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으로) 橫行天下
하야 侵暴諸侯
하며 하며 貪得忘親
하야 不顧父母兄弟
하며 不祭先祖
하더니
若父 不能詔其子
하며 兄
이 不能敎其弟
인댄 則
어니따녀
今先生은 世之才士也로대 弟爲盜跖하야 爲天下害어늘 而弗能敎也하다니 丘는 竊爲先生하야 羞之하노니
先生이 言호대 爲人父者 必能詔其子하며 爲人兄者 必能敎其弟라하시나니
若子 不聽父之詔하며 弟不受兄之敎하면 雖今先生之辯인들 將柰之何哉리오
謁者 入通
한대 盜跖
이 聞之
하고 大怒
하야 目如明星
이오 하야 曰
生而長大하야 美好無雙하야 少長貴賤이 見而皆悅之 此上德也라
인댄 臣
은 請南使吳越
하며 北使齊魯
하며 東使宋衛
하며 西使晉楚
하야 使爲將軍
하야 造大城數百里
하야 立數十萬戶之邑
하고 尊將軍爲諸侯
하고 케호리니
今에 長大美好하야 人이 見而悅之者는 此 吾父母之遺德也니 丘 雖不吾譽나 吾는 獨不自知邪아
且吾는 聞之호라 好面譽人者는 亦好背而毁之라호라
於是에 民이 皆巢居하야 以避之하야 晝拾橡栗하고 暮栖木上하더니
하야 民
이 知其母
요 不知其父
하며 與麋鹿
으로 共處
하야 耕而食
하고 織而衣
하야 無有相害之心
하니 此 至德之隆也
니라
하고 湯
이 放其主
하고 武王
이 殺紂
하니 自是之後
론 以强
으로 陵弱
하며 以衆
으로 暴寡
하니
今
에 子 脩文武之道
하야 掌天下之辯
하야 以敎後世
하고 로 矯言僞行
하야 以迷惑天下之主
하야 而欲求富貴焉
하나니
盜 莫大於子어늘 天下는 何故로 不謂子를 爲盜丘요 而乃謂我를 爲盜跖고
世之所高 莫若黃帝로대 黃帝도 上不能全德하야 而戰涿鹿之野하야 流血百里하며
하며 禹 偏枯
하며 湯
이 放其主
하며 武王
이 伐紂
하며 文王
이 拘羑里
하니
로대 컨댄 皆以利
로 惑其眞
하야 而强反其情性
하니 其行
이 乃甚可羞也
로다
伯夷叔齊 辭孤竹之君하고 而餓死於首陽之山하야 骨肉을 不葬하고 鮑焦는
子胥 沈江하고 比干은 剖心하니 此二子者는 世謂忠臣也로대 然이나 卒爲天下笑하니라
人
이 上壽
는 百歲
오 中壽
는 八十
이오 下壽
는 六十
이나 하고 其中
에 開口而笑者 一月之中
에 不過四五日而已矣
니라
하니 어늘 不能悅其志意
하며 養其壽命者
는 皆非通道者也
라
孔子 再拜
하고 趨走出門
하야 上車
하야 執轡三失
하고 目
이 芒然無見
하고 하야 하야
공자孔子와 유하계柳下季는 서로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유하계의 아우는 이름을 도척盜跖이라 하였다.
도척은 9천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에 횡행하면서 제후들의 영토를 침략하고 포악한 행동을 일삼으며, 남의 집에 구멍을 뚫어 문 지도리를 떼어내고 들어가 남의 소나 말을 떼로 몰아 훔쳐내며, 남의 부녀를 납치 탈취하며, 도적질하여 얻는 이득을 탐하느라 친척도 잊었으며, 부모형제도 돌보지 않았고, 조상들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도척盜跖의 무리가 지나가는 성읍은, 큰 나라는 성벽을 닫아 굳게 지키고, 작은 나라는 보루堡壘에 들어가 지켜서 만백성들이 그를 고통스럽게 여겼다.
“남의 아버지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아들을 훈계하여 이끌 수 있어야 하고, 남의 형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아우를 가르쳐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로서 그 자식을 훈계하여 이끌 수 없고, 형으로서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없다면, 부자와 형제 같은 친척을 귀하게 여길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선생은 세상이 알아주는 재사才士이면서, 그 아우는 도척이라는 큰 도적으로 천하의 해害가 되고 있는데도 가르쳐 깨우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적이 선생을 위해서 이 일을 부끄러이 여깁니다.
그러하니, 나는 선생을 대신하여 가서 그를 설득해 보겠소.”
“선생이 말씀하시길, ‘남의 아비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을 훈계하여 이끌 수 있어야 하고, 남의 형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아우를 가르쳐 깨우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만일 자식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 아우가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비록 지금 선생의 웅변으로 설득한다 한들 장차 그것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도척盜跖이란 녀석의 사람됨은 마음은 용솟음치는 샘물처럼 끝이 없고, 의기意氣는 격렬한 회오리바람처럼 사나우며, 육체의 강건함은 어떤 적이라도 막아내기에 충분하며, 언변은 자기 잘못을 꾸며대어 변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상대가 제 마음에 들면 기뻐하지만, 제 마음에 거슬리면 욕지거리로 남을 어렵지 않게 욕보입니다.
그러나 공자孔子는 유하계柳下季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안회顔回더러 수레를 몰라 하고 자공子貢을 오른편에 앉힌 뒤 도척盜跖을 만나 보러 갔다.
도척은 이때 마침 졸개들을 태산太山의 남쪽 기슭에서 쉬게 하고, 사람의 간肝으로 회膾를 쳐서 그것을 간식으로 먹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서 알자謁者를 보고 말했다.
“노魯나라 사람 공구孔丘는 장군의 높은 의리를 듣고 알자謁者에게 삼가 재배합니다.”
알자謁者가 들어가 도척에게 전하였더니, 도척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눈은 번쩍거리는 별과 같고, 갓을 찌를 듯 머리카락을 위로 솟구치면서 말했다.
‘너는 말을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내어, 함부로 문왕文王이다 무왕武王이다 하며 칭송하고, 머리에는 나뭇가지처럼 장식이 많은 갓[冠]을 쓰고, 허리에는 죽은 소의 옆구리 뱃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차고 다니면서, 수다스레 잘못 투성이의 유설謬說을 지껄여대고, 농사짓지 않으면서 밥 먹으며, 베를 짤 줄도 모르면서 옷을 입고 다닌다.
게다가 입술을 놀리고 혀를 움직이면서 제멋대로 선악시비善惡是非의 기준을 만들어 천하의 군주들을 미혹시킨다.
그리하여 천하에서 학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서, 함부로 효孝니 제悌니 하는 덕목을 만들어 놓아 제후에 봉해지고 부귀하게 되는 요행을 바라게 하는 자이다.
그러니 너의 죄는 커서 무겁게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의 간으로 점심식사의 반찬에 보탤 것이다.’ ”
그런데도 공자는 다시 알자謁者를 통해서 말했다.
“저는 장군의 형님이신 유하계柳下季와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부디 장군의 신발이나마 군막軍幕 아래에서라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알자謁者가 다시 전하였더니 도척盜跖이 말했다.
공자는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자리를 피해서 도척에게 두 번 절했다.
도척은 크게 노하여 양다리를 떡 벌리고 앉은 채로 칼자루를 손에 잡고 눈을 부릅뜨고서, 마치 젖먹이는 어미 호랑이와 같이 사나운 소리로 말하였다.
네가 하는 말이 내 마음에 들면 살려줄 것이고, 내 마음에 거슬리면 죽여버리겠다.”
“제가 듣건대, 천하에는 세 가지 미덕美德이 있다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키가 크고 체격이 장대해서, 용모의 아름다움이 뛰어나 누구도 비길 수 없고, 젊은이도 늙은이도, 귀한 이도 천한 이도 모두 그를 보고 좋아하게 되는 것, 이것이 상덕上德입니다.
지식은 천지天地 만상萬象을 다 싸안아서 모르는 것이 없고, 능력이 모든 사물을 두루 다 처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중덕中德입니다.
용맹하고 결단력이 있어 많은 사람을 모아서 군대를 인솔할 수 있는 것, 이것이 하덕下德입니다.
사람 중에 누구라도 이 가운데 한 가지 덕이라도 갖추고 있으면, 충분히 군주의 자리에 앉아 제후로 일컬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을 전부 갖추고 계십니다.
키는 여덟 자 두 치나 되고, 얼굴에서는 빛이 나며, 입술은 선명한 붉은 빛깔을 하고 있으며, 치아는 모양이 아름다운 조개껍질처럼 정돈되어 아름다우며, 목소리는 육률육려六律六呂의 기본음인 황종黃鍾의 음률에 들어맞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장군을 이름하여 도척이라 하고 있으니 저는 적이 장군을 위하여 이를 부끄럽게 여겨 따르지 않습니다.
장군께서 제 말을 따를 뜻이 있으시다면, 저는 남쪽으로는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북쪽으로는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동쪽으로는 송宋나라와 위衛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서쪽으로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들로 하여금 장군을 위하여 사방 수백 리 되는 커다란 성곽城郭을 만들어서 수십 만 호의 성읍城邑을 건립하게 하고 장군을 제후의 한 사람이 되어 존경받게 하고 온 천하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개혁하고 난세를 일신一新하여 전쟁을 그만두고 병졸들을 쉬게 하고, 장군의 형제들을 거두어 양육하며 공손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聖人과 재사才士의 행동이고 또한 천하 만민의 소원입니다.”
이익利益을 가지고 행동을 고칠 수 있고 말로 충고하여 바로잡을 수 있는 상대는 모두 어리석은 보통 사람이라고 일컬을 뿐이다.
지금 〈나의 체격과 용모가〉 장대하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보고서 나를 좋아하는 것, 이것은 나의 부모가 물려준 미덕이니, 구丘 그대가 나를 칭찬해 주지 않더라도 내가 유독 그것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인가.
또 내가 듣건대, ‘남의 면전에서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뒤돌아서 헐뜯고 욕하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지금 구丘 그대가 나에게 커다란 성곽城郭과 많은 백성들을 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나를 이익으로 규정規正해서 범속한 인간으로 취급해서 나를 먹이고 길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큰 성곽과 많은 백성을 소유함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곽의 크기로 치자면 천하보다 큰 것이 없다.
요堯나 순舜은 천하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였지만 그 자손들은 송곳 하나 세워놓을 좁은 땅조차 없었으며,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은 스스로 서서 천자가 되었지만 그 자손은 모두 끊어지고 멸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그들이 손에 넣은 이익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아주 옛날에는 새와 짐승은 많았고 인류는 숫자가 적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짐승의 해害를 피했고, 낮에는 도토리나 밤을 줍고 날이 저물면 나무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명명命名하여 유소씨有巢氏의 백성이라고 하였다.
또 옛적에 사람들은 옷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여름이면 땔나무를 쌓아두었다가 겨울에는 이것으로 불을 때면서 지냈다.
그래서 이들을 명명하여 삶의 지혜를 아는 지생知生의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신농씨神農氏의 세상이 되어서는 〈사람들은〉 누워 잠자고 있을 때는 편안했고 일어나 깨어 있을 때에는 무심한 모양으로 한가로이 지내면서, 사람들이 자기의 어머니는 알아도 자기의 아버지는 알지 못하며, 크고 작은 사슴 무리들과 함께 살면서, 스스로 밭갈아 농사지어 먹고 스스로 베틀에 베짜서 옷을 입고서 서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않고 지냈으니, 그 때가 지덕至德이 잘 시행된 최융성기最隆盛期였다.
그런데 시대가 내려와 황제黃帝의 세상이 되어서는 지덕至德을 시행하지 못하여 치우蚩尤와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싸워 사상자死傷者가 흘린 피가 사방 백 리에 미쳤다.
요와 순이 천자가 되자 여러 신하의 지위를 만들어 상하차별을 확립했고, 은殷의 탕왕湯王은 그 주군인 하夏의 걸왕桀王을 추방했고 주周의 무왕武王은 은의 폭군인 주왕紂王을 죽였으니 이 이후부터는 그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능멸하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난폭하게 학대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탕왕과 무왕 이후로는 모두 난폭자의 무리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그대는 그러한 문왕 무왕의 도를 닦고서 천하의 언론을 장악하여 후세 사람들을 가르치고, 쿨렁쿨렁한 큰 옷에 넓은 폭의 얕은 띠를 매고 말을 비뚜로하고 행동을 거짓으로 하여 천하 군주들의 머리를 혼란에 빠뜨려서 자기의 재산과 지위를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 도적질이 그대보다 큰 것이 없는데 천하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대를 일러 도적놈 구丘라 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일러 도척이라고 하는가.”
“그대는 달콤한 말로 자로子路를 설득해서 그대의 추종자가 되게 하여, 자로로 하여금 〈용자勇者의 상징인〉 높은 관을 벗어 던지고 〈그가 차고 있던〉 긴 칼을 풀어 던지고 그대에게 가르침을 받게 하였다.
그래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구孔丘는 난폭한 행동을 누르고 악행을 금지시킬 수 있다.’고 하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자로는 위衛나라 임금 괴외蒯聵를 죽이려 하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그 몸은 위나라의 동문 가까이에서 소금에 절여지는 형벌을 당하고 말았으니, 이것은 너의 가르침이 지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재사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럴진댄 어찌하여 노魯나라에서 두 번이나 축출되었고, 위衛나라에서는 그대가 떠난 뒤 발자취를 삭제당할 정도로 미움받았고, 제齊나라에서 궁지에 몰리고,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군대에 포위되어 천하에 몸을 용납할 데가 없었는가?
그대는 자로로 하여금 그 같은 환난을 당하게 하였으니, 위로는 자기 몸을 편안히 지키지 못했고, 아래로는 남을 편안히 살게 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대의 도를 어찌 높이기에 충분하겠는가.”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로는 황제黃帝만 한 이가 없는데 그 황제조차도 오히려 그 미덕美德을 온전히 보전할 수 없어서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치우蚩尤와 전쟁하여 피가 흘러 사방 백 리까지 미쳤다.
그리고 요堯임금은 자식에 대하여 자애롭지 않았으며, 순舜임금은 어버이에게 불효하였으며, 우禹는 〈치수를 한답시고 몸을 돌보지 않아〉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탕湯은 그 주군인 하夏의 걸왕桀王을 추방하였으며, 무왕武王은 역시 그 주군인 은殷의 주왕紂王을 정벌하였으며, 문왕文王은 유리羑里 땅에 감금되었다.
그러니 이 일곱 사람은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들이었으나 자세히 따져본다면 모두 이익 때문에 참다운 진실을 잃어버려 무리하게 본성을 거슬렀으니, 그들의 행동은 〈높이 존숭되기는커녕〉 도리어 매우 부끄러워할 만하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현인賢人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이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지위를 사양하고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어, 그들의 시체는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채 산속에 버려졌다.
춘추시대의 은자隱者 포초鮑焦는 고결하게 행동하고 세상을 그르다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은 채로 말라 죽었고,
은대殷代의 은자 신도적申徒狄은 임금에게 간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짊어지고 황하의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되었으며,
진晉 문공文公의 신하인 개자추介子推는 지극히 충성스러웠는지라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는데 문공이 뒤에 그를 배반하였더니, 자추는 노하여 진나라를 떠나 나무를 껴안은 채 불에 타 죽고 말았으며,
노나라 사람 미생尾生은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가 여자가 오지 않았는데 한편 물이 자꾸 불어올라 오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끌어안고 죽었다.
그러니 이 여섯 선생들은 제사에 쓰려 찢어발긴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 아니면 바가지를 들고 걸식하는 거지와 다를 것이 없다.
모두 명예에 걸려 죽음을 경시하여, 삶의 근본을 생각하고 수명을 잘 기르지 못한 자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충신은 왕자王子 비간比干과 오자서伍子胥만 한 이가 없다.
그러나 오자서는 시체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 의해 장강에 가라앉혀졌고, 왕자 비간은 조카인 주왕紂王에 의해 심장이 갈라졌으니 이 두 선생은 세상에서 충신忠臣이라고 말하지만 마침내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상고로부터 이것을 살펴보건대, 〈저 황제‧요‧순으로부터〉 오자서‧왕자 비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존숭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니, 구丘 그대가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만일 내게 귀신의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만일 인간의 일을 가지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라면 지금 말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정도는〉 모두 내가 들어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대에게 인간의 참된 실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다.
〈사람이란〉 눈은 아름다운 빛깔을 보고 싶어하고,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어하며, 입은 맛있는 것을 맛보고자 하며, 뜻은 만족되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람의 수명은 최고로 오래 사는 경우라야 기껏 백세이고, 중간 정도로 오래 사는 경우는 80세이고, 낮은 수준으로 오래 사는 경우는 60세인데, 그나마도 병들어 여위거나, 상복을 입거나, 세상사를 근심하거나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그 짧은 인생 속에서 〈목욕目欲‧이욕耳欲‧구욕口欲‧지기욕志氣欲을 만족시켜〉 입을 벌리고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것은 한 달 중에 사오일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의 죽음은 일정한 때가 있으니 죽어야 할 때가 정해진 육체를 가지고 무궁한 천지 사이에 의탁하는 것은, 짧음이 마치 기騏나 기驥와 같은 천리마가 문틈 사이를 달려 지나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데, 마음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그 수명을 기르지 못하는 자는 모두 도道를 통通한 자가 아니다.
구丘! 그대가 말하려 하는 것은 모두 내가 부정하여 버린 것들이다.
그러니 빨리 떠나고 얼른 달려가서 다시는 나에게 말하지 말라.
그대의 도는 인간의 본성을 잃은 채 급히 달려가는 꼴이니 남을 속이는 거짓투성이이다.
인간의 참된 모습을 완전히 보전保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족히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공자는 두 번 절하고는 잰걸음으로 달려 도척盜跖 진영의 문을 나와 수레에 올라 타 말고삐를 잡으려다가 세 번이나 놓치고,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안색은 불 꺼진 잿빛 같았으며, 수레 앞턱 가로나무에 기대어 고개를 떨군 채 숨을 내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노나라의 도성 동문 밖에 돌아와 마침 도척의 형 유하계柳下季를 만났다.
“요사이 조용히 아무 소식 없이 며칠을 통 뵙지 못하였는데, 선생이 타신 수레와 말에 어디 여행 다녀오신 자취가 있으니 설마 도척을 가서 만나 보신 것은 아니겠지요?”
“제 아우 척跖이 혹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대의 마음에 거스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저는 말 그대로 ‘병이 없는데도 스스로 뜸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냅다 달려가 호랑이 머리를 건드리고, 호랑이 수염을 얽어댔으니 하마터면 호랑이에게 먹힐 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