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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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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二十有二年春 하다注+須句雖別國 而削弱不能自通 爲魯私屬 若顓臾之比 魯謂之社稷之臣 故滅奔及反其君 皆略不備書 唯書伐邾取須句
22년 봄에 나라를 토벌하여 수구須句를 취하였다.注+수구須句가 비록 별도의 한 나라이지만 국토國土가 줄어들고 국력國力이 약해 독자적獨自的으로 제후諸侯교통交通할 수 없으므로 전유顓臾처럼 나라의 속국屬國이 되었는데, 나라는 이 수구須句사직社稷의 신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인邾人수구須句한 것과 수구자須句子나라로 도망온 것과 나라가 그 임금을 되돌려 보낸 것을 모두 생략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오직 나라를 토벌하여 수구須句를 취한 것만을 기록하였다.
여름에 송공宋公, 위후衛侯, 허남許男, 등자滕子나라를 토벌하였다.
[經]秋八月丁未 及邾人戰于升陘하다注+升陘 魯地 邾人縣公冑于魚門 故深恥之 不言公 又不言師敗績
가을 8월 정미일丁未日노인魯人주인邾人승형升陘에서 전쟁戰爭하였다.注+승형升陘나라 땅이다. 주인邾人의 투구를 어문魚門에 매달았기 때문에 그것을 매우 수치羞恥로 여겨 을 기록하지 않고, 또 군대가 패전敗戰한 것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經]冬十有一月己巳朔 宋公及楚人戰于泓하야 宋師敗績하다注+泓 水名 宋伐鄭 楚救之 故戰也 楚告命 不以主帥人數 故略稱人
겨울 11월 기사삭己巳朔송공宋公초인楚人에서 전쟁戰爭하다가 송군宋軍대패大敗하였다.注+은 물 이름이다. 나라가 나라를 토벌하니 나라가 구원救援하였다. 그러므로 전쟁한 것이다. 나라가 나라에 통고通告한 문서에 주장主將과 군대의 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으로 약칭略稱한 것이다.
[傳]二十二年春 注+得恤寡小之禮
22년 봄에 나라를 토벌討伐수구須句탈취奪取하고서 그 임금을 귀국歸國시켰으니 에 맞았다.注+작은 나라를 구휼救恤하는 에 맞았다는 말이다.
[傳]三月 鄭伯如楚하다
3월에 정백鄭伯나라에 갔다.
[傳]夏 宋公伐鄭하니 子魚曰
여름에 송공宋公나라를 토벌하니 자어子魚가 말하였다.
所謂禍在此矣注+怒鄭至楚 故伐之 爲下泓戰起
“내가 앞서 말한 ‘’라는 것이 이번 전쟁戰爭에 있을 것이다.”注+송공宋公정백鄭伯나라에 간 것에 하였기 때문에 나라를 토벌한 것이다. 이것이 11월에 에서 전쟁이 일어난 원인原因이 되었다.
[傳]初平王之東遷也注+周幽王爲犬戎所滅 平王嗣 故東遷洛邑 辛有適伊川이라가 見被髮而祭於野者注+辛有 周大夫 伊川 周地 伊 水也하고
당초에 평왕平王동천東遷할 때에注+주유왕周幽王견융犬戎에 의해 멸망滅亡되자 평왕平王왕위王位승계承繼하고서 낙읍洛邑으로 동천東遷하였다.신유辛有이천伊川에 갔다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야외野外에서 제사祭祀 지내는 자를 보고注+신유辛有나라 대부大夫이고, 이천伊川나라 땅이다. 는 물 이름이다. 말하였다.
不及百年하야 此其戎乎ᄂ저
“1백 년이 되지 않아 이곳은 이 될 것이다.
其禮先亡矣로다注+被髮而祭 有象夷狄
나라의 가 먼저 없어졌다.”注+머리를 풀어헤치고 제사 지내는 것은 오랑캐 풍속을 닮은 것이다.
秦晉遷陸渾之戎于伊川하다注+允姓之戎居陸渾 在秦晉西北 二國誘而徙之伊川 遂從戎號 至今爲陸渾縣也 計此去辛有過百年 而云不及百年 傳擧其事驗 不必其年信
가을에 나라와 나라가 육혼陸渾이천伊川으로 이주移住시켰다.注+윤성允姓이 살고 있는 육혼陸渾나라와 나라의 서북西北위치位置하였으므로 두 나라가 이들을 달래어 이천伊川으로 이주移住시키고서 드디어 이 살던 옛 땅의 이름에 따라 이천伊川육혼陸渾으로 고쳤으니, 지금의 육혼현陸渾縣이다. 계산해 보면 신유辛有의 시대에서 지금까지가 1백 년이 지났는데, 에 ‘1백 년이 되지 않아’라고 한 것은 그 일의 징험徵驗만을 들어 말한 것이니, 그 연수年數를 믿을 필요는 없다.
[傳]晉大子圉爲質於秦이러니 將逃歸할새 謂嬴氏曰 與子歸乎인저注+嬴氏 秦所妻子圉懷嬴也 對曰
나라 태자太子인질人質이 되어 에 있었는데 도망해 돌아오려 할 때에 영씨嬴氏에게 “그대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하자,注+영씨嬴氏나라가 자어子圉에게 아내로 준 회영懷嬴이다.영씨嬴氏가 대답하였다.
晉大子而辱於秦하니 子之欲歸 不亦宜乎잇가
공자公子나라의 태자太子나라에서 굴욕屈辱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공자公子가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寡君之使婢子侍執巾櫛注+婢子 婦人之卑稱 [附注] 林曰 巾以帨手 櫛以理髮 皆賤役 以固子也注+[附注] 林曰 蓋欲以安固子之心也어늘 하리이다注+[附注] 林曰 不敢從汝而歸 恐失君臣之義 不敢漏泄此言 恐傷夫婦之恩
그러나 우리 임금님께서 비자婢子에게 수건과 빗을 들고서 공자公子를 모시게 한 것은注+비자婢子부인婦人이 자신을 낮추어 일컫는 말이다. [부주]林: 수건으로 손을 닦아주고 빗으로 머리를 빗겨주는 것은 모두 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공자公子를 안심하고注+[부주]林: 공자公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나라에 있게 하기 위함인데 만약 공자公子를 따라 함께 나라로 간다면 이는 군명君命을 버리는 것이니 감히 따라가지 않겠습니다만 감히 이 말을 누설漏泄하지도 않겠습니다.”注+감히 당신을 따라 나라로 가지 않겠다는 것은 군신君臣의 의리를 잃을까 두려워서이고, 감히 이 말을 누설漏泄하지 않겠다는 것은 부부夫婦은애恩愛손상損傷할까 두려워서이다.
遂逃歸하다注+
는 마침내 도망해 나라로 돌아왔다.注+의 말은 사소史蘇이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傳]富辰言於王曰
부신富辰께 말하였다.
請召大叔하소서注+富辰 周大夫 大叔 王子帶 十二年奔齊
태숙太叔을 불러들이소서.注+부신富辰나라 대부大夫이다. 태숙太叔왕자王子인데 희공僖公 12년에 나라로 도망하였다.
詩曰 協比其鄰하면 昏姻孔注+詩 小雅 言王者爲政 先和協近親 則昏姻甚相歸附也 鄰 猶近也 孔 甚也 云 旋也이라하니
에 ‘이웃과 화목和睦하면 인척姻戚들도 매우 우애友愛한다.’고 하였습니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정월편正月篇〉이다. 왕자王者정치政治를 함에 있어 먼저 근친近親한 사람들과 화목和睦하게 지내면 인척姻戚들도 매우 서로 따른다는 말이다. 이고, 이고, 이다.
吾兄弟之不協이면 焉能怨諸侯之不睦이릿가
우리가 형제兄弟 사이에 화목和睦하지 못하다면 어찌 제후諸侯들의 불목不睦원망怨望할 수 있겠습니까?”
王說하다
이 기뻐하였다.
王子帶自齊復歸于京師하니 王召之也注+ 爲二十四年天王出居于鄭起
왕자王子나라에서 다시 경사京師로 돌아왔으니 이 불러들인 것이다.注+의 말은 중손추仲孫湫의 말이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희공僖公 24년에 천왕天王성주成周에서 나가 나라로 가서 거주居住하게 된 원인原因이 되었다.
[傳]邾人以須句故出師로되 公卑邾하야 不設備而禦之하다注+卑 小也
주인邾人나라가 수구須句구원救援한 일로 출병出兵하여 나라를 침범侵犯하는데도 나라를 얕보아 방비防備를 설치하지 않고서 방어防禦하였다.注+는 얕보는 것이다.
臧文仲曰國無小하니 不可易也니이다
장문중臧文仲이 말하였다. “나라에는 약소국弱小國이 따로 없으니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無備 雖衆이나 不可恃也니이다
방비防備가 없으면 아무리 군대가 많아도 믿을 수 없습니다.
詩曰 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며 如履薄冰注+詩 小雅 言常戒懼이라하고 又曰 敬之敬之어다
에 ‘조심하고 경계하기를 깊은 물가에 다다른 듯이, 엷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하라.’고 하고,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소민편小旻篇〉이다.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또 ‘공경하고 공경하라.
天惟顯思注+顯 明也 思 猶辭也라하니이다注+周頌 言有國宜敬戒 天明臨下 奉承其命甚難
천도天道는 밝아서注+이고, 어조사語助辭이다.천명天命보존保存하기가 쉽지 않다.’注+시경詩經》 〈주송周頌경지편敬之篇〉이다. 국가國家소유所有한 사람은 공경하고 경계해야 한다. 하늘은 밝게 아래를 굽어 살피므로 하늘의 명을 받들어 따르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고 하였습니다.
先王之明德으로도 猶無不難也하고 無不懼也 況我小國乎잇가
선왕先王의 밝은 덕으로도 어려워하지 않음이 없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작은 나라이겠습니까?
君其無謂邾小하소서
임금님께서는 나라를 작다고 얕보지 마소서.
蜂蠆有毒이온 而況國乎잇가
벌과 전갈도 독이 있는데 하물며 한 나라이겠습니까?”
弗聽하다
은 듣지 않았다.
八月丁未 公及邾師戰于升陘하야 我師敗績하다
8월 정미일丁未日주군邾軍승형升陘에서 전투하다가 아군我軍대패大敗하였다.
邾人獲公冑하야 縣諸魚門하다注+冑 兜鍪 魚門 邾城門 [附注] 林曰 懸諸邾之城門以辱公
주인邾人의 투구를 노획鹵獲하여 어문魚門에 달아 놓았다. 注+는 투구이다. 어문魚門나라의 성문城門이다. [부주]林: 그 투구를 나라의 성문城門에 매달아 희공僖公을 모욕한 것이다.
[傳]楚人伐宋以救鄭하다
초인楚人나라를 토벌하여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宋公將戰한대 大司馬固諫曰
송공宋公전쟁戰爭하려 하자, 대사마大司馬하였다.
天之棄商久矣어늘 君將興之하시니 不可赦也已注+大司馬固 莊公之孫公孫固也 言君興天所棄 必不可 不如赦楚勿與戰리다
“하늘이 나라를 버린 지 오래인데 임금님께서 부흥復興시키려 하시니,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注+대사마大司馬장공莊公의 손자 공손고公孫固이다. 께서 하늘이 버린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결코 불가능不可能하니 나라를 용서하고 싸우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弗聽하다
송공宋公은 듣지 않았다.
冬十一月己巳朔 宋公及楚人戰于泓하다
겨울 11월 기사삭己巳朔송공宋公초인楚人에서 전쟁戰爭하였다.
宋人旣成列하고 楚人未旣濟注+未盡渡泓水어늘
이때 송인宋人은 이미 전열戰列을 이루었으나 초인楚人은 아직 홍수泓水를 다 건너지 못하였다.注+군대가 아직 홍수泓水를 다 건너지 못한 것이다.
司馬注+子魚也 曰 彼衆我寡하니 及其未旣濟也하야 請擊之하소서 公曰 不可하다
사마司馬注+사마司馬자어子魚이다. “저들은 군대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저들이 다 건너기 전에 공격攻擊하소서.”라고 하니, 송공宋公은 “불가不可하다.”고 하였다.
旣濟而未成列이어늘 又以告한대 公曰 未可하다
초군楚軍홍수泓水를 다 건넜으나 아직 전열戰列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사마司馬가 또 공격하자고 고하니, 송공宋公은 또 “불가不可하다.”고 하였다.
旣陳而後擊之하야 宋師敗績하다 公傷股하고 門官殲焉하다注+門官 守門者 師行則在君左右 殲 盡也
초군楚軍이 전열을 이룬 뒤에 공격하였다가 송군宋軍대패大敗하여 송공宋公은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고, 문관門官들은 모두 죽었다.注+문관門官은 문을 지키는 사람인데, 출전出戰한 때에는 임금의 좌우에 있으면서 임금을 보호한다. 은 다 죽은 것이다.
國人皆咎公하니 公曰
국인國人이 모두 송공宋公을 탓하니 송공宋公은 말하였다.
君子不重傷注+[附注] 林曰 敵人已被傷者 不忍再傷之하고 不禽二毛注+二毛 頭白有니라
군자君子는 상처를 입은 을 거듭 찌르지 않고,注+[부주]林: 이미 상처를 입은 을 차마 재차 상해傷害할 수 없다는 말이다.이모二毛를 포로로 잡지 않는 것이다.注+이모二毛는 머리가 반쯤 세어 두 색깔이 나는 노인老人이다.
古之爲軍也 不以阻隘也注+不因阻隘以求勝하니 寡人雖亡國之餘注+宋 商紂之後 不鼓不成列이라注+恥以詐勝 [附注] 朱曰 敵人未成陣 則我不擊鼓以進兵 恥以詐取勝也
옛날의 전쟁에는 험한 지형地形을 이용해 을 공격하지 않았으니,注+험한 지형을 이용해 승리勝利를 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과인寡人이 비록 망국亡國의 후손이지만注+나라는 나라 주왕紂王의 후손이다. 전열戰列을 이루기 못한 에게 진격進擊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았노라.”注+속임수를 써서 승리하는 것을 수치羞恥로 여긴 것이다. [부주]朱: 적군敵軍전진戰陣을 갖추기 전에 우리가 북을 울려 진격進擊하지 않은 것은 속임수로 승리를 취하는 것을 수치로 여긴 것이다.
子魚曰
자어子魚가 말하였다.
君未知戰이로소이다
“임금께서는 전쟁을 모르십니다.
勍敵之人 隘而不列 天贊我也注+勍 强也 言楚在險隘 不得陳列 天所以佐宋 阻而鼓之 不亦可乎잇가 猶有懼焉이니이다注+雖因阻擊之 猶恐不勝
강한 적군이 지형地形이 험하여 전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니注+이다. 초군楚軍이 험한 곳에 있어 전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나라를 돕는 것이라는 말이다.이 험한 곳에 있을 때 공격攻擊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래도 오히려 승리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注+비록 이 험한 곳에 있어 전열을 갖추지 못한 기회를 이용하여 공격하더라도 승리하지 못할까 두렵다는 말이다.
且今之勍者 皆吾敵也 雖及胡耈라도 獲則取之어늘 何有於二毛릿가注+今之勍者 謂與吾競者 胡耈 元老之稱
오늘날 임금님과 패권霸權을 다투는 자들은 모두 우리의 이니 비록 늙은이라 하더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잡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저 이모二毛고려顧慮하겠습니까?注+금지경자今之勍者’는 우리와 경쟁競爭하는 자들을 이름이다. 호구胡耈원로元老를 일컫는 말이다.
明恥敎戰 求殺敵也注+明設刑戮 以恥不果 傷未及死 如何勿重이릿가注+言尙能害己
군대들에게 수치羞恥를 밝게 일러주고 전술戰術을 가르친 것은 을 죽이도록 요구한 것이니,注+형륙刑戮의 제도를 밝게 설치設置하여 용감勇敢하지 못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이다. 이 상처를 입고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거듭 상해傷害하지 않겠습니까?注+이 오히려 나를 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니이다注+言苟不欲傷殺敵人 則本可不須鬪
만약 거듭 상해傷害하는 것을 가엾게 여긴다면 애당초 상처를 입히지 않느니만 못하고, 이모二毛를 가엾게 여긴다면 에게 항복降服하느니만 못합니다.注+적군敵軍살상殺傷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본래 전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三軍以利用也注+爲利興 金鼓以聲氣也注+鼓以佐士衆之聲氣 利而用之 阻隘可也 聲盛致志 鼓儳可也니이다注+儳 巖 未整陳 [附注] 林曰 旣以聲盛而致士卒勇銳之志 乘敵人之儳巖未陳阻而鼓之可也
삼군三軍유리有利한 때를 보아 사용하는 것이고,注+이로움을 위해 일으킨다는 말이다.금고金鼓는 소리로써 사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니,注+북소리로 군사들의 사기士氣를 돕는 것이다.유리有利한 때를 만나 군대를 사용한다면 적이 험한 곳이 있을 때에 공격하는 것이 옳고, 북소리가 크게 울려 사기士氣가 높아졌으면 적이 전열戰列을 이루지 못했을 때 공격하는 것이 옳습니다.” 注+은 험한 곳이니[巖]전진戰陣정제整齊하지 못한 것이다. [부주]林: 이미 북소리가 크게 울려 사졸士卒의 용감한 의지意志가 드높아졌으면 적군敵軍이 험한 곳에서 전진戰陣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공격해야 한다는 말이다.
[傳]丙子晨 鄭文夫人羋氏姜氏勞楚子於柯澤注+楚子還 過鄭 鄭文公夫人羋氏 楚女 姜氏 齊女也 柯澤 鄭地하니 楚子使師縉示之俘馘하다注+師縉 楚樂師也 俘 所得囚 馘 所截耳
병자일丙子日 새벽에 정문공鄭文公부인夫人미씨羋氏강씨姜氏가택柯澤에서 초자楚子를 위로하니注+초자楚子나라를 치고 돌아갈 때 나라에 들른 것이다. 정문공鄭文公부인夫人미씨羋氏나라의 딸이고, 강씨姜氏나라의 딸이다. 가택柯澤나라 땅이다.초자楚子사진師縉을 시켜 그들에게 부괵俘馘을 보여 주게 하였다.注+사진師縉나라의 악사樂師이다. 는 잡은 포로이고, 은 베어온 적군敵軍의 귀이다.
君子曰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非禮也
가 아니다.
婦人送迎不出門하고 見兄弟不踰閾注+閾 門限하며 하나니라注+邇 近也 器 物也 言俘馘非近婦人之物
부인夫人은 남을 전송餞送하거나 영접迎接할 때 방문房門을 나가지 않고 형제兄弟를 만날 때에도 문지방을 넘지 않는 것이며,注+은 문지방이다.융사戎事에는 여인女人기물器物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다.”注+이고, 이다. 부괵俘馘부인婦人이 가까이 할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丁丑 楚子入享于鄭注+爲鄭所饗 九獻注+用上公之禮 九獻酒而禮畢하고 庭實旅百注+庭中所陳 品數百也하고 加籩豆六品하다注+食物六品加於籩豆 籩豆
정축일丁丑日초자楚子나라에 들어가 향연饗宴을 받을 때에注+나라의 접대를 받은 것이다.정백鄭伯이 아홉 잔의 술을 올리고,注+상공上公를 사용한 것이다. 아홉 잔의 술을 올리고서 향례享禮를 마친 것이다. 뜰에 백 가지의 예물禮物을 벌여 놓고,注+정중庭中에 벌여 놓은 물품物品의 수가 1백이라는 말이다.변두籩豆에 여섯 가지 식품食品추가追加하였다.注+식물食物 여섯 가지를 변두籩豆추가追加한 것이다. 변두籩豆예식禮食에 사용하는 그릇이다.
享畢하고 夜出 文羋送于軍이어늘 取鄭二姬以歸하다注+二姬 文羋女也 [附注] 林曰 姬 二女姓
연향宴享을 마치고 초자楚子가 밤에 나오는데, 문미文羋초자楚子나라 군중軍中까지 호송護送하니, 초자楚子나라의 이희二姬를 데리고 돌아갔다.注+이희二姬문미文羋의 두 딸이다. [부주]林: 는 두 딸의 이다.
叔詹曰
숙첨叔詹이 말하였다.
楚王其不沒乎注+不以壽終ᄂ저
초왕楚王은 아마도 수명壽命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注+수명壽命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다.
爲禮卒於無別이로다注+[附注] 朱曰 言取二甥女 是無別也
를 행하면서 남녀男女분별分別이 없는 일로 끝을 맺었으니 말이다.注+[부주]朱: 두 생질녀甥姪女를 취한 것이 바로 분별이 없다는 말이다.
無別不可謂禮 將何以沒이리오
남녀의 분별이 없는 것을 라 할 수 없으니 장차 어찌 수명대로 살다가 죽을 수 있겠는가?”
諸侯是以知其不遂霸也하다注+言楚子所以師敗城濮 終爲商臣所弑
제후諸侯는 이 일로 인해 초자楚子패업霸業을 이루지 못할 줄을 알았다.注+초자楚子성복城濮에서 패전敗戰하고 끝내 상신商臣에게 시해弑害된 원인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公伐邾取須句 : 李震相은 “邾나라가 須句國을 滅하였기 때문에 토벌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 宋公衛侯許男滕子伐鄭 : 李震相은 “鄭나라가 楚나라와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宋公이 이를 恨하여 세 나라의 군대를 몰고 가서 鄭나라를 토벌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3 伐邾……禮也 : 李震相은 “僖公이 須句를 취한 것은 明祀를 높이고 小國을 保護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은 그 土地를 탐한 것이다. 그러므로 邾나라를 승복시키지 못하여 마침내 升陘의 敗戰을 부른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4 立[位] : 저본에는 ‘立’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位’로 바로잡았다.
역주5 從子而歸……亦不敢言 : 朴致遠은 “嬴氏가 太子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婦人의 도리는 出嫁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명을 따르고 출가하면 남편의 명을 따르는 것이 바꿀 수 없는 의리이니, 이미 사람에게 몸을 허락하였다면 君命을 이유로 남편의 명을 따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는 三從의 의리를 크게 잃은 행위이다.”고 하였다.
역주6 傳終史蘇之占 : 僖公 15년 傳에 보이는 史蘇의 占이 들어맞은 것으로 傳文을 만들었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7 : 云을 杜注에는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는 周旋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역자는 鄭玄의 설을 취해 友愛로 번역하였다. 《毛詩》 鄭玄箋에 “云은 友이다.”고 하였다.
역주8 傳終仲孫湫之言也 : 僖公 13년 傳에 보이는 仲孫湫의 말이 끝내 들어맞은 것으로 傳文을 만들었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9 命不易哉 : 杜注를 따르지 않고 《詩傳集註》의 朱註를 취하여 번역하였다.
역주10 以[二] : 저본에는 ‘以’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11 若愛重傷……如服焉 : 楊伯峻은 “두 ‘愛’字는 모두 憐憫의 뜻이고, 두 ‘如’字는 모두 當의 뜻이다.”고 하였고, 《左氏會箋》에는 如를 不如의 준말로 해석하였다. 譯者는 《左氏會箋》의 설을 취하여 ‘하느니만 못하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2 戎事不邇女器 : 戎事에는 女子가 사용하는 器物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俘馘은 여자가 가까이 할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杜注의 해석은 옳지 않다.
역주13 禮食 : 宴饗를 베풀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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