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하야 하야 左手
로 據膝
하고 右手
로 持頤
하야 以聽
하니라
二人이 俱對한대 客이 指孔子하야 曰 彼는 何爲者也오
孔氏者
는 하야 上以忠於世主
하고 下以化於齊民
하야 將以利天下
하나니
子貢이 還하야 報孔子한대 孔子 推琴而起하야 曰호대
乃下求之
하사 至於澤畔
이어시늘 이라가 顧見孔子
하고 還鄕而立
이어늘
天子諸侯大夫庶人 此四者 自正이면 治之美也오 四者離位면 而亂莫大焉하니라
陰陽
이 不和
하며 寒暑 不時
하야 以傷庶物
하며 諸侯 暴亂
하야 하야 以殘民人
하며 禮樂
이 不節
하야 財用
이 窮匱
하며 人倫不飭
하야 百姓
이 淫亂
은 天子之憂也
라
今에 子 旣上無君侯有司之勢하며 而下無大臣職事之官이로대 而擅飾禮樂하며 選人倫하야 以化齊民하나니 不泰多事乎아
이오 莫之顧而進之
를 謂之佞
이오 希意道言
을 謂之諂
이오 不擇是非而言
을 謂之諛
오 好言人之惡
을 謂之讒
이오 析交離親
을 謂之賊
이오 稱譽詐僞
하야 以敗惡人
을 謂之慝
이오 이니 此八疵者
는 外以亂人
코 內以傷身
이라
所謂四患者
는 오 이오 이오 人
이 同於己則可
라하고 不同於己
어든 雖善
이라도 不善
을 謂之矜
이니 此 四患也
니라
丘
는 再逐於魯
하며 削迹於衛
하며 伐樹於宋
하며 圍於陳蔡
호니 잇고
擧足
이 愈數
할사록 而迹
이 愈多
하며 走 愈疾
할사록 而影
이 不離身
이어든 自以爲尙遲
라하야 疾走不休
하야 絶力而死
호대
子審仁義之間
하며 察同異之際
하며 觀動靜之變
하며 리라
故로 强哭者는 雖悲나 不哀하며 强怒者는 雖嚴이나 不威며 强親者는 雖笑나 不和커니와
眞悲는 無聲而哀하고 眞怒는 未發而威하고 眞親은 未笑而和하나니
眞이 在內者는 神動於外일새니 是 所以貴眞也니라
其用於人理也엔 事親則慈孝하고 事君則忠貞하고 飮酒則歡樂하고 處喪則悲哀하나니
忠貞
은 以功
으로 爲主
하고 飮酒
는 以樂
으로 爲主
하고 處喪
은 以哀
로 爲主
하고 하나니라
며 며 飮酒以樂
이언정 不選其具矣
며 處喪以哀
언정 無問其禮矣
니
禮者는 世俗之所爲也오 眞者는 所以受於天也라 自然不可易也니라
故
로 聖人
은 法天貴眞
하야 不拘於俗
이어든 하고 祿祿而受變於俗
이라
吾는 聞之호라 可與往者로 與之면 至於妙道오 不可與往者는 不知其道니 愼勿與之라야 身乃無咎라호라
顔淵
이 還車
하고 子路 授綏
한대 孔子不顧
하고 이어늘
曰호대 由 得爲役이 久矣로대 未嘗見夫子의 遇人如此其威也호이다
萬乘之主
와 千乘之君
이 見夫子
하고 어든 夫子 猶有倨傲之容
하더시니
夫遇長不敬이 失禮也오 見賢不尊이 不仁也니 彼非至人인댄 不能下人하리며 下人不精이면 不得其眞이라
不仁之於人也에 禍莫大焉이어늘 而由 獨擅之하도다
공자가 숲 울창한 치유림緇惟林에서 노닐다가 살구나무를 심어 놓은 행단杏壇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공자는 노래를 부르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타던 곡조가 채 반이 끝나지 않았을 때, 어부 한 사람이 배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왔다.
구레나룻과 눈썹이 모두 하얀 노인이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매를 휘젓고서 늪지대를 걸어 올라와 언덕에 이르러 멈추어 자리를 잡고서,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조용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곡이 끝나자 노인은 자공子貢과 자로子路를 손으로 불렀다.
두 사람이 함께 이 노인을 응대하였더니 처음 보는 노인은 공자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자로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공이 대답했다.
“공씨는 태어나면서 충신忠信을 갖추고 몸소 인의를 실행하며 예악을 지키고 인륜을 갖추고서 위로는 세상의 군주에게 충의忠義를 다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교화하여 장차 천하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 합니다.
“아닙니다.” 〈객이 말했다.〉 “그러면 제후나 왕을 돕고 있는 사람인가?”
객이 마침내 웃으면서 돌아가는데,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어질기는 틀림없이 어질지만, 아마도 그 몸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몸뚱이를 지치게 해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니.
자공子貢이 돌아와 공자孔子에게 보고하였더니, 공자는 거문고를 밀어놓고 일어나 말했다.
그리고는 곧 행단杏壇에서 내려와 그 노인을 찾아 못가에 이르렀는데, 노인은 이때 바야흐로 노를 세워 배를 끌어 띄우려 하다가 공자를 돌아보고는 몸을 돌려 공자를 바라보고 섰다.
공자는 빠른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서 노인에게 두 번 절하고서 천천히 노인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 전에 선생께서는 말의 실마리만 꺼내시고 그냥 떠나셨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어리석은 사람인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신 뜻을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선생의 풍모風貌 아래에 이렇게 기다려서 다행히 선생의 기침소리를 듣게 하셔서 마침내 저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닦아 지금에 이르러 69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감히 마음을 비우고서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같은 부류가 서로 따르고 같은 소리가 서로 공명하는 것은 진실로 자연의 이치이다.
나는 청컨대 나에게 있는 도道는 잠깐 놓아두고 그대가 하는 일의 조리를 따져보겠다.
그러니 천자, 제후, 대부, 서인들 이 네 계급이 각자가 올바른 도를 지키면 최선의 치세治世이고 네 계급이 각각의 자리를 떠나면 이보다 큰 어지러움이 없다.
관직에 있는 모든 관리가 자기 직분을 잘 처리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근심하고 애쓰면 누구도 분수를 침범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답田畓이 황폐해지고 집이 파괴되어 의식이 부족하고 세금을 이어서 내지 못하게 되고 처첩이 불화不和하고 장유長幼의 질서가 무너져 없어지게 되는 것은 서민들의 근심거리이다.
능력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관청의 일도 만족스럽게 처리하지 못하며 행동이 청렴淸廉하지 못하여 부하들이 멋대로 하고 태만怠慢하며 훌륭한 공적功績도 없으며 작위爵位와 봉록俸祿을 유지할 수 없음은 대부들의 근심거리이다.
조정朝廷에 충신이 없어서 국가가 혼란하며 공인工人들의 기술도 정교하지 못하며 조정에 바치는 공물이 조악하며 봄가을의 조근朝覲을 다른 제후들보다 서열이 뒤처져 천자의 명령을 잘 따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제후들의 근심거리이다.
음양陰陽의 기가 잘 조화되지 못하며 계절의 추위와 더위가 때에 맞지 않게 되어 만물을 손상하며 제후들이 사납게 난동하여 멋대로 서로 공격하여 인민의 생명을 살상殺傷하며 예악禮樂이 문란하고 무질서해져서 재정이 궁핍하며 인륜人倫이 지켜지지 않아 백성들이 음란에 빠지는 것은 천자의 근심거리이다.”
“지금 그대는 이미 위로 천자나 제후 또는 관리의 세력勢力이 없고 아래로 대신大臣과 정해진 직관職官이 없는데도 멋대로 예악을 꾸미고 인륜의 도를 가르쳐서 만민을 교화하려 하니 너무 일이 많지 않은가.
또한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의 하자瑕疵가 있고 일에는 네 가지의 걱정거리가 있으니 이것을 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자기의 일이 아닌데도 일삼는 것을 아무 일에나 나댄다고 하고, 돌아보는 이도 없는데 진언進言하는 것을 말재주꾼이라 하고, 상대의 마음을 엿보고 그 기분에 맞춰 말하는 것을 아첨이라 하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말하는 것을 추종追從이라 하고, 남의 결점을 즐겨 말하는 것을 비방誹謗이라 하고, 타인의 우정을 쪼개고 친족을 이간離間하는 것을 해침이라 하고, 남을 겉으로는 칭찬하며 속으로는 기만하고 속여서 남을 파멸시키는 것을 사악한 자라 하고, 선악善惡을 가리지 않고 양쪽을 다 받아들여 양쪽에 다 얼굴을 부드럽게 대하면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훔쳐 빼내는 것을 음험하다고 하니 이 여덟 가지의 하자는 밖으로는 남을 어지럽히고 안으로는 자신을 손상한다.
군자는 이런 사람을 벗으로 사귀지 아니하고 명군明君은 이런 사람을 신하로 삼지 않는다.
이른바 네 가지 걱정거리는 큰일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며 공연히 자주 변경하여 원칙까지 바꾸어 공명功名을 높이 세우려 하는 것을 외람됨이라 하고, 자기의 지혜를 과신하고 멋대로 일을 처리하여 남의 영역을 침범侵犯하여 자기 힘을 발휘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자기의 과오를 알고서도 고치지 아니하고 충고하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더 심하게 어기는 것을 말 듣지 않음이라 하고, 남의 견해가 자기와 같으면 인정하고 자기와 같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쁘다고 하는 것을 자긍自矜이라 하니 이것이 네 가지 걱정거리이다.
여덟 가지 하자를 제거하고 네 가지 걱정거리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가르칠 만하다.”
공자는 부끄러워하면서 탄식하고 두 번 절하고 일어나서 말했다.
“저는 노魯나라에서 두 번 추방되었으며, 위衛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모조리 지워졌으며, 송宋나라에서는 큰 나무가 잘려 그 밑에 깔릴 뻔하였으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되는 어려움을 만났으니, 저는 스스로 잘못한 것을 모르겠는데 이 같은 네 가지 치욕을 당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러자 객은 애처로이 여기며 태도를 바꾸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기 발자국을 싫어하여 그것을 떨쳐내려고 달려 도망친 자가 있었는데, 발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만큼 발자국도 더욱 많아졌고 달리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달리기가 아직 더디다고 생각해서, 쉬지 않고 질주하여 마침내는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다.
그는 그늘에서 그림자를 쉬게 하고 조용히 멈추어 발자국을 쉬게 할 줄 몰랐으니 어리석음이 또한 심하다.
그대는 인의도덕仁義道德의 세계를 자세히 따지고, 같음과 다름의 경계를 분명하게 살피고,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따르는 정세의 변화를 관찰하고, 물건을 주고받는 절도節度를 합당하게 하고, 좋음과 싫음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즐김과 성냄의 절도를 조화하려 하니 그래 가지고서야 위해危害를 면치 못하는 데 가까울 것이다.
삼가 그대의 몸을 수양하고 삼가 참된 도道를 지키고 공명功名 따위의 물건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면 몸을 고달프게 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기 자신을 닦지 아니하고 남에게 요구하는 일만 하고 있으니 또한 빗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공자가 초연愀然히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청컨대 무엇을 참된 도道라고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진실이란 순수純粹와 성실誠實의 극치이니, 순수하지 아니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억지로 곡哭하는 자는 비록 그것이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애처롭지 아니하고, 억지로 성내는 자는 그것이 비록 위엄威嚴 있다 하더라도 남이 위엄을 느끼지 아니하고, 억지로 친하게 행동하는 자는 비록 웃더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참다운 슬픔은 소리 없이도 애처롭고, 참다운 노여움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위엄이 있으며, 참다운 친애親愛는 웃음이 없이도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것은 참된 도道가 안에 갖추어져 있으면 신묘한 작용이 밖에 드러나기 때문이니, 이것이 참된 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참된 도가 인간세상의 도리에 작용할 때는 어버이를 섬겨서는 자애慈愛와 효행孝行이 되고, 임금을 섬겨서는 충성忠誠과 정절貞節이 되고, 술을 마셔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상喪을 당해서는 슬픔이 된다.
충성과 정절은 훌륭한 공적을 목적으로 삼고, 음주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삼고, 상喪을 치를 때에는 슬퍼함을 목적으로 삼고,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어버이의 뜻에 꼭 맞추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공功을 이루는 아름다움은 그 자취가 일정하게 한정되지 않으며,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어버이의 뜻에 꼭 맞으면 되고 그 방법은 따질 것이 없으며, 술을 마실 때에는 즐거우면 그만이지 술을 담는 도구는 가리지 않으며, 상喪을 치를 때에는 슬퍼하면 그만이지 장례의 규정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그러니 예禮라고 하는 것은 세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고, 참된 도라는 것은 자연에서 받은 것인지라 본디 그러하여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자연自然인 천天을 본받고 참된 도를 귀하게 여겨 세속의 풍속에 구속되지 아니하는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에 반反하여 자연自然인 천天을 본받을 줄 모르고, 인위적인 구속을 걱정하며, 참된 도道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주체성 없이 남에게 끌려만 다니면서 세속에 의해 변화된다.
그대는 일찍부터 인위人爲에 빠져 뒤늦게 대도大道를 듣게 되었구나!”
“지금 제가 선생을 뵙게 된 것은 하늘이 준 행운 같습니다.
선생께서 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셔서 저를 심부름꾼의 대열에 넣어 직접 가르쳐 주셨으니 감히 선생의 집이 있는 곳을 여쭙습니다.
청컨대 이어서 가르침을 받아 끝내 대도大道를 배우고자 합니다.”
“나는 듣건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면 오묘한 도道에 이를 수 있고, 함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과는 묘도妙道를 알 수 없으니 삼가 함께 하지 말아야만 내 몸에 허물이 없게 된다.’라고 합니다.
어부는 이렇게 말하고는 마침내 노를 저어 물가를 따라 갈대 사이로 사라졌다.
안연顔淵이 수레를 〈공자가 있는 쪽으로〉 돌리고, 자로子路가 수레 손잡이를 내주었는데도 공자는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물결이 가라앉고 노 젓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수레에 올라탔다.
자로가 수레 옆에 나란히 붙어 걸으면서 물었다.
“제가 오랫동안 선생님의 심부름꾼으로 지냈는데 아직 한번도 선생님이 이처럼 두려워하고 삼가면서 남을 응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승萬乘의 천자와 천승千乘의 제후들이 선생님을 만나 보고 뜰을 나누어 동서로 마주 보는 대등한 예禮를 갖추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선생님은 오히려 상대를 내려보는 거만한 모습을 지니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부가 노를 짚고 마주 섰을 뿐인데도 선생님께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기역자로 꺾으시고 상대가 말할 적마다 반드시 절을 하고 응대하시니,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저 어부는 어떻게 해서 선생님에게서 이 같은 경의敬意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공자孔子는 수레의 가로나무에 엎드린 채로 탄식하며 말했다.
예의禮義에 몰두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거칠고 비루한 마음을 지금껏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어른을 만나 공경하지 않는 것은 예禮를 잃은 것이고, 현자를 보고 존경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아니한 것이니 그분이 도道에 도달한 지인至人이 아니라면 남의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없을 것이며, 〈내가〉 남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순수하지 않으면 진실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 때문에 언제까지나 자신의 몸을 해칠 따름이다.
불인不仁은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화가 없는 것인데도 유由는 불인不仁한 행동을 멋대로 하고 있구나.
또한 도道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말미암는 근원이니, 모든 사물이 이 도道를 잃으면 죽고 이 도를 얻으면 살며, 일을 하는 경우에도 이 도에 어긋나면 실패하고 이 도道를 따르면 성공한다.
그러므로 도道가 있는 곳을 성인聖人은 존중한다.
그런데 지금 어부에게는 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내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