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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4)

장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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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7章
17章
昔周之興 有士二人 處於하더니
옛날 나라 왕조가 발흥하던 시기에 선비 두 사람이 고죽孤竹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었는데 형 백이伯夷와 동생 숙제叔齊였다.
二人 相謂曰 吾聞호니 西方有人 似有道者라호니 試往觀焉호리라하고 至於이어늘
두 사람이 상의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들으니 ‘서방西方의 어떤 인물(周의 문왕文王)이 있는데 그가 를 체득한 사람인 것 같다.’고 하니 어디 한 번 가보자.”라 하고 기산岐山의 남쪽 기양岐陽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武王 聞之하고 使으로 往見之하야
〈이때 문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 무왕武王이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동생 주공周公 으로 하여금 가서 이 두 사람을 만나 보게 하였다.
與之盟曰 하고 호리라하고 한대
주공은 이 두 사람에게 맹세하여 말하기를 “녹봉은 제이등第二等을 주고 관위官位제일렬第一列에 나아가게 할 것이다.”라 하고는 희생犧牲을 죽여 그 피를 발라 맹세한 뒤 〈맹약의 문서를〉 땅속에 묻었다.
二人 相視而笑曰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아!
異哉
기이한 행동이로다.
非吾所謂道也로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가 아니다.
昔者 神農之有天下也 하며 其於人也 하며 樂與政爲政하며 樂與治爲治하야 不以人之壞 自成也하며 不以人之卑 自高也하며 不以遭時 自利也하더니
옛날에 신농씨神農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사시四時의 제사에는 공경을 다할 뿐 행복을 기원하는 일은 없었으며, 백성들을 대함에는 충신忠信으로 다스림의 도리를 다하였을 뿐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없었으며, 더불어 정치하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정치를 했고 더불어 다스리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다스려서 타인의 실패를 자기의 성공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타인의 신분이 낮다고 해서 자기의 신분을 높게 여기지 아니하고, 좋은 때를 만났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의 이익으로 삼지 아니하였다.
周 見殷之亂하고 而遽爲政하야 하야 하며 割牲而盟하야 以爲信하며 揚行以悅衆하며 殺伐以要利하나니 니라
그런데 지금 나라는 나라의 어지러움을 보고서 갑자기 선정善政을 행하여 모략을 숭상하고 뇌물을 바치고, 군대를 믿고 무력으로 지키며, 희생犧牲을 갈라 그 피로 맹세하여 사람들이 신의를 지키도록 하며, 자기의 행동을 선전하여 민중을 기쁘게 하며,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정벌하여 이익을 요구하니, 이것은 난정亂政을 미루어 폭정과 바꾸는 것일 뿐이다.
吾聞호라 古之士 遭治世 不避其任하고 遇亂世하야는 不爲苟存이라호니
우리는 일찍이 들으니 ‘옛날 사람들은 치세를 만나서는 자기가 해야 할 임무를 피하지 않았고, 난세를 만나서는 구차하게 살려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天下 闇이어늘 周德衰하니 其竝乎周하야 以塗吾身也 不如避之하야 以絜吾行이라하고
지금 천하는 암흑의 시대가 되었는데 주나라의 덕은 쇠약하니, 이 주왕조 아래 나란히 살아서 우리 몸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이 주나라 세상에서 도망쳐 우리의 행동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했다.
백이‧숙제 두 사람은 북쪽으로 수양산首陽山에 이르러 드디어 산속에서 굶어 죽었다.
若伯夷叔齊者 其於富貴也 하나니
그러니 백이 숙제와 같은 사람은 재산과 지위에 대해 만약 그만둘 수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고 獨樂其志하야 不事於世 此二士之節也니라
그러니 절의節義를 고상하게 행하고 덕행을 높이 닦으며 다만 홀로 스스로의 높은 뜻을 즐기면서 세속 일을 일삼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이 두 사람의 절의이다.
역주
역주1 孤竹 : 나라 이름. 成玄英은 “孤竹은 나라 이름이니 遼西 지역에 있다[孤竹 國名 在遼西].”라고 풀이했다.
역주2 伯夷叔齊 : 두 사람의 이름. 〈大宗師〉편에 이미 나왔다. 司馬彪는 “孤竹國 君主의 두 아들[孤竹君之二子].”로 풀이했고, 成玄英은 “백이와 숙제는 遼西 고죽군의 두 아들이며 神農氏의 후손으로 성은 姜氏이다[伯夷叔齊 遼西孤竹君之二子 神農之裔 姓姜氏].”라고 풀이했다.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은 《論語》, 《孟子》, 《韓非子》, 《莊子》를 비롯한 先秦古文獻에는 물론이고, 《史記》 〈伯夷列傳〉에도 자세한 내용이 전한다.
역주3 岐陽 : 岐山의 남쪽.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을 陽이라 한다.
역주4 叔旦 : 周公 姬旦을 지칭하는 말. 周公은 武王의 동생이자 成王의 숙부였기 때문에 叔旦이라 호칭한 것이다. 周公의 성은 姬, 旦은 이름.
역주5 加富二等 : 녹봉은 第二等을 줌. 成玄英은 “二等級의 녹봉을 줌이다[加祿二級].”라고 풀이했는데 이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林希逸은 “祿俸을 두 배로 올려줌이다[倍其祿].”라고 풀이했는데, 은거한 두 사람에게 본래 녹봉이 있었을 리 없기 때문에 녹봉을 두 배로 올려준다는 풀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역주6 就官一列 : 官位는 第一列에 나아가게 함. ‘就’를 ‘授’의 뜻으로 보고 ‘일등의 官爵을 수여한다.’는 뜻으로 풀이한 견해(成玄英, 池田知久)가 있으나, 여기의 就는 《論語》 〈季氏〉편의 ‘陳力就列’의 就와 같이 벼슬자리에 ‘나아가다’, ‘나아가게 하다’의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
역주7 血牲而埋之 : 희생을 죽여 그 피를 발라 맹세한 뒤 땅속에 묻음. 血牲 埋之는 맹약의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땅에 파묻었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이어서 희생의 피를 맹세한 문서에 바르고 단 아래에 파묻음이다[仍牲血釁其盟書 埋之壇下也].”라고 풀이했다. 血牲이 殺牲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陸德明).
역주8 時祀盡敬而不祈喜 : 四時의 제사에는 공경을 다할 뿐 행복을 기원하지 않음. 時祀는 사계절에 맞춰 지내는 제사. 喜는 복. 禧와 같다. 兪樾은 “喜자는 마땅히 禧자가 되어야 한다[喜當作禧].”고 했지만 굳이 고칠 것까지는 없다.
역주9 忠信盡治而無求焉 : 忠信으로 다스림의 도리를 다하였을 뿐 백성들에게 요구하지 않음. 위의 ‘時祀盡敬而不祈喜’와 대구가 되는 부분으로 극진히 다스릴 뿐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역주10 上謀而下行貨 : 모략을 숭상하고 뇌물을 바침. 上은 숭상한다는 뜻. 尙과 같다(王念孫). 下行貨의 ‘下’는 王念孫의 견해를 따라 잘못 끼어든 글자로 본다. 王念孫은 “上謀而下行貨의 下字는 후세 사람이 덧붙인 것이다[上謀而下行貨 下字後人所加也].”라고 풀이했다. 일본 高山寺古鈔본에는 下字가 없기도 하다.
역주11 阻兵而保威 : 군대를 믿고 무력으로 지킴. 阻는 믿고 의지한다는 뜻. 高誘는 ‘依’로, 畢沅은 ‘恃’로 풀이했다.
역주12 推亂以易暴也 : 亂政을 미루어 폭정과 바꾸는 것일 뿐임. 은나라가 폭정을 저지른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나라 또한 정당한 방식으로 통치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비꼰 표현이다. 成玄英은 “주나라의 난정을 미루어 은나라의 폭정을 바꾼 것이라고 말할 만하다[可謂推周之亂以易殷之暴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3 二子北至於首陽之山 遂餓而死焉 : 두 사람은 북쪽으로 수양산에 이르러 드디어 산 속에서 굶어 죽었다. 首陽之山은 首陽山. 지금의 山西省 永濟縣 남쪽에 있다. 郭象은 “《論語》에는 ‘伯夷와 叔齊가 首陽山 아래에서 굶주렸다.’고 하여 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죽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굶주리는 처지를 끝까지 지키다 죽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일 뿐 반드시 굶어 죽었다는 것은 아니다[論語曰 伯夷叔齊餓于首陽之下 不言其死也 而此云死焉 亦欲明其守餓以終 未必餓死也].”고 하였다.
역주14 苟可得已 則必不賴 : 만약 그만둘 수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그것에 의지하지 않음. 苟는 만약. 可得已의 已는 그만둔다는 뜻으로 可得已는 그만둘 수 있음, 곧 不得已의 반대를 뜻한다. 賴를 取의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林希逸)가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5 高節戾行 : 절의를 고상하게 행하고 덕행을 높이 닦음. 戾는 亢, 곧 높게 한다는 뜻으로(林希逸) 孤高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장자(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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