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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3)

장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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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하야
曰 至人 하며 蹈火不熱하며 하나니
請問
何以至於此
關尹曰
하라
호리라
乘亦不知也하며 墜亦不知也하야 死生驚懼 不入乎其胸中이라


열자列子관윤關尹에게 물었다.
“‘지인至人은 물속을 잠행潛行하더라도 질식窒息하지 아니하며, 불을 밟아도 뜨거워하지 아니하며 만물萬物을 내려다보는 높은 낭떠러지 위를 걸어 다녀도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고 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관윤關尹이 말했다.
“그것은 순수한 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나 기교, 또는 용감하다고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닙니다.
앉으시지요.
내 그대에게 말해드리겠습니다.
무릇 모양과 소리, 색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사물이니 이 사물들이야 어찌 서로의 차이가 멀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물이 어찌 사물의 모습이 있기 이전의 상태에 먼저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 사물들은 모습과 색채色彩일 뿐이니 사물이 아직 형체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여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초월한 경지에 멈추는 것, 이것을 체득하여 궁구窮究하는 경지를 사물이 어떻게 머물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장차 정도에 넘치지 않는 절도節度에 머물러 끝이 없는 근원에 몸을 감추며, 만물이 끝나고 시작하는 의 세계에 노닐어서, 자기의 본성을 한결같이 지키며 자기의 정기精氣를 기르며 자기의 을 〈천지와〉 합하여 만물의 나아가는 바를 통달하고자 하는 사람이니 무릇 이 같은 사람은 그 자연의 덕[天]이 완전하게 지켜지며 그 정신精神도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물이나 불 따위의 재앙이 어디로부터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무릇 술에 취한 사람이 수레에서 떨어졌을 경우에는 비록 빨리 달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죽지 않으니, 뼈와 관절은 보통의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데도 해침을 당한 정도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술의 힘으로〉 그 정신이 온전히 보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레에 탄 것도 알지 못하며 수레에서 떨어진 것도 알지 못하여 죽거나 사는 데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감정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까닭에 그는 어떤 사물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저 술에 취한 자가 술로 인해 정신의 온전함을 얻고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하늘[天]에서 온전함을 얻었음에랴.
성인聖人에 몸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도 성인聖人을 해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복수하려는 사람도 〈원수는 미워하지만〉 원수가 살인에 사용하였던 막사鏌邪간장干將을 미워하여 그것을 부러뜨리려 하지 않습니다.
또 비록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바람에 날려 떨어진 기왓장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칼이나 기왓장처럼 무심無心하게 되면〉 천하가 평화롭게 다스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에 의한 혼란이 없게 되고 사람을 죽이는 형륙刑戮이 사회에서 없게 되는 것은 모두 이 무위자연의 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인聖人은〉 인간들이 하늘로 떠받드는 지혜나 기교 따위를 계발하지 아니하고 자연 그대로의 을 계발합니다.
자연의 을 계발하면 무위자연의 이 생기고 인간의 지혜나 기교 따위를 계발하면 덕을 해치는 일이 생겨납니다.
그러니 (자연)을 억압하지 아니하고 그 인위의 폐해를 소홀히 하지 아니하면 백성들은 참다운 삶으로 살아가는 데 가깝게 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子列子 : 列子의 극존칭. 成玄英은 “옛사람들은 스승을 子라고 호칭했고 또 덕이 있는 것을 일컫는 아름다운 호칭이 子이다. 이 두 가지 뜻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子列子라고 호칭한 것이니 바로 列禦寇이다[古人稱師曰子 亦是有德之嘉名 具斯二義 故曰 子列子 卽列禦寇也].”라고 풀이했다. 이 章을 두고 列子의 후계자가 썼다든가(阮毓崧, 福永光司, 森三樹三郞), 《列子》에서 따온 내용(曹礎基)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지만 池田知久의 견해처럼 추정일 뿐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는 없다.
역주2 關尹 : 관문을 지키는 관리. 關은 관문이고 尹은 관리라는 뜻이다. 李頤는 “關令尹인 喜이다[關令尹喜也].”라고 풀이했는데 《史記》 〈老莊申韓列傳〉의 기록을 근거로 삼은 듯하다. 成玄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은 尹이고 이름은 喜이며 字는 公度이다. 함곡관을 지키는 관리였기 때문에 關令尹眞人이라고 불렀다. 이 사람은 노자의 제자로 도를 품고 덕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열어구가 물은 것이다[姓尹 名喜 字公度 爲函谷關令 故曰 關令尹眞人 是老子弟子 懷道抱德 故禦寇詢之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成玄英이 姓이 尹이라고 한 것에 대해 關의 令尹이라는 뜻으로 關門을 지키는 官吏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錢大昭, 兪樾, 陳壽昌, 蔣伯潛)들이 있고, 《史記》 〈老莊申韓列傳〉의 ‘關令尹喜曰’의 ‘喜’ 또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기뻐하면서’의 뜻이라고 하는 주장(郭沫若, 陳鼓應)이 있지만 특정인의 이름이 그런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역사적 맥락 또한 무시할 수 없으므로 成玄英의 풀이가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다.
역주3 潛行不窒 : 潛行하더라도 窒息하지 아니함. 成玄英은 潛行을 “잠복해서 세상에서 산다[潛伏行世].”고 풀이했고 林希逸도 이와 비슷하지만 이 같은 추상적 해석은 옳지 않다. 江遹이 〈大宗師〉편 제1장의 “물속에 들어가도 젖지 않는다[入水不濡].”는 구절과 같은 뜻이라고 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4 行乎萬物之上而不慄 : 萬物을 내려다보는 높은 낭떠러지 위를 걸어 다녀도 두려움에 떨지 않음. 王敔, 林雲銘, 張之純, 赤塚忠이 말하는 것처럼 〈田子方〉편 제9장의 “높은 산에 올라 위태로운 돌을 밟고 백 길의 연못을 마주한다[登高山 履危石 臨百仞之淵].”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 한편 林希逸, 褚伯秀, 陸長庚은 “이를테면 바람을 몰고 날아다니는 것이다[如御風而行 是也].”라고 풀이했는데 〈逍遙遊〉편 제1장에 근거한 견해이다.
역주5 是純氣之守也 : 이는 순수한 氣를 지키고 있기 때문임. 成玄英은 “바로 순수하고 온화한 기를 지킴이다[乃是保守純和之氣].”고 풀이했다.
역주6 非知巧果敢之列 : 지혜나 기교, 또는 용감하다고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님. 成玄英은 列을 아래로 연결시켜 列禦寇의 뜻이라고 하나 옳지 않다(馬叙倫).
역주7 居 予語汝 : 앉으시지요. 내 그대에게 말해드리겠습니다. 陸德明은 앞의 列자가 所자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寺岡龍含)고 했는데 현재의 敦煌본에도 所로 표기되어 있다. 寺岡龍含은 이것을 근거로 居를 위의 구절과 연결시켜 ‘非知巧果敢之所居’로 보았지만 고문에서 “居 予語汝”와 같은 표현의 예가 워낙 많기 때문에 굳이 따르지 않는다.
역주8 凡有貌象聲色者 皆物也 : 무릇 모양과 소리, 색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사물임. 物은 모두 사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 也가 없는 판본이 있다(王重民, 寺岡龍含). 成玄英은 “무릇 모양과 소리와 색채를 가지고 있어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물이다[夫形貌聲色 可見聞者 皆爲物也].”고 풀이했다.
역주9 物與物 何以相遠 : 사물들이야 어찌 서로의 차이가 멀 수 있겠습니까. 物은 物을 초월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역주10 夫奚足以至乎先 : 무릇 사물이 어찌 사물의 모습이 있기 이전의 상태에 먼저 이를 수 있겠습니까. 物과 物은 서로 같은 物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존재일 수 없으므로 物의 근원에 있는 道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역주11 是色而已 : 이 사물들은 모습과 色彩일 뿐임. 陳景元의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古藏本에는 色이 形色 두 글자로 표기되어 있다. 姚鼐, 武延緖, 奚侗 이하 이를 따르는 자가 많으나 적절치 않다. 郭象이 形色이라 한 것은 形을 보완하여 註解한 것에 불과하며 그것을 근거로 色을 形色 두 글자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列子》에 色으로 표기되어 있고 成玄英 또한 聲色으로 표기한 것을 보면 色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옳음을 알 수 있다. 林希逸은 한걸음 더 나아가 “色은 곧 자취이니 모습과 소리, 색채이다. 위에서 본래 네 글자로 표현했는데 여기에 이르러 한 가지만 거론한 것이니 문장을 쓰는 법이다[色卽迹也 貌象聲色 上面本有四字 到此擧其一 文法也].”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며, 羅勉道, 遠藤哲夫, 市川安司도 거의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池田知久).
역주12 則物之造乎不形 而止乎無所化 : 사물이 아직 형체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여 生滅變化를 초월한 경지에 멈추는 것. 則은 阮毓崧이 “‘그렇다면’이다[然則也].”고 풀이한 것, 또 赤塚忠이 “故와 거의 같은 뜻이다.”고 풀이한 것으로 충분하다(池田知久). 物은 위 문장의 物과 같다.
역주13 夫得是而窮之者 物焉得而止焉 : 이것을 체득하여 窮究하는 경지를 사물이 어떻게 머물 수 있겠습니까. 是, 之는 위 문장의 不形, 無所化를 가리키며, ‘得是而窮之’는 위 문장의 ‘純氣之守’에 해당한다. 林希逸은 ‘조화의 이치[造化之理也]’라고 풀이했는데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너무 객관화 한 폐단이 있다. ‘窮之者’는 위 문장의 至人을 말한다(宣穎, 陳壽昌, 張之純).
역주14 彼將處乎不淫之度 : 그는 장차 정도에 넘치지 않는 節度에 머물 것임. 彼는 成玄英이 “저들 중에서 득도한 성인이다[彼之得道聖人].”라고 풀이한 것도 좋지만, 위 문장의 至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간편하다. ‘處乎不淫之度’에 대해서는 郭象이 “자기가 부여받은 분수에 머묾이다[止於所受之分].”라고 주석한 이래 이 견해를 추종하는 자가 적지 않으나 分의 思想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폐단이 있다. 林自가 “예도에 일정한 법칙이 있기 때문에 넘치지 않는다[禮度有法 故不淫].”고 풀이한 것도 너무나 社會規範的이기 때문에 취하지 않는다. 江遹이 “만물과 자연의 도수를 어기지 않는 것이다[不違萬物自然之數者].”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池田知久).
역주15 藏乎無端之紀 : 끝이 없는 근원에 몸을 감춤. 赤塚忠은 바로 아래 문장에 나오는 養其氣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無端은 郭象이 “명연한 가운데 변화와 함께 날로 새로워짐이다[冥然與變化日新].”고 풀이했고 成玄英도 같은 방향으로 풀이했는데,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다음 句와 중복되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 福永光司는 〈在宥〉편 제6장에 나오는 無端의 뜻과 가깝다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無端之紀’는 江遹이 “앞에서 맞이하여도 머리를 볼 수 없고 뒤에서 따라가도 꼬리를 볼 수 없다[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尾].”고 풀이했고 陸樹芝, 陳壽昌 등도 같은 견해를 제시했는데 《老子》 제14장을 인용한 것으로 유력한 견해이다(池田知久). 紀는 陳壽昌의 경우는 ‘실마리이다[緖也].’라고 풀이했고, 赤塚忠은 ‘始原, 根本의 뜻’이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成玄英이 紀綱으로 풀이한 것도 무난하다. 한편 馬叙倫은 基의 假借라 하고 福永光司, 金谷治 등이 이 견해를 따르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6 遊乎萬物之所終始 : 만물이 끝나고 시작하는 道의 세계에 노닒. 萬物之所終始는 만물이 의지해서 생성되고 사멸하는 대도를 지칭한다(方勇‧陸永品). 林雲銘은 “만물이 의지해서 끝마치고 의지해서 시작하는 곳에서 노닒이다[遊於萬物所藉以終 所藉以始之處].”고 풀이했다.
역주17 壹其性 養其氣 合其德 以通乎物之所造 : 자기의 본성을 한결같이 지키며 자기의 精氣를 기르며 자기의 德을 〈천지와〉 합하여 만물의 나아가는 바를 통달하고자 함. 壹其性은 심성을 순일하게 하여 뒤섞이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氣는 元氣. 合其德은 成玄英이 “원대한 덕과 명합함이다[與元德冥合].”고 풀이했는데 자신의 덕성을 대도와 서로 부합시킴을 뜻한다. 物之所造는 造物者를 지칭한다(林雲銘).
역주18 夫若是者 其天守全 其神無郤 : 무릇 이 같은 사람은 그 자연의 덕[天]이 완전하게 지켜지며 그 精神도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음. 天은 자연의 德. 林雲銘은 自然之天이라고 풀이했는데 자연의 천성을 의미한다. 郤은 隙과 같다. 間隙, 곧 틈이라는 뜻.
역주19 物奚自入焉 : 물이나 불 따위의 재앙이 어디로부터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物은 물이나 불 따위의 재앙, 곧 외물의 침범을 뜻한다.
역주20 夫醉者之墜車 雖疾不死 : 무릇 술에 취한 사람이 수레에서 떨어졌을 경우에는 비록 빨리 달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죽지 않음. 疾은 수레가 빨리 달리고 있었다는 뜻. 成玄英은 疾을 困疾로 풀이하여 질병의 뜻으로 보았지만 맥락상 적절치 않다.
역주21 骨節與人同 而犯害與人異 其神全也 : 뼈와 관절은 보통의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데도 해침을 당한 정도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술의 힘으로〉 그 정신이 온전히 보전되었기 때문임. 犯害는 受害와 같다(方勇‧陸永品). 곧 해침을 당한다는 뜻이다.
역주22 是故遻物而不慴 : 그 까닭에 그는 어떤 사물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됨. 遻은 만난다는 뜻. 接觸의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지만 逆과 같이 만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慴은 두려워함.
역주23 彼得全於酒 而猶若是 而況得全於天乎 : 저 술에 취한 자가 술로 인해 정신의 온전함을 얻고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하늘[天]에서 온전함을 얻었음에랴. 彼는 술에 취한 사람을 지칭한다. 하늘에서 온전함을 얻은[得全於天] 사람은 곧 지인, 성인을 지칭한다(方勇‧陸永品). 天은 곧 대도를 지칭한다.
역주24 聖人藏於天 故莫之能傷也 : 聖人은 天에 몸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도 聖人을 해칠 수 없음. 藏於天을 자연인 천도에 神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方勇‧陸永品)도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25 復讎者 不折鏌干 : 〈예를 들면〉 복수하려는 사람도 〈원수는 미워하지만〉 원수가 살인에 사용하였던 鏌邪나 干將을 미워하여 그것을 부러뜨리려 하지 않음. 鏌干은 鏌邪와 干將으로 둘 다 명검의 이름.
역주26 雖有忮心者 不怨飄瓦 : 비록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바람에 날려 떨어진 기왓장을 원망하지는 않음. 飄瓦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기왓장. 鏌邪와 干將이 사람을 해치거나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기왓장이 사람을 해쳐도 모두 無心하기 때문에 원망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성인 또한 무심함으로써 외물의 해침을 피할 수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역주27 是以天下平均 : 그러므로 〈칼이나 기왓장처럼 無心하게 되면〉 천하가 평화롭게 다스려질 것임. 사람들이 모두 鏌邪나 干將,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기왓장처럼 무심하게 되면 천하가 평화롭게 다스려질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28 故無攻戰之亂 無殺戮之刑者 由此道也 : 그러므로 전쟁에 의한 혼란이 없게 되고 사람을 죽이는 刑戮이 사회에서 없게 되는 것은 모두 이 무위자연의 道에서 말미암는 것임. 此道는 無心의 도를 지칭한다.
역주29 不開人之天 而開天之天 : 〈그리하여 聖人은〉 인간들이 하늘로 떠받드는 지혜나 기교 따위를 계발하지 아니하고 자연 그대로의 天을 계발함. 자연 그대로의 無爲無心의 세계를 열어 나감을 뜻한다.
역주30 開天者德生 開人者賊生 : 자연의 天을 계발하면 무위자연의 德이 생기고 인간의 지혜나 기교 따위를 계발하면 덕을 해치는 일이 생겨남. 開天者德生은 위의 天下平均의 뜻을 이어서 말한 것이고, 開人者賊生은 위의 攻戰과 殺戮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역주31 不厭其天 不忽於人 民幾乎以其眞 : 그러니 天(자연)을 억압하지 아니하고 그 인위의 폐해를 소홀히 하지 아니하면 백성들은 참다운 삶으로 살아가는 데 가깝게 될 것임. 以其眞은 참다운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장자(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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