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 請欲固置五升之飯
이 足矣
니 先生恐不得飽
커든 弟子
는 雖飢
나 不忘天下
하고 로다하니 圖傲乎
曰
이라/하며 以爲無益於天下者
를 明之
난 不如已也
라하야
以禁攻寢兵
으로 爲外
하고 以情欲
이 寡淺
으로 爲內
하니 하니라
세속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외물 때문에 자신을 꾸미지 아니하고, 남에게 구차하게 행동하지 아니하고, 민중을 해치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천하가 안녕하여 민중의 생명이 잘 살기를 원하여 타인과 자신의 생활이 모두 만족하게 되면 멈추었으니 이렇게 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다.
옛 도술道術 중에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있었는데 송견宋銒과 윤문尹文이 이러한 경향의 학풍을 듣고서 기뻐하였다.
그들은 상하의 폭이 균등한 화산華山의 갓을 만들어 자기들의 생각을 내외內外에 표명하고, 만물을 접할 때는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삼으라고 주장하였으며, 마음의 모습을 말하여 정의하기를 ‘마음의 행위’라 하였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함께 즐거워하여 온 천하의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여 사람들의 청원請願을 적게 줄이는 것을 중심 주장으로 삼았다.
남에게 모욕을 당해도 그것을 욕된 것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싸움을 말리고, 침략을 금하고 무기를 철폐함으로써 세상의 전쟁을 없애고자 하였다.
이런 주장으로 온 천하를 널리 돌아다니며 위로 군주에게 유세하고 아래로 민중을 가르쳐서 비록 천하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더라도 떠들썩하게 주장하며 그만두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두고 ‘상하 양쪽 계층으로부터 싫어함을 당하고서도 억지로 설득하려 든다.’고 욕을 했던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그 사람됨이 남을 위해 하는 일이 너무 많고, 자신들을 위해 하는 일이 너무 적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사람의 정욕은 본시 적은 것이니 〈하루에〉 다섯 되의 밥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하였으니, 〈이렇게 되면〉 선생 자신도 배부를 수가 없는데, 제자들은 비록 배가 고플지라도 천하를 잊지 않고 밤낮으로 쉬지 않으면서 “나는 기어코 민생을 살리고야 말 것이다.”라고 하니, 도모함이 크구나!
〈그들은〉 “군자는 가혹하게 살피지 않으며 내 몸 때문에 외물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천하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밝히기보다는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을 금지하고 무기를 버리는 것을 밖으로 내거는 주장으로 삼고, 정욕情欲을 적게 줄이는 것을 내면의 수행으로 삼았으니, 그 주장이 작고 큼, 정밀하고 조잡함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행동은 마침 여기에 귀착할 따름이다.