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자기 몸을 안전하게 보존했던 사람은 말재주로 자신의 지혜를 꾸미지 않았으며, 지혜로 천하天下 만상萬象을 다 알아내려 하지 않았으며, 또 지혜로 덕德을 궁구窮究하지 아니하고 홀로 자신의 자리에 똑바로 서 있으면서 자연의 본성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도道는 본시 자잘한 행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덕德은 본시 자잘한 지식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자잘한 지식은 덕德을 해치고 자잘한 행실은 도道를 해친다.
그래서 “내 몸을 바로잡을 뿐이다.”고 말하는 것이니, 즐거움이 온전해지는 것을 일러 뜻을 얻었다고 일컫는다.
옛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것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즐거움도 더 보탤 것이 없는 경지를 말할 따름이었는데, 오늘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것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가령 〈수레나 면류관 따위의〉 높은 벼슬이 내 몸에 미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천여天與의 본성이 아니고, 〈벼슬이라는〉 외물이 우연히 밖에서 들어와 내 몸에 기생寄生한 것일 뿐이다.
외물이 밖에서 들어와 기생하는 경우,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가는 것을 붙들 수도 없다.
그 까닭에 〈옛날 뜻을 얻었던 사람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되었다 해서 뜻을 멋대로 부리지 아니하며 곤궁 빈핍하다고 해서 세속에 영합하지 않아서 그것을 이것과 똑같이 즐겼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기생했던 외물이 떠나면 곧 앙앙불악怏怏不樂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살펴본다면 비록 〈높은 벼슬이 찾아와〉 즐거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본연의 즐거움은 망실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를 외물外物에 잃어버리고 세속에 끌려 자기의 본성을 상실한 자, 이런 사람을 일러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인간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