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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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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三十年春王正月이라.
30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經]夏 注+無傳 將卑師少 故直言次 齊將降鄣 故說備하다
여름에 노사魯師에 주둔하였다.注+이 없다. 장수將帥품계品階가 낮고 군사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라고만 말하였다. 나라가 항복降服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대비對備설치設置한 것이다.
[經]秋七月 齊人降鄣注+無傳 鄣 紀附庸國 東平無鹽縣東北有鄣城 小國孤危 不能自固 蓋齊遙以兵威脅使降附하다
가을 7월에 제인齊人을 항복시켰다.注+이 없다. 기국紀國부용국附庸國이다. 동평東平무염현無鹽縣 동북에 장성鄣城이 있다. 은 작은 나라로 외롭고 위태로워 스스로 나라를 공고鞏固히 하지 못하니, 나라가 멀리 와서 무력武力으로 위협하여 항부降附(항복하여 종속從屬함)시킨 듯하다.
[經]八月癸亥 葬紀叔姬注+無傳 以賢錄也 無臣子 故不作諡하다
8월 계해일에 숙희叔姬를 장사지냈다.注+이 없다. 현철賢哲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여 신자臣子가 없었기 때문에 시호諡號를 짓지 않은 것이다.
9월 초하루 경오庚午일에 일식日食이 있으니, 북을 울리고 에 희생을 사용하였다.注+이 없다.
겨울에 장공莊公제후齊侯노제魯濟에서 만났다.注+제수濟水나라와 나라 경계를 거쳐 흐르는데, 나라 경내에 있는 것을 제제齊濟라 하고, 나라 경내에 있는 것을 노제魯濟라 한다. 노제魯濟나라 땅인 듯하다.
[經]齊人伐山戎注+山戎 北狄하다
제인齊人산융山戎을 토벌하였다.注+산융山戎북적北狄이다.
[傳]三十年春 王命虢公討樊皮하다
30년 봄에 주왕周王괵공虢公에게 하여 번피樊皮토벌討伐하게 하였다.
夏 四月 丙辰 虢公入樊하야 執樊仲皮注+[附注] 林曰 卽樊皮하야 歸于京師하다
여름 4월 병진일에 괵공虢公이 군대를 거느리고 으로 진입進入하여 번중피樊仲皮를 잡아注+[부주]林: 바로 번피樊皮이다.경사京師로 돌려보냈다.
[傳]楚公子元 歸自伐鄭하야 而處王宮注+欲遂蠱文夫人하니 鬪射師諫한대 則執而梏之注+射師 鬪廉也 足曰桎 手曰梏하다
나라 공자公子을 치고 돌아와서 왕궁王宮에 거처하니,注+드디어 문부인文夫人고혹蠱惑하고자 한 것이다. 투역사鬪射師가 그러지 말라고 하자, 그를 잡아 (手匣)을 채웠다.注+사사射師투렴鬪廉이다. 발에 채우는 형구刑具이라 하고, 손에 채우는 형구刑具이라 한다.
[傳]秋 申公 鬪班殺子元注+申 楚縣也 楚僭號 縣尹皆稱公하니 鬪穀於菟爲令尹하야 自毁其家하야 以紓楚國之難注+鬪穀於菟 令尹子文也 毁 減 紓 緩也 [附注] 林曰 減其家祿邑之俸 楚國之難 由家强而國弱 故子文自毁其家 以緩楚國之患難 朱曰 以家財濟國患難 傳言令尹子文之忠也하다
가을에 신공申公투반鬪班자원子元을 죽이니,注+나라의 이다. 나라는 호칭呼稱참용僭用하여 현윤縣尹을 모두 ‘’이라 칭하였다. 투누오도鬪穀於菟영윤令尹이 되어 스스로 자기 집 재산財産을 덜어 내어 나라의 곤난困難완화緩和시켰다.注+투누오도鬪穀於菟영윤令尹자문子文이다. 는 덜어 내는 것이고, 완화緩和시키는 것이다.[부주]林: 자기 집 녹읍祿邑(食邑)에서 들어오는 녹봉祿俸을 덜어 낸 것이다. 초국楚國곤난困難경대부卿大夫사가私家하고 국가國家한 데서 유래由來하였기 때문에 자문子文이 스스로 자기 가산家産을 덜어내어 초국楚國환난患難완화緩和시킨 것이다. : 가산家産으로 국가國家환난患難구제救濟한 것이다. 전문傳文영윤令尹자문子文(윗 사람으로서 백성을 이롭게 하기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傳]冬 遇于魯濟하니 謀山戎也
겨울에 장공莊公제후齊侯노제魯濟에서 만났으니, 이는 산융山戎에 대한 토벌을 상의하기 위해서이다.
以其病燕故也注+齊桓行覇 故欲爲燕謀難 燕國 今薊縣
그 이유는 산융山戎나라를 괴롭혔기 때문이다.注+제환공齊桓公패자覇者로서 임무를 수행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나라의 환난患難을 평정시키기를 계획한 것이다. 나라는 지금의 계현薊縣이다.
역주
역주1 次于成 : 〈疏〉에 의하면 將帥의 品階가 낮고 군사의 수가 적으면 그 主將을 ‘人’이라 칭하는 것이 例이다. ‘人’은 大夫를 이른다. 大夫는 신분이 낮기 때문에 그 이름을 칭하지 않고 단지 ‘人’이라고만 칭한다. 다른 나라의 대부라면 ‘某人’이라고 칭하지만 魯나라의 대부를 ‘魯人’이라고 칭할 수 없기 때문에 使命을 받들고 나간 魯나라 대부에 대해서는 모두 그 行爲만을 기록한다. 그러므로 ‘次’한 일만을 말한 것이다. 魯나라가 鄣을 구원하기 위해 成에 주둔하여 대비를 설치한 것이다.
역주2 九月庚午朔……用牲于社 : 莊公 25년 傳에 이에 대한 事例가 구체적으로 보인다.
역주3 濟水……蓋魯地 : 〈疏〉에 의하면 濟水는 滎陽에서 發源하여 동으로 흘러 陳留를 거쳐 濟陽에 이르러서는 다시 북으로 흘러 高平‧東平을 지나 濟北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동북으로 흘러 濟南을 거쳐 樂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高平‧東平은 魯나라의 서쪽 경계이고, 濟南‧樂安은 齊나라 境內이다. 經에 ‘魯濟’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魯나라 땅인 듯하다고 한 것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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