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人은 處物호대 不傷物하나니 不傷物者는 物亦不能傷也하나니라
哀樂之來를 吾不能禦며 其去를 弗能止로소니 悲夫라
“제가 일찍이 선생님께 들었는데 ‘보내지도 말고 맞이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옛사람들은 밖으로는 〈만물과 함께〉 변화해도 안은 〈자연의 천성을 지켜〉 변하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안은 〈자연의 천성을 잃고〉 변화해도 밖은 변하지 않고 〈만물과 대치하고〉 있으니 밖으로 〈만물과 함께〉 변하는 사람은 안으로는 한결같이 변하지 않으니, 무엇을 변한다 하고 무엇을 변하지 않는다고 하겠으며 어찌 만물과 다투겠는가.
반드시 만물과 다투어 이기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희위씨狶韋氏의 동산과 황제黃帝의 들과 유우씨有虞氏의 궁궐과 탕湯임금의 집이 그러한 곳이다.
이른바 군자라는 사람들은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스승이 되어서도 시비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이겠는가.
성인은 만물과 함께 살지만 만물을 해치지 않으니 만물을 해치지 않는 이는 만물 또한 그를 해치지 않는다.
오직 만물을 해치지 않는 자라야 다른 사람들과 서로 보내고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산과 깊은 숲을 보고 늪지의 땅을 보았는가.
나와 친함이 없지만 나로 하여금 기뻐하면서 즐기게 하는구나.
그러나 그 즐거움이 아직 다하지 않았을 때에 슬픔이 또 이어진다.
슬픔과 즐거움이 오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고, 슬픔과 즐거움이 가는 것을 내가 붙잡을 수 없으니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다만 외물外物을 맞이하고 보내는 여관일 뿐이로구나.
무릇 〈인간은〉 만난 것은 알지만 만나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며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본디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찌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지극한 말은 말을 떠나고 지극한 행위는 행위를 떠나니 앎이 알 수 있는 것을 가지런히 하려고 한다면 천박한 행위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