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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5)

춘추좌씨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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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二年春 晉侯使韓起來聘하다
[經]夏 叔弓如晉注+叔弓 叔老子 하다
[經]秋 鄭殺其大夫公孫黑注+書名 惡之 薰隧盟 子産不討 遂以爲卿 故書之하다
[經]冬 公如晉이라가 至河乃復注+弔少姜也 晉人辭之 故還 하다
[經]季孫宿如晉注+致襚服也 公實以秋行 冬還乃書 하다
[傳]二年春 晉侯使韓宣子來聘注+公卽位故 하고 且告爲政而來見하니 禮也注+代趙武爲政 雖盟主 而修好同盟 故曰禮
觀書於大史氏할새 見易象與魯春秋하고 曰 周禮盡在魯矣注+易象 上下經之象辭 魯春秋 史記之策書 春秋遵周公之典以序事 故曰周禮盡在魯矣
吾乃今知周公之德 與周之所以王也注+易象春秋 文王周公之制 當此時 儒道廢 諸國多闕 唯魯備 故宣子適魯而說之
公享之할새 季武子賦緜之卒章注+緜 詩大雅 卒章義取文王有四臣 故能以緜緜致興盛 以晉侯文王 以韓子比하니 韓子賦角弓注+角弓 詩小雅 取其兄弟昏姻無胥遠 言兄弟之國宜相親 하다
季武子拜曰 敢拜子之彌縫敝邑하노라
寡君有望矣注+彌縫 猶補合也 謂以兄弟之義 라하고 武子賦節之卒章注+節 詩小雅 卒章取式訛爾心 以畜萬邦 以言晉德可以畜萬邦하다
旣享 宴于季氏할새 有嘉樹焉하니
宣子譽之注+譽其好也 한대 武子曰 宿敢不封殖此樹하야 以無忘角弓注+封 厚也 殖 長也가하고 遂賦甘棠注+甘棠 詩召南 召伯息於甘棠之下 詩人思之 而愛其樹 武子欲封殖樹如甘棠 以宣子比召公 하니 宣子曰 起不堪也
無以及召公이라하다
宣子遂如齊納幣注+爲平公聘少姜 하고 見子雅하니 子雅召子旗注+子旗 子雅之子하야 使見宣子어늘
宣子曰 非保家之主也 不臣注+志氣亢이리라
見子尾하니 子尾見注+彊 子尾之子 이어늘
宣子謂之如子旗注+亦不臣 하니 大夫多笑之로되 唯晏子信之하고 曰 夫子 君子也注+夫子 韓起
君子有信하니 其有以知之矣注+爲十年齊欒施高彊來奔張本라하다
自齊聘於衛하다
衛侯享之할새 北宮文子賦淇澳注+淇澳 詩衛風 美武公也 言宣子有武公之德 하니 宣子賦木瓜注+木瓜 亦衛風 義取於欲厚報以爲好하다
[傳]夏四月 韓須如齊逆女注+須 韓起之子 逆少姜하다
齊陳無宇送女하야 少姜하다
少姜有寵於晉侯하니 晉侯謂之少齊注+爲立別號 所以寵異之 라하다
謂陳無宇非卿注+欲使齊以適夫人禮送少姜이라하야 執諸中都注+中都 晉邑 在西河界休縣東南하니 少姜爲之請曰 送從逆班注+班 列也 [附注] 林曰 言送女當從逆女之班이나 畏大國也하야 猶有所易이라 注+韓須 公族大夫 陳無宇 上大夫 言齊畏晉 改易禮制 使上大夫送 遂致此執辱之罪 蓋少姜謙以示譏 이라
[傳]叔弓聘于晉하니 報宣子也注+此春韓宣子來聘
晉侯使郊勞注+聘禮 賓至近郊 君使卿勞之 하니 辭曰 寡君使弓來繼舊好하며 固曰 女無敢爲賓하라하니
徹命於執事로도 敝邑弘矣注+徹 達也 [附注] 朱曰 若君命得達於晉之執事 魯國受賜大矣 어늘 敢辱릿가
請辭注+辭郊勞 하노이다
致館注+[附注] 林曰 至晉將授館舍 한대 辭曰 寡君命下臣來繼舊好하니 好合使成 臣之祿也注+得通君命 則於己爲榮祿 [附注] 林曰 和好旣合 使事告成어늘 敢辱大館注+敢 不敢이릿가
叔向曰 子叔子知禮哉ᄂ저
吾聞之컨대 曰 忠信 禮之器也 卑讓 禮之注+宗 猶主也라하야늘 辭不忘國하니 忠信也注+謂稱舊好 先國後己하니 卑讓也注+始稱敝邑之弘 先國也 次稱臣之祿 後己也
[傳]秋 鄭公孫黑將作亂하야 欲去游氏而代其位注+游氏 大叔之族 黑爲游楚所傷 故欲害其族 러니 傷疾作而不果注+前年游楚所擊創하다
注+駟氏 黑之族 [附注] 朱曰 黑 子駟之子 故以駟爲氏한대 子産在鄙라가 聞之하고 懼弗及하야 乘遽而至注+遽 傳驛 하야 使吏數之注+責數其罪 曰 伯有之亂注+ 以大國之事 而未爾討也注+務共大國之命 不暇治女罪로라
爾有亂心하니 國不女堪이라
專伐伯有하니 而罪一也 하니 而罪二也注+謂爭徐吾犯之妹 薰隧之盟 女矯君位하니 而罪三也注+
有死罪三하니 何以堪之리오
不速死 大刑將至리라 再拜稽首하고 辭曰 死在朝夕하니 無助天爲虐注+[附注] 朱曰 言傷重 其死不久 天已虐殺 汝無更助天爲虐也 하라
子産曰 人誰不死리오 凶人不終 命也
作凶事하야 爲凶人하니 不助天하고 其助凶人乎
請以印爲褚師注+印 子晳之子 褚師 市官 하니 子産曰 印也若才 君將任之 不才 將朝夕從女注+[附注] 朱曰 旦夕將從汝以誅死 리라
女罪之不恤하고 而又何請焉
不速死 司寇將至리라
七月壬寅하니 尸諸周氏之衢注+衢 道也하고 加木焉注+書其罪於木 以加尸上 하다
[傳]晉少姜卒 公如晉하야 及河하니 晉侯使士文伯來辭 曰 非伉儷也注+晉侯溺於所幸 爲少姜行夫人之服 故諸侯弔 不敢以私煩諸侯故止之 [附注] 林曰 言少姜非嫡夫人伉敵之耦儷也 請君無辱하노라
公還하고 季孫宿遂致服焉注+致少姜之襚服 公以末秋行 始冬還 還乃書之 故經在冬하다
叔向言陳無宇於晉侯曰 彼何罪注+彼 無宇
君使公族逆之 齊使上大夫送之로되 猶曰不共이라하니 君求以貪注+[附注] 林曰 是晉之求於齊 已過於貪이오
國則不共注+逆卑於送 是晉國不共하고 而執其使하니 君刑已頗
何以爲盟主注+頗 不平리오
且少姜有辭注+謂請無宇之辭하니라
冬十月 陳無宇歸注+晉侯赦之하다
[傳]十一月 鄭印段如晉弔注+弔少姜 하다


2년 봄에 진후晉侯한기韓起를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여름에 숙궁叔弓나라에 갔다.注+숙궁叔弓숙로叔老의 아들이다.
가을에 나라가 그 대부大夫공손公孫을 죽였다.注+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를 미워한 것이다. 훈수薰隧에서 맹약盟約하였으나, 자산子産토벌討伐하지 않고 드디어 그를 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기록한 것이다.
겨울에 소공昭公나라에 가다가 황하黃河에 이르러 되돌아왔다.注+소강少姜조상弔喪하기 위해서였는데, 진인晉人사절謝絶하였기 때문에 돌아온 것이다.
계손숙季孫宿나라에 갔다.注+수의襚衣(死者에게 입히는 옷)를 하기 위해서였다. 소공昭公이 사실은 가을에 갔는데 겨울에 돌아온 것으로 기록하였다.
2년 봄에 진후晉侯한선자韓宣子를 보내어 나라에 와서 빙문聘問하고注+소공昭公즉위卽位하였기 때문이다., 또 집정執政이 된 것을 하기 위해 와서 노군魯君에게 조현朝見한 것이니, 에 맞았다.注+조무趙武의 뒤를 이어 집정執政이 된 것이다. 나라가 비록 맹주盟主이지만 우호友好를 맺고 동맹同盟하였기 때문에 ‘에 맞았다’고 한 것이다.
한선자韓宣子태사씨太史氏의 집에 가서 도서圖書를 구경할 때 《역상易象》과 《노춘추魯春秋》를 보고서 말하기를 “주례周禮가 모두 나라에 있구나.注+역상易象상하경上下經상사象辭이다. 노춘추魯春秋역사歷史기록記錄간책簡策이다. 춘추春秋주공周公에 따라 일을 서술敍述하였기 때문에 ‘주례周禮가 모두 나라에 있다.’고 한 것이다.
나는 오늘에야 주공周公나라가 이 된 까닭을 알았다.”注+역상易象춘추春秋문왕文王주공周公이 지은 것이다. 이때에 유도儒道[廢]하여 모든 나라에는 대부분 없어졌으나, 오직 나라에만 완비完備되었으므로 한선자韓宣子나라에 가서 보고서 좋아한 것이다. 고 하였다.
소공昭公연회宴會를 열어 그를 접대接待할 때 계무자季武子가 〈면편緜篇〉의 졸장卒章을 읊으니注+〉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篇名이다. 졸장卒章문왕文王이 네 신하臣下가 있었기 때문에 면면綿綿히 이어온 나라를 흥성興盛하게 만든 뜻을 하여 진후晉侯문왕文王에 비유하고, 한선자韓宣子사보四輔에 비유한 것이다. , 한선자韓宣子가 〈각궁편角弓篇〉을 읊었다.注+각궁角弓〉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형제兄弟인척姻戚은 서로 멀리하지 말라.’는 시구詩句하여 형제국兄弟國은 서로 친애親愛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계무자季武子가 일어나 절하며 “감히 그대가 우리나라를 형제兄弟의 의리로 대해 준 것[彌縫]에 대해 배사拜謝합니다.
우리 임금님께서는 기대期待하고 계십니다.”注+미봉彌縫보합補合(갈라진 틈을 기워 붙임)이니, 형제兄弟의리義理로 대함을 이른다. 고 하고서, 무자武子가 〈절남산편節南山篇〉의 졸장卒章을 읊었다.注+절남산節南山〉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졸장卒章의 ‘네 마음을 고쳐 만방萬邦을 기르라.’는 시구詩句하여 나라의 만방萬邦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연회宴會를 마친 뒤에 계씨季氏의 집에서 주연酒宴을 베풀었는데, 계씨季氏의 집에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한선자韓宣子가 그 나무를 칭찬하자,注+나무가 아름다움을 칭찬한 것이다. 무자武子가 말하기를 “내 어찌 감히 이 나무를 잘 가꾸어 〈각궁角弓의 뜻을 기억하지[無忘] 않겠습니까?”注+은 나무의 뿌리에 흙을 두터이 덮는 것이고, 은 기르는 것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감당편甘棠篇〉을 읊으니注+감당甘棠〉은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篇名이다. 소백召伯감당수甘棠樹 아래에서 쉰 적이 있었으므로 시인詩人소백召伯사모思慕해 그 나무까지 사랑하였다. 무자武子는 아름다운 나무를 감당甘棠처럼 기르고자 한다고 말하여, 선자宣子소공召公비유譬喩한 것이다. , 한선자韓宣子가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소공召公경지境地에 미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선자宣子는 드디어 나라로 가서 납폐納幣하고서注+진평공晉平公을 위해 소강少姜에게 혼인婚姻약속約束하는 예폐禮幣를 올린 것이다., 자아子雅를 만나 보니, 자아子雅는 그 아들 자기子旗를 불러注+자기子旗자아子雅의 아들이다. 선자宣子를 뵙게 하였다.
선자宣子가 “이 사람은 집안을 보호保護할 만한 대부大夫도 아니고, 신하臣下 노릇도 하지 못할 것이다.”注+의지意志기개氣槪고항高亢(높고 함)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자미子尾를 만나 보니 자미子尾도 그 아들 자강子彊을 불러 선자宣子를 뵙게 하였다.注+자미子尾의 아들이다.
선자宣子자기子旗와 같이 하니注+이 또한 신하 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 대부大夫들은 대부분 그의 말을 비웃었으나, 오직 안자晏子만은 그의 말을 믿고서 말하기를 “부자夫子군자君子이다.注+부자夫子한기韓起이다.
군자君子성심誠心이 있으니, 그분의 말은 그리될 줄을 안 바가 있어서일 것이다.”注+소공昭公 10년에 나라 난시欒施(子旗)와 고강高彊(子彊)이 나라로 도망해 온 장본張本이다. 고 하였다.
한선자韓宣子나라에서 나라로 가서 빙문聘問하였다.
위후衛侯연회宴會를 열어 선자宣子접대接待할 때 북궁문자北宮文子가 〈기오淇澳를 읊으니注+기오淇澳〉은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편명篇名인데, 위무공衛武公찬미讚美이다. 선자宣子무공武公과 같은 을 가졌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선자宣子가 〈목과木瓜를 읊었다.注+목과木瓜〉도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편명篇名이다. 하게 보답報答하여 우호友好하고자 한다는 뜻을 한 것이다.
여름 4월에 한수韓須나라로 가서 제녀齊女를 맞이하였다.注+한기韓起의 아들로 나라에 가서 소강少姜을 맞이하였다.
나라 진무우陳無宇제녀齊女호송護送나라까지 가서 소강少姜을 넘겨주었다.
소강少姜진후晉侯에게 총애寵愛를 받으니, 진후晉侯는 그녀를 소제少齊라고 호칭號稱하였다.注+그녀를 위해 별호別號를 세운 것은 그녀를 특별히 총애寵愛하였기 때문이다.
나라는 진무우陳無宇이 아니라 하여注+나라에게 적부인適夫人소강少姜호송護送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를 중도中都에 잡아 두니注+중도中都나라 으로 서하西河계휴현界休縣동남東南쪽에 있다. , 소강少姜이 그를 위해 요청要請하기를 “호송護送하는 사람의 반열班列이 맞이하는 사람의 반열班列과 같아야 하는 것이 예제禮制이지만注+이다. [부주]林: 제녀齊女호송護送하는 사람의 반열班列제녀齊女를 맞이하기 위해 간 사람의 반열班列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 나라는 대국大國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예제禮制를 바꾼 것인데, 이로 인해 이 생겼습니다.”注+한수韓須공족대부公族大夫이고 진무우陳無宇상대부上大夫이다. 나라는 나라를 두려워하여, 예제禮制를 바꾸어 상대부上大夫를 시켜 호송護送하게 하였다가 드디어 이렇게 잡히는 모욕侮辱을 불렀다는 말이니, 소강少姜이 겸손한 말로 비난非難의 뜻을 보인 것이다. 고 하였다.
숙궁叔弓나라에 가서 빙문聘問하였으니, 이는 한선자韓宣子내빙來聘에 대한 보답報答이었다.注+금년今年 봄에 한선자韓宣子나라에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진후晉侯근교近郊로 사람을 보내어 위로慰勞하려 하자注+의례儀禮》 〈빙례聘禮〉에 “근교近郊에 이르면 주국主國의 임금이 을 보내어 위로慰勞한다.”고 하였다. , 숙궁叔弓은 사양하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나에게, 나라에 가서 지난날의 우호友好를 계속 유지維持토록 하라고 하시면서, 힘주어 말씀하기를 ‘나라에 가서 너는 감히 손님 노릇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임금님의 집사執事전달傳達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가 큰 은혜를 입는 것인데注+이다. [부주]朱: 만약 임금의 나라 집사執事에게 전달傳達된다면 나라가 큰 은혜恩惠를 입을 것이라는 말이다. , 어찌 감히 교사郊使를 번거롭게 하겠습니까?
사양하기를 청합니다.”注+교로郊勞를 사양한 것이다. 고 하였다.
객관客館에 머물게 하자注+[부주]林: 진도晉都에 이르자, 관사館舍를 주려 한 것이다. , 사양하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하신下臣에게 나라에 가서 지난날의 우호友好계속繼續유지維持토록 하라고 하셨으니, 우호友好를 맺어 사명使命완수完遂한 것이 인데注+임금님의 (友好를 계속繼續하자는 노군魯君나라가 받아들임)하게 되면 나에게 영록榮祿(榮譽로운 복록福祿)이 된다는 말이다. [부주]林: 우호友好가 이미 이루어져 사신使臣의 임무가 끝났다는 말이다. , 어찌 감히 대관大館에 머물겠습니까?”注+불감不敢(감히 할 수 없음)이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자숙자子叔子를 아는구나.
내 듣건대 충신忠信의 그릇이고, 비양卑讓(자신을 낮추고 겸양謙讓함)은 의 근본이라고 하였는데注+와 같다. , 저 사람은 말하는 중에 나라를 잊지 않았으니 충신忠信이고注+지난날의 우호友好를 말한 것을 이른다. ,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뒤에 생각하였으니 비양卑讓이다.注+처음에 ‘폐읍지홍敝邑之弘’이라고 한 것이 나라를 먼저 생각한 것이고, 다음에 ‘신지록臣之祿’이라고 한 것이 자기를 뒤에 생각한 것이다.
시경詩經》에 ‘너의 몸가짐을 공경하고 삼가야 근접近接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저 사람은 근접近接한 사람이다.”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민로편民勞篇〉의 시구詩句이다. 고 하였다.
가을에 나라 공손公孫반란叛亂을 일으켜 유씨游氏(游吉)를 제거除去하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자 하였더니注+유씨游氏태숙太叔(游吉)의 종족宗族이다. 공손公孫유초游楚(子南)에게 상해傷害를 입었기 때문에 그 족속族屬을 해치고자 한 것이다. , 상처가 덧나 결행決行하지 못하였다.注+전년前年유초游楚공격攻擊을 받아 입은 상처이다.
사씨駟氏(公孫 종족宗族)가 여러 대부大夫들과 함께 공손公孫을 죽이려 하자注+사씨駟氏공손公孫종족宗族이다. [부주]朱: 공손公孫자사子駟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로 삼은 것이다. , 자산子産변방邊方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사전事前에 미처 도착하지 못할까 두려워 전거傳車(驛站의 수레)를 타고 국도國都로 와서注+전역傳驛(驛站)이다. , 공손公孫에게 관리官吏를 보내어 그 죄상罪狀열거列擧注+는 그 죄상罪狀열거列擧하여 꾸짖는 것이다. 말하기를 “백유伯有의 난리 때注+백유伯有양공襄公 31년에 있었다. 대국大國의 일로 인해 그대를 토벌討伐하지 못하였다.注+대국大國에 이바지하는 데 힘쓰느라 너의 를 다스릴 겨를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대는 반란叛亂을 일으키려는 마음이 끝이 없으니 국가國家는 그대를 더 이상 용인容忍[堪]할 수 없다.
멋대로 백유伯有공격攻擊하였으니 그대의 가 하나이고, 형제간兄弟間에 한 여인女人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으니 그대의 가 둘이고注+서오범徐吾犯의 누이동생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툰 일을 이른다. , 훈수薰隧맹약盟約군위君位(君命)를 가탁假託하였으니 그대의 가 셋이다.注+태사太史에 ‘칠자七子’로 기록하게 한 일을 이른다.
죽을죄가 셋이 있으니 어찌 용인容忍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속히 죽지 않는다면 장차 대형大刑(死刑)이 이를 것이다.”고 하니, 공손公孫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고별告別[辭]하기를 “나는 상처가 덧나 머지않아 죽을 것이니, 하늘을 도와 나를 학대虐待하지 말라.”注+[부주]朱: 상처가 하여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다. 하늘이 이미 나를 학살虐殺하려 하니, 그대는 다시 하늘을 도와 나를 학대虐待하지 말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자산子産이 “사람이 누군들 죽지 않으랴만 흉인凶人이 제 에 죽지 못하는 것은 천명天命(天意)이다.
그대는 흉악凶惡한 짓을 하여 흉악凶惡한 사람이 되었으니, 내가 하늘을 돕지 않고 어찌 흉악凶惡한 사람을 돕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손公孫이 아들 저사褚師로 삼아 주기를 청하니注+자석子晳(公孫 )의 아들이다. 저사褚師시관市官(市場을 관리管理하는 벼슬아치)이다. ,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에게 만약 재능才能이 있다면 임금께서 장차 임용任用할 것이지만, 재능才能이 없다면 머지않아 그대를 따라갈 것이다.注+[부주]朱: 머지않아 너의 뒤를 따라 주살誅殺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대는 그대의 를 생각지 않고, 또 무슨 낯으로 자식의 임용任用하는가?
속히 죽지 않으면 장차 사구司寇가 이를 것이다.”고 하였다.
7월 임인일壬寅日공손公孫이 목매 죽으니, 그 시신屍身주씨周氏의 거리에 펼쳐 놓고서注+는 길이다. 나무에 죄상罪狀을 기록하여 시신屍身 위에 올려놓았다.注+나무에 그 죄상罪狀을 기록하여 시신屍身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나라 소강少姜이 죽자, 소공昭公나라로 가기 위해 출발出發하여 황하黃河 가에 당도하니, 진후晉侯사문백士文伯을 보내 와서 사양辭讓하기를 “소강少姜정실正室이 아니니注+진후晉侯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소강少姜을 위해 부인夫人을 입었기 때문에 제후諸侯들이 조상弔喪하려 한 것이다. 진후晉侯는 감히 사사로운 일로 제후諸侯를 번거롭게 할 수 없으므로 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부주]林: 소강少姜적부인嫡夫人으로 진후晉侯대등對等신분身分배우자配偶者가 아니라는 말이다. , 노군魯君께서 왕림枉臨하지 마시기를 합니다.”고 하였다.
소공昭公은 돌아오고, 계손숙季孫宿은 계속해 가서 수복襚服하였다.注+소강少姜수복襚服한 것이다. 소공昭公계추季秋에 갔다가 맹동孟冬에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 기록했기 때문에 〈이를 기록한〉 에 있다.
숙향叔向진후晉侯에게 진무우陳無宇에 대해 말하기를 “저 사람이 무슨 를 지었습니까?注+진무우陳無宇이다.
임금님께서는 공족대부公族大夫를 보내어 소강少姜을 맞이하게 하셨으나, 나라는 〈우리 나라를 대우待遇하여 그보다 높은〉 상대부上大夫를 보내어 호송護送하게 하였는데, 〈임금님께서는〉 오히려 ‘불공不恭하다.’고 하셨으니, 임금님의 요구要求가 너무 탐욕貪慾스럽습니다.注+[부주]林: 나라가 나라에 요구要求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게 탐욕貪慾스럽다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불공不恭하였으면서注+맞이하러 간 나라 사자使者지위地位소강少姜호송護送나라 사자使者지위地位보다 낮았으니, 나라가 불공不恭을 범했다는 말이다. 나라의 사자使者를 잡았으니, 임금님의 형벌刑罰이 너무 편벽偏僻되셨습니다.
이러고서야 어찌 맹주盟主가 될 수 있겠습니까.注+공평公平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소강少姜생전生前에 그의 석방釋放을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注+진무우陳無宇석방釋放요청要請한 말을 이른다. 고 하였다.
겨울 10월에 진무우陳無宇가 돌아갔다.注+진후晉侯진무우陳無宇사면赦免한 것이다.
11월에 나라 인단印段나라에 가서 조상弔喪하였다.注+소강少姜조상弔喪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此[比] : 저본에는 ‘此’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比’로 바로잡았다.
역주2 四輔 : 四輔는 바로 四臣을 가리킨 말로 그 詩에 말한 疏附(아랫사람을 이끌고 윗사람을 가까이하는 신하)‧先後(앞뒤에서 인도하는 신하)‧奔秦(德으로 曉喩하여 聲譽를 宣揚하는 신하)‧禦侮(敵의 氣勢를 꺾는 武臣)이다.
역주3 矢[矣] : 저본에는 ‘矢’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矣’로 바로잡았다.
역주4 喜[嘉] : 저본에는 ‘喜’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嘉’로 바로잡았다.
역주5 疆[彊] : 저본에는 ‘疆’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 目的地까지 護送해 가서 引受人에게 引繼하는 것이다. 〈楊注〉
역주7 是以亂作 : 亂은 陳無宇가 잡힌 것을 이른다. 〈楊注〉
역주8 郊使 : 임금의 命을 받고 近郊로 나아가 賓을 慰勞하는 使者이다.
역주9 : 宗은 本이다. 《國語》 〈晉語四〉에 ‘禮賓矜窮禮之宗也’의 宗을 韋昭注에 ‘宗은 本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0 詩曰……夫子近德矣 : 詩의 原義는 ‘너의 威儀를 공경하고 삼가서 有德者를 가까이하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原義대로 解釋하면 下文의 ‘夫子近德’과 말이 연결되지 않으므로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11 駟氏與諸大夫欲殺之 : 駟氏가 同族인 公孫黑을 죽이고자 한 것은, 모든 大夫가 다 그를 미워하니 宗族에 禍가 미칠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역주12 在襄三十「一」年 : 伯有의 亂은 伯有가 公孫黑의 攻擊을 받아 죽은 일을 이른다. 이 일은 襄公 30년 傳에 자세히 보인다. 31년에 있었다고 한 杜注는 옳지 않다.
역주13 無厭 : 滿足이 없다는 말로 끝이 없다는 뜻이다.
역주14 昆弟爭室 : 兄弟가 한 女人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툰 일은 昭公元年에 있었다.
역주15 謂使大史書七子 : 七子로 기록하게 한 일도 昭公元年에 있었다.

춘추좌씨전(5)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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