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夜
에 相擊於前
하야 死傷者 歲百餘人
이로대 하더니
太子 及使人하야 以千金으로 奉莊子하야늘 莊子弗受하고 與使者로 俱하야 往見太子하야 曰호대
使臣으로 上說大王하고 下當太子면 趙國에 何求를 而不得也리오
然이나 臣有三劍호니 唯王所用이시니 請先言而後試하노이다
此劍은 直之無前하고 擧之無上하고 案之無下하고 運之無旁이라
曰諸侯之劍은 以知勇士로 爲鋒하고 以淸廉士로 爲鍔하고
此劍은 直之에 亦無前이며 擧之에 亦無上이며 案之에 亦無下며 運之에 亦無旁이라
上法圓天
하며 以順三光
하고 下法方地
하야 以順四時
하고 하나니
庶人之劍은 蓬頭突鬢 垂冠이오 曼胡之纓과 短後之衣로 瞋目而語難하야서 相擊於前하야 上斬頸領하고 下決肝肺하나니 此는 庶人之劍이라 無異於鬪鷄하니
今에 大王이 有天子之位하시고 而好庶人之劍하시나니 臣竊爲大王하야 薄之하노이다
옛날에 조趙나라 문왕文王은 칼싸움을 좋아하였는데, 검사劍士로서 왕궁의 문을 사이에 끼고 양쪽에 객으로 초청된 이가 3천여 명이나 되었다.
밤낮으로 문왕 앞에서 서로 칼싸움을 하여 사상자가 1년에 100여 명이나 되었는데도, 문왕은 조금도 싫증 내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하기를 3년이 지나자 나라가 매우 쇠퇴하였다.
그러자 다른 나라 제후들이 토벌할 것을 도모하게 되었다.
태자太子 회悝가 이를 걱정하여 좌우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누가 왕의 뜻을 기쁘게 하고서 간하여 검사들 칼싸움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장자莊子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자太子가 이에 사람을 시켜 천금을 가지고 가서 장자에게 바치게 하였는데 장자는 받지 않고 사자와 함께 가서 태자를 만나 보고 말했다.
“태자께서는 무엇을 나에게 명령하시려고 천금을 저에게 내리셨는지요?”
“선생께서 총명성지聰明聖知한 분이시라 듣고 삼가 천금을 받들어 선생의 종자從者에게 예물로 바친 것인데 선생께서 받지 않으시니 저는 그 이상 무엇을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듣건대 태자께서 저를 쓰고자 하시는 까닭은 임금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끊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더이다.
그러니 가령 제가 위로는 대왕을 설득하다 왕의 뜻에 거슬리고 아래로는 태자의 의향에 합당하게 하지 못하면 저는 몸이 형벌에 처해져 죽게 될 것이니, 제가 그러고도 어디에 천금을 쓸 곳이 있겠습니까.
또 가령 신臣이 위로 대왕을 설득하고 그래서 아래로 태자의 의향에 합당하게만 한다면 조趙나라에서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우리 왕께서 만나는 상대는 오직 검사劍士뿐입니다.”
우리 왕께서 만나는 검사들은 모두 쑥대처럼 풀어헤친 머리, 길게 뻗친 양 뺨의 구레나룻에 깊이 눌러쓴 철모에다 장식 없는 거친 투구 끈과 뒤가 짧은 전투복으로, 눈 부릅뜨고 거친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래야만 왕께서 비로소 기뻐하시니 이제 선생께서 꼭 유복儒服을 하고서야 왕을 뵙는다고 할진댄 일이 반드시 크게 어긋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 임금께서 좋아하는 검객은 모두 더벅머리에 살쩍은 불끈 치솟고, 낮게 기울어진 관을 쓰고, 장식이 없는 끈으로 관을 매고,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눈을 부릅뜨고 말을 더듬거립니다. 임금께서는 그래야만 좋아하십니다. 지금 선생께서 유복을 입고 임금을 뵈려 한다면 일을 반드시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검복劍服을 갖추어 주십시오.”
검사劍士의 옷을 3일 걸려 만들자 마침내 장자莊子가 태자太子를 만났더니, 태자는 이에 장자와 함께 왕을 뵈었다.
왕이 흰 칼날을 뽑아 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장자는 궁전의 문안에 들어가 잰걸음으로 걷지 아니하고 왕을 보고서도 절하지 않았다.
“그대는 무엇을 과인에게 가르치려고 태자로 하여금 앞장서게 하였는가?”
“신이 듣건대 대왕께서는 칼싸움을 좋아하신다 하기에 그 까닭에 제 검술을 가지고 왕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그대의 검은 어느 정도의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가?”
“신臣의 검은 십 보 나아갈 적마다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그렇게 하여 천리를 나아가는 동안 가로막을 자가 없습니다.”
“대저 〈제가〉 칼을 쓰는 방법은, 상대에게 허점을 보이고, 내 몸을 열어 상대를 유리하게 하고, 상대보다 늦게 칼을 쓰기 시작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보다 먼저 칼을 상대의 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시험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합하는 자리를 갖추게 하고 다시 선생께 청하리다.”
그리고는 왕이 마침내 〈나서서 싸울〉 검사를 7일 동안 겨루어 선발하였는데 그 때문에 죽거나 다친 이가 60여 명이었다.
그 가운데 5, 6명을 선발해서 그들에게 궁전 아래 모여 각각의 무기를 손에 받들게 하고서 마침내 장자를 불렀다.
“오늘 시험 삼아 이들 검사劍士들로 하여금 검술을 닦게 하도록 하시오.”
“그런데 선생이 사용할 칼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좋겠습니까?”
“신이 가지고 쓸 칼은 어느 것이든 모두 좋습니다.
그러나 신에게는 세 가지 칼이 있는데 오직 왕께서 쓰고자 하시는 것을 따를 것이니 먼저 칼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나중에 시합하고 싶습니다.”
“천자天子의 검劍이 있고, 제후諸侯의 검이 있고, 서인庶人의 검이 있습니다.”
“천자의 검은 연계燕谿와 석성石城을 칼날 끝으로 삼고, 제齊나라와 대산岱山을 칼날로 삼고, 서북의 진晉나라와 위衛나라를 칼의 등마루로 삼고, 주周나라와 송宋나라를 칼자루의 테로 삼고,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칼자루로 삼습니다.
사방 오랑캐로 그 둘레를 안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의 추이로 그것을 감싸며 발해渤海로 주위를 둘러치며 상산常山을 띠로 삼아 칼을 허리에 찹니다.
오행五行으로 통제하며 형벌과 은덕으로 휘두르는 법을 논하며 음양으로 칼을 칼집에서 뽑으며 봄 여름에는 칼을 가지고만 있으며 가을 겨울에는 칼로 내려칩니다.
이 칼은 곧장 앞으로 뻗으면 더 이상 앞이 없는 우주의 끝에까지 이르고, 위로 쳐들어 올리면 더 이상 위가 없는 무한의 높이를 가르고, 아래로 내리치면 더 낮은 데가 없는 아래를 치고, 휘두르면 사방 어디고 한정된 방향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뜬구름을 절단하고 아래로는 대지를 묶은 굵은 밧줄을 끊습니다.
이 칼은 한번 쓰면 제후들의 옳지 못함을 바로잡고, 온 천하의 만백성이 복종합니다.
문왕文王이 멍하게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가 말했다.
장자莊子가 말했다. “제후의 검은 지혜와 용기 있는 사람을 칼날 끝으로 삼고, 욕심이 없는 사람을 칼날로 삼고,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칼등으로 삼고, 충의와 성덕이 있는 사람을 칼자루의 테로 삼고 재지才知가 뛰어난 호걸을 칼자루로 삼으니
이 칼도 앞으로 곧장 뻗으면 또한 더 이상 앞이 없는 끝까지 나아가며, 위로 쳐들어 올리면 또한 더 위가 없는 무한의 높이를 스치고, 아래로 내리치면 또한 더 아래가 없는 낮은 데까지 치고, 휘두르면 또한 사방四方 어디고 한정된 방향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아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따르고, 아래로는 네모난 땅을 본받아 사계절의 추이推移를 따르고, 중간으로는 백성들의 의향意向을 살펴 알아서 나라의 사방을 안정시킵니다.
이 칼을 한번 사용하면 마치 천둥 번개의 진동과 같아서 사방 국경 안의 모든 백성들이 그 누구도 공물을 들고 와서 복종하여 임금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서인의 칼은 쑥대처럼 풀어헤친 머리, 길게 뻗친 양 뺨의 구레나룻에 깊게 눌러쓴 철모에다 장식 없는 거친 투구 끈과 뒤가 짧은 전투복으로, 눈 부릅뜨고 거칠게 소리 지르며 왕 앞에서 서로 칼을 휘둘러대고서 위로는 상대의 목을 베고 아래로는 상대의 간과 폐를 칼로 도려내나니, 이것이 서인의 검이니 투계鬪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이 이미 끊어지게 되고 마니, 그렇게 되고 나면 나라 일에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이제 대왕께서는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서인의 검을 좋아하시니 저는 가만히 대왕을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왕이 마침내 장자를 이끌고 궁전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요리사가 요리를 올리자 왕이 〈음식을 먹지 않고〉 요리상 둘레를 세 번 빙빙 돌며 걸을 뿐이었다.
“대왕께서는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기분을 안정시키십시오.
칼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이것으로 모두 다 아뢰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문왕은 궁중에 들어앉은 채, 석 달 동안을 밖에 나오지 않았더니만, 검사劍士들은 모두 그들이 평소 칼싸움하던 자리에서 〈서로 상대를 칼로 찔러〉 엎드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