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所以完身養生也어늘 今世俗之君子 多危身棄生하야 以殉物하나니 豈不悲哉아
노魯나라의 군주가 노나라의 현자 안합顔闔이 도道를 체득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폐백을 가지고 먼저 찾아가 보게 하였다.
이때 안합顔闔은 누항陋巷에 살면서 남루한 옷을 입고 스스로 소를 치고 있었다.
노나라 임금의 사자使者가 이르자 안합顔闔이 직접 응대하였는데, 사자가 말했다.
사자가 가지고 온 폐백을 안합에게 전하려 하였더니, 안합顔闔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듣기를 잘못하여 사자에게 죄가 주어질 것이 두려우니, 〈폐백이 누구에게 보내지는 것인지를〉 좀 더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자가 돌아가서 잘 살펴 확인하고 다시 와서 안합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면 안합과 같은 사람은 참으로 부富니 귀貴니 하는 재산과 지위 같은 것을 싫어하였던 것이다.
‘도道의 진수眞髓를 가지고서는 몸뚱이를 기르고 도道의 나머지를 가지고서는 국가를 다스리고 그중에서 쓸모없는 부분을 가지고서는 천하를 다스린다.’라고.
이로 말미암아 볼진대 제왕의 공은 〈몸을 닦는 양신養身을 제일第一로 보는〉 성인聖人에게는 여가가 나면 하는 일이다.
그것은 몸뚱이를 온전히 보존하고 생명을 기르는 방법이 아닌데도 오늘날 세속의 군자들은 몸을 위태롭게 하고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외물을 쫓는 경우가 많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무릇 성인이 행동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마음이 향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미리 잘 살핀다.
지금 가령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수후隨侯의 구슬을 가지고서 천 길 높은 벼랑 위에 날고 있는 참새를 쏘았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모두 그를 비웃을 것이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가 사용한 것은 귀중하고 그가 얻으려고 한 것은 하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어찌 다만 수후隨侯의 구슬 정도로 귀중할 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