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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6)

춘추좌씨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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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八年春 陳侯之弟招殺陳世子偃師注+하다
8년 봄에 진후陳侯의 아우 나라 세자世子언사偃師살해殺害하였다.注+수악首惡(惡行을 저지른 수괴首魁)인데도 〈인신人臣이〉 상쇄相殺를 따랐다. 그러므로 ‘’로 하고 또 ‘세자世子’로 한 것이다.
[經]夏四月辛丑 陳侯溺卒注+襄二十七年 大夫盟于宋 하다
여름 4월 신축일辛丑日진후陳侯하였다.注+양공襄公 27년에 나라 대부大夫공환孔奐나라에서 나라 대부大夫숙손표叔孫豹결맹結盟하였다.
[經]叔弓如晉하다
숙궁叔弓나라에 갔다.
[經]楚人執陳行人干徵師殺之注+稱行人 明非行人罪하다
초인楚人나라 행인行人간징사干徵師를 잡아 죽였다.注+행인行人이라 하여 행인行人가 아님을 밝혔다.
[經]陳公子留出奔鄭注+留爲招所立 未成君而出奔하다
나라 공자公子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에 의해 임금으로 세워졌으나, 임금으로서의 위치位置안정安定되기 전에 출분出奔하였기 때문에 ‘진후陳侯’로 칭하지 않고 ‘공자公子’로 칭한 것이다.
[經]秋 蒐于紅注+革車千乘 不言大者 經文闕也 紅 魯地 沛國蕭縣西有紅亭 遠疑 [附注] 林曰 書蒐始此 蒐狩不書 必違禮而後書 於是舍中軍 四分公室 季氏擇二 二子各一 皆盡征之 而貢於公 蒐于紅也 自根牟至于商衛 革車千乘 皆三家之師也 自是而屢蒐 三家所以耀武焉爾 是故桓莊之狩 必言公 昭定之蒐 不言公矣하다
가을에 에서 열병閱兵하였다.注+에 ‘혁거革車(兵車)가 천승千乘이었다.’고 하였으니, 〈‘대수大蒐’라고 해야 하는데〉 ‘’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에 글자가 빠진 것이다. 나라 땅이다. 패국沛國소현蕭縣 서쪽에 홍정紅亭이 있다. 너무 멀리 나갔으니 의심스럽다. [부주]林: ‘’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수수蒐狩(軍事訓鍊)는 기록하지 않고 반드시 를 어긴 뒤에야 기록한다. 이때 나라는 중군中軍을 없애고 공실公室의 군대를 사등분四等分하여 계씨季氏가 그 중에 둘을 차지하고, 맹손孟孫숙손叔孫이 각각 하나씩을 차지하여, 삼가三家 모두 〈병역兵役종사從事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징수徵收하여 〈그 일부를〉 공실公室에 바쳤다. 에서 군사훈련을 한 것은 근모根牟로부터 (宋)나라와 나라의 접경接境에까지 이른 것이다. 혁거천승革車千乘은 모두 삼가三家의 군대이다. 이때부터 자주 군사훈련을 한 것은 삼가三家무력武力과시誇示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환공桓公장공莊公 때의 군사훈련에는 반드시 ‘’을 말하였고, 소공昭公정공定公 때의 군사훈련에는 ‘’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經]陳人殺其大夫公子過注+與招共殺偃師 書名 罪之하다
진인陳人이 그 대부大夫공자公子를 죽였다.注+와 함께 언사偃師살해殺害하였다. 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에게 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經]大雩注+無傳 不旱而秋雩 過也하다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가뭄이 들지 않았는데도 가을에 우제雩祭를 지낸 것이다. 이를 기록한 것은 시기時期가 지난 뒤에 지냈기 때문이다.
[經]冬十月壬午 楚師滅陳注+不稱將帥 不以告 壬午 月十八日하다
겨울 10월 임오일壬午日초군楚軍나라를 격멸擊滅하였다.注+장수將帥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오일壬午日은 10월 18일이다.
[經]執陳公子招하야 放之于越注+無傳 復稱公子 兄已卒하다
나라 공자公子를 잡아 나라로 추방追放하였다.注+이 없다. 〈를 ‘’로 하지 않고,〉 다시 ‘공자公子’로 칭한 것은 그 진애공陳哀公이〉 이미 하였기 때문이다.
[經]殺陳孔奐注+無傳 招之黨 楚殺之하다
나라 공환孔奐을 죽였다.注+이 없다. 이기 때문에 초인楚人이 그를 죽인 것이다.
[經]葬陳哀公注+嬖人袁克葬之 魯往會 故書 하다
진애공陳哀公장사葬事 지냈다.注+폐인嬖人원극袁克진애공陳哀公장사葬事를 지냈다. 나라 대부大夫가 가서 회장會葬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傳]八年春 石言于晉魏楡注+魏楡 晉地 [附注] 林曰 晉魏邑之楡地 有石忽作人言하다
8년 봄에 나라 위유魏楡에서 돌이 말을 하는 변괴變怪가 일어났다.注+위유魏楡나라 땅이다. [부주]林: 나라 위읍魏邑 땅에 돌이 갑자기 사람의 말을 하는 일이 있었다.
晉侯問於師曠曰 石何故言 對曰 石不能言하니 或馮焉注+謂有精神馮依石而言이니이다
진후晉侯사광師曠에게 “돌이 무엇 때문에 말을 하는가?”라고 묻자, 사광師曠이 “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귀신鬼神이 혹 돌에 붙어서 말을 한 듯합니다.注+정신精神(鬼神을 이름)이 돌에 의지해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른 것이다.
不然이면 民聽濫也注+濫 失也 니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백성들이 잘못 들었을 것입니다.注+(잘못)이다.
抑臣又聞之注+抑 疑辭컨대 曰 作事不時하야 怨讟動於民이면 則有非言之物而言이라하니이다
그러나 이 또 듣건대注+의사疑辭이다. 토목土木역사役事를 일으키는 것이 철에 맞지 않아, 원망과 비방이 백성들 사이에 진동震動하면 말 못하는 물건이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今宮室崇侈하야 民力彫盡注+彫 傷也 일새 怨讟竝作하야 莫信其性注+性 命也 民不敢自保其性命하니 石言不亦宜乎잇가
지금 궁실宮室을 높고 사치스럽게 지어 백성들의 재력財力노동력勞動力고갈枯渴되었으므로注+이다. 백성들은 생명生命[性]을 보존할 수 없어注+생명生命이다. 백성들이 감히 스스로 자기의 생명生命보존保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원망과 비방이 함께 일어나고 있으니 돌이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於是晉侯方築虒祁之宮注+虒祁 地名 在絳西四十里臨汾水하다
진후晉侯가 이때 사기궁虒祁宮을 짓는 중이었다.注+사기虒祁지명地名으로 (晉의 국도國都)에서 서쪽으로 40리 밖의 분수汾水 가에 있다.
叔向曰 子野之言君子哉注+子野 師曠字
숙향叔向사광師曠의 말을 듣고 말하기를 “자야子野(師曠)의 말이 군자君子답다.注+자야子野사광師曠이다.
君子之言 信而有徵이라 故怨遠於其身注+怨咎遠其身也하고 小人之言 僭而無徵이라 故怨咎及之라하니라
군자君子의 말은 성실하여 증거가 있기 때문에 원망이 그 몸에 미치지 않고注+원망이 그 몸에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소인小人의 말은 허위虛僞[僭]여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원망이 미치는 것이다.
詩曰 哀哉不能言이여
시경詩經》에 ‘가엾도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여!
唯躬是瘁注+詩小雅也 不能言 謂不知言理 以僭言見退者 其言非不從舌出 以僭而無信 自取瘁病 故哀之 니라
말을 내지 않는 것은 자신만을 해칠[瘁] 뿐이기 때문이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우무정편雨無正篇〉의 시구詩句이다. 불능언不能言은 말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여, 참언僭言(虛言)을 했다 하여 물리침을 당하는 자를 이른다. 그 말이 혀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나 거짓되고 진실하지 못하여 스스로 환해患害만을 취하기 때문에 가엾다고 한 것이다.
哿矣能言이여
아름답도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여!
巧言如流하야 俾躬處休로다하니 其是之謂注+哿 嘉也 巧言如流 謂非正言而順敍 以聽言見答者 言其可嘉 以信而有徵 自取安逸 師曠此言 緣問流轉 終歸于諫 故以比巧言如流也 當叔向時 詩義如此 故與今說詩者小異ᄂ저
교묘한 말을 물 흐르듯이 하여 그 몸을 안락安樂[休]에 처하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는 아마도 사광師曠의 경우를 이른 듯하다.注+이다. 교언여류巧言如流는 바른 말은 아니지만 사리事理에 맞고 협조적協調的이어서 받아들일 만하다 하여 보답을 받은 자를 이른다. 그 말이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성실하고 증거가 있어 스스로 안일安逸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광師曠의 이 말은 물음에 따라 유전流轉(變遷)하였으나 끝내 간언諫言으로 귀착歸着하기 때문에 교언여류巧言如流로 비유한 것이다. 숙향叔向시대時代에는 의 뜻을 이와 같이 보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를 해설하는 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是宮也成이면 諸侯必叛하고 君必有咎 夫子知之矣注+爲十年晉侯彪卒傳로다
완성完成되면 제후諸侯가 반드시 배반하고 임금님께 재화災禍가 닥칠 것을 부자夫子(師曠)는 이미 안 것이다.”注+소공昭公 10년에 진후晉侯의 배경이다. 고 하였다.
[傳]陳哀公元妃鄭姬生注+元妃 嫡夫人也하고 二妃生公子留하고 下妃生公子勝하다
진애공陳哀公원비元妃정희鄭姬도태자悼太子언사偃師를 낳고注+원비元妃적부인嫡夫人이다., 이비二妃공자公子를 낳고, 하비下妃공자公子을 낳았다.
二妃嬖하니 留有寵하야 屬諸司徒招與公子過注+招及過皆哀公弟也하다
이비二妃애공哀公의 사랑을 받으니 애공哀公공자公子총애寵愛하여 그를 사도司徒공자公子에게 부탁付託하였다.注+는 모두 진애공陳哀公의 아우이다.
哀公有廢疾하니 三月甲申 公子招公子過殺悼太子偃師하고 而立公子留하다
진애공陳哀公난치병難治病에 걸리자, 3월 갑신일甲申日공자公子공자公子도태자悼太子언사偃師를 죽이고 공자公子태자太子로 세웠다.
[傳]夏四月辛亥 哀公縊注+憂恚自殺 經書辛丑 從赴하다
여름 4월 신해일辛亥日진애공陳哀公이 목매 죽었다.注+근심과 분한憤恨(憤怒와 회한悔恨)으로 스스로 목매 죽은 것이다. 신축일辛丑日로 기록한 것은 부고赴告를 따른 것이다.
干徵師赴于楚注+干徵師 陳大夫하고 且告有立君하다
간징사干徵師나라에 가서 을 알리고注+간징사干徵師나라 대부大夫이다. 또 새 임금이 선 것을 하였다.
公子勝愬之于楚注+以招過殺偃師告愬也하니 楚人執而殺之注+殺干徵師하다
공자公子이 〈태자太子언사偃師를 죽인 일을〉 나라에 고소告訴하니注+언사偃師를 죽인 것을 고소告訴한 것이다. 초인楚人간징사干徵師를 잡아 죽였다.注+간징사干徵師를 죽인 것이다.
公子留奔鄭하다
〈이 소식을 듣고〉 공자公子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書曰 陳侯之弟招殺陳世子偃師라하니 罪在招也 楚人執陳行人干徵師殺之라하니 罪不在行人也注+疑爲招赴楚當同罪故重發之
에 “진후陳侯의 아우 나라 세자世子언사偃師살해殺害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에게 있음을 밝힌 것이고, “초인楚人나라 행인行人간징사干徵師를 잡아 죽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행인行人에게 있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注+간징사干徵師공자公子를 위해 나라에 가서 을 알렸으니 당연히 와 같은 가 된다고 의심할 것이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거듭 을 낸 것이다.
[傳]叔弓如晉하니 賀虒祁也注+賀宮成 游吉相鄭伯以如晉하니 亦賀虒祁也
숙궁叔弓나라에 갔으니 사기궁虒祁宮낙성落成축하祝賀하기 위함이었고注+사기궁虒祁宮낙성落成축하祝賀하기 위해서이다., 유길游吉정백鄭伯을 도와 나라로 갔으니 역시 사기궁虒祁宮낙성落成축하祝賀하기 위함이었다.
史趙見子大叔曰 甚哉其相蒙也注+蒙 欺也 [附注] 林曰 言鄭伯來賀宮成 實甚相欺
사조史趙자태숙子太叔(游吉)을 보고 말하기를 “심하구려! 그대들이 서로 속임이여!注+은 속임이다. [부주]林: 정백鄭伯이 와서 사기궁虒祁宮낙성落成축하祝賀하는 것이 실은 매우 서로를 속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可弔也어늘 而又賀之로다 子大叔曰 若何弔也리오
애도哀悼해야 할 일인데 도리어[又]축하祝賀하니 말이오.”라고 하니, 자태숙子太叔이 말하기를 “어찌 애도哀悼할 수 있겠소.
其非唯我賀 將天下實賀注+言諸侯畏晉 非獨鄭하리라
우리만이 축하할 뿐 아니라 장차 천하天下제후諸侯가 모두 와서 축하할 것이오.”注+제후諸侯들이 나라를 모두 두려워하니 〈모두 와서 축하할 것이고〉 우리 나라만이 와서 축하할 뿐이 아니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傳]秋 大蒐于紅하야 自根牟至于商衛하니 革車千乘注+大蒐 簡車馬也 根牟 魯東界 琅邪陽都縣有牟鄕 商 宋地 魯西竟接宋衛也 言千乘 明大蒐 且見魯衆之大數也이러라
가을에 에서 대대적으로 군사훈련軍事訓鍊실시實施하여 근모根牟로부터 (宋)나라와 나라의 접경接境에까지 이르렀는데, 이 훈련訓練에 참여한 혁거革車(兵車)가 천승千乘이었다.注+대수大蒐에는 군실軍實을 계산하고 거마車馬검열檢閱한다. 근모根牟나라 동쪽 경계境界이다. 낭야琅邪양도현陽都縣모향牟鄕이 있다. 나라 땅이다. 나라 서쪽 경계境界나라 나라와 하였다. 천승千乘이라 말하여 대대적인 훈련訓練임을 밝히고 또 나라 군중軍衆가 많음을 드러내었다.
[傳]七月甲戌 齊子尾卒하다
7월 갑술일甲戌日나라 자미子尾하였다.
子旗欲治其室注+子旗 欒施也 欲幷治子尾之家政 하야 丁丑 殺梁嬰注+梁嬰 子尾家宰하고 八月庚戌 逐子成子工子車注+三子 齊大夫 子尾之屬 子成 頃公子固也 子工 成之弟鑄也 子車 頃公之孫捷也 하니 皆來奔注+不書 非卿 하다
자기子旗자미子尾의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여注+자기子旗난시欒施이다. 자미子尾가사家事(家政)까지 아울러 관리管理하고자 한 것이다. 정축일丁丑日양영梁嬰을 죽이고注+양영梁嬰자미子尾가재家宰이다. , 8월 경술일庚戌日자성子成자공子工자거子車축출逐出하니注+세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자미子尾하속下屬(部下)이다. 자성子成경공頃公의 아들 이고, 자공子工자성子成의 아우 이고, 자거子車경공頃公의 손자 이다. 이들이 모두 나라로 도망해 왔다.注+〈이들의 출분出奔을〉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기 때문이다.
而立子良氏之宰注+子良 子尾之子高彊也 子旗爲子良立宰 한대 其臣曰 長矣注+孺子 謂子良 [附注] 林曰 臣 子尾之家臣 어늘 而相吾室 欲兼我也注+兼 幷也라하고 將攻之注+[附注] 林曰 授甲於子尾家之徒衆 將攻子旗 하니
자기子旗가 새로 자량子良(子尾의 아들)의 가재家宰(家臣의 )를 세우자注+자량子良자미子尾의 아들 고강高彊이다. 자기子旗자량子良을 위해 가재家宰를 세워준 것이다. , 자량子良가신家臣이 말하기를 “유자孺子장성長成하여注+유자孺子자량子良을 이른다. [부주]林: 자미子尾가신家臣이다. 〈집안일을 처리할 수 있는데〉 우리 집안일을 도우려는 것은 우리 집안을 겸병兼竝하려는 것이다.”注+합병合幷이다. 고 하고서, 가병家兵들을 무장武裝시켜[授甲]자기子旗공격攻擊하려 하였다.注+[부주]林: 자미가子尾家의 무리를 무장武裝시켜 자기子旗공격攻擊하려 한 것이다.
陳桓子善於子尾일새 亦授甲將助之하다
진환자陳桓子자미子尾와 친한 사이였으므로 역시 그 가병家兵무장武裝시켜 자량子良을 돕고자 하였다.
或告子旗한대 子旗不信타가 則數人告하니 將往注+[附注] 林曰 數人來告 子旗將往子尾氏之家하다
어떤 자가 이런 상황狀況자기子旗에게 하자 자기子旗는 믿지 않다가 몇 사람이 계속해 와서 보고報告하니, 자기子旗는 직접 자량子良의 집으로 가서 확인確認하려 하였다.注+[부주]林: 몇 사람이 와서 보고報告하니, 자기子旗자미씨子尾氏의 집으로 가려 한 것이다.
又數人告於道하니 遂如陳氏하다
또 몇 사람이 도중道中에서 보고報告하니, 자기子旗는 드디어 진씨陳氏의 집으로 갔다.
桓子將出矣라가 聞之而還注+聞子旗至 하야 而逆之注+去戎備 著常游戱之服하다
진환자陳桓子출병出兵하려다가 자기子旗가 온다는 말을 듣고 돌아와서注+자기子旗가 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복游服으로 갈아입고서 나아가 자기子旗를 맞이하였다.注+융비戎備(武備)를 제거하고서 평소에 입던 유희복游戱服을 입은 것이다.
注+問桓子所至한대 對曰 聞彊氏授甲將攻子注+[附注] 林曰 彊氏 卽高彊子良也 라하니 子聞諸
자기子旗환자桓子에게 나에게 할 바가 무엇이냐고 묻자注+청명請命환자桓子에게 가려던 곳을 물은 것이다. , 대답하기를 “듣건대 강씨彊氏(子良)가 가병家兵무장武裝시켜 그대를 공격攻擊하려 한다고 하는데注+[부주]林: 강씨彊氏는 바로 고강高彊자량子良이다. 그대는 들었습니까?”라고 하였다.
曰 弗聞이라 子盍亦授甲
자기子旗가 “듣지 못했습니다.”고 하자, 환자桓子는 “그대는 어찌하여 가병家兵무장武裝시키지 않습니까?
無宇請從注+無宇 桓子名 하리라
나도 그대를 따르겠습니다.”注+무우無宇환자桓子의 이름이다. 고 하였다.
子旗曰 子胡然注+[附注] 林曰 子 謂桓子 何爲如此
자기子旗가 말하기를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하십니까?注+[부주]林: 환자桓子를 이른다.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孺子也 吾誨之라도 猶懼其不濟하야 吾又寵秩之注+謂爲之立宰 [附注] 林曰 我敎誨子良 猶恐子良不能成人 寵秩子良 請爲之立宰니라
자량子良은 어린아이이니, 나는 그를 교회敎誨하여도 오히려 성가成家(집안을 유지維持함)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내 또 그를 총애寵愛하여 관직官職을 주었습니다.注+자량子良을 위해 가재家宰를 세워주었다는 말이다. [부주]林: 나는 자량子良교회敎誨하여도 오히려 자량子良이 성인이 될 수 없을까 두려워서 자량子良을 총애하여 관직을 주고, 그를 위해 가재家宰를 세울 것을 청하였다는 말이다.
其若先人何注+[附注] 林曰 先人 謂子尾子雅 先世相好 今若相攻 何以見其先人
〈그런데 만약 그대의 말처럼 가병家兵을 일으켜 그를 공격攻擊한다면 죽어서〉 무슨 낯으로 선조先祖를 대하겠습니까?注+[부주]林: 선인先人자미子尾자아子雅를 이른다. 선조先祖들은 서로 우호友好하였는데, 지금 만약 〈그 자손이〉 서로 공격한다면 무슨 낯으로 그 선조先祖를 뵐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子盍謂之注+謂之使無攻我
그대는 어찌 그에게 나를 공격하지 말라고 이르지 않았습니까?注+자량子良에게 일러 나를 공격攻擊하지 말게 하라는 말이다.
周書曰 注+周書 康誥也 言當施惠於不惠者 勸勉於不勉者 茂 勉也라하니 康叔所以服弘大也注+服 行也니라 桓子稽顙曰 注+頃公靈公 欒氏所事之君 [附注] 林曰 言其降福於子하리니 吾猶有望注+望子旗惠及己 하노라 遂和之如初注+和欒高二家하다
주서周書〉에 ‘순종順從[惠]하지 않는 자를 순종하게 하고 힘쓰지 않는 자를 힘쓰게 하라.’注+주서周書〉는 〈강고康誥〉이다. 은혜恩惠를 베풀지 않아야 할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권면勸勉하지 않아야 할 자에게 권면해야 한다는 말이다. 는 힘쓰는 것이다. 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강숙康叔홍대弘大(寬大)한 정치政治[服]하게 된 원인입니다.”注+이다. 고 하니, 환자桓子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경공頃公영공靈公이 그대에게 을 내릴 것이니注+경공頃公영공靈公난씨欒氏가 섬겼던 임금이다. [부주]林: 경공頃公영공靈公이 그대에게 을 내릴 것이라는 말이다. , 나도 오히려 그대의 복이 나에게 미치기를 바랍니다.”注+자기子旗은혜恩惠가 나에게 미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두 집안이 전처럼 사이좋게 지내도록 화해和解시켰다.注+난씨欒氏고씨高氏 두 집안을 화해和解시킨 것이다.
[傳]陳公子招歸罪於公子過而殺之注+言招所以不死而得放 [附注] 林曰 二子共攻偃師 今招歸罪於過而殺之하다
나라 공자公子(世子 언사偃師를 죽인 )를 공자公子에게 돌려 그를 죽였다.注+이는 공자公子사형死刑을 당하지 않고 방면放免된 이유를 말한 것이다. [부주]林: 두 사람이 함께 언사偃師공격攻擊해 죽이고서, 지금에 와서는 가 그 에게 돌려 그를 죽인 것이다.
九月 楚公子棄疾帥師奉孫吳圍陳注+孫吳 悼大子偃師之子惠公하니 宋戴惡會之注+戴惡 宋大夫하야 冬十月壬午 滅陳注+壬午 十月十八日 傳言十一月 誤하다
9월에 나라 공자公子기질棄疾이 군대를 거느리고 손오孫吳(偃師의 아들)를 모시고 가서 나라를 포위包圍하니注+손오孫吳도태자悼太子언사偃師의 아들 혜공惠公이다., 나라 대악戴惡도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초군楚軍회합會合하여注+대악戴惡나라 대부大夫이다., 겨울 10월 임오일壬午日나라를 격멸擊滅하였다.注+임오일壬午日은 10월 18일이다. 에서 11월이라고 말한 것은 오류誤謬이다.
注+輿 衆也 袁克 嬖人之貴者 欲以非禮厚葬哀公 하니 楚人將殺之注+[附注] 林曰 將殺袁克한대 請寘之注+置馬玉 [附注] 林曰 袁克請置馬玉不用하고 旣又請注+私 盡君臣恩하야 私於幄이라가 加絰於顙而逃注+幄 帳也 逃 不欲爲楚臣 하다
여폐輿嬖원극袁克이 말을 죽이고 을 부수어 진애공陳哀公장사葬事 지내려 하니注+輿이다. 원극袁克폐인嬖人 중에 존귀尊貴한 자이다. 비례非禮진애공陳哀公장사葬事 지내고자 한 것이다. , 초인楚人이 그를 죽이려 하자注+[부주]林: 원극袁克을 죽이려 한 것이다.원극袁克은 말과 옥을 버리고 쓰지 않겠다고 청하고注+말과 옥을 버린 것이다. [부주]林: 원극袁克이 말과 을 버리고 쓰지 않기를 청한 것이다. , 이윽고 또 소변小便[私]을 보겠다고 청하여注+군신君臣은의恩義를 다하는 것이다. 장막 안으로 가서 소변을 보는 척하다가 머리에 수질首絰을 쓰고서 도망하였다.注+이다. 도망간 것은 나라의 신하臣下가 되고자 하지 않아서이다.
使穿封戌爲陳公曰注+戌 楚大夫 滅陳爲縣 使戌爲縣公 城麇之役不諂注+城麇役在襄二十六年 戌與靈王爭皇頡이라
초영왕楚靈王천봉술穿封戌진공陳公으로 삼으며 말하기를注+천봉술穿封戌나라 대부大夫이다. 나라를 격멸擊滅하고서 으로 만들어 천봉술穿封戌을 그 현공縣公으로 삼은 것이다. 성균城麇전쟁戰爭 때 그대가 나에게 아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성균城麇전쟁戰爭양공襄公 26년에 있었는데, 그때 천봉술穿封戌영왕靈王과 〈나라 포로捕虜황힐皇頡을 〈잡은 전공戰功을 서로〉 다투었다. 고 하였다.
侍飮酒於王 王曰 城麇之役 女知寡人之及此 女其辟寡人乎注+及此 謂爲王 [附注] 朱曰 女若知我爲楚君 必不敢與我爭皇頡也ᄂ저 對曰
천봉술穿封戌영왕靈王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 영왕靈王이 말하기를 “성균城麇전쟁戰爭 때 그대가 과인寡人이 이에 이를 줄(임금이 될 줄) 알았다면 그대는 아마 과인寡人에게 양보[辟]하였을 것이다.”注+급차及此는 임금이 된 것을 이른다. [부주]朱: 그때 네가 만약 내가 초군楚君이 될 줄 알았다면 반드시 감히 나와 황힐皇頡을 다투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자, 천봉술穿封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若知君之及此 臣必致死禮以息楚國注+息 寧靜也 [附注] 林曰 言若蚤知靈王簒位爲君 我必爲郟敖盡臣禮 致死以殺君 以寧息楚國之禍 이니이다
“만약 그때 임금님께서 이에 이를 줄 알았다면 은 반드시 〈전왕前王겹오郟敖를 위해 신하臣下의〉 를 지켜 죽을힘을 다해 임금님을 죽여 나라를 안정安定시켰을 것입니다.”注+영정寧靜이다. [부주]林: 만약 일찍이 영왕靈王왕위王位찬탈簒奪하여 임금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반드시 겹오郟敖를 위해 신하臣下를 다하여 죽을힘을 다해 임금님을 죽여 나라의 안식安息시켰을 것이라는 말이다.
晉侯問於史趙曰 陳其遂亡乎 對曰 未也니이다
진후晉侯(平公)가 사조史趙에게 “나라가 드디어 멸망滅亡할 것인가?”라고 묻자, 사조史趙가 “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公曰 何故 對曰
평공平公이 “무슨 까닭이냐?”라고 묻자, 사조史趙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顓頊之族也注+陳祖舜 舜出顓頊
나라는 전욱顓頊후예後裔입니다.注+나라는 조상祖上으로 삼고, 전욱顓頊에서 나왔다.
歲在鶉火 是以卒滅하니 陳將如之注+顓頊氏以歲在鶉火而滅 火盛而水滅 [附注] 林曰 鶉火 南方柳星午位 陳 顓頊之族 將如顓頊之數리이다
세성歲星순화鶉火에 있을 때에 전욱씨顓頊氏가 마침내 멸망滅亡하였으니, 나라도 장차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注+전욱씨顓頊氏세성歲星순화鶉火에 있는 해에 멸망滅亡하였으니, 하여 멸망滅亡한 것이다. [부주]林: 순화鶉火남방南方유수柳宿성수星宿위차位次이다. 나라는 전욱顓頊후손後孫이니, 장차 전욱顓頊과 같은 대수代數를 누릴 것이라는 말이다.
今在析木之津하니 猶將復由注+箕斗之間 有天漢 故謂之析木之津 用也 리이다
지금 세성歲星석목析木의 나루에 있으니 오히려 장차 다시 움[由]이 돋을 것입니다.注+기수箕宿두수斗宿 사이에 천한天漢이 있기 때문에 그곳을 일러 석목析木의 나루라고 한다. (쓰임)이다.
且陳氏得政于齊而後 陳卒亡注+物莫能兩盛 [附注] 林曰 齊陳氏 乃陳敬仲之後이리이다
그리고 또 진씨陳氏나라에서 정권政權을 잡은 뒤에야 나라가 마침내 멸망滅亡할 것입니다.注+물건은 둘이 함께 왕성旺盛할 수 없다. [부주]林: 나라의 진씨陳氏는 바로 진경중陳敬仲후손後孫이다.
自幕至于瞽瞍 無違命注+幕 舜之先 瞽瞍舜父 從幕至瞽瞍 間無違天命廢絶者하고 舜重之以明德일새 寘德於遂注+遂 舜後 蓋殷之興 存舜之後而封遂 言舜德乃至於遂하니이다 遂世守之하니 及胡公不淫이니이다 故周賜之姓하야 使祀虞帝注+胡公滿 遂之後也 事周武王 賜姓曰嬀 封諸陳 紹舜後하니이다
으로부터 고수瞽瞍에 이르기까지 천명天命을 어긴 이가 없었고注+선조先祖이고, 고수瞽瞍의 아버지이다. 으로부터 고수瞽瞍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천명天命을 어겨 폐절廢絶(衰落하여 가 끊김)한 자가 없었다는 말이다. , 이 거듭 밝은 을 가졌으므로 그 에게 이르러서注+후손後孫이다. 대개 나라가 일어났을 때 후사後嗣보존保存하여 해준 듯하니, 에게 이르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나라에 의해 제후諸侯해졌습니다.〉 후손後孫이 대대로 그 을 지키니 호공불음胡公不淫에 미쳐 〈나라에 의해 나라에 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호공胡公에게 하사下賜하고 우제虞帝(舜)의 제사祭祀를 받들게 하였습니다.注+호공胡公滿후손後孫이다. 주무왕周武王을 섬겨 ‘’라는 하사下賜받고 나라에 해져 의 뒤를 이었다.
臣聞盛德必百世祀라하니 虞之世數未也注+[附注] 林曰 自舜至今 未及百世之數 니이다 繼守將在齊하리니
이 듣건대 성대盛大을 가진 분은 백세百世 동안 제사祭祀를 받는다고 하는데, 우순虞舜대수代數가 아직 백세百世가 되지 않았으니注+[부주]林: 으로부터 지금까지 아직 백세百世에 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제사祭祀계승繼承해 지키는 일이 아마도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其兆旣存矣注+言陳氏興盛於齊 形兆已見니이다
이미 그 조짐이 있습니다.”注+진씨陳氏나라에서 흥성興盛할 조짐이 이미 드러났다는 말이다.
역주
역주1 譯註] 以首惡從殺例……世子 : 招가 公子過와 함께 世子偃師를 殺害하고서 公子留를 임금으로 세웠다. 楚나라가 陳大夫干徵師를 죽임에 미쳐 留가 鄭나라로 出奔하니 招는 罪를 過에게 돌려 陳人들에게 그를 죽이게 하였고, 楚나라가 와서 討伐함에 미쳐서는 또 首惡의 罪名을 過에게 돌렸으므로 招는 重罰을 면하고 越나라로 追放되었으니, 이는 招를 從犯으로 여긴 것이다. 招의 거짓말을 따른다면 經에 ‘過殺偃師’로 기록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仲尼께서 그 實狀을 아셨기 때문에 招를 首惡으로 기록한 것이다. ‘從殺例’는 兩人이 서로 殺害한 例를 따랐다는 말이다. 大臣이 서로 죽였을 경우, 죽은 자가 罪가 없으면 死者와 殺者의 名氏를 기록하여 殺者의 罪를 드러내고, 死者가 罪가 있으면 殺者의 名氏를 기록하지 않아 死者의 罪를 드러낸다. 世子가 비록 副主이지만 오히려 人臣이기 때문에 人臣이 相殺한 例를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弟’로 稱하여 殺者의 罪를 드러내고 또 ‘世子’로 칭하여 世子도 人臣임을 드러낸 것이다. 〈正義〉
역주2 匪舌是出 : 많은 說이 있다. 《毛詩正義》에는 ‘不得出是舌[말을 낼 수 없는 것은]’로 해석하여 ‘不敢發言’의 뜻으로 보았고, 《詩經集傳》에는 ‘非但出諸口[말을 입에서 낼 뿐만 아니라]’로 해석하였고, 《左氏會箋》에는 ‘不待從舌出[혀에서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로 해석하여 말이 나오자마자 禍가 몸에 닥친다는 뜻으로 보았고, 〈楊注〉에는 ‘楊樹達은 「匪는 彼로 읽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詩의 뜻은 저 말이 혀에서 나오면 단지 그 몸만을 해[病]칠 뿐이라는 말이다.’고 하였다. 譯者는 《毛詩正義》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3 悼太子偃師 : 悼는 偃師의 諡이다. 〈楊注〉
역주4 數軍實 : 군대들의 武器를 點檢하고 사냥에서 얻은 成果를 계산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냥으로 戰爭하는 方法을 익혔으니, 蒐는 사냥인 동시에 軍事訓鍊이다. 隱公 5년 傳의 杜注와 譯註參考할 것.
역주5 孺子 : 天子‧諸侯‧世卿의 어린 承繼人을 이른다.
역주6 授甲 : 甲冑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곧 군대를 武裝시키는 것이다.
역주7 游服 : 平常服이다.
역주8 請命 : 나에게 命할 바가 무엇인지를 물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9 惠不惠 茂不茂 : 杜注를 따르지 않고, ‘當使不順者順不勉者勉’이라고 한 《尙書正義》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0 頃靈福子 : 齊惠公이 頃公과 公子欒‧公子高를 낳고, 頃公이 靈公을 낳았다. 公子欒의 아들 公孫竈가 바로 欒施(子旗)의 아버지 子雅이고, 公子高의 아들 公孫蠆가 바로 高彊(子良)의 아버지 子尾이니, 靈公과 子雅‧子尾는 從兄弟間이고, 頃公은 子雅‧子尾의 伯父이다. 그러므로 頃公과 靈公이 그대에게 복을 내릴 것이라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11 輿嬖袁克殺馬毁玉以葬 : 輿嬖는 嬖大夫이다. 輿者는 임금의 車乘을 맡은 자로 晉나라의 七輿大夫 같은 類이다. 〈楊注〉 말은 陳侯가 타던 말이고 玉은 陳侯가 차던 玉이다. 下文에 ‘請寘之’라 한 것으로 보면 말을 아직 죽이지 않고 玉을 아직 부수지 않은 것이니, 아직 陳哀公을 장사 지내지 않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2 : 이 ‘私’字는 바로 襄公 15년 傳에 ‘師慧過宋朝將私焉’의 ‘私’이다. 그 注에 ‘私는 小便이다.’고 하였다. 袁克이 지키는 자에게 小便을 보겠다고 거짓말을 하자, 지키는 자는 거짓인지를 모르고 그를 놓아주니, 袁克은 드디어 帳幕 안으로 들어가서 小便을 보는 척하다가 도망간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3 : 由는 甹의 省文으로 베어낸 나무 등걸에 새로 돋는 움이다. 《左氏會箋》‧〈楊注〉

춘추좌씨전(6)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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