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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2)

장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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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聃曰
吾 聞子 北方之賢者也라하니
亦得道乎
孔子曰
未得也로이다
老子曰
惡乎求之哉
吾 求之於어늘/할 로이다
老子曰
子又惡乎 求之哉
吾 求之於陰陽이어늘/할 이로이다
老子曰
하다
인댄 則人 莫不獻之於其君이며 使道而可進인댄 則人 莫不進之於其親이며 使道而可以告人인댄 則人 莫不告其兄弟 使道而可以與人인댄 則人 莫不與其子孫하리라
然而不可者 無他也
由中出者 不受於外 하며 由外入者 無主於中이면 하나니라
逍遙 無爲也 苟簡 易養也 古者 라하더라
不能讓祿하며 以顯으로 爲是者 不能讓名하고 이라
操之則慄하고 舍之則悲하야하야 니라
怨恩取與諫敎生殺八者
라아 爲能用之하나니라


공자는 살아온 나이가 50 하고도 하나가 되었는데도 아직 참다운 가 무엇인지를 듣지 못하여 마침내 남쪽으로 에 가서 노담을 만났다.
노담이 말하였다.
“선생, 잘 오셨소.
진작부터 나는 그대가 북방의 현자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소.
그대 또한 체득體得하였겠지요?”
공자가 말했다.
“아직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디에서 그것을 찾으려 했는지요?”
공자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예악의 도수度數에서 찾으려 했는데 5년이 지나도록 아직 를 얻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그러면 그대는 또 어디에서 를 구하려 했소?”
공자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천지자연을 움직이는 음양의 이치에서 찾으려 했는데 12년이 되도록 아직 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그럴 테지요.
만일 가 다른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임금에게 바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만일 가 남에게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그 어버이에게 올리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만일 가 남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형제에게 말해 주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만일 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자손들에게 주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오.
그런데도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지요.
마음속에 〈도를 받아들일〉 주체가 없으면 도가 와서 머물지 않고 바깥에 〈도가 향할 만한〉 정확한 표적이 없으면 가 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이 밖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조건이 되어 있지 않으면 성인은 그것을 발출하지 않으며 밖에서 들어오는 도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주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성인은 그것을 안에 간직해 두지 않지요.
그런데 명성名聲이라는 것은 천하의 공기公器인지라 한 사람이 혼자서 많이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이고, 인의仁義는 옛 선왕들이 잠시 묵었던 임시 처소인지라 단지 하룻밤 정도 묵을지언정 오래 머물러서는 아니 되니 오래 머물면 책망을 많이 받게 되지요.
옛날 지인至人의 길을 잠시 빌리고 의 집에 잠시 의탁하긴 했지만 〈항구적인 생활로서는〉 소요의 언덕에서 노닐며 〈간신히 먹을 것을 구할 만한〉 구간苟簡의 밭에서 먹을 것을 얻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초연히 서 있었지요.
소요逍遙의 언덕에서 노니는 것은 하는 일이 없는 무위無爲이고, 구간苟簡의 밭에서 먹을 것을 얻게 되면 몸을 기르기가 쉽고, 베푸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서 있는 자는 를 함부로 말하지 않으니 옛날에는 이것을 일컬어 참된 도를 채취하는 놀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에 하여〉 를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자는 남에게 祿을 양보할 줄 모르고, 현달顯達을 옳은 것이라고 여기는 자는 남에게 명성을 양보할 줄 모르고, 권력을 사랑하는 자는 남에게 권병權柄을 줄 줄 모르지요.
그래서 이것(富‧)을 손에 넣으면 빼앗길까 두려워 떨고, 이것을 잃으면 슬퍼하여 조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그런 것들이 있는 곳만 엿보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 자, 이런 사람은 하늘의 형벌을 받은 죄인이지요.
‘원망하고, 은혜를 베풀고, 빼앗고, 주고, 간언諫言을 듣고, 가르치고, 살리고, 죽이는’ 이 여덟 가지 일은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正]의 도구입니다.
이것은 오직 커다란 변화를 따라 그 흐름을 막는 행위가 없는 자라야만 이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마음으로부터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늘의 이 열리지 않습니다.”


역주
역주1 孔子行年五十有一而不聞道 : 공자는 살아온 나이가 50 하고도 하나가 되었는데도 아직 참다운 道가 무엇인지를 듣지 못함. 이 장에서 공자의 나이가 51세(B.C. 501)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고 池田知久는 말하고 있다. 곧 51세라고 하여 50세를 막 넘긴 나이를 굳이 선택한 것은 다분히 《論語》 〈爲政〉편에 나온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는 내용과 〈里仁〉편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고 한 것을 야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行年은 지금까지 살아온 年數를 말한다. 孔子가 老子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說話는, 《史記》 〈孔子世家〉에서는 공자 30세(B.C. 522)의 일로 되어 있다(池田知久).
역주2 乃南之沛 : 마침내 남쪽으로 沛에 감. 之는 가다. 沛는 지금의 江蘇省 沛縣을 말한다. 魯나라의 서울 曲阜에서 南으로 약 100㎞ 떨어져 있다. 《莊子》의 〈寓言〉편에도 老聃의 고향을 沛라 하는 문장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뒤에 《史記》 〈老子列傳〉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삼았는지 분명치 않으나 노자의 출신을 楚의 苦縣(河南省 鹿邑縣)이라고 기록하여 이래로, 《史記》의 기록이 정통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역주3 見老聃 : 노담을 만났다. 만났다고 번역하였으나 실은 가르침을 받고자 만나 뵌 것이므로 見자의 음은 ‘현’으로 읽어야 한다. 孔子와 老聃의 문답은 《莊子》 전체에 일곱 군데 보이는데 〈天地〉편에 1, 〈天道〉편에 1, 이 〈天運〉편에 3, 〈田子方〉편에 1, 〈知北遊〉편에 1의 총 7條의 문답이 보인다.
역주4 子來乎 : 그대는 오셨구려(잘 오셨소), 선생 잘 오셨소. 子는 그대. 여기서는 ‘선생’이라 번역하였다.
역주5 度數 : 禮法의 度數. 禮樂의 법도, 곧 신분에 따라 禮樂의 度數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일. 〈天道〉편 제5장에 “禮法度數”라 하여 이미 나왔다(福永光司). 成玄英은 ‘算術’로 풀이하고 있는데 아마도 신분에 따라 등급을 계산한다는 뜻으로 이해한 듯하지만 충분치 않다. 呂惠卿, 褚伯秀, 赤塚忠, 森三樹三郞 등이 모두 成玄英의 疏와 같은 방향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아마도 잘못일 것이고, 林希逸이 “예악이다[禮樂也].”라고 풀이한 것이 간명하다(池田知久). 陸長庚, 林雲銘, 宣穎, 阮毓崧, 陳鼓應 등이 林希逸과 거의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池田知久).
역주6 五年而未得也 : 5년이 지나도록 道를 얻지 못함. 林希逸이 “5년 12년 등은 처음부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정밀하게 추구했지만 아직 얻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五年十二年 初無義理 但曰精粗求之久而未得爾].”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역주7 十有二年而未得 : 12년이 되도록 아직 도를 얻지 못함. 成玄英은 十有二年을 “음양이 일주하는 기간이다[陰陽之一周也].”라고 풀이했다.
역주8 使道而可獻 : 만일 道가 다른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라면. 이하 몇 구절은 道의 불가규정성을 강조하는 말로 〈大宗師〉편 제1장에서 “道는 情과 信은 있지만 작용이나 형체는 없는지라, 전해 줄 수는 있지만 받을 수는 없으며,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다[夫道有情有信 無爲無形 可傳而不可受 可得而不可見].”라고 한 내용과 유사하며(福永光司), 〈天道〉편 제10장에서 “뜻이 따르는 것은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이다[意之所隨者 不可以言傳也].”라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陸長庚, 池田知久). 또 같은 〈天道〉편에 나오는 桓公과 輪扁의 대화, 또 《老子》 제1장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고 한 명제, 그리고 〈大宗師〉편 제1장의 “무릇 도는……마음으로 전할 수는 있어도 손으로 받을 수는 없고 마음으로 터득할 수는 있어도 눈으로 볼 수는 없다[夫道……可傳而不可受 可得而不可見].”라고 한 내용 등을 참고할 만하다.
역주9 中無主而不止 : 마음속에 〈도를 받아들일〉 주체가 없으면 도가 와서 머물지 않음. 마음속에 道가 머물 만한 곳이 준비되지 않으면 道가 와서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하 두 구절은 池田知久에 의하면, 이 책 〈則陽〉편과 《春秋公羊傳》 宣公 3년조(兪樾), 《淮南子》 〈原道訓〉편 등에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劉文典)고 한다. 而는 ‘곧’ 정도의 뜻.
역주10 外無正而不行 : 바깥에 〈도가 향할 만한〉 정확한 표적이 없으면 道가 가지 않음. 正에 대하여는 올바름(安東林) 등 여러 설이 있으나 馬叙倫이 “正은 활쏘는 표적이니 화살을 받는 곳이다[正爲射的 所以受矢].”라고 풀이한 것이 탁견이다. 呂惠卿도 같은 견해(池田知久). 또 王夫之는 일찍이 《四書稗疏》에서 正鵠의 正을 鴊자를 생략한 글자로 보고 鴊과 鵠이 모두 가죽으로 덧댄 과녁의 표적이라고 고증한 적이 있다. 여기서도 而는 ‘곧’ 정도의 뜻. 不行은 道가 가지 않는다,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
역주11 聖人不出 : 성인이 그것을 발출하지 않음. 발출하지 않음은 곧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12 聖人不隱 : 성인은 그것을 안에 간직해 두지 않음. 不隱은 ‘숨기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간직해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郭象과 成玄英은 “감춤이다[藏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林希逸은 《論語》 〈述而〉편에 나오는 “그대들은 내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二三子以我爲隱乎].”라고 했을 때의 隱과 같이 ‘숨기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여기서 취하지는 않았으나 특히 흥미 있는 주석이 있는데 그것은 章炳麟의 注이다. 章炳麟은 隱을 〈齊物論〉편 제1장의 南郭子綦가 ‘隱机而坐(팔뚝을 안석에 기대고 앉음)’하였다고 할 때의 隱자와 같은 뜻으로 보아 기댄다, 依據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면 聖人不隱은 “성인은 그런 사람을 의지할 만한 사람으로 보아 거기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주13 名公器也 : 名聲이라는 것은 천하의 公器임. 公器는 곧 天下其用의 도구라는 뜻이다. 〈人間世〉편 제1장에서 “덕은 명예 때문에 어지러워지고, 지식은 다툼에서 나온다. 명예라고 하는 것은 서로 싸우는 것이고, 知는 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이다. 이 두 가지는 흉기인지라, 극진히 행할 만한 일이 아니다[德蕩乎名 知出乎爭 名也者 相軋也 知也者 爭之器也 二者凶器 非所以盡行也].”라고 한 내용을 답습하여 창작한 내용이다(呂惠卿). 林希逸은 “이것은 유자들이 명예를 좋아하는 것을 비웃은 것이다[此譏儒者好名也].”라고 풀이했다(池田知久).
역주14 仁義先王之蘧廬也 : 仁義는 옛 선왕들이 잠시 묵었던 임시 처소임. 司馬彪와 郭象은 모두 蘧廬를 “임시 처소와 같다[猶傳舍也].”라고 풀이했다. 蘧는 孫詒讓이 고증한 것처럼 《說文解字》에서 “遽는 임시 처소(여관)이다[遽 傳也].”라고 풀이한 것을 취하여 遽의 假借字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池田知久). 廬도 역시 ‘집’의 뜻.
역주15 止可以一宿而不可久處 : 단지 하룻밤 정도 묵을지언정 오래 머물러서는 아니 됨. 또 不可 두 글자의 아래에 以자가 붙어 있는 판본도 있고(馬叙倫) 以자가 붙어 있는 인용문도 있다(劉文典).
역주16 覯而多責 : 오래 머물면 책망을 많이 받게 됨. 馬叙倫은 《說文解字》에서 “逗는 머뭄이다[逗 止也].”라고 한 풀이를 취하여 逗의 假借字로 보았고, 池田知久는 《廣雅》에서 “構는 이룸이다[構 成也].”라고 풀이한 것을 취해서 構의 가차자라고 주장했지만 여기서는 馬叙倫의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金谷治, 福永光司, 安東林 등도 모두 馬叙倫의 견해를 따랐다.
역주17 假道於仁 託宿於義 : 仁의 길을 잠시 빌리고 義의 집에 잠시 의탁함. 여기서는 仁을 길에 비유하고 義를 집에 비유했는데 이보다 앞서 《孟子》 〈離婁 下〉편에는 “仁은 사람이 편안히 쉴 집이고 義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이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라고 표현하여 반대로 仁을 집에 견주고 義를 길에 비유했다. 宿은 하룻밤 묵는 것으로 여기서는 잠시 의탁한다는 뜻.
역주18 以遊逍遙之虛 : 소요의 언덕에서 노닐다. 虛는 墟와 같이 빈 공간을 나타내는 말로 빈 터전이다. 여기서는 아무런 목적 없이 소요하는 무위의 장소를 상징한다. 陸德明은 “음은 墟이고 墟로 된 판본도 있다[音墟 本亦作墟].”라고 했으며, 趙諫議本과 唐寫本 등에는 墟자로 표기되어 있다(寺岡龍含, 池田知久).
역주19 食於苟簡之田 : 〈간신히 먹을 것을 구할 만한〉 구간의 밭에서 먹을 것을 얻음. 〈逍遙遊〉편 제2장에서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짓고 살 때에 〈필요한 것은 숲 속 전체가 아니라〉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가 黃河의 물을 마실 때에 필요한 것은 〈황하의 물 전체가 아니라〉 자기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 不過滿腹].”라고 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福永光司, 朱得之). 苟는 구차함, 간신히의 뜻. 《經典釋文》에서 王穆夜가 “苟는 구차함이고 簡은 간략함이다[苟 且也 簡 略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池田知久).
역주20 立於不貸之圃 : 남에게 베푸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초연히 서 있음. 貸는 빌려 준다는 뜻. 司馬彪는 “베풂이다[施與也].”라고 풀이하여 빌려 준다, 베푼다는 뜻으로 보았는데, 여기서는 “〈함부로〉 베풀지 않는다.”(安東林)로 번역하지 않고 “베푸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福永光司)라는 해석을 취하였다.
역주21 不貸無出也 : 베푸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초연히 서 있는 자는 道를 함부로 말하지 않음. 郭象, 呂惠卿, 林希逸 등의 주석이 모두 확실치 않음. 앞에 보이는 “성인이 그것을 발출하지 않는다(말하지 않는다)[聖人不出].”를 답습한 것으로 보는 池田知久의 설을 따랐다.
역주22 謂是采眞之遊 : 이것을 일컬어 참된 도를 채취하는 놀이라 함. 唐寫本에는 是자가 之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의미의 차이는 없다(王叔岷). 采는 郭象이 ‘采邑’이라 오해한 뒤로 陶鴻慶, 林雲銘 등과 같이 郭象의 견해를 따르는 이들도 있으나 呂惠卿이 “무릇 채취하는 것이 참다움 아닌 것이 없다[凡所采者 莫非眞也].”라고 풀이한 것과 林希逸이 “진실한 이치를 채취함이다[采取眞實之理也].”라고 풀이한 것을 따라 ‘채취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池田知久). 眞은 참다운 도. 林希逸은 “참된 이치[眞實之理].”라고 풀이했다.
역주23 以富爲是者 : 富를 최고의 가치[是]로 생각하는 자. A를 B로 여긴다는 以A 爲B의 構文이다. 是는 옳을 ‘시’ 字이니, 좋은 것, 최고의 가치를 말한다.
역주24 親權者 不能與人柄 : 권력을 사랑하는 자는 남에게 권력[權柄]을 줄 줄 모른다. 與는 준다, 人은 다른 사람에게라는 간접목적어, 柄은 권력이라는 뜻의 직접목적어.
역주25 一無所鑒 : 조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음. 鑒은 거울삼아 살핀다는 뜻. 成玄英이 “富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권세를 좋아하는 사람은 심령이 어리석고 어두워 오직 명리에 집착하여 전연 자신을 살펴볼 줄 모른다[是富好權之人 心靈愚暗 唯滯名利 一無鑒識].”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이 견해를 이어 劉辰翁은 “鑒은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다고 할 때의 鑒과 같다[鑒 殷鑒不遠之鑒也].”라고 풀이했고, 王敔는 “거울삼아 경계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음이다[不以爲監戒].”라고 풀이했고, 陸樹芝는 “거울을 빌려 자신을 비추어 보고 그르다는 것을 깨우침이 없음이다[無所借鑒而悟其非].”라고 풀이했는데 모두 비슷한 견해이다(池田知久). 《廣韻》에서는 “鑑은 경계함이다[鑑 誡也].”라고 하였다(池田知久).
역주26 以闚其所不休者 : 그것이 있는 곳만 엿보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 자. 林希逸은 “闚는 살펴봄이다. 所不休는 미혹되어 돌아갈 줄 모름이니 마음에 분명한 견해가 없어서 돌이켜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한다[闚 視也 所不休 迷而不知返也 心無明見 而不能反視其迷].”라고 풀이했고, 宣穎은 “단지 물욕을 쫓는 데만 밝아서 그치지 않는다[但明於逐物不止].”라고 풀이했는데 대의는 무난하지만 구문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반면 劉辰翁은 “단지 정욕이 쉬지 않는 곳을 엿볼 뿐이다[但闚其情欲之所不休者].”라고 풀이했는데 구문상으로는 자연스럽지만 의미가 불충분하다. 赤塚忠은 其所를 ‘祿‧名‧柄’ 등을 탈취하고 확보할 기회라고 했고 不休는 ‘끊임없이 힘쓰다’는 뜻으로 보았는데 이 경우는 의미는 적절하게 풀이했지만 구문상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또 王敔는 “탐색하여 그만두지 않는다[而探索不已].”라고 풀이했는데 ‘而’자를 붙여 구문상으로 자연스럽고 의미도 통한다. 여기서는 赤塚忠의 견해를 따라 의미를 풀이하고 王敔의 견해를 따라 구문을 보충하여 ‘以闚其所’와 ‘不休’를 ‘而’자로 연결하여 ‘以闚其所 而不休’ 정도로 보고 “그런 것들이 있는 곳만 엿보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 자.”로 번역하였다.
역주27 天之戮民也 : 하늘의 형벌을 받은 죄인. 〈德充符〉편 제3장에서 “天刑之”라는 표현이 나왔고(呂惠卿, 池田知久), 〈大宗師〉편 제4장에서도 “天之戮民也”라고 하여 이 부분과 똑같은 표현이 나왔다(福永光司).
역주28 正之器也 :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正]의 도구임. 正은 政과 같다.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정치의 도구라는 뜻. 成玄英은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구를 쓰지 않을 수 없다[治正之器 不得不用之也].”라고 풀이했는데 약간 미흡하며, 宣穎은 “다른 사람을 바로잡는 도구[正人之具]이다.”라고 풀이했는데 역시 불충분하다. 馬叙倫이 “正은 政자를 생략한 글자이다[正爲政省].”라고 풀이한 것이 타당한 견해이다.
역주29 唯循大變 無所湮者 : 이것은 오직 커다란 변화를 따라 그 흐름을 막는 행위가 없는 자. 이 구절 전후의 내용은 〈天道〉편 제9장에서 “형벌과 은덕에 의한 정치나 仁義에 의한 교화는 정신 중에서 지말에 지나지 않으니 지인이 아니면 누가 이런 본말의 관계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形德仁義 神之末也 非至人孰能定之].”라고 한 내용과 비슷한 맥락이다. 大變은 林希逸이 造化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羅勉道 또한 “大化라고 말한 것과 같으니 바로 天이다[猶言大化 卽天也].”라고 풀이했는데 林希逸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湮은 가로막는다는 뜻. 李頤가 湮을 “막음이니 또한 정체됨이다[塞也 亦滯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역주30 正者正也 :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 앞의 ‘正’자는 ‘正之器也’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政’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林希逸은 “나에게 있는 것이 올바른 뒤에 다른 사람을 바로잡을 수 있다[在我者正 而後可以正物].”라고 풀이했고, 褚伯秀와 王敔도 거의 같다. 福永光司의 지적처럼 《論語》 〈顔淵〉편에서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 당신이 올바른 도리로 백성들을 인도한다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는가[季康子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라고 한 것을 답습하면서 그것을 야유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史記》 〈孔子世家〉에 의하면 季康子는 諸國을 편력하고 있는 孔子를 조국으로 다시 불러들인 魯나라의 上卿이다. 따라서 이 말은 공자가 귀국한 68세(B.C. 494) 이후에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池田知久). 또 〈應帝王〉편 제2장에서 “성인의 다스림이 외면을 다스리는 것인가? 자기 자신을 바르게 다스린 뒤에 시행되어서 확고하게 자기가 할 일을 잘할 뿐이다[夫聖人之治也 治外乎 正而後行 確乎能其事者而已矣].”라고 한 내용과 〈德充符〉편 제1장에서 “땅에서 생명을 받은 것 중에서는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올바르니, 홀로 사철 푸르디 푸르고, 하늘에서 생명을 받은 무리들 중에서는 오직 요임금과 순임금만이 홀로 올바르니, 만물의 으뜸이다. 다행히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 중생들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受命於地 唯松柏 獨也〈正〉 在冬夏靑靑 受命於天 唯[堯]舜獨也正 在萬物之首 幸能正生 以正衆生].”라고 한 내용과 일부 유사한 맥락이 있다.
역주31 其心以爲不然者 天門弗開矣 : 그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자에게는 하늘의 門이 열리지 않음. 마음으로부터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늘의 문(道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天門이 인간의 내면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밖에 있는 하늘이냐를 두고 견해가 엇갈린다. 陸德明은 天門을 두고 “어떤 사람은 마음을 말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大道를 말한다고 했다[一云 謂心也 一云 大道也].”라고 풀이했는데 이 구절과 유사한 표현이 〈人間世〉편 제1장에 “그것을 쉽게 여기는 사람은 밝은 하늘이 마땅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易之者 皞天不宜].”라고 한 데서 나온다. 따라서 池田知久의 지적처럼 天門은 皞天처럼 인간의 밖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天門은 〈庚桑楚〉편에도 나오며(陸樹芝) 《老子》 제10장에도 나온다. 天門을 인간의 마음으로 보는 견해는 成玄英에서 시작되어 褚伯秀, 陸長庚, 宣穎, 陳壽昌, 王先謙, 阮毓崧, 陳鼓應 등이 지지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위 문장의 “中無主而不止”와 무리하게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高亨은 “天門은 이목구비를 일컬음이다[天門謂耳目口鼻也].”라고 하여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池田知久).

장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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