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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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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는 끊임없이 운행하여 한때라도 정체停滯하는 법이 없다.
萬物하며
그래서 만물이 이루어진다.
帝道 運而無所積이라
제왕帝王는 끊임없이 운행하여 한때라도 정체停滯하는 법이 없다.
天下 歸하며
그래서 천하가 모두 귀복歸服한다.
運而無所積이라
성인聖人는 끊임없이 운행하여 한때라도 정체停滯하는 법이 없다.
海內 服하나니
그래서 해내海內의 사람들이 모두 복종服從한다.
明於天하며 通於聖하야 니라
하늘의 를 분명히 알며 성인聖人에 정통하며 나아가 제왕의 을 여섯 가지 방향과 네 가지 차례대로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의 행위가 멍하니 그저 고요할 따름이다.
성인聖人의 고요함은 고요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해서 〈일부러〉 고요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 중에서 어느 것도 족히 성인의 마음을 뒤흔들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고요한 것이다.
물이 고요하면 그 밝음이 〈수면水面을 바라보는 사람의〉 수염이나 눈썹까지도 분명하게 비추어 주고 그 평평함이 수준기水準器에 딱 들어맞아 목수가 기준으로 채택한다.
물이 고요하여도 오히려 이처럼 밝고 맑은데 하물며 밝고 정밀하고 신묘한 성인聖人의 마음이 고요한 경우이겠는가.
성인聖人의 고요한 마음이야말로〉 천지天地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며 만물을 〈빠짐없이〉 비추는 거울이다.
역주
역주1 天道運而無所積 : 하늘의 道는 끊임없이 운행하여 한때라도 停滯하는 법이 없음. 無所積은 無所積之時로, 정지할 때가 없다는 뜻. 자연의 理法은 끊임없이 운행하여 停滯하는 바가 없다는 뜻으로 成玄英은 “運은 움직임이고 積은 停滯함이다. 천도는 끊임없이 운전하여 해와 달로 비추고 비와 이슬로 적셔 주어 정체되는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사계절이 회전하여 만물이 생성된다[運 動也 積 滯也 言天道運轉 照之以日月 潤之以雨露 曾無滯積 是以四序回轉 萬物生成].”라고 풀이했다. 天道는 〈在宥〉편 제7장에서 “무엇을 도라 하는가. 천도가 있고 인도가 있으니 아무런 작용 없이 존귀한 것은 천도이고 인위적으로 움직여서 번거롭게 얽매이는 것이 인도이다[何謂道 有天道 有人道 無爲而尊者 天道也 有爲而累者 人道也].”라고 한 것과 비슷하다(池田知久). 그러나 여기서는 道를 自然‧우주, 사회‧정치, 철학‧도덕의 세 가지로 분류한 첫 번째의 경우라는 데 의의가 있다(池田知久). 天道가 뒤의 人道와 矛盾‧對立하는 것으로는 파악되지 않고 차라리 人道(특히 帝道)의 절대권위를 支援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상의 전개로 파악할 수 있다(赤塚忠). 陸德明은 “積은 정체되어 통하지 않음이다[積 謂滯積不通].”라고 풀이했다. 구체적으로는 제6장의 “日月照而四時行 若晝夜之有經 雲行而雨施矣”, 제7장의 “天地固有常矣 日月固有明矣 星辰固有列矣 禽獸固有羣矣 樹木固有立矣”와 같은 현상을 가리킴. 또 〈大宗師〉편 제1장에도 “其有夜旦之常 天也”라고 한 대목이 있다(福永光司).
역주2 帝道‧聖道 : 제2장의 “帝王天子之德”, “玄聖素王之道”와 같다(池田知久). 또 〈天下〉편의 “內聖外王之道”와도 관련된다(福永光司). 정치적 권위와 도덕적 인격의 구별은 공자에서 시작되어 맹자나 순자 등에 이르기까지 전국 시기의 유가 철학자들이 강조한 생각이지만 여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도가도 독자적 관점에서 유사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하의 여러 문장에 나온 기록은 聖道를 帝道 아래에 포섭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아마도 皇帝 권력이 사상계의 내부에까지 침투해 있던 시대를 반영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前漢의 景帝‧文帝期에 成立된 기록으로 추정한다(赤塚忠).
역주3 六通四辟於帝王之德者 : 제왕의 德을 여섯 가지 방향과 네 가지 차례대로 속속들이 앎. 六通과 四辟은 각각 六合의 공간에 통달하고 四時의 시간을 따른다는 뜻. 陳鼓應이 “六通四辟은 六合에 通達하고 四時를 順暢한다.”고 풀이하고 六은 六合, 곧 上下四方을 지칭하고, 四는 사시를 지칭한다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辟은 闢과 통한다. 六通四辟은 〈天下〉편에도 나온다. 陸德明은 “六通은 六氣를 말함이니 陰陽風雨晦明이다[六通 謂六氣 陰陽風雨晦明].”라고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 또한 成玄英은 “六通은 四方上下를 말함이다[六通 謂四方上下也].”라고 했지만 역시 정확하지 않다. 六이 四方上下이고 通은 위 문장의 明‧通과 같이 쓰였다. 陸德明은 “四辟은 사방이 열림이다[四辟 謂四方開也].”라고 풀이했는데 옳지 않다. 또 成玄英은 “四辟이란 春秋冬夏를 말함이다[四辟者 謂春秋冬夏也].”라고 했는데 역시 충분치 않다. 四가 春秋夏冬이고, 辟은 開闢의 闢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 또한 위 문장의 明‧通과 같이 쓰인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帝王之德’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공간적 측면(六)과 시간적 측면(四)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정통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兪樾). 辟을 闢으로 풀이한 것은 呂惠卿에게서 시작되었다. 〈天下〉편에도 “六合의 공간에 통달하고 四時의 시간이 베풀어져 크고 작고 정밀하고 거친 것을 막론하고 그 운행이 존재하지 않음이 없다[六通四闢 大小精粗 其運無乎不在].”라고 하여 유사한 부분이 있다. 한편 福永光司는 이 편에서 至人‧神人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聖道‧帝道 등의 용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이 편의 집필이 다른 편에 비해 훨씬 늦은 것 같다고 추정했다.
역주4 其自爲也 : 그 자신의 행위는. 也는 주격조사. 陳景元의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張君房본에는 自자 밑에 然자가 있는데 잘못 들어간 글자인 듯하다(王叔岷).
역주5 昧然無不靜者矣 : 멍하니 그저 고요하지 않음이 없음. 陳鼓應은 昧然을 冥然(캄캄한 모양)과 같다고 풀이하고 不知不覺의 뜻이라 했다. ‘昧然’은 〈田子方〉편에서 “멍하니 대답하지 않았다[昧然而不應].”라고 나오며, 〈知北遊〉편에도 “옛날에는 내가 밝았는데 지금은 내가 어둡다[昔日吾昭然 今日吾昧然].”라고 나오는데 의미가 약간씩 다르다. 成玄英은 昧然을 “자취를 감추고 빛을 갈무리하여 오히려 어두워 보인다[晦迹韜光 其猶昧闇].”라고 풀이했고, 羅勉道는 “총명함을 모두 없애 버림이다[聰明盡泯].”라고 풀이했다. 靜은 고요하다는 뜻인데 林希逸이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끊임없이 운행하여 정체됨이 없다[至靜之中 運而無積].”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6 聖人之靜也 非曰靜也善 故靜也 : 聖人의 고요함은 고요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고요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님. 非曰靜也가 非曰其靜也로 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虛靜을 지키는 데 일정한 목적의식이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경향은 〈人間世〉편 제1장의 師心에서 이미 나왔다(池田知久). 또 《韓非子》 〈解老〉편에 “대저 짐짓 無爲와 無思를 虛라고 여기는 자들은 그 뜻이 늘 虛를 잊지 않는다. 이것은 허가 되려는 의지에 통제당하는 것이다. 허란 것은 그 뜻이 통제됨이 없는 것인데 지금 허가 되려는 의지에 통제당한다면 이는 허가 되지 못한 것이다[夫故以無爲無思爲虛者 其意常不忘虛 是制於爲虛也 虛者 謂其意所無制也 今制於爲虛 是不虛也].”라고 하여 이 부분과 유사한 내용이 있다(赤塚忠).
역주7 萬物 無足以鐃心者 故靜也 : 만물 중에서 어느 것도 족히 성인의 마음을 뒤흔들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고요한 것이다. 鐃는 撓와 같다(林希逸). 撓는 搖와 마찬가지로 ‘흔들다’의 뜻. 鐃가 撓로 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역주8 水靜 則明燭鬚眉 : 물이 고요하면 그 밝음이 〈水面을 바라보는 사람의〉 수염이나 눈썹까지도 분명하게 비춤. 靜이 淨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明자 아래에 “濁則混”으로 된 인용문이 있는데 燭자가 濁으로 전사되면서 생긴 오류인 듯하다. 〈德充符〉편 제1장에서 “사람은 누구나 흐르는 물에는 비추어 볼 수 없고, 멈추어 있는 물에 비추어 볼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라고 한 부분과 유사한 내용이다. 燭은 비춘다는 뜻의 동사.
역주9 平中準 : 평평함이 水準器에 딱 들어맞음. 準자가 准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準이 正字이고 准은 俗字(王叔岷)이다. 〈德充符〉편 제4장에 “평평한 것으로는 정지하고 있는 물이 가장 성대하다[平者 水停之盛也].”라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福永光司).
역주10 大匠取法焉 : 목수가 이것을 본보기로 채택함. 목수가 경사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고요한 물을 채택한다는 뜻. 陸德明은 大匠을 두고 “어떤 사람은 천자라고 했다[或云 天子也].”라고 했지만 옳지 않다(池田知久).
역주11 水靜猶明 : 물이 고요하여도 오히려 이처럼 밝음. 단지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는 물이 고요한 경우도 이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 ‘水靜猶明’이 ‘水猶如是’로 된 인용문이 있는데 뜻에 큰 차이가 없다(王叔岷, 池田知久).
역주12 而況精神聖人之心靜乎 : 하물며 밝고 정밀하고 신묘한 聖人의 마음이 고요한 경우이겠는가. 王懋竑은 精神을 잘못 끼어든 문자라 했지만 옳지 않다. ‘聖人之心’에 걸리는 形容이다(池田知久). 精神聖人之心은 곧 밝고 靈妙한 聖人의 마음이란 뜻이다.
역주13 天地之鑑也 萬物之鏡也 : 天地를 비추는 거울이며 만물을 비추는 거울임. 聖人의 고요한 마음이야말로 天地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며 만물을 빠짐없이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 福永光司는, 훗날 선가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明鏡止水’로 표현하는데 장자의 이 글이 바로 그 源流라고 하였다. 〈應帝王〉편 제6장에서도 至人의 마음을 거울에 비유했다(池田知久).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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