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댄 則人
이 莫不獻之於其君
이며 使道而可進
인댄 則人
이 莫不進之於其親
이며 使道而可以告人
인댄 則人
이 莫不告其兄弟
며 使道而可以與人
인댄 則人
이 莫不與其子孫
하리라
由中出者
를 不受於外
면 하며 由外入者 無主於中
이면 하나니라
逍遙
는 無爲也
요 苟簡
은 易養也
요 니 古者
에 라하더라
는 不能讓祿
하며 以顯
으로 爲是者
는 不能讓名
하고 이라
공자는 살아온 나이가 50 하고도 하나가 되었는데도 아직 참다운 도道가 무엇인지를 듣지 못하여 마침내 남쪽으로 패沛에 가서 노담을 만났다.
진작부터 나는 그대가 북방의 현자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소.
“저는 그것을 예악의 도수度數에서 찾으려 했는데 5년이 지나도록 아직 도道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또 어디에서 도道를 구하려 했소?”
“저는 그것을 천지자연을 움직이는 음양의 이치에서 찾으려 했는데 12년이 되도록 아직 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만일 도道가 다른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임금에게 바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만일 도道가 남에게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그 어버이에게 올리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만일 도道가 남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형제에게 말해 주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만일 도道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자손들에게 주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오.
그런데도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지요.
마음속에 〈도를 받아들일〉 주체가 없으면 도가 와서 머물지 않고 바깥에 〈도가 향할 만한〉 정확한 표적이 없으면 도道가 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이 밖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조건이 되어 있지 않으면 성인은 그것을 발출하지 않으며 밖에서 들어오는 도道도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주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성인은 그것을 안에 간직해 두지 않지요.
그런데 명성名聲이라는 것은 천하의 공기公器인지라 한 사람이 혼자서 많이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이고, 인의仁義는 옛 선왕들이 잠시 묵었던 임시 처소인지라 단지 하룻밤 정도 묵을지언정 오래 머물러서는 아니 되니 오래 머물면 책망을 많이 받게 되지요.
옛날 지인至人은 인仁의 길을 잠시 빌리고 의義의 집에 잠시 의탁하긴 했지만 〈항구적인 생활로서는〉 소요의 언덕에서 노닐며 〈간신히 먹을 것을 구할 만한〉 구간苟簡의 밭에서 먹을 것을 얻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초연히 서 있었지요.
소요逍遙의 언덕에서 노니는 것은 하는 일이 없는 무위無爲이고, 구간苟簡의 밭에서 먹을 것을 얻게 되면 몸을 기르기가 쉽고, 베푸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서 있는 자는 도道를 함부로 말하지 않으니 옛날에는 이것을 일컬어 참된 도를 채취하는 놀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에 반反하여〉 부富를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자는 남에게 녹祿을 양보할 줄 모르고, 현달顯達을 옳은 것이라고 여기는 자는 남에게 명성을 양보할 줄 모르고, 권력을 사랑하는 자는 남에게 권병權柄을 줄 줄 모르지요.
그래서 이것(富‧현顯‧권權)을 손에 넣으면 빼앗길까 두려워 떨고, 이것을 잃으면 슬퍼하여 조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그런 것들이 있는 곳만 엿보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 자, 이런 사람은 하늘의 형벌을 받은 죄인이지요.
‘원망하고, 은혜를 베풀고, 빼앗고, 주고, 간언諫言을 듣고, 가르치고, 살리고, 죽이는’ 이 여덟 가지 일은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正]의 도구입니다.
이것은 오직 커다란 변화를 따라 그 흐름을 막는 행위가 없는 자라야만 이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마음으로부터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늘의 문門이 열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