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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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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八年春王正月 師次于郞하야 以俟陳人蔡人注+無傳 期共伐郕 陳蔡不至 故駐師于郞以待之하다
6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나라 군대가 에 주둔하여 의 군대를 기다렸다.注+이 없다. 함께 성국郕國을 토벌하기로 기약期約하였으나, 의 군대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에 군대를 주둔하고서 기다린 것이다.
[經]甲午 治兵注+治兵於廟 習號令 將以圖郕하다
갑오일에 치병治兵(軍事訓鍊) 하였다.注+종묘宗廟에서 치병治兵하여 호령號令을 익히게 한 것은 장차 성국郕國을 토벌하기 위해서였다.
[經]夏 師及齊師圍郕하니 郕降于齊師注+二國同討 而齊獨納郕하다
여름에 나라 군대가 나라 군대와 함께 성국郕國을 포위하였는데, 성국郕國나라 군대에 항복하였다.注+두 나라가 함께 토벌하였는데, 나라 혼자서 성국郕國의 항복을 받은 것이다.
[經]秋 師還注+時史善公克己復禮 全軍而還 故特書師還하다
가을에 군대가 돌아왔다.注+당시의 사관史官이, 선왕의 예에 맞게 자신을 검속하여 군대를 온전하게 보호하여 돌아온 장공莊公을 훌륭하게 여겼기 때문에 특별히 ‘사환師還’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經]冬十有一月癸未 齊無知弑其君諸兒注+稱臣 臣之罪也하다
겨울 11월 계미일에 나라 무지無知가 그 임금 제아諸兒시해弑害하였다.注+무지無知’라고 신하의 이름을 칭한 것은 신하의 임을 드러낸 것이다.
[傳]八年春 治兵于廟하니 禮也注+[附注] 林曰 凡師 行必告于大廟 而 故曰治兵于廟라
8년 봄에 종묘에서 치병治兵하였으니 에 맞았다.注+[부주]林: 군대가 출병出兵할 때에는 반드시 태묘太廟에 고하고서 조묘祧廟신주神主를 모시고 출전出戰한다. 그러므로 “종묘宗廟에서 치병治兵하였다.”고 한 것이다.
師及齊師圍郕하니 郕降于齊師하다
여름에 나라 군대가 나라 군대와 함께 성국郕國을 포위했는데 성국이 제나라 군대에 항복하였다.
仲慶父請伐齊師注+齊不與魯共其功 故欲伐之한대 公曰不可하다
그러자 중경보仲慶父제군齊軍을 공격하자고 요청하니,注+나라가 나라와 공유共有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고자 한 것이다.장공莊公이 말하기를 “옳지 않다.
我實不德이니 齊師何罪
내가 실로 부덕不德해서이니 제군齊軍에게 무슨 가 있는가?
罪我之由注+[附注] 林曰 言我實無德 可以服郕 齊君實專其功 齊之師衆何罪 罪由我之無德니라
죄는 나에게 있다.注+[부주]林: 나에게 실로 성국郕國을 항복시킬 만한 이 없으므로 제군齊君이 실로 그 을 독차지한 것이니, 나라 군대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는 나의 무덕無德 때문이라는 말이다.
夏書曰 皐陶邁種德注+夏書 逸書也 稱皐陶能勉種德 邁 勉也 [附注] 朱曰 此虞書大禹謨之文 而曰夏書者 蓋孔子未刪定之前 名爲夏書也이라 德乃降이라하니 姑務修德하야 以待時乎注+言苟有德 乃爲人所降服 姑 且也 [附注] ᄂ저
하서夏書》에 ‘고요皐陶는 힘써 덕을 펴서 덕이 두루 미쳤기 때문에注+하서夏書일서逸書이다. 고요皐陶가 덕을 펴는 일에 힘쓴 것을 칭찬한 말이다. 이다.[부주]朱: 이는 《서경書經》 〈우서虞書대우모大禹謨〉의 글인데 《하서夏書》라고 한 것은 아마도 공자孔子시서詩書산정刪定하기 전에는 명칭名稱을 《하서夏書》라고 했던 듯하다. 사람들이 항복하였다.’고 하였으니, 우선 힘써 덕을 닦아 때를 기다릴 것이다.”고 하였다.注+진실로 덕이 있으면 사람들이 항복한다는 말이다. (우선)이다.[부주]朱: 이것은 대우大禹고요皐陶는 스스로 힘써 덕을 폈기 때문에 그 덕이 아래로 백성들에게 미쳤다고 칭찬한 말인데, 두예杜預는 《고문상서古文尙書》를 보지 못하고서 이 장공莊公의 말로 오해誤解하였고, 평성平聲(평성으로 읽으면 이 ‘항’이 된다)으로 읽었으니, 옳지 않다.
師還하다
가을에 환군還軍하였다.
君子是以善魯莊公注+傳言經所以卽用舊史之文 [附注] 朱曰 愚按 齊襄淫乎其妹 而戕殺魯桓公 乃莊公不共戴天之讐也 莊公旣不能爲君父復讐 又不能以禮防閑其母 且與讐人共興師而伐郕 獨何心哉 左氏乃謂君子善魯莊公 愚不知其何說也하다
군자는 이 일로 인해 노장공魯莊公을 훌륭하게 여겼다.注+전문傳文경문經文구사舊史의 글을 그대로 사용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부주]朱: 내가 고찰하건대 제양공齊襄公은 제 손아래 누이와 간음姦淫하여 노환공魯桓公장살戕殺하였으니, 노장공魯莊公에게는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인데도 군부君父의 원수를 갚지 않았고, 또 로써 그 어머니의 불륜不倫을 방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 원수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성국郕國을 쳤으니 이것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그런데 좌씨左氏군자君子노장공魯莊公을 훌륭하게 여겼다고 하였으니, 나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傳]齊侯使連稱管至父戍葵丘注+連稱 管至父 皆齊大夫 戍 守也 葵丘 齊地 臨淄縣內 有地名葵丘하다
제후齊侯연칭連稱관지보管至父를 보내어 규구葵丘를 지키게 하였다.注+연칭連稱관지보管至父는 모두 나라 대부大夫이다. 는 지키는 것이다. 규구葵丘나라 땅이다. 임치현臨淄縣 안에 지명이 규구葵丘란 곳이 있다.
瓜時而往曰 及瓜而代注+[附注] 林曰 蓋以瓜熟之時 而使之往戍 與之約曰 明年及瓜熟之時 則遣代하리라
외가 익을 때 보내며 “내년에 외가 익을 때 교대交代시켜 주겠다.”고 하였다.注+[부주]林: 외가 익을 때 그들을 자리 살러 보내며 그들과 약속하기를 “명년明年에 외가 익을 때가 되면 교대할 사람을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期戍로되 公問不至注+問 命也 [附注] 林曰 戍及期月 襄公不命人代之戍하니 請代로되 弗許하다
그런데 1년의 수자리 살 기한이 찼는데도 제양공齊襄公의 명이 내려오지 않았고,注+이다.[부주]林: 수자리 산 지 12개월이 되었는데도 양공襄公이 대신 수자리를 살 사람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교대시켜 주기를 청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故謀作亂하다
그러므로 반란叛亂을 일으키려고 계획하였다.
僖公之母弟曰夷仲年이니 生公孫無知하다 有寵於僖公하여 衣服禮秩如適注+適 大子 [附注] 林曰 適 襄公也이라 襄公黜之注+[附注] 林曰 絀 減其恩數하니 二人因之以作亂注+二人連稱管至父하다
제희공齊僖公동복同腹 아우 이중년夷仲年의 아들 공손公孫무지無知희공僖公의 총애를 받아 의복衣服예질禮秩(대우한 등급)이 적자適子와 같았는데,注+태자太子이다.[부주]林: 양공襄公이다. 양공襄公이 즉위하여서 그의 예질禮秩강등降等시키니,注+[부주]林: 은 그 은수恩數삭감削減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에게 의지하여 반란을 일으키기로 하였다.注+두 사람은 연칭과 관지보이다.
連稱有從妹在公宮이나 無寵하다
연칭連稱에게는 양공의 후궁後宮으로 있는 종매從妹가 있었는데, 양공의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使間公注+伺公之間隙 曰捷이면 吾以女爲夫人注+捷 克也 宣無知之言하리라
公孫 무지無知가 그녀에게 양공의 動靜을 살피게 하며注+양공襄公의 틈을 엿보게 한 것이다. 말하기를 “만약 성공한다면 나는 그대를 부인으로 삼겠다.注+은 이기는 것이다. 무지無知의 말을 전한 것이다.”고 하였다.
冬十二月 齊侯游于姑棼하야 遂田于貝丘注+姑棼貝丘 皆齊地 田 獵也 樂安博昌縣南 有地名貝丘러니 見大豕하다
겨울 12월에 제후齊侯고분姑棼에서 유람遊覽하고서 드디어 패구貝丘에서 사냥하였는데,注+고분姑棼패구貝丘는 모두 나라 땅이다. 은 사냥이다. 낙안樂安박창현博昌縣 남쪽에 패구貝丘라는 지명이 있다. 큰 돼지 한 마리를 보았다.
從者曰 公子彭生也注+公見大豕 而從者見彭生 皆妖鬼라하니 公怒曰 彭生敢見가하고 射之注+[附注] 林曰 言彭生旣死 敢見形以見我하니 豕人立而啼注+[附注] 朱曰 其豕忽作人 立而啼哭어늘
종자從者가 “공자公子팽생彭生입니다.”라고 하니,注+제양齊襄의 눈에는 큰 돼지로 보이고 종자從者의 눈에는 팽생彭生으로 보인 것이니, 모두 요귀妖鬼의 장난이다.양공襄公은 화를 내며 “팽생이 감히 나타나는가.”라고 하고서 활을 쏘니,注+[부주]林: 이미 죽은 팽생이 감히 형체形體를 드러내어 나를 보느냐는 말이다. 그 돼지가 사람처럼 서서 울었다.注+[부주]朱: 그 돼지가 갑자기 사람으로 변하여 서서 운 것이다.
公懼하야 隊于車하야 傷足喪屨하다
이를 본 제후齊侯는 겁이 나서 수레에서 떨어져 발을 다치고 신발을 잃었다.
하야 誅屨於徒人費注+誅 責也 [附注] 朱曰 徒人 徒役之人 其名曰費한대 弗得이어늘 鞭之見血하다
사냥에서 돌아온 뒤에 제후齊侯도인徒人에게 신발을 찾아오도록 하였으나注+(요구함)이다.[부주]朱: 도인徒人도역인徒役人(수고로운 일을 맡아 하는 인부人夫)이고, 는 그의 이름이다. 찾아오지 못하자, 제후齊侯는 그에게 피가 흐르도록 채찍질을 하였다.
走出이라가 遇賊于門하니
가 도망해 나오다가 궁문宮門에서 반란군을 만났다.
劫而束之注+[附注] 朱曰 群賊劫徒人費 將加束縛어늘
반란군이 그를 위협해 결박結縛하려 하자,注+[부주]朱: 역적들이 도인徒人를 위협해 결박結縛하려한 것이다.
費曰 我奚御哉리오 袒而示之背한대 信之어늘
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대들을 막겠는가.”라고 하고서 옷을 벗어 피가 흐르는 등을 보이니 역적들이 신임信任하였다.
費請先入注+詐欲助賊하야 伏公而出하야타가 死于門中하고 石之紛如 死于階下注+石之紛如 齊小臣 亦鬪死
하다
가 먼저 으로 들어가기를 요청하여注+거짓으로 역적을 돕고자 하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양공襄公을 숨겨 놓고 나와서 반란군과 싸우다가 궁문宮門 안에서 죽고, 석지분여石之紛如는 섬돌 밑에서 죽었다.注+석지분여石之紛如나라의 소신小臣이다. 그 또한 싸우다가 죽은 것이다.
遂入하야 殺孟陽于牀注+孟陽 亦小臣 代公居牀하고 曰 非君也 不類注+[附注] 朱曰 言面貌不似公로다
반란군이 마침내 궁중宮中으로 들어가서 용상龍床에 앉아 있는 맹양孟陽을 죽이고서注+맹양孟陽소신小臣이다. 양공襄公을 대신해 용상龍床에 앉은 것이다. “이 자는 임금이 아니다. 용모가 같지 않다.注+[부주]朱: 면모面貌양공襄公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고 하고는
見公之足于戶下注+[附注] 林曰 公匿戶後 其足獨出戶下 故爲賊所見하고 遂弑之而立無知注+經書十一月癸未 長歷推之 月六日也 傳云十二月 傳誤하다
다시 찾다가 문 밑으로 나와 있는 양공襄公의 발을 보고는注+[부주]林: 양공襄公이 문 뒤에 숨었지만 그 발이 문 밑으로 나왔기 때문에 역적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드디어 양공襄公시해弑害하고 공손公孫무지無知를 임금으로 세웠다.注+에 기록한 11월 계미일을 장력長曆으로 추산推算해 보면 11월 6일인데, 에 ‘12월이다.’고 하였으니, 이 틀렸다.
襄公立하야 無常하니注+政令無常 鮑叔牙曰 君使民慢하니 亂將作矣라하고 奉公子小白出奔莒注+鮑叔牙 小白傅 小白 僖公庶子 [附注] 林曰 襄公之使民有慢易之心 如葵丘期戍 公問不至 請代弗許 是有慢易之心也 朱曰 政令無常 故民慢之하다
당초에 양공襄公이 즉위하여 언행言行상도常道를 벗어나니,注+정령政令에 기준이 없는 것이다. 포숙아鮑叔牙가 말하기를 “임금이 백성들을 방종放縱하게 만들고 있으니, 장차 반란叛亂이 일어날 것이다.”고 하고서, 공자公子소백小白을 모시고 나라로 도망갔다.注+포숙아鮑叔牙소백小白의 스승이다. 소백은 제희공齊僖公서자庶子이다.[부주]林: 양공襄公이 백성으로 하여금 방자한 마음을 가지게 하니, 이를테면 규구葵丘의 수자리 기한이 찼는데도 양공襄公을 내리지 않고, 교대交代를 요청해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 백성으로 하여금 방자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이다. : 정령政令에 기준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방자하다는 말이다.
亂作 管夷吾召忽奉公子糾來奔注+管夷吾召忽 皆子糾傅也 子糾 小白庶兄 來不書 皆非卿也 爲九年公伐齊 納子糾 齊小白入于齊傳하다
반란叛亂(無知가 양공襄公시해弑害반란叛亂)이 일어나자 관이오管夷吾소홀召忽공자公子를 모시고 나라로 도망왔다.注+관이오管夷吾소홀召忽은 모두 자규子糾의 스승이다. 자규子糾소백小白서형庶兄이다. 그들이 나라로 온 것을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장공魯莊公 9년에 장공莊公나라를 공격하여 자규子糾귀국歸國시켜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소백小白이 먼저 나라로 들어간 의 배경이다.
[傳]初 公孫無知虐于雍廩注+雍廩 齊大夫 爲殺無知傳하다
당초에 공손公孫무지無知옹름雍廩학대虐待하였다.注+옹름雍廩나라 대부이다. 이것이 옹름雍廩무지無知를 살해한 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奉祧廟之主以行 : 《史記伯夷傳》에 武王이 紂를 칠 적에 文王의 木主(나무로 만든 神主)를 수레에 싣고 出征했다는 기록이 보일 뿐, 遞遷한 遠祖의 神主인 祧主를 모시고 出戰한 故事는 찾아볼 수 없는데, 林氏는 어디에 근거해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역주2 朱曰……非也 : 朱氏는 《正義》에 의거해 杜氏는 ‘皐陶邁種德’만을 《尙書》의 글로 여기고 ‘德乃降’은 莊公의 말로 誤解하였으며, 《古文尙書》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글을 ‘逸書’라고 하였으며, ‘降’은 덕이 아래로 백성에게 미쳤다는 말인데 이를 ‘항복’의 뜻으로 잘못 해석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譯者가 보기에는 杜注에 ‘皐陶邁種德‘과 ‘德乃降’을 분리해 註釋했다 하여 杜氏가 ‘德乃降’을 莊公의 말로 오해했다고 할 수 없고, 《古文尙書》는 僞書로 이 大禹謨도 伏生이 전한 28篇 속에 들어 있지 않으니, 杜氏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朱氏는 《古文尙書》를 眞書로 誤認하고서 도리어 杜氏를 비난하였으니 옳지 않다. 그리고 ‘降’이 大禹謨에서는 降下의 뜻으로 쓰였으나, 여기서는 降服을 논하면서 인용하였으니, 항복으로 해석한 杜注의 說이 옳다고 생각한다.
역주3 公孫無知가……하였다 : 杜注에는 부인으로 삼겠다는 말을 무지가 직접 그녀에게 한 말이 아니고 사람을 시켜 전한 말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無知가 직접 그녀에게 한 말로 번역하였다.
역주4 費請先入……死子偕下 : 朴致遠의 《雪溪隨錄》에는 “徒人費‧石之紛汝도 절개를 지켜 죽었다고 할만한데, 《春秋》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죽음이 마치 娼女가 저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죽은 것과 같아서 취할 만한 가치가 없어서였는가?”라고 하였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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