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로 曰
하며 이라하나니 하고 하며 이 이니라
대들보와 마룻대 같은 큰 나무로는 성벽城壁을 쳐부술 수는 있지만 조그만 구멍을 틀어막을 수는 없으니 이는 도구의 용도가 다름을 말한 것이다.
기기騏驥, 화류驊騮와 같은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쥐 잡는 일에는 살쾡이만도 못하니 이는 가지고 있는 기능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올빼미는 캄캄한 밤에도 벼룩을 잡을 수 있고 털끝을 살필 수 있지만 낮에 나와서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서도 커다란 산과 언덕을 보지 못하니 이는 타고난 본성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그 때문에, “생각건대 옳은 것을 스승으로 삼고 그른 것은 무시해 버리며 치治를 존숭하고 난亂은 무시해 버리면 좋지 않은가.” 하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아직 천지의 이치와 만물의 실정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자이다.
말하자면 하늘을 스승으로 삼아 땅은 업신여기며 음을 스승으로 삼아 양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서 성립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런데 또 계속 말하여 그만두지 않으니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속이는 자이다.
제왕들은 선양禪讓하는 방법을 달리했으며 삼대의 왕위를 계승하는 방법도 달랐으니 그 시대와 다르고 그 풍속과 어긋나는 자는 찬탈한 자라 일컫고 그 시대에 합당하고 그 풍속을 따른 자는 의로운 무리라고 일컬었으니 하백河伯이여, 아무 말 없이 침묵할지어다.
그대가 어찌 귀천을 구별하는 문이 어디에 있고 소小와 대大를 구별하는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합니까?
내가 사양하고 받고 달려가고 그만둠을 나는 마침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道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으니〉 무엇을 귀하다 하고 무엇을 천하다 하겠는가.
이것을 일러 반연反衍(구별이 없는 혼돈渾沌)이라 하니, 너의 뜻을 〈귀천을 구별해야겠다는 생각에〉 구속되지 않게 할지어다.
〈만약 구애되면〉 도道와 크게 어긋나고 말 것이다.
이것을 일러 사시謝施(境界 없는 도道의 모습)라 하니, 너의 행동을 한 방향으로만 한정하지 말지어다.
〈만약 한정하면〉 도道와 일치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엄연嚴然하게 나라에 군주가 있는 것처럼 사사로운 은덕 없이 공평하게 다스리며, 넉넉히 마치 토지신土地神이 제사에 강림하듯 사사로운 복을 베풀지 않고 공평하게 복을 내려 주며, 넓디넓게 마치 사방이 끝이 없는 것처럼 한정된 구역을 만들지 말지어다.
만물을 모두 포용하는데 그 누구를 사사로이 비호庇護하고 도와줄 것인가.
이것을 일러 어느 한쪽으로 구애되지 아니한 무한정無限定이라고 한다.
만물은 구별 없이 동일한 존재인데 어느 것을 짧다 하고 어느 것을 길다 할 것인가.
그러나 사물事物에는 사멸도 있고 생성도 있는지라 사물事物은 성취成就함이 있더라도 그것을 믿을 수 없다.
공허하게 비었다가는 가득 차기도 하여 하나의 형태로 자리 잡지 못한다.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으며 시간의 추이는 멈추게 할 수 없는지라 소멸消滅하였다가 생식生息하고(衰하였다가 번영하고) 가득 찼다가 텅 비게 되어 마치게 되면 곧 시작이 있으니 이것이 〈작은 절의節義를 뛰어넘는〉 커다란 정의正義의 방도方道를 말하고 〈개개의 사물事物이 아닌〉 만물 전체의 이치를 논하는 것이다.
사물의 생성은 마치 말이 달리는 것과 같은지라 늘 움직여서 변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며 어느 때고 옮겨 가지 않음이 없으니 무엇은 하겠으며 무엇은 하지 않겠는가.
“도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이치에 통달하고 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반드시 권도權道에 밝고 권도에 밝은 사람은 외물外物로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
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은 불로 뜨겁게 할 수 없고 물에 빠뜨릴 수 없으며 추위와 더위가 해치지 못하며 짐승들이 해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그것들을 가벼이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이 편안하고 무엇이 위태로운지를 잘 살피며 화와 복을 편안히 여기며 거취를 삼가는지라 아무도 그를 해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천성天性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고 인위人爲는 사람의 몸 밖에 있으며 참다운 덕은 천성을 따르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이니 천天(자연)과 인人(인위)의 도道를 잘 인식하고 천성에 근본하고 참다운 덕德의 경지에 머물며 머뭇거리면서 구부리기도 하고 펼치기도 하면서 일진일퇴一進一退하게 되면 근원의 도道로 되돌아가고 궁극의 도道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을 천성天性이라 하고 무엇을 인위人爲라 합니까?”
“소와 말에 네 개의 발이 있는 것을 일러 천성이라 하고 말의 머리에 낙인烙印을 찍고 소의 코뚜레를 뚫는 것을 인위人爲라 한다.
그 때문에 인위로 천성을 없애지 말아야 하며 인간의 의도로 천명을 없애지 말아야 하며 허명虛名을 얻기 위해 타고난 덕德을 잃어버리지 말아서 삼가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천진天眞의 본성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