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盛以
하며 하고 라가 하야는 行者 踐其首脊
하고 取而爨之而已
니
將復取而盛以 篋 衍
하며 巾以文繡
하고 하면 하리니
故로 伐樹於宋하며 削迹於衛하며 窮於商周하니 是 非其夢邪아
하면 彼 必
하야 하리니 觀古今之異
컨댄 猶猨狙之異乎周公也
니라
故
로 어늘 其里之醜人
이 하야 歸
하야 亦捧心而矉其里
한대 其里之富人
은 見之
하고 堅閉門而不出
커늘 貧人
은 見之
하고 挈妻子而去走
하니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안연顔淵이 노魯나라 악관樂官의 장長인 금金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유세遊說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선생은 〈이번 여행에서〉 궁지에 빠질 것이다.”
“무릇 제사 때 악령을 쫓기 위해 쓰는 추구芻狗가 아직 제사에 진열陳列되기 전에는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시尸와 축祝의 제관祭官들이 몸을 깨끗이 재계하고서 그것을 받들다가, 이미 진열陳列을 마침에 이르러서는 길가는 사람들이 머리와 등줄기를 밟고 지나가고 풀 베는 사람들이 주워서 불을 붙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것을〉 다시 가져다가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잔다면 그는 분명 악몽을 꾸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주 가위눌려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그대의 선생 또한 옛 성왕聖王들이 이미 진설했던 〈인의예악仁義禮樂이라고 하는〉 추구芻狗를 주워다가 모시고서 제자들을 끌어 모으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자고 있다.
그 때문에 송나라에서는 환퇴가 나무를 베어 죽이려 한 위험을 당했고 위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삭제되는 수모를 당하였고 상나라의 옛터나 주나라의 서울에서 궁지에 빠졌으니 이것이 바로 악몽이 아니겠는가.
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국경에서는 포위당해 7일간이나 불로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음과 삶이 서로 이웃이 될 정도로 죽도록 고생했으니 이것이 바로 가위눌려 고통을 당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무릇 물길을 가는 경우에는 배를 쓰는 것이 제일이고 땅 위를 가는 경우에는 수레를 쓰는 것이 제일이다.
그런데 배가 물 위에서 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땅 위에서 밀고 가려 한다면 죽을 때까지 하더라도 얼마(尋은 8척尺, 상常은 1장6척尺, 16척尺) 가지 못할 것이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뭍의 차이가 아니겠으며 주周의 문화文化와 노魯의 문화文化의 차이는 배와 수레 차이가 아니겠는가.
지금 노나라에서 옛날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그대로 시행하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마치 땅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은 것인지라 공연히 수고스럽기만 할 뿐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고 도리어 몸에는 재앙이 닥칠 것이다.
저 공자孔子라는 사람은 일정한 방향 없이 자유롭게 유전하는 도가 만물에 대응하여 다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잡아당기면 아래쪽으로 엎어지고 손을 놓아 버리면 위를 본다.
저 두레박은 사람이 끌어당겨서 그렇게 된 것이지 〈두레박 쪽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아래를 굽어보거나 위로 올려다보면서 사람에게 책망받는 일이 없다.
그 때문에 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예의 법도라고 하는 것도 똑같이 시행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황오제의 예의禮義와 법도法度를 열매에 비유하자면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의 열매와 같을 것이다.
그 나무들의 열매의 맛은 서로 다르더라도 사람의 입맛에 맞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그러므로 예의와 법도라고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지금 원숭이를 잡아다 놓고 주공周公의 옷을 입히면 원숭이는 반드시 그 옷을 깨물고 물어뜯고 잡아당겨 찢어서 깡그리 없애 버린 뒤에야 비로소 흡족해할 것이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원숭이와 주공周公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들의 제도를 흉내 내는 것은 마치〉 서시西施가 가슴을 앓아 마을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자 그 마을의 어떤 추녀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자기 집에 돌아가 그 또한 가슴을 부여잡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니 그 마을의 부자들은 그것을 보고는 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처자식을 이끌고 그 마을을 떠나 버렸다.
그 추녀는 찡그린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만 알았고 찡그린 것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선생은 〈가서〉 궁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