 나인羅人이 초군을 치고자 하여 백가伯嘉에게 가서 정탐偵探하게 하니, 백가가 초군의 인원수를 세 차례 세었다.注+웅성熊姓의 나라이다. 의성현宜城縣서산西山 가운데 있었는데 뒤에 남군南郡지강현枝江縣으로 옮겼다. 백가伯嘉의 대부이다. 은 엿보는 것이다. (한 번 두 번의 ‘번’)이다.[부주]林: 그 군사의 다소多少를 세 번 센 것이다.
역주
역주1 以獨戰爲文 : 杜注의 뜻에 따르면 伐은 罪 있는 나라를 征伐하는 것이다. 鍾鼓를 울리며 宋나라의 罪을 聲討하였는데도 宋나라가 罪를 承服하지 않고, 도리어 魯나라와 전쟁을 하였기 때문에 매우 責望하는 뜻에서 ‘宋나라와 전쟁하였다.’라고 하지 않고 ‘宋나라에서 전쟁하였다.’고 기록하여 마치 宋나라 혼자 전쟁한 것처럼 글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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